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

투덜일기 2009. 7. 31. 18:01

월급쟁이의 가장 큰 장점은 독촉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날짜가 되면 월급이 입금된다는 점일 것이다. 동료나 상사가 마음에 안들거나 일이 따분해서 사표를 쓸까말까 매번 고민하다가도 월급날이 되면 또 한달 버텨낼 힘이 불끈 생겨났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프리랜서의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불규칙한 수입.
프리랜서라도 착실한 사람이라면 꾸준히 저축을 해서 언제나 여유돈을 마련해두고 살아야 정상이며, 불규칙한 자금의 흐름 속에서도 어느정도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작업량과 원고료 수입을 배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월급쟁이도 가끔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 월급날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프리랜서는 오죽할까. 아무리 장기적으로 수입을 감안해 작업량을 계획하고 여유롭게 수입과 지출을 예상해도, 의외의 변수는 꼭 있다. 경제불황과 열악한 출판시장을 이유로 결제를 미루는 것이 가장 크고 고질적인 난관.
여러번 원고료 체불로 마음고생을 한 뒤로는 지명도가 있건 없건, 회사 재정상태도 알 수 없고 각별히 나를 챙겨줄 직원도 있을 리 없는 출판사와 처음 연을 트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안면 없는 출판사와도 몇번 통화를 하고 정말로 작업 스케줄 때문에 의뢰를 거절하다가도 책이 괜찮다거나 공교롭게 작업스케줄이 비었을 때 딱 걸리면 대면하지도 않고 이미 안면을 튼 사이 같아져서, 결국엔 슬그머니 일을 맡게 된다. 물론 그렇게 시작해서 수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출판사들도 많으니, 나의 우유부단함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다행히도 요새 꾸준히 작업중인 출판사들은 내가 죽도록 하기 싫어하는 결제 독촉전화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느라 원고를 늦게 넘겨서 그렇지, 제때 원고를 넘기고 나면 알아서 송금을 해주니까.

헌데 겪어보니 출판사의 규모나 지명도와 결제 습관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소규모라도 착실하고 정직하게 원고료와 인세를 제때 보내주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수없이 일간지 광고와 라디오 광고에 나와 막대한 자금을 들인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규모 있는 출판사이건만 얼마 안되는 원고료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곳도 있다.
내가 2년째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출판사도 그런 축에 속하는 곳. 2년이나 지연되고 있는 건이고 내가 <죽도록> 하기 싫은 독촉전화를 반복한지도 9개월째이건만 아직도 해결이 안됐다!
올들어서는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채근을 하고 있는데도 매번 다음달에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매번 어기는 일이 반복된다. 어우 짜증나! 오늘은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도 팍 오른 김에 전화를 했더니 <정말로> 다음주엔 결제를 해주겠단다. 과연?? 그 출판사 요즘 라디오에서 신간 광고도 하던데, 그럴 돈은 있으면서 왜 밀린 번역료는 해결해주지 않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번역료를 결제 우선순위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돌리는 악덕 출판사라고밖엔 여겨지지 않는다. 

그곳 말고도 이번주에 계약금 송금을 약속한 출판사가 있었는데 통장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안들어왔다. 예전에 출간된 책의 저작권이 만료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저렴한> 번역료로 내 원고를 넘겨받아 출간하기로 한 건이라 나로서는 어찌보면 거의 불노소득에 가까워 처음 거래하는 출판사측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계약을 하고도 순진하게 기뻐했는데 문득 너무 계약을 서둘렀나 후회스럽다. 출간 급하다고 해서 원고부터 후딱 보내주었는데 혹시 약속 잘 안 지키는 출판사라 계속 속깨나 썪으면 어쩌지.. ㅠ.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거늘...
출판계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원고 재출간임을 감안할 때  퍽 양심 있는 계약조건이라고 해서 덜컥 수락을 했지만, 매절 계약서에 도장 쾅 찍어 보내고 난 다음날부터 인세계약으로 할 걸 잘못했나 쓸데없이 가슴을 치기도 했던 터라 더 짜증이 난다. 이미 팔릴 만큼 팔린 책이긴 해도, 작년에 나온 문제의 <그> 베스트셀러처럼 영화 개봉으로 새삼 대중의 주목을 받아 엄청 팔리게되면 배 아파서 어쩐담. ;-p
하기야 계약금 약속도 잘 안지키는 출판사라면 인세 지불도 속썪이지 말란 보장도 없으렸다. 결국 번역가는 도를 닦듯 돈으로부터 초연해져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상대적 약자한테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정말 싫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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