'책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82건

  1. 2010.02.18 동화의 배신 22
  2. 2010.02.01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5
  3. 2010.01.02 2009 한해 정리 12
  4. 2009.12.25 2009년에 읽은 책 14
  5. 2009.11.30 책 고르기 20
  6. 2009.11.09 어루만짐 15
  7. 2009.10.14 증정본 22
  8. 2009.07.31 짜증나 11
  9. 2009.05.22 괜한짓 12
  10. 2009.05.15 띠지 27

동화의 배신

투덜일기 2010. 2. 18. 02:01

어설픈 나의 기억력 탓도 있긴 하겠지만 어려서 읽었던 동화의 줄거리가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더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괜한 배신감에 젖는다. 최근의 창작동화는 정확하게 어린이 독자를 겨냥해 쓰인 문학이지만, 옛날이야기로 내려오는 전통설화나 구전문학은 딱히 아동용이 아니었으므로 아이들에게 들려줄 땐 일부 내용이 각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50권짜리 어린이 명작동화 전집 따위에 들어 있었으니 당연히 동화라고 내가 믿었던 작품들이 실제로는 상당히 진지한 문학작품이었음을 알게 되더라도 배신감은 여전하다.

하기야 내가 어렸을 때 출간된 번역문학은 죄다 일본 출판사들이 각색해서 낸 책의 중역본이었으므로 일차로 일본 아동 출판사에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각색 및 편집하고 또 이차로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다듬으며 내용이 원전과 꽤 많이 멀어진 게 당연할 것이다. 어쨌거나 신랄한 풍자문학이었던 <걸리버 여행기> 같은 작품을 어린시절 그냥 환상적이고 신나는 모험 동화로 읽었던 나는 나중에 한참 유행하던 완역판으로 다시 보며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종일관 인간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존재로 그려지고 있던지. 

소설이야 그렇다 쳐도, 안데르센 동화집, 그림 동화집에 들어있던 동화마저도 내가 읽은 내용이 원전과는 조금씩 달랐단 걸 비교적 최근에 알았을 땐 불쑥 이게 뭐야, 하는 억울함마저 들 정도였다. 가령, 인어공주의 결말은 사랑을 잃은 슬픔에 물거품으로 변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번역을 의뢰받고 새삼 작업을 하다가 인어공주의 끄트머리에서 낯선 결말을 만났을 때 나는 하도 의아해서 비교적 어린 친구들에게 설문을 해볼 정도였다. 나랑 띠동갑 이상 되는 사람들은 혹시 물거품 이후의 결말을 알고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헌데 너무 어린 친구들은 이미 명작동화 세대가 아니라 창작동화 세대였던지, 물거품 결말도 아니고 왕자의 무지를 일깨우고 악한 마녀를 무찔러 사랑을 이루는 디즈니 만화의 해피엔딩만 알고 있었으며, 그 외엔 하나같이 물거품이 되는 것으로 기억했다.

동화치고 슬픈 결말이라 어린시절 내 눈물을 쏙 뺐던 인어공주 이야기는 솔직히 물거품으로 스러지는 결말이 가장 극적이라고 느껴지기에, 과거 동화책을 만든 사람들이 거기까지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원래 그렇게 끝내질 않았다는데 어쩌겠나 말이다. 원래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된 뒤에 다시 공기의 정령이 되어 삼백 년이나 인간 세상을 떠돌 운명이다. 원래 불멸의 영혼이 없는 인어는 인간의 사랑을 얻어야 불멸의 영혼을 지닐 수가 있는데, 일단 사랑에 실패를 했으니 다른 방법으로 삼백년간 인간 세상을 떠돌면서 착한 일을 해야 천국에 갈 수가 있다나. -_-;


어려서 나는 안데르센 동화 가운데 <인어공주>를 제일 좋아했고, <빨간 구두>를 제일 싫어했는데 알고보니 결론은 다 똑같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너무도 당연했던 그 시대에 뭘 더 바라겠냐만 그래도 제 분수를 모르고 허황된 꿈을 꿨던 소녀들은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른 뒤 깊이 회개하고 나서야 천국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판국이니 우리 세대가 필독도서로 읽던 <고전 명작 동화>가 인종주의, 남성우월주의 같은 편견을 주입시킨다는 이유로 점점 퇴출되는 반면 요즘 아이들에겐 창작동화가 훨씬 더 많이 읽히는 게 당연하다. 부모가 자식을 갖다 버려 간접 살해를 시도하질 않나, 식인마녀가 등장하질 않나 결국엔 아이들이 마녀를 끓는 물에 빠뜨려 죽이는<헨젤과 그레텔>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잔혹한 이야기인가 말이다. 그림형제의 동화는 특히 민담을 수집해 엮은 게 많아서 은근히 잔혹동화가 많단다. 

내가 어린시절 동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어떤 역경에도 결국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결말 때문이었고, 그런 기대를 저버리는 <성냥팔이 소녀>나 <인어공주> <거인의 정원> 같은 비극은 어린 마음에도 배신감과 낯설음에 막막했지만 나름의 감동으로 소녀의 감수성을 키웠던 듯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결말도 아니더라는 상황은 더 큰 배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더는 몰랑몰랑해질 수 없는 메마른 어른의 심장에 그나마 간직된 아련한 추억을 새삼 빼앗기는 기분이랄까.

같은 작품도 나이에 따라 느낌과 감동이 달라지므로 중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들, 특히 고전작품은 다시 읽어보고 싶은 게 꽤 많지만 앞으로도 명작동화는 웬만하면 거들떠보지 않을 작정이다. 동화는 그 옛날 내 마음대로 재구성을 했든 말든 그냥 그 감동 그대로만 기억에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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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ㄹ마을 필독도서가 되어버린 책을 이제야 읽었다. 내일까지 검토서 만들어 보내야할 원서가 있었는데도, 워낙 하기 싫은 일인 데다 책 네 권이 자꾸 나에게 손짓을 해대는 것 같아서 그제 밤을 꼬박 새워가며 엄마한테 구박 들어가며(원래 자는 시간인 아침이 밝은 뒤에도 안/못 자고 계속 읽었다) 거의 쉴 새 없이 내달리듯 탐독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웃분들이 거론하던 가상 캐스팅 배우들의 얼굴이 연이어 떠올라 킬킬 웃음짓기도 하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짜내보려고 애쓰다가는 그냥 포기하고 이야기속에 빠져들었다.

로맨스 소설은 읽기 전엔 괜스레 뻔한 상투성을 비웃다가도 읽기 시작하면 매번 정신 못차리고 끝을 봐야 속이 시원하다. 중학생 시절 하이틴로맨스로 시작돼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를 거쳐 주드 데브루가 어떻니, 조안나 린지가 어떻니 작가 따져가며 골라 읽던 시절에도 그러했고, 한동안 끊었다가(?) 로맨스 소설로 번역인생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로맨스 번역에서 차츰 손을 떼게 된 건 번역 분야를 넓혀 몸값을 올리고(?) 싶은 내 욕심도 있었지만, 그 무렵 외국(특히 미국) 로맨스 작가들의 작품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속속 등장한 국내물의 선전이 주효했다. 지나치게 진부하고 통속적인 구도와 인물에 신물나기 시작한 외국물보다 아이디어도 기발하고 아기자기하고 인물도 정감있는 국내물이 훨씬 재미있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어서, 중소대형 출판사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로맨스 작가들을 스카우트 하려는 열풍이 불었다.

성균관, 규장각 시리즈를 쓴 정은궐 씨 얘기도 그때 지인에게 들었다. 초기 작품의 교정과 편집을 맡은 친구가 작품 의논 때문에 연락을 해보니 직장인이더라나. 다른 국내 로맨스 작가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던 눈썰미 좋은 그 친구가 글솜씨 칭찬하는 말을 들으며, 다들 막 짜증을 냈던 것 같다. 뭐냐, 직장생활도 하면서 취미생활로 돈도 벌고! 부러워서 질투난다, 뭐 그런 내용이었을 거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인기로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예약 판매분만 수만 부가 넘었다는 얘기도 들은 듯하다. 얼마 전까지도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었으니, 지금쯤 지은이는 돈방석에 올라 직장생활을 관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을까?

나로선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 <성균관>이 2007년 초에 나왔는데 <규장각>이 2009년 여름에 나왔으니 거의 2년 반이나 걸린 셈이다.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그러기도 했겠지만, 직장생활과 병행하느라 더 오래 걸린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짐작이다. 물론 중론이 그러하듯 나 또한 <성균관> 1, 2권이 <규장각> 1, 2권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주요 인물들의 정체가 다 공개되고 말았으니 다음 시리즈는 긴장감이 더욱 느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금 4인방 김윤희, 이선준, 문재신, 구용하를 비롯해 덕구아범과 순돌이, 반다운, 황서영 낭자까지 참으로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낸 솜씨라면 뭔가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엮어내고 있지 않을까나? 지은이가 정조 시대 역사와 궁궐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던데, 여기서 끝내기는 아깝다규~!

반할 수밖에 없는 훈남들의 활약상을 즐기며 상상세계에서 너무 오래 머문 탓인지, 찌질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꼬부랑 글씨 원서가 좀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재미없는 소설 읽고 검토서 만드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어쨌거나 얼른 마무리해서 아침까지는 메일로 쏘아주어야 하는데 어흑... 어제처럼 이선준을 꿈꾸며 잠이나 자고싶다.(나도 이선준은 너무 완벽한 인물이라 문재신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는데 꿈엔 문재신 대신 이선준이 나왔다. 내 옆에 앉아 조보 대신에 신문을 꼼꼼히 읽더니 감미로운 목소리로 잔소리를 해댔다. ㅋㅋ)

그나저나 제 다음 순서는 통통님이신데, 워낙 바빠 언제 읽으실 수 있으려나요? 어떻게 전달을 해드려야 하옵는지... 책이 돌고도는 책방마을 ㅌㄹ마을, 나도 좀 기여를 해야할 터인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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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해 정리

놀잇감 2010. 1. 2. 01:39

글 하나에 2009년을 정리해 담는 행위는 퍽 뿌듯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하다. 이른바 삶의 <낙>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을 수도 있고, 요것밖에 없었나 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실한 기억력으로도 요것밖에 없었나 허망한 느낌이 들 것이라는 데 심증이 가지만, 하여튼 꼽아보자. 나의 2009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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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읽은 책

책보따리 2009. 12. 25. 22:53

올해는 드디어 나도 독서노트라는 걸 만들어 읽은 책을 적어두었고, 탁상 달력 맨 아래 그달그달 읽은 책을 적어보았더니 꽤 훌륭한 채찍이 되는 바람에(단 한권도 끝내지 못한 7, 8, 9월 석달간은 괜히 가시방석이었다) 애당초 목표인 스무권 넘기기를 가뿐히 달성했다. 다 애서가 이웃분들을 따라가 보려는 뱁새의 몸부림이었는데, 앞으로도 적당히 가랑이 찢어지지 않을 만큼만 따라가는 시늉을 할 작정이다. 역시나 따라하기의 일환으로 개인적으로 좋았던 책은 색을 달리해보았는데 비율이 꽤 높다. 재미 없거나 인내가 따르지 못한 책은 더러 읽다 집어던졌기 때문인데,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위로할 작정이다.
잘생긴 뱀파이어한테 반해서 <트와일라잇> 시리즈만 탐독하는 열두살 조카의 독서를 독려하느라 새삼 읽은 아동서도 많으니 공주에게도 고맙다고 해야할 판.  
하지만 여전히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의 비율은 60퍼센트 정도인듯. 이젠 좀 그만 사고 있는 거나 읽자. 책꽂이도 부족해 다탁 밑에 쌓아둔 책엔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점은 반성이 필요하다. 


1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김석희 옮김. 살림. 사둔지 꽤 됐는데 작년에 <디아스포라 기행> 읽은 김에 생각나 작년말부터 시작해 연초에 끝냈다. 학자로서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무슨 기억력이 그리도 좋은지.
2.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 김영사. 맞다, 신은 없다. 종교에 대한 오랜 회의를 속 시원히 긁어준 책. 오죽하면 포스팅까지 했을라고.
3.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지음/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인데, 내용은 제목만큼 기발한 재미는 없었고 평이한 편. 글줄이 곧 밥줄일 땐 어디서든 삶이 지난하다는 만고의 진리.
4. 문학은 자유다. 수전 손택 지음/홍한별 옮김. 밑줄그어 외두고 싶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사고와 글의 집합체.
5. 보이지 않는 인간 1, 2. 랠프 엘리슨 지음/조영환 옮김. 민음사.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는 아직도 지천이므로 분명 가치 있는 독서였지만 그래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어려운 과제물 끝낸 기분.
6. 완득이. 김려령 지음. 창비. 조카 주려고 사서 먼저 읽고는 너무 재미있어 자지러졌다. 이후로 아류작이 쏟아져 나왔던데 원조는 다를걸! 물론 조카도 이 책을 무척 좋아해서 몇날몇일 완득이 얘길 주고받으며 신을 냈다.
7.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한미희 옮김. 비룡소. 조카한테 읽고 토론하자고 해놓고 막상 기억이 잘 안나서 다시 읽었는데도 새삼 부분부분 좋더라.
8.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김경희 옮김. 창비. 예상대로 슬프고 감동적이긴 했으나 <만들어진 신> 독서의 영향으로 결말에 대해선 조카와 어떤 토론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9.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지음/박동원 옮김. 동녘. 예전에 읽다가 슬퍼서 몇번이나 울었다고 했더니 공주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눈물이 나더냐고 따져서 빌려다 다시 읽었다. 역시나 또 눈물이 났다. 그제야 떠올랐다. 처음 읽었을 때 너무 비참하고 슬퍼서 책을 내던지며 짜증을 냈던 기억이.
10. 한밤중의 작은 풍경. 김승옥 지음. 전집구매 욕망을 잠재우고 작년 이웃 블로거의 목록에서 딱 한권 고른 책. 역시나 좋았다. 하찮은 블로그질에라도 간결하고 깔끔하게, 너저분하지 않게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는 김승옥의 글!
11. 그녀의 프라다백에 담긴 책. 이유정 지음. 북포스. 이요님이 여기서 권하는 책도 몇권 골라 읽었다 ^^ 
12. 나는 런던의 수학선생님. 김은영 지음. 브레인스토어. 해리님의 친구분이자 나 홀로 링크 걸어놓고 구경다니는 내맘대로 이웃의 책이라 읽어보고팠다. 영국의 학교체계와 교사들의 마음가짐이 어찌나 부러운지.
13.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이구열 지음. 돌베개.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다녀와서 부푼 호기심에 읽어보며 새삼 '공부'했다. 비록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14.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서경식 지음/이목 옮김. 돌베개. <기억>은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옮긴이의 말이 인상적이었고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가운데 내가 미처 모르는 이들이 많아 민망.
15.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박이엽 옮김. 창비. 남다른 개인사 때문에 서양미술 가운데서도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에 유독 시선이 머문 지은이의 감상이 가슴아팠음.
16. 눈먼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 해냄. 신종플루 공포가 처음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리던 시기에 읽어 더욱 실감났던 듯. <눈뜬자들의 도시>도 연이어 샀지만 몇십장을 못넘기고 지지부진.
17.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솔. 문근영양 나온 드라마 덕분에 새삼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 펄럭거린 1人의 선택으로 고른 책. 이 책 보고선 또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지 실습하러 국립박물관 가보려 작심했으나 실천은 못했다. -_-;
18. 하나의 대한민국, 두개의 현실. 지승호 인터뷰. 시대의창. 사둔지 오래돼 이 책에서 비판의 주요 대상인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라 맥빠지는 독서였다는 기억이 난다. 소통 안되는 답답한 현실은 그대로지만... 
19. 탐욕의 시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라고 한 레지드 브레의 말에 정말 딱 맞는 지식인이 바로 장 지글러! 무지하고 이기적인 민중이 이런 지식인의 말을 외면하는 현실이 슬플 뿐.
20. 소설. 제임스 미치너 지음/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컴퓨터질로 피로해진 뇌파 정리용으로 올해는 잠자리에서 책을 꽤 읽었는데, 이 책은 잠이 완전히 달아나게 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어 자야한다며 일부러 애써 책을 덮기도 했다. 소설 탄생을 둘러싼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 기발하게 조명한 소설. 사둔지 오래 됐는데 왜 이제야 읽었던고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
21. 희박한 공기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김훈 옮김. 황금가지. 오래 전 외서기획 할 때 프랑크푸르트 현지에서 출간도 안 된 이 책에 대한 판권 경쟁이 엄청났고, 당연히 작은 출판사를 대신해 간 나는 힘을 써볼 도리가 없었는데 빼앗겼다고 돌아와서 언짢은 소리를 좀 들었던 책이다. 민음사 그룹을 어찌 이기라고! 해서 97년 첫 출간됐을 때 괘씸해서 안보리라 마음 먹고 잊었다가 이요님의 책을 읽고 마음을 바꿔 집어들었다. 읽고보니 여전히 경쟁적인 고산 등반의 열기가 식지 않아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정상등반의 진실을 의심받는 요즘 세태를 보며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산이 뭐라고... 
22. 한국의 글쟁이들.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글잘 쓰는 글쟁이들에 대한 선망을 부채질하고 수많은 독서를 강권하는 책. 나는 동의할 수 없는 글쟁이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다시 수십권의 도서목록을 적어두었으나, 일단 눈을 질끈 감았다.
23.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지음/이재원 옮김. 이후. 조목조목 짚어주시는 손택 여사의 말씀이야 한줄한줄 피가되고 살이되고...
24.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2. 발터 뫼르스 지음/두행숙 옮김. 들녘.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판타지 소설을 잘 못즐긴다던데 내가 좀 그런 편이라 여겼으나, 이렇게 기발한 발상이 다 있나 싶어 하며 즐겁게 읽었다. 지루하고 답답한 병원 간병 무수리의 괴로움을 순간순간 잊게 해주었던 고마운 책.
25. 성찰하는 진보. 조국 지음. 지성사. 조국 교수는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지식인에 가까워 칼럼도 열심히 찾아 읽는 편이나, 이렇게 글을 모아놓으니 가끔 그가 쓰는 <백화제방 백가쟁명> 따위의 고루한 한자성어 쓰임새가 턱턱 걸리더라. 내용도 너무 원론적이고... 하기야 원론만 지켜져도 이 세상이 이꼴은 아니겠다만서도.
26. 노란 불빛의 서점. 루이스 버즈비 지음/정신아 옮김. 문학동네. 서점에 대한 선망이 늘 있어 크게 기대했다가 실망했다. 서점이 좋아 서점 직원이 된 사연이 담긴 앞부분만 좀 읽을만.
27.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정창 옮김. 열린책들. 열린책들 Mr. Know시리즈 50% 할인소식에 눈이 어두워 전격 사들인 열권의 책 가운데 이거 딱 한권 읽었다. 온라인 서점의 반액할인 때문에 출판사가 죽어간다는데 덩달아 춤춘 게 미안해서였던... 건 아닐테고, 주섬주섬 골라보다 이게 제일 재미있었음.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소설"을 즐기는 노인의 사연이 짠하다. 중남미 문학엔 특히 무지한 편이라 좀 더 찾아 읽어볼 작정. 
28. 어루만지다. 고종석 지음. 마음산책. 어떻게든 써먹어 보겠다고 열심히 좋은 우리말 베껴 적으며 읽었는데 책을 덮을 때쯤엔 과연 번역할 때 써먹으면 편집자와 독자들이 받아들여줄지 회의가 들었다. 
29. 앗 뜨거워. 빌 버포드 지음/강수정 옮김. 해냄. 기자직을 때려치우고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려고 뛰어든 남자의 요리학습기. 손으로 조물조물 만드는 것, 먹는 것,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시종일관 침나오고 감탄스러웠다. 요리사가 그렇게 어려운 직업인 줄 몰랐다네...
30. 밴버드의 어리석음.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 양철북. 당대엔 파란을 일으켰지만 이내 잊혀지고 만 이른바 '루저'들을 결국엔 이렇게 책으로 기억해준 폴 콜린스 같은 사람이 다 있다니, <기억>이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이목 선생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인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도 기록을 시도한 지은이와 이런 책을 번역하자고 기획한 옮긴이 블루고비에게 갈채를! ^^


작년처럼 한줄 평만 넣으려고 했는데 쓰고 보니 길어진 내용이 많다. 역시나 독서노트의 덕이다! 이러다가 내년쯤엔 나도 두려움 없이 읽은책 리뷰를 몇권 더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게 아닐지. 
하지만 내년엔 더 많은 책을 읽겠다고 호언장담하지 못하겠다. 이 정도로도 내겐 장하다.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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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르기

책보따리 2009. 11. 30. 06:12
책을 읽고 나서 꼼꼼한 후기를 블로그에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책으로 밥 벌어 먹고 살면서 민망하게도 그리 책을 많이 읽지도 않지만, 그나마 드물게 읽는 책의 경우도 내가 좀체 후기를 쓰지 못하는 건 직업병과도 관련이 있다.

전에도 푸념을 한 적이 있지만 번역을 맡아 일을 하는 과정 중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은 <책 검토와 검토서 작성>이다. 순수한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 좋다 싫다 별로다 괜찮다 정도로 뭉뚱그려 판단할 수도 있고 중간에 집어던졌다가 맘 내킬 때 다시 읽거나, 아예 끝내 포기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책의 재미와 가치 여부는 물론이고 상업성은 있겠는지, 독자층은 어떤지, 기존의 책들과는 어떻게 차별화되거나 유사한지, 내용 요약과 책을 조목조목 분석해서 판단하는 의견까지 내놓으라는 출판사의 요구를 받노라면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책멀미를 느낀다. 논리와 분석력이 떨어지는 인간에게 책 한권을 읽고 객관적인 검토 소견을 제시하는 일이란 몹시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해서 바쁜 일정을 핑계삼아 책 검토는 애써 사양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는 법이라, 어쩔 수 없이 원서를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야 할 때면 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냥 독자로서 책을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거다. 다행히 재미있게 책장이 넘어가면 호감어린 검토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작도 전에 느꼈던 책멀미가 계속 이어진다면 비판적으로 헐뜯는 의견을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두려운 건 독자로서 나의 객관성이 얼마나 합리적일까 하는 점이다. 단순히 독서할 책을 추천하는 것이라면야 누군가 읽고나서 투덜대며 별로였다고 던져버려도 상관없지만, 원서에 지불해야하는 저작권 로열티부터 제작비까지 큰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들 <가치>가 있는 책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한다. 

번역만으로는 당연히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번역 초창기 시절 나는 월급을 받으며 비상근으로 어느 출판사의 기획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말이 그럴듯해 출판 기획이지, 내가 하는 일은 저작권 중개 사무소를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꼼꼼히 검토해 <대박>날 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경제경영서 같은 무지한 분야의 책들을 고르는 건 괴로운 작업이었지만, 그래도 온갖 종류의 책을 접하고 읽는 게 좋아서 처음엔 꿩먹고 알먹는 일이라고 기뻐했었다. 요것조것 책을 골라 읽으면서 정기적인 수입도 생겼으니까.
하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출판 경력도 전혀 없는 내가 어떻게 개인적인 취향이나 재미 여부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잘 팔릴> 책을 골라낸단 말인가! 출판사에서 원하는 건 <베스트셀러>가 될 책 90% + <출판인으로서 의미 있는 책> 10% 정도의 비율이었으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책은 얼마든지 추천 가능해도 <잘 팔릴 책>을 찝어내는 건 로또 번호 찍기처럼 막연하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저작권 중개사무소에서 소개받은 <유망한> 책들을 다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 기획회의를 거쳐 높으신 분들이 결정하도록 책임을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놓친 고기는 늘 커보이는 법이라고, 내가 보기에 괜찮은 책 같아서 열심히 추천하다가 막판에 꼬리를 내려 출간을 포기했는데 그 책이 다른 출판사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 난 곧 지탄을 받았다. 워낙 좋으신 분들이라 심한 얘긴 하지 않았지만, 그때 내가 좀 더 강력하게 출간을 주장했으면 안 놓쳤을 거라며 안타까워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내가 완전 별로라며 소개만 하는 수준에서 그쳤던 원서가 그럴싸한 포장으로 날개돋친듯 팔려나갈 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베스트셀러가 다 좋은 책은 아니란 건 누구나 알지만, 아무리 문화산업의 자긍심을 품은 출판사라고 해도 우선은 매출이 높아 돈을 많이 벌어야 그 여력으로 <많이 팔리진 않더라도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최종 결정은 다 같이 했더라도, 비싼 저작권료 지불해가며 공들여 출간한 책이 맥을 못추고 안팔려도 애당초 맨 처음 그 책을 집어왔던 장본인인 나는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대체 출판이 도박과 다른 점은 뭐란 말인가!

책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도 좋았고 책 자체를 읽는 재미는 충분했지만 나는 3년만에 결국 <책 고르기>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아예 외서 기획일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내게 그 일을 맡겼던 출판사 사장님의 깊은 뜻은 번역가로서 책 고르는 안목을 높여 주어지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책을 선정하고 기획해 출판을 주도하는 역할까지 하라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런 재목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지금도 가끔 아마존이나 뉴욕타임스 북리뷰 같은 사이트에서 좋은 책을 찾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는 출판인들이 계시지만,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적이는 수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게을러서 그럴 시간이 잘 없네요..."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블로그 이웃 가운데 동종업계에서 번역에 힘쓰고 계신 두 분은 놀랍게도 번역과 함께 그 어려운 <책 고르기>를 병행하고 계신다. 재미 있으면서 가치도 있는 책을 골라 어렵사리 출간을 권유하고, 또 번역을 맡아 그 책이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땐 성취감과 뿌듯함이 몇배는 더 클 것이다. 더욱이 그 책이 독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어 <잘 팔리는 책>으로까지 인정을 받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막연히 그걸 짐작하면서도 겁쟁이에 게으름뱅이이자 소심증 환자인 나는 의식 있는 번역가의 책무라고 하는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책 골라 권하기>는 고사하고 출판사에서 골라준 원서 읽고 검토서 하나 만들라고 하는데도 어깨가 무거워 한숨을 쉬는 위인임에야 어쩌겠는가.

마뜩찮게 도맡은 책 검토를 할 때도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건, 번역작업을 맡을 욕심에 재미없는 책을 재미있다고 의견을 내거나 가치없는 책을 가치 있다고 추켜세운 적은 없다는 점이다. 사실 사적으로 싫은 분야가 아닌 한 웬만한 책은 소소하게 읽는 재미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이미 다른 언어로 세상에 선을 보인 책은 누군가 출간할 가치를 인정했다는 의미이므로, 그 분위기에 얼렁뚱땅 편승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또 다시 수천만원 이상의 돈과 노력을 들여 나무 없애가며 다시 우리말로 책을 펴낼 의미가 있을지 곱씹어보자면 나는 웬만하면 회의적인 태도로 기울게 된다. 어쩌면 출간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술수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책이 안팔려도 최초 검토자로서 덜 민망하도록. 물론 검토자에게 추후 책 판매 여부의 책임을 묻는 출판사는 없다. 검토자가 아무리 칭찬을 하거나 혹평을 해도, 결국 최종 결정은 출판 기획자의 몫이니 말이다.

번역서든 창작서든 이 땅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하나같이 여러 사람의 고민과 염려와 손길을 거쳐 탄생한다. 얼마 전 본 기사엔 3만개도 넘는 국내 출판사 가운데 작년에 한 권 이상 책을 낸 곳이 10%에 불과하며, 나머지 90%는 단 한 권도 책을 펴내지 못했을 정도로 출판시장이 열악했다고 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지천으로 깔려있고 쌓여있고 꽂혀 있는 게 신간이던데, 그게 겨우 10%였다니.

올해 상황은 어떠했을지 지나봐야 알겠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먹고 사는 형편이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한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책 산업이 돌연 호황을 누릴 리 만무하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어렵디 어려운 <책 고르기>와 <책 만들기>에 종사하는 수많은 출판인들이 보람을 느끼려면 그래도 누군가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골치아프게 만들어 내놓는 입장보다야 선뜻 집어 읽는 입장은 얼마나 더 수월한가. 확실히 나는 독자쪽을 더 선호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막상 읽기를 소홀히 하는 걸 보면 책으로 밥 벌어먹을 자격이 부족한 것도 같다. 2009년 정리할 때 덜 부끄럽도록 마지막 남은 한달 동안 몇권이나 더 읽을 수 있으려나 마음이 조급하다. 검토서 멀미증의 영향으로 독자로서 읽은 책의 후기를 쓰는 것 또한 못할 노릇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웃 애서가들에게 자극을 받아 올해는 읽은 책을 기록하는 독서노트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정리에 젬병인 위인에겐 큰 발전인데, 이러다 보면 시답잖은 감상이라도 언젠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꼬박꼬박 독서후기를 쓸 날도 오게 되려나 어쩌려나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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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루만짐

투덜일기 2009. 11. 9. 15:23

"나이 들수록 사람은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되는 법이다. 늙음은 심신의 쇠약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아내나 남편, 정인이 살아있는 경우에도 그렇다. 그들은 대개 섹스를 포기함과 동시에 어루만짐까지 포기하고 만다. 어루만짐이 외로움을 치료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루만짐은 더 나아가, 때로는 죽음으로 이르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몸이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몸이 어떤 접촉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이 탓이든 다른 이유로든 외로움을 타는 사람에게 어루만짐은 최고의 약손이다." (235쪽)
                                                        -- 고종석, <어루만지다>, 마음산책, 2009

 
책을 읽을 때도 확실히 당시의 관심사나 고민거리에 따라 눈을 파고드는 구절이 다르다. 여름부터 읽다 던져두기를 반복한 책을 어제 드디어 끝냈는데, 대체로 맛깔스럽게 풀어낸 사랑의 언어와 단상들 가운데 저 부분이 유독 가슴을 울렸다.
나무토막처럼 무뚝뚝한 나의 기질에 굳이 유전인자를 따져본다면 분명 엄마한테 물려받은 것이다. 눈 나쁘고, 키작고, 팔다리 짧고, 머리숱 없는 것까지 죄다 아버지를 닮았으면서 다정다감하고 잘 <어루만지는> 성품은 왜 안 닮았나 알다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소심하고 무뚝뚝한 성격을 물려받으려거든 덩달아 눈 좋고 키 크고 롱다리에다 머리숱도 많은 유전인자를 같이 타고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쨌거나 무뚝뚝 모녀는 결코 먼저 손을 내밀어 부비적거리는 성품은 아니되 다정한 가장 덕분에 평생 넉넉한 어루만짐 속에 살아왔는데, 이젠 그 뚜렷한 부재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딸이지 남편이 아니야!>라고 왕비마마에게 소리쳐보지만, 그래도 엄마가 내게 원하는 건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도 조물락조물락 손을 어루만져주고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고 아프다고 하면 안쓰러워서 꼭 안아주던 남편처럼 다정히 굴진 못하더라도 가끔 외로움을 어루만져줄 따뜻한 <약손>이 틀림없는 것 같다.
하루하루 덩치 큰 아기가 되어가는 듯한 엄마와 어떻게든 악착같이 철부지 딸노릇을 하고 싶은 나의 갈등은 결국 내가 힘겨루기를 포기하고 제대로 어루만지는 역할을 수행할 때 풀릴 것이다. 하지만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도 왜 자꾸 억울함이 고개를 드는지(가령,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팔순 가까운 노모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고 집안일은 한톨도 안하며 사는 진정 캥거루족 지인을 부러워하며 -_-;), 내 마음속의 철부지를 자꾸 달래보아도 잘 모르겠다. 자식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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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본

책보따리 2009. 10. 14. 21:26

출판사가 옮긴이에게 무상으로 주는 증정본은 과연 몇부가 적당한 것일까?
번역계약서 내용엔 증정본의 부수까지 포함되어 있다. 내가 같이 일한 출판사들의 경우 10부 아니면 5부다. 물론 담당자들과 친하거나 굳이 친하지 않더라도 말만 잘하면 증정본을 몇 권 더 받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10여 군데 출판사가 죄다 그렇게 정해 놓은 것을 보면, 10부나 5부가 증정본의 적당한 숫자라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책이 나오면 <예의상> 책을 달라는 이들도 많고 또 나도 여기저기 <예의상> 인사할 곳도 많아 증정본 5부론 턱도 없이 부족했다. 책이 모자랄 땐 주변머리 없는 인간 답게 남몰래 서점에서 책을 사서 전달하기도 했는데, 초창기엔 워낙 한군데 출판사와 주야장천 일을 했고 다른 일도 거들어 주게 되었으므로 얼마 후엔 책 좀 가져가겠다고 말만 하고 창고에 직접 들어가 몇부 집어올 수도 있는 형편이라 책꽂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예 증정본을 마다하고 달랑 한권씩만 집에 갖다놓기도 했다.

어느 때부턴가 내가 작업한 번역본은 반드시 두권씩 보관하기로 원칙을 세웠는데, 결과적으로 초창기에 작업한 책은 미리 증정본을 챙겨두지 않은 탓에 한권씩밖에 없는 경우가 꽤 된다. 10년도 넘은 책이니 당연히 절판된 데다 그 이전에 출판사가 문을 닫아버려 구하려면 헌책방을 노리는 수밖에 없는데, 뭐 그렇게까지 귀중한(?) 책은 아니라 그저 한권씩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보관본을 2권씩 챙겨놓겠다는 욕심은, 한권은 새책으로 남겨두고 또 한권은 오탈자나 번역상 미진한 부분을 표시해두었다가 재판이나 2쇄, 3쇄를 찍을 때 수정할 요량으로 품은 원대한 꿈이었다. 초보 번역가에겐 편집 전과 후의 원고를 검토하고 문장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초창기엔 나도 책이 나오면 반드시 원서까지 다시 찾아보며 꼼꼼하게 읽어보고 눈여겨 보아야 할 곳엔 포스트잇을 붙여놓는 등의 정성을 들였다. 
허나 부끄럽게도 요즘엔 책이 나온 뒤 내가 다시 새삼스레 꼼꼼하게 오탈자를 살피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ㅠ.ㅠ 원서 검토할 때 읽어보고, 번역 전에 읽어보고, 번역 내내 씨름하고, 나중에 다시 역자교정까지 거치면 최소한 네번 이상 읽어야하니 제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그 지경에 이르면 거의 멀미가 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출간이 늦어졌다거나 <정말로> 애정이 듬뿍 가는 재미있는 책이라면 다시 또 읽어보며 스스로 감동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내게 꼭 필요한 책이 두권이니, 증정본 5부는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은 집에 온 동생들이 집어가기도 하고 특히 욕심쟁이 공주님은 제 엄마 아빠와 별도로 책을 따로 챙기는 형편이며, 가끔씩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는 책의 경우엔 얄밉게도 <너무도 당연하게> 증정본 한권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지인도 있다. 지금은 집에서 일을 하기에 망정이지, 작업실 있을 때는 한번씩 놀러왔다가 증정본이 그거밖에 안남았다는 데도 굳이 책을 뺏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_-;; 해서 어떤 책은 보관용으로 두세 번이나 직접 구입했을 정도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래한 출판사라 선뜻 증정본 더 달란 말은 꺼낼 수도 없었고...
사실 증정본 10권이면 대개는 풍족하다 못해 많이 남는다. 블로그 이웃분들과 달리 내 주변엔 책을 열심히 읽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내가 번역하는 책들이 그닥 <양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에 강권하기도 민망하여 절반 정도는 집에 쌓아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헌데 문제는 아예 증정본을 안주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너무 많이 주는 출판사도 있다는 점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영화흥행에 힘입어 시리즈가 무려 백만부나 팔렸다는 문제의 그 소설은 출판사 직원들과 틀어진 뒤로 증정본 한 부 받지 못했다. 내쪽에서 당당히 요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시는 그 사람들과 말도 섞고 싶지 않아서 그냥 보관용으로 서점에서 한 권씩 사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꼭 그런 책은 달라는 사람이 많다. 영화를 보고 온 공주님도 역시나 책을 탐내는 바람에 빼앗기고 다시 구입해야 했는데, 그 책의 증정본을 달라고 손 내민 지인들 몇몇에겐 열받은 사연을 전하고 <사보지도 말라!>고 조언했다. -_-;
소싯적에 도움을 많이 주신 출판사 사장님을 돕는 의미로 <무료봉사>했던 책도 얼마 전에 출간되었는데 내가 사긴 좀 속상하고 언젠가는 보내주겠지 무작정 기다렸더니 추석 전에 와인 두병과 함께 친히 책을 한권 주고 가셨다. 이왕이면 한권 더 주시지 딱 한권은 또 뭐람. 그 책도 어째 보관본 2권의 원칙에선 열외가 될 듯하다. 자꾸 열외가 많아지면 원칙도 무너지기 마련인데 젠장...

놀라운 것은 내 경우 증정본을 아예 못받는 섭섭함보다 <증정본 폭탄>처럼 느껴질 만큼 너무 많이 주는 것이 더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 책이 두권짜리인 경우는...
몇년 전에 출간된 소설의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새로운 출판사에서 내 원고를 다시 가져다 책을 냈는데, 아 글쎄 증정본을 20부나 보내준 게 아닌가! 1, 2권으로 나온 책이니 무려 40권. 택배회사에서 책 배달이 오면 나는 대개 1층 현관문에서 받아가지고 들어오는데, 그날은 어깨에 엄청나게 큰 박스를 짊어진 택배 아저씨가 나더러 비켜서라고 하더니 친히 2층까지 올려다주고 갔다. 안 그랬으면 아마 난 들지도 못했을 듯. 
그렇게 받은 20세트의 증정본은 당연히 골칫거리가 되었다. 좁아터진 집구석에 쌓아 놓을 데도 마땅치 않고 당연히 책꽂이엔 자리도 없고, 하필 두번째로 나온 책이라 책 좀 읽는다 하는 지인들은 이미 몇년 전에 나온 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때 출판사에서 하도 광고를 해대기도 했고 서점 순위에도 올라, 그땐 출판사에서 꽤 여러번 보내준 증정본이 부족할 만큼 주변에서 청하는 이도 많았고 내가 읽어도 좋았던 책이라 부러 선물도 했기 때문이다.

무거워서 선뜻 옮기지도 못하고 책이 10권씩 철끈으로 묶인 채 들어있는 증정본 박스를 현관에 계속 버려두고 있으려니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스트레스였다. 완전 새책을 확 내다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솔직히 이번 책이 수정보완본이긴 하지만, 난 장정이며 표지가 옛날 책이 더 마음에 든다)  책 소진을 위해 왕비마마는 모임 있을 때마다 들고 나가 친구들에게 나눠주시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참 나 2권짜리 두툼한 로맨스 소설을 어느 할머니가 읽으신다고!! 당연히 말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모녀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증정본은 일단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컴퓨터 방 구석에 쌓여 있다. 방문을 열어놓으면 안보이는 구석탱이에. ^^
만일 내가 옮긴이가 아니라 지은이였다면 증정본 20부가 저토록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처음 책을 내신 어느 선생님은 증정본 30부도 모자라서 정가의 70%를 주고 다량 구입하기도 했다는데 말이지...

증정본이 10부도 모자랐던 적이 있는가 하면 때론 5부로도 여유로우니 번역서 증정본의 적정 권수는 몇권인지 나로선 도통 알 수가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20부는 너무 많다는 거!
어쨌거나 고육책으로 선택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현재 다섯 세트 예약받아 놓았다. ㅋㅋ 혹시 이 책도 영화 덕분에 새삼 읽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질지 어떨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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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투덜일기 2009. 7. 31. 18:01

월급쟁이의 가장 큰 장점은 독촉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날짜가 되면 월급이 입금된다는 점일 것이다. 동료나 상사가 마음에 안들거나 일이 따분해서 사표를 쓸까말까 매번 고민하다가도 월급날이 되면 또 한달 버텨낼 힘이 불끈 생겨났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프리랜서의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불규칙한 수입.
프리랜서라도 착실한 사람이라면 꾸준히 저축을 해서 언제나 여유돈을 마련해두고 살아야 정상이며, 불규칙한 자금의 흐름 속에서도 어느정도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작업량과 원고료 수입을 배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월급쟁이도 가끔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 월급날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프리랜서는 오죽할까. 아무리 장기적으로 수입을 감안해 작업량을 계획하고 여유롭게 수입과 지출을 예상해도, 의외의 변수는 꼭 있다. 경제불황과 열악한 출판시장을 이유로 결제를 미루는 것이 가장 크고 고질적인 난관.
여러번 원고료 체불로 마음고생을 한 뒤로는 지명도가 있건 없건, 회사 재정상태도 알 수 없고 각별히 나를 챙겨줄 직원도 있을 리 없는 출판사와 처음 연을 트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안면 없는 출판사와도 몇번 통화를 하고 정말로 작업 스케줄 때문에 의뢰를 거절하다가도 책이 괜찮다거나 공교롭게 작업스케줄이 비었을 때 딱 걸리면 대면하지도 않고 이미 안면을 튼 사이 같아져서, 결국엔 슬그머니 일을 맡게 된다. 물론 그렇게 시작해서 수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출판사들도 많으니, 나의 우유부단함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다행히도 요새 꾸준히 작업중인 출판사들은 내가 죽도록 하기 싫어하는 결제 독촉전화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느라 원고를 늦게 넘겨서 그렇지, 제때 원고를 넘기고 나면 알아서 송금을 해주니까.

헌데 겪어보니 출판사의 규모나 지명도와 결제 습관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소규모라도 착실하고 정직하게 원고료와 인세를 제때 보내주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수없이 일간지 광고와 라디오 광고에 나와 막대한 자금을 들인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규모 있는 출판사이건만 얼마 안되는 원고료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곳도 있다.
내가 2년째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출판사도 그런 축에 속하는 곳. 2년이나 지연되고 있는 건이고 내가 <죽도록> 하기 싫은 독촉전화를 반복한지도 9개월째이건만 아직도 해결이 안됐다!
올들어서는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채근을 하고 있는데도 매번 다음달에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매번 어기는 일이 반복된다. 어우 짜증나! 오늘은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도 팍 오른 김에 전화를 했더니 <정말로> 다음주엔 결제를 해주겠단다. 과연?? 그 출판사 요즘 라디오에서 신간 광고도 하던데, 그럴 돈은 있으면서 왜 밀린 번역료는 해결해주지 않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번역료를 결제 우선순위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돌리는 악덕 출판사라고밖엔 여겨지지 않는다. 

그곳 말고도 이번주에 계약금 송금을 약속한 출판사가 있었는데 통장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안들어왔다. 예전에 출간된 책의 저작권이 만료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저렴한> 번역료로 내 원고를 넘겨받아 출간하기로 한 건이라 나로서는 어찌보면 거의 불노소득에 가까워 처음 거래하는 출판사측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계약을 하고도 순진하게 기뻐했는데 문득 너무 계약을 서둘렀나 후회스럽다. 출간 급하다고 해서 원고부터 후딱 보내주었는데 혹시 약속 잘 안 지키는 출판사라 계속 속깨나 썪으면 어쩌지.. ㅠ.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거늘...
출판계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원고 재출간임을 감안할 때  퍽 양심 있는 계약조건이라고 해서 덜컥 수락을 했지만, 매절 계약서에 도장 쾅 찍어 보내고 난 다음날부터 인세계약으로 할 걸 잘못했나 쓸데없이 가슴을 치기도 했던 터라 더 짜증이 난다. 이미 팔릴 만큼 팔린 책이긴 해도, 작년에 나온 문제의 <그> 베스트셀러처럼 영화 개봉으로 새삼 대중의 주목을 받아 엄청 팔리게되면 배 아파서 어쩐담. ;-p
하기야 계약금 약속도 잘 안지키는 출판사라면 인세 지불도 속썪이지 말란 보장도 없으렸다. 결국 번역가는 도를 닦듯 돈으로부터 초연해져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상대적 약자한테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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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짓

투덜일기 2009. 5. 22. 17:09

슬럼프라고 하기엔 너무 오랜 기간 일이 하기 싫어짐을 느끼면서 요새 턱도 없는 소망을 품는다. 작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인세계약 번역서들이 스테디셀러가 되어(베스트셀러는 바라지도 않기로 했다) 10년 뒤까지 다들 끊임없이 팔려나간다면, 분기별로나 상하반기로 나뉘어 송금받는 번역인세가 점점 쌓여 중간에 한해 쯤은 스스로 안식년으로 정하고 팽팽 놀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는 족족 써버리는 나의 소비행태와 현재의 수입과 지출 규모를 감안할 때 통장 잔고가 착실히 늘어나거나 적금통장 따위가 새로이 생겨날 가능성은 전혀 없으므로, 저런 소망은 막연한 상상에 가깝다. 그래도 어쨌거나 꿈꾸는 데는 돈 안드니깐 뭐.

문제는 십수년째 해마다 <최악의 불황>이라고 하소연하는 출판시장과 전 지구적인 경기침체뿐만이 아니다. 내가 번역한 책들이 특별히 널리 권할 만큼 좋은 책도 아닌 데다 블로그 이웃들을 제외하면 내 주변인들 가운데서는 책을 열심히 읽는 이들도 없기 때문에 나로선 인세 수입을 늘이는 데 기여할 만한 방법이 통 없다. 내 번역서만 특별히 마케팅에 신경 써달라고 출판사에 강짜를 부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초판 1쇄 다 팔리고 2쇄 인쇄 들어갈 수 있게 책 좀 사보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강권하면, 그들은 씩 웃으며 "책 한권에 만원이라고 치고 옜다, 넉넉하게 10% 챙겨주마"라면서 천원짜리를 내밀곤 했다. -_-;;
그러다 요번에 <도서관에 책 신청해서 깨끗한 책 처음으로 빌려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문득 궁금해져 내가 번역한 책들을 검색해보았다. 아, 그랬더니 매절 계약이라 많이 팔려도 상관없는 책들은 거의 다 동네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는 반면, 인세 계약한 책들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젠장. 혹시나 해서 최근에 책을 내신 이웃분들의 책도 검색해봤더니 그 책들 역시 도서관엔 없었다. 확실히 이 동네 시립 도서관의 장서량이 열악하다는 증거였다.

당장 책을 신청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보니 또 문득 민망해졌다. 자기가 번역한 책 자기가 신청한다고 도서관에서 안 사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한두 권 더 소비하도록 손쓴다고 해서 당장 2쇄, 3쇄를 찍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이왕 생각한 거 실천해보자 싶어서 우선은 읽고 싶은 책과 이웃분들의 책을 먼저 신청하고 내 책은 시험삼아 한권만 비치요청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모양이다. ㅠ.ㅠ 이웃분들의 책은 도서관에 입고되었으니 빌려가라고 문자메시지가 다 왔길래 이미 읽은 책이지만 얼른 가서 받아다 놓았다가 2주 후에 반납했는데, 내 책은 연락이 없다. 그나마 제일 <양서>로 골라 신청했는데!
번역서는 책 정보 입력란에 지은이 이름만 넣게 되어 있던데, 담당자가 공교롭게 나의 음모를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그냥 착오로 빠뜨린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 신청한 책들은 다음 달로 넘어간 것일까? 아무려나 소심쟁이의 인세 늘이기 로망은 괜한 뻘짓으로 마무리 되고 있는 것 같아 상심했다. 내 책 들어왔다고 문자 메시지 오면,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빌리러 가야하나 그냥 책꽂이에 비치되도록 모른 체 할까, 우유부단하게 그거 고민하고 있었더니만 이게 뭐람. 이번 책 성공하면 나머지 인세 책도 다 신청할 작정이었는데, 다 부질없다. 쓸데없는 요행 바라며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이나 착실히 하라는 건가. 쳇.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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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

책보따리 2009. 5. 15. 15:23

요즘 나오는 책들의 거의 절반은 표지 아래쪽에 띠지를 두르고 있는 듯하다. 주로 주절주절 표지에 인쇄해 넣기엔 민망한 책의 광고문안을 새기기도 하고, 드물게는 <눈먼자들의 도시>처럼 영화 장면을 아주 넓게  인쇄해 양장본 껍질인지 띠지인지 모를 어중간한 형태로 두르기도 한다. 책 아래쪽에만 둘러놓은 띠지는 사실 관리면에선 꽤나 골칫덩어리다. 책을 쌓거나 꽂거나 옮길 때 쉽게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띠지를 두르고 나오는 책들이 많은 걸 보면 추가 비용과 관리상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저렴한 페이퍼백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는 예로부터 책을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풍습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옛날엔 전 세계적으로 워낙 종이가 귀하고 책이 귀했을 텐데 유독 우리나라만 지금껏 책이라면 무조건 내용과 상관없이 좋은 질의 <아트지> 같은 걸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잡은 이유를 나로선 알 수가 없지만, 최근 나온 핸디북 크기의 작은 책들도 글씨와 판형만 약간 작아졌지 종이는 여전히 눈부신 수입지라 책 무게는 별로 줄지 않은 걸 보면, 정말 책을 숭상하는 민족이 맞는 것 같긴 하다. 아예 안보면 안봤지 만듦새가 시답잖고 <싼티>나는 책은 안사본다는 뜻 아니겠나.
하기야 습관적으로 책을 소중히 다루고 아끼는 습관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남들은 별 생각없이 버린다는 띠지도 나는 차마 버리지를 못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 줄 알았는데, 새삼스레 동생들한테 책을 빌려주며 한 소리를 듣고나서야 아니란 걸 알았다. 띠지 없는 책들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동생들에겐 띠지의 존재여부가 독서의 여부를 알려주는 표시일 정도란다. 책을 읽게 되면 거추장스러운 띠지를 제일 먼저 버린다나.
물론 나도 책을 읽을 땐 당연히 띠지가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먼저 빼긴 한다. 그러고는 곧장 버리는 게 아니라 이미 접혀 있는 모양대로 약간 양쪽 길이가 다르게 접어선 책갈피로 사용한 다음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띠지를 곱게 둘러 책꽂이에 꽂아둔다. 그러다가 보면 책을 이리저리 빼고 꽂다 가끔 띠지를 찢어뜨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최근엔 그냥 책사이에 꽂아둘 때도 많아졌기는 하지만, 띠지를 함부로 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내가 띠지를 안버리고 계속 보관하는 모습이 꽤나 이상해 보였는지 며칠 전엔 정민공주가 물었다. "고모는 왜 저런 책 종이를 안 버리고 계속 갖고 있어?"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잠시 대답이 궁해졌던 나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주절주절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 저런 종이 조각 하나도 생각 많이 하고 머리 써서 만든 거고, 종이는 원료를 다 수입해서 만들기 때문에 함부로 버리면 아깝기도 하고, 접어서 책갈피로 쓰면 아주 요긴하고....

어쩌면 내가 출판업계에 발을 담그고 생계를 잇고 있기 때문에 책을 더 존중할지 모른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띠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책에 대한 애정이 많다기 보다는 최대한 새것인 채로 보관하고 싶은 겉치레 욕심에 불과한 듯하다. 띠지를 안 버리고 책을 읽은 다음 다시 둘러 두는 짓은 번역 일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반복된 습관이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하다. 나보다 훨씬 더 책을 많이 읽으시는 블로그 이웃들은 띠지를 어떻게들 처리하시는지. 정말로 띠지에 대한 집착은 나만의 기벽인지. 나말고도 그러는 분들이 또 있는지.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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