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해당되는 글 39건

  1. 2016.12.05 나도 근황 8
  2. 2016.10.06 공주 나들이 2
  3. 2015.11.23 북해도(11/9일-12일) 7
  4. 2014.11.13 가을 풍경 6
  5. 2014.09.04 9월 날씨 5
  6. 2013.11.04 가을 8
  7. 2013.09.12 포쇄 12
  8. 2013.09.04 환절기 11
  9. 2012.11.19 덕수궁 프로젝트 2
  10. 2012.11.16 안동 하회마을 8

나도 근황

삶꾸러미 2016. 12. 5. 22:56


본격 겨울을 앞둔 11월은 1년중에 내가 가장 넘기기 힘들어하는 달이어서, 괜한 우울감과 무기력에 시달리는데 올핸 그럴 겨를이 아예 없었다. 뭔가 대단히 분주한 일들이 많았고, 토요일이면 광화문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나의 11월 우울증을 날려버린 공은 파렴치한 닭그네에게도 일부 지분이 있다. 수십년만에 국민대통합을 이룬 공이 그치에게 있듯이 말이다. 하여간 시국이 시국인지라 후다닥 일감 처리할 때 아니면 진득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끼적일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홧병으로 가슴이 콩닥거리면 머리가 텅 비거나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블로그형 인간성은 버릴 수가 없어서 짧은 여행기며 그날그날 단상들을 적어놓지 않고 계속 쌓이니 숙제 안한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연말 베스트 집계 하려면 기록해둬야하는데! 뭐 이런 심정? ㅎㅎ 해서 간단하게 사진위주로 뭐 하고 지냈나 근황 정리 시작.

2014년 가을에 법주사(부모님의 신혼여행지였다)에 함께 다녀온 이후로, 엄마는 가을만 되면 모녀 여행을 바라신다. 작년엔 그래서 부산엘 다녀왔는데, 올해는 전주와 담양을 여행지로 정했다. 엄마가 전주 학인당에 묵어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왕비마마의 로망은 실현했으되, 결과적으로 한옥 민박은 노년의 엄마에게 맞지 않는 걸로 결론이 났다. ㅠ.ㅠ 댓돌 위로 툇마루로, 높은 문지방 넘어 화장실로 오르락내리락해야하는 구조가 관절 부실한 노인에겐 부적절. 게다가 1년만에 왕비마마의 기력은 너무도 약해져, 좀체 걷질 못하셨다. 진짜 나이든 할머니구나 하는 걸 실감한 여행이어서 덩달아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넌 안 늙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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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나들이

놀잇감 2016. 10. 6. 17:51

공주에 아주 예쁜 밥집과 찻집이 있다는 얘길 듣고 친구 탄신파티하러 다녀왔다. 사람들은 대체 그 외진 곳에 있는 밥집, 찻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나니는지!

아침엔 약간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더니만 충청도로 넘어가면서는 해가 비쳤다. 남쪽엔 태풍이 몰아치던 날이었는데;; 참 새삼 넓은 나라임을 실감.

저 멀리 계룡산을 배경으로 들판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직 단풍 들기 이전인데도 눈으로 콧바람으로 가을이구나 느껴졌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약선요리 밥집 <신야춘추>의 1층은 차 마시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통유리창으로 멋진 풍경이 내다보이는 방에 통나무 테이블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있다

우리가 갔을 땐 이미 다른 팀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어서 사진찍기 민망한 상황이었다. 해서 친구가 예전에 찍어온 사진 퍼왔음. 아주 튼튼해보이는 나무 탁자와 자수, 퀼트 소품들도 인상적이지만, 통창으로 보이는 배경이 더 근사하다. 새빨갛게 단풍이라도 들면 정말 더 장관이라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먹은 연잎밥 정식(아마도;;)의 모습이다. +_+ 반찬이 너무 과하지도 않고 딱 먹을 것들로만 소박하면서도 알차게 차려진 밥상이 아닌지. 텃밭에서 직접 길렀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는데 샐러드에 든 채소도 하나같이 고소하고 달큰했다. 연잎을 형상화한 오이 냉국(?)은 특별히 클로즈업... +_+ 오이는 그냥 보기 좋으라고 띄운 것이고 진짜는 효소를 넣어 담근 냉국 국물이란다. 역시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은 법?

​2층 밥상에 앉아서도 커피를 청해 마실 수 있지만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다시 티타임을 누렸다. 커피메이커로 드립한 커피를 앙증맞은 수제 코스터 깔고 각기 다른 찻잔에 따라 마시며 또 한번 행복했다. ㅎㅎㅎ

​건물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마당 잔디가 다 패이는 게 속상해서 쪼르륵 물확을 놓아두었단다. 아이고 예쁘다.. 집 주변엔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마구마구 피어나 있고...  '보리'라는 이름의 골든리트리버 강아지도 한 마리 뒤뜰에 살고 있었다.


곧이어 밥집 인근의 꽃마당 예쁜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 엄마 차화연씨가 살던 집으로 나온 찻집이라나 뭐라나. 계절마다 마당에 흐드러지게 예쁜 꽃을 가꾸는 걸로 유명한 <담꽃>. 좋은 차를 파는지 찻값은 비싸다 싶었으나 평일에도 손님이 드글드글! ㅋ

제일 바깥쪽 방에 앉아서 마당을 내다보면 이런 모습이다..  군데군데 놓인 물확엔 어김없이 수생식물이나 꽃을 띄워놓는 정성을 보이고. 


현지 주민들보다는 어쩐지 ​'돈많은'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공들여 지은 별장 같은 집들이 곳곳에 서 있는 공주 하신리 마을을 한가롭게 걸어다니며 집구경을 하다가 또 다시 마지막 코스~ 아산 현충사 앞 은행나무길로 향했다. 아직 노랗게 물들기 전이지만 옛날 박통 때 현충사 다니는 권력자를 위해 심고 조성했다는 그 길을 이제는 차가 못다니게 공원으로 가꿔놓았더라. 그러나 떨어져 뒹구는 은행 열매의 향기롭지 못한 냄새 어쩔...!

한강 둔치의 벤치마킹인지 어쩐지 요샌 어느 도시를 가든 하천 변에 산책로와 자전거길, 공원을 예쁘게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좋다는 얘기. 이름 까먹은 하천 옆 한쪽엔 국화밭이, 맞은 편엔 코스모스 밭이 이제 막 피어나 사람들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꽃밭은 한철 장사(?)겠거니, 인공적이라 흉하다 그러면서 내려갔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옹기종기 예뻐! ㅋㅋ 온종일 친구 덕분에 눈호강 입호강 한 날이었다. 여유롭게 맨날 놀러다니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더욱 깊어졌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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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11/9일-12일)

여행담 2015. 11. 23. 15:55

북해도에 여행을 간다면 당연히 눈 엄청 쌓인 겨울에 가게 되리라, 눈밭에서 킬킬대며 오겡끼데스까.. 한판 외쳐주리라 상상했지만.. 인생은 역시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11월로 친구의 휴가가 잡히고선 제일 먼저 제주 여행을 계획했고, 그 다음은 북해도 3박4일 패키지를 눈빠지게 뒤졌다. 친구 일행의 국내일주 패키지 여행이 월요일에 부산에서 끝나는 일정이라 무조건 부산 출발 상품을 찾아야했는데... 당연히 인천이나 김포 출발 상품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째뜬 모객 안돼서 취소될까봐 조마조마 애태우다 결국 부산에서 삿포로로 출발! 


2시간쯤 날아가 내린 삿포로 공항에서 처음 마주한 유리창 밖 북해도 풍경

​2시 비행기로 부산을 떠났는데 2시간 만에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도착해보니 벌써 어둑어둑... 아 놔;; 11월의 북해도는 5시면 해가 진단다. 게다가 날씨도 꾸물꾸물...​ 

몇미터나 쌓인 눈구경은커녕, 처음 이틀은 우산 펼쳐들고 차가운 빗속을 쏘다녀야했다. 뿌연 구름과 빗속에 내려다본 삿포로시내 전경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고, 곧장 오타루로 이동.

놀이공원처럼 꾸며놓은 무슨 과자공장이다. 우린 대체로 시큰둥 본체만체했으나.. 중국관광객들은 열광하며 쇼핑열을 올렸다


오타루 운하 주변에 시멘트벽돌로 지은 이런 건물들이 다 공방이고 기념품 가게다. 100년 넘은 건물이라 나름 문화​재라는듯.. 유리공예가 유명하다는데 수제품이다보니 가격이 당연히 사악하고 ^^; 내눈엔 별로 이쁜 줄도 모르겠더라.차라리 건물 뒤쪽의 좁은 골목이 더 흥미로웠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문연데가 별로 없었다. 오전이라 이제 겨우 점심장사 준비중... 운하를 따라서 바다까지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후쿠오카 갔을 때도 그랬지만 '운하'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된다. 옛날 배가 워낙 작았으려니... ㅋㅋ 

그러고는 오타루 오르골 박물관 차례. 

오른쪽 사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드넓은 실내가 나온다. 건물 앞에 있는 시계는 매시간마다(매 30분마다던가) 뿌뿌 수증기를 뿜으며 울어댄다. 이 주변 골목이 죄다 기념품가게 거리. 쇼핑하라고 자유시간을 꽤 많이 줬는데(1시간     반이었던가), 우린 얼른 오르골 한개씩 고르고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죽때리다 ^^; 시간 맞춰 나왔다. 

비가 와서 더더욱 해가 일찍 지기도 했지만, 가이드는 지가 빨랑 쉬고 싶은 건지 빡시게 일정을 소화하곤 매일같이 4시쯤이면 얼른얼른 온천호텔에 들여보냈다. 식사하기 전에 온천 한판 하라나... 어딜 가나 설명은 제대로 안하고 (차라리 가만히 입이나 다물고 계시든지!) 계속 본인 개인사만 주절저줄 풀어놓는 가이드가 엄청 미워서, 돌아오면 여행사 홈페이지에 바가지로 욕을 써주마 하며 휴대폰 메모장에 빼곡하게 적어왔었는데... 다 부질없다 싶어서 관뒀다. ^^; 


밤새 내린 비는 다행히 사흘째아침부터 쨍하니 갰고, 도야호수를 보러 산을 넘어가다 드디어 설경을 만났다.​ 멀리 만년설 쌓인 산구경만 해도 좋겠다 생각했다가 눈구경을 하다니, 그나마 운이 좋았다.  


도야호수에서 탄 '성 모양'의 유람선은.. 으음.. 안습이라고할 밖에... 

다만 풍경사진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와 찍힌 갈매기 모습이 좀 신기했다. ​물론.. 언니들이 일본 새우깡으로 한참 배를 불린 다음이긴 하지만..

이날의 마지막 ​일정은 시라오이에 있는 아이누족 민속촌과 유황냄새 풀풀나는 화산 아래 조잔케이 지옥(?)계곡. 후대에 만들어놓은 민속촌은 세계 어딜 가나 그 박제된 느낌이 좀 유치하고 서글프고 짠한 구석이 있다. 그나마 요즘 용인 민속촌은 기발한 알바생 연기자들 때문에 인기가 높아졌다는데... 전통복장으로 옛모습 재현하며 돈벌이를 한다는 건 유의미한 일이라도 좀 처연하다(고 나는 생각). 

곰을 신으로 숭상한다는데 마을 입구에 곰을 가둬놓은 우리가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든 걸지도...

마지막날 다시 삿포로 시내구경. 

옛날 도청건물이라나 뭐라나... 빨간 벽돌건물 주변 공원에서 다시 가을을 만끽했다.

마침.. 무슨 일인지 기모노 입고 단체로 촬영나오신 아주머니(?)들을 몰래몰래 구경하다 도촬에 성공.. (죄송합니다;;)  여기가 일본이구나 하는 걸 가장 실감했던 순간이랄까.. ㅋㅋ

아마도 오오도리 공원이라고 했던가.. 은행나무가 참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북해도엘 간건지.. 그냥 일본의 어느 온천 유람을 다닌건지 별로 다른 느낌이 없었다. ㅠ.ㅠ 그나마 눈구경을 한 걸로 위안을 삼으려해도... 속상한 건 마찬가지. 째뜬 원래 LA에서도 사우나와 찜질방을 즐긴다는 친구는 지난번에 이어 요번 일본여행에서 날마다 즐긴 온천이 제일 좋았다는 것 같고... 사우나도 싫고 온천은 난생처음 경험한다는 세 언니들도 온천의 맛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했다. 첫날 빼고 두밤은 계속 호텔도 다다미방으로 배정받아서 저녁먹으러 다녀온 사이 이불 깔아주는 우렁각시 서비스도 좋아들 했다.  

 

마지막으로 재미난 이야기 하나. ^^; 북해도 여행일행은 6명이었는데, 친구네 세자매와 나, 그리고 큰언니의 친구가 딸을 동반했다(올케가 빠진 대신에;;). 부산 출발이다보니 대부분 그 지역주민일 수밖에 없고 다들 구수한 사투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인원수로 보나 구성원으로 보나 우리만 좀 튀는 듯했다. 버스 1대 일행이 모두 25명이었는데 (혼자 온 젊은 청년도 있었음), 다들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엄청 궁금해하셨던 모양이다. 

이전에도 몇몇분이 슬쩍 물어서 대충 이야기를 했다는데... (3자매는 미국 LA에서 왔구요, 첫째랑 셋째가 친구들 한명씩 데려온 거예요. 어린 아가씨는 친구 딸이구요...)

문제는 과잉친절인지 쓸데없는 오지랖인지 가이드가 매일밤마다 호텔 방배정표를 복사해서 열쇠와 함께 나눠줬다는 것! 거기엔 여행자들의 이름이 죄다 적혀 있었다!(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는 가이드의 그 행위도 진짜 마음에 안들었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건 도대체 누구누구가 자매인가 하는 것 때문이이었다. 나의 친구와 둘째언니는 종종 쌍둥이로 오인될 정도로 닮았으니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문제는 '성' 때문이었다.

6명 여자들이 성이 다 다른 것! ^^ 아니 자매라면서 왜?? 이OO, 권OO, 정OO, 박OOO, 조OO, ㅂOO. 성이 같은 여자들이 아무도 없어! 아니 그렇다면 죄다 아버지가 다른 동복자매??? ㅋㅋㅋ 다들 그런 생각들을 했는지...

드디어 마지막날 비행기를 타기 직전 들른 면세점 쇼핑 때, 살 것 없어 빈둥거리는 나의 친구에게 일행중 가장 연장자이신 70대 할아버지가 물어봤단다. 자매라면서... 대체 누가 언니동생인가? 노상 혼자 다니는 사람(모험심파 작은 언니!)은 왜?  친구는 열심히 설명을 했드렸다는데, 그래도 미심쩍은 표정으로 듣던 할아버지가 한 마디... 아 근데 왜 성이 다 다른가...

크하하하...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세자매가 누군지 나름 설명을 했다는데 (아 진짜 우리나라 사람들 어디서든 신상 파악하는 병좀 고쳤으면..)  도무지 입력이 안됐던 이유가 각기 다른 '성' 때문이었다. 미국 아줌마들은 결혼하면 다 남편 성으로 바꾼다고..  결혼하기 전 성은 '조'씨라고 (큰언니만 유지하고 있음 ㅋㅋ) 설명함으로써 미스터리를 풀어드렸으나, 할아버지는 딱히 납득한 표정이 아니더란다. 

아마 다른 일행들은 끝까지 어머니가 3혼을 해서 각기 성 다른 딸을 셋 낳아 기른 집에서 친구들 데리고 여행온 줄 알았을 듯.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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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풍경

놀잇감 2014. 11. 13. 01:43

10월부터 가을 사진을 휴대폰에 차곡차곡 모았다. 가끔 심심할때 들여다보며 언제 시간 내서 포스팅해야지... 그러면서.
새삼 수능추위로 영하까지 기온이 내려간다는 소식에 아 벌써 겨울인가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니까 이 사진들은 아직은 겨울이 아니고 늦가을이라고 우기며 가는 세월 바짓가랑이 붙들고 매달리는 심정으로 추려낸 것들.
마당의 벚나무도 지난밤 찬비를 견디고 아직 성성히 빨갛게 매달려있단 말이다 ㅠㅠ

10월에 답사로 다녀온 보은 법주사. 가을하늘은 바로 이런 것임을 자랑하던 쨍하고 서늘한 날씨가 사진에 담긴듯.


같은날 선병국 가옥에도 갔었다. 너른 마당과 화려한 구한말 한옥건축이 인상적이었는데 마당에 핀 (아마도) 구절초는 어찌나 싱싱하던지..​

주먹만하게 자라기도 하는 보은 대추는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더군!


아래는 11월 8일 천마산... 중고딩 6년간 수련대회를 1년에 두번씩은 갔었고 아침 식전에 꼭 강제등산을 시킨 뒤 밥을 먹였던 기억이 있어서 우습게 여겼다가 큰코다쳤다. 어린시절 내가 운동화 신고 선착순으로 뛰어 올랐던 봉우리는 천마산 정상이 아니었다. ㅠ.ㅠ 정상근처가 어찌나 가파르고 암벽투성인지 어휴.... 

떡갈나무, 은행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원없이 낙엽도 밟았지만 여러번 엉덩방아도 찧었다. 가을 낙엽쌓인 산길은 눈길만큼 미끄럽다는 교훈...​



마지막 사진은 울동네 자락길 단풍. 다 지기 전에 약속대로 엄니랑 소풍가야하는데 날씨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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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날씨

투덜일기 2014. 9. 4. 00:33


8월말부터 확실히 하늘빛이며 공기의 냄새며 바람의 질이 달라진 건 느끼고 있었다. 일교차가 벌어져 아침저녁으론 선들선들. 포근한 이불을 덮지 않으면 차게 식은 발이 잘 따뜻해지질 않아서 좀체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암튼 그래도 낮엔 꽤나 더워서,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일할 때 민소매 아니면 못버티겠더니, 심지어 오늘은 비온 뒤끝에 종일 춥고 발시리려서 저녁땐 보일러를 돌렸다. 따뜻한 방바닥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ㅠ.ㅠ 


추석이 하도 일러서 요번 추석때도 에어컨 깨나 틀었다 껐다 많은 식구들 취향 맞추느라 번잡하겠구만 싶었더니만 이거 뭐지. 최저기온 17도면 나는 발이 시리다는 걸 오늘 머리에 새겨두기로 했다. 그래도 내일 낮엔 29도까지 올라간다니 또 더워지겠지만, 이렇게 극적으로 변해가는 날씨가 좀 무섭다. 금방 눈 내리고 얼음얼게 생겼어! 흑... 이 여름의 끝을 잡고... 가 아니라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어 매달고 싶은데 어쩌면 이미 가을인지도 모르겠다. 밤마다 들리던 풀벌레 소리가 정녕 귀뚜라미였던 것이냐. 새삼 세월무상.


3년째 쓰고 있는 아이폰이 점점 느려지고 액정 안에 습기가 찾는지 작은 얼룩이 보이면서 휴대폰을 바꾸긴 바꿔야겠는데 뭘로 바꾸나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이튠즈에 푹 연결만 하면 더 골치아플 일 없게 그냥 아이폰6이 나오면 그거 나 살까 하는 생각이 가장 유력했고, 안드로이드폰 중에선 그래도 G3가 젤 나아보이는데 내 취향엔 좀 너무 크고 손에 잘 잡히지도 않아서, 에라이 뭐하러 미리 고민하나 나중에 9월 되면 생각해보지 그랬다. 그러고는 9월이 아직 아주 멀리 있는 줄...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네그려. 아까 누가 내 휴대폰을 보고 바꿀 때 됐다고 그러길래, 9월에 아이폰6 나오면 구경해보고 마음 결정해볼라고요, 했다가 다음주 출시래요.. 하는 말을 들었다. 으악. 월말로 약속했던 일들과 추석 때문에, 9월이 무서워서 나는 아직도 계속해서 8월에 살고 있었구나야.  얼른 정신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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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놀잇감 2013. 11. 4. 23:17

떠나고 싶을 때 훌쩍 아무때나 떠날 수 있는 삶을 선망하는 건 그게 전혀 불가능하단 걸 아는 까닭인가.

암튼 죄다 버리고 어디론가 오래오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거짓말 보태서) 30분에 한번씩 하는 요즘, 초가을에 미친 척 하루 땡땡이 치고 다녀온 남이섬 사진을 휴대폰으로 심심하면 들여다본다. 예전과 달리 와글거리는 단체 관광객의 물결은 좀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조용한 곳을 골라 양지 바른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누워 해바라기 하는 기분은 정말 삼삼했다. 아으...

 

 

 

 

 

강가를 끼고 걷던 은행나무 오솔길도 좋았고, 누워서 올려다본 구불거리는 나무들도 좋았는데 오른쪽 사진에 찍헌 저건 분명 철 모르고 피어난 미친 꽃... 무슨 꽃일까 새삼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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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쇄

투덜일기 2013. 9. 12. 16:55

포쇄 (曝曬): 젖거나 축축한 것을 바람에 쐬고 볕에 바램.   [출처: 국립국어원]

 

아열대성 기후로 바뀐 한반도에서 이제 제습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생활가전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난 외면했다. 좁아터진 집에 무슨 제습기까지! 가끔 트는 에어컨 제습기능과 물먹는 하마 몇통이면 잘 넘어갈 수 있을 것을 웬 호들갑. 재작년과 작년 옷장에 보관한 옷들에 죄다 허연 곰팡이가 피어 세탁비를 수십만원도 더 날렸다며 냉큼 제습기를 장만한 지인들은 옷장문 활짝 열어놓고 제습기를 가동시킨 뒤 외출했다 들어오면 온통 보송보송한 집안 느낌을(그러나 그 후끈한 온도는 어쩌고!) 모를 거라며 제습기 예찬론을 펼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태 난 옷장에 곰팡이 핀 적 없거든!

 

그 장담이 무색하게도 조금 전 옷장에서 오래된 가죽옷을 꺼내본 나는 질겁을 했다. 진짜 곰팡이가 피었잖아! 작년보다 올해가 더 습했다는 증거다. 물먹는 하마는 똑같이 물높이 봐가며 제때 갈아주었는데... ㅠ.ㅠ 다행히도 본격적으로 곰팡이가 핀 건 십수년된 그 가죽재킷뿐이고 그 앞뒤에 있던 옷 두개만 덩달아 곰팡이의 피해를 보았다. 하나는 오리털 파카, 하나는 가을 재킷. 오리털 파카는 원래도 물세탁 가능이니 물걸레로 대충 닦아 세탁기로 직행. 재킷은 세탁소로 보내야하나 좀 고민하다 귀찮아서 울샴푸에 주물러 빨았다. 옷에 배 오는 드라이클리닝 기름냄새를 싫어하기도 하고, 그거 하나 들고 세탁소 가긴 더 싫고, 보나마나 곰팡이 잘 안지워진다고 먼저 연막부터 칠 게 뻔한 말많은 세탁소 아저씨를 상대하기도 싫었다. (옷장에서 곰팡이 피어 세탁비는 세탁비대로 날리고 결국 옷 여러벌 버려야 했다는 얘기도 익히 들은 바 있음) 재킷 차려입을 일도 별로 없으니 아마 올 가을에도 안입고 넘어갈 확률이 높은 옷이므로 망가져도 그만이다 싶다.

 

뜻밖의 푸닥거리를 한판 해치우고나서 문득 떠오른 것이 저 '포쇄'라는 낱말. 주로 팔만대장경이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거창한 서적 유물에만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려운 한자라서 그렇지 용례를 보니 곡식도 포쇄를 하고 의복도 포쇄를 한단다. 그러니까 내가 소홀했던 건 바로 옷가지의 포쇄. 옛날엔 요즘처럼 볕좋은 가을에 집집마다 빨랫줄을 매고는 옷이며 이불 호청을 빨아 널고 두툼한 솜이불도 햇볕에 소독했는데 요샌 그런 모습을 좀체 볼 수가 없다. 그냥 대충 덮고 깔고 살다 껍데기만 벗겨 빨거나 통째로 세탁소에 맡겨 드라이클리닝를 하기 때문일까? 아파트 베란다에 가끔 이불 널어놓은 집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고, 장마철에도 한여름에도 가끔은 군불을 때 구들장의 습기를 말려줘야 한다고 들었지만 진짜로 올해는 여름 내 단 한번도 난방을 하지 않았다. 차가운 방바닥이 뜨거운 체온에 더워지면 얼른 시원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버텨야했거늘 어떻게 보일러를 돌릴 생각을 했겠나. 그러다 어젯밤에 처음으로 발 시려움을 느끼고 난방으로 스위치를 돌리고보니 따뜻하고 보송보송해지는 방바닥 느낌이 놀랍도록 상쾌했다. 진짜 가을이구나 싶었달까. 안타깝게도 어제 내린 비와 오늘밤에 예고된 비 때문에 날씨가 눅눅하고 습기도 많아 제대로 포쇄하긴 글른 날이지만, 오늘밤엔 옷장까지 다 열어놓고 보일러를 좀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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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투덜일기 2013. 9. 4. 00:36

아침저녁으론 확실히 가을이 왔구나 싶다가 낮엔 다시 잠깐 여름으로 돌아가는 환절기. 아직 한폭짜리 얇은 여름이불로 버티고는 있는데 짧은 내 한 몸이 간신히 가려지는 크기라 새벽엔 어디 한 군데 밖으로 나올세라 꽁꽁 조심스레 감싸야 할 정도로  밤기운이 서늘하다. 인견으로 된 좀 더 큰 여름이불로 갈아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중.

 

환절기보다는, 수많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흔히 눈에 띄는 '간절기 최적 핫아이템'처럼 '간절기'라고 해야 여름과 가을 사이의 요즘 같은 때를 콕 찝어 가리키는 것 같지만, '간절기'는 당연히 표준어도 아니고 더욱이 일본어에서 들어온 말이라는 듯하니 이왕이면 쓰지 말아야지.  

 

선풍기도 플러그를 아예 뽑아놓은지 며칠 되었다. 햇빛에 뜨거워진 차안은 아직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야할 때도 있지만, 싸늘한 에어컨 바람이 돌면 금방 목이 싸아 해지면서 목감기에 걸릴 것만 같은 조바심이 든다. 겨울이 찾아와 또 영하 십몇도의 강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올 여름의 습하고 뜨거운 날씨는 절대로 그립지 않을 거라 지금부터 장담하고 있지만... 활짝 열어두고 살았던 베란다와 방 창문을 슬며시 닫으며 아, 계절은 왜 이렇게 무정한가 참담한 기분마저 든다. 가을 싫은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는 또 나에겐 털갈이의 계절인지 탈모의 계절인지... 아님 여름내 꽁꽁 잡아당겨 묶고 살았던 머리칼의 급격한 피로 때문인지(이런 걸 견인성 탈모라고 할 수도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머리칼은 또 왜 이리 숭숭숭 빠지나말이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양손에 뒤덮인 머리칼이 너무 많아서 조금 무서울 지경이다. 분명 작년 이맘때도 그랬다고 위로하며 어쩐지 더욱 휑해진 정수리를 이리저리 쓸어넘겨 가려본다.

 

그러고는 또 다시 옷타령. 요샌 뭘 입고 나가도 마뜩찮다. 아직 긴팔 셔츠로 종일 버티는 건 덥고 반팔로 버티자니 썰렁하고 그간 입었던 카디건은 왜 너무 길거나 너무 짧은지? ㅋ 많은 식구들의 와글와글거리는 체온으로 분명 에어컨 바람이 필요할 듯한 이른 명절엔 또 추석빔으로 뭘 입고 손님맞이를 해야하나 벌써부터 머리를 굴리고 앉았다. 

 

 

어쩔라고 쓰기 시작했는지 마무리가 안돼서 얼렁뚱땅 노래 링크. ㅋ

 

거짓말 같이 맑은 하늘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나면

무더운 날이 없던 것처럼 그렇게 새로운 계절은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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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프로젝트

놀잇감 2012. 11. 19. 15:07

원래는 친구의 LA 동료들과 만난 날 밤에 같이 가려고 했었는데, 자기들끼리 바로 다음날 궁궐순례 계획을 잡아놓았다고 하여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해서 친구는 결국 덕수궁 프로젝트를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친구에겐 궁궐과 설치미술 구경보다는 수세미, 행주부터 수면바지, 속옷까지 식구수대로 사가지고 갈 쇼핑품목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미술관 때문에 제일 자주 찾는 궁궐이 덕수궁이지만 '서도호'를 포함한 설치미술이 전각 안에 전시되어 있다니 더욱 흥미가 동했다. 드디어 덕수궁 전각 안에도 들어가보게 되는군!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덕홍전. 금속으로 만들어놓은 곡선형 좌식 의자가 바닥에 빼곡하게 깔려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각 밖에서 안을 흘끔흘끔 들여다보고만 있는데, 입구에 서 있는 안내인은 들어와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왜?! 내가 먼저 신발을 벗고 성큼성큼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날이 부쩍 차가워져 엉덩이와 등이 이내 시려왔으니망정이지 안그랬으면 한 30분쯤 누워 쉬었으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인체공학적으로 몸에 딱 들어맞는 편안한 디자인이었다. 하지훈의 <자리>라는 작품이라고. 찍어온 안내판 사진을 보니 성기완의 음악도 연주되고 있었다는데 사실 기억에 없다. ㅋ

 

파도의 일렁임 같기도 하고 터미네이터2가 생각나기도 하는 금속 의자와 덕홍전 천장 사진을 세트로 찍어오는 블로거들이 많던데 그럴만했다. 편히 눕다시피 앉으니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새로이 채색한 듯한 화려한 단청이었다. 예쁘기도 하지...

 

 

석조전도 그렇고 중화전 뒤쪽으로도 그날따라 공사중인 곳이 꽤 많아 길을 돌아돌아 가다보니 고종이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이 나왔다.  

아니 이것도 작품인가 싶게 거울을 사이에 두고 회의 탁자가 놓여있었다. 설치미술은 뭔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다시 되살려준 정서영의 작품. ^^

 

 

전시 시작할 때는 미술관에서 설치미술 제작 과정을 죄다 보여주는 특별전시도 함께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갔을 땐 미술관 문이 닫혀 있었다. 어쩐지, 입장료로 달랑 천원만 받더라니... 좀 아쉬웠다.

 

 

단풍으로 아름다운 나무들을 바라보며 궁을 가로지르다 보니 바닥에서 뭔가 반짝거렸다.

최승훈+박선민의 <결정>이라는 작품. 전시 안내책자에 어찌나 인색한지 브로셔도 없이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다 작품과 함께 설명 표지판을 찍어온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서 작품 제목까지 기억하는 게 가상타. -_-;

 

 

아래 사진은 덕수궁에서 제일 잘생긴 건물이 아닌가 싶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석어당의 옆모습.

 

이상하게도 단청 화려한 궁궐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전각을 꼽다보면 꼭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이다.

창덕궁에선 연경당.

덕수궁에선 석어당.

경복궁에선 건청궁.

 

경희궁과 창경궁은 아직 복원이후 구경가보지 못했다. 어서 거길 다 가보아야 남아있는 5대궁궐 탐사가 다 끝날 텐데... ^^;

 

예술가들도 각별히 애정을 품었는지, 이곳에선 두가지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김영석의 <better days>와

이수경의 눈물.

 

 

덕혜옹주를 특히나 어여삐 여겼다는 고종이 석어당에 유치원을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복과 보료, 영사기로 투사된 덕헤옹주의 사진들로 방을 재현해놓은 작품이 왼쪽의 모습이다.

 

 

흑백사진을 투명한 망사에 저렇게 비춰놓으니 더욱 처연하면서도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죄다 어디에서 난 사진인고 했더니, 그 사진 액자들이은 분합문 위 문틀에 나란히 올라가 있다.

 

 

 

 

 

중화전 행각에 있던 이 작품은 이름도 모르고 작가도 모르겠다. 궁중소설을 읽어주는 성우의 목소리가 낭낭하게 들려오던데 우린 철사에 묶여 있는 소설책을 대충 넘겨보다 잠시 앉아 다리만 쉬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중화전에도 뭔가 조명과 음향을 설치해놓은 것 같던데 하나도 안보이고 안들렸었다. 밤에만 보이는 건가?

 

 

기대했던 서도호의 함녕전 작품 <동온돌>은 약간 의외였다. 

고종이 명성황후와 엄비를 그리워하여 항상 이불 세채를 깔고 주무셨다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래고, 대청 한가운데에선 한복 입은 남자가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고 궁녀들이 이불 개고 펴며 잠자리 준비하는 동영상이 계속 돌아갔다. 이불 세채의 사연이 좀 안쓰럽긴 하지만 서도호의 리움 전시를 본 사람으로선 애개개 싶었음.

 

 

 

덕홍전 천장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함녕전의 천장.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쌍학이 날고 있는 똑같은 그림이다. 천장마저도 서글픈 느낌.

 

 

 

궁궐 전각과 예술품의 만남이라는 프로젝트의 의의도 좋았고 뿌듯했지만, 역시나 이날 가장 감동을 주었던 건 가을 풍경이었던 것 같다. 아직 만추가 되기 전이었던 저 나무들도 지금은 다 완전히 색이 달라졌거나 헐벗었겠지. 게으름 부리다 밀린 일기 쓰는 것의 장점 하나는 떠난 계절까지도 오래도록 질질 붙들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덕수궁 프로젝트는 12월 2일까지.

 

 

 

 

 

(201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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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여행담 2012. 11. 16. 15:01

겉은 고택이되 안은 새로이 단장한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곤하게 자고 일어난 아침,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침을 뭐라도 먹고 움직여야 하나, 일단 나가서 움직이며 배를 채워야 하나... 하룻밤 잠만 자고 나가기엔 너무 아깝다. ㅠ.ㅠ 갖고 있는 먹거리라곤 귤 몇 알과 티백 커피, 차뿐임을 잘 알기에, 우유부단하게 고민만 하고 있는 내게 친구가 일단 나가보자고 말했다.

 

꾸물럭꾸물럭 짐을 싸 아쉬운 마음으로 치암고택을 나서며 전날밤 깜깜해서 제대로 보지 못한 집주변을 먼저 감상했다. 이 또한 참 잘생긴 한옥일세.  

 

왼쪽으로 살짝 낮고 검게 보이는 것이 주인의 살림공간인 듯한 안채. 사랑채에도 객실이 두 개 있는 듯하던데 6명까지 묵을 수 있는 큰 방에 고가라 예약할 때 아예 염두에 두질 않았으나 실물로 보니 탐이 났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여럿이서 사랑채에 묵어보리라! 

 

오른쪽 방문 열린 곳이 바로 우리가 묵었던 별채 계명재. 안채, 사랑채와 동떨어져 있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독립적인 느낌은 좋았으나, 방문 밖이 바로 주차장이고 엄밀히 말해 대문 '밖'이라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 문고리를 보며 약간 걱정스럽기는 했다. 

 

별당아씨 놀이를 기대했던 친구는 섬돌 바로 코앞까지 대놓은 자동차들을 보며 별채가 아니고 행랑채 같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몰러~ ㅋㅋ

 

전날 친구 M이 별나게 무섭다고 했던 이유가 따로 있긴 했다. 방 옆으로 난 문을 여니 아 글쎄 담너머 딴집이 내려다보이는 것이 아니겠나.

 

이렇게... ^^; 

술 잔뜩 먹고 엉뚱하게 문 잘못 열고 나가면 그대로 허공으로뚝 떨어지며 낙상이다.

저렇게 내려다보이는 집에도 사람이 사는 것 같던데 윗집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은근히 신경쓰일 것 같았다.

 

이 문으론 허공이라 누가 들어올 리도 없는데 M은 상상력이 뛰어난 건지 전설의 고향 운운하며그래서 더 무섭다고... ㅋㅋ

 

 

 

 

 

 

암튼 안채 마당과 사랑채를 머뭇머뭇 구경하고 있자니 아주머니가 벌써 청소도구를 들고 나오셨고, 하회마을엘 가려면 택시타고 안동역으로 가서 버스를 타는 게 낫겠다는 아주머니의 조언 대로 우린 길을 나섰다. 버스 시간표도 미리 다 검색해서 적어갔으나 생각보다 하회마을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그리 자주다니지 않았다. 한번 놓치면 막 두시간씩 기다려야 해! 해서, 안동역 근처 간잽이 아저씨 식당에서 아점으로 고등어조림을 먹고야 말겠다는 나의 열망은 또다시 물건너가야했다. 10시 반인가 45분 버스를 못타면 2시간 뒤에나 하회마을행 버스가 있었다. ㅠ.ㅠ  그럼 찐한 커피라도 마셔 카페인 파워로 돌아다녀보겠다는 바람도 실천이 어려웠다.  역 주변인데도 그 흔한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 안 보이고 원두커피를 파는 편의점은 없었다. 너무 연해서 마시기 싫다고 했던 티백 커피라도 마시고 나올 것을, 아니, 고택 툇마루에 있던 자판기 커피라도 마시고 올 것을... 후회 막급이었다. ㅠ.ㅠ

 

안동 시내에서 하회마을까지는 한 40분쯤 걸렸나, 꽤 먼거리였던 느낌이다. 하회마을 입구엔 토속장터와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었고, 일단 거기서 우리도 아침을 먹었어야 했다. 하지만 오전이라 가게들은 아직 문도 열지 않은 것 같은 모양새라 쭈뼛거리던 우리는 일단 짐을 매표소 옆 사물함에 넣어두고 마을 안까지 들어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거기도 입구에 밥집 있겠지 뭐;;;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 예전에 이웃주민 포스팅에서 본 마을 입구 음식점은 그러니까 장터 입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던 듯, 마을에 들어서니 가게라곤 기념품과 음료수를 파는 간이매점 같은 곳 뿐이었다. 아이고 배고파라... ㅠ.ㅠ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배가 고프면 손발이 후덜거리고 분노조절이 안되는 인간형이다. 그나마 배낭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다니길 잘했지...)

 

잘 생긴 한옥들과 황토색 토담의 정갈함도 내 눈엔 잘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엔 온통 밥먹을 생각뿐! 미숫가루라도 먹으랴 물으니 친구는 빈속에 차가운 미숫가루는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집 할머니께 어디서 밥 좀 먹을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몇 군데 주소를 가르쳐주며 가보라고 했다. 밥을 해달라면 해주는 집이 있긴 한데, 문을 안열었으면 주인이 없는 거라는 하나마나한 설명과 함께... 흑... 정 밥집이 없으면 다시 돌아와 뜨거운 미숫가루라도 마시게 해달라고 부탁하곤 밥집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허나 미숫가루 집 할머니가 가르쳐준 주소는 둘 다 대문이 닫혀있을 뿐이고 ㅠ.ㅠ 하는 수 없이 우린 간이매점에서 강냉이를 한 봉지 사서 한움큼씩 집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주린 배를 바삭한 강냉이로 좀 달래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한옥 구경에 돌입했던 것 같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도 본 적 있는, 유명한 양진당에 들어서니 아저씨 한분이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계셨다. 원래도 공개된 공간 안쪽은 살림공간이고 사유지이니 출입을 금한다고 팻말에 적혀 있는데, 이날은  매우 중요한 제사가 거행되고 있으니 특히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잘 보면 집안에서 쟁반 들고 바삐 오가시는 종부 어르신의 그림자도 찍혔다!) 

 

그러고는 친절하게 음력 9월 9일 중양절의 의미도 설명해주셨다. 본디 음력 8월 15일에 추석차례를 지내지만 그때는 시기가 일러 제대로 곡식이 다 익지 않았을 경우가 많고 음력 9월 9일에는 제대로 추수가 끝난 데다 음양이 조화롭고 더 길한 날이라 안동에선 제일 큰 제사가 있다나. 배를 타고 나갔거나 객사를 하여 정확한 제삿날을 모르는 모든 조상들을 위한 합동 제삿날이라고 했다. 호기심이 더욱 동하여 중문 안쪽을 기웃거리니, 정말로 도포자락 휘날리는 차림새의 어르신들이 여기저기 모여 계셨다.  

 

 

전날엔 왜 우리가 움직이는데 하필 비오고 날 추워져서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으면서, 바로 담날엔 중양절에 때 맞춰 잘 놀러왔구나 싶어져 키득거리다니 참 변덕스럽기도 하여라.

 

왼쪽은 양진당 행랑채에 딸린 마굿간. 여물통이 진짜 오래 되어 보인다.

 

 

 

 

 

 

 

평일인데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관광객이 많지 않아 아무래도 밥집 찾기는 글렀나보다 포기했을 무렵, 민박 팻말을 내건 어느 한옥에 유독 사람들이 드글거렸다. 알고보니 인근 공사중인 한옥 인부들이 매일 대놓고 밥을 먹는 듯했다. 어쨌거나 체면불구하고 들어가 할머니께 내가 물었다. 저희도 밥 좀 먹을 수 있을까요...? (굶주림은 얼굴을 두껍게 만든다는 진리!) 당연히 가능하나, 고등어구이와 안동찜닭 두 가지 메뉴만 된다는 기쁜 대답이 돌아왔다. 찜닭은 어제 먹었으니 무조건 고등어구이 백반!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 달린 단칸방에 들어가 앉은 우리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날의 첫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 간잽이 아저씨네 식당의 고등어구이와는 상대도

되지 않겠지만... 우린 허겁지겁 맛나게 밥공기를 깨끗하게 비웠고, 칼칼한 된장찌개와 고들빼기 김치, 더덕 무침은 평범하게 느껴졌던 고등어구이의 맛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 아니라 진짜로 맛깔스러웠던 반찬이었다고 인정. 들어갈 땐 몰랐는데 나와서 보니 <작전고택>이라고 팻말도 서 있었다. 잘 몰라서 그렇지 하회마을에서 고유한 이름 없는 한옥은 하나도 없는 듯;

 

 

 

 

 

 

 

 

 

속이 든든해지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더 새파란 것 같고, 토담 안에 줄지어 서 있는 기와집과 초가집들이며 텃밭에서 줄지어 자라는 배추들까지 죄다 한층 더 정겨워보였다. ^^;    

 

들어가지 말라는 곳엔 왜 더 들어가보고 싶은지;; 저 멀리 안채 처마에 매달린 곶감은 또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굴뚝 하나도 그냥 쌓아올리지 않은 정성과 예술감각을 보라!

 

 

걸어가면 왕복 한 시간도 넘게 걸릴 거라는 병산서원 가는 길.

하회마을에서 나가는 시내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우리 걸음으론 무리라는 결론으로 포기하며 바라보니 어찌나 아쉽고 오솔길이 더 예뻐 보이던지. 도산서원도 못보고 병산서원도 못보고 이것 참... 반쪽짜리 안동여행일세.

(알고 보니 도산서원은 안동시내를 중심으로 하회마을과 완전 반대편에 있었고, 시내에서 그쪽으로 가는 버스편도 하루에 몇번 되지 않았다. ㅠ.ㅠ)

 

 

 

 

 

 

 

 

공터에 나타난 그네도 한번 타주시고, 친구가  대뜸"시소다!"라고 외친 널뛰기 널에도 한번 올라가주며, 마을을 거의 다 한바퀴 돌고 나니 보이는 것은 부용대 절벽과 솔숲.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뻗어있는 예쁜 오솔길. 저 길을 우리도 하염없이 걸어가고 싶었으나...

버스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

양쪽 나무가 머리를 맞댄 이 길 역시 좀 걷다가 돌아서야 했다.

 

관광철이 아니라선지 부용대 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나룻배도 없고, 그렇다면 이젠 미숫가루나 먹으며 다리를 쉬어야 할 때. ^^;

 

 

 

 

 

 

 

 

미숫가루를 먹으러 들어간 방에서, 자기도 이런 예쁜 찻상 갖고 싶다며 친구는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마침 친구S의 남편은 목공예가 취미인 사람. 생일선물로 만들어준 화장대겸 원목 책상을 나도 익히 본 적 있었다. 아마 다음번에 친구네 놀러갔을 땐 거실에 이런 야트막한 찻상이 놓여 있을지도...

 

 

한여름에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얼음 동동 띠운 미숫가루의 위용. ^^;

 

여행일정은 우리가 세운 계획이 아니라 전부 다 버스 시간표에 달려있음을 그제야 깨달은 우리는 5시쯤 하회마을을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괜스레 하회탈 박물관에 들어가 별로 볼 것 없는 구경도 하고, 그곳 매점에서 드디어 그날의 첫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우다 안동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하회마을은 원없이 구석구석 돌아보았으나 병산서원, 도산서원 못 본 것을 안타까워 하며...

(201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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