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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2.02 엄마들은 왜 그럴까 5
  2. 2020.01.17 다시 설날 고민
  3. 2018.01.02 2017년 Best - 한해 마무리 4
  4. 2017.02.05 하기 싫은 일 4
  5. 2016.10.16 편견 3
  6. 2016.10.08 어색함 5
  7. 2016.04.18 그냥 그렇다고 7
  8. 2015.09.29 물건 정리 원칙 6
  9. 2015.05.29 새 이웃 7
  10. 2012.03.29 관계 2

설날 차례 준비와 노동을 완전 독박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인지, 무심한 엄마한테 자꾸 짜증을 부리다가 버럭 화 나는 원인을 분석했다.

모든 엄마들에게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는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암튼 나와 (친구의) 엄마들은 왜 자식을 편애하는 걸까?! 특히 울 엄마는 당당하게 속 마음을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특히 아픈 손가락은 따로 있다고. 울 엄마의 경우 그건 막내아들이다. 시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직장생활을 병행 하느라 밤에만 끼고 살았던 나나 큰동생과 달리 막내는 출산부터(병원에서 출산한 첫째, 둘째가 너무 수월했는지 아니면 병원비를 아끼기 위함이었는지--아마도 둘 다 였겠지--셋째는 집에서 낳음) 육아를 완전히 도맡아 지켜보았을 터이니, 막내라는 필연적인 이유+오랜 애착이 더해져 편애의 당위성(?)은 아주 공고한 것으로 보인다.

함께 살면서 당연히 의견이 부딪칠 수밖에 없고 특히나 건강 관련하여 온종일 잔소리를 해대는 존재가 되어버린 나는 그냥 공기 같은 자식이고, 일주일에 한번 안부 전화를 하는 것이 효도의 전부인 막내아들은 너무나도 고맙고 기특한 존재다. 상대적으로 맏아들인 큰동생은 웬만해선 안부전화를 하지 않아서 늘 욕먹는 편. 전화보다 찾아뵙고 싶은데 그걸 못하는 게 미안해서 아예 전화도 못 건다는 것이 큰아들의 같잖은(그러나 전화기피증이 있는 나로선 일견 이해가 되는;;) 변명이다. 암튼 친구들의 엄마도 함께 살며 옆에서 온갖 수발 다 들고 궂은 일 도맡아 하는 자식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원래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에, 기막혀 한 적이 있다.

옆에선 아무리 잘해드려도 지지고볶는 애증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으니 미운털이 더 많이 박히기 일쑤이고, 1년에 몇번 안부전화라든지 삐쭉 얼굴 들이밀며 용돈 봉투 드리는 자식들은 너무나도 장하고 기특한 자식으로 생각되는 아이러니.

더욱이 나를 포함한 K장녀들의 희생은 너무도 당연시된다. 아까 저녁때 새삼 옛날 얘기를 끄집어내며 화를 냈던 건, 엄마가 당뇨관리에 신경 안쓰고 과일을 너무 많이 드신 것에 꼭지가 돌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도인지장애로 깜박깜박 본인이 먹은 걸 기억 못하는 상황에서 과일 탐닉은 더욱 심해져, 내가 정량 따져(사실 병원 의사들은 과일 금지! 토마토만 드시라고 함)  챙겨드렸는데도 그건 그것이고 당신은 게으른자의 최애과일인 귤을 자꾸만 꺼내드신다는 것이 문제다.

조울증이 극심했을 때 혈당관리가 아예 안 돼, 급성신부전증으로 중환자실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을 간신히 넘긴 전적이 있는 분이 왜 과일을 자꾸 꺼내먹냐고 신경질을 내다가, 그 황망했던 두달의 간병기가 떠올랐다. 물론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실 땐 울고불며 그저 무사히 깨어나시기만을 기원했었지만, 이후 일반병실로 옮겨 하지마비가 풀리기까지 온갖 수발을 2달 내내 하면서 나도 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었다. 처음엔 출판사에 양해를 구해 마감일을 연기하고 병간호에만 매달렸지만 그 기간이 2달까지 길어질 줄 아무도 몰랐고, 아버지가 매일 아침 병실에 와 저녁까지 곁을 지키는 애정을 쏟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보조침대 쪽잠은 2달 꼬박 내 차지였다. 낮엔 종종 후다닥 집에 가서 아빠 먹을 반찬 만들어놓고 와야했고, 이젠 좀 간병인을 쓰자는 동생들과 나의 제안에 아빠랑 엄마는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어떻게 네 엄마를 남의 손에 맡길 수가 있느냐고! (애처가인 아빠 본인도 옆에 앉아 엄마 손이나 쓰다듬을 뿐, 기저귀 갈기라든지 소변주머니 비우기라든지 이런 건 손도 못대셨음. 욕창까지 심하게 생긴 상황이라 안쓰럽고 무서워서 자긴 손을 댈 수가 없으시다고... +_+)

당시 큰동생 부인이 나를 안쓰러이 여겨 하룻밤 당번을 교대해주겠다고 나섰으나... 한달 만인가 집에 와서 처음으로 편한 잠을 자던 새벽 3시 30분. 엄마가 빨리 오라고 전화를 했더랬다. 밤새 아예 눕지도 못하고 병상을 지켰던 큰며느리가 도통 못 미더워서 안 되겠다나. 아직까지도 주변에 효녀로 손꼽히는 나도, 그 당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진리임을 깨달았다. 큰딸이자 외동딸이자 하나밖에 없는 만만한 프리랜서 싱글 자녀인 나의 희생과 봉사를 엄마 아빠가 어찌나 당연하게 여기시던지...  아들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퇴근해서 병문안만 와도 막 고마워하는데, 종일 붙어서 누렇게 떠가는 나한테는 고마워하지도 않고 말이지! (이런 상황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너 밖에 없다, 너 때문에 내가 산다.. 이따위 말은 사실 세뇌이자 부담 전가일 뿐, 감사의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울증 때문에 2달 내내 1, 2인실을 고집한 터라 한달에 천만원도 넘게 나왔던 병원비도 결국 절반은 내가 냈던 걸로 기억한다. 여행 가려고 모아둔 몫돈 있는 줄 어케 알고!

결국 엄마가 무사히 퇴원했던 건 감사한 일이지만 딸로서 몹시 마음 상했던 그 두 달의 간병기는 이후에도 화날 때 엄마 아빠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곤 했었는데, 부모님께 제대로 사과를 받았는지 기억이 영 나질 않는다. 좀 전에도 엄마한테 십수년전부터 엄마 입원할 때마다 당연히 간병한 나한테 왜 미안하고 고마워하지 않느냐고 따지니까.... 당신께선 기억에 없단다. 헐. 아니 그래서 내가 기억을 상기시켜드렸으면 미안하다고 하셔야죠. ㅠ.ㅠ 미안해, 안 미안해? 막 따져서 겨우 사과 받았다. 에효.

오빠만 하나 있는 친구라든지, 5남매중 막내만 남동생인 친구의 경우 어머니들의 편애는 더욱 극단적이다. 팔십이 넘은 친구 어머니는 아직도 오십대 후반인 이혼남 아들의 아침상을 정성스레 차리느라 새벽부터 친구를 가사도우미처럼 부리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넌 안 낳으려다가 낳았으니 고마워하라고 하신다든지, 무조건 오빠한테 잘해라고 하신다든지... ㅠ.ㅠ 외아들의 큰누나인 친구도 엄마를 안쓰러워하기는 하지만 매사에 아들아들 위하는 모습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아니 해외여행이든 국내여행이든 모시고 다니는 건 내 친구인데 왜 막내아들만 예뻐하시냐고! 

3, 40년대에 태어난 엄마들은 뼛속 깊이 남아선호사상이 박혀있고 본인도 어려서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가사노동에 시달려왔음에도 그게 부당하다고 여기기는커녕 다음 세대의 딸 역시 부가노동력으로 여기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열살무렵부터 명절이면 생선전, 동그랑땡에 밀가루 묻히는 것부터 배우며 잘한다, 잘한다는 말이 정말 칭찬인 줄 알고 송편빚기 만두빚기에 자원한 옛날의 어린 나를 돌이겨보면 너무도 억울하고 속상하다. 남동생들은 옆에서 딱지치기 팽이치기나 하고 놀았는데! 난 음식 거들지 않으면 어린 사촌동생들 포대기로 업고 달래주고 있었고 흑..  박수근의 <애기 업은 소녀>에서 울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사실은 그 친숙함에 내 모습도 담겨있기 때문일 수도!  

한껏 비뚤어져 있는 내 심정으로 판단컨대 확실히 엄마들은 자식들에 대해서 얼마간 편애를 한다. 편애 받는 자식들도 아픔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암튼 편애에서 제외된 자식들은, 그 중에서도 보살핌 노동력으로 당연시되는 딸들은 특히 억울하다. 연로한 병든 부모의 보살핌 노동에 대한 실태 조사에서 1순위는 비혼딸, 2순위는 기혼딸, 3순위는 비혼아들, 4순위는 기혼아들(사실은 며느리) 순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공통점이라고 들은듯. 어차피 후대 아이들은 부모 보살핌을 의무로 여기지도 않겠지만, 심정적으로 딸이 더 부모를 잘 모실 거라는 편견이 어쩌면 요즘 딸 선호사상과도 맞물리지 않나 싶어 소름이 끼친다. 편애하는 자식 따로 있고, 보살핌 노동자로 당첨되는 자식 따로 있고, 공평하지 못하다! 요즘 세대의 사상으로 봐서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싶지만, 후대의 딸들은 부디 더 자유롭기를... 나는 이미 이번 생에 글렀으니... 사랑하는 나의 조카 ㅈㅁ이 같은 딸들을 위해서 세상이 더 확확 바뀌기를 소망한다. 엄마들부터 제발 바뀌어야한다고! (설마 바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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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설날 고민

투덜일기 2020. 1. 17. 16:56

최대명절 설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또 마음이 무겁다. 아니, 올해는 심히 더 무겁다. 재작년 가족회의를 거쳐서 차례는 연1회, 설날에만 우리집에 모여 올리고 추석땐 성묘를 가서 묘제를 지내는 것으로 결론을 냈었다. 그런데 작년초에 갑자기 내가 아프게 되면서 설날 차례는 결국 못지냈다. 아파서 누웠다가 절뚝절뚝 거리면서 장도 보러 다니고 차례 음식 장만을 할 수는 없는 일. 결국 설날과 추석 연휴 모두 이불속에 누워 있거나, 편히 쉬면서 잘 보냈다.

1년 사이 나름 많은 일이 있었다. 남의 집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고부갈등이랄까 '시'자 붙은 사람들과 성 다른 며느리의 시각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사건들이 몇 차례 이어졌고, 내가 아무리 '페미니스트' 시누이로서 중간 역할을 잘한다고 해도 역시나 나도 '시'자가 붙은 당사자이기에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있었다.

암튼 여차저차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안기고 남은 결론은 서로 '영원히' 안 보고 사는 것. 두 며느리 중 한 며느리는 없는 셈 치고 살기로 했다. 상황을 정리하기까지 많이 괴로웠지만 사실 나 역시 그 편이 마음이 훨씬 홀가분하다. 명절만 해도 노동의 상당부분을 내가 더 많이 하고 신경도 내가 더 쓰며 배려한다고 살았는데, 이젠 육체적인 노고는 더 많아졌어도 정신적으로는 더 편해졌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머지 한 명의 며느리도 공감했다. 이제 그 사람 눈치 안봐도 되서 마음 놓인다고.

그러나 셋이 나눠 하던 음식 준비중 삼분의 2를 내가 도맡는다고 해도 (녹두전은 이미 공산품으로 나온 걸 여럿 먹어보고 골라서 이미 냉동실에 사다 두었음!), 남자들에게 설거지며 청소 관련 일을 더 시킨다고 해도, 남은 한 명의 며느리 입장에선 그 외 잡다한 명절 노동의 부담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과연 공평한가.

명절 이외에도 우리집엔 두번의 제사가 있다. 조부모님과 우리 아빠. 제사란 것이 음력으로 날짜를 따지다 보니 거의 매번 평일이기 때문에, 멀리 지방 본사로 내려가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아들 하나는 제사 때문에 상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편도 없는데 얼굴도 모르는 시조부모님의 제사를 위해 손주며느리가 음식장만을 해와야 하는 의무는 옳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최선의 결론은 95년과 96년에 차례로 돌아가신 조부모님 제사를 이제 정리하는 것이다. 25,6년이나 정성스레 모셨으니, 울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혼이 정말로 있다면, 이제 그만 되었다, 수고 했으니 그만해라... 라고 하시지 않을까. 여차하면 2007년에 돌아가신 아빠 제사도 그만둘 참이다. 10년 넘겨 지냈으면 할만큼 한 거 아닌가. 그것도 비혼의 딸이 노상 병들어 비실비실하는 엄마를 모시고 우리 집에서 주관하는 차례와 제사는 과연, 집안 모두의 평화를 위해 지속되어야 하는가?

특히나 요번 겨울은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불안정한 환자 케어와 명절 준비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 고난도의 미션 같다. 해서 요번 설날에 다들 모이면 또 한번 가족회의를 열어야겠다. 조부모님 제사는 이제 그만 지내기로 결정하는 것이 1안, 작은아버지가 모셔가서 조촐하게 지내시라고 하는 것이 2안. 몇달 전 심신 멀쩡하실 때 울 엄마가 제안했던 대로 절에다 얼마간의 돈을 내고 제사를 맡기는 것이 3안이다.

추석 차례를 없앨 때, 전통적으로 추석땐 다들 성묘만 한다더라, 집안 여자들의 노동이 너무 고달프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 가부장제의 화신이 깃들었는지 큰동생과 작은아버지는, 옛날엔 하루 종일 3끼 다 먹고 헤어졌던 때도 있는데, 식구도 많이 줄었는데 (그땐 아버지의 오촌당숙님네 식구들도 10명씩 몰려와서 세배하고 그랬었다) 뭐가 그리 힘들다고 그러냐고, 일년에 몇번이나 된다고 그러느냐고, 이젠 전날 와서 자는 것도 아니고 음식도 셋이 나눠서 하지 않느냐고 말해서, 내가 열이 뻗쳐 뒷목을 잡았었다.  결국 "1년에 한번이든, 3년에 한번이든 힘든 건 힘든 거지! 내가 이제 늙어서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에야, 아 그럼 그러든지... 억지 동의를 했던 거다.

그러니 요번에도 제사문제를 거론하면 또 어떤 의견과 난항에 부딪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확고한 건 내가 악역을 맡아서 매듭을 지으리라는 결심이다. 엊그제부터 엄마가 징징거리며 반복하는 말이, "착한 딸은 어디 가고 어디서 악독한 년이 와 있다"는 푸념이다. 맞다, 이제 나도 착한 딸 착한 누나 착한 조카 노릇은 그만하련다. 악독한 년, 싸난 년이 되어서 내 앞가림부터 해야지. 그렇지만 회의하자고 해놓고 강압적으로 통보하고 윽박지르는 느낌은 안 들도록, 부디 현명하고 지혜롭게 우아하게 내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통이 허락한 진짜 의무는 생각 않고 이름만 남은 권위만 내세우려는 늙고 젊은 가부장들도 제발 유연한 사고를 품어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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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기를 연말안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겨우겨우 달성한 뒤엔 곧이어 2017 베스트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감기몸살로 계속 빌빌댔다. 그나마 다행히 A형 독감은 아니어서 열은 오르지 않았고, 그냥 팔다리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쑤시고 아프고 눈과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슝슝 나오더니 콧물이 쏟아졌다. 사나흘 앓고 일어나 이제 좀 살만 한데, 아직은 머리가 멍해서 책도 안 읽히고 그래서 일도 못하겠고 꼼지락 꼼지락 쓸데없는 바느질을 좀 하다가 블로그 정리나 하자 싶어졌다.

일단 2017년 정리 포스팅을 다 해야, 나의 모든 유희와 여행 기록을 메모해 놓은 탁상 달력을 내다버릴 수 있다규~ ㅋㅋ




2017년에 본 공연

1. 콜드플레이 내한공연(4/16)

2. 뮤지컬 나폴레옹(9/20) - 임태경, 정선아, 김수용, 박송권 

콜드플레이 공연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ㅠ.ㅠ <나폴레옹>은 왕비마마 모시고 가려고 여름부터 예약했다가 위약금까지 물고 취소하기를 2번이나 반복한 뒤에 겨우 관람성공해 감개무량했다. 아직은 와병중이라 위태위태했고, 아니나 다를까 공연에 집중 못하고 자꾸 나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움찔거려 옆자리 관객이 중간 쉬는 기간에 언짢은 불평을 했다. 에효... 보는 내내 엄마 때문에 긴장해서 뮤지컬에 대한 인상이나 감상보다 그날 조마조마했던 마음과 안도감이 더 떠오른다. 



2017에 본 드라마 & 예능

1. 셜록 시즌4

2. (여전히) 도깨비

3. 비밀의 숲

4. 이번 생은 처음이라 

5. 윤식당

6. 효리네 민박

<셜록>은 그토록 고대했던 것에 비하면 좀 실망스러웠고... 꼬박 1년 전이라 정말로 아스라하다. 그치만 또 언제 나올지 모를 시즌5를 기다리겠지. <도깨비> 역시 1월에 끝이 난 드라마라 2016년 베스트에 넣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없던 건 아니지만, 영상미며 스토리며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에 반해 <비밀의 숲>은 그야말로 최고의 드라마! 한참 바쁠 때 본방중이라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며 아껴뒀다가 한편씩 두편씩 어쩔 땐 세편 내리 꼬박 밤새며 봤다. 으아.. 정말 대단한 흡입력과 완성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중간에 몇편 보다가 결혼제도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와 대사들이 맘에 들어서 나중에 다시 몰아봤다. 중성적인 여자 이름을 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여주인공 이름이 지호, 남주인공 이름이 세희다. ^^; 뭔가 이런 미묘한 설정부터 좋아! 세희 역할의 이민기 배우를 새삼 다시 보게 됐고, 여주인공의 친구들 이야기도 각각 소홀하지 않게 잘 다루어져 좋았다. 

<윤식당>은 오래오래 집을 떠나 여행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로망을 잠재우느라 헬렐레 즐거이 보았고(난 식당 종업원들 아니고 거기 나오는 외국인들에 감정이입해서 보는 재미가 좋았다), 이효리와 아이유를 다시 보게 되었던 <효리네 민박>도 제주도 로망과 함께 보고보고 또 보고 재방도 보고 그랬다.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게스트하우스에 취직할까, 감귤농장에 취직을 할까, 뭐 그런 꿈을 아직도 못 버렸다. ^^;  


2017년에 떠난 여행&답사

1. 미서부와 캐나다 빅토리아섬 (4월)  --- 8개월만에 여행기를 마쳤으니 더 설명 않겠다. ^^

2. 서울 북촌 (6월)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1

북촌 한옥마을 여러번 가 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가 오잉~ 하며 놀랐다. 종로구와 서울시에서 꽤나 많은 곳들을 새로 가꿔놓았더라. 엄청 예뻤다. 


3. 양주 회암사지 & 장욱진 미술관 & 권율장군 묘 (6월 & 9월) 

양주에서 문화해설사 하시는 지인분 덕분에 속속들이 구경하며 신이 났었다. 폐사지(유구만 남은 절터) 구경을 별로 많이 안해본 터라, 회암사지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고, 박물관에도 볼거리가 많아 신기했다. +_+

거의 왕궁터 같았던 회암사지...


건축상도 받았다는 장욱진 미술관 구석구석 예쁘다장욱진 미술관 옆 권율장군 묘에서 내려다보며이는 예쁜 한옥

4. 안면도(6월)

5. 곤지암 화담숲(7월)

6. 속초 동명항(8월)


6. 강화도(9월)

7. 외산 무량사 & 보령 성주사지 & 오천항 수영성(11월)
흐렸어도 무량사의 가을은 눈부셨다나폴리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오천항

같은 날 오전과 오후 날씨가 이토록 다르다 ^^;


8. 수원 화성 행궁(12월)

행궁과 화성 성곽을 1바퀴 다 돌았는데.. 우와.. 너무 좋아서 봄날에 날씨 좋으면 한번 더 가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그림과 설명이 너무도 정확해서 그대로 복원해 놓은 화성은 조선시대 건축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터키에서 못 타본 열기구 선망 때문인지 제자리에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전부인 저 열기구(18,000원)라도 좀 타보고 싶었다. ㅋㅋ



9. 서울 둘레길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2

빠진 날이 많아서 함께했던 팀들의 공식 둘레길 순례는 끝났는데 난 미처 못 끝냈다. ㅠ.ㅠ 총 28개 스탬프 중 아직 7개를 더 찍어야함. 옛날 우체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스탬프 보관소에서 각기 다른 모양의 스탬프를 찍는 재미가 ㅎㅎㅎ 은근 쏠쏠하다. 스탬프 상관없이 서울 둘레길을 이미 몇바퀴나 돌았다고 큰소리치시던 선배님들도 막상 스탬프북 없으면 말짱 꽝이라고 하자, 별것 아닌데 욕심난다며 결국 157km를 완주하고 완주증서를 받아내시던데... 난 뭐냐.  뭐든 시작은 잘해도 금방 싫증내고, 그렇다고 또 완전 포기도, 깔끔한 마무리도 잘 못하는 나의 미련떠는 성격이 여기도 반영된 것 같다. 남은 스탬프를 2018년 상반기에 다 찍고 완주기념 배지를 꼭 받으리! (새해 결심 중 하나다 ^^;) 

2017년 등산

도봉산, 소백산, 예봉산, 수락산, 관악산, 용마산, 괴산 갈모봉, 내변산 관음봉, 안산 자락길, 북한산 향로봉

하반기엔 거의 등산을 못다녀서 다시 등산 초보자의 폐활량과 몸이 되었음을 12월 북한산에서 실감했다. 몸이 어찌나 무겁던지! 2018년부터는 매달 두번씩 안빠지고 좀 다시 산에 다녀볼 작정이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자꾸 무릎이 아파서 등산도 앞으로 몇년이나 하겠나 싶은 심정. ㅠ.ㅠ 


2017년 전시

1. 훈데르트 바서 - 세종문화회관 (포스팅도 했으니 생략)

2. 르누아르의 여인 - 덕수궁 미술관 (그저 그랬음)

3.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상설 전시 & 마티스와 디벤콘 특별전

4. 장욱진 미술관 탄생 100주년 특별전 (6월과 9월에 각기 다른 특별전을 두번이나 봤다) 

5. 고궁박물관 창덕궁 희정당 벽화 - 지금도 전시중이고, 희정당에서 떼어 복원한 금강산 그림이 진짜로 볼만하다. 금강산 관광을 대체 왜 가나 싶었는데, 남북관계 복원돼 관광루트가 다시 뚫린다면 가보고싶어졌을 정도다.  


2017년 기억될 사건

1.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

아무래도 출판과 번역은 사양길이고... 뭔가 더 재미난 일 없을까, 새로운 길을 모색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중학교 1학년들 자유학기제 수업을 한 학기 맡았다. 밤 새가며 수업자료 PPT 만들 때마다, ^^; 형편없이 적은 강사료를 받으며 다들 이짓을 왜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생기발랄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한편 기대되고 즐거웠다. 중2병이 중1로 내려왔다고 해서 엄청 떨었는데, 그냥 귀여운 애들이었어! 물론 말 안듣고 떠들고 쿨쿨 자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애들의 그 팔딱팔딱한 기운을 전달받는 느낌이 짜릿했다. 다만.. 연기된 수능 일정에 밀려 방학날 오전까지 마지막 수업을 하고선 콜록거리는 애들한테 옮아온 감기로 연말연초를 빌빌대며 보내야했지만 말이다. 처음 한두 주 수업때만 해도, 내 다시는 이 짓 안한다! (물론 번역일의 소중함과 귀함을 새삼 깨달았다 ㅎㅎ) 라고 별렀지만, 한 학기를 다 지내고 난 뒤의 마음은 또 잘 모르겠다. ^__^

2. 후배 인터뷰 & 취업 특강 ㅠ.ㅠ

동아리 후배의 부탁에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해줬는데 그게 일파만파 일이 커져서 결국엔 번역에 관심있는 후배들을 위해 취업특강도 하게 됐다. 어우... 번역 하고 싶은 애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7년도 남지 않은 2024년에 AI가 번역가를 대체할 거라는 옥스포드 대학교 보고서도 알려주고, 암울한 출판 전망도 들려주고... 번역은 영어 실력이 주가 아니란 얘기를 해주고 돌아왔다. 근데 뭐;; 어차피 힘든 대학생들의 취업... 번역가로 진입하는 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  

3. 이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고 이게 뭔가, 사귀는 건가, 썸인가, 아닌가 지지부진 고민하고, 아니 고민 자체를 거부하고 괜한 두려움에 대화와 감정을 회피하고.. 그러면서 어느 결엔가 뽀르르 달려가 만나고 그러면서 1년 넘게 이어져왔던 관계가 크리스마스에 끝났다. 서로 지향하는 미래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고 나름 배려했으나 결국 상처 없는 이별은 없다. 따져보니 무려 20년 만이라서 내가 서툰 탓도 있었겠고, 뭔가 되게 두렵고 어려웠다. 사랑과 두려움은 양립할 수 없다는데, 호감이 결국 사랑으로 이어질까봐, 혹은 사랑이 아닐까봐 겁이 났었다. 째뜬 끝까지 차마 묻지 못한 질문과 미련을 덮어 놓자니, 내상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굳이 2017년을 정리하는 공간에 이 이야기를 적어두는 것은 혹시나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의 우유부단함을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난 왜 지나고 나서야 감정의 실체를 깨닫는 건지 모르겠다. 혹은 추억의 미화를 위해 과장하는 걸 수도 있겠지. 한숨. 몇번의 고비 이후,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 없게 엄청 잘해주겠노라고 말해놓고, 결국엔 그러지 못했다. 그치만 아무리 잘해주었더라도, 끝이 난 마당에 후회 없는 관계는 없겠지. 행복하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행복하면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일단 나는 좀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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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2017년은 참 많이 놀러다녔고, 출간이 미뤄져서 그렇지 번역 일도 꾸준히 꽤 많이 했다. 블로그질 할 시간과 정신 여유가 없었을 만도 하다. 나와는 상관 없는데도 충격으로 다가온 사람들의 죽음과 친구의 난치병 같은 것들 때문에 괜히 조바심이 나서 더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소소한 낙과 순간의 기쁨보다는 자꾸 더 '쎄고 확실한' 행복을 바랄수록 불행해진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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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일

투덜일기 2017. 2. 5. 23:47

나름 취미생활이랍시고 헐거운 조직에 다시 들어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언젠가는 겪을 수도 있는 일이란 걸 알고는 있었고, 그래서 그 전에 때려쳐야하는 게 아닌가 고민도 했었지만 어영부영 머뭇거리다보니 결국 발목을 잡혔다. 이런 걸 미련스럽다고 해야하나 책임감이 강하다고 해야하나, 그냥 우유부단한 건가 잘 모르겠고 그저 스스로 한심하다. 

아직도 종종 대체 내가 왜 아직도 이짓을 하고 있나 회의가 들면서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궁궐 자원봉사 일은 교육부터 따지면 올해로 벌써 4년째에 접어든다. 경력 챙겨야하는 회사생활도 아닌데 애당초 왜 3년은 채워야지 했었나 의문이지만, 일단 3년쯤 하고 나면 계속 할지 말지 뭔가 확고한 결심이 설 줄 알았다. 하지만 확고한 결심은 개뿔. 여전히 이 일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하며 의미를 찾느라 가끔 신경질을 부린다. 

너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도 문제이니 운동 삼아 2주에 한번 궁궐 산책도 하고 잘 지은 한옥 구경이나 하지 뭐, 하는 게 가장 큰 핑계이고 지난번 폭설이 내린 다음날엔 정말로 감탄을 자아내는 궁궐의 설경을 보며 그래 이 맛에 나오는 거지, 했었다. 하지만 그밖엔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에효..

놀라운 건 에라이 그만 때려치워야겠다 생각할 때 좀 찔리는 것도 그곳에서 시작된 인간 관계 때문이고 또 넌덜머리가 나서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이유 또한 그곳의 인간 관계 때문이다. 어디나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고 괜히 싫은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 월급 때문에 버티는 회사도 아니고 대체 난 왜 이러고 있는 걸까나.. 심지어 올해부턴 순서가 돌아와 '총무'란 걸 맡게 됐다. 으악! 골치아파라... 

근데 또 나란 인간이 뭐든 주어진 일은 '잘하고 싶어하는' 병'이 있어서 슬렁슬렁 대충은 못 지나가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활동일지도 기록해야하고, 회비 수입지출도 관리해야하고... 어떤 조직이든 만만하고 말 잘 듣고 일도 제법 하는 사람은 일이 몰리게 되어 있다. 절대 그런 캐릭터로 보이고 싶진 않았는데, 구성원 중에서 처음엔 심지어 '막내'였고 몇년이 흘러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세명이나 생겼지만 아직 젊은 축에 들다보니 눈깜짝할 새에 계속 뭔가 일이 주어진다. 참 내..

궁시렁궁시렁 투덜투덜거렸지만 어쨌든 1월이 가고 2월 순서도 한 차례 지나가 총 26번 활동일 중에 23번이 남았다. 23번만 버티면 해방이다 그러면서 중간에 몇번 언제 빠져서 누구에게 임시 총무일을 넘길까 호시탐탐 노리는 중.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3번은 빠져야지 그러고 있다. 어차피 개근하던 사람도 아니었고..

등산 모임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작년에 개근하는 게 아니었다. 젠장. 첫해엔 계속 따라다닐까 말까 고민도 많았으니 절반이나 갔을까, 둘째 해에도 마감이다 집안행사다 바빠서 몇번 빠졌었는데 3년째인 작년엔 할일도 별로 없겠다 등산의 묘미도 좀 알았겠다 정말 열심히 체력단련까지 해가며 따라다녔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날 너무 성실히 본 게 문제!

무슨 기념문집인가 뭔가 만들때도 완전 독박을 쓰고서 쓸데없는 노동력을 착취당했는데! 이번엔 또 뭔 일을 맡기려고! 1월 등산은 마침 위에 적은 임무가 겹쳐서 처음부터 빠졌고, 올해 달력 정리하며 보니 다달이 둘쨋주에 아버지 기일에다 이런저런 집안 행사가 많아 빠질 날이 쎄고 쎘던데 눈치가 수상하다. 학연지연을 타파해야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놈의 '연줄' 때문에 제대로 '거절의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분명 싫다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안하는 선배들 정말 와... 결국엔 늘 <더러우면 내가 떠나야지> 카드밖엔 쓸 게 없는 것 같다. 

암튼 그래서 올해는 이래저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할 조짐이 보인다. 재미삼아 본 토정비결은 올해 운수 되게 좋다고 그랬는데... ㅋㅋ 괜히 시간만 쳐들이고 기껏해야 욕만 먹을 이상한 일들 대신에,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일이 많아져야한다규! 속으로 이렇게 끙끙 앓으면서 또 막상 나가서는 어르신들 앞이라 크게 싫은 내색 못하고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열심히 몸바쳐 일하는 모습이 상상돼서 더 짜증이 난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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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투덜일기 2016. 10. 16. 14:33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잘은 모르겠다만, 헐겁기는 해도 나름 '조직'이라는 곳에 새삼 여럿 소속되어 있다보니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자꾸 부대낀다. 내가 선택하라고 하면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류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둥글둥글 지내야한다는 얘기다. 조직이 싫어서 직장생활을 관두고 홀로 일한지가 20년도 넘었는데, 괜히 왜 이러고 있나 회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뭐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인간관계로 인해 종종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일단 좀 두고보자 참고 있다.

하려던 이야기는 그런 푸념이 아니고... 

하여간에 내가 일부러 좀 거리를 두려고 애쓰던, 나와는 정말 코드가 안맞는구나 싶었던 어느분에게 엊그제 들은 이야기 때문에 약간 생각이 깊어졌다. 결론적으로 내가 너무 편협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나쁜 인간이란 걸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분이 나를 붙잡고 뭔가 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하는 눈치인 걸 감 잡았으면서도 처음엔 굳이 알고 싶지가 않아서 아예 좀 슬슬 피해다녔다. ㅋ 물론 결국엔 붙들려서 이야기를 듣고 말았지만... (여기서 의문 잠깐, 내가 그렇게 맘 편하게 속을 막 털어놓고 싶게 생겼나? 아 진짜 반평생 '들어주는 사람' 역할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이젠 졸업하고 싶은데;;)

사연은 이렇다. 그분이 '살짝 나에게만' 들려주고 싶다던 이야기는, 얼마 전 제대한 24살된 아들을 결혼시키게 됐다는 거였다. 그분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고, 나이도 나와 별 차이가 없는 분이라 속으로 좀 놀라면서도 대번에 짐작했다. 오호라, 속도위반인가? 일단 기계적인 축하인사를 건네며 또 속으로 딴 생각이 들었다. 아오, 몰랐으면 모를까 결혼식 얘기를 들었는데(바로 다음날 지방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축의금을 챙겨드려야 하나? +_+

쌀쌀맞고 계산적인 나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그분은 구구절절 그간 마음 아팠던 사연을 털어놓으며 간간이 눈물까지 비쳤다. 철원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던 그분의 아들은 상급자들의 폭언과 괴롭힘을 못 이겨 자살을 기도했고, 의식불명으로 응급 헬기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실려오는 사태가 벌어졌었단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들을 매일같이 면회다니며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도해도 일주일째 차도가 없었는데, 지방에 있는 여자친구가 면회를 다녀간 날 기막히게도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뜨더란다. 엄마의 통곡은 안들려도, 여자친구의 통곡은 아들의 영혼에 가 닿았던가 보더라나. 

암튼 엄마가 잠시 배신감에 사로잡히든 말든, 아들은 눈을 뜨자마자 첫 마디가 "OO이는?"이라며 여자친구를 찾았고, 면회를 끝내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중이던 여자친구는 기차에서 그 소식을 듣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왔고... 아들의 부모는 둘이 그렇게 사랑하면 같이 있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방에서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사정해 자기 아들 좀 살려달라고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청년이 종종 실어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곁에 있어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참 그 여자친구도 착하지, 부탁 대로 직장 관두고 서울에 올라와 남자친구가 회복될 때까지 돌봤다는 것 같다.

서로 깊이 의지하고 사랑하는 두 연인을 차마 떼어놓을 수가 없어서 결혼을 시키기로 했는데, 신부감 집안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일을 해서 친정 생계를 얼마간 도와야하는 입장이라 신혼집도 지방에 친정 근처에 잡아주었고, 집장만이며 세간살이, 결혼비용까지 전부 다 대출받아서 자기네가 부담하기로 했다고, 빚지고 아들 장가보내긴 하지만 그래도 아들, 며느리 행복한 게 제일이라면서, 그분은 예쁘게 웃고 있는 둘의 사진을 여러장 내게 보여주었다. 미리 유럽으로 신혼여행 겸 셀프 웨딩촬영도 다녀왔다나. 

그러면서 속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씩 던지는 게 상처가 된다고도 털어놓았다. 늦둥이 중학생 아들도 있는 오십대 초반 엄마가 큰아들 장가보낸다고 하면 다들 첫 마디가, 속도위반이구나! 한다는 것. 속으로 나 역시 뜨끔했다. ㅠ.ㅠ 사고친 게 아니고서야 요새 누가 24살에 아들 결혼을 시키냐는 둥, 왜 좀 더 두고보며 좋은 사람 골라보지 그러냐는 둥, 쓸데없는 간섭을 하더라는 것이다. 아으...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놓고 함부로 추측하고 판단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인생마다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말고 그 속엔 얼마나 더 깊은 사연과 아픔이 있는지 함부로 판단하면 안되는데 왜 다들 섣불리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지. 나를 포함해 인간들 참 못됐다.

민망함과 미안함 때문에 더 호들갑스럽게 축하인사와 위로를 전하고 돌아와 씁쓸한 반성 시간을 가지고도 뭔가 심히 빚진 기분이다. 요새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란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도 같다. 미국 학교내 총기사고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콜럼바인고등학교 사건의 가해자 엄마가 쓴 참회록이랄 수 있는 이 책은 나중에 따로 리뷰를 써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암튼 부모나 절친조차.. '아무도 몰랐던' 아이의 고통과 분노가 만들어냈을 엄청난 사건을 복기하며 함부로 타인을, 자식을, 현실을 속단하지 말라고 당부한다(책을 절반쯤 읽은 바로는 그렇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편협하고 속좁게 살아갈 나는 문제의 그분과 더욱 친해진다거나 코드를 맞추려는 노력 따위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젠 그분이 어떤 돌출 행동이나 좀 과한 발언을 하더라도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뭔가 다른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지레 눈쌀 찌푸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만 보아넘길 수 있는 여유로움은 생겨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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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

투덜일기 2016. 10. 8. 08:18

안면은 있지만 먼저 알은체하기는 꺼려지는, 그저 그렇게 좀 아는 사람이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있다. 잠시 눈감고 음악감상하다 눈을 떴는데 눈앞에 딱. 차라리 지하철에 타는 순간을 보았더라면 인사하기가 더 쉬웠을까? 다행히 상대도 나를 못본 것 같다. 고갤 숙인 채 휴대폰에 열중하는 걸 보면... 아닌가? 상대도 나를 발견했으나 어색해 시선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에라 모르겠다. 다시 질끈 눈을 감는다. 음악이나 듣자.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져서 앞을 가려주면 좋으련만... 주말 이른아침 지하철엔 빈자리까지 듬성듬성하다. 알은체를 하면 아랫사람인 내가 옆으로 옮겨가 계속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야할 것이 더 싫다. 

하지만 결국 둘의 종착역과 목적지는 같고, 어차피 인사는 해야할 것이다. 그래도 그 순간을 가능한 미루고만 싶다.

휴대폰의 존재가 이렇게 고마울수가...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고자 이렇게 열심히 휴대폰 자판을 두들기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30분은 더 가야하는데.. 계속 고갤 숙이고 시선을 피할 수 있을까나... ㅠㅠ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고개를 들고 시선 맞추기를 기다려 인사를 해? 말어?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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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이야기. 

결국 나는 지하철에서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고 버티다가 얼른 내려야할 역에서 내렸다. 개찰구를 빠져나가면서 어차피 만나게 될 테니깐 그때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인사를 해야지, 그 정도 예의는 지켜야지 했었다. 

어랏, 근데 그분이 보이지 않았다. 맙소사. 휴대폰 보다가 못 내린 모양이었다. 젠장. 

나는 정시에 약속장소에 도착했으나, 문제의 그분은 20분이나 늦어 헐떡거리며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난 괜히 제발이 저려 얼굴이 일그러지는 기분이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꾸벅 인사를 했다. 차마 시선은 마주칠 수가 없더라. 어쩐지 그분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진 않는 것 같았다. 뭐 할 수 없지. 별로 친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고 그냥 앞으로도 계속 적당한 거리에서 그저 '아는 사람' 정도로 지내면 그뿐이다. 다음에 또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아마 알은체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어색한 대화 나누기 싫어서 사람 못본 척한 게 어디 한두번인가. ㅋ 이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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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다고

투덜일기 2016. 4. 18. 16:35

얼마전부터 식칼이 잘 들지 않았다. 설날 음식 준비하면서 갈았으니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하며 불편해도 계속 그냥 썼다. 우리 집엔 식칼을 가는 오래 된 '숫돌'이 있고, 칼갈이의 임무는 늘 엄마 몫이다. 손에 힘이 없어 젓가락도 노상 떨어뜨리는 양반이 칼을 갈면 얼마나 잘 갈겠나 싶지만, 전문가가 아닌데도 관록의 힘이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내가 비슷하게 흉내를 내서 숫돌에 문지른 칼은 일주일도 못 돼 다시 무뎌지는 반면 엄마가 슥삭슥삭 한참 숫돌에 문질러준 칼은 몇달씩 칼날이 쓸만하다.


그러니깐 결국 내가 할 일도 아니면서 칼 가는 걸 게을리 했던 이유는 딱 하나 귀찮아서였다. 엄마, 칼 좀 갈아주세요, 그러면서 쟁반에 숫돌과 식칼을 담아 가져다주면 그뿐인데, 늘 콩닥콩닥 부엌일을 하던 중간이라 에라 바쁜데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그러는 식.


요샌 오드리 헵번이 집에서 자주 해먹었다는 레시피들을 아무래도 종종 응용하게 되는데, 특히 카프레제 샐러드는 왕비마마, 공주마마, 무수리 모두 좋아하는고로 어제 저녁엔 급히 토마토를 자르던 중이었다. 아우쒸... 칼이 안드네 또 다시 불평을 하면서 무뎌진 칼날을 이리저리 움직여 미끄러운 토마토 껍질을 공략하던 순간, 슥~ 칼날이 왼손 검지를 때렸다. 아야...


칼이 잘 들땐 당연히 더 조심조심 칼질을 하기 때문인지 손을 베더라도 살짝 스치듯이 손톱을 자르거나 살갗만 베이는 반면, 칼날이 무뎌졌을 땐 미끄러지는 힘이 더해져서 그런지 상처가 더 깊다. ㅠ.ㅠ 아무리 꾹 누르고 있어도 피는 잘 멈추질 않고... 손가락을 감싼 휴지가 금방 피로 젖는 걸 보며, 젠장 설마 병원 가서 꿰맬 정도는 아니겠지, 아쒸 저녁준비 늦어지겠네... 아줌마스러운 걱정이 뇌리를 스쳐갔다.


손가락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꽉 눌러 한참 지혈을 한 뒤, 약을 바르고 방수 반창고를 둘렀다. 놀란 엄마가 얼른 손수 숫돌을 꺼내 갈아준 식칼로 다시 남은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삐뚤빼뚤 잘라(오른 손이 아니고 왼손인데도 검지를 다치니 손놀림이 영 서툴다) 샐러드를 완성해 대충 저녁을 먹었다.


칭칭 너무 심하게 손가락을 동여맸는지 왼팔이 전체적으로 저릿할 정도인데, 어쩐지 그래야 빨랑 상처가 아물 것도 같아서 참고 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잘 드는 칼보다 무딘 칼에 더 상처가 깊이 나듯이 어떤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도 작정하고 달려들 때보다 무심하게 툭 던지는 말에 더 상처를 깊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작정하고 나쁜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에겐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미리 단단히 실드를 쳐놓았으니 어디 한번 해보셔~ 라며 나름 과감해진다. 하지만 뜻밖의 순간에 상대가 무딘 신경으로 아무 생각없이 툭 던지는 비난이나 공격엔 속수무책이다. 순간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당한 뒤 피를 철철 흘리고 나서야 제때 방어하지 못한 느린 순발력을 탓한다. 그런 상처일수록 오래가는 것도 같고.


실수를 그냥 실수로 넘기지 않고 거기서 뭔가를 배우면 된다는데, 무수리 생활 10년을 넘기고도 부엌에서 아직 수시로 베이고 데이고 여기저기 생겨나는 흉터가 많아지는 걸 보면 나란 인간은 통 실수에서 배우는 게 없는 사람인가 싶다. 가사일에서나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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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정리 원칙

투덜일기 2015. 9. 29. 17:28

지지난주엔 까마득한 후배들의 원어연극 공연을 보러갔었다. 대체로 숫기가 없고, 원어 연극도 당연히 '공부'의 일환으로 생각했던 늙다리 선배들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주로 '스펙쌓기'의 목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기 때문에 배우를 시켜주지 않으면 아예 중간에 빠져버린단다.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면 개인 시간을 죄다 바치면서 몇달간 지속되는 연극 연습을 견뎌낼 동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 옛날 나는 무대에 세워준대도 싫고, 순진하게 그냥 영어로 희곡 작품 하나 통째로 외우는 게 어딘가... 그런 걸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었는데 ㅋㅋ 


암튼 끼 넘치는 후배들의 공연은 해마다 기대치를 갱신하고, 이번에도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아마추어 학생들의 원어연극은 그냥 대사만 안까먹고 다 외워도 훌륭하다는 게 관람객으로서 기본적인 입장이지만(요샌 자막도 나와주어서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고 사실 대사 버벅거려도 잘 모른다 ^^), 요즘 애들은 대체로 '연기'가 된다! +_+ 놀라워 놀라워...


하여간 뭐 그 연극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고, 작품에 나왔던 대사가 요즘 계속 생각난다. 등장인물 하나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라며 애인에게 물건 정리 원칙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1. 쓸모가 있는가? (Is it useful?)

2. 나를 기분좋게 해주는 물건인가? (Does it make me happy?)

3. 내가 좋아하는 건가? (Do I love it?) 


이 세 가지 질문에 해당되지 않으면 내다 버리는 게 맞다고 해서, 자기 남편을 내다버렸다(!)는 설명이 이어졌는데 깔깔 웃으며 다들 맞다맞다 박수를 쳤다. 


물론 세 가지에 다 해당되는 물건이나 대상이라면 꼭 곁에 두어야한다는 의미다. 명절을 앞두고 살림을 또 일부 정리하면서 계속 되뇌여보았고, 아직도 집안에 내다버릴 물건이 가득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뒤풀이 자리에서 후배 하나가 어떤 '관계'를 놓고서도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인상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관계마저도 '쓸모'를 따지는 건 씁쓸하지만, 친구가 아니고서야 주로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접근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친구와 우정이 더 소중한 거겠지. 


근데 그걸 알면서도 사실 무심함을 핑계로 친구와 우정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는다. 그냥 간간이 떠올리면서 잘 지내겠지, 문득 안부가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먼저 선뜻 연락을 하는 건 민망하고 꺼려지는 기분. 어쩌면 상대는 나를 그간 '관리가 필요한' 인간관계망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지레짐작. 그러니깐 그냥 가만히 있는 쪽이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자포자기의 심정? 어쩌면 게으름일수도 있겠고. 


무심한 나에게, 너 그러다가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수가 있다고 경고하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거라는 말도. 으음. 돌연 마음이 스산해서 휴대폰 연락처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전화 한통 걸지 못하고 그냥 또 이렇게 블로그에나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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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웃

투덜일기 2015. 5. 29. 01:27

엄마네 집쪽 아래층에서 6,7년쯤 살던 주류 도매상 아저씨네(한때 몸집 거대한 잡종 진돗개 '곰돌이'를 키우며 온 동네를 괴롭게 했던;;)가 얼마 전 이사를 가고, 집주인이 다시 이사를 올거라며 수리를 한참 하더니만 결국엔 또 세를 놓은 모양이었다. 아래층 집주인이 워낙 괴팍하고 싸움도 욕도 잘해서 온 동네에 죄다 인심을 잃은 '장로님'이시라 엄마는 그 아저씨가 다시 이사온다는 소식에 지레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떡하니 이삿짐 트럭이 도착한 날 전혀 다른 사람이 인사를 하자 퍽이나 놀랐다고 했다. 


듣자하니 이전 세입자와 금전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어서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게 일종의 비밀이었다나 뭐라나. 암튼 우리로선 천만다행이었다. 다가구주택임에도 오래된 집이라 주차공간은 한대밖에 없어서 그 아저씨 이사오면 주차 문제로 싸우기 싫어서라도 내가 차를 골목에 대야지 그러고 있었는데 오예~! ㅋㅋ 게다가 새로 이사온 아래층 아줌마는 노상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다가 콧노래를 부르며 마당에 빨래를 널면서 벌써부터 울 엄마와 서로 좋은 인상을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이사 후 두번째 마주쳤을 때 이미 차 마시러 좀 들어오세요~ 그랬다나. 오지랖 넓은 할머니이긴 해도 선뜻 응하기 뭣해서 엄마는 일단 사양을 했다는데, 그간 몇번 얼굴 마주친 거 치고는 놀랍게도 신상명세를 벌써 다 파악해오셨다. +_+ 하기야 울 엄마도 우리 모녀 신상을 대충은 다 공개한 듯, 며칠 전 외출하는데 오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마당에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어머니 인상이 참 좋으세요. 좋은 분이랑 이웃되서 반가워요."라고 말했다. @.,@


나는 당황해서 우물쭈물 뭐라고 대꾸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암튼 엄마가 '캐내온' 아래층 이웃의 정보는 남편이 영국인이고 다 큰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른 집에서 살면서 가끔 들른다는 것. 그리고 이사온지 얼마 안 돼 영국에 보름간 다녀오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울 엄마가 마당 화분 몇개와 스티로폼 통에 상추와 고추 모종을 사다 심어놓고 매일 물을 주는 걸 보면서, 부러워서 자기도 그 옆 화분에 상추랑 치커리 따위를 심었다고 했단다. 집 빈 동안에 아들이 다녀갈 수도 있으니 놀라지는 마시라고. 


새 이웃이 영국에 간 사이 울 엄마는 또 그집 채소 화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 안주면 금방 말라죽을 텐데... 내가 우리 화분 주면서 같이 물을 줘야하나... 아픈 다리로 이층에서 물조리 한 통 갖고 내려가는 것도 힘든데 내가 대체 왜?.. 뭐 이런 생각을 하셨던 거다. 다행히 그 사이 비가 몇번 내렸고, 시들시들 말라가는 채소를 차마 그냥 보아넘길 수 없었던 엄마는 간간이 조리에 받아간 물을 아껴가며 이웃 화분에도 나눠주었던 듯했다.


오지라퍼 할머니는 아래층 이웃이 돌아오기를 괜히 오매불망 기다렸다. 기껏 심은 모종 다 말라죽으면 어떡하냐. 아들이 다녀는 가던데 화분에 물은 안주는 것 같더라. 물 덜 줘서 축 늘어진 모종 불쌍해서 어쩌냐... 제일 안쪽 화분은 팔이 안 닿아서 물을 줄래도 줄 수가 없던데...  아 놔;;;;


보름이 지나고 드디어 아래층 이웃이 돌아온 듯했지만, 엄마의 관찰 결과 더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살지 않아 사람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채소 모종은 계속 축 늘어져 말라가고 있다고 또 성화를 하셨다. 아 진짜! 엄마! 상추모종 천원에 다섯개라며! 고추모종도 그렇고! 죽으면 좀 어때요! 물 주기 귀찮아서 죽이기로 했나보지! 아래층 아줌마 만나면 그간 내가 화분에 물 줬다고 생색내고 싶은 거예요??? 그거 아니면 제발 남의 일에 간섭도 걱정도 좀 하지 마세요!! 


그러더니 며칠 전에 드디어 아래층 영국남자랑 마당에서 뙇 마주쳤다는데 당황해서 엄마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하고 들어왔다고 '안녕하세요' 그럴 걸 그랬다고 후회 또 후회.... ㅠ.ㅠ 난 또 버럭했다. 아니, 할머니를 봤으면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했어야지, 엄마가 왜 미안해하고 그러냐고! 그리고 영국사람들 원래 쌀쌀맞으니깐 곰살맞게 인사받는 거 바라지도 마셔! (그간 효녀 코스프레 한 얘기만 적어서 그렇지, 내 본모습은 이렇게 표독스럽다;;;)


사실 나도 이 동네 3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원래부터 잘 알던 이웃이 아니고선 같은 골목 주민들에게도 선뜻 인사를 하게되질 않는다. 오지랖 넓은 엄마 덕분에 나는 반장 아줌마도 알고, 야쿠르트 아줌마도 알고, 같이 실버합창단 하시는 옆 빌라 안X분 할머니도 알지만, 저들은 은둔형 인간인 나를 잘 모르는 게 확실하다. 제대로 하는 외출이 아닌 한 꽁지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후드를 뒤집어 쓰고 나가기 때문에 어차피 인사를 해도 몰라본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원래 마구 상냥한 스타일도 아니고 뭐... 


하여간에 엄마는 혹시나 또 영국인 남자와 마주치는 경우를 대비해서 당황하지 말고 '안녕하세요'라고 하겠다고 시뮬레이션 연습까지 마치셨는데 이후 아줌마도 아저씨도 대면한 적이 없단다. 오히려 나는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골목 어귀에서 하얀 '난닝구'에 반바지 차림 + 왕뿔테 안경을 쓴 배불뚝이 영국 아저씨랑 마주쳤지만 바로 집앞이 아니라 인사하기도 웃기고 해서 당연히 모른체했다. 나도 마당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연습이라도 미리 해둬야하는 건가. ㅋㅋㅋ 


그간 런던아줌마' 블로그를 통해서 영국사람들이 얼마나 '못버리는 병'에 걸린 환자들인지 전해듣기도 했지만 가끔 마당구석에 정말 신기한 물건들이 하나씩 놓여서 시선을 끈다. 최소 50년은 된 것 같은 다 떨어진 구식 여행가방이라든지, 다리가 기울어진 나무 의자라든지... (그럴 때마다 울 엄만 또 혼자 꿍얼꿍얼 하신다. 아니 그런 물건은 이사올 때 버리고 와야지 왜 다 갖고 와서 새삼 쓰레기를 만드나 그래..)


어쩌면 그 이웃집에서도 위층에 '이상한' 할머니 모녀가 산다고, 귀찮아 죽겠다고 꿍얼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이웃이란 아무래도 서로 적응해나가는 기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나저나 그 옆집, 내방 쪽 아래층엔 이사온지 6개월도 넘었는데 아직 사람 구경을 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는 흔적도 없고... 한전과 가스공사에서 체납고지서를 보내다보내다 못해 사람이 나와, 그 집에 사람 안 사느냐고 우리집을 두들기고 물었을 정도. 이웃사촌이란 말은 사라진지 오랜 도시에서 암튼 새 이웃 덕분에 포스팅도 하고 나도 좀 웃기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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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투덜일기 2012. 3. 29. 16:05

스마트폰을 별로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않는 나는 웬만한 푸시알림 기능을 다 꺼놓고 내킬 때만 들여다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조금씩 하기는 하지만 주로 구경하는 쪽이라 SNS의 과잉현상에선 한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부턴가 그놈의 카카오톡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겼다. 문자와 달리 카톡은 무료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또 무료이기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시답잖은 내용을 복사해 전송하는 사람들은 왜 또 그리 많은지! 4040 번호로 오는 전화를 받으면 순식간에 2만5천원이 결제된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의 메시지는 아마 그날 대여섯번 쯤 받은 것 같다. 유행하는 유머 동영상 링크를 수시로 보내는 사람들도 꼭 있다. 참 정성도 뻗쳤다고 하겠다. 하지만 안부인사를 겸한 것이든 아니든 대뜸 띵동 띵동 일방적으로 복사해 전송하는 그런 메시지가 나는 하나도 고맙지가 않다.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유유상종인지, 보내오는 메시지 내용이 똑같을 때도 많다. 알고 보면 퍽 비좁은 카톡 세상에서 돌고 도는 유행인지 몰라도, 그들이 원한 반응은 '지루한 오후 너 때문에 한참 웃었다. 고마워!' 따위의 것인지 몰라도, 그냥 내겐 귀찮은 스팸일뿐이라고!!

얼마전까지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받는 이가 정식으로 읽지를 않으면 전송시간 앞에 적힌 숫자가 없어지질 않는단다. 초기화면에 알림기능으로 내용이 뜨기 때문에 완전히 읽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간 귀찮은 메시지가 오면 읽지 않는 것으로 나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하게 무딘 사람이 아니고서야 읽지도 않고 답장도 안하고 씹으면 싫어하려니 싶어서 관두겠지 여기기도 했고. 헌데 나처럼 메시지 읽음 표시 기능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아직도 끈질기게 재미난 유머 링크나 꼭 알아야 할(?) 뉴스 따위를 친절하게 보내오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카톡스토리라나 뭐라나 새로운 앱이 나왔는지 새로이 친구신청을 하는 이들도 생겼다. 이쯤 되니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는 듯,  카톡 계정을 확 삭제해버릴까 충동이 인다. 내게 연락을 하고픈 사람이라면 문자 메시지 비용쯤은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하면 너무 이기적인가? 안 그래도 수익구조에 야로가 많은 통신회사에 굳이 유료 문자전송으로 돈 벌어줄 이유가 없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어쨌든 충동 대로 곧장 카톡탈퇴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데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전화기피 증상이 심하고, 차츰 사교성도 줄어들고 그렇다고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도 아닌 삶이 이어지다보니 밖에서 친구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친구라고 해도 다들 거의 비슷한 성향의 인간들이 어울리다 보니, 누군가 성격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은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곁에 남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궁금하고 보고싶고 만나서 수다떨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실천은 하게 되지 않는 이 망설임을 과거엔 그래도 '갑갑함' 때문에라도 떨칠 수 있었지만, 이젠 정말이지 집구석이 제일 좋고 일주일, 열흘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아도 별로 갑갑하지 않다.

나의 전화 기피증과 게으름을 알기에 먼저 연락해주는 이가 아직 더러 있는 건 고맙고, 막상 불러주면 기쁘게 달려나가지만 내쪽에서 오랜 침묵을 깨고 만남을 청하는 건 또 쉽지가 않다. 머릿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으면서 막상 연락은 못해 아쉬운 이들도 있지만, 차라리 이렇게 서서히 관계가 정리된 것이 반가운 친구들도 있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정리되어 차라리 반가운 인물이면 어떡하지?! 아무려나 점점 은둔형 인간이 되어가는 탓에 소통의 도구가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몇몇 과도한 친철형 인물들 때문에 카톡마저 관두는 건... 소외를 자처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일방적이고 뜬금없는 메시지가 짜증스러운 것일뿐 또 관계 자체를 아예 끊고 안 볼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조금 전, 오늘의 유머 동영상 링크를 보내온 이에게 까칠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 거 안 좋아해서 별로 안 고맙다고. 그래도 계속 보내면 카톡차단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도 했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쪽도 앞으로 내게 그런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더 편하지 않을까. 일단은 좀 만만한 상대라서 이런 방법으로 해결을 했지만, 문제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대상도 있다는 점이다. 대체 왜 내게 그런 정성을 들일까, 혹시 보험 같은 걸 팔려는 것일까, 의아스러운 몇몇 인물은 눈 딱감고 차단해두긴 했으나, 원천적으로 봉쇄된 게 아니라 퍽이나 찜찜하고 껄끄럽다. 아마도 메시지를 보낸 저쪽에선 그냥 내가 읽지 않은 걸로만 나온다지... 스마트 한 세상에서 스마트하게 관계를 맺는 것도 참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에 마음이 묵직하다. 이러다 완전히 혼자가 되고 말 거라는 두려움은 또 별개의 것이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니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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