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해두었던 블로그를 전시 기록할 때만 써먹는다... ㅎㅎ

친구 찬스로 23년 6월 22일. 합정지구에서 열리고 있는 힙한 전시회 보러 다녀왔다. 전시일정은 7월 9일까지!
전시장 전경을 밖에서 보면 이렇다. 

친구들이 찍혀서 가렸는데;;; 이 사진을 자세히 보고서야 전시 제목이 <손 잡듯, 느슨히>라는 걸 깨달았다. 전시 제목도 모르고 다녀왔군. ㅎㅎ

헝겊으로 민물가마우지를 이토록 정교하게 표현해내다니.. 예술가는 역시 다르다.

지하에서도 이어진 전시는…

공개할까말까 고민하다 뒷모습이라는 핑계로 올림. ㅠ.ㅠ 넘나 귀여운 친구 아드님, 자체로 예술작품이다.

환경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하는 전시였다. 요즘 전시 관람료가 어마어마하게 올라서 대형 기획전시는 막 2만원도 넘는데; 다녀와서 느끼는 충족감과 뿌듯함으로 따지면 소소한 무료전시나 대형 유료전시나 별 차이가 없다.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과 선망이 늘 함께 하는 전시 관람... 언제든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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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버드 티켓으로 만원에 예약했던 전시 5/17일에 보러 다녀왔다. 예약할 때만 해도 원고 마감 다 끝내고 휘휘놀고 있을 때라고 상상했으나, 나의 고질적인 슬럼프와 게으름 탓에 여전히 놀러다닐 형편이 안 될 때 쪽잠을 자듯 후다닥 시간 맞춰 다녀왔다. 전시 다 보고 나면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여운을 음미하려고 했으나, 그 계획도 전시장 입장 전에 흡입하듯 후르륵 찬 커피를 들이켜고 시작.

서울시립미술관은 공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옛날에 울 엄마가 근무하던 곳이라서 그럴까? 교복 입고 사환부터 일을 시작했다던 법원검찰청 사건과는 과연 어디쯤 있었을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언젠가 조카 어릴때 엄마도 모시고 둘러본 적 있었는데, 내부가 완전히 바뀌어서 어딘지 전혀 기억도 안난다고 하셨다.  

전시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이 건물 외벽에 걸개로 걸려 있어서 특별히 찍어옴.

쩔그럭거리며 돌아가는 저 쓰레기(?) 같은 설치미술은 볼 때마다 이해가 어렵다. 암튼 이런 공간 좋아라..

 

사진촬영이 유일하게 가능했던 전시실에서 이것저것 찍어옴. 호퍼와 부인의 관계를 알고 보니 역시 좀 남다르게 느껴졌던 모델들..

기념품숍에서 건진 것들. ^^;; 마그넷과 열쇠고리도 예쁘지만, 여러 굿즈 중에서 요즘엔 쓸모도 있고 기념도 되는 안경닦이를 사모으기로 했다. 

귀여운 열쇠고리는 한번 더 클로즈업. 

그림 속 주인공처럼 다리 그림자에 맞는 위치에 서서 촬영하는 곳이었으나... 누드였던 모델의 아픔이 풍경만으로도 느껴지는 것  같다. 

친구가 전시안내 번역작업에도 참여했대서 유심히 글귀를 읽어보기도 했는데 ^^; 시간도 없고 작은 글씨에 멀미도 나서 나중엔 그냥 그림만 멀찍이서 감상하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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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4월 6일. 친구들과 사울 레이터 사진전을 보러 다녀왔다. 나에겐 완전히 금시초문 들어보지도 못한 작가였으나 이미 전시를 보고 온 지인들이 되게 '힙한' 전시이며 공간도 색다르다는 말을 익히 들었기에 볕 좋은 봄날 나들이로 딱이로군 하며 마음이 설렜다.
원래는 겨울에 어울리는 전시였던 모양으로, 옥상에서 빨간 우산 쓰고 눈내리는 풍경 찍은 인증샷을 많이 보기도 했는데 인기가 높아 5월말까지 연장 전시를 결정한 모양. 회현역 3번출구에서 189미터였던가 무척 가까우나 길을 잃기도 쉽다고 하더니만 쉽게 건물을 만나긴 했는데, 우리보다 앞서 계단을 올라, 후문인 듯한 나무 문을 밀어본 관람객1이 잠겼다고 하는 말에 허걱. 예약시간 이외엔 잠가두나 좀 난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착각. 미닫이 문이었어! ㅋ
후문은 지하에서 들어가도록 되어있고, 남산순환도로 백범광장 쪽에서 접근하면 차로도 접근 가능한 정문과 카페가 보인다. 암튼 우린 뒷문으로 들어가 약간 어질어질한 금속 통로(바닥 뚫린 길 싫어함)를 지나 건물 앞마당으로 향했다.

건물 옆면? 앞면에 붙어 있는 대형 포스터. 그러나 나에겐 너무나도 눈에 거슬리는 부제! 인노그레이트허리. ㅋㅋㅋㅋ 미치겠다. 저걸 왜 굳이 한글로??

나처럼 불평하는 사람이 많았든가, 아니면 전시 기획하는 쪽에서도 민망했는지 티켓엔 부제가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로 바뀌어 있었고, 건물 정면에도 같은 문구가 보인다. 저 카페에서 풍기는 커피 냄새가 진짜 유혹적이었는데;; 전시를 12시에 예약한 관계로 점심 먹으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해서 안타까웠다. 결과적으로 점심 이후 커피 마실 집을 찾다찾다 들어간 곳에서 대실망한 이후, 피크닉 카페의 커피 맛은 과연 어땠을지 선망과 궁금함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나름 '핫'한 곳인듯 카페만 다니러 가는 사람들도 있나보다.

작가가 작품 제목을 붙이는 방식이 어찌나 독특하신지, 계속 제목 맞히기 내기를 하듯 짐작해보면 다 틀렸다. 내 눈에 주제로 보였던 피사체가 제목이 아닌 경우 많아서 제목 추측하는 재미가 쏠쏠. 이 작품은 아마도 (검은) 캐노피? 가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ㅎㅎ 무섭게 사진 찍는 내 모습이 반영에 잡힘. 

우리의 시선을 강탈했던 "주근깨 소녀" 그래도 이 제목은 무난히 맞힘 ㅋ

옥상에서 바라보이는 남산 풍경이 엄청 멋졌는데, 사진엔 확실히 감흥이 다 안담긴다. 케이블카 지나가는 것도 보이고...
한쪽 옆으로 마루를 깔아 놓고 남산방향으로는 큰 창을 내놓아 그리로 바라보이는 나무들과 풍경도 딱 "차경"으로 완벽한 공간 같았음. 건물 자체도 하나의 건축 예술품이구나 싶긴 했으나, 친구 하나가 다리가 좀 많이 불편했는데 4층까지 미로같은 전시를 보며 계속 땀 뻘뻘 걸어 오르는 수밖에 없었고, 역방향으로는 관람 불가라고 해서 약간 빈정 상했다. 난 전시 한바퀴 다 돈 다음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오래오래 보다 나오는 걸 좋아하는데 쩝...
게다가 역방향 관람이 안되면 4층 옥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건 어쩌라고, 싶었더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아니 그럼 다리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포함한 관람 동선도 감안해야하는 게 아닌가???!!! 요즘 가뜩이나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꼴보기 싫어 죽겠는데, 단순히 지하철과 버스 이동도 어려운 마당이니 전시장 편의시설이야 오죽할까. 나중에 친구 다리가 더 불편해져서 결국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면, 함께 하는 문화생활은 극히 제한되거나 불가능하리라는 게 화난다. 최소 5년간은  세상이 약자들을 위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진 못하겠지 생각하니 참 슬픈 일이다. 그래도 계속 싸워야겠지만...

옥상 공간엔 갖가지 식물과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음. 조팝나무 꽃도 피고!

 

모르는 새 친구가 찍어준 내 뒷모습 공연히 마음에 든다. 난 새싹이 돋아난 느티나무를 찍고 있었다. (바로 아래 사진. ㅎㅎ 티스토리 사진 편집 기능 이상해져서 레이아웃이 엉망이다. ㅠ.ㅠ )

 

바빠서 놀면 안되는 일정 속에 에라 모르겠다 나가 놀았던 거라 심신이 편치않고 마음 한구석이 계속 괴로웠지만 그래도 계절의 여왕은 봄이구나 실감하며 봄볕에 달구어진 등판이 잠시라도 따사로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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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탓도 있었고 게으름 탓도 있어서 전시 구경이 너무나도 뜸했던 2021년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굶주린 사람처럼 3주째 전시장을 휘저었음. 대규모 박수근 전시를 보았던 기억이 있어 언제인가 블로그를 뒤져보니 2014년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가나아트센터로 보러 갔었다고 적혀 있다. 그새 8년이 흘렀다니... 그때 전시가 더 인상 깊었던 것도 같은데, 박수근 그림에 대한 애정은 어쩐지 모든 한국인에게 '국룰'이 된 것 같아서 요번 전시도 여전히 좋았다. 이건희 컬렉션이 포함되었다는 것 같았으나 주로 소품 위주라 딱히 새로이 보이는 작품이 많은 듯한 느낌은 아니고, 다른 개인소장품도 많아서 암튼 대작들은 다 볼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어둡고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깜깜한 전시장에 은은하게 작품만 도드라지게 조명을 받는 분위기가 고즈녁하고 참 좋았다. 맘에 드는 그림 앞에서 한참동안 멍하니 서서 감상하는 묘미가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랄까.  

브로셔 표제작품 [나무와 두 여인]

작품 사진도 휴대폰에 실컷 담아왔지만....그날의 어둠컴컴한 전시실 분위기를 주로 담은 사진으로만 골라 올린다.  미술관 구경다니더라도 제발이지 이젠 엽서라든지 포스터 따위 사모으지 말아야지 결심했지만, ㅠ.ㅠ 결국 마스킹 테이프랑 맨 마지막 사진 속 작품인 [나무와 두 여인] 포스터 그림은 사오고야 말았다(아기 업은 소녀 그림과 둘 중에서 끝가지 고민함. ㅎㅎ 그리고 액자에 표구된 그림은 무려 35만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거침없이 사들고 가는 걸 목격하고 부러웠음.) 더 이상 그림 걸 벽도 안 남은 주제에!! 째뜬 일단 고이 잘 모셔두었다. 포스터를 살 때엔 2013년에 사다붙인 브레송 사진 포스터를 이참에 부악~ 떼어버리고 대신 박수근 그림을 걸 작정이었는데... 와서 보니 또 찢어버리기가 아깝네그려. ㅋㅋ 

째뜬 허영심 가득한 문화생활은 여기에 모아두지 않으면 제대로 기록해둘 방법이 없으니 원 코로나 시국에 돌아다닌 게 민망해도 꾸역꾸역 적어둔다. 전시는 2022년 3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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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마감에 힘써야하는 기간이지만, 작년에 너무 전시구경에 소홀했던 관계로 마구잡이로 약속을 잡아 1주일에 한번씩 전시구경을 다녔다. 벼르고 별렀던 조선의 승려장인 특별 전시는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전시해놓았다는 본관 상설전시 사유의 방 구경과 한꺼번에 볼 계획이었는데... ㅠ.ㅠ 결과적으로 특별전시 하나만 보고 말았다. BTS RM이 국박 사유의 방 전시를 보고 SNS에 올렸다니 당분간 아미들이 러시가 이어지겠지.... 그 전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암튼 2022년 1월 21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로 구경다녀온 이 전시 입장료는 5천원이고 3월 6일까지 계속됨.

보관의 저 정교한 디테일을 보라! 어휴...
일본에 반출됐다가 돌아와서 어깨에 붉은 글씨로 일본이라 써 있는 불상
석탑 안에 들어 있던 미니어처 불상들.. 귀엽다고 하면 안되나? ㅎ
현대작가와 콜라보도 어울리는 금빛 불상들

벌써 그날의 감동이 사라져가고 있다. 탱화 그리는 스님의 붓놀림이 놀라웠던 동영상도 인상적이고 볼 거리가 너무 많아서 약간 소화불량 느낌이었다. 이제는 전시 하나를 봐도 머릿속에 정리가 잘 안되는 기분. 그래도 암튼 보고팠던 전시 보며 허영심을 달래서 행복했다. 밖에 나가 점심 먹고 나서서는 다시 석탑들 줄지어 서 있는 마당 지나 용산 가족공원도 한 바퀴 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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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첫 전시 관람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러시아 이콘 전시회였다. 지인 한 분이 이곳에서 해설 봉사를 하시는데 수년째 오란 말씀 안하시더니 요번엔 정말 꼭 볼만하다며 와보라고 홍보를 하셨다. 호객행위처럼 직접 찍은 동영상 하나를 틱 보내주셨는데 오오옷.. 단번에 가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콘'이라는 말도 처음 들었는데, 짐작할 수 있듯이 '아이콘'과 같은 말일 테고, 고대 그리스어 에이콘(eikon)에서 유래했다고. 특히 '이콘'이라고 하면 동방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도 신앙을 담은 성화를 의미하는 듯.
위로의 방이라고 해야하나 콘솔레이션 홀이라고 적힌 별도의 공간에서 3차원 디지털영상을 틀어주고 있던데, 그것만 보아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 나 같은 무종교인은 똑같은 기독교라도 천주교 공간은 개신교 공간보다 마음이 덜 불편하다. 그 또한 일종의 편견이겠지만 암튼. 이콘 전시를 보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holy'한 마음이 든다는 후문을 종종 들었는데 그 말이 맞았다. 예수나 성모의 존재자체보다는 그 초월적 존재를 성스럽게 떠받들고 소망하는 인간들의 경건한 모습과 노력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알고보니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건축 자체도 예술! 게다가 이콘전시뿐만 아니라 상설전시, 기획전시도 볼 거리가 많았다. 한파가 몰려왔던 1월 12일 오전, 1시간정도 둘러보면 되겠거니 얕잡아봤다가 결국 다 못보고 나중에 다시 오자며 주린 배를 달래러 나와야했다.

지하1층 전시장 입구
손으로 만들지 않은 구세주..라나 제목이 이해되지 않아서 해설하시는 분에게 설명을 들었지만 역시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ㅋㅋ 번역 오류라고 생각했음. 손으로 그리지 않은 예수.. 정도였다면 어땠을까.

이콘 성화들을 돌아보며, 예수는 물론이고 동방박사들도 아시아 유색인이란 건 확실한가보다고 속삭였다. ^^;

러시아정교 제대는 5단으로 꾸민다던가.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고 암튼 계단식 성당 공간과 이콘 장식을 재현해놓았는데 아마도 천주교인이었다면 저절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저 앉아있기만 해도 좋은 공간.

상설전시실. 내부 구조도 고딕성당 나무 형상 골조를 닮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올랐던 안뜰 예술품

곳곳에 놓인 예술품이 엄청나다. 디지털 화면으로 얼굴이 표현된 피에타도 멋졌는데 사진은 여기 안올리겠음. ㅎㅎ (티스토리 사진 편집 방식이 바뀌어서 엄청 불편하닷!) 이콘 전시실 나와서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폭포와 파도와 모세의 기적까지 디지털 영상으로 구현되던 옥외 설치미술도 좋았고, 나중에 천주교 성지 관련 답사를 한번 더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무료이고, 2022년 2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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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일도 못 지키고 노상 바삐 허덕이는 가운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제주여행까지 다녀왔으니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해서 어디도 자랑 못했던 제주 여행기를 후딱 적어보련다.

여행멤버는 나 포함 넷. 놀랍게도 엄마랑 아줌마들 따라서 여행 가고 싶어했다는 친구1의 중학생 딸이 합류하게 되었다. 과거 1박2일 여행 경험상 이 친구들은 그냥 집을 떠나 공간이동을 했고 가사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에 더 방점을 찍는다는 걸 알기에 나도 뭘 많이 보고 경험해야겠다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제주도인데 뭐... 뭘 한들 안 좋겠어! 

숙소가 제주시 근처 대명콘도 소노벨이고 일정도 2박3일이라 여행코스는 북동부로 제한하기로 원래 계획을 세웠다. 길바닥에서 운전하며 보내는 시간 아까워! 4명이 각자 하나씩 꼭 가고픈 여행지를 지정하기로 하여, 사전 미팅에서 정해진 곳은 1 스누피가든(나) 2 우도(친구1) 3 성산일출봉(친구2). 그러나 중학생인 친구딸이 키티 광팬이라, 남쪽으로 좀 치우치긴 했지만 마지막날 헬로키티아일랜드가 일정에 추가되었다. 

첫날. 11월 18일(목). 이 얼마만에 타보는 비행기던가 두근두근 설렘설렘. 여행은 준비하고 미리 상상할 때 더 설레는 듯도 하다. 수능날 탓인지 5분씩 10분씩 스케줄이 뒤로 밀려 제주에 도착하니 거의 1시가 다 되었다. 렌터카 픽업후 곧장 제주 시내에 있는 유리네로 갈치조림 먹으러 갔다가 스누피 가든으로! 3시쯤 도착했는데 바로 앞 주차장은 만차이고 건너편 주차장도 얼추 꽉 차 있었다. 핫 플레이스 맞구먼. 

첫날: 11월 18일(목) 일정에 맞춰 스누피 후드티 입고 가서 더 신남 ㅋ

6시까지 3시간 꽉 차게 놀면서도 후반부엔 시간이 모자라 친구들은 기념품가게로 먼저 향하고 나 혼자 대표로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스탬프를 찍어야했다. 실내보다 실외 정원이 훨씬 더 좋았고 입장료 아까운 줄 모르고 신났었다. 친구2도 스누피 광팬이라 모든 일정중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첫째날. 저녁으론 숙소 근처에서 검색해 흑돼지+해물구이를 먹었다. 

둘쨋날. 11월 19일(금) 우도+성산일출봉. 

우도에는 렌터카를 못 가져가는 것으로 알고 당연히 성산항에 주차후 우도행 배를 탔는데 의외로 배에 실리는 렌터카가 많았다. 미니전기차 운전에 자신이 없었던 친구들은 이때부터 불만을 표함. 렌터카 들어가도 되네! 어 그러네;; ㅎㅎ 민망. 예전처럼 우도에서 미니전기차를 3시간 빌려서 한 바퀴 일주를 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친구1이 초보운전자이고 겁이 많아 절대 속도를 못낸다는 것. 친구2는 운전면허증은 있으되 아예 운전할 엄두도 못냄. 내 파트너는 친구딸 ^^; 우리 둘은 신나게 속도를 높여 해변을 달리는데 친구네 차는 좀처럼 따라오질 못하고;; 결국 가다 서다 기다리다 서로 잃어버리고 헤매고 ㅋㅋㅋ 

우도+성산일출봉

제대로 바다구경도 못하고 허겁지겁 시간 맞추느라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았으면 우도를 가지 말걸 그랬나 싶을 정도였다. 아니 이렇게 바다가 맑고 깨끗하고 예쁜데. 고객님들은 죄다 1분 컷. 사진 찍고 이제 가자고 하심. ㅠ.ㅠ  해물짬뽕과 소라짜장면, 땅콩아이스크림에 대한 고객님들의 만족도도 그저그랬음. ㅎㅎ 그나마 검멀레 해안에서 모터보트가 우릴 위해선지 괜히 한바퀴 뺑 돌며 동그란 궤적을 남겨주어 뿌듯.

암튼 우도에서 나와 성산일출봉으로 향하며 내게 가장 시급했던 건 카페인! 아침에 숙소에서 한잔 내려 마시고 오긴 했지만 멀미하는 친구딸래미 신경쓰며 렌터카로 살살 운전하려니 이래저래 스트레스. 진한 커피로 속을 달래고 이제 좀 제대로 걷나보다 싶었더니 성산일출봉을 꼭 가고픈 코스로 꼽았던 친구2가 자긴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_+ 엥? 친구를 어떻게 혼자 두냐. 그럼 나도 같이 있을까? 하고 나서는 친구1 (역시 걷기 싫었던 것;;) 다행히 (그리고 놀랍게도) 딸래미가 나서서, 아니 카페에 앉아 있을 거면 제주도까지 뭐하러 왔느냐고 ^^;; 해서 얼결에 두 모녀+나만 성산일출봉에 올라갔다 내려옴. 숙소 들렀다가 저녁은 함덕 <다퍼주는 횟집>에서 모듬회+방어특선+산낙지. 역시나 검색했는데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엄청 화려하진 않았고, 나름 배불리 흡족.

마지막날. 11월 20일(토) . 숙소 바로 앞이 함덕해수욕장인데 코앞에서 내다보이는 해변을 결국 한번도 안 걷고 갈 수는 없다며 아침에 친구 딸래미 씻는 사이 나 혼자서라도 나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친구2가 마지 못해 따라나섬. 카페 델문도에서 저녁에 커피 한잔 했으면 좋았겠다 싶었으나 결국 못함. 이제껏 어떤 여행 멤버든 원래 내가 젤 게으른 편이었는데;; 요번엔 내가 젤 조바심을 냈던 것 같다. 제주도가 아니고 어째 서울 근교로 친구들 모시고 다니는 느낌 같아서;;  

셋째날은 애당초 일단 비워뒀던 일정에 키티아일랜드가 추가된 거라 아침 일찍 서귀포쪽으로 내려갔다. 소노벨제주 로비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입장료 할인해 미리 끊을 수 있음! 스누피가든(여긴 오히려 현장에서 할인받은 듯)처럼 실내외로 전시장이 나뉘고 루프가든도 있고 뭐 그런 줄 알았는데 ㅋㅋ 달랑 건물 하나에 주로 유치원생이나 초등생 아가들이 주고객층인듯 어른들이 우르르 온 팀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구딸래미가 신나서 사진과 동영상을 오백장쯤 찍어달라고 (첫날부터 내가 그녀의 쓸만한 찍사로 선택됨) 해서 열심히 협조했고, 아이가 키티애호가로서 정말로 기뻐하니 우리도 흐뭇.  

11월 20일(토) 아침의 함덕 해변과 키티아일랜드와 새별오름

 점심은 수제피자를 먹었는데 이름 까먹음. +_+ 맛은 괜찮았으나 신발 벗고 들어가는 좌식 테이블이라 좀 낯설었던 기억이 있다. 서울행 비행기는 6시, 렌터카는 4시까지 반납하기로 한 터라 시간도 넉넉하니 억새밭으로 유명한 새별오름엘 들르자고 즉흥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는데... 막상 주차장에 차를 대니 친구1, 2모두 올라가지 않겠다고 선언. 여기서 본 걸로 충분하다나. 그나마 중학생소녀는 멋진 사진을 더 남기겠다는 일념으로 나와 둘이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경사가 가팔라지는 5분의1지점쯤(정확히는 나도 모름. 총 왕복 시간 대비 짐작만 할 뿐이다) 갔을까, 날아드는 벌레(하루살이)가 많다며 정상까지 가는 건 포기. 에효. 사실 새별오름은 지난번 친구들+친구언니들과 함께 왔을 때도 딱 거기까지만 가고 돌아섰던 아픔이 있는 곳이다. 아주머니들은 왜 그렇게 걷는 걸 싫어하시는지. 째뜬 소녀의 바람을 무시할 순 없으므로 아쉬워하며 그만 돌아서고 말았다. 제주도에 왔으면 최소한 오름을 2개는 봐야지 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자 괜한 욕망이었던 것. ㅎㅎ

이젠 시간이 너무 붕 떠버리고 말았다. 해서 굳이 서쪽으로 향해 애월해변을 굽이굽이 돌아 바닷가 드라이브를 한 뒤 (해수욕장으로 들어가서 모래사장을 좀 걸을까, 물으면 다들 되셨다고... 신발에 모래 들어가는 거 싫다고 ㅎㅎ), 렌터카 회사에서 멀지 않은 용두암에라도 갈까 다시 방황 시작. 그러나 고객님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용두암을 가기 전에 현무암 해변을 발견하고 그냥 차를 세웠다. 

뭔가 계속 아쉬웠던 나와 달리, 마지막날은 거의 패키지 제주여행 온 것처럼 알차게도 돌아다닌다며 고객님들 즐거워하심. ㅎㅎㅎ 그럼 되었다! 

일찌감치 렌터카 회사에 차를 돌려주고는 제주공항에 들어갔는데 우와;;; 면세점이며 터미널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쇼핑에 신이난 세 여인들과 달리 나는 그만 혼이 빠져버리고 말았고 ㅠ.ㅠ 먼저 탑승구 앞에 가서 기다리게 있겠다고 슬그머니 달아났다. 거의 산소부족을 느꼈음. 그러나... 주말 비행기는 계속 연착되고 사람들은 바글바글... 결국 7시40분이었던가.. 햄버거로 저녁을 대충 떼우고서야 서울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홀로 가이드에 운전까지 완벽했다며 친구들은 칭찬과 감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나는 완전 기진맥진. 여행으로 에너지가 차오르는 대신 완전 방전되는 요상한 느낌의 여행이었다.

부디 다음번에 제주도를 간다면 훨씬 더 여유롭게 올레길도 좀 걷고, 한라산도 오르고, 오름도 걷고, 숲길도 많이 다니고 제대로 힐링하고 싶으다. ㅠ.ㅠ 그러려면 이 멤버들과는 취향이 넘 다르다. 이 친구들은 요번에 못간 남서쪽 제주투어를 내년에 다시 계획하겠다고 하심. 중학생소녀와 나의 쿵짝이 너무나 잘 맞았는지, 그 소녀도 단1초의 망설임 없이 또 따라가겠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성사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진짜로 가게되면 아마 그때도 난 고객님들의 '니즈'에 맞춰 열심히 다니고 나서 투덜투덜하겠지. ㅎㅎ  

아참. 요번에 느낀 점. 1) 제주도 렌터카 전기차 빌리기 그리 쉽지 않다! 가격도 비싸고 제일 먼저 없어짐. 충전소 걱정에 빌려도 되나 좀 걱정했었는데 너무 일찍 알아볼 땐 아예 예약날짜가 안뜨더니 열흘쯤 전에 예약하려니 불가. 아이오닉 한번 타보고싶었는데 아쉬웠다. 꿩대신 닭으로 빌린 렌터카는 소울. 차 괜찮더군. 기록용으로 남기자면 이용한 렌터카 회사는 '제주속으로'  2) 우도에 렌터카도 진입하고 전기차에 자전거에 씽씽이까지, 어휴 정신없어서 길도 좀 헤맸다. 예전엔 아무 어려움 없이 한바퀴 일주했는데 요번엔 막 중간에 길 잃어버리고, 친구 찾아 삼만리하고 ㅠ.ㅠ 째뜬 대여료는 2대 7만원. 3시간이었던가 3시간 30분이었던가. 넉넉하다고 했었는데 점심먹고 헤매고 그러느라 빠듯했음. 우도 땅콩 안 사온 건 후회. 3) 제주 해변 경치는 북쪽보다 남쪽이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거 같다. (하긴 거의 잘 보고 다니지도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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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덮밥

식탐보고서 2020. 5. 8. 20:59

 

어버이날 행사는 늘 주말에 미리 당겨서 동생들과 모여 밥을 먹지만, 정작 당일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지나기가 좀 그래서 어차피 먹는 밥이지만 또 한번 메뉴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해서 작년 어버이날엔 스테이크를 구워 곁들이 채소와 함께 접시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다음주 채혈을 앞두고 있어서 최소 일주일간은 나름 눈가리고 아웅 건강식으로 열량을 제한하는 중이라 가벼운 메뉴로 연어덮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칭찬에 워낙 인색하신 엄마가 맛있다 맛있다 여러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 처음 만들어본 거라 간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간도 딱 맞았기에, 다음에도 참고하려고 여기에 기록해둔다. 

그리고... 마트에 나간 김에 카네이션도 사왔는데 ㅠ.ㅠ 아이비랑 카네이션을 예쁘게도 섞어 잘 키웠네 생각하며 들고 와보니 꽃은 조화였다. 나 원 참. 그 옆에 카네이션만 있는 화분도 있었는데 꽃이 별로 안 예쁘길래 탐스러운 것으로 골랐더니 럴수럴수 이럴수가. 눈이 삐었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 보다.  

재료: 생연어 200g(2인분), 양파 1/4개, 다진 마늘 약간, 간장 1과 1/2숟갈, 참기름 1숟갈, 설탕 1티스푼, 고추냉이 약간, 후추, 요리술, 달걀노른자, 무순

 

1. 생연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오미자요리술에 담가 10분쯤 냉장고에 넣어둔다.

2. 다진 양파와 다진 마늘에 간장, 설탕, 참기름, 고추냉이, 후추를 넣고 휘휘 젓는다.

3. 재웠던 연어를 건져 요리술을 잘 짜낸 뒤에 양념장에 버무린다.

4. 뜨거운 밥은 좀 식혀야 한다고 해서 그릇에 미리 담아 더운 기운을 뺐다. 담아놓은 밥 위에 양념한 연어와 무순을 올리고 맨 위에 달걀노른자를 얹는다.

5. 노른자를 톡 터뜨려서 비벼 먹으면 됨. 

연어보다 달걀노른자가 주인공처럼 나왔다. ㅋㅋ 연어를  칼로 길쭉하게 잘랐지만 결국 비빌 땐 가위로 더 잘라드려야했다. 다음엔 깍둑썰기로 해야지. 내가 찾아본 레시피엔 부추나 쪽파를 넣으라고 했는데, 마트에 가보니 너무 거대한 양을 사기 꺼려져 내맘대로 무순을 넣어봤는데 완전 딱이었다. 다음엔 무순을 더 많이 넣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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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름

놀잇감 2020. 4. 28. 14:58

그동안 절대 없었을 리는 없고, 어떻게든 꽁꽁 감추어져 있던 추악현 현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것이겠지만 연일 뉴스를 보는 게 겁나고 끔찍할 만큼 믿어지지 않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N번방 수사는 아직도 지지부진, 26만명의 명단공개는 멀기만 하고, 소아성애자 성범죄자가 어엿하게 능력있는 남교사로 활약하고, 판사들은 아직도 디지털성착취범죄자들의 형량이 3년이면 적당하다고 한단다. 미칠노릇이다. 얼마나 더 독하게 마음먹고 쌈박질을 해대야하는 건지...

암튼 그래서 머리도 식힐겸 창밖으로 연두색과 초록색의 중간쯤으로 변한 이파리들을 보다가 대체 저 오묘한 색깔은 무어라 불러야하나 궁금증이 일었고... 첫 직장시절 회사에서도 귀한 자료였으며 지금까지도 쓸데없이 갖고 싶어하는 팬톤 컬러북 색상표를 검색해보았다. 팬톤에서 붙인 컬러마다 다 따로 색깔 이름이 있긴 한데 일단 후르륵 찾아본 이미지엔 컬러 이름이 안 들어있네..  

 

순서조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초록색 범주에 붙인 이름과 이미지는 찾았다. 채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팬톤컬러와 연결되지 않을까? 한가하진 않지만, 마음을 정화하는 의미로 하나하나 우리말로 옮겨봐야겠다. ^^; 얼핏 보니 허브와 채소 이름이 많아서 아마도 대부분은 그냥 외래어 표기가 될 듯. ㅠ.ㅠ 

Lime 라임   Leaf 잎사귀   Sage 세이지   Pine 소나무   Kelly 진초록

Shamrock 토끼풀   Olive 올리브  True Green 참초록   Turtle 초록거북   Froggy 초록개구리

Asparagus 아스파라거스  Green Apple 연두(초록?)사과  Darkest Green 검초록   Bright Green 밝은초록  Barista 바리스타

Grass 풀빛   Cucumber 오이   Mint 민트    Lilly Pad 수련잎  Forest 숲

Holly 호랑가시나무  Parrot 앵무새   Celery 셀러리  Kiwi 키위   Army 군복(군초록?)

나중에 초록빛깔 묘사가 나오는 책을 번역할 때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뿌듯하지만 그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좋겠다. 암튼 잠깐 눈이 시원해지면서 행복했다. 나의 최애 색깔은 늘 파란색 계통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요즘은 초록 연두 빛깔들이 점덤 더 좋아진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못하겠다. 옷색깔이라면야 푸른계통, 검정색이 제일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냥 색깔만으로는 예쁜 색들이 좀 많은가. 형광분홍색 계통을 대체로 극히 싫어하긴 하지만 또 꽃으로 피어났을 땐 군말없이 아름답다 여기게 되므로, 색깔에 관한 한 선호하는 색깔과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 자연에서 아름다운 색깔은 모두 다르고 그래서 몽땅 다 예쁘다는 게 정답. 점점 더 진해지는 초록빛깔에 지치기 전에 영롱한 연두, 잎사귀, 풀빛, 연잎, 참초록, 초록개구리 색깔들을 하나하나 눈에 더 많이 담고 싶다. 열심히 창밖 잎사귀와 색상표를 비교한 결과... 오늘 햇빛 속의 벛나무 잎은 pms370초록개구리 빛깔에 가장 유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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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다 옷타령

투덜일기 2020. 4. 23. 11:08

곤도 마리에의 책은 한권도 안 읽어봤지만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그 사람의 정리 원칙은 정말 많이 들어보았고 공감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단촐하게 정리하고 살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싶어도, 그건 넓은 공간과 수납장이 확보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일뿐, 수십년된 집에서 수십년된 물건에 둘러싸여 비어 있는 벽이 하나도 없는 옛날 집에 붙박이로 살면서 웬 미니멀리즘! 거기다 우리 모녀는 물건을 잘 버리지도 못한다.

암튼 여러 물건 가운데 가장 골칫거리는 역시나 옷이다. 계절별로 10벌인가 5벌만 남겨두고 다 버린 뒤 돌려입고 살라는 충고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것 같은 기묘한 현실 앞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요즘 밀라논나 장명숙님의 유튜브를 구독중인데, 30년씩된 옷도 아직 고쳐입고 갖고 있는 걸 보면서 음.. 과연 나도 체중관리만 계속 잘 하면 그리고 욕심만 버리면 가능도 하겠단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내 옷장에 든 옷 중에서 2, 30년씩 계속 입을 만큼 기본기가 확실하고 가치있는 옷이 얼마나 되려는지 의문도 덩달아 따라온다.

물론 내 옷장에도 20년된 재킷이나 셔츠, 정장이 있다. 우선 두 동생들 결혼할 때 장만한 정장이 두벌. 둘 다 기본형이고 원단도 고급이라 지금 입어도 훌륭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딱 떨어지는 정장에 몸을 맞춰 딱딱하게 유지하는 걸 못견디는 것이 문제다. 그 외에도 결혼식 교복이라 부르는 정장류 옷들이 거의 다 15년 이상 20년은 된 듯하다. 옛날처럼 결혼식 갈 일이 자주 없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ㅋ (그러나 머잖아 친구들의 자녀 결혼식이 다가오겠지;;)

째뜬 철마다 옷타령을 하는 건 전 국민, 아니 전지구인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싶다. 기억력 탓인가 작년 이맘때 대체 뭘 입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함정. 게다가 들쭉날쑥 이상해진 날씨도 한몫한다. 트렌치코트 같은 건 도무지 입을 타이밍을 모르겠다. 요즘처럼 갑자가 다시 추워져서 패딩입은 사람들도 보이는 4월말. 현명한 옷입기는 뭘까? 든든하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거의 50일만에 미용실에 외출했다 추워서 덜덜 떨며 집에 왔더니 나아가던 감기가 다시 도졌다. 

울 엄마의 경우는 '철마다 옷타령'과 '죽을때까지 더는 옷을 사지 않겠다' 입장을 수시로 반복하신다. 외출을 앞 두고 무얼 입고 나가나, 입을 옷이 왜 없지? 작년엔 뭘 입었지?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아서, 옛날 옷들은 주로 좀 무거운 편이니 가벼운 옷으로 하나 장만하자고 하면, 금세 태도가 돌변한다. 나 옷 많다, 80이면 살만큼 살았다, 죽을 때까지 있는 옷만 다 입어도 못 입는다... 실제로 정신건강이 나빠지는 기간이 길어지면 한 계절을 통째로 날리기 때문에 못 입고 넘어가는 옷들이 꽤 많은데, 요번처럼 몇달째 집안에 갇혀 사는 전염병 시국엔 오죽할까. 

올 아카데미시상식의 클라이막스 작품상 시상 장면은 기생충 호명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겠지만, 그보다 먼저 내 눈엔 제인 폰다의 등장으로 더욱 인상깊었다.  당당한 걸음걸이로 어깨에 걸치고 나온 빨간색 코트 때문이었다. 드레스에 웬 코트? 

게다가 제인 폰다는 무려 1937년생. 울 엄마보다도 3살이나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환경운동가이며 여러 사회문제에 열렬히 목소리를 드러내는 투사다. 그리고 이 빨간 코트는 제인 폰다가 그레타 툰베리를 지지하며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더는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옷을 사지 않겠다는 의미로 마지막으로 장만한, 아마도 저항의 의미를 담은  빨간색 코트였던 것.

작년에 제인 폰다는 뉴욕에서 매주 금요일 환경시위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체포되는 행동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 장면이고 이 때 매주 입었던 빨간색 코트가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들고 나왔던 옷이다. 영화제의 한 순간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적인 문제를 열심히 전하는 놀라운 태도에 다시 한 번 존경심이 든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지만, 싼 옷 사서 금세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뿐만 아니라 청바지도 환경오염의 주역이라고 한다. 화학약품으로 물을 들였다 뺐다 하면서 엄청난 물을 사용한다는 듯.  에효.

저날 아카데미 시상식에 제인폰다가 입고 나왔던 드레스 역시 당연히 재활용이었다고 한다. 수십년전 칸 영화제 때 입었던 드레스라는데, 협찬으로 명품 드레스 빌려 입는 우리나라 대다수 연예인들과 상황이 좀 다른 걸까? 암튼 여든살이 넘어서도 수십년전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 놀라운 몸관리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영화제 직후였나 기생충 작품상 이야기와 더불어 내가 제인 폰다의 빨간 코트 이야기를 꺼냈더니 후배들의 중론이, 제인 폰다는 좋은 옷들이 워낙 많으니 안 사고 입어도 되겠지만 우린 안 돼!  ㅎㅎㅎ

암튼 그래도 더는 살림을 늘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운지 몇 년. 새 물건을 들이려면 동종의 옛 물품을 버려 가지수라도 맞추자고 노력하며 살았고 가능하면 옷은 사지 않고 버텨볼 작정을 했었다. 작년엔 터져나가려는 옷장과 서랍에서 진짜로 최근 3년간 안 입은 옷들은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정리해 아름다운 가게에 대거 기증했고, 약간 여유로워진 옷장을 보며 꽤 흐뭇했다. 한꺼번에 열벌은 사도 되겠어,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ㅎㅎ 올 들어선 곧바로 전염병과 함께 소비 심리 위축! 물론 프리랜서의 불안한 경제사정도 감안해야 할 일이다. 

째뜬 제인폰다보다 세살 어린 여든살의 엄마는 오늘 코로나19 창궐 이후 중지 되었던 초하루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거의 4개월만에 처음으로 홀로 버스틀 타고 서오릉 앞에 있는 절까지 외출을 감행하시었다. 그리고 추워진 날씨 '덕분에'  다행이라며 2월에 사드린 새 모직 코트에 스카프를 칭칭 매고 나가셨다. 음. 나는 마지막으로 산 옷이 작년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질 않지만 암튼 제인 폰다 따라하기는 우리 모녀 둘 다 쉽진 않을 것 같다. 나이들수록 기분도 옷차림도 추레하면 안되잖아...가 우리에겐 아주 좋은 핑계다. 어쨌거나 저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존경하며 계속 노력은 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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