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22.06.08 줄무늬 아깽이… 2
  2. 2022.04.19 비문증 2
  3. 2022.02.10 모르겠다 1
  4. 2022.02.02 엄마들은 왜 그럴까 5
  5. 2020.03.05 마스크를 어쩌나 2
  6. 2020.02.06 아는 병 3
  7. 2020.01.14 서러움 일지 1월 14일
  8. 2020.01.13 새로운 증상
  9. 2020.01.07 눈을 감으면 글씨가...
  10. 2020.01.06 양극성장애 2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연이의 아깽이들 네 마리중 줄무늬 아깽이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220424-220608. 6월5일이 탄생 6주차였으니 46일의 짦은 생이었다. 초반부엔 수유싸움에서도 우세하고 놀이도 활발했는데 어느 틈에 서열에서 밀려난 걸까. 최근들어 체구가 가장 작아져 안쓰러웠고, 외톨이로 혼자 구석에서 졸고 있거나 형제들 다 젖 먹고 난 뒤 혼자 연이 품에 안겨 남은 젖을 빠는 모습이라 원래 얘가 막내였나 궁금해 했는데, 오후에 내다보니 두번째 집 바로 앞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잠자듯 누워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평소엔 식빵굽는 자세로 늘 웅크리고 잤던 것 같은데, 옆으로 쓰러져 다리를 뻗고 잠든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연이는 상황을 모르는 듯 지붕 위에서 잠을 자며 세 아깽이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러고는 넷이 뭉쳐 잠에 빠져들었다. 줄무늬 아깽이 한마리만 바닥에...

믿고 싶지 않아서 에이 설마, 하며 낮잠 자고 나면 다 같이 일어나 뛰놀기를 바랐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녁 때까지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연이는 창문으로 내다보는 나를 올려다보며 에옹 한번 울더니 다른 아깽이들을 물어서 사료 그릇 앞쪽으로 멀리 데려갔다. 나에게 도움을 청한 걸까. 초보 준집사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여기저기 검색을 해본 뒤에 수건과 상자를 마련해들고 베란다 섀시 문을 넘어갔다. 연이는 이리저리 불안하게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하악질을 몇번 하고는 저만치 멀어져 이내 포기하는 것 같았다. 아직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줄무늬 아깽이 사체는 너무 가볍고 연약해서 조심조심 수건으로 감싸 올리면서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대체 왜...?

조금 전 뒷마당 아까시 나무 아래 땅을 파고 묻어주었다. 손바닥 만한 흙마당이라도 집뒤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길냥이 가족을 돌보면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건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간 너무 설레발을 치고 자랑삼아서 뭔가 벌을 받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너무 안좋다. 내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해야지 싶다가도 연이를 중성화수술 시키지 않은 게 후회되면서 또 자책하게 된다. 남은 아깽이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고양이 감기라든지 뭔가 병에 걸려서 다른 아이들도 같이 앓으면 어떡하지?

나만 보면 숨어버리는 아깽이들은 무늬와 체구로 구분할 뿐 아직 얼굴도 똑똑하게 보지 못했다. 처음 한달째와 달리 요즘들어 눈꼽이 좀 끼어 있는 것도 같고... 그야말로 멘붕이다. 연이에겐 남은 세 아깽이들 잘 지키고 키우라고 괜한 잔소리를 하며 안쓰러워서 간식을 더 부어주었다. 갑자기 모든 게 두려워졌다. 

가장 최근 사진이 다 줄무늬 아깽이 사진이다. 슬픈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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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증

투덜일기 2022. 4. 19. 16:42

오늘 아침 일찍 또 엄마 모시고 병원 진료 가야해서 간밤에 잠을 잘 못잤다. 알람을 맞춰두고도 중간에 자꾸 깨고 또 꿈인지 생시인지 연이 울음소리에 퍼뜩 놀라 창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암튼 그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집에 와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데 컵에 실오라기 같은 게 걸쳐있는 게 아닌가. 앗.. 그게 아니네. 머리카락인가... 한 것도 잠시, 이 가느다란 실오라기 또는 또르르 말린 머리카락 같은 것이 마구 옮겨다녀!

주변에 선배님들 왕언니들이 많이 계신 관계로 익히 들어본 적 있었기에 직방으로 답을 알았다. 비문증이네. ㅠ.ㅠ 네이버 지식백과 검색 결과는 아래와 같다.

비문증은 실같은 검은 점, 떠다니는 거미줄, 그림자 또는 검은 구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시신경유두부에 유착되어 있던 신경교조직이나 농축된 유리체 또는 동반된 유리체출혈이 후유리체박리로 인해 자유로이 유리체강내에 떠다니고 환자가 이를 자각하는 것이다.
후유리체 박리는 유리체 피질과 망막 내경계막이 분리되는 것을 지칭하며 중심와 주변 후극부에서부터 시작된다. 후유리체박리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지만, 노인에서의 유리체-망막유착에 따른 합병증 발생 위험을 경감시키는 예정된 노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비문증 [vitreous floaters]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한자로 飛蚊症이고 가운데 글자는 '모기 문'인데 한글로는 '날파리증'이라네. 모기가 웽웽 날아다니는 것 같은 궤적이라 저런 이름이 붙었을까? ^^; 주변 누군가는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보다가 자꾸 액정을 쓸어도 잡티가 안 사라지더라고도 하더니, 오늘 나도 처음 증상을 느낀 것. 눈앞을 아른거리는 검은 실오라기는 눈을 깜박일 때마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다니고 왼쪽 눈에만 증상이 있다. ㅠ.ㅠ 처음엔 후유리체박리? 어쩐지 무시무시해서, 안과 가야하나? 걱정스러워 동네 안과를 검색하다가 말았다. 결국엔 눈의 노화란 얘긴데... 일단 몸과 눈의 피로가 좀 사라지면 나아지지 않을까도 싶고, 늙어서 그렇다는데 뭐, 하는 자포자기 심정도 있다.

엊그제 트위터에서 보았던가. 38세가 지나면 몸이 무료구독 끝났으니 이제부터 유료구독 시작이라며 아우성을 친다고 하던데 나야 이미 오십대니 차근차근 온 몸의 장기들이 망가져가는 게 당연하겠구나 싶다.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고, 웃고 울어서 생긴 나의 주름살도 사랑할 거라고 원칙은 세워두었지만, 막상 꺼려하며 드물게 찍힌 사진 속의 나는 점점 매우 낯설다. 아, 팔자주름이 이렇게 깊어졌구나. 이중턱이 더 심해졌구나. 동그랬던 얼굴이 이젠 네모가 되었네...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나도 모르게 들이밀고 있는 거다. 제발 사진 찍어주면 액정 손으로 꼬집어 땡겨 보며 자기 흠좀 잡지 말라고 어느 후배님이 타박을 한 적이 있다. 근데 굳이 땡겨 확대해보지 않아도 미워진 걸 어쩌나. ㅎㅎ

휴대폰 사진첩의 기능 하나는 몇년 전 오늘 니 모습과 추억이라면서 옛 사진을 자꾸만 들이미는 것인데... 그러니 잊고 싶어도 실감을 안할 수가 없다. 불과 2, 3년 전만해도 표정이 얼마나 더 싱그럽고 젊은지 ㅎㅎ 나쁜 생각 괴로운 생각만 하면 얼굴이 금세 못생겨진다는 걸 잘 안다. 오늘처럼 잠 못자고 일어나 느릿느릿 비협조적인 노모와 함께 사람 바글거리는 대학병원 진료과를 2곳이나 섭렵하고 처방전 받아 약국 찾아가고 어쩌고... 얼굴에 얼마나 심술이 붙었을지 안봐도 알겠다.

그나저나 어쩌면 이 블로그는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나의 질병 기록장으로 남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암튼 오늘을 기록해둔다. 오십대중반에 비문증 생겼음. 그냥 두고보면서 추후 예후도 기록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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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삶꾸러미 2022. 2. 10. 21:11

어느덧 주변에 아픈 친구들이 많아졌다. 이제 그럴 나이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 유병장수 시대라지 자조해보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겼다는 얘기를 들으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 많다. 대사증후군이나 퇴행성 질환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오갈 수도 있는 중병을 앓고 있는 친구들 때문이다. 

작년 여름과 올해 1월, 반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두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I는 희소난치질환을 오래 앓다가 마지막엔 재활병원에 누워 힘겹게 하루하루를 넘겨야 했고, J는 예후가 좋지 않은 병을 진단 받았지만 씩씩하게 두번이나 수술을 받고 오랜 항암기간을 잘 견뎌내 희망을 주더니 금세 상황이 나빠졌다.

늘 느끼는 거지만 죽음은 아무리 미리 예상하고 마음을 다져도 준비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친했던 친구의 부음은 타격이 클수밖에 없다. 오십을 넘기면 인류가 태고적부터 DNA로 넘겨받은 타고난 생명은 다 한 셈이고 나머지 삶은 의학의 힘과 영양, 본인의 운동 여부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이제 내 또래 친구들은 자다가 심장이 멎어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라는 말도 책에서 본 적 있지만, 확실히 지나온 나의 삶 보다 남은 삶이 더 짧을 거란 것도 알지만, 그래도 황망함과 충격은 여전하다.

아직 어리기만 한 친구들의 자녀는 앞으로 엄마 없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자식을 먼저 보낸 친구의 부모님은 또 얼마나 가슴이 사무칠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친구에 불과한 남겨진 자로서 되게 하찮은 고민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디지털 세상에 남은 친구들의 흔적은 또 어떻게 마무리해야할까. 잘 모르겠다.

새해인사를 서로 주고받았던 단톡방엔 친구의 흔적과 프로필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마도 홀로 남은 딸은 엄마의 휴대폰을 해지하지 않고 계속 간직할 모양이다. 나 역시 친구가 남긴 흔적들이 애틋해 얼마간의 애도기간은 필요할 거라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 흔적을 볼 때마다 너무 슬프고 마음이 무거워져서 이젠 그만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기적인 충동이 들기도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내 마음은 개운하지 않을 테고, 톡방에서 나오거나 SNS연결을 끊어버린다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떠오르는 건 마지막까지 오히려 내 걱정을 했던 친구 J의 충고다. 너는 이제 네 생각만 해, 나도 이제 딸 걱정 그만하고 내 생각만 할 거야. 니가 행복해야 주변도 챙길 여유가 생기는 거야. 네 생각만 해, 꼭. 조근조근 타이르는 친구의 목소리까지 아직 생생한 그 말대로 올해의 목표는 내려놓는 삶, 내 생각만 하기... 이런 걸로 정해야지 다짐했었는데...

역시 그래서 잘 모르겠다. 늘 우유부단하고 갈팡질팡할 때 거침없이 방향을 정해주던 친구 J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뭐라고 해주었을까. 친구의 부재를 결국 이런 고민으로 더 아쉬워하는 내가 또 좀 한심하고. 빈소에서 한참 울고 웃고 또 울다가 헤어지며 누군가 말했다. 이제 우리한테 가장 좋은 친구는 건강하게 오래 곁에 있어주는 친구라고. 이제 나는 확실히 그런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좀 더 챙겨야겠다는 것만 일단 알겠다. 몹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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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차례 준비와 노동을 완전 독박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인지, 무심한 엄마한테 자꾸 짜증을 부리다가 버럭 화 나는 원인을 분석했다.

모든 엄마들에게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는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암튼 나와 (친구의) 엄마들은 왜 자식을 편애하는 걸까?! 특히 울 엄마는 당당하게 속 마음을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특히 아픈 손가락은 따로 있다고. 울 엄마의 경우 그건 막내아들이다. 시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직장생활을 병행 하느라 밤에만 끼고 살았던 나나 큰동생과 달리 막내는 출산부터(병원에서 출산한 첫째, 둘째가 너무 수월했는지 아니면 병원비를 아끼기 위함이었는지--아마도 둘 다 였겠지--셋째는 집에서 낳음) 육아를 완전히 도맡아 지켜보았을 터이니, 막내라는 필연적인 이유+오랜 애착이 더해져 편애의 당위성(?)은 아주 공고한 것으로 보인다.

함께 살면서 당연히 의견이 부딪칠 수밖에 없고 특히나 건강 관련하여 온종일 잔소리를 해대는 존재가 되어버린 나는 그냥 공기 같은 자식이고, 일주일에 한번 안부 전화를 하는 것이 효도의 전부인 막내아들은 너무나도 고맙고 기특한 존재다. 상대적으로 맏아들인 큰동생은 웬만해선 안부전화를 하지 않아서 늘 욕먹는 편. 전화보다 찾아뵙고 싶은데 그걸 못하는 게 미안해서 아예 전화도 못 건다는 것이 큰아들의 같잖은(그러나 전화기피증이 있는 나로선 일견 이해가 되는;;) 변명이다. 암튼 친구들의 엄마도 함께 살며 옆에서 온갖 수발 다 들고 궂은 일 도맡아 하는 자식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원래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에, 기막혀 한 적이 있다.

옆에선 아무리 잘해드려도 지지고볶는 애증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으니 미운털이 더 많이 박히기 일쑤이고, 1년에 몇번 안부전화라든지 삐쭉 얼굴 들이밀며 용돈 봉투 드리는 자식들은 너무나도 장하고 기특한 자식으로 생각되는 아이러니.

더욱이 나를 포함한 K장녀들의 희생은 너무도 당연시된다. 아까 저녁때 새삼 옛날 얘기를 끄집어내며 화를 냈던 건, 엄마가 당뇨관리에 신경 안쓰고 과일을 너무 많이 드신 것에 꼭지가 돌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도인지장애로 깜박깜박 본인이 먹은 걸 기억 못하는 상황에서 과일 탐닉은 더욱 심해져, 내가 정량 따져(사실 병원 의사들은 과일 금지! 토마토만 드시라고 함)  챙겨드렸는데도 그건 그것이고 당신은 게으른자의 최애과일인 귤을 자꾸만 꺼내드신다는 것이 문제다.

조울증이 극심했을 때 혈당관리가 아예 안 돼, 급성신부전증으로 중환자실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을 간신히 넘긴 전적이 있는 분이 왜 과일을 자꾸 꺼내먹냐고 신경질을 내다가, 그 황망했던 두달의 간병기가 떠올랐다. 물론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실 땐 울고불며 그저 무사히 깨어나시기만을 기원했었지만, 이후 일반병실로 옮겨 하지마비가 풀리기까지 온갖 수발을 2달 내내 하면서 나도 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었다. 처음엔 출판사에 양해를 구해 마감일을 연기하고 병간호에만 매달렸지만 그 기간이 2달까지 길어질 줄 아무도 몰랐고, 아버지가 매일 아침 병실에 와 저녁까지 곁을 지키는 애정을 쏟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보조침대 쪽잠은 2달 꼬박 내 차지였다. 낮엔 종종 후다닥 집에 가서 아빠 먹을 반찬 만들어놓고 와야했고, 이젠 좀 간병인을 쓰자는 동생들과 나의 제안에 아빠랑 엄마는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어떻게 네 엄마를 남의 손에 맡길 수가 있느냐고! (애처가인 아빠 본인도 옆에 앉아 엄마 손이나 쓰다듬을 뿐, 기저귀 갈기라든지 소변주머니 비우기라든지 이런 건 손도 못대셨음. 욕창까지 심하게 생긴 상황이라 안쓰럽고 무서워서 자긴 손을 댈 수가 없으시다고... +_+)

당시 큰동생 부인이 나를 안쓰러이 여겨 하룻밤 당번을 교대해주겠다고 나섰으나... 한달 만인가 집에 와서 처음으로 편한 잠을 자던 새벽 3시 30분. 엄마가 빨리 오라고 전화를 했더랬다. 밤새 아예 눕지도 못하고 병상을 지켰던 큰며느리가 도통 못 미더워서 안 되겠다나. 아직까지도 주변에 효녀로 손꼽히는 나도, 그 당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진리임을 깨달았다. 큰딸이자 외동딸이자 하나밖에 없는 만만한 프리랜서 싱글 자녀인 나의 희생과 봉사를 엄마 아빠가 어찌나 당연하게 여기시던지...  아들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퇴근해서 병문안만 와도 막 고마워하는데, 종일 붙어서 누렇게 떠가는 나한테는 고마워하지도 않고 말이지! (이런 상황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너 밖에 없다, 너 때문에 내가 산다.. 이따위 말은 사실 세뇌이자 부담 전가일 뿐, 감사의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울증 때문에 2달 내내 1, 2인실을 고집한 터라 한달에 천만원도 넘게 나왔던 병원비도 결국 절반은 내가 냈던 걸로 기억한다. 여행 가려고 모아둔 몫돈 있는 줄 어케 알고!

결국 엄마가 무사히 퇴원했던 건 감사한 일이지만 딸로서 몹시 마음 상했던 그 두 달의 간병기는 이후에도 화날 때 엄마 아빠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곤 했었는데, 부모님께 제대로 사과를 받았는지 기억이 영 나질 않는다. 좀 전에도 엄마한테 십수년전부터 엄마 입원할 때마다 당연히 간병한 나한테 왜 미안하고 고마워하지 않느냐고 따지니까.... 당신께선 기억에 없단다. 헐. 아니 그래서 내가 기억을 상기시켜드렸으면 미안하다고 하셔야죠. ㅠ.ㅠ 미안해, 안 미안해? 막 따져서 겨우 사과 받았다. 에효.

오빠만 하나 있는 친구라든지, 5남매중 막내만 남동생인 친구의 경우 어머니들의 편애는 더욱 극단적이다. 팔십이 넘은 친구 어머니는 아직도 오십대 후반인 이혼남 아들의 아침상을 정성스레 차리느라 새벽부터 친구를 가사도우미처럼 부리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넌 안 낳으려다가 낳았으니 고마워하라고 하신다든지, 무조건 오빠한테 잘해라고 하신다든지... ㅠ.ㅠ 외아들의 큰누나인 친구도 엄마를 안쓰러워하기는 하지만 매사에 아들아들 위하는 모습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아니 해외여행이든 국내여행이든 모시고 다니는 건 내 친구인데 왜 막내아들만 예뻐하시냐고! 

3, 40년대에 태어난 엄마들은 뼛속 깊이 남아선호사상이 박혀있고 본인도 어려서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가사노동에 시달려왔음에도 그게 부당하다고 여기기는커녕 다음 세대의 딸 역시 부가노동력으로 여기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열살무렵부터 명절이면 생선전, 동그랑땡에 밀가루 묻히는 것부터 배우며 잘한다, 잘한다는 말이 정말 칭찬인 줄 알고 송편빚기 만두빚기에 자원한 옛날의 어린 나를 돌이겨보면 너무도 억울하고 속상하다. 남동생들은 옆에서 딱지치기 팽이치기나 하고 놀았는데! 난 음식 거들지 않으면 어린 사촌동생들 포대기로 업고 달래주고 있었고 흑..  박수근의 <애기 업은 소녀>에서 울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사실은 그 친숙함에 내 모습도 담겨있기 때문일 수도!  

한껏 비뚤어져 있는 내 심정으로 판단컨대 확실히 엄마들은 자식들에 대해서 얼마간 편애를 한다. 편애 받는 자식들도 아픔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암튼 편애에서 제외된 자식들은, 그 중에서도 보살핌 노동력으로 당연시되는 딸들은 특히 억울하다. 연로한 병든 부모의 보살핌 노동에 대한 실태 조사에서 1순위는 비혼딸, 2순위는 기혼딸, 3순위는 비혼아들, 4순위는 기혼아들(사실은 며느리) 순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공통점이라고 들은듯. 어차피 후대 아이들은 부모 보살핌을 의무로 여기지도 않겠지만, 심정적으로 딸이 더 부모를 잘 모실 거라는 편견이 어쩌면 요즘 딸 선호사상과도 맞물리지 않나 싶어 소름이 끼친다. 편애하는 자식 따로 있고, 보살핌 노동자로 당첨되는 자식 따로 있고, 공평하지 못하다! 요즘 세대의 사상으로 봐서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싶지만, 후대의 딸들은 부디 더 자유롭기를... 나는 이미 이번 생에 글렀으니... 사랑하는 나의 조카 ㅈㅁ이 같은 딸들을 위해서 세상이 더 확확 바뀌기를 소망한다. 엄마들부터 제발 바뀌어야한다고! (설마 바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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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이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도 나는 마스크를 잘 쓰지 않았다. 미세미세 앱에서 검은 바탕에 해골표시를 보여주며 "최악, 절대 나가지 마세요!"라고 뜬 걸 보면 잠시 각성해서 마스크를 써봤지만 자꾸만 안경에 서리는 김 때문에 시야가 가려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숨이 가빠졌다. 호흡기가 약한 건지, 단순히 폐소공포증의 일환으로 마스크 쓰기가 답답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숨차서 쓰러지느니 그냥 미세먼지를 마시겠다고 결심하며 살았다. 100세시대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의미에서 미세먼지로 수명을 좀 단축하지 뭐, 그런 심보도 얼마간 작용했다. 

과거를 돌이켜보아도 나는 숨가쁜 걸 잘 못견디는 체질이다. 워낙 옛날 사람이라 ^^; 초등학교(실은 국민학교) 및 중학교 시절 마당이 넓고 한옥도 양옥도 아닌 벽돌 집체에 파란색이나 주황색 기와를 얹은 집들을 전전하며 살았다. 당연히 화장실은 마당 제일 외진곳에 있는 푸세식이었고, 세수는 마당 수돗가에서 엄마가 큰솥에 미리 데워놓았거나 연탄보일러에 연결된 온수통에서 더운 물을 퍼날라다가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그랬었다. 그러니 당연히 목욕은 대중목욕탕에 가야 가능했다. 헌데 내가 덥고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찬 대중목욕탕을 잘 못견딘다는 게 문제였다. 특히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주말에 엄마에게 끌려 목욕탕엘 가면 숨을 잘 못쉬겠고 어지러워서 자꾸만 밖으로 물을 마시러 나가거나 찬물을 갖고 놀다가 많이 혼나곤 했다. 체육을 워낙 못하는 몸치이지만, 그 중에서도 체력장 과목인 오래달리기를 엄청 힘들어했던 것도 뭔가 호흡과 관련이 있지 않으려나 싶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서도 오래 쇼핑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두통이 찾아온다. 여러모로 예민한 심신을 가졌지만 산소 농도에 특히 민감한가? 몇년전에 거금 들여서 개인 건강검진을 했을 때, 운동 부하와 폐기능은 멀쩡하다고 했으므로 그냥 순전히 내 기분에 의한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째뜬 어려서부터 중년에 이른 지금까지 일맥상통하게 난 숨가쁜 상황을 못견디므로, 보건용 마스크가 필수인 이 전염병 시국이 특히 난감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지만 노상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다. 장보기가 귀찮아서 1년째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당일배송이나 새벽배송을 받았었는데, 다들 인터넷 장보기에 몰려드니 당일배송은 언감생심 지난 주말엔 이틀 뒤로 배송시간이 떴다. 나는 장봐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가 텅텅비도록 버틴 다음 다시 장을 보는 사람인지라... 당장 반찬거리와 쌀이 떨어졌는데 당일배송이 안되면 몸소 사러 나가야한다. ㅠ.ㅠ 해서 요샌 오히려 귀찮게 장보러 나가는 일이 많았으니 참 사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어쨌든 집순이 노모와 함께 사는 프리랜서는 마스크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3년전에 사두었다가 안쓰고 내버려둔 것부터, 2월 중순에 정말 마스크가 구하기 힘든가 동네 마트에 가서 한두개씩 사온 것까지 엄마 모시고 병원 다닐 때 쓰기엔 충분했다. 마스크가 진짜로 바이러스를 막아주는지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곧장 전염병 보균자나 개인위생을 소홀히하는 사람으로 매도당할 수 있으니 눈치 보여서 아예 안 쓸 수는 없다. 일부 종교인들이 비밀리에 암약하며 사회를 집단 감염시킨 상황을 보면 실제로 어디에서 누굴 만날지 몰라 두렵고 조심하는 게 맞다.

하지만 국내 언론을 못믿어 연일 눈빠지게 BBC와 CNN 코로나 관련 뉴스를 섭렵해 얻은 정보로 보자면 KF마스크를 써도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을 순 없을 것 같다. 고글까지 완벽하게 쓰면 모를까, 아니 고글과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했더라도 손에 바이러스를 묻혀와 집안 어딘가를 만져서 바이러스 흔적을 남겨뒀다면 말짱 꽝이다. 집에 오자마자 손 씻었는데 들어갈 때 목욕탕 문 손잡이 바이러스를 묻혀뒀더라면? 으악... 일단 손씻기가 엄청 중요하단 것만은 잘 알겠고, 핸드폰도 잘 소독해야겠고... ㅎㅎ 암튼 해외 전문가들은 오히려 보건용 마스크 썼다고 방심했다가 개인 위생에 더 소홀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건강한 사람이라면 사람 많은데 가지 말고 마스크는 그냥 환자나 의료진에게 양보하라고, 수급에 어려움 생길 수 있으니 사지도 말라고 권한다. 온 국민에게 1일1마스크 공급 안하면 정책 실패라고 난리치는 나라는 정말 전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는 것 같다. 미국 일본은 바이러스 테스트키트도 모자라다고 난리구만... 겨우 마스크 가지고 참.  

그나마 다행인 건 의료진과 환자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스크가 돌아가도록 마스크 안사기 운동도 나름 벌어지고, 천마스크 쓰기도 장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어차피 KF94를 쓰면 숨가빠져 코를 내놓아야하는 형편인데 뭐하러 그걸 고집하나 싶어 검정색 천마스크를 하나 만들어 두었다. 유튜브를 보니 행주나 키친타월을 이용한 사제마스크 만드는 영상도 꽤 보이길래 집에 있는 빨아쓰는 행주 2종류 사이에 필터 대신 정전기청소포를 잘라 빵끈과 함께 넣어 양면테이프로 붙인뒤 고무줄은 실로 꿰매어 넣는 방식으로 1회용 3겹마스크도 하나 만들어보았는데 ㅋㅋㅋ 한번 쓰고 버리기엔 들이는 품이 너무 아까워 또 만들게 되진 않을 것 같다. 

더보기
부직포행주 마스크는 철사까지 넣어 착용감이 그럴듯하지만 역시나 숨쉬기는 좀 힘들어서 최애 마스크는 검정색 천마스크다 ㅋ

우선 마스크를 꼭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자는 취지에 동감하기도 하지만, 게을러서 5부제 구입 날짜를 맞춰 공적마스크를 사러 나가기도 귀찮고, 종로와 명동 등지에서 개당 4천원씩 막 박스째 놓고 파는 마스크는 괘씸해서 사주고 싶지도 않으며, 미세먼지 마스크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제대로 차단해줄 거라 할 거라 믿지도 않으므로 나는 당분간 천마스크를 쓰겠다! 보건용마스크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공무원들에게도 일부 국민들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겠으나... 어휴 그 수많은 의료폐기물과 일회용품들은 나중에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 든다. 5천만명 중에 천만명이 매일 마스크를 쓰고 버린다면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쓰레기는... ㅠ.ㅠ 어쩌면 이번 전염병 창궐은 생명체인 지구에 가장 해로운 인간을 퇴치하려는 몸부림의 일환일 수도 있겠는데, 인간들은 안간힘을 쓰며 살아남으려고 또 다시 지구를 더 오염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현실은 정말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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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병

아픈 손가락 2020. 2. 6. 16:31

 

다행히 설날을 기점으로 엄마의 병세는 고비를 넘긴 듯하다. 불안증과 의심증도 차츰 줄어들더니 드디어 오늘은 내가 언제 그랬냐 싶게 간간이 기분이 좋으시다. 1년 전에도 12월에 심하게 발병했다가 설날 지나고 2월 들어 진정세에 접어들었었다. 그래도 작년엔 2월 말이었던 79세 생일 모임을 건너뛰었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었다는 의미다. 당시 핑계는 내년이 팔순이니 2020년에 거하게 밥을 먹자고, 그리고 곧이어 잡혀 있던 고손녀의 돌잔치 때 얼굴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동생들을 설득했다. 

 

2019년 3월9일이었던 돌잔치날 엄마는 도무지 환자로 보이지 않는 건강한 모습으로 파티에 참석하셨다. 심지어 미용실에 가서 머리 드라이도 하고 오셨던 터라 기쁨에 겨워 기념 사진도 남겼었다. 미소가 온화하고 우아하기 이를데가 없다. 평소 내가 왕비마마라고 떠받들어드리는 울 엄마의 모습이다. 남들도 다들 인상 좋으시다고, 엄청 고우시다고 (경복궁 선생님들의 칭찬이다 ㅋ) 하는 얼굴.  

오랜 세월 함께 엄마의 병증을 겪어온 가족들은 엄마 표정만 보아도 안다. 증세가 나쁠 때는 얼굴의 일부 근육과 신경도 이상해지기 때문에 사나운 표정과 눈빛으로 돌변한다. '호랑이 눈썹'이 되었다고 내가 표현하기도 하는데 눈 주변의 주름이 바깥쪽을 대각선으로 경직되면서 무서운 느낌으로 바뀌는 거다.  뇌의 일부 전달물질이 불균형을 이르면서 신경이 곤두서면 근육도 그에 따라 지배되는 것 같다. 암튼 오늘 엄마의 표정은 완전히 이 모습까지 이완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표독스러워져서 무서울 정도의 느낌에선 확실히 벗어나셨다. 이제 나도 겨우 숨을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엊그제 2주만에 다시 진료를 받으면서, 잠자는 게 여전히 불편하다는 엄마의 말에 의사는 세로켈 용량을 200mg으로 더 늘렸다. 연세가 많으셔서 복용량 변화를 심하게 할 수가 없다보니 늘 이런식이다. 입원을 시켜 곁에서 면밀히 지켜보지 않는 한 1, 2주 만에 한번씩 상담후 조금씩 약을 바꾸다 보면 한두달이 훌쩍 지나간다. 요번엔 엄마가 비협조적이어서 중간에 더 먼저 찾아가 약을 바꿀 기회를 놓쳐서 더 기간이 오래 걸렸다. 젠장.

하여간 그래도 역시나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이건 '아는 병'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면서 참으면 결국 좋아지는 때가 온다. 다시 병세가 나빠지는 주기가 너무 빨라져 그것이 절망스럽긴 하지만, 악화일로에 놓이는 알츠하이머와는 또 다르니까.

연세 때문인지 점점 더 증세가 심해지고 기간도 길어지면서 요번에 특히 역대로 힘들고 괴롭던 차에 신기하게도 인간의 심리 원리를 다룬 책 증정본을 하나 받았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어쨌든 겪어 나가는 당사자로서 삶은 참 공교로울 때가 있다. 엄마한테 난데없는 의심과 비난을 받으며 내가 징징 울며 괴로워할 때 도착한 이 책을 받자마자 양극성 장애 부분을 펼쳐보았다. 그림과 도표로 간단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임에도, 그 간단한 정보가 엄청 위로를 주었다. 어차피 치료약이 있으니 전문가들은 다 아는 병이겠지만, 계속 재발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긴 하지만 엄마가 보이는 성격 변화와 온갖 증상들도 결국엔 다 예측범위 안에 들어 있었다.

"기분이 급변할 때는 극단적인 성격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는 사회적, 개인적 인간 관계에 심한 긴장을 유발한다" (<심리 원리> p40)

"일반적으로 양극성 장애의 주요 원인은 뇌 기능에 관여하는 화학물질들의 불균형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 전달 물질이라고 불리는 이 화학 물질에는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도파민이 포함되며 신경 세포 간에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유전도 원인의 하나로, 양극성 장애는 가족 내에서 유전되고 어느 나이에서나 발병할 수 있다. 100명 중 2명은 살면서 한번 이상의 양극성 장애의 삽화(episode, 우울증이나 조증 같은 특정 증상이 지속되는 기간-옮긴이)를 경험한다고 하는데 그 중 일부는 평생 두어번의 삽화만 겪지만 어떤 이들은 여러 번 겪는다. 삽화를 촉발하는 요인으로는 스트레스, 질병,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이나 돈 또는 직장과 관련된 문제 같은 일상 생활 속의 괴로움 등이 있다." (p40-41)

우울증과 조증의 패턴을 나타내는 그림을 보아도, 아 그렇구나 싶다.   

안정기 → 경조증 →우울증(이 시기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수면장애와 식욕저하를 겪고 망상 환각 불안정한 사고를 경험)  → 약한 우울증 → 조증 → 혼재성 상태  ㅠ.ㅠ

영원한 레아 공주, 캐리 피셔가 남겼다는 말도 위로가 됨. "양극성 장애는 도전이지만,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줄 수도 있다." 

석달째 엄마를 돌보면서 나도 우울증 환자가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순간이 꽤 많았다. 뭔가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느낌? 아는 게 병이기도 하지만 또 아는 게 힘이기도 해서, 기분이 바닥을 칠 때면 위험신호라는 걸 스스로 인식하고 홀로 뛰쳐나가거나 약속을 만들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위기를 나름 잘 극복한 것 같다. 스스로 장하다.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땐 엄마의 '삽화'가 매년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또 지나갈 것으로 믿어야지 별 수 있겠나.

엄마의 성격변화와 몇몇 이상 증세가 유독 심해서 혹시 조울증 때문이 아니라 알츠하이머의 전조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 치매 환자를 겪어본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알츠하이머의 가능성에 손을 들었다 - 주치의에게 두뇌 정밀검사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증세가 완전히 회복된 이후에도 그러는지 두고 보자고. 엄마도 나도 가장 두려워하는 그 병만은 진짜로 아니면 좋겠다. 째뜬 보름 뒤로 다가온 조촐한 팔순 가족모임은 별 문제 없이 강행해도 좋을 듯하니 다행이다. 다들 웃는 얼굴로 맛있는 밥 먹고 힘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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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음 상하는 일의 연속. 엄마이자 환자의 프라이버시 따위 개나 줘버려, 하는 심정이 자꾸 올라온다. 나이들면서 나도 점점 옹졸해는 거겠지. 그러든가 말든가. 차곡차곡 적어놨다가 엄마가 멀쩡해지면 그동안 나한테 이렇게 심하게 굴었다고 다 일러바칠테다. 물론 그러면 엄만 또 민망하고 창피해서 다시 병이 도지려나? 암튼...

 

열 뻗치게 만들었던 오늘자 엄마의 발언들

- 추워 죽겠다.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리다. 니가 전기장판 다 갖다 치워서 그렇다. 엄마 얼어죽으라고? (초겨울에 치운 건 여름과 가을 내내 침대에 두고 쓰시던 찜질팩이고, 그거 대신 시트 아래 아예 전기요를 깔아드렸었다. 그렇다고 설명하고 방금 켜드리고 나옴.)

- 너 옷이 그게 뭐니? 꼴 보기 싫다. 그런 옷을 맨날 왜 입고 있느냐. (재작년 아울렛에서 만원짜리 회색 플리스 티셔츠를 팔길래 덜컥 사왔으나 XL 사이즈라 집에 와서 혹시 엄마 입으실랴우? 물었더니 싫다고 질색팔색을 하시길래, 너무 긴 소매를 자르고 끝에다 스누피와 우드스탁을 수놓은 옷이다. 당연히 나는 너무 마음에들고 따뜻한데, 엄만 원래도 내가 큰 옷 입는 걸 싫어한다. 결국 딴 옷으로 갈아입었다.)

- 머리도 꼴보기 싫다. 저번에 분명 미용실 간다고 그러더니만 계속 저러고 다닌다. 머리 안 자르고 어디 딴델 갔겠지. (하도 머리 길다고 타박이라 스프링끈으로 질끈 묶었더니) 저것 봐라, 또 이상한 걸로 머리를 묶었네. +_+

- 엉엉엉. 엄마... 엄마... OOO이 점점 이상해져, 나 어떡해 엄마...  (외할머니는 여든셋에 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오이소박이를 담가 자식들에게 돌리셨다. 울 엄만 아프단 핑계로 살림 손에서 놓은지 15년도 넘었고, 딸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으면서!)

- (점심 먹으면서 하도 당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 자책하시길래 그럼 잘 됐네, 나 엄청 바쁜데 엄마가 점심 설거지 좀 해주세요, 그랬더니만 단박에) 싫어! 못해! 손시려워서 못해...

 

그래도 유일하게 희망적이었던 순간은...

오후에 커피 마시면서 엄마도 차 한잔 타다 드렸더니 "땡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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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증상

아픈 손가락 2020. 1. 13. 20:18

조울증이 심해지면 엄마는 매번 반복되는 말과 행동이 따로 있다.

일단 자책이 심해진다. 자격지심의 끝판왕이 되어 끝없이 자신을 책망하고 타박한다. 경조증과 우울증이 겹쳐져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도저히 못참겠다고 내가 소리를 지를 때까지 계속한다. 그러다 더 심해지면 거의 24시간 내내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입으로 중얼거린다. 주로 자책을 하지만 주변 사물과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여기며 괴로워한다. TV도 이상하고, 방바닥에 먼지도 이상하고, 화분도 꼴보기 싫고, 벽에 걸린 가족사진도 이상하고... 식사 때마다  밥먹을 자격이 없으니 밥도 먹으면 안된다고 드러눕거나, 이웃사람들이 자기를 감시하기 때문에 절대로 밖에 나갈 수 없다는 둥, (이유가 뭐든) 창피해서 이젠 절대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2017년과 18도엔 말끝마다 '난 사실대로 얘기하는 거다'라고 우겨댔었다. 뜬금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 액자를 가리키며 저렇게 오래된 사진을 뭐가 자랑이라고 떡하니 집에 두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책장에 든 조카들 아기때 사진을 보면서도 다 큰 애들 사진을 저기 왜 두는 거냐고, 애들이 와서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대학병원에서 당뇨약과 혈압약을 6개월치씩 타다 두고 먹는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난 사실대로 말하는 거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결국 장식장에 든 모든 사진 액자는 몇달간 엎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는 거'라면서 나는 물론이고 아들들, 며느리들에게까지 거침없이 생각나는대로 내뱉은 덕분에 (니가 사업으로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모른다만, 맨날 그렇게 사치하다 거덜난다. 남편이 힘들게 벌어다 준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쓰면 안된다, 안 그러니?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 환자가 '심신미약' 상태에서 한 말이든 아니든,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 솔직한 지적이었기에 ㅠ.ㅠ 엄마는 엄청난 인심을 잃었고 미운 털이 많이 박혔다. 나 또한 상처 받은 적이 수없이 많았었고.

 

그런데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엄마의 증세는 좀 다르다. 물론 당신 본인에 대한 자책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긴 하지만, 의심증이 추가되었는데 그 의심의 주요 대상이 바로 나다. 어휴. 부산행 KTX와 숙소 예약을 인터넷으로 마쳤다는데도 도무지 그걸 못믿질 않나, 서울역에 가서도 고모들을 못 만날 거라고, 혹은 길을 잃고 기차를 놓칠 거라고 하질 않나, 친척분들이 내게 송금한 축의금을 내가 다 떼어먹을 거라고 하질 않나 (엄마 보는 앞에서 고모들을 증인으로 두고 축의금 봉투에 일일이 현금을 넣는 걸 보여주었음에도!), 부산에 자기를 버리고 올 거 같아서 계속 날 놓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고 하질 않나... ㅠ.ㅠ

 

부쩍 날 도둑년 취급을 해서 마음을 상하게 하더니만 급기야 엄마는 며칠 전 외출했다 돌아온 내 가방을 뒤졌다. 자꾸 거짓말을 하고 어딜 나다니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확인을 해야겠다나. 어휴. 기가 막혀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딸에게 의존적이기만 하던 엄마는 어쩌다가 나에 대한 신뢰를 그토록 잃게 되었을까. 그간 엄마의 조울증이 심해질 때마다 짜증도 나지만 근본적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서 달래드리려는 태도였다면, 요번엔 너무 낯설고 무섭게 구는 엄마의 모습이 겁도 나고, 무진장 억울하고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난다. 입바른 소리는 잘하지만 근본적으로 너그럽고 좋은 사람이었던 우리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정말 이상하고 괴팍하고 인색한 할머니만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고, 그래서 너무 슬프다. 

 

나 역시 일종의 가면우울증이랄까, 밖에 나가선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즐겁게 지내려 노력하면서도 내 속은 점점 문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울 엄마의 정신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단 건 지인들도 대강 알지만 그 내막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나 말고 울 아버지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아들도 결혼전엔 아픈 엄마를 목격했지만 20년쯤 나가 살았으니 그간 바로 곁에서 지켜본 것도 아니고 24시간 실체를 겪어본 것도 아니니까. 놀랍게도 엄마는 내 앞에서 길길이 날뛰다가도 아들이 다니러 온다거나 전화가 걸려오면 금세 다른 표정이 된다. '응, 아들? 엄마 괜찮아. 걱정하지 마...' 물론 의사 앞에서도, 남들이나 친척들 앞에서도 비교적 얌전해진다. 편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선 멀쩡해 보이려는 환자의 의지가 발현되는 건지, 놀라운 연기력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로선 순식간에 달라지는 엄마의 태도에 그저 배신감을 느낄 뿐이다. 아마도 이중인격이나 다중인격을 다룬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나오는 건 그들도 이런 인간의 이면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 대한 심한 의심 이외에도, 엄마는 이제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이상하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과거엔 주로 '내가 미친년이라 큰 일이다, 미친 엄마 때문에 우리 딸이 힘들어서 어쩌나' 이런 푸념을 하셨는데 올 들어서는 계속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OOO(내 이름)이 이상하다, 쟤가 미쳤다'고 말하며 심지어는 내 눈이 이상하다고까지 하신다. 내 눈이 어떻게 이상하냐고 물으면, 달라졌다고, 그냥 이상해졌다고...  과연 새로운 이런 증상들의 의미는 뭘까. 일주일 전에 바꿔온 약(세로켈이 25mg에서 100mg으로 늘어남)으로 밤엔 전보다 약간 더 잠을 주무시고 있고, 눈감으면 나타난다는 글씨는 사라졌다고 하며 온종일 계속되던 중얼거림도 줄어들긴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엄청난 차도가 있는 것 같진 않다. 

 

마지막으로 요번들어 엄마는 이상하게 옷타령, 신발타령을 하신다.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고. 신발도 신고 나갈 게 하나도 없단다. 옷장에 있는 옷들을 죄다 꺼내 보여드리기도 하고, 결혼식 갈 때 걸칠 조끼도 새로 사드렸는데도 여전히 오늘도 엄만 입을 옷이 없어서 못나간다고 푸념이다. 그나마 신발타령이 멎은 건, 1월 들어 내가 겨울 신발을 두 켤레나 사놓았기 때문이다. 대체 한겨울에 추운데 어딜 나갈 데가 있다고 (매달 셋째주 화요일에 동창모임이 있긴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는 조울증이 도져서 못나간 적이 많다) 매일같이 옷타령 신발타령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럼 같이 쇼핑하러 나가자고 하면 또 싫다고 하니, 나더러 대체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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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기 전에 먹어야하는 약을 드시게 하느라 엄마와 한참이나 씨름을 하고 돌아왔다. 컨디션이 좋을 땐 매일 정해진 시간인 밤 10시에 '자기전'이라고 약봉지에 쓰인 약을 스스로 먹고 침대에 눕는 것이 엄마의 일과다. 하지만 요즘처럼 상태가 나쁠 땐 뭐든 일단 '싫다'고 거부하고 본다.

엄마, 저녁 드세요. - 싫어, 안 먹어. 먹을 자격 없어. 

엄마, 늦었어요, 약 드세요. - 싫어, 안 먹어. 먹어도 소용없는 약을 왜 맨날 먹으래. 이거 먹으면 내일 나 못일어나.

이젠 조근조근 달래는 것도 지쳐서 버럭 소리부터 지른다. 아 왜 또! 드시라고 하면 좀 순순히 드시라고요!

 

오늘 의사와 상담 때 엄마는 사뭇 우아하고 차분하게 그간 잘 못지냈고, 마음이 불안하고, 밤에도 잠을 못자는데 그 이유가 눈만 감으면 눈앞에 글씨들이 마구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상한 내용의 글씨들이 총천연색으로 자꾸 보인다고. 거의 작년 이맘때도 엄마가 했던 말이다. 돌이켜보면 딱히 스트레스나 '이슈'가 없을 때 엄마 병이 심해지는 건 일년 중 늘 비슷한 시기였다. 과거엔 봄과 가을, 환절기를 잘 못넘기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한겨울에 증상이 가장 심한 것 같다. 일단 2017년과 2018년은 동일하게 11월부터 나빠져서 다음해 설날 즈음까지 계속 힘들었다. 2019년은 11월을 잘 넘기나 싶었는데 12월에 그놈의 부산 결혼식 때문에 그만...  하긴 결혼식이 아니었더라도 11월 중순에 엄마와 내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나도 그 때문에 사흘간 잠도 못자고 괴로워했었는데, 엄마는 깜빡깜빡 건망증 때문에 그 사건을 잊었던 듯 1, 2주 뒤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 이 이야기는 으음... 그 사람에 대한 일방적인 인신공격이 될 수도 있으므로 좀 더 생각해보고 나중에 포스팅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해야지.

 

암튼 올해로 팔순을 맞은 엄마의 상태가 점점 나빠질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고, 핸드폰 메모장이나 탁상달력에 메모를 해두기는 하지만 반복적인 증상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나도 이제부터 좀 더 체계적으로 고민하려면 단편적인 메모가 아니라 좀 더 자세한 기록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부산에 갔을 때 밤새 잠 못자고 괴롭힘을 당하는 날 지켜본 고모들도 진지하게 엄마와 나를 위해서 뭔가 더 나은 방법을 찾아봐야한다고 조언했었다. 일단은 최대한 객관적인 상황파악이 먼저라고 생각된다.

 

원래도 노인들은 어떤 상황을 접했을 때 두뇌의 필터링이 떨어지고 걱정이 많다. 그래서 '노파심'이란 말도 나왔을 테고. 늙을수록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없이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내놓게 마련이다. 그게 옳든 그르든 판단은 나중이고, 일단 말을 해놓고 보는 거다. 울 엄만 대단히 타인지향적인 성향이라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한다. 그러므로 남들에게 입바른 소리를 크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동네에서 못마땅한 이웃의 행동을 보면 간혹 지적은 하지만, 그러는 빈도수가 높진 않다. 그런데 가족들에겐 좀 다르고, 우울증에 대한 나름의 방어기제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으나 평소엔 듣는 사람 생각 않고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신다. 예를 들면...

 

내가 뭔가 요란뻑쩍지근한 요리를 해바쳤을 때: 냄새는 엄청 요란하더니 맛은 그저그렇구나. (난 당연히 버럭.. ㅠ.ㅠ)

그런 효녀 세상에 없다고 내 칭찬을 하는 당신 친구들에게: 효녀 맞아, 근데 성격이 까칠해서 나랑 맨날 싸워.

번역이 얼마나 힘들고 위대한 일인 줄 아느냐고 내 칭찬을 하는 친척들에게: 그렇죠, 맨날 밤새고 일하는 거 보기 안타까워요. 근데 벌이가 시원치않아서 혼자 먹고살기도 힘드나봐요, 그러니까 좋은 사람 있을 때 시집이나 가서 편히 살지 원 참... 

 

그밖에 아들들에게도, 며느리들에게도, 손녀딸에게도 엄마는 그간 말실수를 참 많이도 했었다. 엄마의 정신건강이 안좋을 때라서 좀 양해를 해달라고 하기엔 평소에도 입바른 소리를 너무 많이 쏟아내시기 때문에 말로 인심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엄마 입장에선 저런 이야기들이 다 '사실'일 거다.


주변에서 내가 엄마를 '잘못 키워서' 혹은 '너무 오냐오냐 해드려서' 저렇게 의존적이고 의지박약한 노인이 되었다는 말을 왕왕 들을만큼 엄마는 그간 우울과 불안이 심해질 때마다 내게 크게 의지하고 눈에 안보이면 괴로워하는 편이었다면, 작년말부터 시작된 엄마의 불안증과 의심증은 조금 또 방향이 달라졌고 말로는 여전히 "딸 없으면 못산다, 난 딸 없으면 시체다"라고 주절거리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특히 금전적인 부분으로.

 

일견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은행계좌 관리나 세금 납부를 내가 인터넷뱅킹으로 해드리는데 그게 영 불안한 거다. 내가 엄마의 연금통장 비밀번호와 계좌를 다 알고 있으니 홀라당 훔쳐가버릴까봐서. ㅠ.ㅠ 슬픈 건 엄마가 컨디션이 좋으실 땐 태도와 말씀이 정 반대라는 거다. 엄마 돈이 다 니돈이야, 엄마 죽으면 다 너 주고 갈 거야. 엄마 죽기 전에 너 잘 살게 만들어놓고 가야할텐데... 뭐 이런 눈물겨운 딸걱정을 하실 땐 언제고 지금은 내게 눈을 흘기며 못 보던 신발이 있느니, 못 보던 옷이 생겼느니, 통장에 찍힌 자동이체 금액이 어떻느니, 당신 카드값이 이상하느니... 매일같이 괴롭히는 중이다. 

 

아무튼 요즘 기시감이 들어 나도 불안하다. 18년 연말과 19년 초에 갑자기 생겨난 다리 통증으로 응급실을 거쳐 입원하기 직전에도, 엄마는 심히 정신이 병들어서 이렇게 나를 들들 볶았고, 게다가 나는 원고마감 중이었기에 스트레스가 극심했었다. ㅠ.ㅠ 19년 연말과 20년 연초에도 여전히 엄마는 많이 아프고, 난 일로 심히 바쁘다. 다행인 건 지난 번의 경험으로 스트레스가 최고 수치에 달하면 두말없이 냉정하게 병든 엄마를 버려두고 밖에 나가 압력 추를 꺽어 폭발을 미연에 막는다는 점이다. 엄마가 더 징징대거나 말거나, 나부터 살고봐야지, 요샌 그런 생각을 1번으로 하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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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성장애

아픈 손가락 2020. 1. 6. 16:46

양극성장애( bipolar disease)는 조울증의 다른 이름이다.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바꿔부르면서 조현병과 조울증이 너무 비슷해보였나? 아니면 기분이 심하게 오르락거리는 사람에게 조증이냐고 놀려대는 질병 혐오발언 탓에 공식 병명을 달리 부르기로 학계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걸까? 암튼 그 이유는 몰라도 새로 나온 몇몇 정신건강 관련 책을 보니 조울증을 죄다 '양극성장애'로 표현하고 있었다. 비전문가로서 그냥 단어만 봤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를 짚어본다면, 조울증은 '증상'의 느낌이어서 필요 이상으로 가볍게 다루어지는 것 같은 반면에, 양극성장애는 '장애'를 붙여놓으니 지적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같은 항구적인 질병과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 같다. 뭔가 치료는 불가능하고 장애 상태에 그냥 적응해서 살아야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공황장애(panic disorder), 분리불안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름을 붙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disorder와 disease는 똑같이 '장애'로 옮기기엔 뉘앙스가 사뭇 다른 듯하다. disorder(dis-order, 질서가 무너짐, 엉망진창)는 신체적인 이상, 약간의 기능 장애 같은 느낌인 반면에 disease는 비록 그 어원이 편하지 않음/불편함(dis-ease)에서 왔다고는 하나 엄연히 '질병'이란 말이지. ㅠ.ㅠ

 

하여간 점점 분리불안 상태의 어린애처럼 구는 시간이 많아진 엄마를 혼자 감당하는 게 힘들어서 작년에 보험공단에다 요양보호 등급신청을 해보려고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에게 진단서를 부탁했더니만, '경도인지장애'와 함께 '양극성장애'라는 병명이 적혀 있었다. 물론 보험공단에선 울 엄마 정도의 인지능력과 조울증으로는 심사도 불가능하다고 전화로 통보해왔다. 아주 치매환자로 인정을 받아야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도 심한 인지장애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있어야 한다고. 젠장.

 

조울증이나 우울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 잘 아는 사람들(심지어 아들들도!)이라도 짧은 시간 우리 엄마를 지켜보면 대체로 엄마 멀쩡한데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나에게 핀잔을 준다. 나도 미칠 노릇이다. 일년내내 약을 드시고는 있지만 어떤 빌미로 증상이 심해져 겉잡을 수 없게 되면, 엄마는 하루종일 중얼중얼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입밖에 내거나 온 집안을 서성서성 돌아다니거나, 집안 구석구석에서 오래된 서류나 우편물을 끄집어내 새삼 읽어보며 의심을 하거나, 딸이 눈에 안 보이는 게 불안해서 졸졸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해댄다. 

 

홀로 중얼거리는 내용은 대체로 자책과 후회, 어후, 미쳤어, 미쳤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살면 뭐하나...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작년부터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전에는 동네 사람들이나 밖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당신을 이상하게 감시하고 뭔가를 훔쳐가려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젠 심한 의심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었다. ㅠ.ㅠ 치매 환자들이 흔히 주변 사람들을 의심해서 도둑으로 몬다는데, 울 엄만 치매도 아닌데 왜 나를 도둑년으로 모는 건지 원!

 

습관처럼 말로는 "XXX(내 이름) 없으면 엄마는 시체야. 너 없으면 엄만 못 살아..."라고 하루에 열두번도 더 되풀이하면서(까칠한 요즘 나의 상태로는 이 말도 딸에 대한 엄마의 가스라이팅 같아서 짜증스럽기만 하다. 도둑년 취급이나 하지 말든지! 나더러 뭘 더 어쩌라고!), 12월 들어서는 실질적으로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의심하기에 이른 것! 학교에 수업 간다고 외출해도 거짓말 하는 거라고, 자꾸 거짓말 하고 대체 어딜 나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고, 친척 결혼식 축의금을 내가 송금받아서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돈을 내가 다 떼어먹었다고 의심하시고! KTX 티켓을 모바일로 구매했다는 말조차 믿지를 못해서 사흘 내내 고모들을 동원해 설명을 해드려야 할 지경이었다. 부산 숙소와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두고 여행겸 떠나려던 부산 결혼식을 결국 이런 상황에서 다녀왔다는 게 정말 기적이다. 

 

기막히는 건 내 앞에선 눈을 흘기거나 부라리며 험악한 얼굴로 거짓말쟁이라고 나를 의심하거나 발을 구르며 펄펄 날뛰다가도, 아들 전화를 받을 땐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온화한 표정으로 돌변해서 '아들? 엄마 괜찮으니까 걱정마...'라고 한다는 거다. 물론 친척분들이랑 통화를 할 때도 말투와 태도가 달라진다. 누구보다도 남들의 시선과 평판을 의식하는 분이라 그런걸까? 요번엔 나도 정말 지치고 지긋지긋하고, 열이 뻗쳐서 엄마의 본모습을 증거로 남겨두겠다며 동영상 촬영을 해두었다. (한두달 뒤에 엄마가 심신의 안정을 되찾으면, 병증이 심했을 때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엄만 당신의 '미친 모습'을 찍어두었다며 당연히 길길이 화를 내시고 딸을 더욱 미워하고 있지만, 내가 오죽하면!  고모들 두분과 같이 떠난 부산에서 1박2일간 엄마는 집에서 보이던 모습과 달리 대체로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는데, 엄마의 고질병을 잘 아는 고모들도 드디어 밤사이 드러난 불안증과 의심병의 진실을 확인하고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나를 불쌍히 여겼다. 나의 인내심이 놀라운 수준이라고. ㅠ.ㅠ 

 

양극성장애 환자의 사연들을 들어보면 정말 기막힌 경우가 많다. 조증인 상태에선 환자가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주변에서 자칫 잘 알아차리지 못하면 집을 확 팔아버리거나 고가의 물건을 막 사들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20년 전쯤엔가 울 엄마도 집에서 입던 옷에 슬리퍼 바람으로 지갑 하나만 들고 뛰쳐나가선 막내동생 예식장을 계약하겠다며 동네에서 멀지 않은 특급호텔에 찾아간 적이 있는가 하면, 며칠 뒤엔 백화점에 가서 투피스를 서너벌이나 사서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들어온 적도 있다. 그때 너무 속이 상해서 주치의에게 털어놓았더니, 집을 팔아버리거나 비싼 보석을 사들이거나 남에게 주어버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뭐... 하더라.

 

조증 상태의 장점을 굳이 찾는다면 신체기능이 평소보다 좋아진다는 점이다. 시력도 청력도 더 예민해지는지, 보청기가 없어도 소리를 잘 듣고 안경을 쓰지 않아도 TV 자막이 다 보인단다. 다리가 아파 집안에서도 느릿느릿 걸어다니던 엄마는 종종 내가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의심스러워서 와다다다 쿵쿵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달려오신다. 물론 저러다가 심신이 안정되면 드디어 통증을 느낄 수 있게 되어 며칠 끙끙 앓아누울 게 뻔하고 하루종일 지껄여댄 혀도 다 갈라지고 입안이 헐어 한참 고생을 해야 할 거다.

 

다른 때 같으면 어서 약을 바꾸러 병원에 무작정 가보자는 나의 부탁을 들어줄만도 한데, 요번엔 극심한 딸 의심증상 때문에 (정신병원에 자기를 처넣으려고 하는 술수란다) 원래 예약날자까지 꼬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이 한달여일만에 잡힌 정기 예약일이다. 정신과 약은 한꺼번에 투약량을 확 늘일 수도 없고 약을 바꾼다고 해서 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것도 아니므로, 사실 크게 기대되지도 않는다. 다만 나보다 신뢰하는 의사의 위로와 이야기를 엄마가 잘 듣고 플라시보효과도 좀 생기길 바랄뿐.  연초부터 참으로 지치는 나날인데, 이러다 내가 병나겠다 싶어서 자꾸 밖으로 도망칠 일을 꾸미고 있다. 나도 숨은 쉬어야지. 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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