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21.01.21 남겨두고 싶은 기분 6
  2. 2019.05.17 유전이면 어쩌나 6
  3. 2016.03.28 대림미술관 Color Your Life 4
  4. 2015.09.07 욕심은 끝이 없다 10
  5. 2014.07.18 또 잉여짓 10
  6. 2014.06.19 서울 도서전 6
  7. 2013.11.25 그럼 그렇지... 8
  8. 2013.05.22 흰머리 미스터리 15
  9. 2012.09.04 팔찌 욕심 12
  10. 2012.02.10 신발장을 열다 18

시작이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삶이 따분하고 지겨워져 뭔가 막 더 배우고 싶어서 동네 도서관과 구청 교육 프로그램을 뒤졌던가? 아, 기억났다. 친구가 동네 구청 취미 프로그램에서 단돈 몇만원에 몇달간 베이킹을 배우는데, 재미도 있고 수업 끝나면 그날 만든 맛있는 빵을 한 아름씩 갖고 온다며 나도 찾아보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동네엔 구직을 위한 프로그램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신청 시기가 안 맞았다. 그러다 눈에 띈 마을강사 양성 교육 공문.

4주였던가.. 여름 방학 내 꽤 긴 기간 교육 전문가와 현장 교사들의 수업을 들었고, 각자 다양한 아이디어로 자유학기제를 위한 프로그램을 짜서 제출하면 인근 학교와 연계해주겠다고 했다. 할까말까 망설이다 대충 요식행위로 만들어 낸 프로그램은 당연하겠지만 아무 선택도 받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알바도 아니고 자원봉사도 아니고 부업도 아니고 몹시 어중간한 시도는 관두고 본업에나 충실하자 싶었다. 그러다 돌연 다음해에 한 학교에서 수업 의뢰를 받았고, 그렇게 시작한 자유학년제 수업이 올해로 벌써 5년째다.

해마다 관둘까 말까, 들이는 시간과 품에 비해서 형편없는 강사료를 생각하면... 종종 본업에 지장을 주는 스케줄을 생각하면 그만두는 게 맞다 싶다가도, 또 불안한 미래를 1년 전에 미리 상상해보면 뭐라도 하고 있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도 싶고, 일단 학교에서 만나는 예쁜 아이들이 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ㅠ.ㅠ 물론 재작년 같은 경우엔 몇몇 거친 아이들에게 성희롱을 당한 적도 있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근데 또 그러다가 한두 명에게라도 묵묵히 위로를 받으면 다시 버텨나갈 힘이 생기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흔들렸던 2020년 학교는 정말 위기상황이었고,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제 수업도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서 비대면과 대면 수업을 병행한 학교도 있지만, 아예 전면 온라인수업으로만 결정한 학교도 있어서, 난생 처음 온라인수업을 여러가지 종류별로 준비해야하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구청측에서 여러가지 심화교육도 마련해주고, 먼저 온라인수업을 경험한 동료 선생님들이 쏠쏠한 노하우를 공유해주시고, 유튜브로 온갖 온라인플랫폼을 찾아 독학을 하고... 밤새워 PPT와 동영상을 만들었다 지웠다 반복하며 8월 내내 미쳤지 미쳤지, 이짓을 내가 왜 하고 있나 징징 울고 싶었던 것 같다.

째뜬 구글클래스룸과 EBS온라인클래스와 줌 화상수업을 오가며, 헐떡였던 2학기 자유학년제 수업이 1월 4일로 마침표를 찍었다. 창의적인 글쓰기와 번역 문장 연습을 주로 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대면수업이 아니면 학생들과 소통하기가 엄청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온라인 수업이어서 좋은 점도 꽤 있었고, 2020년에 만난 아이들은 역대 최고로 성실하고 뛰어난 학생들이었다. 교실에서 만났더라면 더 뛰어난 성과를 얻었을 것 같아서 아쉽지만, 반대로 온라인으로 소통해서 내가 더 편견없이 공정하게 아이들을 대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면 발표력 좋고 참여도 좋은 몇몇 학생들 위주로 소통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물론 매시간 활동지를 쓰게 하면서 일일이 들여다보고 격려하고 어떻게든 뭔가를 써내게 하려고 나로선 온갖 수단을 쓰지만;; 한 학기 내내 입 꼭 다물고 비협조적인 아이들에게는 나도 골이 나서 포기하기 쉽다.

온라인 수업을 듣고 연계 과제를 제출해야 출석으로 인정된다고 서슬퍼런 경고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도 당연히 있다. 당당히 백지를 매번 내는 식이다. 교실 수업이었다면 활동지 써주기 전엔 집에 안보낸다고 복도에서 기다린다고 협박을 해서라도 받아내는 편인데, 온라인 댓글로는 아무리 피드백을 신경써도 결국 제대로 글쓰기를 못시킨 경우가 있다. 줌으로 하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엔 담임 선생님이 전화로 아무리 깨워도, 자느라고 못 들어온 아이도 있었고. ㅠ.ㅠ  그 학생은 다음 주 홀로 학교에 등교해 종일 학교 컴퓨터로 화상 수업을 들었지만,  그 다음주엔 그 수법도 통하지 않았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비대면 수업을 한 학기 경험한 소감은, 나름대로 보람찼다는 것이다. 열네살 아이들은 아직도 참 어리고 순수하지만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깊은 생각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교실 수업이든 온라인 수업이든 똑같이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나도 동영상 수업을 들어보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자꾸 딴 생각을 하거나 슬며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부끄러운 적이 많다. 어른도 그럴진대 진짜로 재미있는 수업이 아니면 아이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글쓰기를 시키는 수업이라니!  나로선 재미나게 해본다고 최선을 다하지만 그 마음이 과연 통할지는 미지수였는데... 놀랍게도 많은 아이들이 열심히 피드백으로 내게 용기를 주었다. 쌤 수업 재미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수업을 하시나요.. 등등... 음화홧. 

나로선 당연히 힘이 나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PPT 자료도 더 열심히 다시 만들고, 구글설문지나 문서로 받을 과제도 정성들여 이리저리 고치고 최대한 활기차게 동영상을 녹화했다. 아이들이 낸 과제물엔 열심히 댓글로 피드백을 달고, 개성을 파악해 기록해두고는 계속 관심을 쏟았다. 물론 일일이 댓글로 응원을 보내고 조심스러운 글 한 줄에도 마구 칭찬을 날리느라, 당연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속으로 또 미쳤지 미쳤지 왜 이러고 앉았나 후회도 했지만...

그런 정성에 대한 보답일까, 아이들도 과제 댓글로, 수업 피드백으로 여러가지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해주어 기뻤는데 8주차 마지막 수업 마지막 과제 끝에는 한 학생이 제법 긴 쪽지를 적어두었고, 그걸 읽으며 난 주책맞게 눈물이 핑 돌았다. 우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공을 들인 노력과 진심이 통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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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으로 간직하려고 캡쳐해놓음 ^^;; 

글쓰기를 원래도 잘하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문장력이라도 좀 더 생각을 깊이 했다거나 정성을 들인 표현은 금세 표가 나고 점점 발전하는 게 보이는 아이들이 있으면 덩달아 나도 신이 난다. 처음엔 힘들어하다가 막판에 잠재력을 쑥 펼쳐보이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감동하는 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칭찬의 중요성을 정말 매번 느낀다. 위에 쪽지를 보낸 아이도 그랬지만, 한두번은 칭찬을 해주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괜히 해보는 소리겠거니 싶은걸까? 그럴 땐 뭉뚱그려 참 잘했어요, 라는 칭찬은 안통한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어느 문장과 표현이 마음에 드는지 콕 찝어 말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걸 기억했다가 다음번에 또 이어서 칭찬해주고... 아 물론, 강사 주제에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 게 쉽진 않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그야말로 허튼짓일 수도 있고.... 

지금 하는 번역 일을 사랑하지만 힘들고 지칠 때면 그 옛날에 첫 직장 다니지 말고 그냥 교사를 했어야하는 건데, 그럼 지금쯤 당당히 명예퇴직을 하고 연금으로 먹고 살텐데,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으나 이렇게 유사 교사체험을 한 뒤론 그 생각이 쏙 들어갔다. 일주일에 몇 시간 수업 준비로도 이렇게 진이 빠지는데;; 난 아마 뼈를 갈아넣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는 교사 선배들의 짐작이 맞을 것 같다. 학교 선생님들 모두 존경스럽다!

암튼 본업도 마감 못 맞추고 헐떡대면서, 딴짓하는 건 괜한 뻘짓 아닌가 싶다가도 또 어디가서 이런 보람을 느껴보겠나 싶은 마음에 2021년에도 결국 또 자유학년제 수업을 맡기로 했다. 번역가를 직업으로 추천하기에는 사실 현실적으로 너무도 막막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중1 아이들을 데리고 번역 수업을 해보면 해마다 장래에 번역가가 되어볼까 흥미가 생겼다는 아이들이 몇명씩 꼭 나온다. ㅋㅋ 해마다 영업 성공?! 그 아이들이 진짜로 번역가가 될지 그건 장담 못하지만, 그럴 생각에 글쓰기와 책읽기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나로선 더 바랄 게 없다. 올해는 또 어떤 개성 넘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 두려움 반 설렘 반이지만 온라인 수업 노하우도 얼추 생겼겠다 작년보다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는 수업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래 버려두었던 블로그에 또 이렇게 끄적거리는 이유는 분명 또 일이 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마감에 왜 일이 하기 싫을까. ㅠ.ㅠ 어쨌거나 뿌듯하고 벅찼던 느낌이 다 휘발되기 전에 이렇게라도 남겨두게 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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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아니 조울증 환자 엄마를 어려서부터 지켜보며, 처음엔 아픈 엄마가 낯설고 무서웠고 사춘기땐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상황에 짜증이 났었고, 그다음엔 나도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서 엄마처럼 정신과 환자가 될까봐 더럭 겁이 났다.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이 있을 때도 아니었으니 책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은 얻기 어려웠다. 시기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 나는 결국 엄마의 주치의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우울증도 유전이 되나요?

엄마를 10년도 넘게 담당하던 민OO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유전되지 않으니까 염려 말라고 단박에 나를 안심시켰더랬다. 전문가의 확인으로 내심 안도했던 시기가 몇년은 되었던가? 그러나 그 이후 우울증 및 조울증과 신경증에 관한 책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기 시작했고, 저자마다 조금씩 주장은 달랐지만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 역시 유전적 요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유전적 요인에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서 병이 촉발되는 건 모든 질병이 다 똑같단 얘기.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불안증에 시달리는 딸 이야기가 나온다. 지은이는 외할아버지로부터 공황장애와 불안증, 우울 인자를 물려받았다지 아마. 토할까바 두려워 유치원 등원하는 게 공포스러웠던 걸 시작으로 저자의 불안증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하던데, 울 엄마의 조울증 투병 역사도 만만치 않다. 다만 엄마와 외가 친척들이 아는 한 울 엄마 이전에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는 (옛날 사람들 표현대로라면 '미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부디 엄마의 병은 유전이 아니고, 그러므로 우리 삼남매도 비록 엄마의 DNA를 물려받았더라도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기를 빌고 있다. 하긴 중년까지 잘 버텼으면 앞으로도 괜찮을까?

째뜬 난 엄마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싶진 않아서 어려서부터 방어기재를 작동시켰던 것 같다. 엄마처럼 하고픈 말을 무조건 참지는 말아야지. 남들 시선과 의견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지. 예민함이 하늘을 찌를 때면 에라 모르겠다, 다 놓아버리는 연습도 해야지. 화병이 나도록 착한 사람 노릇만 하지는 말아야지. 때로는 사납고 표독스러운 쌈닭이 되어야지. 그리고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까발려야지...

어쩌면 남들에게 부담스러운 정보였을지 몰라도 난 누구를 만나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할 전망이 보이는 이들에겐 내가 처한 상황, 특히 엄마의 조울증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던 것 같다. 워낙 자주 앓으셔서 ^^; 아픈 엄마를 온 가족이 번갈아 돌보려면 주변에 티를 안 낼 수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을 거다. 상태가 나빠진 엄마를 혼자 둘 수가 없을 땐 약속을 펑크내야 한다든지, 예약해둔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일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우울증이나 조울증, 공황장애 환자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덜했던 시절부터 환자의 가족인 난 아무래도 주변에 좀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의 상태를 발견하는 '촉'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불면과 무기력감, 자학하는 태도까지 보이는 친구나 지인을 보면 열심히 설득해 병원진료를 받게 했다. 우울증 약으로 도움 받는 게 뭐가 어때서? 우울증은 뇌에서 나쁜 물질이 나와서, 혹은 좋은 물질이 안 나와서 그러는 거래! 초기에 빨리 시작하면 약으로 완치 된대! 일단 병원에 가보자...

돌이켜보면 그들 가운데서 부모님이나 조부님 세대에 증상을 앓은 분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그저 주로 마음 약하고 소심하고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약을 계속 먹고 치료를 받아도 완치는 되지 못해 혈압약이나 당뇨약 먹듯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는 지인도 있고, 말끔히 우울증을 떨쳐버리고 언제 그랬었냐는 듯 씩씩하게 잘 사는 지인도 있고, 처방된 약을 먹었다 말았다가 치료에 갈팡질팡하는 지인도 있다. 

기비혼을 가리지 않는 나의 우울증 환자 지인들도 혹시나 자식에게 유전될까봐 걱정하고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집안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고, 확실히 우울감은 전염되기 쉽다는 거다. 점점 와병 기간이 길어지는 엄마 옆에서 시달리다 보면 나 역시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다. 힘들고 슬프고 암울하고...

작년 늦가을부터 겨우내 엄마 상태가 나빠져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내 마감까지 겹쳐 심신이 완전히 피폐해졌을 때 설상가상 다리 통증이 생겼고, 홀로 한밤중에 응급실에 찾아가 덜컥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땐 나의 정신 건강 상태도 정말 말이 아니었다. 엄마는 계속 정신이 온전치 않아 사사건건 내가 보살펴드려야 하는데, 종일 진통제 기운에 누워있다가 절뚝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징징 아파 울면서 끼니를 챙기노라면 어휴... 짐스러운 엄마랑 나랑 둘이 이 세상에서 확 없어져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물론 곧바로 어머 이거 우울증 환자의 반응인데! 반성했지만... 

당연히 조울증의 유전 여부에 대해선 의학전문가도 아닌 내가 결론을 내릴 순 없다. 다만 내가 현실에서 겪고 느껴왔던 경험상 100% 유전되진 않겠지만 유전인자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겠다 정도?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찾고 무거운 마음은 어디든 털어놓고 주변에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고... 지금껏 노력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헤쳐나가면 되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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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대림미술관 전시 초대권이 있다고 해서,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가자 가자 날을 잡았다. 봄맞이도 할 겸, 전시를 보고나선 서촌을 거닐다 수성동 계곡과 인왕산 둘레길도 걷자고 했다. 문제는 여럿이 시간을 조율한 날짜가 '일요일'이었다는 것.

유명한 대규모 기획전시도 아니고 뭐 어떻겠어 막연히 짐작했으나 그건 우리의 오산. ㅠ.ㅠ 일요일 오후 대림미술관은 초대권교환부터 입장까지 구비구비 줄을 서서 3, 40분 기다렸다 들어가야했다. 전시장 내부도 당연히 사람들로 바글바글... 앞사람과 간격 유지하며 관람해달라고 진행요원들이 간간이 막 채근하는 분위기였다. 아이고...

째뜬 공짜란 말에 무슨 전시인줄도 모르고 무작정 보러간 거 치고는 몹시 뿌듯한 관람이었다. 5천원 내고(회원할인 받으면 3천원) 보라고 해도 아깝지 않았을 것 같았다.

올해의 '컬러'가 '로즈쿼츠'(Rose Quartz)와 '세레니티'(Serenity)라는 요상한 이름의 분홍색과 하늘색이란 걸 혹시들 아시는지? 해마다 패션계와 디자인계에서 유행할(?) 색깔을 미리 지정하는 건지 어쩐지 암튼 매년 연초가 되면 그해의 색깔이 발표되고, 여러 브랜드와 디자인 업체들은 또 색깔로 열심히 상품을 만들어 선을 보인다. 과연 얼마나 팔리는지는 내 알바가 아니고... ^^ 

위 사진 맨 위에 적힌 '팬톤'이라는 회사가 바로 해마다 색을 정하는 곳인데, 색과 관련된 디자인과 패션계에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색상을 관장(?? 맞는 말인가 모르겠다;;)한다. 미묘한 톤과 채도와 명도가 다른 색깔에 대해서 서로 설명하고 전달할 때 기준이 되는 셈.

소싯적 나의 첫 회사가 미국 의류회사였던 관계로 사무실에 팬톤 컬러북이 있었고, 뉴욕에서도 디자이너가 샘플을 의뢰한다든지 나염, 염색 색깔을 지시할 때 '페덱스 상자'에 고이고이 담아 '오리지널 컬러'라며 보내오던 우표만한 컬러칩이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지, 또 색깔 이름은 얼마나 영롱하고 기발한지 ㅋㅋ 심심할 땐 컬러북 넘겨보며 괜히 시간을 때우기도 했었다.

암튼... 그 추억의 팬톤 컬러북 선망은 아직도 종종 수십만원, 백수십만원에 이르는 팬톤 컬러북 시리즈를 '쓸데없이'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키는 바.... 가끔 팬톤 코리아 홈페이지에 가서 괜히 이것저것 펼쳐보는 신세다 내가.

아 근데!

대림 미술관에 갔더니만 뙇~~!! 마침 팬톤 컬러와 연계된 색채와 디자인 전시가 아닌가!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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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면 궁궐에서 정식으로 봉사를 시작한지 만 2년이 된다.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올해 들어선 정말 회의가 많았고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시간 빼앗기고 몸 축내면서 나는 봉사랍시고 과연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면 도무지 명쾌한 답이 안나오니 원... (장점과 단점 목록을 만든지 오래 됐다. -_-;) 

암튼 계속 툴툴거리면서도 왜 '옷 욕심'은 끝이 없는지... ㅋㅋ 화려한 전통한복을 떨쳐입을 순 없지만 이왕이면 그럴싸한, 나름 예쁜 생할한복이라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속으론 버럭~ 한다. 아니 내가 왜 이런 데 쓸데없는(?) 돈을 써야하지? 한달에 두번 자원봉사 하려고 수십만원 들여서 따로 옷을 사야하다니 이 무슨... +_+

째뜬 그래서 계절별로 돌려막기하듯 번갈아 입었던 생활한복과 내가 고쳐입은 한복으로 버티며, 이렇게 투덜거리다가 곧 그만둘지 모르니 한복에는 더 이상 투자하지 말자, 생각했으나 또 인간이 간사해서 금방 다른 마음이 들었다. 아니 왜... 추석이랑 설날에 활용해서 입으면 되잖아? ㅎㅎ (잘해봤자 한정식집 사장님 같겠지만 ㅠ.ㅠ) 물론 거기에는 일본처럼 평소에도 종종 길거리에 한복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괜한 소망도 한 자락 거들었다. 결혼식장이나 칠순잔치에만 입는 옷이 아니라, 도나기를 아십니까 접근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입었던 머슴 한복 말고, 좀 예쁘고 화사한 평상복으로 한복을 입는 세상이 오면 좀 좋은가 말이다.

지난 여름엔 특히 일도 밀려 바쁜 데다 집안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다. 좀 멀리 겉에서 볼 땐 멀쩡해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드러나는 인간들의 단점도 환멸스럽고 나 역시 까칠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독설을 퍼붓게 되고... ㅋㅋ 

그러다가 또 왜 마음을 다잡았는지는 기억도 잘 나질 않는데, 암튼 몇몇 선생님들한테 미안한 마음(아니 왜?)이 들면서, 3년은 버텨보자, 뭐 이런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좀 더 견뎌보자 결정하자마자 내가 한 짓이라는 게 덜컥 옷부터 새로 사는 거였다. 관두기 아깝게... ㅋ



그러나 새로 산 생활한복의 단점은 아무래도 한복스러워서 궁궐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는 것. ㅠ.ㅠ (난 사람들이 시선 집중이 무섭다. 일종의 무대공포증?) 싸들고 다니면서 갈아입는 한복 말고, 그냥 평소에도 입어보겠다고 장만했지만 저러고 집을 나서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ㅎ

째뜬 그래서 그걸 핑계로 난 또 집에 있는 평상복을 활용해 입을 수 있는(이미 랩스커트와 마 블라우스는 활용중이므로) 아이디어에 골몰했고, 원피스에다가 한복 조끼를 걸쳐입겠다는 결론에 도달, 미친듯이 검색에 나섰다. 하지만 생활한복 파는데를 아무리 뒤져봐도 내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과 색깔은 없어! 내 원피스가 연한 팥죽색이라서 더더욱 색깔 맞추기도 어려웠고, 기성복을 사면 한참 길이를 자르고 품도 많이 줄여야했는데 그나마도 비슷한 질감까지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또 다시 나의 결론은? 까짓것 내가만들어 입지 뭐. 

대체 왜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덜컥 하게 되었는지 원.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 가사시간에 만들어본 한복의 경험과 마고자를 한복 저고리로 고쳐입었던 경험이 쓸데없이 무한한 자신감을 주었던 것 같다. 게다가 유튜브를 뒤져보면 한복 바느질 영상이 종종 보이기도! (깃 바느질은 정말로 그 영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분께 감사~) 

해서 상상으로 어울릴거라 정한 초콜릿 색으로 옷감을 인터넷으로 주문한 뒤, 마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잉여짓은 바쁠 때 해야 제격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너무 난감한 상황이라... 

드디어 원고를 넘기고 나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시체놀이하듯 잠을 몰아잔 뒤, 몇주 전에 날아온 옷감을 자르고 오리고... 얼추 상상 속의 그 <당의 조끼>가 완성되었다. ^__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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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잉여짓

놀잇감 2014. 7. 18. 17:24

등산용품 선망에 이어 요번엔 또 생활한복 타령이다. 등산이든 요가든 낚시든, 뭘 하든 상관없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전에 그와 관련된 옷과 장비부터 사고보는 사람들.. 나도 이젠 절대로 손가락질 못하겠다. 그 사람들이 옷 욕심이나 허세가 많은 게 아니고,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 한달에 한두번도 안되는 기회를 바라며 끊임없이 쓸데없이 계속해서 등산복과 생활한복에 눈독을 들이며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고 있으니 으휴... 그나마 알량한 수입과 지출 규모를 따져서 막 질러대진 않으니 다행이랄까.


궁궐 안내 나가는 날 입는 생활한복도 이제 계절이 완전히 한바퀴 돌았으니 분명 새로이 더 옷을 사지 않아도 입을 옷은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너무 머슴스럽지 않으면서 예쁜... 그러나 너무 거추장스럽지는 않은 한복에 대한 로망은 좀체 꺼지질 않는다. 평소 입는 옷도 남들의 시선보다는 혼자만의 자기만족이 더 큰 기준인데;; 작년 여름 수습기간 중에 덜컥 싼맛에 장만한 여름 옷은 소재만 마일뿐, 사실 그냥 긴 통치마에 매듭단추가 달린 블라우스 형태였다. 푹푹 찌는 폭염엔 그 정도로도 나름의 복장규정('지킴이는 활동시'최소한' 생활한복을 입고 안내하여한다'는)에 위배되진 않는 모양이지만, 도통 한복스럽지 않다며 나 혼자 마음에 안들어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여름도 다 가는 9월쯤 하얀 적삼 비스무리한 걸 하나 인터넷으로 사들였다. 


정식 옷고름은 아니지만 고름 비슷하게 변형된 리본도 달려있고 (요즘은 또 일반 한복도 옷고름이 짧고 얄상한 게 유행이다) 한복여밈 같은 깃선이며 홈질로 마무리해놓은 장식도 마음에 들었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하얀색이 시원해보이지...


생활한복류는 아무래도 젊은사람들이 입는 옷이 아니다보니 小자가 66 사이즈부터 시작된다. 해서 막상 택배온 옷을 입어보니 꼭 남의 걸 얻어입은 듯 허수아비 같았다.. ㅋㅋ

얼른 품도 줄이고 소매통도 안으로 꿰매 좁히고 뒤쪽으로  

허리부분에 대충 다아트를 넣어 어벙벙한 느낌을 줄였다.

그러고 야심차게 궁에 입고 갔더니만....


-_-; 반응이 별로였다. 일단 형광 하얀색이라 푸르딩딩한 기운이 도는 흰옷이랑 나랑 별로 안어울린다는 총평. 게다가 또 내가 뭐 화장을 막 진하게 하는 편도 아니고 립스틱도 바르는 둥 마는둥.. 하다보니 딱 환자복 입은 아픈 사람 같단다. (거울로 내가 봐도 그건 인정 ㅋㅋ 평소 흰색&검정 배색을 자주 입고 다니지만 그냥 티셔츠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역시 궁궐에선 화려한 색깔이 어울린다는 고수들의 조언. 결국 딱 한번 입고 더는 안입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올해 여름...  반드시 다려야 입을 수 있는 마블라우스 대신에 저 적삼(이름이 구김마 꽃적삼이던가;;)을 산 이유도 그냥 빨아서 말렸다가 대충 입으려던 거였는데! 싶어지면서 또 다시 인터넷을 눈빠지게 검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은 다시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색깔로 또 한번 사 볼까 어쩔까 고민하다 퍼뜩 든 생각은, 염색을 해입자!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천연염색과 관련된 정보를 폭풍검색, 비트로 염색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홍색과 보라색의 중간쯤으로 물이 얼마나 예쁘게 들까 마구 기대하면서... 


일부러 재래시장에 가서 비트 두 덩이를 사다가 대충 썰어 믹서기로 갈아서 매염제로 필요하다는 백반까지 함께 넣어  천연염료를 만든 뒤 신나게 옷감에 비벼댔다. 그러나 핏빛처럼 진했던 비트의 진분홍색은 백반을 섞으니 약간 갈변하는 듯? 어쨌거나 손목 아프게 주물러대다가 (30분간 담가 주무르라고 어느 블로그에;;) 대강 물이 다 든 것 같아 좀 꾸둑꾸둑 말려 염료를 고착시킨 뒤에(그러는 과정에 여기저기 얼룩덜룩 ㅋㅋㅋ 그러나 그게 천연염색의 묘미지.. 라며 내심 뿌듯;;) 물에 헹궜다.

그런데 으악... 헹구는 과정에서 염료 물이 다 빠지네그려!  ㅠ.ㅠ


결국 1차 천연염색은 실패로 판명났다. 비트든 포도든 양파든 천연염색 매염제는 '백반'이라고 하던 모든 블로그들이 다 '뻥'이었던 거냐! 나 원참... 나의 옷은 저 형광 하얀색에서 하도 오래 입어 더럽게 때 탄 흰색으로 돌변했을 뿐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다시 폭풍검색을 했다. 이번엔 실제로 본인이 천연염색을 해본 건지 어디선가 풍월로 들은 걸 옮겨적어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블로그 포스팅은 다 무시.. 주로 실패담을 읽었다. 신나게 염료 물 들였다가 들은 풍월대로 매염제로 백반을 사용했더니 색이 다 빠졌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유가 뭘까. 백반 물의 농도가 중요한가? 


그러다 유레카!  천연염료에 관해 쓴 논문을 발견했다. 95도로 30분간 끓여 만든 각종 천연염료의 발색 과정을 옷감의 종류(면, 마, 견)에 따라 매염제(백반, 소금, 식초, 사용 안함) 별로, 고정 상태와 착색 정도를 담은 내용이었다. 결론은 견직물이 효과가 제일 좋고, 염색을 세 차례 실시한 결과, 착색효과는 매염제를 썼을 때나 안썼을 때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 나중에 빨아도 물이 안빠진단다. 옳거니.


백반도 남았겠다. 2차 시도에 돌입. 다시 비트를 사왔다. 백반의 농도가 중요할지 모르니깐 뜨거운 물에 10% 용액을 대체로 맞춰 준비해놓고 잘게 자른 비트를 망에 담아 푹푹 끓였다. 아 색깔 좋고... 그러나 모든 흰색 옷감에 형광증백제가 들어가기 때문이겠지만 쉽사리 그 선연한 진분홍색깔이 저고리에 침투하진 못했다. 어쨌든 염료 30분, 매염제 30분씩 담그는 절차를 3번 하면 되렸다....  허걱. 기껏 분홍색으로 물든 저고리를 백반물에 담갔더니 다시 흰색으로 환원! ㅠ.ㅠ 열받아서 백반물은 확 쏟아버렸다. 다시 물에 헹궈낸 뒤엔 그냥 비트물에 소금 좀 넣고(어디선가 TV에서 본 적 있다. 소금이 천연염료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던가) 4, 5시간 푹 담궈놓았다. 논문에서 매염제 안써도 효과는 똑같다고 했으니깐...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옷값에 비트값에 쓸데없이 돈만 엄청 버렸구나 싶은 낭패감이 들었다. 잘못하면 염료 산화되서 색깔 완전 이상해진다던데 에라 모르겠다. 쳇. 간간이 들여다보니 분명 염색물은 진자주색인데 옷감 색은 분홍도 아니고 갈색도 아니고 요상망측. ㅋㅋㅋ


그쯤했으면 최선을 다했다 싶어 그나마 누런 흰색은 모면한 저고리를 꺼내 깨끗한 물에 주물러 헹궜다. 신기하게도 보라자주 기운이 돌던 저고리가 헹구면 헹굴수록 갈색으로... 그나마 얼룩덜룩했던 1차 염색의 후유증은 다 사라졌다. 그럼 됐지 뭐... 

옷걸이에 걸려 말렸더니, 그럴싸한 베이지색이 되었고, 원래 옷감에 든 꽃무늬 부분은 은은하게 약간 더 갈변한 느낌. 아싸~


결국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천연염색 저고리가 완성되었다. ^^; 칙칙하다고 누가 뭐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 흡족하면 됐지! 볏짚 색이랄지, 베이지색으로 변한 저고리엔 진밤색 치마가 제격(생활한복 치마 아니고 시원해서 여름마다 내가 애용하는, 무인양품에서 산 긴 랩스커트를 활용했다)이라며 희희낙락 지난 활동일에 입고 다녔다. 이번엔 다들 칭찬해주는 분위기... 색깔 은은하고 예쁘네...라면서. 


그러고 보니 또 다시 커지는 욕심... 이왕이면 리본 고름을 다른 색으로 달고 시프다... 어흑.. 

결국 며칠 전엔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 대로 오밤중에 고름만 떼어서 패브릭 마커로 칠을 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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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서전

투덜일기 2014. 6. 19. 23:46

와우북페스티벌 말고는 '도서전'이라 이름 붙인 대규모 행사장엘 가본지 한참되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노상 말이 '국제'지 프랑크프루트나 시카고에서 봤던 국제도서전과는 정말 비교도 되지 않는 소규모 국내잔치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주로 아동도서 할인전에 그치고 마는 꼬라지를 하도 많이 봐서, 언제부턴가는 아예 안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었다. (오늘로서 과거형이다 ㅋㅋ)


도대체 몇년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암튼 오늘 도서전 당번이니 놀러오라는 문자를 어제 오후엔가 받고는 웬일인지 혹했다. 진짜로 도서전에 혹한건지 코엑스 갔다가 강남역 올케의 옷가게 들를 생각에 혹했는지 암튼 그건 그냥 잘 모르는 걸로 넘어가기로 하자. 하여간 역시나 수년만이 틀림없는 삼성동 코엑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온통 공사판이잖아!


상경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강북촌년이 오랜만에 강남 번화가에 가면 꼭 그렇게 된다) 티를 팍팍 내면서 도서전이 열리는 전시장을 찾았다가 또 놀랐다. 아니 입장료를 받아??? 언제부터? 미친 거 아닌가? -_-" 그것도 3천원씩이나!! 아 진짜, 티켓값 아까워서 안들어가고 싶었는데 사들고 간 빵이랑 음료수가 아까워서 참았다.


듣자하니 사전등록제로 미리 신청을 했거나, 이벤트 같은 거에 당첨됐거나 코엑스 멤버(? 뭐하는 건지는 모름)거나 출판계, 언론계 종사자들은 공짜로 출입도 가능한 모양이던데 아 뭐야! 하여간에 티켓을 사야하는 나는 짜증이 났다. 공짜로 어서옵쇼 해도 흥행이 될까말까, 고민해야 하는 처지인 것 같은데 아주 잘들 나셨다. 나를 부른 출판계 종사자에게 들으니, 서울 도서전에서 입장료 받은지 꽤 됐단다. 하기야 예전에 무료입장일 땐, 아주 더 도떼기 시장이었고 공짜로 나눠주는 캔버스백이나 기념품 가져가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엄청 많긴 했다. 정신 사나워서 별로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이번엔 무료 홍보물 나눠주는 데는 별로 없는 듯. 똑같은 물건이나 부채 들고 돌아댕기는 사람 못본 것 같다.


째뜬 혹시 책을 사게될지도 모른다 싶어서 배낭을 매고가긴 했지만, 지인과 헤어지고 나자 입장료 3천원의 본전을 뽑아야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ㅠ.ㅠ 결국 가을에 와우북페스티벌 하면 가서 사야지 마음먹었던, 컬러화보 많이 들어간 비주얼용 자료도서를 마구 골랐다. 30퍼센트 할인에다 7만원 넘으면 무료택배 서비스...  에효.. 내가 그렇지 뭐.


지난번 중고책들을 54권 정리하고 잠시나마 뿌듯해했으나 오늘의 지름으로 또 새책이 10권 생겼다. 그나마 시간이 없어서 후딱 전시장을 나왔으니 망정이지 좀 더 돌아다녔더라면 3천원 본전 생각하다 계속 질러댔을지도 모르겠다. 브로셔를 보니 저자와의 대화에서 몇몇 호기심이 가는 인물들이 있긴 하지만, 절대 또 가지 않을 걸 안다. 입장권 한번 팔아준 것도 억울한데!


아무려나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적어두자면 서울도서전은 22일까지. 평일엔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토요일은 8시. 마지막날 일요일은 5시에 끝난다고. 대체로 신구간을 30% 할인해서 살 수 있고, 반품되어 온 책들을 저가에 판매하기도 한다. 전시 부스를 다 안돌아봐서 무슨 출판사가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대형 출판사는  당연히 다 나왔고 (입구에 다 몰려있다) 아동서적 출판사도 빠지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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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책보따리 2013. 11. 25. 22:28

동네 도서관의 2달 휴관을 맞아 대출도서를 30권으로 늘려주겠다는 달콤한(대체 왜 달콤하다고 느꼈는지??) 제안에 덜컥 한꺼번에 빌려왔던 책 27권. 그간 두어권을 빼놓곤 계속 처음 가져왔던 그대로 차곡차곡 쌓인 채 먼지만 뒤덮고 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12월초라던 예정개관일을 두 주일이나 앞당겼다는 도서관의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다행히 반납일이 덩달아 당겨진 건 아니고...

 

휴관중에도 다 읽은 책은 미리미리 반납해 한꺼번에 정리 업무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해달라는 엄살어린 직원들의 당부도 들었거늘... 아무래도 반납일 통보 문자 날아오고서야 한꺼번에 또 이고지고들고 낑낑대며 책 가져가 반납하게 생겼다. 어차피 대출 연기는 대여섯 권밖에 안될 테고... 대출 연기한다고 또 다 읽는다는 보장도 없고...   대체 난 무슨 심보로 그런 턱도 없는 욕심을 부렸던 걸까??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때는 왜 더 책이 읽고 싶은지... 정말이지 한글로 된 책을 부담없이 좀 읽고 싶음 마음이 굴뚝. 이번 일이 끝나면 기필코 다시 심신을 살찌우는 독서에 힘써보리라(라고 결심하지만 밀린 다음 작업 스케줄은 어쩔거냐;;) ㅠ.ㅠ 무한한 아쉬움에 대출목록 긁어왔다. 흑... 2013년 마무리는 밀란 쿤데라로 하고 싶었는데... 과연 이 중에 한권이라도 읽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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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노인들은 대부분 머리를 새카맣게 염색해 10년쯤 젊어보이는 쪽을 택하는 게 대세지만, 왕비마마는 염색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이보다 더 늙게(!) 보는 경우가 많아 가끔 속상해하시면서도, 염색비 안들어 좋고 머릿결 좋아져서 좋단다. 정말로 몇달에 한번씩 미용실에서 염색했을 땐, 가느다란 머리칼이 파시시 까슬까슬 비비면 금세라도 다 바스라질 것처럼 윤기가 없더니, 염색 안한 이후엔 머리칼도 굵어지고 윤기도 생겨났다. 완벽한 백발이 아니라서 어떻게 보면 좀 지저분해 보이는 은발이지만, 다른 할머니들의 까슬까슬 파시시한 인공적인 검은 머리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고 내가 보기에도 마음에 든다.

 

나 역시 염색을 안한지 10년쯤 된 것 같다. 예전엔 나도 검정머리는 고집스럽고 촌스러워 보인다는 미용사의 권유에 따라 지조 없이 밝은 갈색, 붉은 갈색, 자연 갈색 돌아가며 머리칼을 염색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다 귀찮아졌다. 염색을 많이 하면 모발의 유전자가 변형된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도 신경이 안 쓰인건 아니지만 (그건 파마도 마찬가지라던데 뭐;;), 보통 6개월씩 미용실을 안가고 앞머리만 집에서 대강 자르곤 하는 나에게 두세달 만에 다시 모근을 물들여줘야 하는 염색은 너무 귀찮은 일. 비용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고, 왕비마마처럼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굳어졌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물론 남들에 비해 좀 늦게 세기 시작한 머리털 덕분이었다. 주변을 보면 삼삽대에 이미 수많은 새치가 나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염색을 한다는 이도 있고, 염색을 안하면 스컹크 수준이라 주변에서(특히 배우자와 아이들이) 더 질색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사십대 들어서 한두 개씩 새치가 나는 정도여서, 비록 머리숱이 지극히 적음에도 새치가 보이면 뽑아버리는 쪽이었다. 그런 내게 친구들은 머리칼 한올이 소중한데 그걸 왜 뽑느냐고! 호통을 쳤다. -_-; 더욱이 나는 이십대부터 정수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속알머리 없는 사람이었거늘.

 

허나 오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작년부터는 나에게도 흰머리가 '다량으로' 출몰하기 시작했다. 끝은 검은데 중간부터 흰머리인 것도 보이고(모근이 드디어 늙은 거다 ㅠ.ㅠ) 아예 흰머리로 나는 것들도 양쪽 옆통수에 각각 열개씩 출현! 얼마 전엔 정수리에 바짝 서서 난 흰머리를 왕비마마가 뽑아주셨다. 옆으로 누워있으면 그냥 놔두겠는데 튀어나와서 보기 싫다고...

 

우리는 원래도 잡곡밥을 먹어왔지만,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염색약 알레르기 때문에 염색을 포기한 이후로는 서리태와 흑미를 꼭 밥에 넣어 먹어왔고, 서리태 콩자반도 밑반찬으로 자주 등장한다. 검은콩, 흑미, 오징어 먹물 따위의 블랙푸드를 먹으면 좋다니까 먹긴 하면서도 정말로 검은머리가 나는데 도움이 되는지 어쩐지는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놀랍게도 왕비마마는 작년부터 머리칼이 다시 검어지기 시작했다. 이마 위쪽 머리는 거의 다 새하얬었는데 거기서부터 검은머리칼이 사이사이 나왔고, 귀밑머리 부분도 다시 검게 변하는 중. 왕비마마는 내가 먹거리를 잘해먹여서 회춘하는가보다고 (원래 노인들의 흰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피부도 젊어지는 회춘은 90살 넘어야 하는 거라고 들었다;;) 좋아하신다. 검게 변해가고 있는 왕비마마의 은발은 동네 미용사 아줌마도 인정하는 사실.

 

그런데 똑같이 서리태, 흑미 넣은 잡곡밥 먹고 콩자반은 엄마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데(콩을 잘먹어 '콩순이'란 별명도 있었던 나는 어린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콩자반을 노상 싸줘도 좋아했었다) 왜 나는 흰머리가 점점 많아지고 왕비마마는 검은머리가 새로이 나는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이듦을 받아들이겠다며, 앞으로 흰머리가 많이 나도 염색은 안하고 버티겠다면서 흰머리가 보이는 족족 뽑아버리고 싶은 나의 이 심보는 또 뭔가? ㅠ.ㅠ

 

머리칼 한올한올이 소중한 나이란 건 나도 알지만, 자꾸 뽑아버리면 모근이 스무번쯤 머리칼을 내놓다가 결국 말라죽고 만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들었지만, 당분간은 흰머리가 보이는대로 족족 소탕하고 말 기세다. 흰머리 자꾸 난다고 징징대는 나에게 머잖아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그나마 여지껏 먹어온 서리태와 흑미 효과를 본 것일지 모른다고, 어쩌면 친할머니를 닮아서 (식성은 확실히 닮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왕비마마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위로를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남들과의 비교우위로는 성에 차질 않는다. 중년 이후의 삶이란 확실히 심신의 늙어감에 적응하는 과정인 듯한데, 노안도 그렇고 흰머리도 그렇고 적응과 체념보다는 버럭 화가 나고 슬퍼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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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찌 욕심

놀잇감 2012. 9. 4. 17:50

귀걸이, 팔찌, 반지. 이 셋은 큰 돈 안 들이고 소소한 소비욕과 흡족함이 필요할 때 내가 주로 선택하는 품목인 것 같다. 반면에 목걸이는 잘 안사게 된다. 한번 목에 걸면 몇달씩 안빼고 하는 스타일이라 살갗과 땀에 닿아도 괜찮은, 상대적으로 비싼 물건을 사야하니 그런듯. 하지만 워낙 '버리지 못하는 지병' 때문에 고가의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까마득한 옛날 길거리 좌판에서 겨우 몇천원 주고 사들인 것까지도 생김새만 멀쩡하면 죄다 껴안고 사는 탓에 새 액세서리를 사려면 우선은 죄책감부터 든다. 이거랑 비슷한 거 집에 있지 않나? 고만고만한 취향이 또 어딜 가는 것도 아니고...

 

귀걸이는 귓불 구멍이 걸핏하면 말썽을 부리는 통에 그나마 묵직한 디자인을 제외하다보니 그나마 좀 덜 사는 편이고, 반지도 막상 사들여봤자 끼고 나가려면 귀찮을 때가 많아서(손 씻을 때는 빼야 하는 요란한 디자인일수록 꼭 그렇다;) 최근 액세서리 구매는 팔찌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구슬팔찌 좀 주렁주렁 해줘야 시원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내 나름의 패션 철학(?).

 

여름마다 생일선물로는 꼭 한두개씩 팔찌를 골라 주변에 사달라고 종용하는 편인데, 막상 하고 다니는 팔찌는 거의 정해져 있고 최근에 산 것보다는 꼭 옛날 옛적에 선물 받아 오래 추억이 서린 물건을 애용하게 된다. 헌데 문제는 팔찌의 고무줄이 세월과 함께 녹아버린다는 것. ㅠ.ㅠ  20여년 전에 선물받은 호박 팔찌도 고무줄이 녹았으나 그건 구멍이 워낙 커 집에 있는 마끈으로 나름의 아이디어를 짜내 수선을 해서 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하지만 고무줄이 아니라 빡빡한 마끈을 저 마지막 구슬에 끼우는 걸 한 손으로 하려니 더운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라했던 옥돌 팔찌마저 고무줄이 늘어나자, 몇년째 여름마다 나는 수제 액세서리 파는 곳에 가면 팔찌를 사면서 슬쩍 팔찌용 고무줄을 좀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매몰차게도 다들 없다고! ㅠ.ㅠ

 

진기한 보석도 아니고, 구슬팔찌 정도야 고무줄 늘어지고 망가지면 휙 버리고 새것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죄다 못버리고 고쳐 쓰려고 모아두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에 가면 액세서리 재료 파는 곳이 있을 거야... 라면서 말이다. 그러기를 또 몇년... 물건 잘 못 버리는 것도 병이지만, 뭐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건 잘해도 막상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이 몹시 떨어지는 건 정말이지 나의 고질병이다. 오죽하면 컴퓨터도 바꾼다 바꾼다 1년도 넘게 고민만 하다 겨우겨우 샀을라고.

 

암튼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고민만 거듭하다 요번에 팔찌재료를 인터넷으로 파는 곳에서 쉽사리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예전 실고무줄처럼 잘 늘어나지도 않고 잘 풀리지도 않는 우레탄 고무줄! 그런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야 없는 일, 어느 틈엔가 나는 이런저런 색깔의 구슬들을 마구 카트에 담고 있었고... 마지막에 정신을 차려 정말로 엄선한 것들만 가뿐하게 결제를 했다. 하루만에 날아온 투명 고무줄과 구슬로 나는 또 구슬꿰기 놀이에 심취;;; 

외할머니가 생전에 중국 여행갔다 사다주셨기에 진짜 옥돌일 거라 굳게 믿고 있는(실제로 착용감이 완전 서늘하고 시원하다!), 제일 좋아하는 구슬팔찌도 고쳤고...

 

마끈으로 엮어놓고 나름 에스닉하다고 자평했으나 실용성은 떨어졌던 호박 팔찌도 다시 꿰고... 요번에 사들인 구슬도 죄다 팔찌로 만들었다! ^^;

 

요번에 내가 구입한 8~12mm 사이 각종 구슬은 50개 안팎 한 줄에 5천원~만원 정도. 더 비싼 구슬과 천연석도 많았지만,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색깔 위주로 사느라 애써 자제했다. 팔 굵은 울 엄니를 위해 터키석과 침수정(맨 위 갈색)은 각각 하나씩 특별히 좀 길게 만들어 드렸기에 남은 구슬이 좀 모자라지 않을까 했는데 남은 것만 엮어도 내 팔찌 만드는 덴 문제가 없었다. ㅎㅎ 재료비 3만원 정도 들여서 팔찌가 8개나 생긴 셈! 하지만 인건비랑 중간에 보석장식 같은 거까지 넣었을 재료비 따져보니 내가 그간 비싼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사곤 했던 몇만원짜리 팔찌값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내가 장사꾼이라도 팔찌 하나에 최소한 만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 ㅋ 아무래도 파는 팔찌는 고무줄 묶은 부분 안보이게 교묘하게 장식도 하나 정도 더 넣었던데 말이지...

 

암튼 망가진 엄니 염주 팔찌까지 죄다 고쳐드려야 해서 한밤중에 투명 고무줄에 일일이 구슬 꿰느라 눈알 빠지는 줄 알았다. +_+ 그러고는 엄니랑 세트 팔찌라며 희희낙락 하고 나갔다 들어와, 팔찌통에 다시 넣으며 보니 아.. 진짜 팔찌 많은데 왜 계속 욕심을 내나 싶다. 이런 자랑 겸 반성 포스팅 하고 나면 내년 여름부턴 팔찌 욕심 좀 덜 부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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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을 열다

놀잇감 2012. 2. 10. 00:45

이웃들의 운동화와 신발장 구경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도 사진 찍어 포스팅할까 생각은 했지만 막상 하려니 매우 귀찮았다. 헌데 마침 어제 조카한테 물려받은 운동화 두 켤레를 거실바닥에 널어놓고(올케가 손수 빤 운동화를 젖은 채로 싸주었다;;) 오갈 때마다 쳐다보고 있으려니 귀찮음을 극복할만한 호기심이 마구 동했다. 현관에 종종 신발을 네다섯 켤레 늘어놓고 살아서 엄마에게 종종 "니가 이멜다냐!"라는 핀잔을 듣는 바이지만, 정말로 나는 신발이 총 몇결레나 될까?

킥킥킥 웃음을 흘리며 현관에 나와있는 신발부터 시작해 양쪽 신발장을 오가며 운동화와 구두상자를 열고 꺼내 일일이 사진을 찍었다. 신발을 그리 자주 사는 건 아닌데도 많다고 느끼는 건 순전히 오래된 신발을 못 버리고 껴안고 있기 때문이지, 정말로 이멜다 기질이 강렬한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객관적인 판단은 이웃들에게 맡기겠음. ;-p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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