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짓

투덜일기 2009. 5. 22. 17:09

슬럼프라고 하기엔 너무 오랜 기간 일이 하기 싫어짐을 느끼면서 요새 턱도 없는 소망을 품는다. 작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인세계약 번역서들이 스테디셀러가 되어(베스트셀러는 바라지도 않기로 했다) 10년 뒤까지 다들 끊임없이 팔려나간다면, 분기별로나 상하반기로 나뉘어 송금받는 번역인세가 점점 쌓여 중간에 한해 쯤은 스스로 안식년으로 정하고 팽팽 놀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는 족족 써버리는 나의 소비행태와 현재의 수입과 지출 규모를 감안할 때 통장 잔고가 착실히 늘어나거나 적금통장 따위가 새로이 생겨날 가능성은 전혀 없으므로, 저런 소망은 막연한 상상에 가깝다. 그래도 어쨌거나 꿈꾸는 데는 돈 안드니깐 뭐.

문제는 십수년째 해마다 <최악의 불황>이라고 하소연하는 출판시장과 전 지구적인 경기침체뿐만이 아니다. 내가 번역한 책들이 특별히 널리 권할 만큼 좋은 책도 아닌 데다 블로그 이웃들을 제외하면 내 주변인들 가운데서는 책을 열심히 읽는 이들도 없기 때문에 나로선 인세 수입을 늘이는 데 기여할 만한 방법이 통 없다. 내 번역서만 특별히 마케팅에 신경 써달라고 출판사에 강짜를 부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초판 1쇄 다 팔리고 2쇄 인쇄 들어갈 수 있게 책 좀 사보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강권하면, 그들은 씩 웃으며 "책 한권에 만원이라고 치고 옜다, 넉넉하게 10% 챙겨주마"라면서 천원짜리를 내밀곤 했다. -_-;;
그러다 요번에 <도서관에 책 신청해서 깨끗한 책 처음으로 빌려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문득 궁금해져 내가 번역한 책들을 검색해보았다. 아, 그랬더니 매절 계약이라 많이 팔려도 상관없는 책들은 거의 다 동네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는 반면, 인세 계약한 책들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젠장. 혹시나 해서 최근에 책을 내신 이웃분들의 책도 검색해봤더니 그 책들 역시 도서관엔 없었다. 확실히 이 동네 시립 도서관의 장서량이 열악하다는 증거였다.

당장 책을 신청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보니 또 문득 민망해졌다. 자기가 번역한 책 자기가 신청한다고 도서관에서 안 사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한두 권 더 소비하도록 손쓴다고 해서 당장 2쇄, 3쇄를 찍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이왕 생각한 거 실천해보자 싶어서 우선은 읽고 싶은 책과 이웃분들의 책을 먼저 신청하고 내 책은 시험삼아 한권만 비치요청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모양이다. ㅠ.ㅠ 이웃분들의 책은 도서관에 입고되었으니 빌려가라고 문자메시지가 다 왔길래 이미 읽은 책이지만 얼른 가서 받아다 놓았다가 2주 후에 반납했는데, 내 책은 연락이 없다. 그나마 제일 <양서>로 골라 신청했는데!
번역서는 책 정보 입력란에 지은이 이름만 넣게 되어 있던데, 담당자가 공교롭게 나의 음모를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그냥 착오로 빠뜨린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 신청한 책들은 다음 달로 넘어간 것일까? 아무려나 소심쟁이의 인세 늘이기 로망은 괜한 뻘짓으로 마무리 되고 있는 것 같아 상심했다. 내 책 들어왔다고 문자 메시지 오면,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빌리러 가야하나 그냥 책꽂이에 비치되도록 모른 체 할까, 우유부단하게 그거 고민하고 있었더니만 이게 뭐람. 이번 책 성공하면 나머지 인세 책도 다 신청할 작정이었는데, 다 부질없다. 쓸데없는 요행 바라며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이나 착실히 하라는 건가. 쳇.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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