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우먼

놀잇감 2009. 8. 23. 16:39

일주일간 영화를 세편이나 봤다. 영화제 기간도 아니고서 이러는 일은 꽤나 드문 사건인데 한편으로 참 한심하기도 하다. 이럴 시기가 아니란 말이지...
그래도 적어두지 않으면 머릿속의 지우개가 싹싹 지워버릴 게 뻔하니 한심해도 기록은 해두자.
씨네큐브 운영에서 백두대간이 손을 뗀다는 소식에 망연하여 <마지막> 의식을 치르듯 모여본 이 영화는 앞으로 반쪽짜리로라도 이어지길 바라는 씨네큐브라는 극장 자체에 대한 우리들만의 예우에 걸맞게 여러모로 참 의미심장했다.


포스터에 제목만큼이나 강조된 <시네마 천국> 두 거장이 다시 만든 영화라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시네마 천국>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 인생의 영화> 목록을 뽑을 때 누구나 다섯 손가락 안에 그 영화를 손꼽지 않을까. 토토와 알프레도의 감동적인 우정 말고도 영화가 우리 인생에 안겨주는 행복의 의미를 그보다 더 잘 담아낸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시네마 천국>이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를 본 기억은 전혀 없거나 있었더라도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인데, <언노운 우먼>을 보고나선 역시 거장은 거장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경음악만으로도 불안초조해서 덜덜 떨리게 만드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씩 깔아놓은 조각퍼즐로 시종일관 긴장과 궁금증을 멈출 수 없게 만들어 진이 다 빠져버릴 때쯤 활짝 펼쳐놓는 분노의 진실에 나는 정말이지 간이 오그라붙는 것 같았다.

번역 일을 하다보면 약간 기묘한 인연이랄까,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것이 들 때가 있다. 전혀 상관없는 두 작품에서 똑같은 음악이나 책이나 인물이 인용된다든지 해서 나만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공통점을 발견한다든지, 어쩐지 비슷한 장면을 상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든지 하는 거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에도 상처뿐인 과거로 괴로워하는 여자가 주인공인데, 배경도 상황도 모두 다르지만 자기 아이를 빼앗기고 그리워하는 점이나 주류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소외계층의 여성이 자기 방어를 위해 남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점이 똑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집에 두고온 밀린 원고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영화를 보면서도 일을 나몰라라 미뤄둔 게으름을 추궁받는 느낌이었으니, 나에겐 더욱 의미가 남달랐달까. 비록 영화 주인공 이레나는 우크라이나 출신이고, 소설 주인공 콘수엘라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지만서도.

암튼 충격적인 사실들이 하나하나 펼쳐지며 줄곧 자지러지게 놀라고 안쓰럽고 분노하던 감정을 마지막엔 감동의 눈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감독의 배려가 고마웠다. 이레나의 과거 상처는 결코 잊혀질 수도 쉽사리 치유될 수도 없겠지만 이레나의 진심이 통한 상대가 이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남아 있다는 게 왜 그리 위안이 되던지. 생각할 것도 너무 많고 가슴이 먹먹해서 쉽게 뭔가를 꼬집어 적어두기에도 쉽진 않은 영화였지만, <시네마 천국>과는 다른 성격으로 오래도록 여운을 남길 작품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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