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해'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22.09.06 그럭저럭 2
  2. 2022.04.19 비문증 2
  3. 2020.05.12 재난지원금 기부 실수 3
  4. 2019.06.04 예쁘면 뭐든 좋댄다
  5. 2019.05.22 아마도 인생의 전환기 5
  6. 2019.04.04 굳이 왜 또... 2
  7. 2018.08.25 평정심이 필요해 5
  8. 2018.08.22 마의 2018 여름 4
  9. 2018.07.24 잉여력 폭발 시기의 흔적 5
  10. 2018.05.14 잉여생활 7

그럭저럭

투덜일기 2022. 9. 6. 16:27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이었던가? 검색해보지 않아서 시인 이름 틀릴 수도 있는데 암튼 문득 근황을 포스팅하려고 빈 창을 여니 저 글귀가 생각났다. 왜 사는 건지 근본적인 의문을 품을 만큼 심각하게 나를 돌아볼 여유는 없지만 하여간에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계속 암울하다. 환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나의 쓸모에 대한 믿음이 점점 줄기 때문이다.

우선은 내가 일을 너무 못한다. 노는 계획은 빠짐없이 다 지키면서 (그건 누군가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정작 마감일을 지켜야하는 일은 작년부터 올해 내내 제대로 해낸 적이 없다. 심지어는 3주 넘게 데스크탑 컴퓨터를 켜기도 두렵고 꺼려지는 증상이 있을 지경이었다. 이런 게 슬럼프인가? 아니면 그냥 미루다미루다 포기하는 비겁병에 걸린 걸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성인ADHD의 주요 증세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거라고 하던데,, 이러면서. (핑계를 찾고 있는지도..)

암튼 그럼에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리고 내가 SNS에 그럴싸하게 포장해 올리는 겉모습으로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고 할 수 있다. 산에도 열심히 갔고, 염원하던 설악산 대청봉도 다녀왔다. 그러고는 며칠 후유증 핑계로 누워서 핸드폰만 만져대서 그렇지... 해설이 재개된 궁궐 봉사도 시작했고, 둘레길도 2주에 한번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러니 이젠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복병은 2학기부터 다시 시작된 자유학년제 수업. 똑같은 주제인데도 이젠 내가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기력도 심히 많이 소모된다. 마스크 쓴 채로 2시간 수업 떠들고 오면 목 아프고 맥빠져서 또 누워서 한침 쉬어야하는 신세. 벌써 6년째 하고 있는 일이지만, 중학생 아이들의 반짝거림이 좋긴 했지만, 이젠 그만큼 힘들어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애들 수업은 끝내기로 결심했다. 본업도 충실하지 못하는 주제에 한눈까지 팔다니 대체 난 무슨 생각으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돈벌이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이라;; 벅찬 보람과 그럴듯한 포장 만으로는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기가 싫어졌다. 

연이네 식구는 그 뒤로 전혀 소식이 없다. 정말로 누군가 다른 돌보미를 만나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건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죄책감과 불안함 때문인지 며칠 전엔 연이를 마지막으로 본 비오던 날 모습이 꿈에 나왔다.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창문 아래서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던 연이의 눈빛이 영영 떠나기 전 작별인사였구나, 하고 내가 중얼거리는 꿈이었다. 어쨌든 매일 연이네 사료를 놓아주던 곳에 똑같이 사료는 놓아두고 있고, 밤 사이 몰래 먹으러 다녔던 주인공이 하늘이였다는 걸 얼마 전 확인했다. 지난주엔가는 영역 다툼을 하는지 하늘이와 다른 고양이들이 투닥거리고 울어대는 요란한 상황이 벌어졌으나 개입하지 않는 게 낫다 싶어 모르는 척 그냥 두었다. 그 이후엔 하늘이도 마주친 적이 없어서 누가 승리자인지 모르겠다. 째뜬 앞으론 연이처럼 정성을 들여 내가 또 여러 길냥이를  챙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왕비마마는 봄에 심층검사를 했는데도 치매가 아니라는 전문가의 판정을 받았으나(사실 정신과 처방으로 이미 치매 예방약인 아리셉트를 드시고 있어서, 초기 치매 치료와 다를 것도 없다고 한다.) 단기 기억력은 너무 심히 나빠져서 똑같은 말을 1분만에 반복하는 증세가 이어지고 있다. 차라리 초기 치매면 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으니, 일주일에 몇 번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산책을 하거나 끼니를 대신 챙기게 하고 싶은데 그냥 '경도 인지장애' 정도로는 등급 받기가 불가능하다. 그나마도 이번 정부 예산이 줄어들어서 거동이 힘들지 않는 한, 공단에서 등급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하루 종일 괜히 누워만 계시는 노년의 육신이 얼마나 더 빨리 망가질지 뻔한데도 뾰족한 수가 없다. 이젠 내가 산책 나가자고 해도 싫다고 귀찮다며 이불을 뒤집어 쓰심. 선배와 친구들은 그냥 엄마 하고 싶은대로 두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고 조바심을 내도 소용없다나. 정말로 운동 좀 하시라고 잔소리를 하다보면 목소리가 커져 싸움이 되는 것 같아서, 거의 포기 상태다. 

올해 초 새해결심을 돌아보면 1 내려놓는 삶,  2 약속 잘 지키기, 3 일본어 배우기, 4 10년 프로젝트로 100대 명산 도전...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 3, 4번에 너무 치중했나, 일에 대한 의욕은 내려놓고, 가장 중요한 일 약속을 못 지키고 있다. 차차 책상 앞에 앉는 연습부터 해야하는 상황인데, 밀린 원고 독촉이 말도 못한다. 출판사 담당자들에게 민망하고 죄송할 따름. 오늘도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제일 먼저 블로그 순례부터 하고 있으니 원. 그럭저럭 하루를 또 말아먹고 있다는 결론이... ㅎㅎ.

그래도 예전엔 글의 힘을 빌어 블로그에 결심을 남기면 하는 척이라도 했던 것 같으니, 책상에 앉은 김에 오늘은 목표한 진도를 좀 나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이제 좀 정신 좀 차리시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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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증

투덜일기 2022. 4. 19. 16:42

오늘 아침 일찍 또 엄마 모시고 병원 진료 가야해서 간밤에 잠을 잘 못잤다. 알람을 맞춰두고도 중간에 자꾸 깨고 또 꿈인지 생시인지 연이 울음소리에 퍼뜩 놀라 창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암튼 그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집에 와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데 컵에 실오라기 같은 게 걸쳐있는 게 아닌가. 앗.. 그게 아니네. 머리카락인가... 한 것도 잠시, 이 가느다란 실오라기 또는 또르르 말린 머리카락 같은 것이 마구 옮겨다녀!

주변에 선배님들 왕언니들이 많이 계신 관계로 익히 들어본 적 있었기에 직방으로 답을 알았다. 비문증이네. ㅠ.ㅠ 네이버 지식백과 검색 결과는 아래와 같다.

비문증은 실같은 검은 점, 떠다니는 거미줄, 그림자 또는 검은 구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시신경유두부에 유착되어 있던 신경교조직이나 농축된 유리체 또는 동반된 유리체출혈이 후유리체박리로 인해 자유로이 유리체강내에 떠다니고 환자가 이를 자각하는 것이다.
후유리체 박리는 유리체 피질과 망막 내경계막이 분리되는 것을 지칭하며 중심와 주변 후극부에서부터 시작된다. 후유리체박리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지만, 노인에서의 유리체-망막유착에 따른 합병증 발생 위험을 경감시키는 예정된 노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비문증 [vitreous floaters]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한자로 飛蚊症이고 가운데 글자는 '모기 문'인데 한글로는 '날파리증'이라네. 모기가 웽웽 날아다니는 것 같은 궤적이라 저런 이름이 붙었을까? ^^; 주변 누군가는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보다가 자꾸 액정을 쓸어도 잡티가 안 사라지더라고도 하더니, 오늘 나도 처음 증상을 느낀 것. 눈앞을 아른거리는 검은 실오라기는 눈을 깜박일 때마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다니고 왼쪽 눈에만 증상이 있다. ㅠ.ㅠ 처음엔 후유리체박리? 어쩐지 무시무시해서, 안과 가야하나? 걱정스러워 동네 안과를 검색하다가 말았다. 결국엔 눈의 노화란 얘긴데... 일단 몸과 눈의 피로가 좀 사라지면 나아지지 않을까도 싶고, 늙어서 그렇다는데 뭐, 하는 자포자기 심정도 있다.

엊그제 트위터에서 보았던가. 38세가 지나면 몸이 무료구독 끝났으니 이제부터 유료구독 시작이라며 아우성을 친다고 하던데 나야 이미 오십대니 차근차근 온 몸의 장기들이 망가져가는 게 당연하겠구나 싶다.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고, 웃고 울어서 생긴 나의 주름살도 사랑할 거라고 원칙은 세워두었지만, 막상 꺼려하며 드물게 찍힌 사진 속의 나는 점점 매우 낯설다. 아, 팔자주름이 이렇게 깊어졌구나. 이중턱이 더 심해졌구나. 동그랬던 얼굴이 이젠 네모가 되었네...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나도 모르게 들이밀고 있는 거다. 제발 사진 찍어주면 액정 손으로 꼬집어 땡겨 보며 자기 흠좀 잡지 말라고 어느 후배님이 타박을 한 적이 있다. 근데 굳이 땡겨 확대해보지 않아도 미워진 걸 어쩌나. ㅎㅎ

휴대폰 사진첩의 기능 하나는 몇년 전 오늘 니 모습과 추억이라면서 옛 사진을 자꾸만 들이미는 것인데... 그러니 잊고 싶어도 실감을 안할 수가 없다. 불과 2, 3년 전만해도 표정이 얼마나 더 싱그럽고 젊은지 ㅎㅎ 나쁜 생각 괴로운 생각만 하면 얼굴이 금세 못생겨진다는 걸 잘 안다. 오늘처럼 잠 못자고 일어나 느릿느릿 비협조적인 노모와 함께 사람 바글거리는 대학병원 진료과를 2곳이나 섭렵하고 처방전 받아 약국 찾아가고 어쩌고... 얼굴에 얼마나 심술이 붙었을지 안봐도 알겠다.

그나저나 어쩌면 이 블로그는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나의 질병 기록장으로 남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암튼 오늘을 기록해둔다. 오십대중반에 비문증 생겼음. 그냥 두고보면서 추후 예후도 기록 예정.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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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회사 홈페이지에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다가 실수로 기부했다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니 왜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좀 전까지만 해도 잘난 척 하며 의아했었다. 

바로 어제 나는 엄마를 대신해서 신용카드 회사에 재난지원금을 신청해드렸고, 버퍼링도 없이 공인인증서나 회원가입 절차도 없이 단번에 금세 끝나는 간편한 과정에 흐뭇했다. 그런데 뉴스에 등장하는 기부금란 표시 화면을 보니 어째 느낌이 쎄~~~ 했다. 금액을 적어서 신청하는 게 아니라 금액을 적으면 그 금액을 기부한다는 뜻이었어! 어어... 나도 금액 적었는데...

째뜬 나는 오늘 신청일이라 무사히 재난지원금 신청을 마치고서 금액 확인 문자까지 받은 뒤, 왜 울 오마니는 어제 바로 재난지원금 신청되었다는 확인문자가 오지 않았을까 불안해하며 다시 카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ㅠ.ㅠ 실수로 몽땅 재난지원금 기부해버린 똥 멍청이가 바로 나였다! 내 지원금도 아니고 엄마 지원금을! 헉! 

재빨리 검색해보니 당일 밤 11시30분까지는 곧장 다시 홈페이지에서 착오로 인한 기부금 취소와 재신청이 가능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도 취소 불가능하다며 각종 포털과 SNS에서 강제기부를 유도한 정부 욕을 바가지로 하고 있었다. 에이, 설마. 난 그럴 리 없다고 믿었다. 기부는 어차피 강제가 아닌데 어떻게 취소가 불가능하겠어? 뒤늦게라도 시스템 보완이 됐겠지... 

불안한 마음에도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그러나 취소 안 되면 어쩌나 엄청 쫄렸음을 고백한다. 내 실수를 털어놓자 대인배이신 엄마는 40만원 어치 떡 사먹은 셈 치면 된다고 하셨지만 그게 아니죠! 헛똑똑이+똥멍청이 인증도 아니고 어떻게 내가 그런 실수를... 😭콜센터 전화 연결은 아니나 다를까 나 같은 사람들 탓인지 30분을 넘겨 1시간이 다 되도록 계속 대기상태였지만 기다림의 끝은 달콤했으니...

결국 기부금 취소 신청이 가능했다! 다만 확인문자를 따로 보내주진 않을 거라 이틀 뒤쯤 재확인해보라고 함. 평소에 사람들이 왜 한글을 읽고도 이해를 잘 못하냐고 노상 궁시렁거렸는데 남탓 할일이 아니었다. 빤히 읽고도 손이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하고, 제대로 읽었다고 읽었어도 머리에서 이해가 안되는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크게 깨달았다. 다시는 문해력으로 남들 손가락질 하지 않으리! 

째뜬 카드사마다 기부금과 신청금 항목이 좀 헷갈리는 건 사실이다. 많은 국민들에게 강제 기부, 착오 기부를 유도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항목을 구성했다고 비난하는 언론도 보이던데--그러니까 정부 욕하며 특히 주의해야한고 알리는 단체 카톡방 공지도 2개나 받았다--진짜로 그랬을까? 돈 나눠주며 굳이 욕을 먹으려고 그런 짓을? 그냥 한 페이지 안에서 직관적으로 다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려다가 그런 폐단이 생겼을 거라 믿고 싶다. 그러니 앞으로 재난지원금 온라인 신청하실 이웃분들은 주의깊게 잘 살펴보시기를... (참고로 오마니의 신청 카드사는 BC카드였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멍청하고 한심스러워서 트위터에도 남겼지만 여기다 구구절절 반성을 해야 바보짓의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잘못되면 내 잘못보다는 남탓을 하는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가도 요번에 새삼 깨달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나 역시 항목 헷갈리게 해놓은 페이지 구성과 기부 취소 어렵게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엄청 욕했으니 말이다. 며칠 내로 착오 기부금 취소와 관련된 메뉴가 더 잘 보완되면 좋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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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살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뭐든 예쁘면 혹하는 본능을 버릴 수가 없다. 자연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아름다운 대상에 더 끌리는 걸 어쩌란 말이냐. 암튼 예쁘면 다 용서되는 세상이 불만이면서도 나 역시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ㅎㅎ

심지어는 병원과 약국도 예뻐서 다니는 사람이 나였어! ㅋ 

원래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내과를 작년부터 한달에 한번씩 약 타러 다녔었다. 그런데 올초 와병으로 퇴원 후 약을 먹어도 계속 아픈 다리 통증 때문에 징징 울고 있을 때, 주말에 반찬 싸들고 왔던 막내올케가 그냥 그러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다른 병원에라도 다시 가보자고 나를 꾸짖으며;; 주말에도 늦게까지(무려 저녁6시까지)진료하는 옆 동네 병원을 찾아 나를 처음 그곳으로 데려갔었다. 

동네 병원이야 다 똑같지 뭐;; 그런 생각이었는데 첫눈에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밤색 원목 바닥과 싱싱한 화분과 의자들이 언뜻 보면 카페 같은게 아닌가. 화려하게 꾸민 성형외과나 피부과 인테리어랑은 또 좀 다른 느낌. 의사 선생님도 조근조근 세심하고 친절했고, 간호사샘들도 꽤 여러명인데 시끄럽지 않고 다정했다. 내가 소리에 은근 민감해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 특유의 톤 높여 내지르는 목소리가 넘 싫다. 가뜩이나 통증 때문에 짜증 만빵인데 목청 높여서 이리 오시라 저리 오시라 5천원 되시겠다... 뭐 이런 말을 들으면 꽥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었다. 

작은 동네 의원엘 가보면 간호사를 많이 두지 않는데, 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함이란 걸 안다. 그러니 수납하랴 환자 안내하랴 바쁘고 어수선하고 간혹 불친절하거나 퉁명스러울 때가 있다. 근데 여긴 나이대가 골고루 분포한 간호사+직원들이 꽤 여럿이고, 환자마다 근처 약국을 안내하는 똑같은 멘트를 수십번 반복하면서도 다들 사근사근했다. 직원 복지가 괜찮은 모양이라고, 쓸데없는 생각까지 했다. 박봉에 시달리면 당연히 표정부터 찌들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작년부터 정형외과 외과 영상의학과 종류별로 동네 병원을 다니면서 나름 파악한 결론이다. 

하여간에 그 병원에서 다시 처방받은 진통소염제가 원인미상의 내 통증에 또 별 소용이 없었다면, 병원 인테리어와 친절함이 마음에 들었든 말았든 다시 갈 생각을 안했을 텐데, 우왕... 그날은 약을 먹고 그나마 몇 시간 편히 잠을 잘 수 있었고 드디어 혜자로운 의사쌤과 약을 만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게다가 토요일 늦은 오후에 진료하는 병원과 세트로 늦게까지 여는 근처 약국은 주택가 2층집의 1층을 개조해 쓰고 있었는데, 약국 또한 예쁜 게 아닌가! 병원 의사샘과 약국 의사샘이 아마도 부부가 아닐까? 올케랑 속닥속닥 추측하며 약을 지어나왔었다. 처음 몇번은 그냥 주택을 개조한 약국 외관이 정겨운가보다 했었는데 내부에도 내 취향의 장식품이 있더라는;; 

설리랑 마이크 브릭이 있다니! ^^ (인스타그램에도 올린 적 있는 옛날 ㅂ약국 내부) 

암튼 그래서 별로 가깝진 않지만 나름 옆 동네에 있는 이 내과병원과 약국에 꼬박 2달간 다니며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먹었고 결국 통증에서 차츰 해방되었다. 당연히 이젠 감기약도, 혈압약도 이곳으로 타러 다녔는데 우잉.. 3월 말 병원과 약국은 나란히 500미터쯤 떨어진 건물로 이사를 갔다. (함께 이사한 것만 봐도 분명 둘은 부부 관계이거나 인척이 틀림없다! ㅎㅎ). 

2달 만에 처음 이사한 병원과 약국엘 가봤는데, 약국엔 아쉽게도 브릭 장식품들이 다 사라져 아쉬웠다. 2층 주택의 낮은 천장과 벽을 활용한 인테리어여서 일반 건물엔 어울리지 않았거나 놓을 곳이 없었겠지. 그래도 여전히 베이지색 원목 장식장을 둘러 주인장의 담백함과 깔끔함이 반영된 약국 인테리어였던 것 같다. 

병원도 분위기가 전과 달라져, 훨씬 더 환하고 눈부신 느낌이었다. 흰 벽때문이겠지? 키다리 의자 놓인 벽에 작은 그림 붙여 놓고 화분 올려둔 건 마음에 들고 여전히 예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병원 인테리어. ^^ 뭐 물론 의사쌤과 간호사쌤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병원을 나서며 기분이 좋았다. 동굴로 드나드는 느낌이 드는 계단 벽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나? ㅎㅎ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는 걸 뿌듯하게 생각하며 살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제발로 걸어서 병원엘 잘도 찾아간다. 아직도 좀 버티기 증상이 있지만 저번에도 요번에도 감기를 앓아보니, 예전처럼 그냥 며칠 버텨서는 그냥 지나가지도 않고 증상이 종합세트로 나타나 너무 힘들었다. 이 또한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어쩌겠나. 이왕 갈 병원, 예쁘고 마음에 드는 곳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 여기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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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이 흔들리지 않는 나이이긴 개뿔, 지금 돌아보면 전과 변함없이 유치하고 철없이 살았던 것 같다. 다만 인간 나이 마흔쯤 되면 이루어놓았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들이 하나도 없어서 민망하고 위축되었을 뿐. 그렇게 또 어영부영 사십대를 보내고 나니 왜 옛날 사람들이 인생을 10년 주기로 달리 표현하고 전환점을 삼았는지 알 것도 같다.

인간에게 오십이란 나이는 확실히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는 시기다. 물론 삼십대 때도, 사십대 때도 밤샘 작업을 했다거나 몸을 많이 쓸 일이 있었을 때, 피로도가 전과 달라서, 아이고 몸이 하루가 달라...라며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그때 느꼈던 신체의 쇠락이 막연한 서글픔과 약간의 피로감이었다면, 오십을 넘어서 느끼는 신체 변화는 어찌나 극적인지 '노화는 결국 질병이었구나' 깨닫는다. 

갱년기는 남녀 모두 겪는다고 하지만 특히 여성들은 차츰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다 폐경(혹은 완경)에 이르면 너무도 낯선 심신의 변화를 겪는 것 같다. 가끔 자긴 갱년기를 모르고 지나갔노라고, 안면홍조증이나 열감도 전혀 없었다고 자신하는 이들이 있어 안심했었는데 '지랄총량의 법칙'처럼 그런 증상 또한 평생에 한번은 꼭 겪어야하는 건지, 60대에 이르러 새삼 갱년기 증상으로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사십대 후반과 오십대 초반에 다른 더 무서운 질병의 형태로 발목을 잡히는 걸 목격한다.

작년, 재작년부터 지인들 가운데 암환자가 부쩍 늘었다. 한 친구는 사십대에 조기폐경을 하고도 아무런 갱년기 증상이 없었다. 귀찮은 생리에서 자유로워지니 정말 세상 편하다고 한두 살 어린 우리들에게 어서 편한 어른들의 세계로 넘어오라고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작년에 췌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중이다. 두살 어린 친구도 얼마 전 자궁과 난소에 암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다섯살 어린 후배 역시 조기폐경인가 싶어 검진을 받았더니 위암이었고 복막에도 전이가 되어 아직 수술도 하지 못하고 항암중이다. 두 살 많은 선배 한 사람도 최근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다. 어휴. 

건강한 줄 알고 지내다가 갑자기 암환자로 전락한 지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들 안면홍조라든가 겨울에도 갑자기 더워져서 얼음물을 들이키고 선풍기를 틀어야한다는 열감 같은 갱년기 증상이 없었다. 그냥 오십이란 나이를 수월하게 맞이하거나 지나가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나와 9살 차이나는 막내고모도 흔히 호소하는 갱년기 증상은 없었으되 면역력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원인불명의 자가면역질환으로 오십대 중후반 몇년간 혹독하게 아팠다. 나 역시 2, 3년 전부터 수족냉증을 차츰 떨쳐버릴 만큼 체온이 좀 올라간 듯하고 더운 걸 못참게 되기는 했지만 얼굴이 확 달아오르거나 후끈후끈 열감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작년에 드디어 완경을 선언하며 이 정도면 나 역시 불편한 월경에서 자유로워진 걸 완전 기뻐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다 올초에 갑자기 허벅지 통증으로 2달쯤 심하게 고생을 했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결국엔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온갖 값비싼 검사로 병원비만 날렸을 뿐이다. 단일신경염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나 그건 검사로도 알아낼 수 없다나. 투덜대는 내게 아는 의사쌤이 농담처럼 말했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심각한 중병은 이제 거의 다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지만, 소소한 질병의 대부분은 원인조차 모르는 게 태반이라 진단만 제대로 내리면 치료의 절반은 된 셈이라고. 대학병원 의사가 내게 통증에 효력이 있는 소염진통제를 찾은 게 어디냐고, 감사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여간 다행이도 이젠 다리도, 소염진통제 때문에 뒤집어졌던 위도 거의 멀쩡해졌다. 통점이 완전 사라진 건 아니어서 살짝 무리를 하면 저기 아래쯤에서 스멀스멀 그날의 느낌이 되살아나지만, 성난 짐승 달래는 요령이 생기듯 나 역시 얼른 자세를 바꾸고 휴식을 취하고 염증에 좋다는 온갖 건강보조제를 삼키며 심신을 다스리고 있다. ㅠ.ㅠ 비전문가로서 내가 짐작하는 건 확실히 오십대에 접어들며 호르몬 변화 때문이든, 인체의 장기가 원시시대부터 입력된 DNA대로 수명을 다한 것이든, 모든 면역력이 확~~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다는 암세포는 체온이 내려갔을 때, 그러니깐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활동성이 높아지므로, 갱년기에 유독 몸에 열이 많이 나서 밤마다 땀흘리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심각한 질병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흔한 신체 변화를 겪으며 이 시기를 지나간다는 건 차라리 건강하다는 반증? 

호르몬이 급격하게 변했는데 신체증상이 없으면 반길게 아니라 오히려 걱정을 해야하는지도 모른다. 발열반응을 보여야하는 건강한 세포들이 어딘가 다른 데 몰려가서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는 나쁜 세포들과 싸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나처럼 이유없는 염증이 생기고, 누군가는 암세포가 몸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는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건강을 자신했던 주변 지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중병 환자가 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임을 안다해도 어떻게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산단 말인가! 

2년에 한번씩 건강검진을 해보면, 체중과 근육량 때문에 성분검사에서 신체나이만 젊게 나올뿐 ㅠ.ㅠ 여기저기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표재성 위염도, 약간의 빈혈도, 그밖에 몇 가지 증상들도 흔하게 다들 갖고 사는 거라지만, 막상 몇년 전 실비보험을  들으려 하니 퇴짜를 맞았다. 와, 나 겉포장만 멀쩡해보일 뿐 이제 보험도 못드는 몸이 되었네! 라는 생각에 어찌나 씁쓸하던지. 

건강염려증 환자로 살고 싶진 않으면서도 일단 한번 호되게 아프고 나니 자신감이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서 면역력을 높이고 염증에 좋다는 어성초도 먹고, 새싹보리도 먹고, 비타민도 챙겨먹고, 가능한 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으로 바꿔보려 노력중이다. 일단 금세 피곤해져서 무리를 할 수도 없고!  ㅋ 인간은 결국 모든 나이를 처음 경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현재 나이에 적응이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한 목표같다. 달라진 심신에 적응할라치면 또 훌쩍 늙어버리는 걸 어쩌라고. 죽는 건 겁나지 않아, 죽도록 아플까봐 그게 겁나지. 내가 감히 깝죽대며 늘 입에 올리던 말인데 이젠 더 나이드는 것부터 겁이 난다. 인생의 전환점을 꼴까닥 넘긴 지금...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짧을 것은 확실한데,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심신을 괴롭히는 복병들이 나타날까.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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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왜 또...

투덜일기 2019. 4. 4. 17:11

4월을 맞아 '진짜로' 열심히 일에 매진해야겠다고 결심한 주제에 난 굳이 왜 또 거의 휴면중인 블로그를 기웃대고 있을까나. 

휴대폰 중독자란 걸 인정한다.  IOS 업데이트 이후로 일주일마다 평균 내가 휴대폰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전주 대비 얼마나 시간이 늘고 줄었는지 통계가 턱 나오는데 그때마다 찔린다. 와.. 진짜 하루에 휴대폰을 너무 많이 들여다보는 거 아니니. 민망해서 차마 그 시간까지 고백은 못하겠다.

암튼 일하기 싫어서, 심심해서, 아님 그냥 습관적으로 SNS를 종류별로 순례하고 뉴스를 읽고 음악을 고르고... 그러면서 간간이 들어온 쪽일은 뒷전이라 컴퓨터 앞에 오래 진득이 잘 앉지 않았다. 영화 일은 아무래도 짧은 기간 '빡세게' 몰아붙여야하는 작업이고 거의 매번 시간이 쫓겨 일주일 넘게 컴퓨터 앞에 앉더라도 딴짓을 할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갑자기 원인 모를 다리 통증으로 고생한 이후로는 한 자세로 두어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통점이 여실히 느껴지므로 불안해서 얼른 일어나 다른 짓을 하기도 했다.  그 다른 짓이란 물론 벌렁 매트리스에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또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그러다 정신차리고 보니 올해도 1/4분기가 다 지나버렸다. 어머나! 언제!? 2019년을 병원에서 맞았고 1, 2월은 거의 내리 누워있던 관계로 올해는 이상하게 시간감각이 잘 탑재되질 않는다. 대체 언제 3월이 왔던 거고, 어느 틈에 지나간 거지? 게다가 4월인데 날씨는 또 왜 아직 이리 춥냐고! 겨울 코트를 자랑스럽게 입어도 추운 건 정말 반칙인데, 그래도 집앞 살구나무는 엊그제 다 피어버렸고, 벚나무도 10분의 1쯤 꽃을 피우며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 그걸 보며 4월도 눈깜짝할 새 후딱 다 지나가버릴까 싶어 조바심이 나는데... 번역해야 할 원서에 챕터별로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하루 일할 분량까지 다 나눠 놓았는데... ㅋ 가속도 붙일 생각은 안 하고 요번엔 초인적 작업력을 주실 '그분'이 언제 강림하시나 그 기대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블로그나 되살리고 말이지... 으휴. 시답잖은 블로그 포스팅 하나 할래도 시간이 한참 걸리는데 이짓에 뛰어든 걸 보면, 그나마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도 다시 통증이 나타날까봐 전전긍긍 두려워하는 시기가 지났기 때문일 거라고 위안을 삼기로 했다.  어쩌면 하도 게을리 해서 바닥 수준으로 떨어져버린 우리말 어휘력과 문장력을 미리 블로그로 슬슬 더 닦아 보려는 술수일 수도 있겠고. ^^; 해서 작년에 비공개로 야금야금 사진 위주로 올렸던 포스팅도 정리해 공개로 돌렸다. 앞으론 슬슬 심심해질 때마다 휴대폰과 씨름하는 대신 블로그에 허튼 글이라도 좀 쌓아볼까 하고. 하도 게을러서 나도 나를 못믿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로' 뭔가 결심을 적어두면 말과 글의 힘에 기대에 뭐든 좀 지키려는 노력을 하게 되더라.  휴대폰으로 요즘 뉴스와 댓글 보며 분노 폭발하는 것보단 낫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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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이 필요해

놀잇감 2018. 8. 25. 14:54


뜻밖의 누수공사로.. 아니 정확히는 사람들에 치여 마음 고생이 너무너무 심한 나날을 보내며 당연히 불면에 시달렸다. 수시로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열이 막 오르고 (어쩌면 이건 폭염 탓으로 생겨난 온열 질환의 징후일 수도 있겠으나;;) 거의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도 심신이 계속 고달펐다.

스트레스로 바짝 긴장한 머리가 때로는 활자로 달래지는 경우도 있으나, 이번엔 도무지 책을 들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 깊은 숲속에 들어가서 소리라도 고래고래 지르고 싶은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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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2018 여름

투덜일기 2018. 8. 22. 17:57

111년만의 폭염이라는 올 여름의 살인적인 더위도 더위지만... 그밖에 개인적으로도 올 여름은 한마디로 '마가 끼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뒷마당에 허락없이 대형견 2마리를 키우던 아래층 101호 세입자가 드디어 이사를 나가고, 10년도 넘게 계속 전월세로 세를 놓고 살던 주인 내외가 이사를 들어온다더니만... 집이 비자마자 작은방 천장이 샌다고 우리더러 당장 누수공사를 하라고 난리였다. 으어...

101호 내외가 '잘 아는' 업자를 불러다가 기계로 누수 지점을 찾아보았지만 보일러 배관과 상수도는 멀쩡해서 누수탐지기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딘가 하수도관 접합부 같은 데서 아주 미세하게 샌다는 의미라나. 결국 7월말 사흘에 걸쳐서 엄마네 집 화장실 바닥 공사를 했고, 어마어마한 소음과 상상을 초월한 흙먼지에 시달리며 '쌩돈'을 처들였다.

하필 그 무렵 영화 번역 마감과 겹쳐서 첫 업자가 하라는대로, 달라는 대로, 거액의 공사비를 내고 보니.... 바가지였다. 웬만한 업자는 그 금액이면 화장실에 샤워부스까지 설치하고 천장 벽까지 몽땅 리노베이션 하는 가격이라는데 우린 것도 모른 채 꼴랑 바닥 타일과 세면기, 변기만 교체했으니. ㅠ.ㅠ 내가 미쳐.

그뿐인가. 화장실 공사가 끝나고 아래층 천장과 벽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작은방 천장 보수와 도배비까지 물어줘야했다. 누수 범위인 '일부' 도배비라고 견적을 받긴 했지만, 결국 금액으로 볼 때 101호에서 우리한테 다 씌웠다는 '심증'이 있다. 물론 열받아서 나도 다른 도배업자를 불러 견적을 뽑아보았지만, 101호 내외와 작업범위 협의하다가 도저히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냥 가버렸다. 부부 사기단이냐! 결국 며칠 뒤 그들이 데려온 도배업자에게 일을 맡겼다. 계속 속을 끓이는 내게 지인들이 조언했다. 작정하고 속이려는 사람들을 니가 무슨 수로 막겠냐. 그냥 잘 먹고 잘 살아라, 드러워서 피한다, 하는 마음으로 속편하게 손해를 보라고 했다. 그게 나의 건강에도 이롭다고... 맞는 말이었다. 연일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부들부들 떠느니, 그냥 다 당해주리라 포기하고 마음먹으니 엄마도 나도 차라리 속이 편했다.

암튼 그래서 8월 6일엔 아래층 작은방 천장 석고 보드 공사를 해주었고

8월 7일엔 이참에 집 좀 단장하자며 네 집이 분담해 앞마당 시멘트 공사를 다시 해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었고

8월 10일엔 아래층 도배가 끝났다. (나중에 보니 집 전체를 거의 다 새로 도배했는데, 방 하나 값은 자기네가 분담했다고 우기지만 가격으로 보아 거짓말 같다.) 

그렇게 드디어 일단락 되나 싶었더니만.. 빌어먹을 이 낡은 집!

내가 사는 쪽인 아래층 202호에도 목욕탕 천장에 물이 맺힌다며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아주 미친다. 이번엔 내가 엄선해서 동네 누수탐지업자를 불렀고.. 역시나 이쪽 집도 보일러와 상수도엔 이상이 없어 누수탐지기로 파악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화장실 변기와 하수구 방수가 주요인인 경우가 많다며, 무작정 화장실 바닥을 다 뜯지 말고 조치해보자고 했다. 반나절 공사로 끝났을 뿐더러 당연히 엄마네 화장실 방수 비용의 6분의 1 가격이 들었다. 우와 진짜...

내가 보기에도 엄마네 화장실 타일이 삐뚤빼뚤 바닥 수평도 엉망이고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 누수탐지 업체 사장님이 최근에 공사했다는 저쪽 화장실구경 한번 해도 되겠냐고 하더니 정말로 실소를 머금었다. 타일 배워서 처음 붙인 초짜 솜씨라며 사장님이 직접 했다는 걸 믿지 못하겠단다. 같은 업계고 이 동네서 서로 뻔히 아는데 혹시나 친한 사이면 어쩌나 걱정스러워 처음엔 업체 상호도 안 알려줬다가 에라 모르겠다 일러바쳤다. 소비자 등쳐먹는 업자라고 이 동네 누수공사 업계에서 나쁜 소문이라도 나랏! 흥! 

202호 누수공사를 한 것이 8월 14일 월요일.

시련은 다 끝인가 싶어... 바로 다음날 별렀던 내과병원을 찾았다. 요번학기에도 신체검사서를 내야하는데 아무래도 혈압이 문제일 것 같아서(그간 스트레스가 좀 많았나! 집에서 재보니 엄청나게 높아!) 혈압약을 처방받기로 했던 거다. 약 먹고 혈압 정상으로 만든 다음에 신체검사 받으려던 계획이었다. ㅜ.ㅡ

아 근데 혈압약 처방에 웬 심전도와 엑스레이가 필요하담? 얼결에 엑스레이를 찍고 심전도 검사를 한 건 그렇다 치고... 그러느라 목걸이를 빼서 가방 주머니에 핸드폰, 이어폰과 함께 넣어두었었는데;;;;; 

밤에 샤워하다가 거울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 어라 내 목걸이! ㅠ.ㅠ

그 목걸이로 말할 것 같으면... 몇년 전 귀금속을 업으로 삼은 후배의 설득으로 그간 내가 잡다하게 갖고 있던 14k, 18k, 24k 반지와 팔지, 귀걸이 따위를 모두모두 모아 팔아서 장만한 거였다. 아니 돈을 벌어도 시원찮은 판국에 목걸이까지! 병원에서 나와 약국에 들렀고 약을 지어 나온 뒤엔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걸어왔었다. 핸드폰에 묻어서든, 이어폰 줄에 묻어서든 바닥에 흘린 게 틀림 없었다.

징징 울며 목걸이 분실을 토로하는 내게 후배는 혹시 모르니깐 당장 랜던 켜들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보라고 했다. 얇은 목걸이라서 눈에 잘 안띄어 남아있을 수도 있다면서...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휴대폰후레시와 랜턴을 둘 다 켜들고 되돌아가본 길에 목걸이 따위는 없었다. 낮엔 분명 플라타너스 낙엽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는데 부지런한 미화원분들이 어찌나 깨끗하게 길을 쓸어놓았던지. 어흑.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 물건과 나의 인연이 그 정도였던 거지. 속 쓰리지만 어쩌겠나. (하지만 속상해! 엉엉)

그날 밤 이번 여름 손재수가 정말 끝장이로구나 생각하며 빨리 가을이 오기를 빌었던 것 같다. 


...


그러나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개학 후 첫 수업일이었던 8월 16일. 집앞 골목에서 주차하다 앞차 범퍼를 살짝 긁었다. 아 놔 정말!! 나 왜 이러니. ㅠ.ㅠ 아마도 그날 애들 수업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집앞에 세워둔 이웃 차가 아니었더라면 모르는 척 뺑소니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양심이 자꾸 나를 괴롭혔고.. 결국엔 사고를 실토하는 메모와 연락처를 차유리에 꽂아놓았다. 살펴보고 수리해야 하면 사고처리는 보험으로 하겠다고.

아 근데 그날 저녁에도, 다음날 아침에도, 오후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이거 뭐지? 휴가라도 갔나 싶어 다시 문제의 차를 살폈다. 전날엔 당황에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차주의 전화번호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고, 사고 부분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허거걱... 근데 번호가 낯이 좀 익네? 차주가 바로 102호 세입자 아가씨였던 것. 그래도 긁힌 범퍼 이외에 전혀 엉뚱한 데까지 죄다 수리하며 옴팡 비용을 덮어씌우진 않겠구나 싶었다. 두어번 얼굴 본 사이고 그쪽 명함도 받아두었는데 101호 사기꾼 부부처럼 의뭉스러운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암튼 평일엔 차를 쓰지 않는다더니만 주말에야 겨우 서비스센터에 다녀왔는지 오늘 비로소 견적서와 함께 수리 관련 연락이 왔고, 그래서 나도 정식으로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했고, 완전 마무리는 되지 않았지만 나름의 마음고생이 끝났다.

설마..  이 여름에 나 또 뭔 일 내는 거 아니겠지? 부디 이걸로 끝이기를 비는 마음으로 이렇게 창피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적고 있다. 계속 무사고 운전자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맨날 주차하던 골목에서 수백번 반복하던 동작인데 왜 정신을 어디다 빠뜨리고 실수를 한 건지 자괴감이 자꾸만 치밀어오르지만... 결국 다 내탓이다. 그러니 올 여름 너무 더워도 집도 나도 미쳐서 정신줄을 놓았던 셈치고 이제 그만 좀 하자.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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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성사될 것 같았던, 오래된 동네 낡은 집들의 공동 재건축이 완전히 무산되고.... 게다가 토지 구획 문제로 소송을 한차례 겪으며 앞마당 일부를 요상한 모양으로 떼어주고 그쪽에 토지 단독 소유권을 인정하라는 판결을 받은 터라 집을 매매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사하며 짐도 확 줄이고, 새집에서도 좀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은 좀처럼 실현되지 못할.. 그저 꿈이 되고 마는 것인지. 어휴. 한숨. 암튼... 그래도 뭔가 일을 겪을 때마다 (지인들의 부모님 말고 후배나 친구 본인의 뜬금없는 부음을 들을 때라든지) 단촐하게 살아야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야지 충동이 일면서 가끔 짐을 정리한다. 물론 그래도 수십년 넘게 눌러앉아 사는 집의 살림살이란 손도 대지 못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모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노인으로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오래된 물건을 끔찍이 여기는 게 당연한 심리라는 왕비마마 덕분에, 뭘 버리기도 쉽지가 않은데 그래도 요번엔 꽤 많은 물건을 처분했다. (되다말다 했던 고물 진공청소기, 빨래걸이로 전락한 헬스 바이크, 스탠드형 나무 옷걸이, 오래된 나무 밥상, 빈 도기 화분들... 그리고 수많은 가방과 옷가지들! - 옷과 가방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고 나머지는 대형폐기물 신고했다.)

그러고도 좁은 집이 답답하게 여겨져 책장 배치를 좀 달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여지껏 끼고 있던 원서 전공책들을 죄다 노끈으로 묶어 내다놓았고, 중고책으로 팔만한 책들을 수십여권 골라내 몇 차례에 걸쳐 알라딘에 들고가 예치금을 두둑히 마련했다. ㅎㅎㅎ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또 충동적으로 작업실 방에서 뒷베란다로 통하는 철문과 창틀에 페인트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 인터넷으로 폭풍검색을 좀 하다가 배송되는 시간도 기다리기가 싫어져서 후다닥 동네 페인트 가게로 달려나갔더니 하필 일요일. 두군데 다 문을 닫았더라. 그렇다면 방법은 다이소뿐. +_+

다이소에서 파는 한통에 2천원짜리 초소형(혹시 착각했나 찾아보니100ml짜리도 아니고 60ml였다 ㅠ.ㅠ) 젯소와 페인트를 두개씩 집어왔었는데, 이것은 곧 미친짓으로 판명된다. 생각보다 얼마나 페인트가 많이 필요하던지! 똑같은 걸 몇번이나 더 사다 날랐는지 원... 페인트가 살짝 연두빛이 도는 반광 '미색'이었는데 창틀과 나무색깔 창문 4개에 모두 2번씩 칠하려니 ㅠ.ㅠ 어휴... 사실 그렇게 두번씩 열심히 두껍게 칠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면 그 앞에 책장을 옮겨다 놓을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싸구려 책장 2개와 오래된 장식장을 싹 다 버리고 5단 책장 넓은 걸 2-3개 사들여 작업실을 다시 꾸미리라 마음 먹었으나... 나 혼자선 큼지막한 장식장을 내다버릴 방법이 없었다. +_+ 나사를 죄다 풀고 문짝을 다 떼어 부셔버릴까, 동생들 찬스를 써볼까 여러가지 고민을 했으나... 결정적으로 비전문가 동생 둘이 무거운 장식장을 가파른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누굴 잡을라고...

누렇게 변색된 벽지 어쩔;;

해서 책장 사는 것도 일단 임시 보류. 책장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일단 버릴 책과 팔 책을 솎아낸 뒤, 마루와 방에 따로 놓았던 '체리목' 3단 책꽂이를 세로로 나란히 붙여놓았다. 겨울에 찬바람도 막아줄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옛날 집이라 케이블 TV나 인터넷 전용선 따위가 모두 베란다문과 창문으로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어마어마하다. 문풍지로 최대한 막아도 한계가 있음. 

하여간... 마스킹테이프까지 붙여가며 (종이 벽지에 붙인 부분은 나중에 뗐더니 죄다 들고 일어나 허옇게 됨 ㅠ.ㅠ )이틀에 걸쳐 낑낑대고 칠한 창문과 문쪽 증거샷이다. ㅎㅎ 책장 놓기 전에 사진을 찍어놓은 게 없어서 방금 찍음 ^^; 여긴 주로 내가 번역한 책 증정본만 모아놓았기 때문에 클릭해도 사진 안 커집니당~)

하여간... 셀프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알량하게 창문 4개 페인트 칠하면서 흘린 땀이 얼마며, 버린 옷이 몇벌인지! ㅋ

그런데 페인트칠을 하면 할수록 단순한 작업에 재미가 붙어, 이젠 방문짝과 벽도 페인트를 칠하면 어떨까 마음이 자꾸만 들먹들먹했다. 거의 20년쯤 전에 '연분홍색'으로 칠해놓은 방문과 욕실문이 너무도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욕실 문엔 이미 아이보리색 무늬목 시트지를 사다 붙여놓은지 몇달 되었었다. 

그렇다면 이젠 방문 차례! ㅎㅎㅎ그런데 도배한 지도 워낙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벽지가 너무 도드라져보이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면 실험적으로 한쪽 벽면에만이라도 페인트를 칠해보리라는 밑그림이 나왔다. 

해서 완성된 것이 아래 사진 모습이다. ^^; 최대한 누런 벽지를 안보이게 사진에 담으려니 참으로 알량하군..​

양쪽 문 사이의 좁은 벽엔 원래 키재기용 스티커가 붙어있고 조카들 넷이 폭풍성장하며 달라진 키높이와 날짜가 온갖 색깔의 필기도구로 촘촘히, 매우 어지럽게 적혀있었다. 나름 소중한 그 역사를 지우는 게 찜찜했지만 ㅠㅠ 고모도 이제 헌집일망정 깨끗이 좀 살고 싶단다. 대신 녀석들의 사포 모빌 작품을 옮겨 달았으니 용서해주길...

문짝에 칠한 페인트 역시 너무 얕잡아보고선 다이소 무광 페인트 500ml짜리를 선택했다가 몇번이나 더 사러 나가야했다. ㅠ.ㅠ 2-3리터짜리 친환경페인트 한방에 주문했으면 되었을 것을... 으휴.. 암튼 이쪽 벽면을 다 하얗게 칠해 나머지 벽들이 더욱 누렇고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 거울까지 온통 아이보리색으로 칠한 한쪽 벽면의 변신을 보며 다음번엔 방에 셀프 도배를 해볼까, 또 페인트칠을 해볼까 고민 중이다.

다행히 7월 접어들면서 이런저런 바쁜 일(진짜 일 말고 그냥 잡다한 신경쓸 일)이 생겨 더는 셀프인테리어에 관심을 집중하지 못하게 되어 슬며시 기쁘기도 하다. 머리 쓰는 일 말고 이제 남은 평생은 단순하고 몸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선망을 잠시 품었지만, 나처럼 부실한 몸으론 그것도 불가능할 거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만큼 단순 페인트칠마저도 어찌나 고된지 폭풍 붓질을 하고나선 삭신이 다 쑤셔서 팔목과 어깨에 며칠 파스를 붙여야했다. 

혼자선 꽤나 뿌듯했는데, 집에 다니러 온 올케들에게 문칠을 자랑했더니만 손잡이 안 빼고 그냥 칠했다고 핀잔을 들었다. 아 그건 옛날에도 원래 그냥 안빼고 칠해서 어쩔 수 없었거든요! 욕실 문은 손잡이도 새로 사다 교체했는데 방문도 사실 손목 아파서 못 돌리는 경우도 있는 둥근 손잡이 말고 일자형 손잡이로 바꿀까 하는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 아직도 멀고 먼 셀프 인테리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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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생활

놀잇감 2018. 5. 14. 10:59

보통 사진이 들어가는 내용은 휴대폰으로 사진만 먼저 올려놨다가 텍스트는 나중에 컴퓨터 앞에 앉아 적어넣고 포스팅을 완성하는데;; ㅠ.ㅠ 일 없다고 컴퓨터를 아예 멀리하다가 실수를 저질렀다. 완성되지도 않은 포스팅을 공개하다니 창피하도다.. ㅎㅎ 그럼에도 계속 컴퓨터 전원조차 켜지 않는 게으른 나날을 며칠 보내고 이제 겨우 긴 메일을 써야해서 자리 잡고 앉았다. 

비공개로 차곡차곡 쌓아둔 포스팅 갯수가 꽤 되는데;; 영화나 전시, 책 본 후기는 아무래도 좀 더 공들여서 생각하며 써야하니 도무지 마무리가 되질 않는다. 노상 침방나인 같은 자수 포스팅이나 하고 있으려니 그 또한 민망하여 저어하였으나 노출된 김에 또 핑계삼아 자랑질을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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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력 폭발로 인해 틈틈이 이어지는 취미생활의 기록이다. 아마 손목과 팔꿈치가 아프지 않다면 며칠에 하나씩 뭔가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겠으나, 하루이틀 빡세게 바늘을 쥐고 나면 손가락마디까지 죄다 뻣뻣해져서 그나마 다행히 쉬엄쉬엄 하고 있다. 


​나름 작품 완성 순서대로 설명해보자면...

1. 컵받침


음력 1월이었던 작은올케 생일 선물로 만든 작품이다. 자수책을 보며 본인이 마음에 드는 도안을 골랐고, 브로치 같은 건 잘 안하고 다니니 실용적인 컵받침이 좋겠다고 주문했다. 

뒷면엔 퀼트용 천을 골라 꿰맸더니, 친구가 뒷면이 더 예쁘다는 망언을 하며 약을 올렸다. 프린트 원단이 더 예쁜데 고생되게 이런 짓을 뭣하러 하느냐고.. ㅋㅋ 

그러게... 손자수, 손뜨개, 손바느질... 요즘 같은 디지털, IT 최강 시대에 왜 이런 아날로그 회귀성 노동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뭐...내눈엔 이게 더 예쁘니까? ^^*

나름 생일선물이라고 리본으로 묶어 포장해 건넸더니, 생일 주인공은 아까워서 어디 컵받침으로 쓰겠냐며 벽에 걸어놔야겠다고 했다. 아니 그럼 안 되지! (오른쪽 아래는 재단이 잘못돼서 크기가 좀 다르고 정사각형 아니라고 클레임 들어왔었다;; ㅋ)

얼마간 걸어뒀다가 컵받침으로 쓴다고 하더니만 요샌 쓰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암튼... 컵받침으로 첫작품이었는데, 컵을 올려두려면 무늬를 가장자리쪽으로 작게 넣어 컵을 올려도 자수가 보이도록 하는 도안을 써야한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그치만.... 난 계속 우길란다. 컵받침도 가운데 무늬가 더 예쁘다! ​

집에 가서 이렇게 걸어두었다고 보내온 인증샷이다


2. 꽃 브로치

장미와 수국을 표현한 건데 그래보이나? ^^;


​이건 전작에 이어 음력1월 마지막날 생신이었던 울 왕비마마를 위해 만든 선물이다.

꼬물꼬물 노상 자수를 놓고는 있는데 막상 당신에겐 하나도 선물을 안해드려 속으로 좀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마침 생신도 돌아오겠다, 얼른 브로치를 수놓았다. 왕비마마 취향에 맞게 분홍분홍, 보라보라한 느낌의 장미와 수국.

여기저기 달아보다가 니트 조끼에 가장 잘 어울린다며 몇번 하고 다니셨더랬다. 









1, 2번 선물은 같은 날 증정식을 했으므로, 포장 완제품(?)도 함께 찍어봄



3. 이니셜 브로치


한달동안 동거하고 있던 친구가 1, 2번 선물 제작의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으니... 게다가 또 3월말 출국 바로 다음주가 생일이었으니 하나 작품을 만들어주겠다고, 뭐든 골라보라고 호기롭게 자수책을 들이밀었더랬다. 

허나 친구는 고생스럽게 뭘! 아무것도 하지 마! 이런 식이었다. 그럼 내 맘대로 젤 쉬운 꽃브로치 하나 만들어준다고 협박했더니 팬심 폭발하여 '그분'의 이니셜을 새겨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ㅎㅎ 그분이 사인할 때 덧붙이는 옆으로 뚱뚱한 하트까지 나름 도안도 팬클럽을 여기저기 뒤져서 새기고 꾸며 선물했다. 

자수실을 완전히 구비하지 않은 때라... 이제보니 잔잔한 꽃색깔이 좀 더 다채로웠으면하는 마음이 있네그려. 암튼 이 브로치는 친구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4. 별자리 컵받침

아주 수월하고 시간 덜 드는 단색 도안을 골라 또 다시 꼼지락꼼지락 만들어본 컵받침 세트. 

열심히 다렸더니 번떡번떡 ㅋㅋ

이 또한 크기가 살짝 제각각이다. 아 몰랑. 공산품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모서리 꿰매서 뾰족하게 뒤집기가 만만칠 않았다. 핑계라면 앞뒤로 제법 두툼한 리넨천을 붙였더니만... ㅎㅎ


5. 꽃 브로치 again


엄마한테 만들어드린 장미꽃 자수를 분홍바탕에 놓아본 것. 이십대부터 입때껏 핑크공주로 살고 있는 후배를 위해 고른 배색이다. ^^; 

근데 이런 꽃자수 브로치는 나 같은 사람이나 좋아라하지 개인적인 스타일상 막상 받고도 처치곤란으로 느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에코백 같은데나 달면 모를까... 근데 또 딱 떨어지는 정장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에코백 패션을 모른다! ㅋㅋ








6. 자수 손수건

마지막으로 주문(?)받은 선물이다. 설날에 모였을 때 큰올케는 손수건용 자수 도안을 골랐다. 원래는 파우치에 놓인 꽃다발이었는데 자수 손수건을 갖고 싶으시다고...

해서 지난주 생일에 맞춰 완성하느라 다시 손수건이랑 실을 더 사러 동대문에 다녀온 후에야 마무리된 작품. 레이스까지 달려있는 자수용 손수건을 찾으려 발품을 꽤 팔았으나 못 구하고 ㅠ.ㅠ 오버로크 처리된 1500원짜리 손수건을 사와 가장자리를 홈질로 꿰맸다. 자수가 아까워서 그냥 놔둘 수가 있어야지!

원본사진과 비교샷 ^^

원본은 바탕이 베이지색이라 꽃봉오리가 흰색이지만, 흰바탕인 손수건인지라 연노랑으로 바꿨고, 주인공의 주문대로 선물받을 이의 이니셜도 새겨넣었다. 내가 해놓고도  계속 감탄하며 사진도 여러장 남김 ㅋㅋ

원래는 한쪽에만 꽃다발을 수놓을까 했으나...

반대편이 넘 심심할까봐.. 그리고 또 나의 이니셜도 어딘가 남기고 싶어서 욕심을 냈다. 전문가의 도안을 따라한 게 아니고 내 맘대로 배열해놓고 막 예술가적 감수성 폭발했다고 자뻑모드.. ;-p





마지막 완성 포장샷까지... ㅠ.ㅠ 

결국 이 작품을 끝내고선 이틀간 손목과 팔꿈치에 파스를 붙여야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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