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82건

  1. 2018.01.02 2017년 Best - 한해 마무리 4
  2. 2015.09.09 케이트 10
  3. 2014.06.19 서울 도서전 6
  4. 2014.06.03 중고책 13
  5. 2014.03.01 2월에는 1
  6. 2014.02.03 1월에는 4
  7. 2014.01.06 2013 Best 7
  8. 2014.01.06 2013년에 읽은 책 6
  9. 2013.11.25 그럼 그렇지... 8
  10. 2013.09.30 가을은 독서의 계절? 8


미국 여행기를 연말안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겨우겨우 달성한 뒤엔 곧이어 2017 베스트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감기몸살로 계속 빌빌댔다. 그나마 다행히 A형 독감은 아니어서 열은 오르지 않았고, 그냥 팔다리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쑤시고 아프고 눈과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슝슝 나오더니 콧물이 쏟아졌다. 사나흘 앓고 일어나 이제 좀 살만 한데, 아직은 머리가 멍해서 책도 안 읽히고 그래서 일도 못하겠고 꼼지락 꼼지락 쓸데없는 바느질을 좀 하다가 블로그 정리나 하자 싶어졌다.

일단 2017년 정리 포스팅을 다 해야, 나의 모든 유희와 여행 기록을 메모해 놓은 탁상 달력을 내다버릴 수 있다규~ ㅋㅋ




2017년에 본 공연

1. 콜드플레이 내한공연(4/16)

2. 뮤지컬 나폴레옹(9/20) - 임태경, 정선아, 김수용, 박송권 

콜드플레이 공연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ㅠ.ㅠ <나폴레옹>은 왕비마마 모시고 가려고 여름부터 예약했다가 위약금까지 물고 취소하기를 2번이나 반복한 뒤에 겨우 관람성공해 감개무량했다. 아직은 와병중이라 위태위태했고, 아니나 다를까 공연에 집중 못하고 자꾸 나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움찔거려 옆자리 관객이 중간 쉬는 기간에 언짢은 불평을 했다. 에효... 보는 내내 엄마 때문에 긴장해서 뮤지컬에 대한 인상이나 감상보다 그날 조마조마했던 마음과 안도감이 더 떠오른다. 



2017에 본 드라마 & 예능

1. 셜록 시즌4

2. (여전히) 도깨비

3. 비밀의 숲

4. 이번 생은 처음이라 

5. 윤식당

6. 효리네 민박

<셜록>은 그토록 고대했던 것에 비하면 좀 실망스러웠고... 꼬박 1년 전이라 정말로 아스라하다. 그치만 또 언제 나올지 모를 시즌5를 기다리겠지. <도깨비> 역시 1월에 끝이 난 드라마라 2016년 베스트에 넣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없던 건 아니지만, 영상미며 스토리며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에 반해 <비밀의 숲>은 그야말로 최고의 드라마! 한참 바쁠 때 본방중이라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며 아껴뒀다가 한편씩 두편씩 어쩔 땐 세편 내리 꼬박 밤새며 봤다. 으아.. 정말 대단한 흡입력과 완성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중간에 몇편 보다가 결혼제도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와 대사들이 맘에 들어서 나중에 다시 몰아봤다. 중성적인 여자 이름을 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여주인공 이름이 지호, 남주인공 이름이 세희다. ^^; 뭔가 이런 미묘한 설정부터 좋아! 세희 역할의 이민기 배우를 새삼 다시 보게 됐고, 여주인공의 친구들 이야기도 각각 소홀하지 않게 잘 다루어져 좋았다. 

<윤식당>은 오래오래 집을 떠나 여행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로망을 잠재우느라 헬렐레 즐거이 보았고(난 식당 종업원들 아니고 거기 나오는 외국인들에 감정이입해서 보는 재미가 좋았다), 이효리와 아이유를 다시 보게 되었던 <효리네 민박>도 제주도 로망과 함께 보고보고 또 보고 재방도 보고 그랬다.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게스트하우스에 취직할까, 감귤농장에 취직을 할까, 뭐 그런 꿈을 아직도 못 버렸다. ^^;  


2017년에 떠난 여행&답사

1. 미서부와 캐나다 빅토리아섬 (4월)  --- 8개월만에 여행기를 마쳤으니 더 설명 않겠다. ^^

2. 서울 북촌 (6월)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1

북촌 한옥마을 여러번 가 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가 오잉~ 하며 놀랐다. 종로구와 서울시에서 꽤나 많은 곳들을 새로 가꿔놓았더라. 엄청 예뻤다. 


3. 양주 회암사지 & 장욱진 미술관 & 권율장군 묘 (6월 & 9월) 

양주에서 문화해설사 하시는 지인분 덕분에 속속들이 구경하며 신이 났었다. 폐사지(유구만 남은 절터) 구경을 별로 많이 안해본 터라, 회암사지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고, 박물관에도 볼거리가 많아 신기했다. +_+

거의 왕궁터 같았던 회암사지...


건축상도 받았다는 장욱진 미술관 구석구석 예쁘다장욱진 미술관 옆 권율장군 묘에서 내려다보며이는 예쁜 한옥

4. 안면도(6월)

5. 곤지암 화담숲(7월)

6. 속초 동명항(8월)


6. 강화도(9월)

7. 외산 무량사 & 보령 성주사지 & 오천항 수영성(11월)
흐렸어도 무량사의 가을은 눈부셨다나폴리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오천항

같은 날 오전과 오후 날씨가 이토록 다르다 ^^;


8. 수원 화성 행궁(12월)

행궁과 화성 성곽을 1바퀴 다 돌았는데.. 우와.. 너무 좋아서 봄날에 날씨 좋으면 한번 더 가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그림과 설명이 너무도 정확해서 그대로 복원해 놓은 화성은 조선시대 건축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터키에서 못 타본 열기구 선망 때문인지 제자리에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전부인 저 열기구(18,000원)라도 좀 타보고 싶었다. ㅋㅋ



9. 서울 둘레길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2

빠진 날이 많아서 함께했던 팀들의 공식 둘레길 순례는 끝났는데 난 미처 못 끝냈다. ㅠ.ㅠ 총 28개 스탬프 중 아직 7개를 더 찍어야함. 옛날 우체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스탬프 보관소에서 각기 다른 모양의 스탬프를 찍는 재미가 ㅎㅎㅎ 은근 쏠쏠하다. 스탬프 상관없이 서울 둘레길을 이미 몇바퀴나 돌았다고 큰소리치시던 선배님들도 막상 스탬프북 없으면 말짱 꽝이라고 하자, 별것 아닌데 욕심난다며 결국 157km를 완주하고 완주증서를 받아내시던데... 난 뭐냐.  뭐든 시작은 잘해도 금방 싫증내고, 그렇다고 또 완전 포기도, 깔끔한 마무리도 잘 못하는 나의 미련떠는 성격이 여기도 반영된 것 같다. 남은 스탬프를 2018년 상반기에 다 찍고 완주기념 배지를 꼭 받으리! (새해 결심 중 하나다 ^^;) 

2017년 등산

도봉산, 소백산, 예봉산, 수락산, 관악산, 용마산, 괴산 갈모봉, 내변산 관음봉, 안산 자락길, 북한산 향로봉

하반기엔 거의 등산을 못다녀서 다시 등산 초보자의 폐활량과 몸이 되었음을 12월 북한산에서 실감했다. 몸이 어찌나 무겁던지! 2018년부터는 매달 두번씩 안빠지고 좀 다시 산에 다녀볼 작정이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자꾸 무릎이 아파서 등산도 앞으로 몇년이나 하겠나 싶은 심정. ㅠ.ㅠ 


2017년 전시

1. 훈데르트 바서 - 세종문화회관 (포스팅도 했으니 생략)

2. 르누아르의 여인 - 덕수궁 미술관 (그저 그랬음)

3.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상설 전시 & 마티스와 디벤콘 특별전

4. 장욱진 미술관 탄생 100주년 특별전 (6월과 9월에 각기 다른 특별전을 두번이나 봤다) 

5. 고궁박물관 창덕궁 희정당 벽화 - 지금도 전시중이고, 희정당에서 떼어 복원한 금강산 그림이 진짜로 볼만하다. 금강산 관광을 대체 왜 가나 싶었는데, 남북관계 복원돼 관광루트가 다시 뚫린다면 가보고싶어졌을 정도다.  


2017년 기억될 사건

1.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

아무래도 출판과 번역은 사양길이고... 뭔가 더 재미난 일 없을까, 새로운 길을 모색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중학교 1학년들 자유학기제 수업을 한 학기 맡았다. 밤 새가며 수업자료 PPT 만들 때마다, ^^; 형편없이 적은 강사료를 받으며 다들 이짓을 왜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생기발랄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한편 기대되고 즐거웠다. 중2병이 중1로 내려왔다고 해서 엄청 떨었는데, 그냥 귀여운 애들이었어! 물론 말 안듣고 떠들고 쿨쿨 자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애들의 그 팔딱팔딱한 기운을 전달받는 느낌이 짜릿했다. 다만.. 연기된 수능 일정에 밀려 방학날 오전까지 마지막 수업을 하고선 콜록거리는 애들한테 옮아온 감기로 연말연초를 빌빌대며 보내야했지만 말이다. 처음 한두 주 수업때만 해도, 내 다시는 이 짓 안한다! (물론 번역일의 소중함과 귀함을 새삼 깨달았다 ㅎㅎ) 라고 별렀지만, 한 학기를 다 지내고 난 뒤의 마음은 또 잘 모르겠다. ^__^

2. 후배 인터뷰 & 취업 특강 ㅠ.ㅠ

동아리 후배의 부탁에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해줬는데 그게 일파만파 일이 커져서 결국엔 번역에 관심있는 후배들을 위해 취업특강도 하게 됐다. 어우... 번역 하고 싶은 애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7년도 남지 않은 2024년에 AI가 번역가를 대체할 거라는 옥스포드 대학교 보고서도 알려주고, 암울한 출판 전망도 들려주고... 번역은 영어 실력이 주가 아니란 얘기를 해주고 돌아왔다. 근데 뭐;; 어차피 힘든 대학생들의 취업... 번역가로 진입하는 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  

3. 이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고 이게 뭔가, 사귀는 건가, 썸인가, 아닌가 지지부진 고민하고, 아니 고민 자체를 거부하고 괜한 두려움에 대화와 감정을 회피하고.. 그러면서 어느 결엔가 뽀르르 달려가 만나고 그러면서 1년 넘게 이어져왔던 관계가 크리스마스에 끝났다. 서로 지향하는 미래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고 나름 배려했으나 결국 상처 없는 이별은 없다. 따져보니 무려 20년 만이라서 내가 서툰 탓도 있었겠고, 뭔가 되게 두렵고 어려웠다. 사랑과 두려움은 양립할 수 없다는데, 호감이 결국 사랑으로 이어질까봐, 혹은 사랑이 아닐까봐 겁이 났었다. 째뜬 끝까지 차마 묻지 못한 질문과 미련을 덮어 놓자니, 내상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굳이 2017년을 정리하는 공간에 이 이야기를 적어두는 것은 혹시나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의 우유부단함을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난 왜 지나고 나서야 감정의 실체를 깨닫는 건지 모르겠다. 혹은 추억의 미화를 위해 과장하는 걸 수도 있겠지. 한숨. 몇번의 고비 이후,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 없게 엄청 잘해주겠노라고 말해놓고, 결국엔 그러지 못했다. 그치만 아무리 잘해주었더라도, 끝이 난 마당에 후회 없는 관계는 없겠지. 행복하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행복하면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일단 나는 좀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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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2017년은 참 많이 놀러다녔고, 출간이 미뤄져서 그렇지 번역 일도 꾸준히 꽤 많이 했다. 블로그질 할 시간과 정신 여유가 없었을 만도 하다. 나와는 상관 없는데도 충격으로 다가온 사람들의 죽음과 친구의 난치병 같은 것들 때문에 괜히 조바심이 나서 더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소소한 낙과 순간의 기쁨보다는 자꾸 더 '쎄고 확실한' 행복을 바랄수록 불행해진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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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책보따리 2015. 9. 9. 22:41

지은이 이름이 케이트인 책의 작업을 마치고, 곧이어 케이트가 등장하는 소설을 번역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장편소설엔 원래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영미권에서 케이트는 흔하디 흔한 이름이니 요즘 애들 이름으로 치자면 작명 순위 1위라는 '서연' 쯤 되려나? 아니지, 작가 이름으로도 익숙해야하니깐 뭐가 좋을까.. '희경'? (언뜻 은희경, 노희경 정도가 생각난다)


독자로 치면 은희경의 수필집을 읽고 나서, 다음 책을 집어들었는데 마침 그 거기 '희경'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할 확률은 과연...? 하기야 폴 콜린스의 책을 읽었는데,우연히 곧이어 읽은 다음 책에 폴이란 주인공이 등장하는 사태는 단편집의 경우 별로 어렵지 않을 것도 같다. 다만 내가 요새 하도 책을 드물게 읽으니 직접 경험을 못해서 그렇지. 


이번에 책을 번역하면서 알게 된 건데, 가계에 쌍둥이 유전자가 전혀 없는 집안에도 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놀랍게도 80명 당 1명꼴이란다. 그 정도면 엄청난 확률 아닌가!? 길 가다가 날아가는 새의 똥에 맞을 확률도 저거보다는 낮을 것 같은데, 난 그런 적 있을 뿐이고! ㅠ.ㅠ 갈매기 드글거리는 바닷가도 아니고 종로 한복판에서... 암튼 우연의 일치는 생각보다 일상에서 꽤 큰 확률로 다가오는 게 맞다고 봐야 합리적일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런가. 선택적인 기억력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또는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짜깁기해서 뭔가 맥락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고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행운과불운을 점치고... 


째뜬 이번 케이트 아무개가 쓴 책과 케이트 아무개가 등장하는 소설을 연이어 번역하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돌파리 점쟁이의 점괘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겠거니 싶으면서도 종종 일과 관련해선 뭔가 보이지 않는 끈이랄지 운명의 힘 같은 게 정말 있나, 의아할 때가 있다. 아 그냥 교묘한 우연의 일치라니깐! 하고 넘기면서도 혹시 몰라... 그런 기분? ^^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미술관 전시실 벽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근대 유럽 미술사조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 이런 표정으로 뭥미; 싶어서 한참을 읽어도 결국 모르겠다 중얼거리며 걸어나왔는데, 한달도 못 돼서 바로 다음 계약 책에 그 미술 사조가 떡하니 등장해 역주를 다느라 좀 더 알아봐야 한다든지... (워낙 무식해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걸지도)


작년엔 실존 인물이었던 은행강도 선댄스 키드 이야기가 등장한 책 때문에, 역주 한줄 멋지게 달겠다는 욕심으로 당시 상황과 <내일을 향해 쏴라>로 영화화 된 과정을 위키피디아와 구글로 한참 검색했는데, 동생놈이 무슨 다큐 작품으로 받게 된 부상이 하필 <선댄스 영화제> 초청이라는 소식이 곧 날아들질 않나, 심지어 몇달이 지나 동생이 선댄스 영화제 보러 비행기타고 떠난 날, 굳이 그 책의 증정본이 택배로 도착할 건 또 뭐람. 소름끼치게스리...


하기야 이번에 끝낸 책은 시리즈라서 전권부터 따지면 케이트가 나오는 소설을 번역했는데 다음에 계약한 책은 하필 케이트가 저자였고, 그 다음 책에 또 다시 케이트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셈이다. ㅋㅋ 나만 재미있나? 


어랏 신기하네, 결국 이게 천직인가 싶었던 경험은 그밖에도 더러 있었는데 기록을 해두지 않았더니 거의 다 까먹었다. 어쩌면 자꾸만 자존감도 떨어지고 연봉도 부가가치도 형편없이 낮은 이 일에 자꾸 회의가 드는데 딱히 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달리 방법도 없으니, 무언가 비논리적인 의미부여라도 하려는 심리 탓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괜히 유별나게 기억해 연결 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맥빠지고 (과연 출판업과 번역가로서의 전망은 계속 어케되는 거냐규~??) 지칠 때, 다시 슬슬 곁눈질을 하고 싶어질 때 일종의 채찍질로 괜한 운명론을 들먹이는 것이든, 정말로 교묘한 인연의 실마리가 내 삶을 관통하는 것이든... 사실 상관은 없는 것 같다. 태어나서 글을 깨친 이후로, 독서가 지루한 적 없는 사람으로서 책에 기대어 밥벌이를 한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번역하기에 아무리 한심하고 하품나는 책이라도, 직장에서 발전소 연소기기 매뉴얼이나 계약서 번역하느라 끙끙대는 것보다야 훨씬 재미난 법! ㅋ 언젠가 출판과 종이책이 완전 사양길로 접어든다고 하더라도 내 생전에는 아직 그런 날이 없을 거라 믿고 또 달려보는 수밖에.(한 십년 더? ㅋㅋ)   


제목을 케이트로 정했더니 문득 내가 번역한 책들 중에서 케이트(캐서린 포함!)란 이름은 저자로, 등장인물로 얼마나 자주 나왔는지 통계 내보고싶어졌다. 아 정말 별게 다 궁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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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서전

투덜일기 2014. 6. 19. 23:46

와우북페스티벌 말고는 '도서전'이라 이름 붙인 대규모 행사장엘 가본지 한참되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노상 말이 '국제'지 프랑크프루트나 시카고에서 봤던 국제도서전과는 정말 비교도 되지 않는 소규모 국내잔치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주로 아동도서 할인전에 그치고 마는 꼬라지를 하도 많이 봐서, 언제부턴가는 아예 안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었다. (오늘로서 과거형이다 ㅋㅋ)


도대체 몇년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암튼 오늘 도서전 당번이니 놀러오라는 문자를 어제 오후엔가 받고는 웬일인지 혹했다. 진짜로 도서전에 혹한건지 코엑스 갔다가 강남역 올케의 옷가게 들를 생각에 혹했는지 암튼 그건 그냥 잘 모르는 걸로 넘어가기로 하자. 하여간 역시나 수년만이 틀림없는 삼성동 코엑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온통 공사판이잖아!


상경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강북촌년이 오랜만에 강남 번화가에 가면 꼭 그렇게 된다) 티를 팍팍 내면서 도서전이 열리는 전시장을 찾았다가 또 놀랐다. 아니 입장료를 받아??? 언제부터? 미친 거 아닌가? -_-" 그것도 3천원씩이나!! 아 진짜, 티켓값 아까워서 안들어가고 싶었는데 사들고 간 빵이랑 음료수가 아까워서 참았다.


듣자하니 사전등록제로 미리 신청을 했거나, 이벤트 같은 거에 당첨됐거나 코엑스 멤버(? 뭐하는 건지는 모름)거나 출판계, 언론계 종사자들은 공짜로 출입도 가능한 모양이던데 아 뭐야! 하여간에 티켓을 사야하는 나는 짜증이 났다. 공짜로 어서옵쇼 해도 흥행이 될까말까, 고민해야 하는 처지인 것 같은데 아주 잘들 나셨다. 나를 부른 출판계 종사자에게 들으니, 서울 도서전에서 입장료 받은지 꽤 됐단다. 하기야 예전에 무료입장일 땐, 아주 더 도떼기 시장이었고 공짜로 나눠주는 캔버스백이나 기념품 가져가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엄청 많긴 했다. 정신 사나워서 별로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이번엔 무료 홍보물 나눠주는 데는 별로 없는 듯. 똑같은 물건이나 부채 들고 돌아댕기는 사람 못본 것 같다.


째뜬 혹시 책을 사게될지도 모른다 싶어서 배낭을 매고가긴 했지만, 지인과 헤어지고 나자 입장료 3천원의 본전을 뽑아야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ㅠ.ㅠ 결국 가을에 와우북페스티벌 하면 가서 사야지 마음먹었던, 컬러화보 많이 들어간 비주얼용 자료도서를 마구 골랐다. 30퍼센트 할인에다 7만원 넘으면 무료택배 서비스...  에효.. 내가 그렇지 뭐.


지난번 중고책들을 54권 정리하고 잠시나마 뿌듯해했으나 오늘의 지름으로 또 새책이 10권 생겼다. 그나마 시간이 없어서 후딱 전시장을 나왔으니 망정이지 좀 더 돌아다녔더라면 3천원 본전 생각하다 계속 질러댔을지도 모르겠다. 브로셔를 보니 저자와의 대화에서 몇몇 호기심이 가는 인물들이 있긴 하지만, 절대 또 가지 않을 걸 안다. 입장권 한번 팔아준 것도 억울한데!


아무려나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적어두자면 서울도서전은 22일까지. 평일엔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토요일은 8시. 마지막날 일요일은 5시에 끝난다고. 대체로 신구간을 30% 할인해서 살 수 있고, 반품되어 온 책들을 저가에 판매하기도 한다. 전시 부스를 다 안돌아봐서 무슨 출판사가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대형 출판사는  당연히 다 나왔고 (입구에 다 몰려있다) 아동서적 출판사도 빠지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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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

책보따리 2014. 6. 3. 15:27

책보따리 폴더에 독서후기는 하나도 안 올리고 뜬금없이 중고로 책팔기 꿍꿍이 이야기다. 


괜히 읽지도 않을 책 사들이기를 완전히 끊지는 못해 그간 한번에 두어권씩 사들인 책을 두서없이 쌓아놓았더니만 어젯밤, 정확히는 오늘 새벽 책장 앞 방바닥에 두 줄로 대충 세워놓았던 책이 와르르 무너졌다. ㅠ.ㅠ 아, 책정리를 너무 소홀히 했구나.


읽은 책 안읽은 책, 내 취향과 상관없이 선물받은 책들이 마구 뒤섞인 책더미에서 갖고 있어도 절대 다시 안읽을 책과 읽어야지 생각은 했으되 안 읽을 게 뻔한 책들을 솎아냈다. 너무 많아 구석에서 먼지만 쓰고 있는 증정본도 좀 챙겼더니 무려 50여권. 처음엔 동네 전철역 나눔문고인가 하는 곳에 전부 기증을 할 생각이었다. 아 근데 전철역까지 가져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박스포장을 해서 택배로 부쳐야하나? 우체국 가는 거나 전철역 가는 거나... 하기야 전철역엔 주차를 할 수가 없다. 운동 삼아 캐리어 가방에 넣어가지고 질질 끌고 가볼까? 별별 고민을 다 하다가 문득 하이고 책값으로 치면 저게 다 얼마치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가 직접 산 책이 적어도 3분의 2는 될텐데, 한권에 만원씩만 쳐도 대충 30만원! (이런 생각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책이든 뭐든 물건을 처분하지 못한다 ㅠ.ㅠ) 


갑자기 돈 아까운 생각이 들면서 전부 다 기증하겠다는 호기로운 마음이 찌그러들었다. 팔 수 있는 책은 좀 팔아볼까...

얼른 상태가 좋은 아이들만 20권쯤 골라 목록을 만들어 알OO  중고서점에 들어가 매입가를 알아보았다. 흠... 신나게 책 제목들을 입력하다보니 또 다시 느껴지는 부끄러움. 기증한다더니... 알짜배기는 다 팔아먹을 셈이냐! -_=;; 매입가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신간이라도 다 비싼 건 아닌 듯. 나름 효용의 원칙을 세워 2천원 넘는 책만 중고서점에 팔고 그 이하는 원래 생각대로 전철역 문고든, 녹색가게든 기증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중고책팔이용으로 분류된 책이 14권. 책의 상태에 따라 매입가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니 과연 얼마나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얼추 잡아도 3만원은 될 듯. 게으름을 떨치고 무거운 저 책을 낑낑 챙겨들고서 중고책방으로 나가야한다는 난항을 언제 어떻게 해결할지 그건 모르겠으나 (머잖아 아버지 제사가 있으니 그 전엔 치우겠지;;) 벌써부터 반나절 알바라도 한 느낌이다. ㅋㅋ 전철역에 전화해서 책 기증절차가 어떻게 되나 그것도 물어봐야 하지만, 오늘은 일단 마루에 처분할 책을 용도별로 쌓아놓는 걸로 임무 끝. 


근데 50여권이나 솎아냈는데도 왜 책장 앞은 아직도 쌓여있는 책으로 어지러울까. 으휴. 책장을 더 들여야하는데 그건 이사가서 할라고 벌써 몇년째 벼르기만... 그나저나 아 이 놈의 집은 언제 팔리냐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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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는

놀잇감 2014. 3. 1. 17:04

 

책 3권을 읽고 영화 2편과 뮤지컬 하나를 보았으며 안동에 다녀왔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2(가브리엘 마르케스 지음/송병선 옮김/민음사) 

이게 뭐가 지고지순한 사랑이여! 콜레라가 수시로 창궐하던 시대의 사랑은 뭔가 좀 더 고귀하길 바란 내가 잘못된 건가? ㅋㅋ 아니, 책 읽기 전에 얼핏 '주워들은' 책에 대한 정보가 오해였을지도...  시대에 대한 고발은 들어있을지 모르지만 남성중심의 꼰대스러움에 종종 거부감이 들었다. 첫사랑을 53년간 기다린 건 맞지만... 자기 할짓 다 하면서 그것도 기다린 건가? 그냥 세월을 보낸 거겠지... 그 집요한 집착과 자기합리화는 어떻고.. 흥!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 돌 하르방 어디 감수광(유홍준 지음/창비)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장을 덮은 이후 줄곧... 제주도 가고 싶다! 특히나 담에 가면 '오름'을 특별 공략해볼 심산이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신경숙 지음/문학동네)

안동 고택에 책이 있길래 밤에 후딱 읽었다. 아주 가벼운 단편집. 소설이 아니고 신변잡기 수필을 읽은 느낌? 시간 떼우기엔 좋았지만 뭐 그닥... -_-; 

 

겨울왕국(Frozen, 2013)

이 영화를 두번이나 보고 수시로 유튜브를 찾아 노래를 따라부르는 조카랑 통 대화가 되지 않아 보긴 했지만, 대체 왜 관객수가 천만까지 넘보는 건지 좀 의아;; 노래가 좋은 건 인정. 그치만 내용도 단순하고, 엘사가 변신 후 허벅지 드러내고 엉덩이 씰룩거리며 걸어나올땐 욕나오던데! 애들 보는 만화에서 그리는 여성의 모습이라는 게 대체 왜 그 모양;;

 

관상(2013, 한재림 감독,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김혜수)

뒷북으로 집에서 봤는데 상영시간이 어찌나 긴지 후반부엔 지루해서 혼났다. 이정재의 수양대군이 매력적인 건 나도 인정하겠는데, 역사가 스포일러다보니 송강호의 열연으로도 어쩔 수가 없더군. 암튼 헐리우드나 충무로나 여배우를 소비하는 방식이 참 짜증난다고 느꼈음.

아 참... 아는 게 병이라고, 진선문(창덕궁) 들어갔는데 경복궁 근정전 나와주시고 ㅋㅋ 근정전 바닥엔 전돌 대신 마루가 깔렸고 (어차피 근정전은 행사 때만 쓰는 공간이지 신하가 왕을 알현하러 들어가는 데도 아니라규!) 과거에 갓 급제한 말단 하급 관리가 감히 편전에서 열린 어전회의에 참석하고(편전에는 3품 이상이던가 당상관만 들어갈 수 있거든!) ㅋㅋㅋ 퓨전사극이니 그려러니 다 넘어가야하는데 거슬리는 게 많았다. ^^;  

 

해를 품은 달(훤-김다현/연우-린아/양명-조휘 출연) 

지인 덕에 스태프 할인으로 엄청 저렴하게 봤기에망정이지 제 돈 주고 봤으면 적잖이 실망하고 열받았을 뻔했다. 원작이 아무리 탄탄해도 창작 뮤지컬의 문제점은 역시나 레퍼토리의 부재. 노래가 하나같이 어쩜;;; 가사도 안 들려, 멜로디도 매력없어, 어쩌라는 건지. 그래도 조각보를 이어붙인 느낌의 무대장치나 한국무용과 판소리 느낌이 돋는 몇몇 연출은 좋았다. 서울 공연 마지막날 마지막회에 객석을 거의 꽉 매운 관객수도 좀 놀라웠고, 휴대폰 꺼내보며 시야 방해하는 관객들도 하나 없더니 계속 기립해 박수치던 그들의 매너도 훌륭. 

 

안동 얘기는 아래 포스팅에 길게~ 적었으니 패스.

한두 달에 한번씩 길든 짧든 여행을 다니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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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는

놀잇감 2014. 2. 3. 17:38

블로그를 일기삼아 매일 뭔가를 끼적이면 좋겠지만, 도무지 그런 부지런함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고 2014년을 맞아 매달 집계용 월기(? 블루고비 따라하냐? ㅋㅋ)를 남겨볼 생각이다. 그러면 민망해서라도 독서량이 좀 늘까, 아닐까. ;-p

 

1월엔 달랑 책 1권을 읽고 영화 4편과 전시회 둘을 보았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반권이라고 해야하나 ㅠ.ㅠ)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

변호인(2013)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 <종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중남미 소설 읽기의 일환으로 오래 전에 장만해놓고 계속 겉표지만 구경하다 드디어 시작했다.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가 동기로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ㅠ.ㅠ 고사 직전이라는 출판계에서 요새 그나마 움직이는 건 드라마에 인용된 책이라고 넋두리들을 한다는데, 아무 맥락없이 드라마에 PPL로 등장하는 책들은 모르겠고 확실히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책들은 효과가 큰가 보다. 어쩐지 끼워팔기나 묻어가기로만 살아가야 하는 책의 신세가 서글프지만 그래도 아예 주목 못받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쨌든 난 이번에 산 게 아니고 사둔지 몇년 된 책이라규~

 

조지 클루니의 영화라 다운 받아놓은지 오래 된 <인 디 에어> 빼놓고는 다 영화관에서 봤다. <그래비티>에서 아주 잠깐 나오고도 존재감이 컸던 조지 클루니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나 (한때 온라인에서 '마이클루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적도 있을 만큼 ER 시리즈 속 클루니의 팬이었다 내가 ㅋㅋ) 벼르기만 했던 <인 디 에어>를 봤고, 조금 울었다.

그러고 보니 네 편의 영화 모두 한줄 감상을 쓰자면 어느 순간 조금씩 울었다는 이야기일 듯.

주변에서도 혹평과 호평이 나뉘었던 <변호인>과 <어바웃 타임>은 그 이유와 한계가 뭔지 알겠지만 대체로 뭐 괜찮았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1월 최고의 영화로 선정. 우와... 감탄했고, 집에 돌아와 나도 여행 상품을 한참 뒤졌다. ^^; 

 

박수근 전시는 방금 포스팅했으니 됐고...

2월 23일까지 경복궁 옆 민속박물관(무료!)에서 하는 <종가>는 제사와 손님맞이를 전통적으로 이어온 종가집의 의미와 자취에 대해서 실제 여러 종가의 유물까지 아기자기하게 마련해놓은 전시였다. (어느 종가에서 종부에게 대대로 내려졌다는 '악어가죽 핸드백'도 있다. ㅋㅋ) 무료라서 유치원생들과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바글바글한다는 것만 빼면 꽤 볼만하고 일부 구간에는 신기한 신문물(일정한 지점을 밟으면 탁한 유리가 촥~ 투명하게 변하며 사당의 제사상과 제주가 나타난다든지;;)을 전시에 응용한 것도 좋았다.

그밖에 상설전시관도 함께 둘러보았는데 민속악기 전시실 앞엔 전화 수화기 모양으로 생긴 걸 귀에 대면 악기 소리가 들린다더니만 주로 지지직~ 소음만 들리거나 고장! 애들 등쌀에 쉬 고장나는 건 이해하겠지만 음질에 더 신경 좀 쓰시지... 쯧쯧...

 

이렇게 적고 보니 꽤나 바지런을 떨며 보낸 것 같지만 사실 1월은 내내 아직 새해가 밝지 않았어, 설날이 남았잖아.. 그러면서 미적거렸다. 이젠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새해임을 감안하여 2월부턴 좀 더 나사를 조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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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Best

놀잇감 2014. 1. 6. 23:21

Best 포스팅을 빌미로 한해정리를 한하고 넘어가면 새해를 제대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기분은 정말... *.*

괜스레 일감 진도 잘 안나가는 것 같다. 얼른 마무리하고 열심히 일해야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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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도서관에서 한꺼번에 빌려준대도 그렇지, 두달만에 30권 읽겠다는 망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는 1년간 읽은 책의 권수를 보니 더욱 명확해진다. 돈벌이와 상관없이 읽은 책은 재독 포함 겨우 25권이었다. 1년에 30권도 못 읽는 주제에 나 원 참... (아쉬운 김에 돈벌이로 읽은 책을 올해부터 끼워넣으려다가 영업비밀상 안될 것 같아서 말았다 ㅋ)

예전에도 읽다가 말고 미뤄두는 책들이 있었지만, 읽기 괴로워도 꼭 끝내야할 것만 같아서 어쩐지 빚쟁이가 된 심정으로 그런 책들을 흘끔거렸다면 이젠 과감히 포기할 책은 포기하는 대담함(?)을 갖추게 되었다는 걸로 나름의 핑계를 삼기로 했다. 나랑 안맞는 책도 있는 거지 뭘, 굳이 억지로 읽을 것까지야 ^^;  

 

하여간 2013년 독서 경향을 보면 궁궐에 대한 책이거나 관련서적이 압도적이다. ㅋㅋ 알량한 안내 매뉴얼 만드느라고 어쩔 수가 없었다. ㅠ.ㅠ 건축 관련 책도 많이 읽은 줄 알았더니 빌려 읽다말고 돌려준 책이 대부분인지 끝낸 건 몇 권 안되네 쩝. 이런 독서경향은 아마 2014년에도 이어지지 않을까나. 뭘 좀 떠들어대려면 아직도 알아야할 게 너무 많다.  흑...

 

2013년부터는 독서노트를 쓸 때 몇줄이라도 감상을 적어놓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다 실천하진 못했다. 그래도 휴대폰에 iReaditNow라는 앱을 깔아놓았더니 나름 자극도 되고 독서 직후 별점 표시도 할 수 있어서 집계에 도움이 되었다. ^^; 그 별점을 토대로 베스트 책 3권을 뽑아야하는데 그건 여전히 좀 어렵군. ㅋ (째뜬 별 3개 이상은 파란색으로 표기해두었음)

 

 

<비소설>

1.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삼인, 2006.

안방에서 부엌으로 나가는 문 옆에 또 작게 음식전용 출입구로 쓰이던 쪽문 이야기며, 다락방의 추억 등등, 옛날 내 어린시절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많아 정겨웠다.

2. 우리궁궐이야기, 홍순민 지음, 청년사, 1999.

궁궐공부의 원조 교과서 격이라 또 한번 완전 정독했다. 10년도 더 세월이 흘러, 지은이가 초판에 개탄했던 문제점들이 여러부분 개선되었으니 개정판이 나와줄만도 한데, 왜 절판도 안시키고 계속 옛날 책을 파는지 난 그게 못내 궁금하다. -_-;

3.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 최순우 지음, 학고재, 2002.

역시나 필요해서 재독한 책. 종이가 벌써 누렇게 변해가는 오래된 책을 보며 한국 정원의 미학이니, 차경이니 하는 이야기를 새삼 곱씹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무량수전엘 못가봤을 뿐이고! ㅠ.ㅠ

4. 궁궐, 조선을 말하다, 조재모 지음, 아트북스, 2012.

궁궐 교육 받을 때 이 책의 지은이가 강사진 중 한명이었는데, 강사들 대부분 자기 책 홍보를 했지만 이 책 딱 한권 샀다. 전각에 신을 신고 들어가느냐, 벗고 들어가느냐가 공간 활용에 엄청난 차이를 준다는 이야기에 혹했던 것. 궁궐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아니라 의례의 공간으로 풀어나간 건축학자의 책이라 열심히 읽었음. 

5. 타블로이드 전쟁,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양철북, 2013.

옐로저널리즘의 시작과 그 '끝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책. 근거 없는 증권가 찌라시와 개인의 sns 문구들이 언론에서 자랑스레 재생산되는 이 시대와 다를 게 뭔가싶다. 따로 포스팅도 했으니 중략.

6.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영욱 글`그림`사진, 페이퍼스토리, 2012.

길쭉하기만 해서 나로선 도무지 정말 아름답고 빼어난 건축물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 종묘 정전이 표지에 들었고, 지은이는 종묘 정전이 길어서 좋단다. ㅋ. 전작들처럼 지은이의 그림체가 예뻐서 좋았고, 복닥복닥 정신사나운 서울에 대한 내 마음과도 비슷해서 '소장'에 더 의미를 뒀던 책이다. 가끔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감탄하기로. 

7. 감응의 건축,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도 나오는 무주프로젝트 10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건축가들이 다 그림도 잘 그리는 것도 사실이고 정기용 선생은 특히나 미술학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아니 뭐 이리 글도 잘 쓰나그래. 건축에 대한 선망도 있겠다 폭풍감동하며 읽었고 많이도 베겨적어놓았으되 벌써 오래전 일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굳이 인용문을 찾아보자면...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으로 중첩된 지역은 조물주가 이미 절반 이상을 건축해 놓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 점에서 이런 땅위에 건축을 한다는 것은 잠시 존재할 수 있는 건축물을 땅 위에 올려놓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즉 땅을 기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축과 땅이 결합하면서 자연을 더 자연답게 하고 건축을 더 건축답게 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정할 때 좋은 건축이 가능하다.  - p302

8. 경복궁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것, 양택규 지음, 책과 함께, 2007.

9. 조선의 정궁, 경복궁, 신영훈 지음, 김대벽 사진, 조선일보사, 2003.

10. <반차도>로 따라가는 정조의 화성행차, 한영우 지음, 효형출판, 2007.

11.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조선의 정체성, 박석희, 최석원, 황금희 지음, 미다스 북스, 2013.

12. 신궁궐기행, 이덕수 지음, 대원사, 2004

모두 참고용으로 읽은 책인데 요긴히 도움을 받은 책은 <경복궁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 것>과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조선의 정체성>. 전자는 몇년 시간이 지나며 복원 사업 탓인지 수정해야할 부분이 더러 있었지만 전각별로 속속들이 짚어주어 좋았고, 후자는 경복궁 관련 가장 따끈한 책이라 의미 있었던 듯. 궁궐관련 책들은 서로서로 참고해서 쓰다보니 비슷한 면이(틀린 부분까지도!) 많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

13. 조선의 못난 개항, 문소영 지음, 역사의 아침, 2013.

근대역사에 급관심이 생겨서 찾아본 책.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는 부제에 딱 맞게 실패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해준다. 역사에는 if가 아무런 소용없는 짓이라지만, 우리로선 노상 '그랬었더라면...'이라고 상상하게 되는 걸 어쩌겠나. 드물게 포스팅도 했으니 길게 설명 안하겠음.

14. 남아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유진숙 지음, 파라북스, 2010.

이태준, 김동인, 한용운, 백석. 이상.... 서울 곳곳에 남은 문인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문학산책이다. 잊고 있던 싯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건 좋았으나 이미 흔한 기획이고 뻔한 글처럼 느껴졌음. ^^;

15. 1901년 서울을 걷다, 버튼 홉스 지음, 이진석 옮김, 푸른길, 2012.

역시나 근대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빌려읽은 책. 종종 부정확하지만 퍽 객관적인 외국인의 흥미로운 시각으로 본 조선의 근대라는 점에 의미가 있을 듯.

16. 조선 궁궐의 그림, 한국학중앙연구원(박정혜, 황정연, 강민기, 윤진명) 지음, 돌베개, 2012.

그림도 내용도 실해서 소장욕을 엄청 불러일으키는 책! 33000원이라는 고가만 아니었다면 벌써 사들였을 텐데.. ㅠ.ㅠ 

아쉬움이 있다면 지은이 여러 명이 나눠 집필하다보니 챕터별로 설명이 중복되어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들고 전체적인 짜임새 면에서 헐거워졌음. 그래서 물론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17. 즉위식, 국왕의 탄생, 김지영, 김문식, 박례경, 송지원, 심승구, 이은주 지음, 돌베개, 2013.

역시나 갖고 싶은 책! 앞책과 비교할 때 서론, 본론, 결론(물론 이렇게 나눠놓은 건 아니고!)의 구성이 짜임새 있었고 깊이와 재미와 볼거리를 모두 충족시켰음.

18.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 이상현 지음, 효형출판, 2013.

건축엔 당연히 그 시대와 사회의 이념과 사상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지만, 건축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인간을 길들이기까지 한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다. 제목에 혹해서 빌렸다가 두번이나 연장까지 해가며 다 읽은 2013년 마지막 독서. 꽤 재미있었음.

양반집에서는 사랑채와 행랑채, 안채를 구분함으로써, 향교나 서원에서는 계단을 통해서, 궁궐에서는 왕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에서 길들이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도시는 공간구조를 계급구조와 일치시킴으로써, 수도를 정하는 일에서는 수도에 물적, 인적, 시스템적 조건을 몰아줌으로써 길들이기를 수행한다. 이들 모두 건축활동의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p123. 

 

 

<소설>

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예담, 2010.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엄청 길지도 않은데 읽기 시작했다가는 몇번이나 중간을 못넘기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완독의 동기는 <500일의 썸머> ㅋㅋ 사랑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에 시큰둥하던 썸머가 카페에서 이 책을 읽다가 누군가를 만났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ㅎㅎㅎ 나도 뭐 그런 기대를 품고서 카페에서 펼쳐 읽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취침전 독서로 한 사흘 만에 끝내느라고 잠을 잘 못잤다. ;-p 째뜬 뒤표지에 스포일러를 담는 건 좀 안했으면!

2. 그레이스 1,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민음사, 2012.

실화를 소재로 어찌도 이리 손에 잡힐 듯한 현실을 상상하고 묘사했는지 감탄. 노련한 추리기법으로 끝까지 궁금증을 놓지 않게 하는데다, 진실은 끝내 알 수도 없다. 두 권을 단숨에 내처읽은 듯.

3. 고양이 눈 1,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민음사, 2007.

원제인 cat's eye는 보석 이름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어린시절 갖고 놀던 구슬에 들어있는 고양이 눈 모양 무늬를 말하는 거였다.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잔인하고 은밀한 괴롭힘, 상처로 남은 유년의 기억들, 다름을 받아들이고 대하는 아이들 방식의 섬뜩함이 요즘 아이들의 왕따문화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4. 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밝은 세상, 2011.

'이미 읽기 시작했다면 내려놓기 힘든 책'이라는 <더 타임스> 인용문이 뒷표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처음 몇장 읽다가 내려놓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ㅋㅋㅋ <빅 픽처>를 처음으로 읽었어야 할 걸 그랬나 싶었음. 어쨌거나 내 심리와 운대가 맞았는지 어느 날인가 드디어 내처읽을 수 있었고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었다. 요동치는 여성심리를 '남성작가 치고는' 꽤나 공감가게 묘사한 것 같다. 특히 '불충분한 느낌'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포스팅도 했을 정도 ^^;

우리의 대화에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이 오래 지속되어온 불충분한 느낌이었다. 대학시절 내가 내내 그랬지만 성적이 B학점을 넘지 못하면 늘 하던 걱정.... 내가 모든 면에서 '괜찮은 편이지만' 그리 뛰어나지는 못한 사람 같다는 기분.... 내가 꽤 저명한 신문사에서 오래도록 일했거나 특파원이었다거나 직업 일선에서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늘 의심을 품었고, 언제 내 능력이 들통날지 염려스러웠다. - p267

5. 아름다운 나날,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민음사

모던클래식 12권. 키드님한테 양도받은 책이라 약간의 부채감이 없을 수 없었다. ㅎㅎ 성장기 소녀의 감수성을 담아낸 자전소설이랄 수 있는데, 성장기 소녀의 아픔은 마거릿 애트우드 책으로 이미 한 번 느껴본 터라 딱히 좋은 느낌이 없었다.

6. 향수,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민음사, 2000.

쿤데라의 소설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가끔 인상적인 문장에서 한번씩 휴 한숨을 내쉬며 읽게 되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대거 빌렸다가 다 그냥 반납한 책들은 관두고 집에 있는 쿤데라 책부터 올핸 다시 좀 재독하며 그의 문장에 더 취해봐야지 결심중.

7.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3.

정말 수시로 깔깔거리며 읽었다. 어떻게 그 다양한 세계사를 한 개인의 역사로 다 엮을 수가 있는지 재주가 놀랍다고 생각. 너무 어처구니없는 우연의 연속이더라도 암튼 그 모든 사건을 하나로 관통시킨 역량과 유머는 높이 사줄만 하다. ㅋㅋ 게다가 트렌디한 번역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발랄경쾌한 번역체도 인상적이었다. <와 시발, 진짜 대박 성경책이다!> 같은 문장을 수시로 번역서에서 만날 수 있다니!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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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책보따리 2013. 11. 25. 22:28

동네 도서관의 2달 휴관을 맞아 대출도서를 30권으로 늘려주겠다는 달콤한(대체 왜 달콤하다고 느꼈는지??) 제안에 덜컥 한꺼번에 빌려왔던 책 27권. 그간 두어권을 빼놓곤 계속 처음 가져왔던 그대로 차곡차곡 쌓인 채 먼지만 뒤덮고 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12월초라던 예정개관일을 두 주일이나 앞당겼다는 도서관의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다행히 반납일이 덩달아 당겨진 건 아니고...

 

휴관중에도 다 읽은 책은 미리미리 반납해 한꺼번에 정리 업무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해달라는 엄살어린 직원들의 당부도 들었거늘... 아무래도 반납일 통보 문자 날아오고서야 한꺼번에 또 이고지고들고 낑낑대며 책 가져가 반납하게 생겼다. 어차피 대출 연기는 대여섯 권밖에 안될 테고... 대출 연기한다고 또 다 읽는다는 보장도 없고...   대체 난 무슨 심보로 그런 턱도 없는 욕심을 부렸던 걸까??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때는 왜 더 책이 읽고 싶은지... 정말이지 한글로 된 책을 부담없이 좀 읽고 싶음 마음이 굴뚝. 이번 일이 끝나면 기필코 다시 심신을 살찌우는 독서에 힘써보리라(라고 결심하지만 밀린 다음 작업 스케줄은 어쩔거냐;;) ㅠ.ㅠ 무한한 아쉬움에 대출목록 긁어왔다. 흑... 2013년 마무리는 밀란 쿤데라로 하고 싶었는데... 과연 이 중에 한권이라도 읽을 수 있을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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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쯤 동네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올초에도 몇달간 공사로 휴관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또 휴관을 한다나. 그런데 이번엔 단순한 휴관 안내가 아니라, 10월 1일부터 12월 초까지 방음공사를 하는 휴관기간을 맞아, 대출 책 부수를 30권까지 늘려주겠다는 것이 문자의 요지였다. 앗... 2주만에 책을 안 돌려줘도 된다고?

 

올 9월달까지 읽은 책이 총 20권도 안되는 주제에, 두달만에 30권을 읽어볼 생각은 대체 왜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암튼 사고 싶은데 비싸서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축과 한옥관련 책들을 위주로 열심히 책 목록을 만들었다. 괜히 강박적으로 소설책도 많이 끼워넣고...

 

벌써 부지런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 빌려가 반납예정일이 12월까지로 되어있는 책들이 꽤 있었는데, 내가 보고팠던 책 중에 2권짜리  반납일이 딱 내가 책 빌리러 가려는 날이길래 예약을 해놓고는 일부러 늦은 오후까지 버텼다. 나처럼 소심쟁이면 기일 맞춰 반납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 그 책은 그날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지난주에 빌려온 책이 무려 26권. 배낭도 매고 에코백을 챙겨갔음에도 책이 다 안들어가서 매고 들고 한아름 안고서 3층을 내려와 주차장까지 가는 것도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 많은 책을 낑낑대고 운반해 집에 쌓아놓고는 괜히 흐뭇했다. 나는 확실히 독서가가 아니라 '장서가'를 지향하는 인간이 틀림없다. 내 책도 아닌데 왜 흐뭇?

 

그러고는 며칠 지나서 또 날아온 문자. 내가 예약한 책이 들어왔으니 29일까지 대출하러 오라는 거였다. 두 달 안에 26권을 다 읽을 자신도 없으면서, 왜 또 그 책은 읽어볼 욕심이 나는지 원. ㅠ.ㅠ 그간 부지런 떨어서 읽은 책 2권을 반납도 할 겸, 예약 책을 찾으러 일요일 오후에 또 구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트 장바구니 같은데 책을 잔뜩 담아가지고 둘이 낑낑대며 도서관 앞 언덕길을 내려오는 엄마와 아이를 보았을 때 이미 짐작했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도서관은 주차장 입구부터 차가 엉켜 아수라장이었다. 30권 대출 욕심을 부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직원이 나와서 들고 나는 차들을 한참 정리하고 난 뒤 주차할 데도 없어서 건물 뒤 쓰레기 하치장 옆에 대충 차를 박아놓고는 부리나케 들어갔더니, 주로 아이들 대동한 아빠, 엄마들이 죄다 한아름씩 책을 안고 끙끙대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 편의를 봐주느라 현관 문을 붙잡아주다보니, 꼼짝없이 계속 문만 붙잡고 있어야 할 판! 에라 모르겠다 나도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네 사람이나 문 잡아줬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딱 한번밖에 못 들었다. 쳇...

 

열람실에 올라가 지난번에 못 찾은 책도 다시 한권 찾아들고 예약한 책을 받아 총총 도서관을 나오며 또 다시 주차장 아수라장 속에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는데, 짜증보다는 신기하단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기 때문일까? 의외로 이 동네 사람들 책 많이 읽네? 두권 돌려주고 세권 더 빌려 왔으니 나도 30권은 못 채웠어도 29권이나 빌렸다! 다 읽고 갖다줄 수 있을까? 몇권이나 그냥 돌려주게 될까?

 

몇년 전인가, 도서관에 신간도서 신청을 하면 남들 안본 깨끗하고 따끈한 새 책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다고 그 방법을 여기다도 자랑했던 것 같은데, 바로 그해였나 그 다음해엔 도서구입 예산을 다 썼다면서 신간도서 신청을 받지 않겠다는 공지를 본 게 떠오른다. 도서관에서도 예산이 없어 책 구입을 못할 정도니 출판계가 말라죽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책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더 기운이 빠졌다. 우리나라에서 일년에 3-40만권씩 쏟아져나오는 신간이 모두 다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운영주체가 국가든 지자체든 개인이든 이 나라의 모든 도서관에서 한권씩 신간을 구비해준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출판사마다 초판은 다 팔 수 있을 거란 말을 들었다. 과거엔 보통 책의 초판을 2천부 찍었으니까.

 

그러나 요즘에 초판을 2천부 찍으면 각종 언론사와 홍보용으로 배본하는 500부 말고는 죄다 반품이라 물류비용만 많이 드니 아예 초판부수를 천부로 줄였다는 출판사도 많다고 한다. 그나마 좀 팔리는 책도 마케팅용으로 반값 할인하다보면 판매부수는 많아도 결국 계산해보면 적자일 때도 있고. 출판 종사자의 얘기를 듣다보면 하루 빨리 책에 기대어 밥벌이하는 인생을 청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드는데, 또 막상 무슨 일을 새로이 하겠나 싶어 그냥 한숨만 푹푹 쉴 뿐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암튼 그렇게 출판사 망해가는 이야기만 듣다가 도서관에서나마 후끈한 대출 열기를 목도하고 오늘은 괜한 희망에 젖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이렇게 블로그에라도 광고하면 괜한 오기가 생겨서라도 빌린 책 독서에 더 열을 쏟지 않겠나. 나도 궁금하다. 저 책중에 몇권이나 다 읽을지. ^^; (사실 비싸서 살까말까 망설이던 책들은 좀 읽어보고 괜찮으면 와우북 페스티벌 할 때 가서 할인가에 장만할 욕심도 없지 않다. 과연 게으름과 장서욕 중에 어느쪽이 승리할 것인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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