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U 약식

식탐보고서 2009. 1. 13. 14:34

시원찮은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첫 가사실습 시간에 만든 음식이 약식이었다.
그 전까지는 문방구에서 반제품으로 파는 앞치마 재료를 사서 바이어스를 손으로 꿰매고 주머니와 앞부분에 자수를 놓는 실습을 했고, 조리실 실습에 들어가는 날까지 앞치마를 완성해 각자 입고 패션쇼를 하듯 줄지어 서서는 선생님의 채점을 받았다.
국민학교 실과 시간에도 이미 단추달기, 홈질, 똑딱단추 달기의 실습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여 탁월한 점수를 받았던 터라, 앞치마 꿰매기 정도는 중학생이 된 나에게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였다. 요새 학생들은 엄마들이 대신 꿰매주거나 수선집 또는 세탁소에 맡겨 드르륵 박아온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땐 그런 걸 상상도 못할 만큼 아이들이 순진할 때라 손재주 여부에 따라 아이들이 입은 앞치마의 몰골은 매우 다양했다.
바이어스가 우글쭈글 찌그러졌거나 자수 실밥이 너덜거리는 앞치마를 입은 아이들 틈에서 매끈하고 촘촘한 바느질과 깔끔한 자수가 돋보이는 앞치마를 입은 나는 조리실에서도 조장으로서 꽤나 쓸모가 있었다.
지금이야 나도 오랜 밥순이 경력을 믿고 이것저것 재량을 부려 대충요리를 감행하지만
요리초보가 지켜야할 첫번째 원칙은 건방지게 융통성을 부리지 말고 레시피 대로 하라는 것이므로
모범생 답게 나는 칠판에 적힌 대로 재료의 계량과 조리시간, 불조절을 칼같이 지켰고  결과물은 당연히 훌륭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의 조리실습은 불려놓은 찹쌀과 온갖 재료를 잘라 들통에 넣고 찌기만 하면 되었던 비교적 간단한 요리였으나 놀랍게도 몇몇 조는 약식이 아니라 거무스름한 찹쌀죽을 만들어놓기도 했는데, 내가 보기엔 어떻게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었는지 그게 더 신기했다.

당시에 조별로 예쁘게 만들어진 약식은 교무실 선생님한테까지 일일이 나눠드려 맛보게 했었는데, 그때 양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내게 할당된 약식을 남겨 집에 가져가 엄마한테 자랑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며칠 뒤 집에서도 학교에서 배운대로 들통에 쪄서 약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수십년간 집에서 다시 약식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오랜 세월 외할머니의 단골 떡집에서 워낙 맛있는 떡과 약식을 수시로 공수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니 3년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선 정말로 맛있는 약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가끔 사먹게 되는 약식엔 밤과 잣 따위의 내용물이 터무니없게 부실했고 찰진 맛도 덜했다. 그렇다고 약식을 미친듯이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왜 집에서 손수 약식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정확한 동기는 지금도 모르겠다. 조카들이 약식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던가?
어쨌거나 설날을 앞두고 일벌이기 병이 도졌는지, 대충요리의 달인답게 나는 지난주에 드디어 전기 압력밥솥으로 약식만들기에 도전을 했고 역시나 단번에 성공을 거두었다. 중학교 때 했던 가사실습을 떠올리긴 했지만, 레시피까지 생각날 리야 없는 일이고 손쉬운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대강 분량을 예측했는데 살짝 질기는 했어도 맛은 정말로 훌륭했다. 이번에 성공을 하면 설날 차례상에 올릴 약식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나의 야심만만한 목표였는데, 그도 별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문제는 대충 대충 재료를 집어넣은 바람에 과연 설날에도 같은 맛을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지만 까짓 것 덜 달 거나 더 달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실패한다고 해도 두려울 건 없겠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사실습 점수를 잘 받긴 했어도 그땐 내가 이렇게 요리솜씨가 훌륭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가사노동이 싫어서 (매일 밥하고 청소하기 싫어서 결혼 따위 안 할 거야! 라고 늘 부르짖었음)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내가 싱글로서도 만날 밥순이로 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것 같다. 청소는 여전히 내가 넘지 못할 숙제지만 요리마저 잘한다는 점은 내가 무수리 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운명 같아서 속이 좀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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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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