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엿보기

놀잇감 2009. 3. 6. 15:52

덕수궁 입장료 단돈 천원으로 한국근대미술 걸작전을 볼 수 있다는 낭보를 접한지 한달만이었나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제 오후 정동으로 향했다. 궂은 날씨가 얄밉기도 했지만, 동시에 비가 오니 미술관이 한적하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좀 춥긴했어도 비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고궁 뜨락을 거니는 맛 또한 감격스러웠다. 드물게 석조전 동관까지 개방해 전시를 할 만큼 작품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음에도, 전시는 입이 헤 벌어질 정도로 대규모라 운수라곤 통 없는 내가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느낌이었다. 


미술관 서관과 동관 입구에서 각각 나눠주는 무료 티켓도 어찌나 앙증맞고 예쁘던지 책갈피로 쓰거나 간직해두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소중히 가져와 스캔했다.
표에 인쇄된 건 아시다시피 박수근과 천경자의 그림.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를 눈앞에 마주한 순간 나도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혹 상고머리를 하고 저렇게 아이를 들쳐업은 울 엄마의 사진을 언젠가 본적이 있었던가.

이번에 전시된 2백3십 몇점들의 작품은 겨우 삼분의 일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고 나머지는 다 빌려온 것들이란다. 클림트의 작품을 대거 만나보는 건 금세기에 또 없을 거라는 광고에 힘입어 예전 미술관이 매일 문전성시라던데, 우리나라 근대화가들을 이렇게 대거 모아놓은 전시 또한 금세기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바빴다. 티켓엔 본인이 몇번째 관객인지 알아볼 수 있게 숫자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본관은 12만명이 넘은 반면 동관은 인원이 그 절반밖에 안되는 것으로 보아 다들 시간이 빠듯했나보다 싶었다. 하기야 도슨트의 설명 1시간을 포함하여 우리도 양쪽 미술관을 관람하는데 꼬박 3시간 이상이 걸렸는데,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번 더 가야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이인성, 김기창, 김환기, 장욱진, 구본웅, 박래현, 천경자... 이름을 대기에도 벅찬 유명화가들이 무려 105명이나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오죽하랴!
 

이쾌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학교 다니던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익히 보았던 작품들도 알현 가능했고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보았던 작품들도 더러 있어서 더욱 반가웠는데, 월북한 화가라 최근에야 비로소 해금되었다는 이쾌대 화백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비롯한 낯선 작품들은 역시나 눈길을 끌었다. 자유연애의 열풍이 불었다는 근대의 그 시기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다는 미래의 부인 유갑봉 여사에게 보낸 절절한 연서도 함께 공개되어 있었으니, 비오는 봄날의 정서와 어찌나 잘 어우러지던지.
해방전후의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서 당시를 상상하려니 얼마 전 읽은 책 <서울은 깊다>와 많은 부분들이 겹쳐지는 듯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변모하는 사람들의 모습, 지난한 역사 속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들,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그 시절 이 나라의 면면들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모습을 엿보는 기분은 퍽 묘했다. 너무 가난해서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낸 뒤 담뱃갑 은박지 뒤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이 있는가 하면, 당시 집 한채 값도 넘는 800원이라는 외상값을 갚으려고 유학비를 타 외상값을 청산하고 유유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이종우의 그림도 있었다. 내노라하는 당대 거부의 자식이었기에 서양 화구와 서양화를 접할 수 있었을 수많은 화가들의 친일여부를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 같았다.  정치적인 향방과 상관없이 예술은 예술이니까. 그래도 아는 게 병이라고, 조각을 그림보다 덜 좋아하긴 하지만 친일 문제를 거론할 때 제일 먼저 손꼽히는 김경승의 조각품을 보는 시각은 확실히 심드렁해서 휙 지나치게 되더군. 

인상적인 그림들이 하도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든데, 그래도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있기 마련이다. 동관 전시실에 아담한 화실을 옮겨다 재현해 놓아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던 유쾌하고 귀여운 느낌의 장욱진 선생의 그림들도 좋았고,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들은 말하면 잔소리고, 이응노 화백의 그림을 볼 수 있어 기뻤다. 특히 <취야>는 비도 오겠다 술한잔 해야할 것 같은 흥겨운 느낌을 풀풀 풍겨 그림을 보다 말고 마구 목이 말라졌다. ^^

이응노 [취야]

장욱진 [수하樹下]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했던 그림은 박래현의 <노점A>.
중3때였던가 고1때였던가, 학교 미술시간에 판화를 할 때, 나는 하필 미술책에 있던 이 그림을 판화로 시도하겠다고 결심했었다. 박래현이 김기창화백의 부인이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큐비즘을 시도하여 이 작품으로 국전 대상을 탔다는 뒷이야기는 알지도 못할 때였고, 그냥 시장 좌판의 여인들을 단색의 판화로 모사해도 멋있을 것 같았다. 미술선생님은 굳이 어려운 걸 파겠다고 애쓰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찼지만 완성된 작품은 꽤나 뿌듯하게 나왔고, 특히 리어카에 앉아 팔을 괴고 있는 아줌마의 표정과 머리에 인 광주리에 담긴 생선이 원작보다 생동감 있다는 과장 섞인 칭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미술책 속 사진과 소싯적 내 판화의 밑그림으로만 알던 이 그림은 실제로 보니 꽤나 크기가 큰 대작이었는데, 건너편 벽에 걸린 김기창 화백의 예쁜 여인들 그림과 함께 번갈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전시는 3월 22일까지.
평일 전시는 6시까지, 금토일엔 8시반까지 연장 운영된다. 얼마 남진 않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고, 나 역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제 무료 관람에다 전시작품이 많아 복권 당첨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 마지막에 뜻밖의 근대 엿보기 경험을 하나 더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번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하루라는데, 하필 우리가 간 날 무성영화를 상영하다니. 여러모로 공교로웠다.
제목도 익히 들어본 바 있었던 <검사와 여선생>.
현존하는 마지막 변사 신출 할아버지의 설명으로  1948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를 난생처음 덕수궁 미술관 로비에 앉아 보고 있으려니, 정말로 난생처음 영화를 접했을지도 모를 옛날 사람들의 설렘과 내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든이 넘으셨다는 신출 할아버지는 결코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귀띔으로 영화 설명을 시작했지만, 음향과 발음의 문제로 삼분의 일은 못알아들으면서 우린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조악한 초기 영화 기술도 그렇거니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표정은 정말로 요즘도 코미디에서 모사하는 상투적인 표현의 전형이었는데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혹시나 관객이 졸까봐 그러시는 것인지 중간중간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이름을 불러대시는 변사 할아버지의 말소리도 재미났고, 당시에 자막의 맞춤법까지 손볼 여유가 없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그땐 그렇게 맞춤법을 소리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썼던 것인지 가끔씩 출몰하는 자막의 <이튼ㅅ날> <며칠을 굴멋니?> <엇째서 그러니> <내>(네) 같은 글씨들을 볼 때마다 관객들은 와글와글 웃어댔다. 

잠깐이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인데, 들고 돌아온 팸플릿과 티켓을 보면 확실히 현실이라 오늘까지도 느낌이 더욱 묘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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