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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4.29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9
  3. 2011.03.29 정유정 - 『7년의 밤』 16
  4. 2010.12.31 2010 한해 정리 16
  5. 2010.11.26 몸값 18
  6. 2010.10.09 과거, 망각, 현재 2
  7. 2010.05.27 눈뜬 자들의 도시 2
  8. 2010.04.09 씁쓸 7
  9. 2010.04.03 병원 공포 11
  10. 2010.03.16 소인배의 승리 20

어떻게 팔릴까

책보따리 2011. 5. 10. 18:32

꾸준히 책을 읽은 감상을 올리는 블로거와 달리 독후감 못쓰는 지병을 탓하며 가뭄에 콩나듯 독서 후기를 올리면서 한 가지 착각을 했던 것 같다. 파워 블로거도 아닌 주제에 마치 내가 후기를 올리면 조금이라도 책 판매에 도움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깊이 생각해볼 것도 없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같은 타령이다. 하루 접속 인원이 수백 명, 수천 명 되는 도서 전문 블로거라면 몰라도 행여나!

하여튼 출판계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푸념이 한해도 빠지지 않을 만큼 열악한 이 업계의 구조적 한계를 알고 있기에 나와는 별 상관없는 희소식에도 그저 반갑기만 하다. 나는 신간, 구간 따지지 않고 내키는 대로 책을 사기 때문에 나온지 몇년 지난 책을 처음 접할 때도 꽤 많은데, 그럴 때 찾아본 서지정보에서 5쇄, 10쇄 이상 발행됐다는 내용이 눈에 띄면 괜스레 기쁘다. 또한 베스트셀러를 일부러 기피하는 성향이 있으면서도 100만부를 넘겨 팔렸다는 책이 뉴스에 등장하면(물론 이제 100만부 넘겨 팔리는 책이 드물어 뉴스거리가 되고 만 현실이 서글픈 것과는 별개로) 역시나 아직도 책을 읽거나 사는 사람이 깡그리 사라지진 않았다는 생각에 슬몃 안심이 된다.

처음 번역에 발을 디디면서 깨달은, 출판기획은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스캔들에 휩싸였던 전직 큐레이터의 자서전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리라고 짐작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의 판매 호조도 내겐 그저 놀랍다. 일단 탄성이 붙어 화제에 오르고 난 다음엔, 뇌화부동하는 군중들이(워낙 이 나라 사람들은 집단주의에 휩쓸리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언론에도 꽤 오르내리고 주변인들이 좀 아는 체 하면 따라 읽는 심리;;) 너도너도 덩달아 사보는 분위기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궁금한 건 어쩌다가 탄성이 붙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과거엔 주요 일간지에 서평이 실리는 게 책 판매실적을 크게 좌우했다. 조중동 서평난에 실리면 기본 1만부는 거뜬히 넘긴다고 장담하던 때도 있었다. 내가 번역으로만 밥벌이하기가 힘들어 출판사 외서기획을 돕던 시절, 서로 친분이 두터운 소규모 출판사 사장님들은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그 주요 일간지 서평 담당 기자들을 불러다가 깍듯이 '접대'했다. 한번은 나도 그들과 얼굴을 익혀두는 것이 좋겠다며 인사동으로 불려나간 적이 있었다. 기쁨조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앉은 내 심사를 파악한 사장님은 어차피 저 사람들 2차로 보낼 데도 있으니 밥만 먹고 일어나라고 달랬다. 그날 따라 몸이 좋지 않아 2차까지 '수행'하지 못하게 된 사장님은 동석했던 다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한껏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는 준비해간 돈봉투를 은밀하게 기자들에게 하나씩 찔러주었다. 그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 나는 이미 경리직원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빳빳한 만원권 100장씩이었다. 늘상 있는 일인 듯 그걸 받아드는 기자들은 몹시 태연자약 여유로웠고, 나는 속으로만 부르르 치를 떨었다.

벌써 십수년 전 일이긴 하지만 그 당시 작고 이름없는 출판사의 경우는 그렇게 밥과 술과 돈과 여흥으로 서평 담당 기자를 접대해도 조만간 일간지에 서평이 실린다는 보장이 없었다. '나름' 괜찮은 책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대규모 출판사는 특별히 기자 접대를 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서평이 실렸다. 자금력이 확보되어 있으니 대형 화제작을 언제든 터뜨릴 수 있지 않겠나. 출판계에도 통용되던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 내게 기획자 명함을 파주었던 그 출판사의 서평이 드디어 일간지에 실린 건, 직접 목도했던 돈동투 사건으로부터 1년이나 지나서였다. 로열티도 꽤 많이 주고 계약한 경제경영서를 출간했을 때였다. 일간지 서평 덕에 과연 그 책의 손익분기점을  넘겨 혜택을 보았는지 결과는 알지 못한다. 내가 곧 그 출판사 기획일을 때려치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컨대 분명 '밑지는' 장사였을 것이다. 1, 2년 꼬박 기자들에게 그런 접대를 해야 했다면 들인 돈이 대체 얼마인가! 기가 막혀서... 

웃기는 건 서평 담당 기자들 가운데 실제로 책을 꼼꼼히 읽고 기사를 쓰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출판사에서 자체 제작한 홍보자료를 순서만 약간 바꾸어 서평을 올려놓고는 그 기사의 저작권을 신문사에서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그 시절엔 나도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고 비상근이긴 해도 출판사에 나가보면 주요 일간지가 매일 수북하게 쌓여있었는데, 거기서 가끔 실제로 책을 읽고 쓴 게 틀림없는 서평을 발견하면 우와 놀라며 감동할 정도였다. 그때 만난 서평 담당 기자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나빴던 나머지, 요즘도 인터넷으로 일간지 서평을 보게 되면 못내 궁금하다. 책을 직접 읽고 쓴 걸까, 홍보자료를 읽고 쓴 걸까? (화제작에 대해서 일간지 별로 대동소이한 서평이 올라오면 십중팔구 출판사 홍보자료라고 장담한다 ^^;) 아직도 서평 담당 문화부 기자들은 출판사의 깍듯한 접대를 받을까?

일간지 서평과 함께 당시엔 일간지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가 '꽤 먹히던' 시절이었다. 물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전면광고, 통광고 좋아하다가 마케팅 비용에 들인 돈 만큼 책이 팔리지 않아 결국 부도를 내거나 크게 손해를 본 출판사들이 쎄고 쎘지만 말이다. 요샌 종이 신문을 본 적이 거의 없어 경향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과거만큼 영향력이 없는데도 여전히 일간지에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를 턱턱 내는 출판사들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설마 옛날보다 광고비가 싸졌을 리는 없는데 미약하기는 해도 여전히 효과가 있기 때문일까? 그 또한 궁금하다.

이제는 인터넷 서점의 엄청난 위용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의 힘이 날로 줄어들고는 있지만, 옛날엔 대형서점의 진열대도 책의 판매실적을 좌우했다. 그래서 영업사원들은 서점 직원들과 각별히 친하게 지내며 유리한 진열 위치를 선점하려 했고, 따로 돈을 내야 하는 특별 판매부스 코너도 종종 설치했다. 서점에 영업을 나가선 슬쩍 경쟁사의 책을 구석쪽으로 밀어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과연 그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서점에 나가서도 베스트셀러는 눈으로만 구경할 뿐 괜히 못마땅해하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라며 수북하게 쌓여 있으면 선뜻 손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일부 출판사에서 책 사재기까지 해가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려고 안달을 하는 게 아닐까.

출판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과 달라진 현실 때문에 책 영업에도 고충이 많다. 요즘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입소문과 온라인 서점의 판매지수, 거기 올라간 독자 서평이라는 것 같다. 그래서 웬만한 출판사들은 책이 나오면 으레 온라인 북카페나 자체 출판사 회원 사이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 무료로 책을 나눠주고 자신의 블로그와 온라인 서점 게시판에 서평을 올리는 것이 조건인 것 같다. 그걸 알기에 나는 책이 출간된 후 후딱 올라온 온라인 서점의 후한 서평을 믿지 않는다. 출판사의 입김이 닿은 서평단의 글일 확률이 백프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닌 경우도 더러 있을 텐데 그들에겐 좀 미안타;;) 출판사에서 굳이 서평단을 모집하지 않더라도, 지은이 쪽에서 사람을 풀기도 하는 것 같다.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 선배가 종종 교재를 출간하는데,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단체문자가 날아온다. 온라인 서점에 별 다섯개짜리 서평을 책임지고 두개씩 올리라고. -_-; 학교 제자들한테도 그러라고 시켰다는 후문이고, 나중에 선후배 모이는 자리에선 출석확인 하듯 서평 올렸나 안 올렸나 따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인세 대박이 났는지 그건 또 잘 모르겠다. 최근 이삼 년 간은 조용한 걸 보면 인기 교재 집필자는 아닌 것 같다. ㅋㅋ

얼마전 신간 소설 읽고 올린 후기 때문에 출판사의 검색망에 딱 걸려든 적도 있었지만, 확실히 출판사에선 1인 미디어시대라는 요즘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소셜미디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웬간한 출판사는 공식 사이트뿐만 아니라, 장르별 북팬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다 열어두고 어떻게든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또한 출간 기념회 같은 행사에도 주요 블로거와 북카페 회원들을 반드시 초청해 기념품과 책 선물을 안긴다. 어느 정도 위상이 높은 서평 전문 블로거나 북카페 회원의 경우 공짜로 책을 받았다고 해서 터무니 없이 호의적이기만 한 서평을 올릴 리는 없다고 믿는다. 애서가로서 자신의 신뢰도에 금이 가는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판사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지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적절한 예일지 모르겠지만, 부정선거가 판을 치던 시절 울 엄마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불려 다니며 공짜밥을 먹었다. 어쩔 때는 누가 내는 밥인지도 모르고 갔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야 전화로 어느어느 후보가 낸 밥이라는 통보와 한 표 부탁한다는 인삿말을 듣기도 했다. 울 엄마는 밥은 얻어 먹되 안 찍어주면 그만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순진하게도 나중엔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러느냐며 그놈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뒷구멍으로 돈을 쓴 놈은 나중에 당선되면 선거비용을 죄다 뽑으려고 부정부패를 일삼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내가 길길이 뛰며 화를 내도 소용없었다. 요새는 부정선거운동이 발각되면 당선무효가 되는 데도 여전히 뇌물성 선심을 쓰거나 밥을 내는 지자체 선거 후보자가 사라지지 않는 걸 봐도 사람들은 아직 뇌물에 약한 것 같다.

나 역시 애서가 이웃 블로거들의 리뷰를 보고 따라 읽으려고 책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짜로 받은 책이나 아는 사람의 책에 근거 없이 후한 평가를 내리는 분들이 아니다. 또한 책에 대한 내공이 깊어 팔랑귀에다 변덕 심한 나의 감상과는 평가수준도 다르다. 어차피 책 또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책을 많이 읽은 분들의 평가는 대체로 옳다. 그렇다면 나는? 독서량이 일천하여 비교대상이 현저히 적은 나로서는 그때그때 즉흥적인 감상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좀 괜찮다 싶으면 어떻게든 좀 더 '팔아줄' 방법이 없나 고심하게 된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리도 주제넘은 생각을 하는지 원. 그나마 위안은 이제껏 올린 후기치고 빌려본 책은 있을망정 출판사나 지은이, 번역자에게 홍보용으로 받아 읽은 책은 없다는 것 정도다. 

독서 후기 자체의 충실함보다 이런저런 책의 판매에 먼저 관심을 쏟는 나의 태도는 어쩌면 인세 대박을 향한 흑심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물론 번역료의 인세/매절 계약 여부를 내 쪽에서 정하는 건 아니고 출판사의 원칙을 따르는 것 뿐이다. 별로 안 팔릴 것이 너무도 뻔한 책을 인세로 계약할 땐 속으로 꿈을 꾼다. 아는 언니가 <체게바라 평전>을 인세로 낼 때만 해도 그렇게 많이 팔릴 줄 상상도 안했다잖아 결과는 모르는 거야, 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괜한 동병상련이랄까, 지은이든 번역가든 약간이라도 괜찮은 책은 인세로도 혜택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다. 하지만 출판은 도박이라, 어떻게 팔리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요지경이다. 수천만원을 들여 일간지 전면광고를 낸 만큼 수익을 뽑으려면 책을 최소한 수만부는 팔아야 할 텐데, 온라인 서점 반값 할인으로 수익구조는 나날이 열악해지는 가운데 일간지 전면광고, 버스 광고를 계속해서 해대는 출판사가 나는 더 신기하다. 베스트셀러 내고 광고 빵빵 쳐대다가 망하는 출판사를 그간 하도 많이 봤어야지. 

사실 책이 어떻게 팔릴지는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닌데 책으로 밥벌이를 할 운명을 선택하고 보니 신경이 쓰이는 것뿐이다. 언젠가 쓴 포스팅에 당신이 읽는 책 한권이 이 나라의 출판계와 라니의 밥줄을 지킵니다, 라고 눙쳤던 게 생각난다. 어디까지나 목표대로 예순 살까지 번역으로 먹고 살기 위한 안간힘이라고 생각하면 한편 눈물겹다. 누군가 책이 어떻게 팔릴지 걱정하지 말고, 마감일이나 잘 지켜 일감이나 짤리지 말라고 충고할 것만 같다. 암, 그래야 하고 말고.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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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던 북리뷰는 계속 안 쓰는 게 좋겠고 특히 따끈한 신간 후기는 검색망에 걸려들기 쉬워 괜히 난감(?)할 수도 있으니 안하겠다고 선언한지 얼마나 됐다고, 손바닥 뒤집듯 또 독후감을 쓴다. 의지력 박약 및 우유부단, 내가 그렇지 뭐.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

일단 옮긴이의 블로그에서 이 표지와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이미 낚인 게 틀림없다. 전작 <밴버드의 어리석음>을 읽고나서 폴 콜린스라는 사람 참 대단하고 신기한 사람이구나, 역자가 소신껏 밀어줄만한 작가로구나 생각은 했지만, 토머스 페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대번에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으니 제목 한번 잘 지었다 싶다. 거기다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라는 부제도 호기심을 끌기 충분하다. (다 읽고 보니 중의적이다. 그 옛날 18세기에 이미 토머스 페인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이 지극히 '상식'이라고 주장했고, <상식>이라는 책도 펴냈다) 역사가 외면하고 잊어버린 기인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두는 폴 콜린스의 취향은 이번 책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지는데, 전작 <밴버드의 어리석음>보다 대중적이고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 읽는 재미도 훨 낫다. 

토머스 페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란다. 심지어 미합중국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냈으며, 자기 주머니 돈을 털어 미국 연방준비은행(뉴스에서 자꾸 '연준'이라고 해서 내가 못 알아먹었던 그곳의 역사가 이리도 오래됐구나!) 종잣돈을 마련했고, 미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주장한 책 <상식>을 써서 '독립선언문'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영국에서 군주제 폐지를 부르짖다 반역자로 조국에서 쫒겨나 프랑스에서 혁명운동을 하다 투옥됐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끊임없이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던 그는 복음주의 기독교를 비난하는 <이성의 시대>라는 책 하나 때문에 독립영웅 대신 혐오스런 무신론자로 배척 당하다 끝내 가난과 고독에 허덕이다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어쩜.. 이름도 하필 Pain, '고통'이람. 나중엔 끝에 e를 넣었다지만 영어로는 고통, 한국말로는 '폐인'의 어감이 난다. 혹시 그의 수난은 작명탓이 아닐까 잠시 딴 생각이 들었다만, 뭐 그의 일족이 죄다 그런 일생을 살았을 리는 없겠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면 벤저민 프랭클린 아닌가?(그러니까 무려 10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진 게 아니었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면 나도 한번쯤 들어봤을 텐데(물론 내가 상식이 풍부하거나 세계사를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금시초문인 걸 보면 뭔가 사연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책은 토머스 페인의 '전기'가 아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인물은 그저 대 전제로 존재할 뿐 이야기의 골자는 어디까지나 그의 '사라진 유골'이다. 프랭클린의 장례식에는 2만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는데, 페인이 매장될 때 참석한 인원은 달랑 6명이었다. 퀘이커 교도였던 그는 교회 묘지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그 어디서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 결국 그의 시신은 살던 오두막 근방의 마당 한구석에 묻혔다. 

10년 뒤, 한밤중에 누군가 그의 유골을 파내 영국으로 가져간다. 살아생전 토머스 페인을 사사건건 트집잡고 비난하고 논쟁을 벌이고 조롱했던 골수보수주의자 윌리엄 코빗의 소행이다. 페인이 죽은 뒤 개처럼 버려져 묻혀야 한다고 독설을 퍼붓던 코빗은 뜬금없이 페인의 기념비를 제대로 세워줄 목적으로 그의 유골을 파내 대서양을 건너왔다. 긴 세월을 거친 뒤에야 페인이 주장하던 진보적인 진리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허나 영국에서 그런 일을 호락호락 허가할 리는 없다. 통관부터 문제가 되었던 페인의 유골은 기금 마련에도 어려움이 생기면서 계속 방치되어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떠돈다. 금서였던 그의 책은 다시 용기 있는 젊은이와 서적상 덕분에 암암리에 유통되고, 페인의 생애도 재조명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시각은 부정적이므로 페인의 유골은 계속해서 '뜻있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별로 힘은 없는 이상주의자, 진보주의자들에게나 관심의 대상이다. 

이 책은 그렇게 추종자들의 관심망에 따라 페인의 유골이 정처없이 떠돈 흔적을 뒤쫓아가며, 과연 어떤 사람들이 그리도 페인의 유골에 관심이 많았는지 결국 페인의 유골은 어디에서 안식을 취했는지(또는 영영 떠돌고 마는 것인지) 독자의 궁금증을 잔뜩 부추기며 대서양을 오간다. 급기야 두개골 따로, 뇌 따로, 왼손과 일부 유골 따로, 몸 따로 흩어진 페인의 자취를 좇는 과거(페인의 유골을 손에 넣었거나 유통한 사람들의 역사)와 현재(옛날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지은이의 행적)의 시선이 공존한다.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나 싶으면 유골은 또 파산이나 몰락의 이유로 또 다시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 뒤인데, 그들은 하나같이 말을 아낀다. 설마 찾겠지, 어디든 페인의 유골이 방황을 멈춘 곳이야 있겠지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책의 후반부다. 그래서 폴 콜린스가 분실된 페인의 유골을 결국 추적하는데 성공했느냐고? 물론 그건 나도 알려줄 수 없다. ^^;;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기를! 지금 생각하면 엽기적으로 생각되는 19세기 영국인들의 각별한 유골 사랑(아 글쎄, 밀턴의 유골도 일부 도난당했다네!)과 기이한 수집벽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덤이다.  

토머스 페인도 낯선 마당에 그를 추종한 영미권의 수많은 사람들 이름은 책장을 덮고 나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가운데 남부출신의 극단적인 인종주의자였다가 사상이 완전히 바뀌어 페인의 추종자가 된 몬큐어 콘웨이는 워낙 독보적이라 두드러진다. 골통보수라고 할 수 있는 순회목사였던 콘웨이는 에머슨 목사(우리가 아는 그 랠프 왈도 에머슨 맞다)의 글을 읽고 신학공부를 다시 하기로 결심하는데, 에머슨을 찾아가 만나면서 계속해서 소개받고 만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대단하다. 짐작하다시피 호수 근처 이웃은 소로이고, 인쇄공으로 일하는 노동자 시인을 소개받아 만나고 보니 휘트먼인 식이다. 그 뿐만 아니다. 페인의 자취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선 또 테니슨 경, 새커리, 로버트 브라우닝, 다윈과 교류한다. 마크 트웨인, 해리엇 비치 스토 부인, 찰스 디킨스까지, 전부 다 콘웨이의 '지인'들이다. 우와, 역시 유유상종이로다.

콘웨이가 그 유명한 지인들과 주고받는 대화는 거의 선문답이다. 이를테면,
"정신이 일단 어떤 상태에 다다르면,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열매가 맺히는 법이지."(p144)
<블랙우즈 매거진>에 실린 에머슨의 글을 읽고 콘웨이가 얼마나 감동을 받고 삶의 행로를 바꾸게 되었는지 고백했을 때 에머슨이 겸손하개 해준 말이란다. 또한 에머슨은 목사의 존재 이유가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로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면서 "학교 회의에 양심적인 사람 한 사람은 앉아 있어야 하고, 지역사회 모임을 돕고 병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있기는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파리 한 마리가, 존재하는지 않는지 불분명한 천사보다 더 중요하네."(p145)라면서.
하버드 재학 시절, 남부 출신으로 노예문제에 이견을 갖고 있는 콘웨이가 양측의 공격을 받을 때 에머슨은 또 이렇게 충고한다.  "위대하다는 것은 (...) 오해 받는 것일세."(p154)

"약간 쌉싸래하죠. (...) 하지만 그게 경험입니다."(p156)
월든 호수를 같이 산책하며 소로가 콘웨이에게 풀잎을 씹어보라고 한 뒤 한 말이다.

워낙 유명인들과 교류한 콘웨이가 내 기억에 유독 남았을 뿐이지 페인의 유골 행방을 좇은 사람들은 대부분 흥미로운 개인사를 갖고 있다. 당시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주장(여성에게 피임법을 알리거나,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등;;)을 펼치거나 실천하려던 그들이 토머스 페인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페인의 사상은 현재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펄떡거린다.

"관용은 불용의 반대가 아니라, 불용을 아닌 척 위장하는 것이다. (...) 둘 다 전제주의다. 불용은 양심의 자유를 억압할 권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고, 관용은 양심의 자유를 허가할 권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p198)

페인은 자기 묘비명에 단 한 구절 "<상식>의 작가"라고 새겨달라고 했단다. 46쪽에 달하는 소책자에 불과하지만 그의 사상이 축약되어 있고 책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그만큼 깊다는 의미다. 책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으로도 나 역시 페인의 팬이 될 것 같다.
"어떤 그릇된 것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오래 굳어지면 겉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p35)
"우리에게는 세상을 다시 시작할 힘이 있다."(p40)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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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난 감상을 좀처럼 쓰지 못하는 지병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몇자 적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정말 대단한 작가, 대단한 소설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몇년 전 나온 『내 심장을 쏴라』가 퍽 괜찮다는 후문을 더러 듣고도 읽지 않았던 건 무슨무슨 상을 탔다는 수상작에 대한 괜한 반감과 시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친구가 책을 디밀며 극구 권했다. 한번 읽어봐, 후회하지 않을 거야, 라면서. 알았다고 대답하고 보니 구경다니는 블로그 주인장들이 앞다투어 올해 최고의 소설감이라고 치켜세우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읽고 보니 그럴만 했다. 어휴...
 
띠지와 뒤표지에 적힌 박범신의 추천사처럼 '괴물' 같은 작품이다. 번역료를 인세로 받든 매절로 받든 상관없이 이왕이면 책이 잘 팔리면 좋겠다는 마음에 한결같이 찬양일색인 주례사 후기를 남발하다 보면, 부끄럽게도 뒤표지에 역자후기 일부가 인용되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그러면 또 앗 뜨거라 싶어서 사탕발린 역자후기의 수위를 조절하는데, 몇년 전엔 그래도 꽤 괜찮은 책이다 싶어 최고의 찬사를 날린 적이 있다. 찬찬히 곱씹으며 읽어야할 문장임에도 일단은 뒷 이야기에 대한 조바심이 나서 체하든 말든 급히 책장을 넘겨야 직성이 풀리는 책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칭찬은 바로 이런 작품을 두고서 써먹었어야 옳다는 생각이 독서 중에 불쑥 들었다. 처음엔 간결한 문장 하나 하나, 섬세한 표현과 묘사를 음미하며 읽어야지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헐레벌떡 숨가쁘게 읽고 있더라는 뜻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르겠고, 결과가 궁금하면서 동시에 책이 끝나는 건 안타까웠다.

7년전 열두살 소녀의 시체가 댐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용의자였던 댐의 보안팀장은 곧이어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댐의 수문까지 열어 마을주민 절반을 몰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로 손가락질 받게 된 서원은 친척에게뿐만 아니라 온 사회에서 버림받아 모든 관계에서 격리되다시피 떠돌며 세상을 살아간다. 모든 것이 아버지 탓이므로, 서원은 스스로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 되는 상상을 하지만 한편으론 무언가 다른 진실이 있기를 막연히 기대한다. 그간 서원을 거두어준 사람은 뜻밖에도 댐 보안팀의 직원 하나. 7년 전 밤에 일어났던 일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음험하고 섬뜩한 복수의 그림자는 현재까지 드리워져 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치밀한 짜임새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도 대단하다고 느낀 건 탁월한 인물의 심리묘사라 7년 전 그날밤의 사건을 풀어내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에 나는 매번 홀딱 빠져들었다. 짠하고, 안타깝고, 오싹하고, 으스스하고, 참담하고, 화나고, 통쾌하고... 슬프다(두어 번 울었다). 수많은 감정에 휩쓸리다 책장을 덮고 나서 여운도 길다. 결국 나는 혀를 내두르며 책 날개의 저자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뭐 이런 작가가 다 있냐 싶어서. 아무래도 『내 심장을 쏴라』,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까지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아니 그 전에 천천히 쉬어가며 이 책부터 다시 읽고 나서. -_-;

급히 읽느라 인상적인 구절을 공책에 적어놓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내용을 더 발설하면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작가의 말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체하련다.

우리는 최선의 -- 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 -- 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일간지 사회면을 점령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보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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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한해 정리

놀잇감 2010. 12. 31. 17:30

올 한해는 여러모로 정리정돈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혼돈의 1년이었다. 그래서 한해의 마지막 날에라도 정리를 잘 하고 넘어가면 내년을 좀 더 쓸모있고 알차게 보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후다닥 목록을 만들어본다. (실은 2010 베스트 포스팅 하고 싶어서 자꾸 블로그에 쏠리는 마음을 다잡아 보려는 의도다. 한해 마지막 날까지 원고독촉 전화를 받는 진상 떨기는 부디 오늘 날짜로 버리고 가면 안되겠니.)


2010 최고의 영화 3
토이스토리 3
인셉션
하하하

세편 모두 영화보고 와서 후기를 올렸으므로 긴 설명 생략; <토이스토리3>은 보자마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힐 거라고 장담했고, 연이어 본 <인셉션>도 최고다 싶었다. 하반기엔 영화구경도 잘 안다녔던 터라 나머지 한편을 뭘로 꼽나 걱정스러워 나다 프로포즈에서 오늘 4시에 하는 <옥희의 영화>를 보고 나서 베스트 세 편을 뽑을 작정을 열흘쯤 전에 했으나 결국 이렇게 집구석에 있다. 영하 12도에 어딜 나가느냐고! -_-;


2010 최고의 전시 3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샤갈 전
아시아 리얼리즘 전

올해는 전시회도 그리 많이 안 다녀서 최고의 전시 셋을 간신히 꼽을 정도다. 대체 뭘 하며 산 거냐. 역시나 각 전시후기를 포스팅했으므로 긴말 생략.


2010 최고의 드라마 3
파스타
셜록
시크릿 가든

누군가는 주방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요리사가 정신병자 같다고 혹평했지만 나는 올초 <파스타>를 보며 오글오글 손발을 움켜쥐면서도 유경이랑 세프 때문에 진정 행복했다. 둘의 사랑에, 특히 유경의 솔직한 사랑법에 갈채와 응원을 보냈고 음식 만드는 장면이 나올 땐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신나게 봤다. ^^; 그 뒤론 오래도록 마음 붙이고 열광하며 볼 드라마가 눈씻고 찾아봐도 잘 없어서 어찌나 한탄스럽던지... 그러다 연말에 겨우 세편의 에피소드로 나의 마음을 빼앗은 영국 드라마 <셜록>과 아직은 끝나지 않았으나 여러가지로 마음 불편해지면서도( (최철원과 김주원을 동일시하지 않으려고 마인드콘트롤이 필요했고, 안하무인 개싸가지 김주원의 몇몇 행동은 확실히 계속 문제다) 중독된 듯 주말마다 본방사수하고 있는 <시크릿 가든> 덕분에 목록이 완성됐다. 생각해보니 이 셋 말고는 꾸준히 본방사수한 드라마가 없는 듯; 

아.. 사진 규격 안맞아서 속상하다. +_+ <파스타>는 공효진이랑 이선균만 나온 예쁜 사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지쳐서 포기. <셜록>은 크리미널 마인드, CSI, 멘탈리스트를 뭉뚱그려놓은 듯한 천재 탐정 셜록과 왓슨의 명콤비도 일품이지만, 런던 시내 곳곳이 배경으로 나오는 게 참 좋았다. 시즌2를 눈빠지게 기다릴 작정이다. 마지막으로 <시크릿 가든>에서 나는 김주원과 길라임이 눈으로 대화하는 저 장면이 제일 좋았다(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나 더 좋은 장면이 과연 나올까? @.@). 하지원과 현빈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말도 안되는 스토리로 이렇게 놀라운 인물을 표현해낼 수 있었겠느냐고 볼 때마다 감탄한다.  

2010 최고의 지름 3
1. 일본 온천료칸 체험: 왕비마마 보필은 너무 힘들었지만 파트너를 달리해(이왕이면 친구들과) 또 가고 싶다. 
2. 실내용 자전거: 과거 옷걸이로 전락했다 버려진 전적이 있으나 요번엔 계속 사용중이라는 데서 점수 획득
3. 아이폰: 정액요금과 기기값, 부가세 포함 6만원을 넘는 요금 때문에 (이전엔 3만원 전후였는데!) 아깝고 후회스러운 구석이 있기도 하지만, 지난번 모니터 망가졌을 때 아이폰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인터넷 검색에 사용했고 잘 듣지 않던 음악도 아이팟에 넣어놓으니 틈틈이 듣게 된 변화를 생각하면 잘 질렀다고 여길란다. ㅋ

2010 최고의 사건 3
1. 요가강습 1년 달성: 그렇다. 아직도 이 엄동설한에 추위를 뚫고 요가학원엘 다니고 있다. 작년 11월에 시작했는데 맙소사. 내가 1년 넘게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게 정말 놀랍다. 다 조카 덕분이긴 하지만, 내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요번 겨울방학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_-; 
2. 마감일 어기기 최고 기록 6개월: 한두달도 아니고 서너달도 아니고 무려 6개월이나 마감일을 어긴 건 16년째 번역인생에서 처음이다. 기록깨기 도전은 절대 안될 말이고, 다시는 이 기록에 근접하지도 않기를. 
3. 파랑이랑 친해지기: 아직도 다른 개와 동물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조카네 개 파랑이의 끈질긴 구애와 추근댐 덕분에 이젠 녀석을 쓰다듬어주는 수준을 넘어서 무릎에 올려 안아줄 수도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손바닥에 놓아 먹일 수(!!!)도 있게 되었다. 애완견 혐오자로서 배신의 행위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대 사건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2010 최고의 업적(?)
올해는 번역서가 네 권(이 가운데 둘은 두권짜리 장편이라 역자교정에만 몇주일이 걸리기도 했다;;) 출간되었고, 번역 작업을 한 책은 무려 6권(물론 지금 이 순간도 마무리 중이지만 ㅠ.ㅠ) 이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평균 두달에 한 권 작업이라니 이 무슨 어이없는 짓인가 싶지만, 다 작년에 게으름을 부린 탓에 밀리고 밀린 작업이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어떤 책은 계약 마감일을 무려 6개월이나 어기기도 했다. 그러니 이건 업적이 아니라 만행이라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지만, 스스로 업적이라고 믿어야 내년을 성실히 준비하며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고도 아직 나를 악덕 번역가로 매장시키지 않은 출판관계자분들에게 감사와 사죄의 인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기 와보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2010년에도 최고의 공연최고의 음반은 꼽질 못했다. 공연은 아예 보러간 게 없고 (그나마도 예매한 유일한 콘서트였던 플라시보는 공연이 취소됐다. -_-;) 음반은 딱 네 장 샀던데 어쩌라고... 억지로 스팅의 Symphonicities를 꼽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솔직히 나는 신선한 느낌의 Roxanne 말고는 예전 편곡이 대체로 더 좋은 것 같다. 2011년엔 나도 최고 공연과 음반 목록에 넣을 수 있도록 분발했으면...

2010년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침몰 (또는 방황)
계속 이렇게 살면 정말 곤란하다. 자신감을 되찾을 것.

2011년 계획
삶의 '낙'을 좀 더 열심히 찾아보자.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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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투덜일기 2010. 11. 26. 14:40

처음도 아니고 두번째 계약인데 굳이 출판사로 나오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2시에서 3시 사이에 아무때나 오라더니만 아침부터 일찌감치 다시 전화를 해서 나의 단잠을 깨워 2시까지 오라고 콕 찍어줄 때부터 조짐이 안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재미없으니 시리즈물의 계속 출간을 재고해보라고 내가 충심어린 부탁을 했던 청소년 소설의 두번째 책을 얼떨결에 계약하고 돌아와선 스스로가 한심해 엊저녁부터 계속 제머리를 쥐어박는 중이다.

어차피 책이 잘 팔릴지 안 팔릴지 예측하는 혜안 따위는 갖추지 못한 인간이니 출판사에서 계속 시리즈를 내겠다면 번역은 내가 맡아야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중간에 어떤 문제가 있든 시리즈물의 번역자가 바뀌는 건 독자를 위해서도 좋지 못한 일이다. 다행히 편집 담당자는 책이 재미있다고 했으니, 내가 청소년물을 즐기기에 너무 '늙어'버렸나보다고 짐작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다음책을 논의하러 갔었던 것이고.

하지만 시장에서 콩나물값 깎는 것도 아니고, 사람 불러다가 계약서까지 뽑아놓고 눈앞에서 원고료를 깎는 건 너무했다. 이메일이나 전화로 그런 의향을 물어왔다면 내가 아무리 소심하다고 해도 당연히 거절했을 것이다. 다른 데는 내년 계약 건부터 어렵더라도 조금씩 몸값을 올려주는 형국인데 새삼 번역료를 깎아달라니. 시리즈물의 번역료를 권당 달리할 수도 있다는 건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번역가별로 몸값이 거의 정해져 있긴 해도 책에 따라 번역료가 약간씩 조절되는 경우는 물론 있다. 분량이 너무 엄청난 책의 경우 출판사에서 미리 양해를 구하는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번역하기 쉬운 책과 어려운 책은 출판사에서도 이미 알고 있지 않겠나. 지난번 계약도 가벼운 '청소년물'임을 빌미로 나로선 최대한 양보한 선에서 번역료를 책정했던 터였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책정한 제작비에 맞춰서 두들겨 패듯 가장 만만한 '인건비'인 번역료를 막무가내로 깎으려 드는 곳을 간혹 만나게 되면 정말이지 맥이 쭉 빠진다. 시리즈물이라서 뒷권은 번역하기 더 수월할 거라는 짐작의 근거는 대체 무엇인지.

일단 사무실로 불러들이면 내가 소심해서 면전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따위의 극적인 행동은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저쪽에서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작전은 유효했다. 나름 굳은 얼굴로 입장을 밝히기는 했어도 결국 달변의 설득에 넘어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해주었으니 말이다. 저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갑'이라서 '을'인 내가 져야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결과적으로 겨우 몇십만원가지고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는 상황이 서글퍼져 어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비루한 밥벌이 아닌 직업이 어디 있을까마는 드물게 겪는 이런 장면은 그저 도망치고 싶을 뿐이다. 시리즈물 끝나면 다시는 상대하지 않을 출판사로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는 수밖에.

내키지 않아도 가끔씩 가게 되는 파주 출판도시는 이상스레 정이 가지 않는다. 삐까번쩍한 건물들이 즐비해도 인기척은 전혀 없이 회색빛으로 가라앉은 그곳에 가면 괜히 숨이 막힌다. 씁쓸한 심정으로 서둘러 집에 오니 파주에 있는 또 다른 출판사에서 보낸 증정본 택배상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올해 출간되는 마지막 책일 것이다. 책표지를 쓰다듬으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나의 몸값이 여기 담겨 있으니 그만 잊어버리자고 마음먹었다. 헌데 새삼 구석에 던져둔 계약서를 보니 자꾸 울컥해서... 여기다 일러바쳤으니 이제 정말 툭툭 털고 웃어버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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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과 바쁜 일은 원래 떼로 몰려다닌다는 게 맞다. 숨도 못 고르게 바쁠 땐 정말 또 다른 일이 겹친다. 마감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주엔 설상가상 며칠 간격으로 교정지를 두권이나 넘겨야 했다. 몹시 힘겨워하는 후기도 써야 했고. 덕분에 평균 수면시간이 형편없이 줄었고, 가뜩이나 가을 타는 얼굴 꼬라지는 아주 가관이 되었다.
어쨌거나 새삼스레 교정지와 씨름하며, 며칠 간격으로 생각이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린 게 있어서 적어둔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반복할 운명에 놓인다." 조지 산타야나의 말이란다. 기계적으로 번역을 하고, 퇴고를 할 땐 자구에 얽매여 웬만해선 작품을 감상할 여유 따윈 생기지 않는다. 각별히 애정이 가는 책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석달이나 마감일을 어기고 넘긴 책이라 쫓기듯 번역한 소설에서 조지 산타야나의 인용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에, 그땐 신기하다 정도만 생각하고 넘겼던 것 같다. 700페이지에 가까운 산타야나의 책을 헉헉대며 번역하다 엎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암튼, 과거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면 똑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게 될 거라는데 끄덕끄덕 동의하며 그 주제로 역자후기를 써보냈다. 그런데 워낙 귀가 얇은 인간인지라, 며칠 뒤엔 다른 책의 또 다른 글귀에 시선이 꽂혔다. "망각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어차피 과거의 경험이라는 게 각자의 편견을 거쳐 남은 '반쪽짜리 학습'이므로 연연할 필요 없으니 잊어도 좋다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망각을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을 위로하는 맥락인데, 이 또한 진리가 아닌가. -_-;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본 뒤 carpe diem이 내 삶의 모토라고 주장해왔던 걸 생각하면 후자가 역시 내 취향이긴 하다. 과거에 자꾸만 얽매이는 건 현재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의 표현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서로 모순인 것 같기도 하고, 잘하면 둘 다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두 가지 생각 때문에 갈팡질팡했다. 가뜩이나 온갖 선택 앞에서 우유부단한 인간이 이런 심오한 문제를 어찌 결론 지으랴. 이럴 땐 황희정승 놀이가 최고일 듯. 깜박깜박 까먹는 걸 비롯해 수많은 걸 망각해도 공포에 사로잡힐 필요 없다고 마음을 놓으며 살다가, 또 마음 켕기는 순간엔 추억을 쓰다듬을란다. 결국 내 마음대로 펄럭거리며 살겠다는 얘기로군.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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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많이들 읽으셨겠지만, 그래도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눈먼 자들의 도시>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해 거의 며칠 만에 읽어 재꼈던 반면 <눈뜬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해냄)는 좀처럼 이어 읽지를 못했다. 아마도 읽기 시작한 건 작년이었던 것도 같다. 그만큼 끝마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내 정신사나움 때문이 팔할이요, 나머지 이할은 숨막히도록 절망적인 그 도시 상황이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현실도피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내기라도 시켜야 할 것처럼 한심스러운 소설 속 정부와 이 나라 정부가 겹쳐지면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까지 무겁게 느껴졌다.

어쨌든 띠지를 책갈피 삼아 꽂아두었다가 조금 읽다 말기를 거듭하던 책은 일 핑계로 먼지를 뽀얗게 입었다가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책의 3분의 2선을 넘어섰었다. 허둥지둥 사건에 대처하는 정부의 꼬락서니가 정말로 딱이다 싶었고, 눈뜬 자들의 도시에선 과연 어떤 방향으로 사건이 풀려나갈지 궁금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남들보다 뒤늦게 읽으며 신종플루 때문에 더욱 공포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백지투표 사건을 처리하는 도시 권력자들의 모습이 연일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뉴스에 나와 천안함 사건 진척사항을 보고하는 현실에 투영됐다. 그러다간 또 원고마감과 간병무수리의 삶에 밀려 독서는 다시 뒷전이었다.

여전히 삶은 팍팍하지만 얼마 안 남은 책을 다시 잡게 한 건 <눈뜬 자들의 도시>처럼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이 나라 정부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확실한 '물증'으로 제시한 녹슨 철판에 적힌 '1번'이라는 매직 글씨였다. 세.상.에.나.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하라던 진상조사의 결과 발표에 나는 또 "야로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고 헛웃음까지 킬킬 나왔다. 정부의 진상 발표를 듣고 얻은 결론은, 나도 북한산 매직 한번 써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한국산' 매직과 네임펜으로 낙서질해댄 티셔츠는 세탁 한번으로 다 지워져 '일제' 패브릭 전용 마커까지 사들였지만, 그것으로 그린 그림 역시 나날이 지워져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강철을 녹슬게 만드는 짜디짠 바닷물 속에서도 성분이 유지되는 훌륭한 품질이라면, 티셔츠 낙서질용으로도 딱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도 아직은 북한산 표고버섯, 고사리 따위를 쉽게 살 수 있으며 통일전망대에 가면 (키드님 포스팅 참조) 북한산 맥주도 살 수 있다지만 연일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전쟁 준비설에다 개성공단 폐쇄 운운하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으니 조만간 북한산 매직이 내 손에 들어올 일은 어째 요원할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깝다. 

아무려나 현실이 너무 암담해지자 책 속의 도시는 되레 나에게 위안이었고, 희망의 빛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애당초 선거에서 백지투표를 가능하게 했던 시민들의 존재부터, 얕은 술수와 음모로 정부가 아무리 대중을 현혹시키려 해도 끄덕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데다 정부의 하수인인 경찰이면서도 결국엔 인간적인 양심대로 행동한 경정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부와 각료들은 또 얼마나 경멸과 조롱의 대상인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배운 바로는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말도 안된다고 판단하는 것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고, 외려 그런 말도 안되는 것을 이용해서 양심을 무디게 하고 이성을 파괴하오." (377)

일주일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의 결과가 과연 어떻게 나오려는지 몰라도 확실한 건 실명 바이러스 공포를 겪었던 눈먼 자, 눈뜬 자들의 정부와 정치인들 만큼이나 이 나라 꼬라지도 무능력하고 환멸스럽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그 도시민들만큼 의식이 깨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뉴스에서 연일 전쟁 위기, 간첩 암약, 한반도 긴장 첨예, 대북 심리전, 도발 응징, 주가 폭락 따위의 소식들이 오르내리며 3, 40년전에 써먹던 국민들 겁주기 수법이 똑같이 통용되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 5, 6월이면 나는 늘 악몽을 꾸며 울다 깨어나곤 했는데, 그 악몽의 주제는 모두가 전쟁이었다. 학교에선 반공 포스터와 반공 표어를 만들었고, TV에선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에서 북한 소년병이 다리를 쇠사슬에 묶인 탓에(퇴각하는 북한군이 해놓은 짓이다) 꼼짝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죽는 순간까지 '따발총'을 쏘아대거나 북한군이 '드르르륵'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이 거듭 등장하는 전쟁영화가 흘러나왔다. 저다마 보따리 이고 동생 들처업고서 피난 내려갔던 추억담을 품고 있는 부모님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악몽 속에서 나는 전쟁터에 홀로 버려지거나 북한군이 쏟아붓는 대포 공격을 피해 숨어 있거나 폐허가 된 동네에서 가족을 찾아 헤매곤 했다.

엄마는 키 크려고 꾸는 꿈이라고 나를 달랬지만 어린 나에게 세뇌된 전쟁 공포와 빨갱이 공포는 엄청났다. 정권마다 하도 그 수법을 오래도 써먹는 걸 지켜본 까닭에 이제 난 시큰둥 코웃음치게 되었는데, 큰일 있을 때마다 '북풍'이 여전히 만만찮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걸 보면 다들 내 생각 같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전쟁위험 국가 1위로 손꼽혀서 정말로 얻어지는 게 뭔지 나로선 정말 의문이다. 무모한 애들 힘겨루기도 하니고 원...

의사 부인과 눈물 핥아주는 개를 처리하는 어리석은 정권의 방식은 뒤떨어진 나라들에선 어디나 현재 진행형이고,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불확실한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아야하는 선거로 뭘 바꿀 수 있겠나 한심스럽지만 온 국민의 '한심도'를 또 한번 확인할 계기가 될 이번 선거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별로 기대할 건 없더라도, 선거 결과를 보면 선거 직전에 터뜨린 일련의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또 앞으로 몇십년간 우스꽝스러운 역사가 반복될지 아닐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요즘은 하려던 이야기에 필요한 낱말도 잘 떠오르질 않는 것뿐만 아니라, 글도 처음 생각했던 대로 쓰여지질 않는다. 원래부터 수다를 떨다가도 곁다리로 잘 빠지는 인간인데다, 글이란 게 일단 쓰기 시작하면 저절로 방향을 잡는 성질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거 좀 문제가 아닌가 싶다. 드물게 올리는 책 리뷰로 시작한 포스팅은 그냥 또 푸념일기로 끝나고 말았다. 내 역량이 요만큼인 탓이겠지. 암튼 성균관, 규장각 시리즈 이후 처음 끝낸 책이다. 이러다간 작년 대비 절반도 못 읽을 듯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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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

책보따리 2010. 4. 9. 17:07

어제 간만에 멀리 사는 친구들을 만나느라 강남 교보엘 갔었다. 그곳이 나름 중간 지점이라서 거의 지정 모임장소처럼 되고보니, 그런 날엔 서점 볼일도 같이 챙기는 편이다. 찾아볼 책도 좀 뒤지고 요새 책시장은 어떤가도 좀 살펴보려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법정스님의 책들이었다. 책의 가치여부를 떠나서 명사의 죽음은 늘 (나쁘게 말해) 책 장사의 방편으로 이용되어 왔지만, 그야  무엇이든 떠나보내고 난 뒤에나 새삼 돌이켜보는 인간의 어리석은 경향을 반영한 상술이니 무조건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책들은 절판 유언 때문에 더욱 기이한 소유욕과 과열 시장을 만들어냈고 이래저래 계속 말이 많았고, 알게 모르게 그 여파가 나 같은 존재한테도 영향을 미치는 듯 해 씁쓸하다.

각 출판사에서 법정스님의 절판 유지를 받들어 올해까지만 책을 판매하기로 협의했다는 뉴스를 들었고, 올 연말까지면 출판사에서도 팔아먹을 만큼 팔아먹은 뒤고 건망증 심한 이 나라 독자들의 기이한 독서열풍 또는 소유열풍도 사라지겠군 싶었다. <무소유> 초판본이 중고책 시장에서 수십만원에 거래되는 지경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면서, 또 <단군이대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에 그나마도 책이 움직이는 빌미를 제공한 스님한테 책으로 밥빌어먹고 사는 사람들 모두 고마워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강남 교보에도 벽에 따로 마련된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법정스님의 책이 몇권이나 꽂혀 있었으며, 친절하게도 스님의 책만 모아 여러 군데 자리잡고 있는 특별 책 판매대에는 <무소유>가 4월 몇일 이후에 입고될 예정이며 선주문을 받는다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출판사도 매우 다양했다.

어제 만난 친구 하나도 번역을 하고 있으니 수다 중에 당연히 출판계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법정스님의 책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 친구도 나도 작년말부터 나온다 나온다 말만 앞세운 번역서의 출간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이유가 법정 스님 책의 열풍 때문이라는데 동의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법정 관련 출판사들이 저마다 대량으로 책을 제작하고 있는 터라 상당히 많은 인쇄소며 제본소에 다른 신간이 끼어들 여유가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불황이라 신간을 내도 팔릴지 말지 모르는 와중이니 일단 잘 팔릴 책, 50% 할인해서 물량공세로 밀어낼 책, 홈쇼핑에서 전집으로 판매대박을 낸 책들 먼저 인쇄에 돌입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러다가 결국 출판시장이 망하거나 말거나. -_-;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이런 저런 뒷말로 새삼 욕되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말빚>을 청산하고 싶다는 위대한 유지에 딴죽을 걸 입장도 아니지만, 삐딱한 심성으로 계속 지켜보자니 법정스님의 절판 유언은 결과적으로 한국 출판계 최대의 마케팅 전략으로 비쳐진다. 정말로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그간 출간한 책을 절판하여 말빚을 청산할 작심을 하고 계셨다면, 스님은 왜 입적 직전까지 새책의 서문을 구술해서라도 출간되도록 밀어주셨으며, 최측근 출판권력의 손에 모든 저작권과 사업 이권을 위탁하고 있었을까? 그러고선 대뜸 유언에는 절판하라 말씀하신 저의는 무엇일까?

스님의 유명세와 출판계의 욕심에 밀려 몇달간 골빠지게 작업한 책의 빛 볼 날이 자꾸만 미뤄지는 바람에 속좁게 구시렁거리고 있는 소인배의 푸념이라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 눈에도 분명 지금 돌아가고 있는 책세상 형국이 비정상이란 것만은 확실하니까. 어쨌거나 법정스님 책을 내는 유명 출판사들이 어서 올해 말까지 팔아먹을 책들을 창고에 그득그득 쌓아놓아, 이제 그만 충무로와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와 제본소가 다른 책을 찍을 여유를 되찾길 빌 뿐이다. 작년에 내 이름을 달고 나올 예정이라던 몇권의 책들이 올해를 몇달이나 넘기고도 아직 코빼기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들도 예년에 비해 원고 채근이 덜한 게 죄다 법정스님 책 때문이라는 건 순억지겠지만(대체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 사정이 좋아질 날은 있는 걸까?),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땅에 허리케인을 불러온다는 이론이 순 헛소리만은 아니라는 데 자꾸 심증이 간다. 나의 긴 한숨따위는 이런 좁은 공간에서 푸념으로 맴돌다 사라질 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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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얘기긴 하지만 요번에 번역한 책에 이런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미국 의학협회가 2000년에 발표한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고속도로 교통사고, 유방암, 에이즈를 포함한 여러가지 주요 사망원인보다 병원에서 의료 과실로 죽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아, 그 수가 연간 9만 8천명이 이르렀다고. *_* 우리나라랑 미국이랑 인구 비율이 워낙 다르긴 하지만,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닌가!

사실 우리 아버지도 119를 불러 타고 가기는 했지만 두발로 멀쩡히 응급실에 걸어들어가셨는데, 쓸데없이 말라리아니 뭐니 엉뚱한 추측으로 밤새도록 온갖 검사 다 받고도 발열과 오한의 원인을 못찾다가 아침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위중한 순간이 된 다음에야 의사들은 심증이 가는 병명을 <짐작>해냈었다. 물론 그땐 이미 늦은 뒤였다. 의료 과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두뇌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그것은 우리의 심증뿐 의구심을 밝혀낼 도리도 없었고 워낙 황망해 아무런 경황이 없어, 우리로선 그래도 그 못미더운 의사들에게 매달리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천하의 닥터 하우스 팀도 병명을 알아내기까지 며칠씩 걸리기도 하지 않더냐고 속으로 애써 위로를 하면서.

책의 저자는 그런 의료 과실의 가장 큰 원인이 의료진의 무능이 아니라 안일하고 무심한 태도 때문이라며, 흔히 건강에 관한 한 주도권을 의료진에게 모두 맡기는 게 보통이지만 환자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의료진이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게 귀찮을 만큼 묻고 의견을 제시하고 대안을 촉구하라고 권한다.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실수를 범하는 인간인데, 또 바로 그 전문가라는 위치 때문에 실수가 있어도 제도적으로 다들 쉬쉬하며 덮기에 급급해 수많은 과거 실수에서도 통 배우는 게 없단다. 게다가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수의 통계 자료를 지식으로 갖고 있는 의료진이 아니라 바로 본인므로, 최대한 치료 효과를 높이려면 환자 본인이 주도권을 갖는 수밖에 없단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건강을 극단적으로 위협받는 순간엔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겠지만, 그 전엔 최대한 대체의학이나 믿음직한 민간전승요법에 더 기대어 건강을 챙기겠다는 사람이다.

온갖 지병을 다 갖고 계신 왕비마마 덕분에 한달에 평균 두세 번은 종합병원엘 가야하는 형편인데, 이 나라에선 의료 과실을 입증하는 게 미국보다 훨씬 더 어려운 탓에 돈 많은 사람들 아니고선 감히 거대권력인 의료계와 싸워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걸 감안할 때 정말이지 환자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싶은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약 처방의 날짜계산이 잘못되었다거나, 약을 하나 빠뜨렸다거나, 다음 진료예약이 상담시 정한 날짜와 달라진다거나 하는 행정적인 착오는 실수 축에도 들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들도 걸핏하면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에서야 연간 의료 과실로 판명된 사망자 통계가 9만 8천명이라지만, 우리나라는 아마 의료 과실로 환자가 사망했음을 인정한 건수가 역사상 통틀어도 98건도 되지 않을 것 같다. CT 조영제 주사 하나를 맞아도 온갖 부작용으로 인한 결과는 본인 책임이라는 사유서에 서명을 받는 형편이니 뭐. -_-;;

월말에 또 왕비마마의 병원 거사가 잡혀 있어 어제는 그 건과 관련하여 무려 여섯 개 과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협진 상담을 하고 수술동의를 받아야했는데, 마지막 코스였던 심장전문의와 마취전문의는 수십 가지가 넘는 약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조차 난감해 했다. 외부 병원 약도 아니고 다 지네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라 컴퓨터 모니터에 진료과목 별로 종류 별로 다 뜨는 게 내 눈에도 확인되던데도! 미리 수술관련 안내문을 숙지하고 있던 내가, 그리고 작년 수술에서 이미 어떤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익히 겪어본 내가 이런이런 약은 지혈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 미리 끊어야하는 게 아니냐고 넌지시 알려줘야 했다. +_+ 

아침부터 다저녁때까지 온종일 층층마다 병원을 뺑뺑 돌며 여러 과에서 의사들이 현재 상태를 점검하는 이유는 울 엄니가 워낙 고위험군 환자이기 때문일 텐데, 의례적인 절차라고는 해도 어쩜 다들 그렇게 건성건성인지 원 도무지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왕비마마가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는 대여섯개 진료과에서 그나마 정성스럽게 오랜 시간 문진으로 시작해 이런저런 점검을 하고 검사 결과를 알려주고 다정히 환자를 안심시키는 주치의는 딱 두명 뿐이다. 나머지는 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잘 지내셨어요? 별다른 일은 없으셨죠? 그럼 드시던 약 또 처방해드릴게요."라며 1분만에 진료를 끝내는 식이다. 환자인 울 엄마도 보호자인 나도 특별히 물어볼 게 없으면 더 시간을 빼앗는 게 민망할 지경.

간병 무수리 생활을 하도 오래한 전적 덕분에 이젠 병원 돌아가는 판세가 빤히 눈에 보이는 것 같고, 그놈의 행정절차와 의료계의 자존심 때문에 환자 측에서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도 소용없는 일이 무언지 대강은 파악이 된다. 요번에 번역한 책 때문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나는 의료진의 권위를 최대한 인정하고 수긍하는 <착한> 보호자였지만, 허망하게 아버지를 잃고 나선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엄청나게 커져 사사건건 의구심이 생겨 자꾸 꼬치꼬치 묻고 따지게 된다. 그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쓸데없이 키우지 않는 건 물론이다. 게다가 어리바리하게 주치의 지시를 잘못 알아듣는 인턴이나 간호사들의 실수를 미연에 막으려면 정말로 환자와 보호자가 똘똘하고 영악해질 수밖에 없다. (몇년 전엔 퇴원을 위해 항생제를 이틀전부터 끊기로 했는데, 멍청한 초짜 간호사 하나가 항생제를 새로 매다는 바람에 퇴원이 지연될 뻔하기도 했었다. 엉뚱한 약을 잘못 놓지나 않은 걸 고마워야 하는 건지도...)

병명도 다양하게 골고루 끼고 계신 왕비마마를 보필하려면 병원과 의사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지만 매번 다니면서도 참 멀리하고픈 곳이 또 병원이다. 박수근 그림이 걸려있고 한켠에 갤러리와 카페가 생겨난 대학병원 로비는 마치 백화점에 쇼핑 다니듯 병원도 소일거리 삼아 다니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애쓰는 듯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구태의연하게도 의술이 인술이라는 사실이다. 병을 다루는 게 곧 사람을 다루는 일임을 젊고 늙은 의사들이 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면 좋겠건만, 단지 하나의 그럴싸한 직업으로 선택되어 가는 양상이 짙은 의사라는 직업이 점점 안타깝고 염려스럽다. 눈에 불을 켜고 왕비마마를 지켜야하는 병원생활이 또 3주 뒤로 다가왔다. 왕비마마는 수술이 무서워서 심장이 벌렁거릴 뿐, 온통 관심이 집중되는 입원생활 자체는 막상 퍽 즐기는 양상을 보이시는데 간병무수리는 숨막히는 병원공기와 차고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버티는 쪽잠 생활이 싫고 겁나서 역시나 심장이 벌렁거린다.

 

그나저나 참, 저 책은 과연 잘 팔릴까?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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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배의 승리

2010. 3. 16.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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