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22.09.06 그럭저럭 2
  2. 2020.02.03 2020 1월 영화 & 책 1
  3. 2018.07.24 잉여력 폭발 시기의 흔적 5
  4. 2017.05.06 멍하다 2
  5. 2016.10.13 여권 6
  6. 2016.05.23 실로 간만에 느루 12
  7. 2016.05.04 콜록콜록 6
  8. 2016.04.18 그냥 그렇다고 7
  9. 2015.12.31 2015년에 본 영화 6
  10. 2015.12.17 예비 측정 4

그럭저럭

투덜일기 2022. 9. 6. 16:27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이었던가? 검색해보지 않아서 시인 이름 틀릴 수도 있는데 암튼 문득 근황을 포스팅하려고 빈 창을 여니 저 글귀가 생각났다. 왜 사는 건지 근본적인 의문을 품을 만큼 심각하게 나를 돌아볼 여유는 없지만 하여간에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계속 암울하다. 환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나의 쓸모에 대한 믿음이 점점 줄기 때문이다.

우선은 내가 일을 너무 못한다. 노는 계획은 빠짐없이 다 지키면서 (그건 누군가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정작 마감일을 지켜야하는 일은 작년부터 올해 내내 제대로 해낸 적이 없다. 심지어는 3주 넘게 데스크탑 컴퓨터를 켜기도 두렵고 꺼려지는 증상이 있을 지경이었다. 이런 게 슬럼프인가? 아니면 그냥 미루다미루다 포기하는 비겁병에 걸린 걸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성인ADHD의 주요 증세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거라고 하던데,, 이러면서. (핑계를 찾고 있는지도..)

암튼 그럼에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리고 내가 SNS에 그럴싸하게 포장해 올리는 겉모습으로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고 할 수 있다. 산에도 열심히 갔고, 염원하던 설악산 대청봉도 다녀왔다. 그러고는 며칠 후유증 핑계로 누워서 핸드폰만 만져대서 그렇지... 해설이 재개된 궁궐 봉사도 시작했고, 둘레길도 2주에 한번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러니 이젠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복병은 2학기부터 다시 시작된 자유학년제 수업. 똑같은 주제인데도 이젠 내가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기력도 심히 많이 소모된다. 마스크 쓴 채로 2시간 수업 떠들고 오면 목 아프고 맥빠져서 또 누워서 한침 쉬어야하는 신세. 벌써 6년째 하고 있는 일이지만, 중학생 아이들의 반짝거림이 좋긴 했지만, 이젠 그만큼 힘들어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애들 수업은 끝내기로 결심했다. 본업도 충실하지 못하는 주제에 한눈까지 팔다니 대체 난 무슨 생각으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돈벌이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이라;; 벅찬 보람과 그럴듯한 포장 만으로는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기가 싫어졌다. 

연이네 식구는 그 뒤로 전혀 소식이 없다. 정말로 누군가 다른 돌보미를 만나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건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죄책감과 불안함 때문인지 며칠 전엔 연이를 마지막으로 본 비오던 날 모습이 꿈에 나왔다.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창문 아래서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던 연이의 눈빛이 영영 떠나기 전 작별인사였구나, 하고 내가 중얼거리는 꿈이었다. 어쨌든 매일 연이네 사료를 놓아주던 곳에 똑같이 사료는 놓아두고 있고, 밤 사이 몰래 먹으러 다녔던 주인공이 하늘이였다는 걸 얼마 전 확인했다. 지난주엔가는 영역 다툼을 하는지 하늘이와 다른 고양이들이 투닥거리고 울어대는 요란한 상황이 벌어졌으나 개입하지 않는 게 낫다 싶어 모르는 척 그냥 두었다. 그 이후엔 하늘이도 마주친 적이 없어서 누가 승리자인지 모르겠다. 째뜬 앞으론 연이처럼 정성을 들여 내가 또 여러 길냥이를  챙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왕비마마는 봄에 심층검사를 했는데도 치매가 아니라는 전문가의 판정을 받았으나(사실 정신과 처방으로 이미 치매 예방약인 아리셉트를 드시고 있어서, 초기 치매 치료와 다를 것도 없다고 한다.) 단기 기억력은 너무 심히 나빠져서 똑같은 말을 1분만에 반복하는 증세가 이어지고 있다. 차라리 초기 치매면 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으니, 일주일에 몇 번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산책을 하거나 끼니를 대신 챙기게 하고 싶은데 그냥 '경도 인지장애' 정도로는 등급 받기가 불가능하다. 그나마도 이번 정부 예산이 줄어들어서 거동이 힘들지 않는 한, 공단에서 등급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하루 종일 괜히 누워만 계시는 노년의 육신이 얼마나 더 빨리 망가질지 뻔한데도 뾰족한 수가 없다. 이젠 내가 산책 나가자고 해도 싫다고 귀찮다며 이불을 뒤집어 쓰심. 선배와 친구들은 그냥 엄마 하고 싶은대로 두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고 조바심을 내도 소용없다나. 정말로 운동 좀 하시라고 잔소리를 하다보면 목소리가 커져 싸움이 되는 것 같아서, 거의 포기 상태다. 

올해 초 새해결심을 돌아보면 1 내려놓는 삶,  2 약속 잘 지키기, 3 일본어 배우기, 4 10년 프로젝트로 100대 명산 도전...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 3, 4번에 너무 치중했나, 일에 대한 의욕은 내려놓고, 가장 중요한 일 약속을 못 지키고 있다. 차차 책상 앞에 앉는 연습부터 해야하는 상황인데, 밀린 원고 독촉이 말도 못한다. 출판사 담당자들에게 민망하고 죄송할 따름. 오늘도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제일 먼저 블로그 순례부터 하고 있으니 원. 그럭저럭 하루를 또 말아먹고 있다는 결론이... ㅎㅎ.

그래도 예전엔 글의 힘을 빌어 블로그에 결심을 남기면 하는 척이라도 했던 것 같으니, 책상에 앉은 김에 오늘은 목표한 진도를 좀 나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이제 좀 정신 좀 차리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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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월 영화 & 책

놀잇감 2020. 2. 3. 01:35

2019년 각종 문화생활 베스트 포스팅은 적다 말고 그냥 비공개로 두었는데;; 과연 2020년은 제대로 기록을 남기게 될까. 암튼 일단 시작은 해보는 걸로.

= 영화 =

총5편을 보았다. 

* 스타워즈: 라스트제다이 - 시리즈 마지막을 보려고 하니 전편 내용이 기억나질 않아서 한번 더 챙겨보았으나 아직 마지막편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보지 못했다. 내리기 전에 빨랑 봐야되는데;; 
* 가장 보통의 연애 - 설날연휴에 무료로 풀렸길래 봤음. 
* 유열의 음악앨범 - 역시나 연휴 동안 무료길래 봤다. 두 로맨스 영화 중에선 차라리 가장 보통의 연애가 좀 더 나았던 듯. 주인공들의 나이대와 관련이 있었을까? ㅎㅎ 벌써 잘 기억도 안난다. 
* 파바로티 -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영화다. 지인께서 음향특화된 영화관에서 보고싶다 하시었으나 이미 그런 곳은 없어졌고 시네큐브에서 하루 한번 정도 상영하고 있어서 다행. 오페라는 모르지만 파바로티의 노래 몇곡은 되게 좋아하는데 개인사는 모르는 게 나을뻔했다.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인류애를 펼쳤으나 주변 여자들에겐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처를 준 뻔뻔한 불륜남. 기대보다 음악도 많이 나오질 않고 초기 영상들은 당연히 화질도 음원도 구리다. 정작 꼭 보고싶다고 했던 일행은 옆에서 코를 골며 절반 이상 잠들었다. +_+

* 우리집 - 윤가은 감독,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주연. 1월에 본 5편의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최고작이다. 아이들의 연기가 어쩜 그리도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지. 어른인게 부끄럽더라.  배우들과 장면이 좋아서 화면 캡쳐도 했음.


= 책 = 

달랑 2권을 보았다.

* 백의 그림자 - 황정은 장편소설, 민음사

작년에 동네 서점에서 블라인드 선물(내용물이 뭔지 모르게 포장해 놓고 작품에 대한 힌트만 메모해놓는다)로 구매해놓고선 좀 읽다가 머리 맑을 때 읽고 싶어 좀 아껴두었다가 드디어 마무리. 생각해보니 요즘 한국 소설을 별로 안읽고 살았던 듯 신선하고 깔끔하니 좋았다.

*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 이다혜 지음, 현암사

재작년부터 페미니즘 관련 책들 몇 권 사두고 다 건드리다 말다가 완독한 게 드물다. 작년 연말에 <밀크맨> 북토크 행사때 진행자로 나온 저자를 보고서야 아 맞다, 그 책 마저 읽어야지 했다. 최근에 나온 책보다 역시 난 이 책이 더 좋았다. ^^; 

2월엔 좀 더 많은 문화적 소양(?)을 쌓게 되길 빈다. 전시도 책도 좀 다 보고, 보고프다고 생각한 영화도 좀 놓치지 말고 찾아보길.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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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성사될 것 같았던, 오래된 동네 낡은 집들의 공동 재건축이 완전히 무산되고.... 게다가 토지 구획 문제로 소송을 한차례 겪으며 앞마당 일부를 요상한 모양으로 떼어주고 그쪽에 토지 단독 소유권을 인정하라는 판결을 받은 터라 집을 매매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사하며 짐도 확 줄이고, 새집에서도 좀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은 좀처럼 실현되지 못할.. 그저 꿈이 되고 마는 것인지. 어휴. 한숨. 암튼... 그래도 뭔가 일을 겪을 때마다 (지인들의 부모님 말고 후배나 친구 본인의 뜬금없는 부음을 들을 때라든지) 단촐하게 살아야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야지 충동이 일면서 가끔 짐을 정리한다. 물론 그래도 수십년 넘게 눌러앉아 사는 집의 살림살이란 손도 대지 못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모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노인으로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오래된 물건을 끔찍이 여기는 게 당연한 심리라는 왕비마마 덕분에, 뭘 버리기도 쉽지가 않은데 그래도 요번엔 꽤 많은 물건을 처분했다. (되다말다 했던 고물 진공청소기, 빨래걸이로 전락한 헬스 바이크, 스탠드형 나무 옷걸이, 오래된 나무 밥상, 빈 도기 화분들... 그리고 수많은 가방과 옷가지들! - 옷과 가방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고 나머지는 대형폐기물 신고했다.)

그러고도 좁은 집이 답답하게 여겨져 책장 배치를 좀 달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여지껏 끼고 있던 원서 전공책들을 죄다 노끈으로 묶어 내다놓았고, 중고책으로 팔만한 책들을 수십여권 골라내 몇 차례에 걸쳐 알라딘에 들고가 예치금을 두둑히 마련했다. ㅎㅎㅎ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또 충동적으로 작업실 방에서 뒷베란다로 통하는 철문과 창틀에 페인트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 인터넷으로 폭풍검색을 좀 하다가 배송되는 시간도 기다리기가 싫어져서 후다닥 동네 페인트 가게로 달려나갔더니 하필 일요일. 두군데 다 문을 닫았더라. 그렇다면 방법은 다이소뿐. +_+

다이소에서 파는 한통에 2천원짜리 초소형(혹시 착각했나 찾아보니100ml짜리도 아니고 60ml였다 ㅠ.ㅠ) 젯소와 페인트를 두개씩 집어왔었는데, 이것은 곧 미친짓으로 판명된다. 생각보다 얼마나 페인트가 많이 필요하던지! 똑같은 걸 몇번이나 더 사다 날랐는지 원... 페인트가 살짝 연두빛이 도는 반광 '미색'이었는데 창틀과 나무색깔 창문 4개에 모두 2번씩 칠하려니 ㅠ.ㅠ 어휴... 사실 그렇게 두번씩 열심히 두껍게 칠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면 그 앞에 책장을 옮겨다 놓을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싸구려 책장 2개와 오래된 장식장을 싹 다 버리고 5단 책장 넓은 걸 2-3개 사들여 작업실을 다시 꾸미리라 마음 먹었으나... 나 혼자선 큼지막한 장식장을 내다버릴 방법이 없었다. +_+ 나사를 죄다 풀고 문짝을 다 떼어 부셔버릴까, 동생들 찬스를 써볼까 여러가지 고민을 했으나... 결정적으로 비전문가 동생 둘이 무거운 장식장을 가파른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누굴 잡을라고...

누렇게 변색된 벽지 어쩔;;

해서 책장 사는 것도 일단 임시 보류. 책장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일단 버릴 책과 팔 책을 솎아낸 뒤, 마루와 방에 따로 놓았던 '체리목' 3단 책꽂이를 세로로 나란히 붙여놓았다. 겨울에 찬바람도 막아줄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옛날 집이라 케이블 TV나 인터넷 전용선 따위가 모두 베란다문과 창문으로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어마어마하다. 문풍지로 최대한 막아도 한계가 있음. 

하여간... 마스킹테이프까지 붙여가며 (종이 벽지에 붙인 부분은 나중에 뗐더니 죄다 들고 일어나 허옇게 됨 ㅠ.ㅠ )이틀에 걸쳐 낑낑대고 칠한 창문과 문쪽 증거샷이다. ㅎㅎ 책장 놓기 전에 사진을 찍어놓은 게 없어서 방금 찍음 ^^; 여긴 주로 내가 번역한 책 증정본만 모아놓았기 때문에 클릭해도 사진 안 커집니당~)

하여간... 셀프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알량하게 창문 4개 페인트 칠하면서 흘린 땀이 얼마며, 버린 옷이 몇벌인지! ㅋ

그런데 페인트칠을 하면 할수록 단순한 작업에 재미가 붙어, 이젠 방문짝과 벽도 페인트를 칠하면 어떨까 마음이 자꾸만 들먹들먹했다. 거의 20년쯤 전에 '연분홍색'으로 칠해놓은 방문과 욕실문이 너무도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욕실 문엔 이미 아이보리색 무늬목 시트지를 사다 붙여놓은지 몇달 되었었다. 

그렇다면 이젠 방문 차례! ㅎㅎㅎ그런데 도배한 지도 워낙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벽지가 너무 도드라져보이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면 실험적으로 한쪽 벽면에만이라도 페인트를 칠해보리라는 밑그림이 나왔다. 

해서 완성된 것이 아래 사진 모습이다. ^^; 최대한 누런 벽지를 안보이게 사진에 담으려니 참으로 알량하군..​

양쪽 문 사이의 좁은 벽엔 원래 키재기용 스티커가 붙어있고 조카들 넷이 폭풍성장하며 달라진 키높이와 날짜가 온갖 색깔의 필기도구로 촘촘히, 매우 어지럽게 적혀있었다. 나름 소중한 그 역사를 지우는 게 찜찜했지만 ㅠㅠ 고모도 이제 헌집일망정 깨끗이 좀 살고 싶단다. 대신 녀석들의 사포 모빌 작품을 옮겨 달았으니 용서해주길...

문짝에 칠한 페인트 역시 너무 얕잡아보고선 다이소 무광 페인트 500ml짜리를 선택했다가 몇번이나 더 사러 나가야했다. ㅠ.ㅠ 2-3리터짜리 친환경페인트 한방에 주문했으면 되었을 것을... 으휴.. 암튼 이쪽 벽면을 다 하얗게 칠해 나머지 벽들이 더욱 누렇고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 거울까지 온통 아이보리색으로 칠한 한쪽 벽면의 변신을 보며 다음번엔 방에 셀프 도배를 해볼까, 또 페인트칠을 해볼까 고민 중이다.

다행히 7월 접어들면서 이런저런 바쁜 일(진짜 일 말고 그냥 잡다한 신경쓸 일)이 생겨 더는 셀프인테리어에 관심을 집중하지 못하게 되어 슬며시 기쁘기도 하다. 머리 쓰는 일 말고 이제 남은 평생은 단순하고 몸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선망을 잠시 품었지만, 나처럼 부실한 몸으론 그것도 불가능할 거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만큼 단순 페인트칠마저도 어찌나 고된지 폭풍 붓질을 하고나선 삭신이 다 쑤셔서 팔목과 어깨에 며칠 파스를 붙여야했다. 

혼자선 꽤나 뿌듯했는데, 집에 다니러 온 올케들에게 문칠을 자랑했더니만 손잡이 안 빼고 그냥 칠했다고 핀잔을 들었다. 아 그건 옛날에도 원래 그냥 안빼고 칠해서 어쩔 수 없었거든요! 욕실 문은 손잡이도 새로 사다 교체했는데 방문도 사실 손목 아파서 못 돌리는 경우도 있는 둥근 손잡이 말고 일자형 손잡이로 바꿀까 하는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 아직도 멀고 먼 셀프 인테리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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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다

투덜일기 2017. 5. 6. 15:17

가슴 벅찼던 콜드플레이 공연후기부터 써야 블로그에 대한 예의(?)일 것 같은데 요즘 같아선 뭐든 후기를 잘 못쓰겠다. 알량했던 1/4분기 독서후기도 그렇고, 영화 얘기도 그렇고... 두뇌가 수시로 딱 먹추는 느낌이랄까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건 확실한듯.

암튼 그러는 가운데 또 정신없이 짧은 기간 동안 시간을 거슬러갔다가(거슬러 간 게 맞나? 질러간 건가?) 왔더니만 가서도 계속 빌빌, 와서도 빌빌 도무지 '적응'이라는 게 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이게 속일 수 없는 내 나이 탓이려니 단념해야 하나? 심지어 어제는 동네에서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타고 두 정거장이나 가다 내려 바꿔타야했고, 결국엔 집에 오는 길에 현금 5천원과 후불교통카드가 든 카드지갑을 잃어버렸다. ㅠ.ㅠ 어쩌면 이건 정말로 시차 부적응 탓이 아니라 그냥 중년건망증이 심해진 걸지도. 

아무튼 주변에 무엇하나 마음 편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괴로운 집안사는 집안사대로, 밀린 일은 일대로, 인간관계는 또 그대로... 근데 왜 또 무리까지 해서 여행은 떠났는지. 참 내. 물론 오래 망설였지만 확 저질러서 좋았고 조마조마하던 몇달을 거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해서 좋았고, 2주간은 그야말로 꿈결처럼 행복했다. 어제 트위터에서 <호텔>이야말로 어른들의 디즈니랜드라는 말을 보았다. 아침밥 주지, 청소해주지, 매일 보송한시트 갈아주지, 전화하면 새 타월 갖다주지... 거기다 침구류는 또 최고급아닌가. 친구네 집을 베이스로 주변을 돌아다닌 게 아니라, 아예 계속 차로 도시를 바꿔가며 10박11일을.. 그것도 친구 언니가 회원인 덕분에'메리엇 호텔'로만 돌아다니다 내 여행 인생에서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다.   

패키지 여행 못지 않게, 잘 곳, 볼 곳, 놀 곳, 먹을 곳... 거의 모든 걸 다 결정해놓았거나 알아서 결정해주는 주동자가 있다는 건 얼마나 안심되고 째지게 편하든지! 친구 언니가 세운 계획에 맞춰 친구와 나는 그냥 녜녜, 좋습니다, 좋아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덕분에 3킬로그램쯤 늘어 얼굴 주름이 다 펴지도록 빵빵한 풍선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마저도 좋다고 생각됐다. 그래 난 원래 호빵같은 얼굴이 캐릭터니깐 뭐...

그럼에도 일은 놓지 못하고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 처음 며칠은 밤중에 홀로 청승을 떨었고, 차로 움직이는 이동시간이 길 때는 데이터 로밍을 해갔어도 틈틈이 잘 터지지도 않는 인터넷을 찾아헤매며 국내 뉴스와 SNS를 기웃거렸다. 내가 겨우 이럴라고 촛불 들고 그 추위에 떤 게 아닌데 싶은 실망감에서 오는 불안과 조바심? 그래도 지난 대선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했지만--물론 그렇다고 ㅂㄱㅎ가 대통령 되는 걸 막진 못했었지--이번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투표할 여건이 된다는 것을 기뻐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점이 많은 대선후보였지만 와.. 아무리 표가 급해도 반대할 게 따로있지.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반대할 사람일세. 싫다싫다하니깐 ㅁㅈㅇ, ㅇㅊㅅ 둘 다 이젠 표정도 싫고 목소리도 말투도 다 싫다! 대선 토론에서든, 공약에서든, sns 홍보전에서도 역시 심블리 상정언니가 쵝오~! 두자리수 꼭 넘겨서 반드시 선거비용 보전시켜드리리. 

수시로 졸리고 잠들었다가 엉뚱한 시간에 깨어나기를 닷새째 하고 있는데, 머리가 멍해서 일도 독서도 불가능하고 그저 최대치로 늘어난 위장에 먹을 거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새벽 5시에 잠이 깨 빈둥대다 배고픈 걸 참고 참다 계란찜과 두부부침으로 나름 거하게 아침상을 차려 엄마와 함께 먹었다. 보름간 냉장고에 붙여두고 간 국과 밑반찬 계획표에 따라 성실히 살았노라고 자랑하시는 왕비마마 보필은 오히려 돌아와서 빌빌대느라 더 못했다. 내일 어버이날 디너 먹는 걸로 퉁치기엔 좀 그러니 또 당일엔 장봐다가 무슨 요릴 해드려야 고객님이 흡족해 하실까나. 

어느새 5월이 이렇게 막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아카시야향이 그윽한데 빌어먹을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도 못열고 이래저래 제기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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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투덜일기 2016. 10. 13. 01:22

2006년에 만들었던 10년짜리 여권 만기일이 9월 중순이었다. 예전엔 만기일 이전에 갱신하는 비용이, 날짜 지나고 나서 새로 만드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했던 기억이 있어서 괜히 마음이 바빠졌으나 결국 만기일 이전에 여권을 만들진 못했다. 9월 중순이면 딱 추석연휴때가 아닌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심신이 좀 지치고 바빴어야지... 째뜬 요샌 뭐 전자여권이라 갱신이든 신규든 재발급 비용은 다 똑같다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군, 했다. 

어차피 해외여행 계획이 당장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여권을 만들어둘 필요는 사실 없다. 그런데도 컴퓨터 모니터 아래 노란 포스트잇에 적힌 "9월 전에 여권 갱신!!!"이라는 글귀가 계속 시선을 끈다. (느낌표를 세 개나 붙여놓다니 어떤 심정이었던 거지? ㅋㅋ) 그 옆 포스트잇에 적힌 원고 마감 날짜는 일부러 게슴츠레 눈감고 잘 안보면서 참 나도 웃긴다.

하여간에 여행계획도 없으면서, 언제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이용권도 아닌, '일개' 유효 여권이 없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찜찜하고 불안한가 말이다. 더 웃기는 건 이미 충동적으로 여권사진도 찍어두었다는 사실. ㅋㅋ

앞으로 또 10년 쓸 여권이니깐 이왕이면 꽃단장 하고 예쁘게 찍어야지.. 했던 평소 마음과 달리, 지난달 말 외출에서 돌아오다 ATM 머신에 볼 일이 있어서 걸어가는데 동네 사진관이 눈에 확 들어오는게 아닌가. 충동적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ㅠ.ㅠ 그날따라 화장품 파우치도 안 가지고 나간 걸 깨달은 건 좀 슬펐다. 아파 보이거나 말거나 그래도 당부했다. 전번에 운전면허증 사진 찍은 거 너무 심하게 손대서 얼굴 너무 뽀얗고 입술도 엄청 크고 뻔떡거려서 마음에 안들었으니 보정 심하게 하지 말라고...

해서 사진사가 앙심을 품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생긴대로 찍힌 여권사진은 나의 현재 모습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눈썹과 귀가 나와야하고 뿔테안경도 쓸 수 없고 배경은 하얀색인 악조건에서 뭘 더 바라냐 싶지만, 지난 여권 사진에서 정말로 확~ 10년 세월을 뛰어넘은 아줌마가 지그시 미소를 짓고 있다. ㅠ.ㅠ 아우쒸...

다시 좀 더 진하게 풀메이크업을 하고서, 동네 말고 신촌이나 이대 쪽에 프로필 사진에 준하는 여권사진을 찍어준다는 사진관을 검색해 다시 사진을 찍어 말어, 뭐 그런 허섭쓰레기같은 생각을 잠깐 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게으름을 감안할 때 그건 어림없는 짓이겠고, 구청에 여권신청하러 가는 게 과연 언제일지 그게 궁금하다.

아무데도 떠날 계획이 없으면서도 여권이 없는 상태가 불안하고 괜히 속상하고 심지어 여행자의 삶에서 완전히 낙오된 것 같은 심정마저 드는 것과는 별도로, 포스트잇 메모를 보며 여권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하면서 막상 또 신청하러 몸을 움직이는 건 선뜻 하지 못하는 이 게으름이랄지 귀차니즘은 참 고질병이다. 어쩌면 여권만 미리 만들면 뭐하나... 갈 데도 없으면서, 하는 패배의식이 밑자락에 깔려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이 포스팅은 수일내로 여권을 만들고야 말겠노라는 다짐이다. ㅎㅎ 사실은 어디서 분실했는지도 모르게 운전면허증도 사라져 다시 만들어야하는데 이 또한 차일피일...  가끔 운전할 때마다 찜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 두 개 다 얼른 만들란 말이닷! 그나마도 운전면허증은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 미리 재발급 신청하면 면허시험장 가서 오래 안 기다리고 바로 찾아올 수 있다는 팁을 얻었다. 좀 전에 퍼뜩 그 생각이 나서 이 새벽에 낑낑거리며 익스플로러 보안프로그램 다 깔았더니 +_+ 신청가능 시간이 아니란다. 내가 하는 일이 그럼 그렇지..

으음. 암튼 바람이라면 일단 새 여권을 만들어서, 어물쩡 새 여권에 어서 출입국 도장 하나쯤 찍어줘야한다는 핑계로 짧든 길든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면 좋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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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거실에 놓아뒀던 자전거를 옮겨 뒷베란다로 내놓고는 통 자전거를 안 탔다. 한 3년 됐으려나... 등산을 시작한 탓이었을까? 암튼 조카가 지 자전거까지 우리 집에 놓아두고 둘이 같이 몇번 한강까지 타러다니다가는... 둘 다 까맣게 자전거를 잊었다.

그런데 이번 토요일 가족모임 때 왕비마마가 휴대폰 사진들을 자랑하다말고 홍제천에서 자전거 타던 ㅈㅎ이 사진(몇년 전에 내가 찍었던;)을 녀석에게 들이밀었다. 우리 ㅈㅎ이 이 때보다 엄청 많이 자랐네...  근데 왜 요새 자전거 타러 안 오니?

마침 평창동 살던 ㅈㅎ이네는 이달초 한강 가까운 마포구로 이사를 했는데, 할머니가 보여준 사진에 난데없는 자전거 욕망이 되살아났는지 ㅈㅎ이가 외쳤다. 고모! 우리 내일 자전거 타자! 으어... 해서 하필 폭염이 예고된 일요일... 전격 한강 자전거 회동이 이루어졌다.

준비과정은 일단 고통이었다!! ㅠㅠ  난 가뿐하게 <느루>를 타고 한강에서 애들과 만나면 되겠거니 생각했으나, 다같이 자전거 타려면 내가 차에 2대를 싣고 날라다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중에 힘빠지면 자전거 타고 집에 돌아가기 힘들다나 뭐라나. 흥! 

좀 덥긴 하겠지만 간만에 한강변에서 바람 맞으며 자전거 탈 생각에 설레서 오냐 그래주마 대답해놓고는 막상 삐질삐질 땀 흘리며 자전거를 준비하려니 후회막급이었다. 자전거 두 개에 꼬박 3년 쌓인 먼지 닦아내야지... 바퀴에 일일이 바람 넣어야지... 체인에 기름칠은 안해도 괜찮을까 걱정은 앞서고... 하여간에 또 낑낑대며 차례차례 자전거를 아래층으로 들고 내려가 차에 실는 것도 큰일이었다. 하나가 접이식이면 뭐하나! 엄청 무거운걸... 흑흑. 지들이 와서 가져가라고 할 걸!!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도 전에 온몸은 이미 땀범벅, 녹초가 되었다. 젠장... 조카 체중관리 해보겠다고 늙은 고모 잡겠다며 왕바마마가 걱정하실 만도 했다. 어휴... 째뜬 한번은 해야할 일이라고 위로하며 집을 나섰다.

33도까지 치솟은 5월 폭염에도 한강변엔 또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얼음물도 금방 녹아버리는 무시무시한 햇볕... 투덜투덜 자전거가 나쁘네 마네 아무데서나 끽 서서 사고유발 행동을 해대는 조카놈한테 소리지르랴, 뒤떨어진 일행 챙기랴... 간만에 타는 거라 몹시 아픈 엉덩이 달래랴 ㅠ.ㅠ  어휴... 1시간이 3시간쯤으로 늘어난 느낌이었다. 자전거타기는 절대 잊히지 않는 기술이라는데 난 간만에 타면 왜 늘 페달밟기부터 타고 내릴 때 서툴어서 넘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흑...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아주 뿌듯한 라이딩이었다. 바퀴 고무가 딱딱해져 금방 펑크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했던 느루는 멀쩡히 버텨주었고 페달을 밟는 대로 가볍게 씽씽 잘도 달렸다. 조카가 자꾸만 자전거 바꿔타자고 할 정도. ^^v

햇빛 찬란한 곳에 세워놓고 찍었어야 하는데 너무 더워서 그늘에 놓고 찍어서 느루의 자태는 그닥 빼어나게 못 담았지만 언제 봐도 잘빠졌다, 우베공! ㅎㅎㅎㅎ


묵은 먼지도 털어줬겠다 이젠 자주 좀 타러나가야겠다고 다짐했음. 그래서... 낑낑거리며 들고 올라와서 다시 거실 한 복판에 세워두었다. 근데... 바퀴며 브레이크며 점검은 안받고 그냥 타도 되는걸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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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콜록

투덜일기 2016. 5. 4. 16:52

심한 목감기에 걸렸다. 늑골이 아프고 뱃가죽이 땡기도록 발작적인 기침을 해본지가 언제였던가 싶다. 

일단은 약국에서 사온 종합감기약으로 버터보려 했으나.. 딴 때 같으면 약 두알 삼키고 푹 자면 거뜬하더니 요번엔 나흘을 꼬박 종합감기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나보다도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하도 성화를 해대서 내발로 병원에도 갔었다. 나름 호흡기 치료도 받고 한뭉치쯤 되는 약을 처방받아 닷새나 먹었는데도 기침은 그대로! 생각해보니 왕비마마는 감기로 1달 내내 병원엘 다녔으나 기침은 기침대로 하면서 결국 앓을 만큼 앓고나서야 감기가 떨어졌었다. 인류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처방해주는 약은 죄다 증상완화제일뿐 감기를 박멸하는 약은 없으렸다. 해서 하루치 남은 약은 내던져버리고 다시 민간요법으로 선회했다.  ㅋㅋ  푹푹 끓인 대추생강차 자꾸 마셔주기.


정말로 차를 마시는 동안엔 약 먹었을 때보다 기침이 덜 나왔다. 문제는 화장실 다니기 귀찮고 끓이기 귀찮아서 이틀 마셔대고는 그냥 또 내버려두게 된다는 점.


감기는 약을 먹으면 2주, 안먹으면 보름 걸려야 낫는다는 속설이 맞다면... 이제 나을 때가 되었다. ^^; 두통으로 시작해서 근육통으로 넘어갔다가 기침이 심해졌고, 딱 2주만인 어젠 다시 머리가 깨지게 아파 토할 것 같을 지경이어서 비도 오고 캄캄하겠다 에라 모르겠다 종일 누워 빌빌거렸다. 


바람은 여전히 불지만 볕이 화창해진 오늘은 다시 좀 살만해진듯... 기침 횟수가 꽤 적어진 듯도 하다. 빌어먹을 감기, 좀 떨어져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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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다고

투덜일기 2016. 4. 18. 16:35

얼마전부터 식칼이 잘 들지 않았다. 설날 음식 준비하면서 갈았으니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하며 불편해도 계속 그냥 썼다. 우리 집엔 식칼을 가는 오래 된 '숫돌'이 있고, 칼갈이의 임무는 늘 엄마 몫이다. 손에 힘이 없어 젓가락도 노상 떨어뜨리는 양반이 칼을 갈면 얼마나 잘 갈겠나 싶지만, 전문가가 아닌데도 관록의 힘이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내가 비슷하게 흉내를 내서 숫돌에 문지른 칼은 일주일도 못 돼 다시 무뎌지는 반면 엄마가 슥삭슥삭 한참 숫돌에 문질러준 칼은 몇달씩 칼날이 쓸만하다.


그러니깐 결국 내가 할 일도 아니면서 칼 가는 걸 게을리 했던 이유는 딱 하나 귀찮아서였다. 엄마, 칼 좀 갈아주세요, 그러면서 쟁반에 숫돌과 식칼을 담아 가져다주면 그뿐인데, 늘 콩닥콩닥 부엌일을 하던 중간이라 에라 바쁜데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그러는 식.


요샌 오드리 헵번이 집에서 자주 해먹었다는 레시피들을 아무래도 종종 응용하게 되는데, 특히 카프레제 샐러드는 왕비마마, 공주마마, 무수리 모두 좋아하는고로 어제 저녁엔 급히 토마토를 자르던 중이었다. 아우쒸... 칼이 안드네 또 다시 불평을 하면서 무뎌진 칼날을 이리저리 움직여 미끄러운 토마토 껍질을 공략하던 순간, 슥~ 칼날이 왼손 검지를 때렸다. 아야...


칼이 잘 들땐 당연히 더 조심조심 칼질을 하기 때문인지 손을 베더라도 살짝 스치듯이 손톱을 자르거나 살갗만 베이는 반면, 칼날이 무뎌졌을 땐 미끄러지는 힘이 더해져서 그런지 상처가 더 깊다. ㅠ.ㅠ 아무리 꾹 누르고 있어도 피는 잘 멈추질 않고... 손가락을 감싼 휴지가 금방 피로 젖는 걸 보며, 젠장 설마 병원 가서 꿰맬 정도는 아니겠지, 아쒸 저녁준비 늦어지겠네... 아줌마스러운 걱정이 뇌리를 스쳐갔다.


손가락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꽉 눌러 한참 지혈을 한 뒤, 약을 바르고 방수 반창고를 둘렀다. 놀란 엄마가 얼른 손수 숫돌을 꺼내 갈아준 식칼로 다시 남은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삐뚤빼뚤 잘라(오른 손이 아니고 왼손인데도 검지를 다치니 손놀림이 영 서툴다) 샐러드를 완성해 대충 저녁을 먹었다.


칭칭 너무 심하게 손가락을 동여맸는지 왼팔이 전체적으로 저릿할 정도인데, 어쩐지 그래야 빨랑 상처가 아물 것도 같아서 참고 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잘 드는 칼보다 무딘 칼에 더 상처가 깊이 나듯이 어떤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도 작정하고 달려들 때보다 무심하게 툭 던지는 말에 더 상처를 깊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작정하고 나쁜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에겐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미리 단단히 실드를 쳐놓았으니 어디 한번 해보셔~ 라며 나름 과감해진다. 하지만 뜻밖의 순간에 상대가 무딘 신경으로 아무 생각없이 툭 던지는 비난이나 공격엔 속수무책이다. 순간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당한 뒤 피를 철철 흘리고 나서야 제때 방어하지 못한 느린 순발력을 탓한다. 그런 상처일수록 오래가는 것도 같고.


실수를 그냥 실수로 넘기지 않고 거기서 뭔가를 배우면 된다는데, 무수리 생활 10년을 넘기고도 부엌에서 아직 수시로 베이고 데이고 여기저기 생겨나는 흉터가 많아지는 걸 보면 나란 인간은 통 실수에서 배우는 게 없는 사람인가 싶다. 가사일에서나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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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본 영화

놀잇감 2015. 12. 31. 20:31

올해는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는 지극히 드물고, 죄다 어둠의 경로나 케이블TV, 그도 아니면 모바일서비스로 코딱지만한 화면으로 본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꽤 많이 본 것 같지만, 절반 이상 꼭 보고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월정액제 안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을 골라봤고, 결국 대체로 뒷북으로 보게 됐다. 원래도 너무 유명한 최신작이나 천만 관객을 자랑하는 영화들은 잘 안보는 성향이 있지만 참... 영화관에 관한 한 게을러도 너무 게을렀다. 벼르고 기다렸던 스누피 영화도, 스타워즈도 아직 못 봤음. ㅠ.ㅠ 선뜻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다는 게 함정이자 슬픔이다. 그래도 좋았던(것 같은) 영화는 굵게 표시했음.




외화 (15)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엘리제궁의 요리사

Song One

스파이

예멘에서 연어 낚시하기

아메리칸 셰프

킹스맨

킹메이커

심야식당

새 구두를 사야해

토르: 다크월드

월플라워

Everything Must Go

이미테이션 게임

맥베스




애니메이션(5)

빅히어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몬스터대학교

메리다와 마법의 숲

인사이드 아웃



한국영화(7)

상의원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스물

기술자들

간신

무뢰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일부러 찾아가 본 영화들이 아니다보니.. 한국영화는 죄다 그저그랬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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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측정

투덜일기 2015. 12. 17. 04:10

올해가 2년마다 돌아오는 건강검진 받는 해인데 1년 내내 차일피일 미뤘다. 근육량을 좀 더 늘인 다음에 받아야지, 체중도 좀 더 줄인 다음에 받아야지, 운동을 좀 더 빡시게 한 다음에 예약해야지... 그러면서. ㅋㅋ


그러다 어느새 12월. 올해 안에 받을까 말까, 1월까지는 연장해서 받을 수 있다는데 괜히 분주한 연말 보내고 나서 연초에 조신한 마음으로 받을까.. 괜히 머리아프게 고민하다가 지난주에 검진센터에 일단 전화를 걸었다. (예약 전화 전화 걸기 싫어서 검진이 미뤄졌을 수도 있다. 어휴...  전화기피증은 점점 더 심해진다.) 연말에 검진자가 몰려서 올해 안에 스케줄 못잡으면 하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할 작정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안 몰렸는지, 주말만 아니면 평일엔 12월 말에도 검진을 받을 수 있다는 희소식. 그러나 막상 날을 잡고보니 24일이다. +_+ 크리스마스이브에 건강검진. ㅋㅋ 웃기지만 뭐 상관없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별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막상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생각해보니 걱정이 됐다. 체중이랑 근육량이랑 혈압이랑 이젠 다 정상일까 어쩔까. 2년전엔 혈압 때문에 골치가 아팠었는데... (집에서나 엄니 따라간 병원에서 재면 정상이라규~!!)


건강하게 몸 챙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작년에 등산을 시작했다면, 올해는 스마트폰 앱을 깔아놓고 1월부터 매일 운동을 병행했다. 하루도 안빠졌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래도 스쿼트, 플랭크, 런지, 팔굽혀펴기... 등등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 근력운동을 나름 꾸준히 했다. 일본 여행 가서도 했을 정도니 뭐... 


그래서 근육이 얼마나 생겼나  더 궁금한 마음이 들어, 예비 측정 삼아 오늘 구청 보건소 체력측정실에 내 발로 찾아갔다. 거기 가면 예약 안하고도 체성분 분석을 받을 수 있다기에 연초부터 가야지 가야지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연말에나 실천하게 된 것.


역시나 쫄았는지, 아니면 너무 운동을 빡시게 하고 가서(좀 많이 걸은 데다 6층까지도 계단으로 그냥 올라갔다) 혈압은 금방 안 내려갔다. 집에서 재면 정상이라고 우겨서 일단 무시하기로 하고, 체성분 분석기계에 올라갔다. 


ㅠ.ㅠ 키는 0.5센티미터 줄은 걸로 나와서 처음부터 속상했는데 ㅎㅎ 신체나이가 '무려 5살' 어리게 나와서 다시 희희낙락. 체중과 체지방량은 2년 전에도 적정수준이었으니 그렇다치고, 부족했던 근육량이 드디어 '적정 범위'에 들었다. 야호! 운동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로군.


그런데 하체에 비해서 팔근육이 심히 부족하댄다. 평균 미달 수준.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근육량도 차이가 심하고... 덤벨 운동이랑 팔굽혀 펴기를 좀 더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짝다리도 조심하라고. 쳇. 혼자서 근력운동을 한 폐해인가? 아니다... 등산 가보면 밧줄에 매달릴 때 팔 힘도 많이 늘었다고 느끼지만, 등산이야 기본적으로 전신+하체 강화운동이지 뭐. 팔 운동 할 때는 좀 설렁설렁 한 게 사실이다. 


째뜬 신체나이가 젊어진 게 어디람! 2년전엔 한살 더 많게 나왔었는데.. ㅎㅎㅎㅎ 남은 일주일간 위험스러운 송년모임이 2번이나 더 있긴 하지만, 조심조심 술과 과식을 멀리하며 잘 버텨봐야겠다. 이렇게 건강에 신경쓰는 걸 보면 확실히 늙었구나 웃기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아픈 것보다는 낫겠거니... 하련다. 졸지에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건강염려증이 막 도지는 것 같기도 하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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