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건 좋다'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20.05.08 연어 덮밥 3
  2. 2020.02.27 80세 2
  3. 2018.07.25 더워도 식탐 3
  4. 2017.12.31 2017년 4월 29일(토) - 피코리베라 & 패서디나 4
  5. 2017.12.27 4월 27일 - 나파밸리 6
  6. 2017.12.27 4월 26일 - 나파밸리 2
  7. 2017.07.03 단풍국을 향해 - 4/22(토) 6
  8. 2017.02.04 성수동 대림창고 4
  9. 2016.10.19 오늘 점심 4
  10. 2016.10.06 공주 나들이 2

연어 덮밥

식탐보고서 2020. 5. 8. 20:59

 

어버이날 행사는 늘 주말에 미리 당겨서 동생들과 모여 밥을 먹지만, 정작 당일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지나기가 좀 그래서 어차피 먹는 밥이지만 또 한번 메뉴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해서 작년 어버이날엔 스테이크를 구워 곁들이 채소와 함께 접시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다음주 채혈을 앞두고 있어서 최소 일주일간은 나름 눈가리고 아웅 건강식으로 열량을 제한하는 중이라 가벼운 메뉴로 연어덮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칭찬에 워낙 인색하신 엄마가 맛있다 맛있다 여러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 처음 만들어본 거라 간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간도 딱 맞았기에, 다음에도 참고하려고 여기에 기록해둔다. 

그리고... 마트에 나간 김에 카네이션도 사왔는데 ㅠ.ㅠ 아이비랑 카네이션을 예쁘게도 섞어 잘 키웠네 생각하며 들고 와보니 꽃은 조화였다. 나 원 참. 그 옆에 카네이션만 있는 화분도 있었는데 꽃이 별로 안 예쁘길래 탐스러운 것으로 골랐더니 럴수럴수 이럴수가. 눈이 삐었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 보다.  

재료: 생연어 200g(2인분), 양파 1/4개, 다진 마늘 약간, 간장 1과 1/2숟갈, 참기름 1숟갈, 설탕 1티스푼, 고추냉이 약간, 후추, 요리술, 달걀노른자, 무순

 

1. 생연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오미자요리술에 담가 10분쯤 냉장고에 넣어둔다.

2. 다진 양파와 다진 마늘에 간장, 설탕, 참기름, 고추냉이, 후추를 넣고 휘휘 젓는다.

3. 재웠던 연어를 건져 요리술을 잘 짜낸 뒤에 양념장에 버무린다.

4. 뜨거운 밥은 좀 식혀야 한다고 해서 그릇에 미리 담아 더운 기운을 뺐다. 담아놓은 밥 위에 양념한 연어와 무순을 올리고 맨 위에 달걀노른자를 얹는다.

5. 노른자를 톡 터뜨려서 비벼 먹으면 됨. 

연어보다 달걀노른자가 주인공처럼 나왔다. ㅋㅋ 연어를  칼로 길쭉하게 잘랐지만 결국 비빌 땐 가위로 더 잘라드려야했다. 다음엔 깍둑썰기로 해야지. 내가 찾아본 레시피엔 부추나 쪽파를 넣으라고 했는데, 마트에 가보니 너무 거대한 양을 사기 꺼려져 내맘대로 무순을 넣어봤는데 완전 딱이었다. 다음엔 무순을 더 많이 넣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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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투덜일기 2020. 2. 27. 14:20

10년 전에 엄마 칠순 생일 가족모임을 어떻게 준비하나 고민을 여기 블로그에 적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후딱 10년이 지났고 ㅜㅜ 주말에 왕비마마의 팔순 생신을 맞았다. 작년 생신때는 올해 팔순을 기약하며 아예 동생들도 집에 못오게 했었다. 그때도 병끝이라 엄마 상태가 부실했었기 때문이다.  1년전만 해도 칠순때처럼 팔순 역시 가까운 친척분들은 다 모시고 밥을 먹어야하는 게 아닐까 짐작했지만 1년새 생각이 확 바뀌었다. 다 귀찮아! 준비하는 나의 귀찮음이 가장 크겠지만, 오실 분들도 다 노친네들인데 오라가라 힘드니 안 부르는 게 서로 상책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불과 1달 전만 해도 엄마가 멀쩡히 외식을 하러 나갈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고, 그 말은 조울증세에도 해당된다. 엄마가 심히 아프기 전에 이미 의논했을 때 딴 식구는 절대 부르지 말자고, 우리 삼남매랑 손주들만 모여 평소처럼 조촐하게 밥 먹는 게 좋겠다고 주인공의 동의도 미리 받아놓았었다.

밥먹는 장소도 내 마음대로 정했고 3주전에 예약도 마쳤다. 경치가 밥값의 절반이라는 여의도 사대부집 곳간. 의외의 변수는 코로나19였지만 뭐 차로 이동하고 마스크 쓰고 가면 되겠거니 했다. 9식구 단촐하게 모여 밥먹는 자리라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팔순인데 하나쯤은 뭔가 달라야지 싶어 케이크토퍼를 주문했다. 토퍼까지 아예 세트로 보내주는 화려한 꽃앙금으로 만들어진 떡 케이크를 주문할까 말까도 오래 고민했지만 한식뷔페에 후식으로 떡이 지천일텐데 싶고, 우리 가족들은 몇번 사본 떡 케이크보다 역시 제대로 케이크를 더 좋아하므로 요맘때 제격인 딸기 케이크를 사기로 결정.

케이크토퍼 문구는 대충 샘플에서 이름만 바꾸고 주문했는데 바로 다음날 택배가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대구에서 확진자 폭발하기 직전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요즘엔 뭘 시켜도 빠른 배송이 어려울 만큼 사람들이 생필품까지 배달시키며 사는 듯. 휴...

'팔순축하드립니다' 대신에 '항상 건강하세요'를 넣어야하는 게 아닐까도 좀 고민했었는데 도착한 택배를 보니 이렇게 추가 문구와 하트 두개까지 서비스로 넣어 딱딱한 종이에 단단히 붙여서 보내주더군. 뭘 살 때 잘 모르면 돈을 더주는 게 낫다는 옛사람의 진리를 요번에도 실감했다. ㅎㅎ

토요일 오후, 예약시간보다 넉넉하게 집을 나섰는데 다들 바이러스 공포로 집에 콕 박혀 있을줄 알았더니만 길에 차가 꽤 많았고, 음식점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심지어 바로 옆 연회장에선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20200222. 2가 무려 5개나 들어가는 엄청난 길일이라 결혼식이 많다는 이야기는 진즉 들었지만 에고.

째뜬 계획했던 대로 조촐하게, 배부르고 뿌듯하게 이른 저녁을 다 먹고는 케이크를 준비해 조용조용 생일축하노래를 불러드린 뒤 엄마에게 소원을 비시라고 했다. 아들놈 하나가 웃으며 '팔십살에도 소원이 있나?'라고 코멘트하기에 속으로 버럭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도 바라는 거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참 내... 


8개의 촛불을 엄마는 네번에 걸쳐 힘겹게 불어 끄셨고, 난 좀 속이 상했다. 원래 케이크 촛불은 거의 한방에 불어끄시는 분이었는데 흠... 사진을 보니 초를 너무 벌려 꽂아놔서 끄기 힘들었던건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로써 우리나이로 80세, 엄마의 팔순 모임이 무사히 지나갔다. 약이 과도해선지 아니면 기억력이 심히 떨어진 때문인지 걱정스러운 수준이 된 건망증도 자극할 겸 열심히 외우게 시킨 영어문장 중 하나. 아임 에이티 이어즈 올드. I'm eighty years old.

헬로우로 시작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동생들에게 퍼돌릴만큼 신나게 읽고 연습하시기에, 이날 손주들 앞에서 뭔가 짧게 영어 스피치도 하시라고 할까 계획했으나 결국 그러진 못했다. 발음도 좋으시고 읽기는 잘 되는데 암기는 어려워. ㅠ.ㅠ  반복 연습을 시키며 내년엔 에이티원이라고 말씀드리니 싫으시단다. 만으로는 에이티잖아. 계속 에이티만 할 거야. 하긴 나도 맘같아선 계속 피프티만 하고 싶다.  

그나저나 나는 팔십세까지 몇년 남은거지? ㅠ.ㅠ 또 10년 뒤면 엄마가 구순이 되시고 난 육십대가 된다는 게 지금으로선 상상도 되질 않는다. 무섭게 흐르는 시간을 이럴 때나 실감하는 듯. 하지만 그냥 하루하루 무심하게 흘려보내며 사는 수밖에 별 뾰족한 수는 없겠다. 가능하면 나이는 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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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식탐

놀잇감 2018. 7. 25. 21:55

​내 인스타그램엔 주로 먹거리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지만 하루에 인스타에 사진 여러개를 올리는 건 좀 민망하다. 그렇다고 블로그 포스팅 하루에 몇 개나 하는 건 안 민망하냐, 그건 또 아니지만... +_+ 블로그는 아무래도 부러 찾아 읽는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노출되는 매체이고, 인스타그램은 접속과 동시에 타임라인에 여러사람의 사진이 무조건 주르륵 떠버리니까 뭔가 많이 올리면 폐를 끼치는 기분?

하여간에 각설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열심히 해야하는데 또 하기가 싫어져서 (적당한 단어와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핑계다 ㅠ.ㅠ) 오늘 해먹은 과카몰리 사진을 자랑해야겠다. 지난번 파피네 집들이에서 하도 맛있게 먹은 나초와 과카몰리가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마트 가서 밥블레스유의 지령을 받은 듯 나도 모르게 완도 활전복을 집어든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새 아보카도와 레몬, 베이컨을 카트에 담고 있더군. ㅎㅎㅎㅎ

그러고는 오늘 점심 때, 두부와 우유를 갈아 야매 콩국수를 해먹을까 싶었던 마음을 접고 과카몰리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아보카도 두개 중 하나가 좀 덜 숙성되어 잘 안 으깨졌지만 하는 수 없지. 파피한테 레시피를 좀 더 자세히 묻지 않았던 걸 후회하며 대~에충... 베이컨을 다져 볶아 키친타월에 기름을 빼놓고는 양파와 방울토마토 적당히 썰어 넣고 소금, 후추, 레몬즙 뿌려 과카몰리를 만들었다. 나초에 듬뿍 얹어먹듯, 오픈 샌드위치로 와구와구 먹을 작정으로다가. 

해서 미리 식빵 두조각을 넷으로 자른 뒤 과카몰리를 얹었다. ^^; 여기다 미숫가루 탄 우유까지 한끼로 먹으니 어휴 배불러...







좀 남은 과카몰리는 또 저녁때 양상추 샐러드에 얹어 먹었음.

빵에 얹어 먹을 땐 잘 몰랐는데 소금을 넘 많이 넣었는지 좀 짜더라. 암튼 파피한테 팁을 얻은 이 과카몰리의 매력은 쫄깃하게 씹히는 베이컨이 아닐지. 아보카도 사다가 절반 뚝 잘라서 껍질째 접시에 담아 발사믹 소스 살짝 끼얹어 숟갈로 퍼먹는 걸 '반찬'이라 우길 때도 있는데... 좀 귀찮긴 해도 여름이 가기 전에 한번 더 '시원한 점심 메뉴'로 과카몰리 샌드위치는 시도해봐야겠다.











밥블레스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프로그램 보다가 또 혹해서 삼복더위에 해먹은 음식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잡채. -_-;; 최화정이 했던 말인가, 이영자가 했던 말인가.. 암튼 잔치 음식의 완성은 갈비찜과 잡채라는 말을 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명절 때 갈비찜과 잡채가 없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왜 있지 않은가? 사실 해마다 내 생일 즈음엔 왕비마마가 말짱하게 건강했던 적이 드문 것 같다. 해서 생일날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는 '요식 행위' 역시 매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왕비마마가 살림살이에서 손 놓은지가 몇년인데! 사실 간도 못맞추고 맛도 잘 못내신다. 그런데도 아들들이나 며느리들이, 혹은 친척들이 고명딸 생일에 엄니가 미역국은 끓여주었느냐고 묻는 질문에 흔쾌히 대답을 못하는 상황 또한 왕비마마가 못 견딘다는 것이 문제다. (아 제발 다들 좀 생일에 미역국 먹었느냐는 타령 좀 그만 하라규!)

아 난 정말 왜 요리를 잘해가지고! ㅋㅋ

째뜬 그래서 올해도 생일 전날 밤에 꾸역꾸역 노친네는 미역을 불리고 쇠고기를 참기름에 볶아 미역국을 끓여냈고(물론 나의 코치가 필요했다 ㅎㅎ), 생일날 아침 모녀가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그렇다면 또 내가 가만 있을 순 없지 싶어 아침부터 복닥복닥 땀흘려 만든 것이 바로 이 잡채다. ㅎㅎㅎ 갈비찜은 달아서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잡채는 가끔 먹고 싶어져서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만드는 반찬인데 뭐 내 생일 기념으로 못 만들쏘냐! 

칼질을 좀 무서워해서 채썰기가 서툴러서 그렇지 맛은 훌륭했다. 

아침부터 꾸역꾸역 미역국과 잡채에 밥을 먹고 나가 점심 때 또 함박스테이크를 먹어댔으며, 하필 초복날이라 저녁때 또 삼계탕을 끓였더니만... 요즘 가뜩이나 부실한 위는 탈이 나고 말았었다. 세끼를 다 과식하다니 원 멍청하기 이를 데가 없다. ㅠ.ㅠ


의식의 흐름처럼 또 이어서 생각나는 음식이 있으니 그것은 그 다음날 바로 해먹은 월남쌈이다. ㅎㅎㅎㅎ

생일이자 초복날 도저히 삼계탕의 닭을  다 먹지 못하고 죽만 좀 퍼먹은 뒤 다음 날에도 닭죽으로 연명했었는데;;; 아무리 영계라도 퍽퍽한 닭가슴살의 처리 방법이 고민이었다. 그렇다면 라이스페이퍼에 싸먹지 뭐... ^^; 쪽쪽 찢어 맛살과 함께 월남쌈을 해먹었단 얘기다. 

폭염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끼니를 건너뛸 수는 없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더워도 입맛이 없어도 또 꾸역꾸역 먹으면 먹어진다는 게, 먹고 싶은 음식이 끊임없이 생각난다는 게 어쩐지 식충이 같아서 부끄럽다. ​하지만 이영자의 외침대로 인생 뭐 있겠냐고!더욱이 이젠 차츰 늙고 병들어가는 것밖엔 남지 않았다고 생각이 드는 중년의 인생이기에 더더욱 하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은 가능한 한 누리고 사는 게 옳다고 우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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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토요일. 매일같이 호텔 조식을 챙겨먹던 습관을 깨면 안된다면서 ^^; 친구는 전날 마켓에서 사온 버터식빵을 굽고 달걀 프라이 한개를 곁들여 커피와 함께 아침상을 차려주었다. 

원래는 친구 부모님 댁에 들러서 인사도 드리고 가져간 홍삼 선물도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쿨한 어머니께서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하셨다. 몸이 좋지 않아 손님 맞을 형편과 기분이 아니라고... 친정 엄마랑 만나면 괜한 잔소리 듣는 게 일이라면서 친구 S도 차라리 잘됐다고 했다. 물론 사실 나도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는 거 부담스럽고 싫었다! 만세이~ ㅎㅎ

더욱 여유로운 아침 시간... 전날 돌려두고 잔 빨래를 건조기로 옮겨 말린 뒤 차곡차곡 개며 벌써부터 슬슬 돌아갈 짐가방을 쌌다. 외출해서 종일 돌아다니고 밤중에 들어오면 짐 챙길 시간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

이날의 일정은 일단 S의 LA 친구들이자 나와도 안면이 있는 J님의 집들이에 가는 것이었다. 각자 먹을 것을 한두 가지 담당해 싸가지고 가는 식이었는데, 친구S는 워낙 요리와도 담쌓은 데다 전날까지 빡세게 서부일주 로드트립을 하고 온 걸 감안하여 디저트와 과일을 '사가기로' 담당했었다.

행선지는 그라나다힐스애서 LA를 거쳐 남쪽으로 좀 더 내려가야하는 피코 리베라. 주말이라 차가 안막히면 4,50분쯤 걸리는 곳이란다. 

화창하고 구름 한점 없는 날씨! 드디어 하늘색 미니의 뚜껑을 열고 좀 달려보기로 했다. 미친년 꽃다발처럼 너풀거리는 머리칼과 볼살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일종의 실험? ㅋㅋ

이날 찍은 미니 시승 사진을 여행기 첫편에도 올렸었지만 ^^; 암튼 속도계에 보이듯이 시속 2,30킬로미터까지만 뚜껑 열고 달리기에 적당한 느낌이었다. 시속 4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근데 또 너무 차가 빨리 달릴 땐 바람의 저항 때문인지 뚜껑을 덮는 게 불가능하단다. 로컬(지방도로의 의미?)에서 기분 낸다고 뚜껑 열고 달리다 어리바리 닫을 때를 때를 놓쳐 그대로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꼼짝없이 목적지까지 미친바람을 맞으며 가는 수밖에 없다고... ㅎㅎ

친구가 이미 겪어본 일이라나. 해서 우린 고속도로 진입 전에 얼른 뚜껑을 닫고 음악을 틀었다. 으음.. 미니를 장만한다고 해도 난 원래 컨버터블을 살 마음이 없었지만, 컨버터블이 아니어도 장거리 고속도로를 달리는 용으로 만들어진 차는 아니란 걸 완전 실감했다. 승차감이 어찌나 나쁜지! 게다가 뒷좌석은 또 얼마나 좁은지! ㅋㅋㅋ 예쁘니깐 다 용서가 되는 차이긴 하지만, 클래식하고 귀여운 외관과 달리 운전하는 느낌도 꽤나 육중하고, 일단 내 형편으론 한국 가격이 너무 비싸! 결국 이때를 기점으로 미니쿠페는 나의 (현실을 감안한) 드림카 목록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ㅠ.ㅠ

LA를 지났을 때쯤이던가... 고속도로에서 배트맨이 탔을 성 싶은 길쭉하고 희한한 차 발견! 그러나 워낙 빨리 슝~ 지나가버려 제대로 못찍었다. 미국 고속도로에선 생김새도 색깔도 워낙 다양한 자동차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맥퀸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카> 주인공들이 막 도로에서 돌아다녀! ㅎㅎ

J님의 타운하우스엔 우리가 1착으로 도착. 한국에서 공수한 조각보와 커튼으로 정갈하게 꾸며진 집구경에 나섰다. 한국도 타운하우스가 유행이지만... 나도 능력이 된다면 아파트의 편리함과 단독주택의 독립성이 혼합된 타운하우스에 살고싶다. ㅠ.ㅠ 

곧이어 도착하신 분들이 한아름씩 안고 온 음식 덕분에 화려하고 어마어마해진 잔칫상을 보라! +_+ 이 중 떡볶이와 김밥만 '사'가지고 온 것이고 나머지는 다 손수 놀라운 솜씨로 만들어 온 음식들이다. 정말.. 배가 찢어지도록 과식을 했다. 친구 S는 넘 느끼하다고 괴로워했지만 내 입엔 해산물 크림 파스타가 단연 최고! 느무느무 진하고 맛있고 푸짐했다. ㅎㅎ

맛있는 두 종류 김치부터 시계방향으로... 해산물 크림 파스타, 떡볶이, 도토리묵 무침, 잡채, 김밥, 오징어 및 야채 튀김의 순이다. 내가 찍은 사진 아님 ^^;;

우리가 사간 케이크는 결국 꺼내지도 못했던 디저트 테이블...

예쁜 약식 또한 C님이 손수 만들어오신 것인데... 한국서 날아온 나 때문에 죄다 특별히 좀 더 신경을 쓰셨다고 해서 감동을 받았다. 내가 뭐라고;; ㅎㅎ 

배가 너무 불러서 거의 각자 여기저기 소파와 식탁 의자에 널브러져 괴로워하던 차.. 우리는 언니들의 호출을 받았다. 두 언니는 <라라랜드>에 나온 명소인 해변과 시장(?)을 돌아보고 쇼핑도 하며 하루를 보냈으니, 출국 전날 저녁은 다시 또 다 함께 만찬을 즐겨야하지 않겠냐는 것. 암요, 그래야죠. 

LA 시내 E언니 집에 친구의 차를 세워놓고 다시 넷이 한 차로 옮겨타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LA 바로 옆에 있는 올드 패서디나. 쇼핑가와 음식점들이 많이 모여있는 나름 관광지? 고급 부티크도 있고, 일반 쇼핑몰도 많은 거리엔 여행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시아인들이 특히 바글바글거렸다. 

큰 길에서 발레파킹을 부탁한 뒤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예쁜 카페와 음식점들이 이어졌다. 아직 해지려면 먼 캘리포니아 봄의 오후 햇살은 6시가 다 되어도 뜨겁고 강렬했다. 

우리의 마지막 만찬은 또 다시 이탈리아 음식 사촌인 그리스 음식. ㅋㅋ 미국식 대형 스테이크를 부담스러워하니깐 젤 만만한 게 파스타 종류일수밖에. E언니가 예약해둔 '산토리니'는 K언니도, 친구 S도 예전에 가본 곳이라고 했다. 나만 처음이야! S는 배가 너무 불러서 늘 시키던 그릴드 깔라마리 (구운 새끼 오징어? ㅋㅋ) 한두 마리만 먹고 말 거라며.. 2주 가까이 이어지는 먹부림 고문에 괴로워했다.   

식당에 올라갈 때만 해도 내려와선 야심차게 디저트로 젤라토를 먹어야지 했으나 나중엔 생각도 나지 않았다 ㅎㅎ



그치만 마지막 만찬인데 그냥 맨숭맨숭 깨작거릴 순 없지... 저는 상그리아도 마실래요! 

이 사진의 햇살과 분위기를 보고 누군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갔다 왔느냐고 물었었다. 으음... 이왕이면 그리스라고 해주지..

째뜬 이 식당의 이름은 '산토리니'였다니까!

술이 약한 S는 곧 운전을 해야하고, 계속 감기로 고생한 K언니도 알코올은 조심해야 하므로 상그리아는 2잔만 시켰는데, 하필 안에 든 과일 중에 망고가 보여서... 망고 알레르기가 있는 E언니는 맛만 살짝 보는 정도로 그쳐야 했다. 

내 입엔 완전 맛있었는데... 친구 S는 한 모금 마셔보더니 독해서 싫으시다고...

연일 밤마다 술을 마셔댄 덕분에 여행기간 동안엔 나의 간이 튼튼해졌거나 혹은 알코올에 대한 면역이 생겼거나(둘 다 근거 없는 억측임을 잘 안다) 중독이 된 건지 정말로 저녁만 되면 술이 땡겼었고, 과음한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늘 거뜬했다. 요샌 밤에 맥주 한 캔 마시고도 다음날 힘들 때가 많은데.. 쩝.. ㅠ.ㅠ 



K언니가 이날 먹은 메뉴를 나중에 깔끔하게 정리해 보내준 사진이다. 

이제 보니 배부르다면서 많이도 시켰군.. ㅎㅎ 지중해식이라서 건강에 좋다고, 다 살 안찌는 음식이라면서 E언니가 또 이것저것 시켰던 것 같다. 주말에 예약씩이나 하고 와서 네 사람이 음식을 너무 적게 시키는 건 예의가 아니라면서.. ㅎㅎ 하긴, 총 음식값의 20-25%를 팁으로 주어야하니 음식을 적게 시킬수록 팁도 적어질테니 그말도 맞다. 암튼 이번 여행에선 매번 밥먹고 내가 팁을 계산해야하는 스트레스가 없어서 느무도 행복했다! 모든 귀찮은 일을 도맡아준 E언니한테 축복을!


오른쪽은 에피타이저 중에서 일행들이 가장 좋아라 먹곤 한다는 구운오징어. 그릴드 깔라마리 클로즈업한 거다.

개인접시에 덜어서 K언니가 따로 찍어 공유해준 사진. 이게 오징어라고? 꼴뚜기 아닌가? 내가 괜히 따지고 들며 궁금해하자 친구가 그냥 좀 먹으라고... 너 또 집에 가서 이거 해먹을라 그러지! 놀려댔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좀 볶다가 레몬갈릭 소스 뿌리고 시금치 넣으면 완성될 것 같긴 하다 ^___^




마지막날 기념으로  친구와 나의 사진을 찍어 주겠노라고 휴대폰을 들이대는 K언니에게 거의 보름간 얼굴이 이따만한 보름달이 되었다고 하소연하는 순간이 찍혔다. 너무 웃기기도 하고,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그리워서 스티커를 활용한답시고 마구 공개한다. 

한국에서 간 나는 덥다고 반팔차림으로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데, LA주민인 친구는 춥다고 외투를 걸쳤다. 하긴 전날까지도 아침저녁으론 오리털패딩을 입고 다녔던 친구다. 

6시부터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가 나올 때쯤엔 바글바글 음식점 테라스 자리가 한군데도 빈 테이블 없이 꽉 들어찼는데,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은 정말 우리밖에 없더라. 서로 '비쥬'를 하며 쪽쪽 친한 척 한 사이도 자리잡고 앉으면, 각자 시킨 음식만 죽어라 먹을 뿐, 절대 한 입 먹어볼래 권하는 법도 없다. ^^;; 우린 또 그게 신기해서 주변 테이블 사람들이 '각자' 매몰차게 밥먹는 모습을 구경했다. 와.. 어떻게 피자도 한 조각 안 나눠주고 혼자 다 먹냐며... ㅎㅎ

식당에서 나와선 부른 배를 꺼뜨리느라 잠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처음엔 눈요기만 할 작정이었는데;; K언니가 남편 선물이며 딸 선물을 마구 고르기 시작하면서, 나도 괜히 갭에 들어가 할인하는 품목 중에 긴 랩스커트와 스트라이프 티셔츠, 모자까지 충동구매를 했다. 그러고 보니 요번 여행에서 치즈와 트러플 오일 말고는 나를 위해  처음 한 쇼핑이었다! 노느라고 쇼핑할 시간도 없는 여행이었구나야...

눈요기하다가 나중엔 언니들과 헤어져 전화통화를 하고서야 겨우 다시 만나, 발레 파킹 부탁했던 자리로 돌아왔는데 와... 우리 앞에서 차를 기다리던 두 아시아인(중국어를 썼다) 아가씨들은 옷부터 핸드백, 신발까지 샤넬로 도배를 했더군. 그러고도 명품 브랜드 쇼핑백을 바리바리 손에 들고 있었다. 어머나 관광객 아닌가봐, 무슨 차 타고 왔나 보자.. 그러면서 지켜보았는데 역시나 주차요원이 가져다준 차도 벤츠였다. 미국에선 벤츠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다지만 흠... 

중국 갑부들이 워낙 많아져서 유학보낸 자식들 중엔 그렇게 고급 차와 명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고 다니는 애들이 많다고 했다. 차이나 머니의 힘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도 구경하다니 오 놀라워라.

E언니의 차에 올라 다시 LA 시내로 들어갔다가, 헤어져 친구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암튼 뭐 그렇게 뿌듯하고 배부르고 꽉찬 여행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 집에 와서 마저 짐을 정리하며 냉장고에 남겨두었던 캔맥주를 또 마셨던가 말았던가... 그 기억은 가물가물.

친구가 팬클럽 활동(?) ^^ 때문에 휴가때마다 거의 1년에 한번은 한국에 나오고 있기 때문에 헤어짐의 아쉬움이 덜했던 것 같다. 예전엔 내가 미국엘 가든 친구가 한국엘 나오든 최소 3, 4년은 있어야 얼굴본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쏟아지며 이별을 아쉬워했지만, 국내 있는 친구들보다 카톡도 더 자주하지, 1년에 한번 한국에 오면 우리집에서 아예 숙식하며 지내지... 그러다 보니 곧 또 볼텐데 뭐!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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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 나파밸리

여행담 2017. 12. 27. 21:42

시작한 김에 얼른 또 이어 써보자! ㅋㅋ 오늘이 12월 27일이니 딱 8개월 전의 일이다.

이렇게 혹독한 한국의 강추위 속에서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게 어쩐지 비현실적인 느낌? 여행을 다녀온 게 벌써 너무도 까마득한데 올해였다니 에효..

암튼 이젠 7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스르르 눈이 떠지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수첩에 써있다. ㅎㅎ)

숙박객의 아침식사는 방키를 카드 리더기에 삐리릭~ 읽혀야 들어갈 수 있는 별도의 컨시어지 라운지에 마련되어 있었다. 비즈니스로 온 손님들이 많은 듯, 정장 차림의 남녀들도 있고 약간 민망한 조깅복 차림으로 들어오는 여자들도 있고... 과일과 머핀, 토스트, 스크램블드 에그와 삶은 달걀 정도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쿠키도 있었는데 대박 맛이 없어서 몇개 집어왔다 그냥 접시에 남겨두고 나오며 코스트코 쿠키 같다고 깔깔댔다. 그나마 초록사과 노란사과 빨간 사과 종류별로 사과가 싱싱해서 내가 특히 신나하며 골고루 잘라 먹고 한개 더 챙겨갖고 나왔다.

아마도 이것은 사이프러스 나무겠지?

오전 일정은 역시나 인근 소도시인 연트빌(Yountville)과 세인트헬레나(St. Helena)를 둘러보는 것. 내 머릿속에 상상한 나파밸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와인 산지처럼 꽤 높은 언덕지형의 가파른 경사면에 키작은 포도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ㅎㅎ 캘리포니아 지형이 어딜 가겠나. 대체로 나지막한 언덕들이 거의 평지처럼 이어지고, 곳곳에 크고 작은 포도원들이 불쑥불쑥 등장했다. 그러고는 핫도그처럼 길쭉하게 생긴 가로수들이 귀엽게 서 있고... 우린 그 사이를 희희낙락 달려가고...


이날 들른 소도시 3군데, 연트빌, 세인트헬레나, 칼리스토가는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나파밸리에 오면 다들 들르는 관광지인 듯, 곳곳에 기념품 가게와 특산품(주로 유제품과 발사믹 식초 따위) 가게가 있고 알록달록한 트롤리 버스가 간간히 돌아다녔다. (하긴 서울 강남역에서도 우스꽝스럽게 트롤리 모양으로 장식한 버스가 돌아다니는 걸 본 적 있다!)


드넓은 한강에 익숙한 내 눈엔 애개개... 울 동네 개천이랑 비슷하군;;

바로 ​내가 딱 원하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미니 발견! 

​강가에 이런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에 산책로가 있고... 날씨는 화창하고 기분이가 삼삼했다. ^^;;

치즈나 버터, 와인, 발사믹식초, 수제비누 따위를 파는 ​특산품 가게에 들어가보면 꼭 생화를 같이 팔고 있었다. 완전 싱싱한 꽃들이 별로 비싸지도 않아! 

내가 양띠라서 그런지 양 인형을 보면 괜히 반갑다. 진열장 유리에 휴대폰을 딱 붙이고 찍어왔네그려.  

​연트빌 곳곳엔 공공미술(?)의 일환인지 여기저기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재미난 인물상도 있고, 이렇게 과일바구니도 있고... 이때쯤엔 언니들이 사진 찍게 얼른 가서 서 봐라 그러면, 예이~ 그럼서 달려가 찍히는 바람에 웬만한 조각상 옆에 다 내 얼굴이 들어 있어서 차마 공개를 못하겠다. ㅎㅎ​

점심은 연트빌과 뉴욕 딱 두곳에만 있다는 유명한 부숑(Bouchon)  베이커리에서 빵과 커피로 때우기로 했다. ​

노란 건물이 바로 그 부숑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빵과 커피를 사, 바로 옆 마당 테이블이나 길거리 벤치에서 먹던데... 바게트가 좀 맛있는 건 인정하겠으나 딴 빵이 그렇게나 맛있는 줄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맛있는 빵집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ㅎㅎㅎ

어쩌면 내가 그다지 빵순이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날의 내 감흥인듯... 빵 사진도 참 이렇게나 성의 없게 찍어놓았군. 



빵은 별 인상깊지 않았어도 날씨가 참으로 아름다웠고 눈돌리면 보이는 풍경도 다 예뻤다. 간간이 여기가 미국이구나 싶은 컨버터블 자동차를 보면 촌스럽게 당연히 휴대폰을 들이대게 되고.. ㅎㅎ 





​나 어릴 적 '총채'라고 불렀던 먼지 떨이개가 생각나는 야자수와 푸른 하늘과 연초록의 잎사귀들... 아이고 그리워라. 













세인트헬레나는 저녁 먹을 식당을 골라두고 다시 가기로 했기 때문인지 사진이 별로 없다.  '메인 스트리트'라고 해봤자 왕복 4차로인 도로 양쪽을 죽 걸어 올라갔다 걸어 내려오며 가게마다 들어가보고 갤러리도 하나 들어갔었는데 흠...

세인트헬레나에서 얼결에 들어간 갤러리. 철사 조형물이 멋졌다


암튼 오후 접어들어 다음 행선지는 주변에 다닥다닥 붙은 소도시인 칼리스토가(Calistoga). 예약해둔 와이너리 방문을 위함이었다. 성처럼 생긴 와이너리 이름은 카스텔로 디 아모로사(Castello di Amorosa). 벽돌로 지은 성채 건물보다 우리 눈에 먼저 띄인 건 보리수 아래 돌아다니고 있는 귀여운 양들! 와이너리에 웬 양이냐며 신기해했는데;; 다들 좋아하는 걸 보면 마케팅 신의 한수렸다. ㅎㅎ


어딜 가든 이런 회랑(?) 주랑(?)으로 이어진 공간을 좋아한다. 성채 안뜰 한 가운데 놓인 고풍스런 우물도 마음에 들고...  


바보 인증샷이 되고만 기념 사진 ㅠ.ㅠ

간단하게 건물을 둘러본 뒤 와인 시음장인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일정이었는데... 이렇게 연회실에 앉아 기념촬영을 한 나는 아 글쎄, 와인 테이스팅 티켓을 잃어버렸다. ㅠ.ㅠ 

분명 브로셔랑 같이 손에 들고 있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손에 든 게 없어! 앗... 전날 셔츠를 잃어버릴 뻔한 순간에 이어진 대박삽질이었다. 

테이블에 올려두고 왔나보다 돌아갔지만, 흔적도 없었다. 이미 누가 집어가버린 것!

와이너리 입장만 할 수 있는 티켓이 있고

2잔만 시음할 수 있는 티켓이 있고

5잔, 10잔... 시음할 수 있는 티켓이 가격대별로 다 차이가 있는데 우린 5잔 용 $25짜리 티켓을 끊었었다. 

이 사진을 찍어준 K언니가 나중에 사진을 확대해보더니, 이땐 분명 브로셔랑 노란색 티켓이 내 앞에 놓여 있다고.. 누가 집어간 게 틀림없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5잔 더 마셨겠지. 흥!

째뜬 다행인 건 E언니가 4사람 티켓을 끊은 신용카드 영수증을 갖고 있어서 별 탈 없이 시음은 할 수 있었다. 매니저한테 영수증 보여주며 티켓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니 별로 따지지도 않고 노 프러블럼! 이라고 ㅠ.ㅠ 멍청하게 사진 찍다 티켓을 두고 나왔다는 자괴감에 빠져 거의 멘붕.. 낙담했던 게 무색해졌다. ㅎㅎ


암튼 시음장인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내부가 이렇게 생겼다. ​


친구는 옆에서 계속 달달한 와인만 시켜 마시는 동안, 나는 꿋꿋하게 드라이한 걸로 달라고 해서 벌컥벌컥 마셨다.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비앙코.. 와서 보니 수첩에 포도 품종만 적어놨네 ㅋㅋ 

그 가운데 무언지 모를 와인잔도 하나 찍어왔다. 딱 시음할 만큼 조만큼씩밖에 안 따라준다. ^___^

그래도 낮술이라 다섯잔 마시고 났더니 알딸딸... 

술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E언니와 친구S는 둘 다 샛분홍색이 되어 바로 운전해도 괜찮을까 잠시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 와인 몇 병 사들고 와이너리를 벗어났다. 





와이너리 이름도 좀 그렇긴 했지만... 사진을 다시 보니 캘리포니아가 아니고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다. ㅎㅎ



아마도 메도우랜드 가는 길..

세인트헬레나에서 미슐랭 별 2개짜리 식당에 6시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우린 다시 시간을 좀 더 때워야했다. 

해서 찾아간 곳은 근처 휴양림 비슷한 메도우랜드(Meadowland). 

숲 잎구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야외수영장이 있고, 군데군데 펜션인지 콘도인지 작은 오두막집들이 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다. 고급스런 레스토랑 겸 카페 건물도 있었지만 굳이 들어가서 차를 마실 기분도 아니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그냥 쉬엄쉬엄 아스팔트 길 따라 걸으며 저 나무는 이름이 뭘까, 저 꽃은 왜 저렇게 크냐 그런 이야기를 한가롭게 주고받았다.

순전히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기 위한 배꺼뜨리기용 산책과 드라이브. ㅎㅎㅎ  









대망의 미슐랭 2스타 음식점 이름은 소박하게도 '마켓'. 식당 이름이 '시장'이란 얘기다. ㅎㅎㅎ 이름 때문인지 엄청 예술스러운(?)자태로 나오려나 기대했던 음식들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고, 맛도 엄청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체로 입이 까탈스럽지 않은데다가 서양 음식이 맛있어봤자지 뭐.. 이런 느낌? ㅋㅋ  느끼한 서양음식을 괴로워하는 친구 S는 미슐랭이라고 해서 비싸기만 하지, 흔하게 먹는 스테이크집이랑 뭐가 다르냐고 투덜투덜... 가성비를 따진다면 그럴만도 했던 것 같다. 이 정도 샐러드는 나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뎁! ㅋㅋㅋ

스테이크와 파스타도 더 시켰을텐데 K언니에게 넘겨받은 사진도 달랑 이 두장 뿐이다. 연어구이가 맛있어봤자지... 파스타가 맛있어 봤자지... 우린 막 이제 이런 분위기였다. 나는 딱히 김치나 한식이 땡기지 않았는데, 촌스런 입맛의 S때문에 모험은 거의 못하고 거의 이탈리안 음식점만 다니다 보니 다 그나물에 그밥처럼 느껴졌던 거다. S는 빨리 LA로 돌아가 짱뽕도 먹고 싶고, 김치도 실컷 먹고 싶다고... 아니 신라면을 끓여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안 그래도 내일이면 곧 돌아갈 거거든! 


마지막으로 이날 돌아다닌소도시 세 군데 중에서 가장 예뻐서 좀 살아보고 싶었던 연트빌 사진 두 장 더 투척.

이것도 연트빌 맞겠지? 세인트헬레나였던 것도 같고 ㅠ.ㅠ


암튼 거리와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멋진 클래식카를 발견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자동차 번호판이다. JIM♥CYN아마도 지미와 신디가 아닐까나? 냉소적인 우리는 저 번호판을 보면서 소싯적에 사랑이 넘쳐서 웃돈 주고 저런 번호판을(미국에선 돈을 내고 원하는 번호와 알파벳을 넣어 자동차번호판을 신청할 수 있댄다) 만들었겠지만 아마 지금쯤 이혼했을 거야.. 라고 일갈했다. 위자료로 전재산 아내한테 다 넘겨주고, 남편에겐 달랑 이 차 한대만 남아 배불뚝이 할아버지가 되도록 타고 다니는 거지.. (저 정도 클래식 카를 몰려면 부품 값이며 해서 꽤 돈이 많이 든다는 것 같다.). 그러면서 굳이 저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건 전처에 대한 사랑이나 미련 때문이라기보다는 귀찮아서일 거야... (상상력도 참... )  

헐.. 근데 조금 있다가 머리가 새하얀 백발의 늘씬한 멋쟁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분명 지미와 신디가 틀림없어 보이는!) 손을 잡고 걸어와 이 차에 올랐다. 할아버지는 우아하게 조수석 차문을 열고 할머니를 먼저 태운 뒤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탔다. 오마나, 옹졸한 우리의 오해였어! 번호판으로도 생색내고 싶을 만큼... 여전히 사랑 넘치는 아름다운 두 사람이었던 거야? ㅎㅎㅎ 우린 괜히 민망해졌다. 





이제 여행기도 겨우 사흘치가 남았다. 올해 안에 끝낼 수 있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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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 나파밸리

여행담 2017. 12. 27. 19:50

묵은 여행기를 다 마무리하기 전엔 블로그에 뭔가를 적기도 좀 떨떠름한데 와.. 정말 이제 5개월도 더 지난 이야기를 하려니 참 민망하다.

게다가 아무런 업데이트도 없는 블로그에 방문자 수는 왜 저런 걸까? ㅠ.ㅠ 실 방문자 수가 아니라 뭔가 티스토리 시스템과 관련된 '야로가 있는' 허수가 틀림없다. 뜬금없이 무서운 댓글이나 달리고 에효..

암튼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건 끝을 내보련다. 이요님의 몽골 여행기를 재미나게 읽으며 다시 여행가고 싶단 욕망이 꿈틀거렸고...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지난 여행 추억이라도 더듬어보자 싶어졌다. 가을 탓인지 요즘 특히나 사는 낙이 뭘까, 종종 우울감헤 휩싸인다. 이렇게 하루하루 이래저래 사는 소소한 낙이 다 사라지면, 누구에게나 어차피 맨 끄트머리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을 하루하루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들까 요즘엔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더 맥이 빠진다. 그러니 더더욱 행복했던 그날의 기억을 복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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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8월이다. 그러고도 마무리를 못하고 또 넉달이 흘렀다. ㅠ.ㅠ 
올해 안에 여행기를 몰아서 다 쓰는 것을 며칠 남은 2017년의 목표로 삼겠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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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첩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ㅠ.ㅠ)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졌으나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다 7시 반에 이부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미국 서부(특히 캘리포니아)의 수돗물은 대체로 석회가 많이 섞여 씻고 나면 피부도 머리칼도 뻣뻣해지기 일쑤다. 해서 여행기간 내내 거의 밤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잘 말린 뒤 최대한 얌전히 자고 일어나 다음날엔 세수와 양치만 하는 꼼수를 썼더랬다. 아침에 또 샤워를 하기엔 호텔 방을 하나만 쓰는 경우 네 여자의 욕실 사용시간이 너무 길어지기도 했고, 샤워는 후딱 한다고 쳐도 일단 머리 말리기가 귀찮아서! 

마침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서 이게 가능했지 요즘처럼 다시 숏커트라면 무조건 제비집이 생겨나 어쩔 수 없이 아침에 또 머리만이라도 감아야했을 거다. 그나마 옛날엔 미쿡 호텔에 샤워꼭지가 죄다 벽에 높이 고정되어 있어서 머리만 감는 게 불가능했지만 ^^; 간만에 가보니 요샌 호스 달린 샤워기로 바뀌어 있더군. 해서 가끔 머리를 너무 비비고 자 난감한 모양새가 됐을 땐 아침에 머리만 감는 일도 있었다.

하여간.. 대충 씻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 조식 뷔페를 먹었다. 딱히 인상적이지 않은 메뉴였는지 수첩에 기록도 없고 사진도 없다. ㅎㅎㅎ 다들 습관처럼 바나나는 하나씩 챙겨 가지고 나온 것 같은데..  

전날도 흐리더니 메드퍼드를 떠날 때도 다시 비가 내렸다. E언니는 나파밸리는 연중내내 화창하고 맑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우릴 안심시켰다. 또 다시 수백킬로미터를 달려야하는 대장정의 길... 전날에 이어 차안에서 간단히 바나나 등등으로 점심을 때웠고, 휴게소 대신 중간 즈음 화장실 이용을 위해 스타벅스엘 들렀다. 

그런데... 이날부터 나의 두뇌는 자꾸만 오작동을 시작한다. 아 글쎄 스타벅스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랑 마들렌을 먹은 뒤 차에 타고 보니 겉에 입었던 셔츠를 그냥 소파 뒤에 걸어놓고 나온 게 아닌가. 출발하기 전에 어랏, 내 옷 어딨지? 생각했으니 망정이지.. ㅠ.ㅠ

K언니가 걱정했다. 아니 우리 중에 제일 총명한 니가 이러면 우린 어쩌니... ㅋㅋ 아니나다를까 이후 나의 삽질은 계속된다. ㅠ.ㅠ

E언니의 말마따나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늦은 오후 드디어 나파밸리에 도착. 

Marriott Napa Valley 호텔 1129호에 체크인했다. 땅 넓고 싼 지역엔 호텔들이 죄다 나즈막히 옆으로만 길고 넓게(여긴 달랑 2층 건물이었던가..) 지어져 있었지만1층방에 묵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와인으로 유명한 나파밸리답게 호텔 입구에도 막 포도나부가 정원수로 자라고 있었다. 앙증맞은 포도도 송알송알 맺혀 있고... ㅎㅎ

아 근데 참 사진 못찍는다 ㅋㅋ

걸어가며 대충 휘갈겨(?) 찍으니 이럴밖에. 뭔가 좀 잘 찍어보려면 여러 장 난사해서 하나쯤 건지고, 그 구도를 머리에 익히고 그래야하는데 난 워낙 게을러서... 사진 찍을 때마다 작품 사진 남기는 고수 경지에 오르는 건 아예 글렀다. ㅎㅎ


호텔에서 무슨 워크샵 같은 걸 하는지, 무슨 행사를 진행 중인지 로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더러는 와인잔을 손에 들고 담소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호라 여기가 정말로 와인의 고장이구나 했던 것 같다. 

이 호텔에선 2박이나 하고 갈 거라서 일부러 구석구석 돌아보았는데;; 날씨가 좋고 따뜻하면 야외 풀장에서 수영도 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으나 한낮에 반팔을 입을 정도의 기온은 되었으되 찬물에 들어가기엔 느무느무 추웠다. 혹시나 물이 따뜻한가 (온천도 아닌데 왜?) 살짝 만져보니 앗 차거워! 우리의 수영복은 결국 두번다시 쓸모가 없게 되었다. (물론 실내수영장도 있으나, 수영 실력도 없는 사람들이 굳이 뭣하러 염소물에 들어가냐고!)

그래도 아쉬워서... 호텔방 키로 열고 들어가야 하는 수영장 철문을 굳이 들어가 확인해본 야외풀장은 이렇게 생겼다. 선베드에 누워 일광욕하기에도 날이 좀 흐려지기 시작했지만, 정말 개미새끼 한마리 없다!  가끔 추운 날씨에도 수영하고 그러는 용감한 외국인들 있던데 흠;; 


건물 뒤쪽 정원엔 책 읽기 좋을 것 같은 정자(?)도 보이고 화단과 잔디밭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는데; 거기서도 가든파티가 열리고 있어서 소심하게 그쪽으론 사진도 못찍고 게 걸음으로 건물벽에 딱 붙어 지나왔다. ㅎㅎ 














오후에 둘러보기로 한 곳은 인근 소도시인 소노마(Sonoma). 아마도 옛날에 캘리포니아 남부가 멕시코 땅이었을 때인듯, 멕시코 병영과 요새가 있던 작은 도시라서 200년된 집들이 상점과 갤러리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옛 건물을 보존해 복원해놓은 멕시코 막사 내부는 이런 모습. ^^;; 200년 전이라고 해도 몇십년 전 한국 군인들 내무반보다 더 환경이 나은 거 아니냐고 우리끼리 쑥덕거렸다. ㅎㅎ

박물관처럼 꾸며놓은 건물은 4시가 좀 넘었는데도 (문닫는 시간 5시!) 벌써부터 곧 문 닫을 거라며 나가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쳇...우리도 별로 오래 볼 거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교회 건물은 현재도 사용하는 것 같았으나 들어가볼 수 없었고, 종이 매달린 나무 기둥이 어째 교수대 느낌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시절 서부영화를 너무 본 탓이여.. ㅎㅎ

 


건물 사이사이 예쁘게 꾸며놓은 레스토랑 뒤뜰과 가게들을 기웃거리다가 어쩐지 전주 한옥마을 같지 않냐?!고 했던 가게도 만나고...

괜히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눈이 똥그래질만한 가격의 공예품 구경도 했다.

별뚜껑 유리병이랑 촛대 예쁘닷..


점심을 (나름) 부실하게 먹었으니 저녁은 푸지게 잘 챙겨먹자며 거리를 쏘다니다 눈여겨봐둔 The Red Grape라는 식당엘 들어갔다. 요번에도 만만한 이탈리안. ㅎㅎㅎ

나파밸리에 왔으니 일단 와인! 와인 리스트를 참고해 E언니가 고른 건 만만한 스파클링와인이었다. 

오.. 좋아좋아!

술잔 뒤쪽으로 사진 찍히는 줄도 모르고 신나라 웃고 있는 게 좀 찔리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 윗부분 오려서 공개~. ㅎㅎ

홀짝홀짝 샴페인을 마시며 메뉴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담당 웨이터가 슬그머니 테이블에 병뚜껑 공예품(?)을 놓고 갔다. 우린 일제히 우와~ 그레잇! 감탄해주다가 곧이어 한국말로 덧붙였다. 언니, 저 아저씨 팁 많이 줘야겠어요. 이런 재롱도 다 부리고.. ㅋㅋ


음식점 추천 앱에 올라온 후기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피자 도우 위에 채소가 올라간 샐러드를 일단 시키고는 또 다시 피자와 파스타, 키시를 주문했다. 우리가 샐러드 포함 메뉴가 4개밖에 안되니깐 뭘 하나 더 시키려고 메뉴판을 안 내놓자, 웨이터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너네 그 정도면 충분해! ㅋㅋㅋ 오냐, 그렇다면...

거의 싹싹 다 바닥을 내 먹고는 E언니가 디저트를 더 먹을까말까 그러는 걸 우리가 말렸던 것도 같고... 암튼 또 다시 배꺼뜨리려고 이국적인 거리를 좀 걷다가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시선 닿는 곳마다 여기저기 포도원이 보이는 나파밸리... 느낌이 좋았다. 


호텔방에 돌아와 뭘 했는지도 안 적혀있다. ㅠ.ㅠ 2박하는 곳이니 분명 빨래를 했을테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탱자탱자 각자 놀았던 거 같다. 여행이 끝나감을 마구 아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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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드디어 예약해둔 배를 타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 빅토리아섬에 들어가는 날이라 새벽부터 일정이 바빴다. 전날 잠들기 전, 7시엔 출발을 해야 늦지 않게 포트앤젤레스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배를 탈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름도 비슷하지만 포틀랜드부터 포트앤젤레스까지는 아예 주도 달라지고(오레곤 주에서 워싱턴 주로)또 다시 4시간쯤 380킬로미터나 더 가야했다. 

밥보다 잠이 더 중요하니깐 ^^; 아침은 그냥 먹지 말고 가자며 7시 좀 못 돼서 가방 다 싸들고 로비로 내려가 열쇠 돌려주고 체크아웃을 했는데 로비 한 귀퉁이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풍겨나오는 커피랑 빵 냄새가 너무 유혹적인 거라... ㅋㅋ E언니가 즉각 계획을 수정해 간단하게 베이글이나 머핀에 커피 한 잔씩 먹고 가자고 말했다. 녜녜, 좋지요... 그러나 먹는 것에 관한 한 E언니는 절제를 모르는 사람! 언니 홀로 주문하러 보냈더니 베이글과 머핀 뿐만 아니라, 오트밀과 과일까지 또 완벽한 끼니를 시켜놓았더라는;; 

워낙 준비 느린 스타벅스 웨이트리스를 원망하듯 쳐다보며 하나 하나 메뉴가 나올 때마다 전투적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그래도 2-30분만에 호텔을 나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호텔 조식을 먹을 걸. ㅋㅋ 째뜬 날이 흐려 아직 어두컴컴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미친듯이 달려 포트앤젤레스에 무사히 11시쯤 당도했다. E언니도 브레이크 자주 밟는 거 싫어하고 속도를 좀 즐기는 살짝 터프한 운전 스타일이 나랑 약간 비슷하다. ^^;  

캐나다행 페리는 12시까지 국경 검문소로 진입하면 되므로, '간단히' 점심을 먹으러 항구 코 앞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고를 것도 없이 눈에 띄자마자 선택된 코코펠리 그릴.

메뉴판을 받아든 나는 간단하게 햄버거나 먹겠다고 말한 뒤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좀 이따 테이블을 뒤덮은 접시들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ㅎㅎㅎ 게살 샐러드에, 새우튀김에, 또 뭐가 있었더라.. ㅠ.ㅠ 사진이 없으면 기억도 안남는다. 에효... 암튼 아침도 대충 때웠으니 점심은 제대로 먹어야한다는 언니들 쵝오~! 

K언니가 찍어준 이 음식 사진에서 주목할 것은 햄버거를 자르는 나의 길쭉한 손가락! ㅋㅋ 휴대폰의 왜곡이 틀림없는데도 괜히 좋아라 했었다. 맨 오른쪽은 서둘러 배를 타러 나가는 나의 친구 S와 E언니의 뒷모습을 2층에서 찍은 것이다.  이제 슬슬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데 우린 이미 식사 끝내고 나가는 중.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육로로 미국/캐나다 국경을 넘을 땐 별도로 비자가 필요없다. 그냥 출입국 사무소에서 자동차에 앉은 채로 4명 여권 죄다 걷어서 주면 스윽~ 보고 캐나다에 뭐하러 가냐고 묻는 게 끝이다. 그러고는 안내원이 시키는 대로 줄줄이 차를 주차시켜놨다가 순서대로 줄줄이 배에 싣는다. 세월호 트라우마가 떠오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는 페리가 안전하겠지, 혹시 사고나면 물 차가워서 그냥 죽는 건데 그래도 가족한테 보상금 엄청 많이 나올 거야, 염려 마.. 뭐 그런 얘길 웃으며 친구와 주고받았다. ㅎㅎ

캐나다 빅토리아 항구까지는 1시간 반 거리. 계속 축복처럼 화창했던 날씨는 이날부터 꾸물꾸물.. 먹구름이 끼더니 드디어 후드득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중독처럼 틈틈이 포켓

틈틈이 포켓몬고 ㅋㅋ

몬 잡기에 열중했던 나는 이날 포트앤젤레스 항구에서 나름 희귀몬인 루주라를 잡아 희희낙락했다! 포켓몬을 잡으면 맨 밑에 장소가 기록되어 있는데 캬캬캬 이번 여행에서 꽤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마리를 잡아놓고 혼자만 괜히 열어보고 좋아하는 중이다. 


페리 화물칸에 차를 세워두고는 곧장 위로 올라갔다. 일찍 올라가야 테이블도 있는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데, 이미 주차순서에서 밀린 우리는 테이블 좌석 차지 실패. 그나마 자리는 많아서 선실 좌석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바람 쏘이러 갑판으로 나갔다가 들낙날락했다. 바깥 풍경이 자꾸 바뀌는 차로 달리는 4시간보다 희뿌연 수평선만 보이는 1시간 반 뱃길이 훨씬 더 지루하게 생각되었다. 


가도 가도 계속 이런 바다만 보이니 원... 재미가 있나. 그래도 1시간쯤 지나자 저 멀리 캐나다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충 찍어도 그렇지 수평이 하나도 안맞은 것 같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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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대림창고

놀잇감 2017. 2. 4. 21:49

대학시절 학교와 가까웠던 성수동은 내게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 멀어도 꼭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고집을 부리다 어쩔 수 없이 지각할 것 같은날만 가끔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꼭 내가 뛰어가서 갈아탄 지하철은 순환선인데도 이상하게도 꼭 성수역에서 멈췄다. 지하철 탄 보람도 없이!

그러다 졸업후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말이 미국 의류회사 서울사무소 직원이지, 버젓이 MD 명함을 들고 다녔으되 그냥 본사 디자이너며 검사원들 '따까리'였다. 그래서 샘플 개발이니, 생산 지시니 해서 버젓한 사무실 상담만큼이나 원단공장, 봉제공장, 나염공장을 돌아다녔다. 성수동엔 주요 거래처였던 나염공장이 있어서 한달에도 몇번씩 외근을 나갔던 것 같다. 

주로 벽돌을 쌓아올리거나 철제펜스를 치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흉한 모양새에다 겨울엔 무지 춥고 여름엔 한증막이던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에서 샘플 패턴을 한아름 안고 홀로 택시에서 내리면 공단 특유의 기름 냄새 같은 것에 섞여 가죽 냄새, 찌개 끓이는 냄새 따위가 느껴졌던 것 같다.

내가 먹은 나이 만큼이나 오랜 세월이 흘러서.. ㅠ.ㅠ 성수동은 이제 또 다른 문화가 존재하는 공간이 되었단다. 가죽으로 유명한 거리엔 수제화 골목이 생겨나기도 하고, 텅빈 공장 건물에 젊은 작가들이 공방을 차리기도 하고, 갤러리를 열기도 하고... 커피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인들이 모여드니 당연히 카페와 음식점도 속속 생겨났대고.

해서 친구들과 이름하여 '성수동 프로젝트' 날을 잡았다. 말이 거창해 프로젝트지 그냥 서울 경기 곳곳에 흩어져 사는 대학 친구들이 성수동에 모여 '힙'하다는 밥집, 찻집, 갤러리, 공방 따위를 구경하자는 거였다. 근데 또 하필 그날은 영하 9도였던가... 칼바람에 귓불이 꽁꽁 얼어 동상입기 직전인 날씨였고, 서로 잘 알아보고 왔겠거니 기대하는 바람에 괜히 헤매다가 제대로 공방과 갤러리 순례는 하지 못했다.

그나마 추위 핑계로 오래 머물렀던 대림창고를 다들 인상적으로 여겨주어 다행.​

​대림창고 외관은 이렇게 생겼다. 벽에 매달려 있던 옛날 간판을 떼지 않고 그대로 둔데다 '컬럼'이라고 적힌 금속제 새 간판은 눈에 잘 안띄어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휙 지나치기 쉽다. 친구들도 문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뭐 잘못 알고 온 거 아니냐고 나를 의심했을 정도다. ^^;;


​꽤 높은 나무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면 이런 내부가 나오고

넓은 창고형 공간이 툭 트여있는데... 눈앞에 키네틱아트(?) 작품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 뭔가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

 

​넓은 공간은 다시 가운데 벽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뉘어 좀 더 어둠컴컴한 카페와 안쪽에 좀 더 환한 느낌의 레스토랑이 있다. 입구 왼쪽 갤러리 위엔 다락방처럼 생긴 2층도 있는 듯.​

사진은 비슷하게 나왔는데 오른쪽 카페가 훨씬 어둡다. 카페 오른쪽 카운터에서 모든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받은 다음 죄다 셀프로 받아다 먹어야하고 나중에 빈그릇도 각자 반납해야 한다. 가격대도 싸지 않은데 이왕이면 서빙도 좀 해주지... 모델처럼 생신 청년들이 돌아다니며 테이블 정리도 하고 그러던데 좀 더 인건비에 투자를 하시지... 심지어 주말엔 입장료도 만원 받는다고 함!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뜻이려나?

​나중에 찾아보니 대림창고 운영자도 조각가였던가... 예술가이고, 곳곳에 예술작품이 소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주말 입장료도 받는 만큼 정기적으로 작품이 바뀐다는 것 같다. 암튼 추운 겨울에 찾아간 우리는 엄청나게 튼튼해보이고 화력도 좋은 무쇠난로에 홀딱 반해가지고, 저기다 고구마도 구워팔면 좋겠다... 그런 소박한 상상을 했다. ㅋ 여기서 파는 서양 음식들과 안 어울리려나?


아침도 굶었던 터라 배고파배고파 노래를 부르면서 점심 메뉴를 골라 시켰다. 대체로 간도 슴슴하고 원재료에 충실한 싱그러운 맛? 버섯이 잔뜩 올라 있던 피자도 길쭉하게 생겨서 괜히 정겹고 담백한 맛이라 짠 음식 질색하는 친구들 모두 흡족해했다. 파스타도 괜찮다는 평을 받았는데 만오천원 쯤 하는 가격이면 당연히 맛있어야 하지 않나? ;-P 스테이크 종류는 디너 메뉴라며 점심땐 아예 팔지도 않던데 4만원 가까이 했던 듯... 

왼쪽은 샐러드까지 4가지를 시켜서 합이 7만 8천원 나왔던 그날의 오찬 사진이다. 4명이 먹기에 적당했는데 그 중 1명은 워낙 소식하는 사람이라 나 같은 대식가만 모이면 모자랄 지도 모르겠다. ^^; 암튼 스테이크 샐러드는 확실히 맛있었음! 

오른쪽 사진은 옆 테이블에서 시켜놓고 먹길래 모양도 하도 예쁘고 맛도 궁금하여 한참 수다로 배를 꺼뜨린 뒤에 다시 주문했던 디저트 메뉴 '화가의 낮잠'이다. ㅎㅎㅎ 동그란 그릇엔 초콜릿 무스가 담겨 있고 몽키 바나나를 절반 갈라 구운 듯 그 위에 설탕 시럽을 뿌려 굳혔다. 모종삽에 든 흙처럼 생긴 건 과자와 초콜릿 부스러기.. 구운 마시멜로 두 덩어리도 뒹굴고 있는데, 암튼 맛보다도 유화 캔버스를 활용한 플레이팅이 참신하고 너무 예쁘다며 반색했더니... 언젠가 무슨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써먹었던 콘셉트라는 것 같다. 째뜬 뭐 눈요기로 훌륭하고 행복했으니 되었다. 커피는 맛있었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소호나 브룩클린에 온 것 같아!라며 들떠서 꽤나 즐겁게 수다를 이어갔던 것 같다. 나중에 가죽 거리를 헤매고 헤매다 가오픈했다는 작은 소품숍을 만나서 그나마 한 건 했다고 안심하고는 얼른 또 차 마시러 다른 카페로 들어갔었다.

동네 유명해지고 사람들 몰려들면 결국 또 분위기 이상해지면서 거대자본과 대기업이 밀려들어와 제 모습을 잃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걸 본다. 홍대도 그랬고 합정, 상수, 연남동, 가로수길, 북촌, 서촌, 이태원, 망원동까지... 과연 성수동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블로그에 이렇게 자랑과 허세 쩌는 포스팅 하면 나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에 한몫 가담하는 것임을 알면서 째뜬 또 지난 일기랍시고 세태에 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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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놀잇감 2016. 10. 19. 15:33

배가 고프면 남들보다 심히 화가 나는 성격이라고 알고 살았는데, 요샌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화가 나면 폭식 경향도 보이는 것 같다. 원래도 배고플 때 공기에 밥을 담으면 고봉밥, 머슴밥을 퍼놓고 낄낄대지만서도... (배고플 때 장보면 쓸데없는 물건을 마구 계획없이 사기 때문에 빈속에 마트 가선 안된다는 보편적 진리가 있는 걸 보면 다들 비슷할수도 있겠다)

암튼 점심 준비 앞두고 속상한 문자와 통화를 한 탓에 칼질부터 손길이 마구 거칠어지면서 욕심도 양도 대폭발했다. 정신없이 잘라 프라이팬에 던져넣은 채소를 불에 올려 볶으면서, 그제야 2인분으론 너무 많군,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서 사진을 찍어댔다. 이럴 땐 정말 블로그는 나의 힘, 나의 위로다. ㅠ.ㅠ

1. 점점 비어가는 냉장고 파먹기의 일환으로...양파, 새송이버섯, 브로컬리, 통마늘, 단호박을 대~충 잘라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에 볶는다.


2. 냉동실에 있던 닭가슴살도 해동해서 잘라넣고...(1인당 하루에 고기 100그램 먹어야한대서) 좀 더 볶다가


3. 시판 토마토 소스 서너 숟갈, 면수 한국자(소스 병 헹구느라고...), 우유를 좀 부어 바글바글 끓인다.


4. 왕비마마가 딱딱한 국수 딱 질색이라 알텐테는 집어치우고...10분간 푹푹 끓인 스파게티 면을 소스에 건져 넣고 좀 더 뒤적이다 접시에 담으면 완성. 오늘은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나만 스누피 접시에 담아 먹었다. 

5. 포스팅용이라지만 예쁘게 소량으로 담는 연출까지는 귀찮고, 그래도 파슬리 가루랑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뿌리는 정성으로 마무리. +_+


아니 이거슨... 이탈리아 머슴밥인가 싶게 양이 엄청났는데(원래도 늘 채소가 많아 1인분에 국수 80그램 딱 저울에 재서 삶는데 오늘은 부재료가 많아 150그램만 삶았는데도;;) 사진으로 보니 위에서 찍어서 수북한 느낌이 다행히도 잘 안보인다. 

놀라울 정도로 국제적인 입맛을 갖추신데다 국수 종류는 죄다 좋아하는 왕비마마 덕분에 사나흘에 한번은 파스타를 해먹는 것 같다. 점심 때도 맨날 밥 먹기 싫어서 하루 한끼는 노상 떡만두국, 우동, 칼국수 따위 '분식'으로 돌려막기를 하기 때문이다. 큰 마음 먹고 밀가루 반죽 해 수제비 씩이나 해먹은 날도 이건 포스팅 감이야.. 생각은 하지만 온통 밀가루 범벅이 된 상태로는 거기까지 정성이 미치지 못한다. 아이폰을 아끼는 건가? ㅋ 

맛은 어땠냐고? ㅠ.ㅠ 그게 문제다. 뭘 만들어도 기본적인 맛이 보장된다는 거. 요리를 못하거나 싫어하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종종 부럽다. 본인이 고생할 이유가 없는 거다!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먹고 행복해하면 끝. 집에서 자주 파스타까지 대령하면서, 웬만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선 왕비마마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_+ 바깥 음식은(특히 음식점 파스타는) 짜기만 할 뿐, 가격 대비 양도 너무 적고 내가 만들어 드린 게 더 맛있다는 총평을 매번 내리심. 녜, 녜, 앞으로도 손수 만들어바치겠습니다요... 

식후 세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속이 그득한 걸 보면, 심히 많이 먹은 건 확실하다. 화나서 폭식하고, 그래서 졸음 쏟아져 낮잠 퍼져 자면 아주 완벽하게 식충이다운 삶이겠으나 다행히도 마감에 쫓겨 그 지경까지는 못감. 커피나 찐하게 만들어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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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나들이

놀잇감 2016. 10. 6. 17:51

공주에 아주 예쁜 밥집과 찻집이 있다는 얘길 듣고 친구 탄신파티하러 다녀왔다. 사람들은 대체 그 외진 곳에 있는 밥집, 찻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나니는지!

아침엔 약간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더니만 충청도로 넘어가면서는 해가 비쳤다. 남쪽엔 태풍이 몰아치던 날이었는데;; 참 새삼 넓은 나라임을 실감.

저 멀리 계룡산을 배경으로 들판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직 단풍 들기 이전인데도 눈으로 콧바람으로 가을이구나 느껴졌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약선요리 밥집 <신야춘추>의 1층은 차 마시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통유리창으로 멋진 풍경이 내다보이는 방에 통나무 테이블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있다

우리가 갔을 땐 이미 다른 팀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어서 사진찍기 민망한 상황이었다. 해서 친구가 예전에 찍어온 사진 퍼왔음. 아주 튼튼해보이는 나무 탁자와 자수, 퀼트 소품들도 인상적이지만, 통창으로 보이는 배경이 더 근사하다. 새빨갛게 단풍이라도 들면 정말 더 장관이라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먹은 연잎밥 정식(아마도;;)의 모습이다. +_+ 반찬이 너무 과하지도 않고 딱 먹을 것들로만 소박하면서도 알차게 차려진 밥상이 아닌지. 텃밭에서 직접 길렀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는데 샐러드에 든 채소도 하나같이 고소하고 달큰했다. 연잎을 형상화한 오이 냉국(?)은 특별히 클로즈업... +_+ 오이는 그냥 보기 좋으라고 띄운 것이고 진짜는 효소를 넣어 담근 냉국 국물이란다. 역시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은 법?

​2층 밥상에 앉아서도 커피를 청해 마실 수 있지만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다시 티타임을 누렸다. 커피메이커로 드립한 커피를 앙증맞은 수제 코스터 깔고 각기 다른 찻잔에 따라 마시며 또 한번 행복했다. ㅎㅎㅎ

​건물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마당 잔디가 다 패이는 게 속상해서 쪼르륵 물확을 놓아두었단다. 아이고 예쁘다.. 집 주변엔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마구마구 피어나 있고...  '보리'라는 이름의 골든리트리버 강아지도 한 마리 뒤뜰에 살고 있었다.


곧이어 밥집 인근의 꽃마당 예쁜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 엄마 차화연씨가 살던 집으로 나온 찻집이라나 뭐라나. 계절마다 마당에 흐드러지게 예쁜 꽃을 가꾸는 걸로 유명한 <담꽃>. 좋은 차를 파는지 찻값은 비싸다 싶었으나 평일에도 손님이 드글드글! ㅋ

제일 바깥쪽 방에 앉아서 마당을 내다보면 이런 모습이다..  군데군데 놓인 물확엔 어김없이 수생식물이나 꽃을 띄워놓는 정성을 보이고. 


현지 주민들보다는 어쩐지 ​'돈많은'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공들여 지은 별장 같은 집들이 곳곳에 서 있는 공주 하신리 마을을 한가롭게 걸어다니며 집구경을 하다가 또 다시 마지막 코스~ 아산 현충사 앞 은행나무길로 향했다. 아직 노랗게 물들기 전이지만 옛날 박통 때 현충사 다니는 권력자를 위해 심고 조성했다는 그 길을 이제는 차가 못다니게 공원으로 가꿔놓았더라. 그러나 떨어져 뒹구는 은행 열매의 향기롭지 못한 냄새 어쩔...!

한강 둔치의 벤치마킹인지 어쩐지 요샌 어느 도시를 가든 하천 변에 산책로와 자전거길, 공원을 예쁘게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좋다는 얘기. 이름 까먹은 하천 옆 한쪽엔 국화밭이, 맞은 편엔 코스모스 밭이 이제 막 피어나 사람들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꽃밭은 한철 장사(?)겠거니, 인공적이라 흉하다 그러면서 내려갔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옹기종기 예뻐! ㅋㅋ 온종일 친구 덕분에 눈호강 입호강 한 날이었다. 여유롭게 맨날 놀러다니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더욱 깊어졌던 하루.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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