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에 해당되는 글 127건

  1. 2023.06.29 다이애나밴드&지리산방랑단 전시 @ 합정지구 1
  2. 2022.04.25 연이 엄마 되다 2
  3. 2022.03.17 연이와 하늘이
  4. 2021.10.31 펄쩍펄쩍 6
  5. 2021.09.25 연이진이 3
  6. 2020.10.02 시든 꽃 1
  7. 2020.04.28 초록 이름 2
  8. 2020.04.23 철마다 옷타령 3
  9. 2020.04.02 2020 벚꽃일기 1
  10. 2019.06.13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 6

방치해두었던 블로그를 전시 기록할 때만 써먹는다... ㅎㅎ

친구 찬스로 23년 6월 22일. 합정지구에서 열리고 있는 힙한 전시회 보러 다녀왔다. 전시일정은 7월 9일까지!
전시장 전경을 밖에서 보면 이렇다. 

친구들이 찍혀서 가렸는데;;; 이 사진을 자세히 보고서야 전시 제목이 <손 잡듯, 느슨히>라는 걸 깨달았다. 전시 제목도 모르고 다녀왔군. ㅎㅎ

헝겊으로 민물가마우지를 이토록 정교하게 표현해내다니.. 예술가는 역시 다르다.

지하에서도 이어진 전시는…

공개할까말까 고민하다 뒷모습이라는 핑계로 올림. ㅠ.ㅠ 넘나 귀여운 친구 아드님, 자체로 예술작품이다.

환경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하는 전시였다. 요즘 전시 관람료가 어마어마하게 올라서 대형 기획전시는 막 2만원도 넘는데; 다녀와서 느끼는 충족감과 뿌듯함으로 따지면 소소한 무료전시나 대형 유료전시나 별 차이가 없다.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과 선망이 늘 함께 하는 전시 관람... 언제든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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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엄마 되다

양양연진 2022. 4. 25. 16:25

22년 4월 24일. 연이가 출산을 했다. 지난번 발정기 때 기묘하게 울었고 하늘이와 묘하게 꼬리잡기를 하듯 놀았으니 그냥 지나갈리 없겠지 생각하면서도 배가 부른 건지 어쩐지 통 모르겠더니만 ㅠㅠ 오늘 심상치 않게 조용하고 사료 먹으러도 안나타나서 집 방향 돌려주려 다가갔다가 집안에 웅크려 하악질하는 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나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평소 같으면 겁쟁이 연이는 내가 다가가면 후다닥 집에서 튕겨나와 달아났을텐데!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면서 하악질만 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조용히 물러나 아무래도 이상해서 황태포를 입구에 던져주니 슬그머니 나와서 먹는데… 엉덩이와 꼬리 부분이 피에 젖어있는 게 아닌가! 출산한지 얼마 안된 게 틀림없었다. 에고에고 갑자기 멘붕이 왔다. 출산박스 여럿 만들고 담요 갈아줘야한댔는데… 어쩌나. 하지만 그건 집고양이 얘기고 지금은 내가 접근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잔뜩 예민해져 있을 테고 내가 접근하면 새끼냥 훔쳐가려는 시도로 여길 수도 있을 거다. 

매일 내가 사료와 물을 놓아주는 위치는 연이 집에서 2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베란다 창턱 너머로 내가 집게를 이용해 놓아주기 편한 장소다. 연이는 새끼냥들 때문에 집주변에서 꼼짝도 안하는 것 같으니 얼른 츄르를 얹은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연이네집 바로 앞에 놓아주고 물러났다. 역시나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하악질을 했다. 걱정마, 너 먹을 거 챙겨주는 거야.. 조심조심 물러났다.

불과 3일전 4/21에 찍은 사진이다. 날씬해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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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출산 만 하루가 지난 오늘. 어젯밤에 미리 불고기감과 황태를 푹푹 끌이고 잘게 잘라 미리 산후 특식을 만들어 놓았다. 뜨거울 때 주면 안되지 않겠나. 점심 무렵 베란다 창문을 열고 연이야~ 부르니 연이가 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평소처럼 야옹야옹 울었다. 오야... 맛있는 특식을 주마. 그러나 내가 또 베란다 턱을 넘어 집으로 다가가자 집안으로 숨어들어 하악하악~~. 집 앞에 특식과 평소 먹던 사료와 츄르를 나란히 놓아두고 물러났다.

방으로 돌아와 창문으로 내다보니, 배가 고팠던 건지 허겁지겁 특식도 먹다가 츄르도 먹다가 왔다갔다 신나게 먹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 피로 물들었던 꼬리와 엉덩이 부분은 이제 거의 다 깨끗하게 마른 상태. 약간 누리끼리한 자국만 남았다. 목욕도 안하고 어떻게 그렇게 깨끗해지는지 신기하다. 암튼 연이가 밥먹는 동안 꼬물꼬물 새끼냥들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의젓한 엄마냥이 된 연이가 얼른 집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이 선견지명이란 게 있는걸까? 그간 연이 겨울집에는 입구에 두툼한 비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서 연이가 집안에 안 들어가고 집밖 바닥이나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모습이 자주 보여 통풍이 안되나보다 싶어 출산 바로 전날 그 비닐커튼을 뜯어버렸었다. 그리고 안에 넣어주었던 겨울용 발방석도 꺼내버렸다. 연분홍과 노랑색이었던 방석이 회색이 된데다 고양이털이 북실북실 묻어 있어서 혹시라도 연이가 임신한 게 맞다면 위생상 깨끗한 담요만 있는 게 낫다고 여긴 거였는데, 바로 다음날 출산을 하다니! 공교롭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보온용 방석이 있는 게 더 나았을지 어쩔지 잘 모르겠다. 

대체 새끼는 몇 마리나 낳았을지 궁금해 죽겠지만, 연이 엄마였던 양양이도 처음에 딱 두 마리만 데리고 나를 찾아왔었고, 연이 배를 보아도 임신한 티가 별로 나질 않았으니 되게 여러마리일 것 같지는 않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꼬물꼬물 우는 소리로는 두세 마리 같기도 하고... ㅠ.ㅠ 작년 6월초에 양양연진 식구를 처음 만났고 크기로 보아 한달쯤 된 것 같다고 짐작했으니 연이는 아직 만1살도 안된 아이다. 근데 엄마냥이 되었다니! 본능적으로 새끼를 잘 보살피고 있을까...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는 걸로 봐선 그러는 것 같다.

어제 오후 침입자냥1(검냥이)이 슬며시 다가와 연이네집 입구를 노려보는 걸 발견하고 쫓아주었다. 그 뒤로 하늘이도 잠시 다녀갔는데, 하늘이가 왔을 땐 연이가 야옹야옹 울면서 집밖으로 나와 들이받는 것 같길래, 이놈시키! 소리쳐 역시나 위협해 쫓아버렸다. 하늘이는 내가 끝까지 쫓아가지 못한다는 걸 아는 녀석이라 좀 멀리 떨어져서 한참 지켜보던데;;; 아빠 노릇하러 온 거였으면 어쩌나 좀 걱정됐다. 하늘이는 한쪽 눈 아래쪽에 약간 누리끼리한 상처가 남아서 얼굴 구분이 가는데 그 외 검냥이들은 통 구분을 못하겠다.

밤새 혹시나 또 침입자냥들이 연이네 식구를 위협할까봐 걱정이 된 건지 새벽4시까지 잠도 오질 않았다. 고양이들이 야행성이라 그런지 그간 추이를 보면 새벽 4-6시 사이에 연이가 자지러지게 울며 SOS를 청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암튼 오전 시간은 무사히 넘어갔는데, 특식 배달한 뒤 한시간쯤 지났을까 오후에 다시 연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먹을 것을 노리고 접근한 침입자냥인듯. 녀석은 내가 창문을 열자마자 철창 너머로 도망치고, 연이는 허겁지겁 남은 특식을 먹어치웠다. 새끼냥 젖을 먹이려면 물도 많이 먹어야한다는데 물은 별로 안줄어든 듯... 신경이 자꾸만 연이네한테 쓰여서 한쪽 귀는 아예 바깥으로 향한 것 같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자꾸만 안방 창밖을 내다보게 된다.

새끼냥들 무사히 쑥쑥 커서 어서 귀여운 모습 알현하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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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와 하늘이

양양연진 2022. 3. 17. 15:46

연이는 지난 겨울 혹한을 잘 넘겼다. 난생 처음 지내는 겨울일 테니 영하11도가 넘는 날은 핫팻을 겨울집에 넣어주기도  했지만, 적응력을 높이는 게 좋다는 조언도 있고 해서 결국 박스째로 사들였던 캠핑용 대형 핫팩은 다 쓰지 못하고 남았다. 다시 겨울이 찾아오기까지 안 굳고 잘 남아 있을까. ㅎㅎ

암튼 연이의 성별은 암컷이었던 모양이다. 2월 중순 연이는 이상하게 괴로운 소리를 내며 발정기 울음을 시작했다. 얼마 전만 해도 봄가을에 밤마다 울어대는 발정기 고양이들 울음 소리에 엄청 욕하고 싫어했던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발정기 암컷이 우는 건 너무 배가 아파서라니 ㅠ.ㅠ 안쓰럽고 짠해서 빨랑 발정기가 지나가길 빌었다.

물론 걱정도 많이 했다. 발정기 울음을 듣고 수컷이 찾아오면 사료랑 물이랑 뺏기는 거 아닐까? 겨울집=연이 보금자리가 바로 내방 창밖에 있는데 인간의 소음과 너무 가까운 곳이라 짝짓기가 가능할까? 별별 걱정이 다 들었던 것이다. 암튼 아으~아으~ 괴롭게 울어대던 연이의 울음소리가 며칠이나 이어지던 밤, 창밖에서 우당탕탕 난투극을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일인가 싶어 얼른 창문을 열어보니 겨울집을 가운데 두고 (힘도 좋지, 둘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벽에 붙여놨던 집이 밀려나와 있었다) 연이와 하늘이가 뱅글뱅글 돌며 쫓기 놀이 같은 걸 하고 있었다.

하늘이가 누군고 하면, 그간 걸핏하면 연이와 연이 집을 노리고 접근했던 칩입자냥이다. 눈동자가 약간 하늘색이 돌아 하늘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연이 사료를 탐내지 못하도록 따로 뒷마당 벽 위에 밥자리를 만들어 매일 저녁 따로 사료를 챙겨주고 있었다. 물론 사료를 따로 챙겨줘도 이 녀석은 연이 집이 탐나는지 2-3일에 한번씩 슬쩍 축대 철망을 넘거나 벽을 타고 접근해 연이가 질색팔색 울어대게 만들었다. 자지러지게 연이가 울면 왜 왜 왜 ! 고함치며 내가 출동해서 잠자리채로 녀석을 쫓아주곤 했었는데;; 헐.. 그 녀석과 짝짓기를 하기에 이른 모양이다!

발정기 동안엔 둘이 싸우던 때의 울음소리가 들린 적이 없고 약간의 하악질 + 그냥 몸싸움만 벌이는 듯 했으므로 나는 조용히 창문을 닫고 물러나드렸다. 대체 길냥이의 발정기 짝짓기는 며칠이나 지속될까 궁금했는데, 연이의 발정기 울음소리는 차차 줄어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또 궁금해졌다. 연이는 과연 임신을 했을까? 작년 5월에 태어났다고 치고 9개월이 지났으니 이미 연이도 성묘라지만 워낙 체구가 작은데; 그래도 단번에 임신을 했을지 어쩔지... 길냥이의 임신 확률은 백퍼센트일까?

열심히 정보를 찾아보니 길냥이들은 전략적으로 여러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해 새끼들의 아비가 누군지 아예 모르게  하고, 실제로 서로 다른 수컷의 새끼를 동시에 임신할 수도 있단다. 연이 주변에 얼씬거린 수컷이라고는 하늘이밖에 못봤는데 과연...

발정기 동안에는 애교도 안부리고, 사료를 줄 때도 가까이 다가와 양양거리기는커녕 멀리 떨어져 지그시 쳐다보기만 했던 연이는 거사 이후 다시 야옹야옹 울며 놀아달라거나 빨랑 사료를 내놓으라고 한다거나 손을 내밀면 붕붕이를 하며 만져보기도 하는 등 안정을 되찾은 것 같다.   

3월 초: 내방 창문을 열면 연이가 이렇게 눈을 맞추고 야옹야옹 인사한다

발정기 이후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연이가 좀 꼬질꼬질해졌다는 것. ^^; 세수도 언제나 깔끔하게 해서 새하얀 털의 자태를 자랑하더니만 요샌 위 사진처럼 눈꼽이 좀 덜 닦인 얼굴이고, 몸을 바르르 털면 노란 먼지가 풀풀풀. 

그러다가 얼마 전엔 하늘이랑 연이랑 둘이 엄청나게 싸움이 붙어서 온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연이가 울어댔는데 내가 잠자리채로 협공에 나섰지만 흥분한 연이는 달아나던 하늘이를 멀리까지 뒤쫓아갔고, 담장 너머 어딘가 안보이는 곳에서 하늘이가 연이를 깨물었다(혹은 할킨 걸까?). ㅠ.ㅠ 엉덩이쪽 옆구리에 털이 움푹 파일 정도로 물린(혹은 할킨)자국이 보였는데 피는 나지 않은 것 같고, 튀어 날아오르듯 도망쳐온 연이는 한참 숨을 헐떡이다 물을 마시고는 제집으로 쏙 들어갔다. 하늘이 이 나쁜 자식!

하늘이는 별로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 하늘이 입장에서 보면 헷갈릴 만도 할 것 같다. 하늘의 입장의 가설을 세워보면 아래와 같다.

1) 작년부터 집도 밥도 여유로운 암컷 길냥이 영역을 호시탐탐 노리는데, 옆에 인간 집사가 자꾸 나타나 훼방을 놓아 목적 달성이 어렵다. 그래도 계속 얼씬거리는 중. 2) 갑자기 발정기 울음으로 이 암컷이 나를 유혹함.  3) 그래 좋다, 짝짓기 성공. 이제 넌 내 애인이다. 4) 이상하다, 짝짓기할 땐 언제고 이 암컷이 다시 나를 멀리한다. 인간도 다시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먹튀냐?! 5) 인간도 이상하다. 밥 챙겨줄 땐 언제고 암컷 냥이 옆에만 가면 잠자리채로 쫓아버리네? 어쩌란 거냐.

하늘이는 몸집도 연이의 1.5배-2배 가까이 되고 뭔가 연륜이 있어보인다. 내가 저리 가라고 버럭 고함을 질러도 멀리 도망치지도 않는다. 어차피 창밖으로 못나가니 담장 너머 철망 너머까지 쫓아갈 수 없다는 걸 아는 듯하다. 그래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빤히 보다가 금세 다시 접근을 시도할 때가 많다. 한 겨울에 창문 열고 헤드렌턴으로 어둠을 비춰가며 녀석과 한참 대치하려면 어찌나 춥던지 원;; 

하여간 하늘이는 오늘 아침에도 연이가 집안에서 쉬고 있는 사이 집밖에서 얼씬거리다가 연이의 구조신호(으으으으.. 낮게 위험신호를 보냄)를 받은 내가 창문 열고 쫓아내야했다. 연이와 하늘이의 영역 다툼은 과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지... 길게 외출을 해야할 때면 혹시라도 연이가 하늘이한테 해코지를 당할까봐 걱정스러워서, 오자마자 무사한지 확인하는데 입때껏^^; 연이는 다행히도 자기 집을 잘 지켜왔다. 고양이의 임신 기간은 2달. 앞으로 진짜로 새끼를 낳을지 어쩔지 모르겠는데, 양양연진 세 마리를 창밖에서 처음 맞닥뜨렸던 경이의 순간이 또 기대되기도 하고, 제발 이번 발정기엔 그냥 잘 넘어갔길(?) 비는 마음도 있다. 앞으로도 포획틀 대여하고 어쩌고 해서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것까지는 시도할 자신이 없으니, 그냥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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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쩍펄쩍

양양연진 2021. 10. 31. 03:20

우리 집은 2층이고 연이와 진이가 살고 있는 곳은 아래층 뒷베란다의 지붕이다. 매일 아침 내방 창문을 열고 연진이의 새집이 무사한지 또는 밤새 애들이 별일 없었는지 내다보고는 다시 뒷베란다로 이동해 사료와 물을 내려준다. 창턱이  높아서 사료통을 내려주고 올리고 할 때 집게 사용은 필수. 

이해를 돕기 위해 대충 그림을 그려보면 이런 식이다. ㅋ 근데 아침에 베란다에서 바스락바스락 사료 줄 준비를 하고 있으면 연진이는 이미 밥 달라고 마구 울어대고 있거나 슬며시 집에서 나와 기다릴 때도 있는데, 요샌 아예 급한 성미를 보이려는 건지 묘기를 보이려는 건지, 아니면 집 내부가 궁금한 건지 연이와 진이가 종종 방충문에 매달리기도 한다.

처음엔 고개를 들다가 어찌나 놀랐는지 옴마야..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 했는데; 이젠 벌써 도약을 준비하는 애들의 발소리로 짐작이 된다. 요 녀석들 또 뛰어올라와서 들여다보겠구나 싶어지는 것.

펄쩍 뛰어 창문에 매달리는 연진이와 마냥이와 준집사

사료와 츄르를 담은 밥통을 집게로 집어 내려주고 있노라면 어느새 나타난 성묘 마냥이(새끼 3마리의 엄마임이 드러나 이 녀석 가족도 사료를 던져주고 있다.)가 축대 위 철망 안쪽에서 구경을 하기도 한다. 마냥이가 위협적으로 아래까지 내려와 접근하면 연진이도 죽어라 울어대지만, 이젠 철망 건너편에 와 있을 땐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눈만 마주치면 우는 연이. 고양이 번역기 필요하다  
동작이 굼뜨다! 빨리 내놔라! 혼내는 표정 같으심 

그나저나 진이가 통 보이질 않고 사료 줄어드는 양도 연이 혼자만 먹는 듯해서 걱정이다. 진이가 호기심도 많고 어디 멀리까지 놀러다니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며칠만에 한번씩 돌아와 사료를 싹 비우고 아침 일찍 연이랑 같이 밥 빨리 내놓으라고 울어대던 전적이 많았으나, 안 나타난지 일주일이 다 되는 것 같다. 마냥이 가족을 위해서 종이에 싼 사료뭉치를 열심히 축대 위 철망 너머로 던져 놓고 있으니 그걸 먹는 걸까? 

구청이나 보호단체를 통해서 중성화 수술을 해주려면 혹한기도 피해야하고 뭔가 회원활동을 오래 해야하는 것 같던데 연진이 정도 자라면 체중 기준인 2킬로그램이 넘어 수술이 가능할까? 애들을 포획 의뢰하는 게 과연 가능은 할까? 내가 틀을 놓아야하나? 계속 염려와 의문만 증폭되고 있다.  일단 중성화수술을 해서 길냥이들의 개체 수를 인위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해야한다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인간과 길냥이는 이미 공존해야하는 사회라면서...

터키에 갔을 때 보니 온 도시에 길냥이들과 길강아지들의 천국이던데. 당국에서 관리를 한다고는 들었지만 다들 귀 안 잘렸던데. 점점 생각도 많아지고 어렵다.  째뜬 고보협에 신상 겨울집도 주문해놓았고, 비닐 온실 같은 것까지 구비하면 연진이가 겨울을 무사히 나게 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엄마냥 없어도 건강하게 계속 쑥쑥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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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진이

양양연진 2021. 9. 25. 12:16

양양연진 가족과 만난지 어느덧 백일이 지났고 110일쯤 되었다.
동네에 살고 있는 주변 길냥이들은 여전히 기웃기웃 매일같이 엄마냥에게 버려진(?) 혹은 강제 독립당한 연이와 진이를 위협했다. 심상치 않게 우는 소리가 들려 창밖을 보면 검정 성묘가 다가왔거나 어느틈에 남은 사료통를 차지하고 먹다가 달아나는 식이었다. 연이진이 둘이 합심해도 아직은 성묘 침입자를 이길 수 있을리 만무하다. 내가 노려보고 쫓아도 한참을 안가고 버티는 녀석이니…  녀석도 가엾이 여겨 사료를 랩에 싸서 몇번 멀리 던져주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런 행동이 다른 길냥이를 연이진이 주변에 불러들이는 행동 같아 자제하고 있다. 일단 나는 연이 진이를 지켜야해. ㅠ.ㅠ

째뜬 어제는 나도 냥이들 지킴이에서 벗어나 일주일만에 문밖에 나가 종일 외출할 일이 있었다.
해서 일찌감치 8시쯤 사료통에 츄르와 사료를 담아줬는데, 이상하게 두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다른 때는 먼저 기다리고 있거나 좀 이따 냄새 맡고 오곤 했는데 좀 걱정됐다. 밤새 무슨 일이 생긴걸까.

오늘 아침 사료통을 확인해보니 사료양이 거의 그대로 남았고 위에 얹었던 츄르만 사라졌다. 요샌 연이 진이 따로 사료통을 두 개 놓아주는데… 흠. 사료가 무사했다는 건 침입자냥이 와서 애들 쫓아내고 다 먹어버리진 않았다는 의미다. 

오늘 아침엔 다시 통 하나에만 사료를 쏟고 츄르를 얹어 내놓고 한시간 쯤 기다렸을까… 연이만 홀로 나타나 츄르만 할짝대고 먹더니 저만치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낚싯대로 같이 놀기를 시도해보았으나 움직임이 시원찮다. 귀찮고 졸리고 그런 느낌..  그래 그럼 어여 가서 쉬거라, 하고 물러났는데 진이는 어디 갔는지, 잠시 모험을 떠난 것인지, 무슨 일이라도 당한 것인지 다시 걱정모드. ㅠ.ㅠ


2021. 9. 25. 사료먹던 연이가 찰칵 소리에 돌아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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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꽃

아픈 손가락 2020. 10. 2. 18:58

간만에 리시안서스 한다발을 사다가 꽂아두고 하도 예뻐서 연일 감탄하고 있다. 주로 식탁에 놓아두고 밥 한숟갈 먹고 씹으며 쳐다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데, 희한하게도 엄만 나와 계속 시각이 다르다.

원래도 엄만 꽃을 좋아하면서도 '절화'를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으신다. 생명을 똑 잘라 죽여서 꽃아놓기 때문이란다. 불자의 마음이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예쁜 꽃 좀 곁에 두고 보려고 사온 나로선 좀 심술이 난다.

이번에도 신이 나서 꽃다발을 꽂아두고 이쁘지, 이쁘지? 묻는 내게 엄만 대뜸 "꽃이 꼭 조화같다"고 대꾸했다. +_+ 꽃도 잎도 모두 조화처럼 생겨서 신기하다고. 시니컬하시기는...

리시안서스가 좀 하늘하늘한 꽃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리어카 좌판에서 산 거라 덜 싱싱했는지 사온지 사흘째부터 한두 송이씩 좀 말라가며 시들기 시작했다. 난 가끔 시든 꽃도 거꾸로 말려 오래 두고보는 인간인지라 별 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엄만 연일 가위를 들고 시든 꽃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내 눈엔 아직 멀쩡해보이는 꽃도 꽃잎 가장자리가 말랐다며 어서 잘라버려야겠다고. 아니 왜?!

오늘로 닷새째. 아침 저녁으로 두번씩이나 시든꽃을 솎아낸 꽃은 처음 저날보다 거의 3분의 1은 줄어들었는데;; 오늘 저녁 식탁에서도 엄만 밥을 먹는 내내 매의 눈으로 또 잘라버릴 꽃을 찾는 눈치였다. 아 놔 진짜! 아직 다 멀쩡하구만. 엄마, 그냥 제일 싱싱하고 예쁜 꽃만 보면 안돼? 왜 예쁜 꽃 놔두고 계속 시든 꽃만 쳐다봐요? 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누가 우울증환자 아니랄까봐! 설마 완벽주의 성향 때문인 거야? 

사과를 한 상자 두고 먹을 때 썪은 사과부터 먹는 사람과 제일 잘 익고 맛있는 사과부터 먹는 사람이 있다나 뭐라나, 그게 삶의 태도일 수도 있다는 우화를 읽은 기억이 난다. 썪은 사과는 물론 미리 다 골라내 멀쩡한 사과를 보호해야겠지만... 좋은 거, 맛있는 걸 늘 제일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끼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러다가 다 썪히기 십상이고.

디저트로 과일을 먹을 때도 엄만 젤 덜 단 과일부터 먹는다. 예를 들면 방울토마토, 사과, 참외 등의 순서. 먼저 단 과일을 먹으면 다음 과일은 맛이 없어진다나. 의도적으로 노력을 했던건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나는 제일 먼저 좋아하는 과일을 먹는다. 새콤달콤한 과일을 좋아하므로 사과, 참외, 토마토의 순이기 쉽다. 달지 않은 토마토를 맨 마지막에 먹어야 입가심도 될 것 같고. 

우울증 환자의 특징인지, 아니면 없이 산 기억이 있고 아끼는 것이 생활화된 구세대 여성의 특징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반찬을 앞두고도 엄마의 태도는 짜증스러울 때가 많다. 내가 기껏 솜씨를 부려 새로 만든 메인 요리를 앞에 두고도 엄마의 첫번째 젓가락질은 '없애버려야 할' 오래된 반찬을 향하기 일쑤다. "저거부터 다 먹어치우자"라는 논리인데, 어차피 그게 마지막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냥 새 반찬은 좀 아껴야겠다는 심리일까? 인지능력이 약간 떨어지면서, 시야가 좁아지는지 반찬도 눈앞에 있는 것만 공략하는 느낌이라 요샌 아예 식판처럼 큰 접시에 반찬 할당량을 정해 밥과 함께 담아드린다. 그러면 또 군말없이 새 반찬부터 드시는 걸 볼 수 있다. 

울 엄만 정말 연구대상이다. 나로선 아무리 탐구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  명절을 앞두고 엄마 친구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왔을 때, 엄마의 대꾸방식도 참 여전하다. 엄마 친구분들은 병든 엄마를 오래전부터 챙기는 나를 대견해하고 칭찬하시는데, 엄만 맞장구를 치다가도 곧바로 딸 흉을 본다. 소곤소곤 뒷담화가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니 듣건말건 상관없다는 태도다.  "맞아, 내가 딸 때문에 사는 거지. 쟤 없었음 벌써 죽었겠지. 근데 쟤가 성질이 드러워서 나랑 맨날 싸워. 잔소리가 말도 못해..."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매번 대꾸가 똑같다. 저렇게 자기 의견에 솔직한데 왜 우울증이지 싶을 때도 있다. 저것도 방어기제인가?

암튼 난 하필 시든 꽃만 유심히 바라보고 매번 썩은 과일부터 골라 먹는 그 비관적 태도에 물들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중이다. 내 눈에 꽃은 대체로 시들어도 예쁜데.  드라이플라워도 있구만요. 남은 것중에 제일 맛있는 사과를 골라 먹으면 매번 끝까지 제일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다는 낙관론, 눈 가리기 아웅이라도 좀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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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름

놀잇감 2020. 4. 28. 14:58

그동안 절대 없었을 리는 없고, 어떻게든 꽁꽁 감추어져 있던 추악현 현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것이겠지만 연일 뉴스를 보는 게 겁나고 끔찍할 만큼 믿어지지 않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N번방 수사는 아직도 지지부진, 26만명의 명단공개는 멀기만 하고, 소아성애자 성범죄자가 어엿하게 능력있는 남교사로 활약하고, 판사들은 아직도 디지털성착취범죄자들의 형량이 3년이면 적당하다고 한단다. 미칠노릇이다. 얼마나 더 독하게 마음먹고 쌈박질을 해대야하는 건지...

암튼 그래서 머리도 식힐겸 창밖으로 연두색과 초록색의 중간쯤으로 변한 이파리들을 보다가 대체 저 오묘한 색깔은 무어라 불러야하나 궁금증이 일었고... 첫 직장시절 회사에서도 귀한 자료였으며 지금까지도 쓸데없이 갖고 싶어하는 팬톤 컬러북 색상표를 검색해보았다. 팬톤에서 붙인 컬러마다 다 따로 색깔 이름이 있긴 한데 일단 후르륵 찾아본 이미지엔 컬러 이름이 안 들어있네..  

 

순서조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초록색 범주에 붙인 이름과 이미지는 찾았다. 채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팬톤컬러와 연결되지 않을까? 한가하진 않지만, 마음을 정화하는 의미로 하나하나 우리말로 옮겨봐야겠다. ^^; 얼핏 보니 허브와 채소 이름이 많아서 아마도 대부분은 그냥 외래어 표기가 될 듯. ㅠ.ㅠ 

Lime 라임   Leaf 잎사귀   Sage 세이지   Pine 소나무   Kelly 진초록

Shamrock 토끼풀   Olive 올리브  True Green 참초록   Turtle 초록거북   Froggy 초록개구리

Asparagus 아스파라거스  Green Apple 연두(초록?)사과  Darkest Green 검초록   Bright Green 밝은초록  Barista 바리스타

Grass 풀빛   Cucumber 오이   Mint 민트    Lilly Pad 수련잎  Forest 숲

Holly 호랑가시나무  Parrot 앵무새   Celery 셀러리  Kiwi 키위   Army 군복(군초록?)

나중에 초록빛깔 묘사가 나오는 책을 번역할 때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뿌듯하지만 그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좋겠다. 암튼 잠깐 눈이 시원해지면서 행복했다. 나의 최애 색깔은 늘 파란색 계통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요즘은 초록 연두 빛깔들이 점덤 더 좋아진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못하겠다. 옷색깔이라면야 푸른계통, 검정색이 제일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냥 색깔만으로는 예쁜 색들이 좀 많은가. 형광분홍색 계통을 대체로 극히 싫어하긴 하지만 또 꽃으로 피어났을 땐 군말없이 아름답다 여기게 되므로, 색깔에 관한 한 선호하는 색깔과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 자연에서 아름다운 색깔은 모두 다르고 그래서 몽땅 다 예쁘다는 게 정답. 점점 더 진해지는 초록빛깔에 지치기 전에 영롱한 연두, 잎사귀, 풀빛, 연잎, 참초록, 초록개구리 색깔들을 하나하나 눈에 더 많이 담고 싶다. 열심히 창밖 잎사귀와 색상표를 비교한 결과... 오늘 햇빛 속의 벛나무 잎은 pms370초록개구리 빛깔에 가장 유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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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다 옷타령

투덜일기 2020. 4. 23. 11:08

곤도 마리에의 책은 한권도 안 읽어봤지만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그 사람의 정리 원칙은 정말 많이 들어보았고 공감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단촐하게 정리하고 살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싶어도, 그건 넓은 공간과 수납장이 확보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일뿐, 수십년된 집에서 수십년된 물건에 둘러싸여 비어 있는 벽이 하나도 없는 옛날 집에 붙박이로 살면서 웬 미니멀리즘! 거기다 우리 모녀는 물건을 잘 버리지도 못한다.

암튼 여러 물건 가운데 가장 골칫거리는 역시나 옷이다. 계절별로 10벌인가 5벌만 남겨두고 다 버린 뒤 돌려입고 살라는 충고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것 같은 기묘한 현실 앞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요즘 밀라논나 장명숙님의 유튜브를 구독중인데, 30년씩된 옷도 아직 고쳐입고 갖고 있는 걸 보면서 음.. 과연 나도 체중관리만 계속 잘 하면 그리고 욕심만 버리면 가능도 하겠단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내 옷장에 든 옷 중에서 2, 30년씩 계속 입을 만큼 기본기가 확실하고 가치있는 옷이 얼마나 되려는지 의문도 덩달아 따라온다.

물론 내 옷장에도 20년된 재킷이나 셔츠, 정장이 있다. 우선 두 동생들 결혼할 때 장만한 정장이 두벌. 둘 다 기본형이고 원단도 고급이라 지금 입어도 훌륭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딱 떨어지는 정장에 몸을 맞춰 딱딱하게 유지하는 걸 못견디는 것이 문제다. 그 외에도 결혼식 교복이라 부르는 정장류 옷들이 거의 다 15년 이상 20년은 된 듯하다. 옛날처럼 결혼식 갈 일이 자주 없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ㅋ (그러나 머잖아 친구들의 자녀 결혼식이 다가오겠지;;)

째뜬 철마다 옷타령을 하는 건 전 국민, 아니 전지구인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싶다. 기억력 탓인가 작년 이맘때 대체 뭘 입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함정. 게다가 들쭉날쑥 이상해진 날씨도 한몫한다. 트렌치코트 같은 건 도무지 입을 타이밍을 모르겠다. 요즘처럼 갑자가 다시 추워져서 패딩입은 사람들도 보이는 4월말. 현명한 옷입기는 뭘까? 든든하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거의 50일만에 미용실에 외출했다 추워서 덜덜 떨며 집에 왔더니 나아가던 감기가 다시 도졌다. 

울 엄마의 경우는 '철마다 옷타령'과 '죽을때까지 더는 옷을 사지 않겠다' 입장을 수시로 반복하신다. 외출을 앞 두고 무얼 입고 나가나, 입을 옷이 왜 없지? 작년엔 뭘 입었지?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아서, 옛날 옷들은 주로 좀 무거운 편이니 가벼운 옷으로 하나 장만하자고 하면, 금세 태도가 돌변한다. 나 옷 많다, 80이면 살만큼 살았다, 죽을 때까지 있는 옷만 다 입어도 못 입는다... 실제로 정신건강이 나빠지는 기간이 길어지면 한 계절을 통째로 날리기 때문에 못 입고 넘어가는 옷들이 꽤 많은데, 요번처럼 몇달째 집안에 갇혀 사는 전염병 시국엔 오죽할까. 

올 아카데미시상식의 클라이막스 작품상 시상 장면은 기생충 호명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겠지만, 그보다 먼저 내 눈엔 제인 폰다의 등장으로 더욱 인상깊었다.  당당한 걸음걸이로 어깨에 걸치고 나온 빨간색 코트 때문이었다. 드레스에 웬 코트? 

게다가 제인 폰다는 무려 1937년생. 울 엄마보다도 3살이나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환경운동가이며 여러 사회문제에 열렬히 목소리를 드러내는 투사다. 그리고 이 빨간 코트는 제인 폰다가 그레타 툰베리를 지지하며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더는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옷을 사지 않겠다는 의미로 마지막으로 장만한, 아마도 저항의 의미를 담은  빨간색 코트였던 것.

작년에 제인 폰다는 뉴욕에서 매주 금요일 환경시위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체포되는 행동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 장면이고 이 때 매주 입었던 빨간색 코트가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들고 나왔던 옷이다. 영화제의 한 순간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적인 문제를 열심히 전하는 놀라운 태도에 다시 한 번 존경심이 든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지만, 싼 옷 사서 금세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뿐만 아니라 청바지도 환경오염의 주역이라고 한다. 화학약품으로 물을 들였다 뺐다 하면서 엄청난 물을 사용한다는 듯.  에효.

저날 아카데미 시상식에 제인폰다가 입고 나왔던 드레스 역시 당연히 재활용이었다고 한다. 수십년전 칸 영화제 때 입었던 드레스라는데, 협찬으로 명품 드레스 빌려 입는 우리나라 대다수 연예인들과 상황이 좀 다른 걸까? 암튼 여든살이 넘어서도 수십년전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 놀라운 몸관리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영화제 직후였나 기생충 작품상 이야기와 더불어 내가 제인 폰다의 빨간 코트 이야기를 꺼냈더니 후배들의 중론이, 제인 폰다는 좋은 옷들이 워낙 많으니 안 사고 입어도 되겠지만 우린 안 돼!  ㅎㅎㅎ

암튼 그래도 더는 살림을 늘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운지 몇 년. 새 물건을 들이려면 동종의 옛 물품을 버려 가지수라도 맞추자고 노력하며 살았고 가능하면 옷은 사지 않고 버텨볼 작정을 했었다. 작년엔 터져나가려는 옷장과 서랍에서 진짜로 최근 3년간 안 입은 옷들은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정리해 아름다운 가게에 대거 기증했고, 약간 여유로워진 옷장을 보며 꽤 흐뭇했다. 한꺼번에 열벌은 사도 되겠어,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ㅎㅎ 올 들어선 곧바로 전염병과 함께 소비 심리 위축! 물론 프리랜서의 불안한 경제사정도 감안해야 할 일이다. 

째뜬 제인폰다보다 세살 어린 여든살의 엄마는 오늘 코로나19 창궐 이후 중지 되었던 초하루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거의 4개월만에 처음으로 홀로 버스틀 타고 서오릉 앞에 있는 절까지 외출을 감행하시었다. 그리고 추워진 날씨 '덕분에'  다행이라며 2월에 사드린 새 모직 코트에 스카프를 칭칭 매고 나가셨다. 음. 나는 마지막으로 산 옷이 작년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질 않지만 암튼 제인 폰다 따라하기는 우리 모녀 둘 다 쉽진 않을 것 같다. 나이들수록 기분도 옷차림도 추레하면 안되잖아...가 우리에겐 아주 좋은 핑계다. 어쨌거나 저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존경하며 계속 노력은 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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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벚꽃일기

투덜일기 2020. 4. 2. 13:49

서울에도 다른해보다 벚꽃이 훨씬 일찍 피어 만개했다는 뉴스를 한참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서북권인 우리집은 확실히 좀 늦었다. 그래도 작년 포스팅을 찾아보니 일주일에서 열흘은 빨리 핀 게 맞다. 작년엔 4월 8일에 기록을 남겼음.

바로 아래 사진은 팝콘 터지듯이 꽃들이 팍팍 피어나기 시작하던 월요일 3월 30일의 모습이다. 계속 날씨도 화창하고 하늘도 파랗고 사진으로만 보면 더할나위 없이 꽃놀이 다니기 딱 좋은 계절인데... 역병시국이기도 하고 마감중이기도 하고, 마음은 바빠도 잠깐씩 베란다 문 열고 나가서 나가서 구경했다. 

 

그러고는 이틀 뒤인 어제. 만우절날의 벚꽃. 집이 동향이라 벌써 해 방향이 넘어가 첫날 점심 먹고 찍은 사진이 우중충했던 게 아쉬워 이날은 오전에 좀 부지런을 떨었고, 끄트머리에 봉우리가 좀 남았어도 젤 예쁘게 찍힌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가지 맨끝 봉오리까지 다 피었으나... 벌써 맨 처음 핀 꽃들은 다 떨어져 휘날리기 시작했다. 마당 한 가득 하얀 꽃들이 깔려있다.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정성을 다하면 더 예쁘게 찍을 수도 있겠으나 ㅎㅎㅎ 이미 어제 최고의 작품을 건졌다고 생각하니 막 난사하게 됨. 이렇게 잔인한달 4월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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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까지 전시중이었던 근대서화전과 함께 오백나한전을 보러 중앙박물관에 가면 좋겠다고 5월 내내 별렀으나 결국 근대서화전은 놓쳤고, ㅠ.ㅠ 13일 끝으로 알고 있던 오백나한전이라도 꼭 봐야겠다 싶어 지난 월요일에 뛰쳐나갔다. 흐렸던 하늘이 점점 개면서 더욱 선명하고 초록초록하게 보이는 나무 색깔부터 감동.

매번 이촌 지하철역에서 나와 진입하거나 주차장에서 들어가 늘 건물을 보던 시선도 고정되어 있었는데 우연히 전시장에서 만난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가는 바람에 지상 정문쪽에서 걸어들어가며 바라보이는 중앙박물관의 모습에 또 한번 반했다. 트인 공간으로 보이는 남산.. 좋다. ​

​배낭은 앞으로 매야하고, 먹물 조심해달라는 구구절절 주의사항을 듣고 전시장에 들어간 순간 흡! 전시 기획을 누가했는지 모르지만 박수쳐주고 싶더라. 대부분 유리상자 안에 가둬놓지 않아서 더욱 기뻤고.

​브로셔에 든 스타 나한상부터 하나하나 정성껏 카메라에 담으며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 같았다. 어휴... 어떻게 이렇게 하나하나 느낌이 다 다를까.

아래는 김승영 작가의 설치미술 주변 유리 안에 들어 있던 나한상들이다. 표정의 느낌 별로 모아놓은 듯.

전시 보러 가서 늘 하던 놀이대로 나한상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뭘 가질까 여러번 둘러보며 고민했는데 도무지 하나만으론 딱히 마음을 정할 수 없었던 반면, 지그시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흘릴 뻔한 나한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얼굴이었다.

절에서 여자 신도들에게 형식적으로 부르는 '보살님'이란 호칭에 정말로 어울리게 평생 사찰과 밀접하게 살아온 외할머니가 떠오르면서 쟁쟁한 할머니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덩달아 자비심 보살님인 울 엄마 영자씨도 생각나고. ㅠ.ㅠ

엄마는 젊었을 때 외할머니랑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었는데 늙어가면서 점점 할머니랑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모나 외삼촌들이나 이웃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나도 엄마랑 나가면 하도 안 닮아서 며느리신가보다고 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나이 더 들면 닮은꼴이 될까? 째뜬 우스운 건 외할머니 키가 170, 울 엄만 160... 그리고 난.. ㅠ.ㅠ

딸이 자기 엄마보다 키 작기가 드물다는데 울 엄마도 나도 자기 엄마보다 키 작은 딸이란 거 하나는 확실한 공통점이다.



전시장을 두바퀴쯤 돌고 나서 구석 의자에 한참 앉아 있다가 다시 인상적인 몇몇 나한상을 다시 눈과 마음에 새기고 돌아나서려니 이번엔 얼굴이 다 닳아 거의 없어진 나한상이 눈에 콕 들어왔다. 

파피가 먼저 전시보러 갔을 때 사진 작품의 질이 ㅎㄷㄷ하다며 엄청 탐났으나 품절이라 못구했다는 대도록은 아예 구경도 할 수가 없었고, 아쉬우나마 저렴한 엽서 크기의 소도록을 집어들고 돌아왔다. 


이번주 일요일 16일까지 연장전시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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