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원래 절대로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날씨 좋고 선선해서 놀러다니기 최고인데 누가 집에 들어앉아 책이나 읽고 있겠나. 그래서 출판계에서 작당하여 1년중 최고 불경기인 가을에 책 좀 팔아볼 요량으로 독서의 계절이란 말을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혹은 비화)이다.
어쨌든 내 주변의 최측근들은 책을 절대로 읽지 않는 반면 이웃 블로거들은 참 열심히도 책을 읽으신다. 계절에 상관 없이 참 많이들 읽으시는 것 같긴 한데 가을 들어서면서 내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진부함에 세뇌된 덕분인지 더욱 많은 책 이야기를 구경하게 되는 듯하다. 게다가 조단조단 읽은 책에 대한 후기도 맛깔스럽게 올려 놓으시니 나로선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영화든 책이든 난 그저 보고나면 좋다 나쁘다 괜찮다 인상깊은 구절이나 장면이 있었다 없었다 정도가 감상의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책에 든 구절들을 밑줄긋기하듯 적어두는 섬세한 정성 같은 것은 스무살 시절에 일기나 연애편지 좀 쓰던 때나 조금 하다 집어치운 것 같다. 물론 나에겐 불가능한 일들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시는 이웃블로거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책표지라도 구경하면서 느끼는 일말의 대리만족을 그분들은 아실는지.
아무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진부한 글귀의 세뇌정도는 참으로 지독한 것이어서 급기야 나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책이라도 사들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오늘밤 얼른 주문을 마쳤다.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사고싶은 책은 늘 넘치기 마련이라 오늘도 이책저책 들여다보며 고르다 카트에서 애써 추려낸 뒤 4권만 결제를 진행했다. 이 글에도 '탐서'라는 제목을 붙이기 부끄러울 정도로 책을 잘 안읽는 주제에 벌써 마음이 뿌듯하다. 나의 탐서는 아무래도 독서가 아닌, '장서'에 가까운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의 비율이 역시나 절반도 안된다. 올해가 가기 전에 밀린 숙제 하듯 과연 나는 꽂아두고 뿌듯해 하는 저 책들을 다 읽을 것인가... 작년, 재작년에 사두고도 못읽은 책도 쌓여있거늘.
왠지 계속 끌어안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 읽고 간직해 지식이 쌓일 것만 같은 허영이 바로 내 탐서 욕망의 근간임을 뻔히 알면서도 식탐 습관 못 버리는 것처럼 책 탐하는 버릇도 내버릴 수가 없다. 언제고 내 진정한 탐서가가 되리라는 요원한 꿈과 함께.
대학에 다니던 시절 꼭 자기가 쓴 책을 주교재나 부교재로 쓰는 교수들이 있었다. 하다못해 숙제로라도 읽어서 내라는 경우도 있었는데 책을 찾아보면 출간된지 10년도 더 된 구태의연한 느낌의 양장본이었고 가격도 꽤 비쌌다. 1, 2학년땐 투덜거리면서도 멋모르고 책을 다 사곤 했지만 나중엔 요령이 생겨 도서관에서 빌려 제본을 하거나 친구들끼리 한 권을 사서 돌려보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양과목의 경우 수강하는 학생들 인원이 꽤 되니까 그들이 책을 다 새로 산다고 가정했을 경우엔 출판사에서 새로이 천부 이상 찍어내는 결과를 낳았을 것 같다. 그래봤자 손에 쥐는 인세가 푼돈이기는 했겠지만^^;; 한번 쓴 책으로 교수 평가 때 생색도 내고 또 그걸로 해마다 푼돈도 벌고 나쁘진 않았겠지 싶다.
하지만 나 같으면... 도저히 학생들에게 책장사를 하려 들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짙다. 정말 훌륭한 책이라 저절로 팔려나가는 거라면 몰라도 어떻게 제자들한테 자기 책을 팔아달라고 강권하거나 은근히라도 압력을 넣는단 말인가!
여기에도 몇번 언급한 적이 있는 공동번역 논문집의 경우, 대학 출판부에서 기획한 책이기도 했지만 페미니즘을 주제로한 논문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당연히 대중적이 아니어서 출판사에서도 우리들도 잘 팔릴 것이라고는 애당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책이 나온 뒤 증정본을 받으러 셋이 함께 간 자리에서, 출판부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혹시 그 책을 교재로 쓸만한 강의는 안하시느냐고. ^^ 그 책은 선생님들(그쪽에서 우리들을 지칭한 거다)이 나서서 팔아주셔야 하는 거라고. 헉. 교수님은 몰라도 나와 또 한 명은 강의 따위에 관심도 없는 터라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손사래를 쳤고 교수님 역시 강의하면서 자기 책 팔아먹으려고 애쓰는 것만큼 민망한 일은 없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더욱이 자기 학교 아이들은 '페미니즘 비평'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젓는다면서...
증정본을 받아들고 출판부 사무실을 나서며 우리 세 옮긴이들은 아마 그 책이 초판 1000부를 소화하기도 힘들지 모른다면서, 그냥 오랜 작업을 마침내 끝내고 책도 선을 보인 기념으로 우리끼리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한답시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더랬다. ^^ 그래서 몇년 만인 얼마 전 2쇄 1000부에 대한 번역 인세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약소한 인세는 젖혀두고라도 꽤나 놀랐던 것 같다. 아니, 그 두껍고 어려운 책이 1000부나 (물론 언론사 증정본이 또 몇백 부 소요된다 ㅋㅋ) 팔렸다니! 그 대학 출판부야 뭐 대학 소속이니 판매 부진하다고 망할 염려는 없을 테고, 학교 주축의 문화사업 일환으로 계속 꽤나 쓸만한 책을 많이 내고 있는 듯하니 나로선 더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나에게도 그 책은 '공역'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경험이고 성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인세 계약으로 작업했던 책이 드디어 얼마 전 출간되어 따끈따끈한 증정본과 함께 초판 3000부에 대한 인세를 받고 보니, 역시나 은근히 책 홍보에 나도 거들어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_-;; 꽤나 좋은(그러나 잘 팔리진 않는 '인문학 양서들') 국내기획물들을 많이 출간해왔던 그 출판사로선 나름대로 좀 팔아보겠다는 요량으로 기획한 번역물이다보니, 분야는 내가 죄다 그밥에 그나물이라면서 마뜩찮아하는 '자기계발서'다. 그런 책을 나더러 좋은 책이라 주변에 선전을 하라고? 에잇,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P (그러면서 왜 번역은 맡았느냐고? ㅎㅎ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기도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그곳 편집장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번역을 의뢰받을 즈음엔 작업 스케줄에 여유도 좀 있었고...)
어쨌거나 난 이번에도 그저 모르는 척 눈감고 지켜보기만 할 테다. 당연히 책 장사는 출판사에서 하는 거지,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게다가 내 가족이며 지인들은 정말 책 보기를 돌같이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책 많이 읽으시는 이웃 블로거분들께 추천할 책은 또 절대로 아니다! ㅋㅋ
흠... 주절주절 늘어놓다 보니 결국 내 얼굴에 침뱉는 격이 되었고나야. 나도 늘 좋은 책을 스스로 기획해서 번역 출간으로 이어보겠다는 '꿈'은 지니고 살지만 주어지는 일만 소화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니, 권수로는 나름 부지런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질 면으로 따져보면 여전히 부끄러운 인생이다. 10년쯤 뒤엔 정말 좋은 책이라고 주변에 널리 추천할 번역서들이 내 약력에 콕콕 박혀있게 되기를 빌어본다.
"번역을 해서 밥은 먹고 살 수 있냐?"는 질문을 아직도 종종 받을 만큼 아직도 번역은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의 전천후 아르바이트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이 업계(?)에서 꽤나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 나도 지난 몇년 간 연봉을 따져보면 그리 신통치는 않다.
물론 내가 게으름을 부려 제때 원고를 넘기지 못한 탓도 있지만, 간혹 번역료 지불을 마냥 지연시키고만 있는 몹쓸 출판사도 있고^^; 책이 출간된 후 1개월 이내 번역료를 지불하겠다는 계약서 조항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는데(대부분은 원고 넘기고 1개월 내 지불 조건이 많지만, 거의 원고를 넘기면 몇달 안에 책이 나오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었다) 출간이 계속 미뤄져 출판사쪽에선 아주 당당하게 원고료를 안주고 버티는 경우도 간혹 만나게 된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작가들과 달리 번역가는 원고료를 인세로 받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고 거의 대부분 번역원고의 양에 따라 단번에 결제를 받는 '매절 계약'을 하기 때문에 책이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가 되어도 단번에 떼부자가 되기는 어렵다. 백만부 넘게 팔린 그 유명한 '좀머씨 이야기' 같은 책을 번역하고서도 정작 번역가가 받은 돈은 대략 '80만원'(그 책이 얇고 텍스트가 짧았던 건 읽어본 분들이 다 아실 터;;)이 전부일 정도니까. ^^;; 게다가 번역이라는 것이 매일 꾸준히 작업을 한다고 해도 한달에 '몇 권씩' 빠른 시일 안에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니고, 어떤 책은 자료 공부며 용어 확인 때문에 번역 기간이 6개월을 훌쩍 넘길 수도 있는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일인데 열악한 출판계 사정상 언어권별로 정해진 번역료는 십년 가까이 '불변'이다. 따라서 제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하는 번역가라고 해도 별도로 다른 직업을(말하자면 번역 아카데미 강사라든지 대학 같은 데 출강을 나가는;;) 갖고 있지 않는 한 연봉은 뻔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번역가는 아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프리랜서는 결코 될 수 없다. ^^
얼마 전 드물게 인세로 번역계약을 한 뒤 그 감회를 어딘가 적어놓은 기억이 나는데 그 출판사처럼 정직한 경영을 모토로 삼는 경우 번역 인세를 5% 주기도 하고 모 대학 출판부에선 6%로 계약을 하기도 했지만, 여건이 더 열악한 영세 출판사에서 책의 상업적 성공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인세로 번역계약을 하는 경우는 2-3% 인세가 대부분이라는 전언이다. (책의 정가가 만원이라고 할때 권당 인세는 2-300원이니 초판을 5천부를 찍는다 해도 옮긴이 손에 들어오는 돈은 150만원이하라는 얘기다. 물론 여기서 또 3.3% 원천징수세를 떼야 한다) 6%로 계약한 모 대학 출판부 책의 경우 세 사람이 공동번역을 한 터라 실질적으로 한 사람에게 떨어지는 인세는 2%^^였는데, 꽤나 정가가 비쌌던 그 논문집의 초판 1000부에 해당하는 인세를 처음 받았을 때 내 통장에 입금된 돈이 불과 삽십여만원이었더랬다. ㅋㅋ 그 책이 나온지 3년만인 올해, 또 2쇄 1000부를 찍었다며 지난달에 그에 해당하는 인세가 입금되었는데 어휴... 교수님과 세미나를 해가며 1년 가까이 공들여 번역한 그 책에 들어간 품과 에너지와 정성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릴 금액이다. ^^;; (상업적인 책들은 그나마 다행히 초판을 3천부 정도는 찍는다 ㅎㅎ)
어쨌거나 그럼에도 이 열악하고 부가가치 낮은 직업인 번역을 천직으로 삼았으니 남탓할 일은 아니다. 그런 단점들을 모르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냥 소박하게 살면 되지 않겠나.
그런데 최근 공연히 열받고 섭섭한 느낌을 금할 수가 없는 일들이 있었다. 과거에 출간되었던 책들이 새로운 꾸밈새로 신간인듯 세상에 선을 보인, 이른바 '개정판'을 뜻밖에 만나게 된 것. 법적으로 번역원고에 대한 모든 권한을 출판사에 넘긴다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을 했으니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낸다고 나에게 미리 통보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 나로선 사실 아무 권한도 없음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기분이 구리고 찜찜하고 '아까운'지 모르겠다.
요즘 출판사들은 대형화를 추구하면서 회사 이름도 분야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누어 마치 다른 회사인 것처럼 책을 출간하는 것이 유행인데 9월에 나란히 개정판을 선보인 나의 자식(?)들도 얼핏 보기엔 처음과 다른 출판사에서 표지를 바꿔 낸 듯한 느낌이었다. 하물며 한 권은 대형할인마트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핸디북' 시리즈의 일환이어서 작은 판형에 종이도 재생지를 사용해 가격을 낮췄다는데, 대체 어느 인간이 기획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판형을 작게 하다보니 표지 디자인도 단순하게 만드느라 모든 시리즈에서 '감히' 옮긴이의 이름을 표지에서 빼버렸다. -_-;; (표지에서 내 이름이 사라진 그 책을 접하고 발끈 화가 나는 것을 느끼고서야 내가 이렇게 공명심에 집착하는 인간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ㅎㅎ)
그 개정판의 출간에 관하여 내가 옮긴이로서 출판사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그리고 공식적인) 예우는 새로 나온 책의 증정본을 받는 것뿐이다. 물론 9월에 나온 그 두 책의 증정본은 아직 받지 못했고, 저들이 잊지 않고 나까지 챙겨 보내줄지 그것도 미지수다. (둘 다 원고료 때문에 무던히도 나에게 애를 먹인 곳이라 내쪽에서 다시 연락하기도 싫은데, 그렇다고 내 돈 주고 책을 사기도 아깝다! ㅋㅋ)
문득 내가 옮긴이가 아니라 지은이였다면;;; 인세를 따로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개정 증보판에 붙여"라는 발문이라도 청탁받느라 미리 상황을 알았겠지 싶어지면서 잠시 우울했다. 허나 어쩌랴. '작가'가 될 역량이 모자라 남의 글에 기대 사는 옮긴이의 삶을 선택한 것이 내 운명인 걸. 공연한 욕심에 속쓰려하지 말고 밀린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의 의미로 길게도 끼적였다. (그래도 느껴지는 이 억울함은 뭔지;;;)
계약 마감일에 즈음하여 번역원고를 넘기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출간전에 교정원고를 한번 더 검토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출판사에 따라서 이 과정을 생략하는 곳도 있지만
내가 거래하는 출판사들의 경우 2/3 정도는 편집자의 교정을 거친 원고가 원문의 느낌이나 분위기와 많이 멀어지지는 않았는지, 또는 분량 때문에 원고를 많이 쳐낸 경우 내용의 연결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을 부탁한다.
초보 번역가 시절엔 물론 언감생심 이런 과정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
번역 초보의 특징은 원문의 틀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해 번역체의 느낌을 철철 흘리는 것이
보통이므로, 원고를 넘기고 나서 출간된 책을 보며 그제야 본인의 번역 문장과 다듬어진 문장의 차이를 깨닫고 차츰 배워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내가 번역한 원고를 주로 교정하고 편집했던 담당자들 덕분에 정말로 나는 참 많은 걸 배웠고, 비교적 빨리 출판사가 원하는(말하자면 독자들이 편하게 여기는) 문장 호흡과 분위기를 익힐 수 있었더랬다.
돌이켜보면 요즘 거의 대부분의 출판사와 편집자들은 길고 복잡한 문장을 적절히 잘라서 호흡이 짧고 이해하기 쉽도록 다듬은 글과 감각적인 느낌의 번역을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옮긴이 본인이 원서를 발굴해서 기획단계부터 참여한 책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대부분 출판사에서 기획한 책을 '하청' 받듯이 일방적으로 의뢰받은 경우엔 (물론 의뢰 단계에서 책이 영 마음에 안들면 고사하는 때도 있지만, 내가 몹시 싫어하는 '경제경영서'나 '처세서'가 아닌 한 작업 일정이 맞으면 대개는 수용하게 된다. 일 없어서 노는 번역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_-;;) 애당초 번역 단계부터 원서의 문체를 최대한 살리도록 하되, 출판사에서 기존에 출간한 책들과 얼추 비슷한 수준의 문장과 분위기로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나중에 편집자의 취향과 정면으로 맞부딪치게 되기 때문이다.
번역가에게 교정원고가 날아오는 것은 대개 초교(첫번째 교정교열을 의미한다)를 끝내고
2교와 3교를 앞둔 시점인 때가 많다.
편집자의 경향과 출판사의 요구 방향에 따라선 교정원고가 처음 넘긴 번역원고에서 그저 오자만 잡아낸 정도로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순서와 구조까지 크게 변형된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땐 아예 담당자가 미리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저런 기획의도 때문에 원문의 구조와 순서를 바꾸었으니 원문 자체의 뉘앙스만 봐달라는 식으로.
이럴 땐 애써 한문장 한문장 다듬으며 번역을 한 사람으로서 몹시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지만, 우선 책을 잘 팔고 보자는 것이 출판사의 목표이므로 어쩔 수 없이 협조는 필수다.
또한 그간 편집자들과도 친분을 많이 쌓고 보니, 그들의 애로사항 또한 모르는 바 아니어서 나는 교정원고를 검토할 때 옮긴이로서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최대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다. 혹시 편집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오탈자를 잡아주고, 혹시 매만져진 문장에서 원문의 뉘앙스와 완전히 달라진 경우만 되돌리는 식으로. (유명 번역가 선생들 가운데선--아니, 유명하진 않더라도 지조 있는 번역가들은--쉼표 하나, 토씨 하나도 바꾸지 못하게 하는 이들도 있다지만, 나는 좋게 말해 융통성이 있는 편이고 나쁘게 말하면 편집자들의 선호도에 영합하는 지조 없는 번역가라고 하겠다.. 껄껄)
하지만 고집스러운 옮긴이의 경우엔 편집자가 나름대로의 출간 경향에 맞춰 교정해 놓은 문장들을 원래대로 다시 되돌려,원고뭉치를 완전히 새빨갛게(인쇄된 원고를 교정할 땐 빨간색 펜으로 수정 내용을 표시하는 게 아마 원칙일 거다. 그치만 나는 가끔이라도 원고 페이지를 시뻘겋게 수정하는 게 꺼려져 초록색이나 보라색 펜을 쓴다 ㅋㅋ) 수정하여 너널너덜한 상태로 만들어 보내기도 한단다. ^^;;
편집자와 번역가의 딜레마가 상충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편집자들도 교정교열을 하면서 원서를 참조하기는 하지만, 대개는 번역원고만 들여다보면서 비문이나 어색한 문장이 발견되면 '나름대로' 문장을 다듬는 것이 대부분이다.
편집자가 외국어 원문까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대개는 국문과 출신인 편집자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하는 건 무리일 게다. 그러니까 편집자는 어디까지나 독자 입장에서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다듬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하겠다.
하지만 번역하는 입장에선 최대한 지은이가 전달하려는 느낌과 문체를 고스란히 우리말로 자연스레 옮기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이 짧고 읽기 쉬운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 말이다.
오래 전, 문장의 호흡이 몹시 길고 복잡한 만연체의 소설을 번역한 적이 있었다.
가끔 10줄에 육박하는 길고 긴 문장들을 '최대한 유려하게' 번역하려 애쓰면서 나는 정말 미치고 폴짝 뛸 것처럼 괴로웠지만, 그 작가의 경우 답답하리만치 길고 복잡한 문장은 작품의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담아내는 중요한 장치였기 때문에 쉽게 번역하자고 아무렇게나 문장을 끊어댈 순 없는 일이었다. 당시 편집자 역시 기나긴 문장의 호흡이 지니는 의미와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흔히들 저지르듯) 독자의 이해를 위한답시고 무작정 문장을 짤막하게 절단내는 횡포는 피했으므로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우겨대도 옮긴이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다.
아무래도 소설이 문체에 가장 민감한 장르라고 여겨지는데, 우리나라 독자에게 낯설다고 여겨지는 경우엔 출판사와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독자의 입맛에 맞게 요리되는 과정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간된 소설의 경우엔, 섬세한 묘사에 치중한 문체도 문체려니와 '시제'가 대단히 중요한 소설의 장치였더랬다. 모든 사건이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감을 주기 위하여 거의 모든 문장이 현제시제였고, 간혹 과거를 회상할 때만 과거 시제가 사용되고 있었던 것.
하지만 편집자 출신의 출판사 사장(가끔 직접 번역도 한다고 했다. -_-;;)은 현제 시제로 일관된 문장이 한국 독자들에게 너무 낯설다면서(나는 지금도 한국 독자들의 수준을 폄하한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편집과정에서 '자기네들이 알아서' 일부 문장을 '익숙한 과거시제'로 바꾸겠다고 나에게 통보했다.
교정원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일부 과거형으로 손을 댄 문장들' 때문에 원문의 분위기가 여실히 달라졌으니 원래 내가 번역했던 대로 시제를 되돌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여전히 내세웠지만, 결국 내 의견은 묵살되고 말았다. 그런데 편집진 내부에서도 의견이 오락가락했었는지, 출간된 책을 보니 현재 시제로 되돌아간 문장도 더러 있긴 하되 짤막한 문장들을 공연히 연결하거나 다듬는 과정에서 '새로이' 수많은 오탈자가 생겨났음이 드러났다. 어휴...
교정쇄를 거치면서 오탈자는 거의 수정했다고 들었지만, 그 책을 쳐다보면 나는 아직도 시제를 중시했던 지은이의 문체를 고스란히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에 사로잡힌다.
아무튼
지금 또 얼마 후 출간될 교정원고와 함께 초록색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 한숨부터 나온다.
이번 책은 원래부터 여러 명의 필자들이 지었거나 들려준 이야기를 엮은 책이어서 챕터별로 분위기도, 문체도 다양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편집자는 '나름의' 욕심을 부렸는지 전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와 말투로 통일하느라 일부 글의 느낌이 달라지고 말았다.
최대한 편집자의 편의를 봐주려는 원칙은 세워놓았지만... 나도 이럴땐 갈팔질팡하게 된다.
게다가 요즘 '가끔 만나게 되는 일부' 편집자들은 놀랍게도 취향이 비슷하다. 그들이 앞세우는 핑계는 '독자들이 짧은 호흡의 읽기 편한 문장'을 선호한다는 것인데, 나는 제아무리 실용서라도 길고 짧은 문장의 리듬이 있고 장황하지만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맛깔스러운 문장을 '원문대로' 살리고 싶은 욕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_-;;;
어느 쪽이 양보해야 더 좋은 책이 만들어질 것인지 장담할 순 없으므로
오늘부터 며칠 또 고민 깨나 해야 할 성 싶으니...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에효...
'책'으로 밥벌어먹고 산다는 것이 부끄러울 만큼 '책'을 잘 읽진 않기 때문에 이 문답은 안 하는 것이 낫겠다고, 아니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키드님 문답 댓글에 적은 게 무색하게도 금방 마음을 바꿨다. 내가 또 변덕 빼놓으면 시체인 인간 아닌가. -_-;;
실은 어제 옮긴이의 말을 하나 넘겨야 했는데;;; 며칠동안 머리를 쥐어짜 괴발개발 적어는 놓았으나 도무지 마무리가 되질 않는 터라 뭔가 딴 데 잠시라도 정신을 팔면서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 같아 문답을 택했고 비공개로 작성하다가 오늘 공개로 바꾼 거다.ㅎㅎ 옮긴이의 말만 쓰라고 하면 내 두뇌는 공포증에 휩싸여 다른 생각을 자발적으로 해낼 수 없는 마비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이 문답도 제대로 읽고 답했는지 장담할 순 없다. 낄낄.
1.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이 문답은 첫 질문부터 독특하군요. ^^;; 사방에다 약속을 어기고(아악~~~ 몇달째 마감일 어기고 있는 책도 있어요 ㅠ.ㅠ) 아등바등 쫓기듯 사는 처지라 요즘 평안하진 못합니다. 그래도 쫓기는 인간 치곤 나름 태평하게 지내는 편이니 뻔뻔하달까요..
2. 독서 좋아하시는 지요?
좋아는합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에 몰입하면 누가 불러도 잘 몰라서, 엄마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죠. 밥먹으라는 소리 못들은 척 한다고... 지금도 간혹 지하철 멀리 타고 가느라 책보면 내릴 정거장 마구 지나칩니다. ㅠ.ㅠ
3.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책을 펼친 순간 또 다른 세계에 빠져드는 나를 느낍니다. 소설이든, 시집이든, 인문서든, 나와 다른 시각으로 담아낸 세상에 풍덩 빠지는 묘미가 있지요. 팍팍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에 가장 좋은 피난처 같기도 합니다. 게다가 지적인 허기와 허영심도 아마 무시 못할 걸요.
4.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앞에 쓴 답변이 부끄러울 만큼 책을 많이 읽진 않습니다. 한달에 한권도 안읽을 때가 많죠. 물론 옮기는 작업을 하는 책을 늘 끼고 살기 때문에 거기 필요한 자료라든지 참고 서적을 '일부'만 읽는 경우가 있어서, 이것저것 손대는 책은 많아도 정작 '다 읽었다'고 내려놓을 책은 없다고 봐야죠. 그러다보니 머리에서 깡통소리가 날 것도 같아(이건 순전히 허영심과도 관련됩니다) 보상심리를 발동해 주섬주섬 읽고 싶은 책들을 사들이지만, 쌓아놓고 쳐다보는 걸로 한동안 흡족해 하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읽기도 합니다. ㅠ.ㅠ
작년에 일과 상관 없이 제대로 읽은 책을 꼽아보니 13권이던가... 평균 고작 1달에 1권인 셈이죠. 거기다 거의 두달에 한권 정도 번역하는 책을 모두 더하고 ^^ 가끔 몹시 싫어하면서도 출판사 담당자의 강권으로 원서 검토 후 리뷰까지 써야 하는 책을 포함시킨다해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못됩니다.
5.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요즘엔 의식적으로 어휘력과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과거엔 뭔가 남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문서에 집중했다면, 요즘엔 소설을 주시하게 되더군요. 전 글을 맛깔나게 쓰는 사람들의 책이 좋습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요. ^^
6.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인간이 만들어낸 참 그럴듯한 소통의 수단
7.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나와는 다른 눈으로 들여다 보는 세상 구경
8. 한국은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느 사회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으면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독서율이란 인구 대비 출판시장의 규모와 소비 성향을 의미하는 것일 테죠. 확실히 우리나라 독서인구와 출판시장 규모는 전체 인구와 비교할 때 턱없이 작은 것이 사실입니다. ^^;; (음반시장도 마찬가지잖아요;;)
일단 독서는 생존과는 상관 없는, 삶의 주변적인 행위입니다.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은 독서에 신경쓸 겨를이 없죠. 국민소득이 어쩌고 OECD 국가가 어쩌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먹고 살기 힘든 나라입니다. 나라 전체의 부의 규모와 상관 없이, 더 많은 개개인들이 책값을 지불할 여유가 생기려면 앞으로도 참 많은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하려는지...)
게다가 책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는 참으로 경건하기 짝이 없습니다. ^^;; 한번 읽고나서 두번 다시 손댈 것 같지 않은 허섭한 내용의 책도, 소장가치가 있는 책과 똑같이 고급 수입지에 값비싼 디자인을 도입해 만들어 비싼 가격표를 붙입니다. 내용이 어떻든 책은 소중한 것이고 일단 '폼이 나야' 사람들이 들고다니거든요. 제가 학창시절 필독도서 고전들을 사봤던 '삼중당 문고' 같은 손바닥만한 저가형 보급판은 사라진지 오랩니다. 단 한권을 읽더라도 들고 다니며, 그리고 나중에 책꽂이에 꽂아놓았을 때 그럴듯해 보여야 한다는 '외형지상주의'는 책에도 해당된다더이다. 저 역시 과거엔 표지나 장정에 혹해서 책을 사거나 선물한 적이 많으니 남탓 할 것도 없습니다. ㅋㅋ 암튼 우리나라 책은 선뜻 사보기에 비싸고 고급스러워 대단한 문화소비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우리나라의 최대 독자층이 어린이와 2, 30대 여성이라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독자층의 폭이 더 넓어져야 할 터인데 말이죠;;;
확실히 대한민국의 출판계는 기형적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출판분야도, 독서 인구도 일부인기 '장르'에만 치중해 있으니까요.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의 논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고정된 출판시장은 고정된 독자만을 양산합니다. 좀 더 다양한 형태와 분야의 책들이 선보인다면 다양한 독자층이 형성되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만, 일단 전체적인 삶의 경제적 여유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고, 도서문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할 듯합니다.
9. 책을 하나만 추천 하시죠?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아.. 정말 어려운 요구입니다. 9번과 10번 문항 때문에 이틀 내리 고민하게 되는군요 ^^;
최명희의 <혼불>로 하겠습니다.
10.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순한 번역기계가 되어버려 머리가 텅텅 빈 것 같을 때, 자꾸 어휘력이 딸리는 게 느껴질 때, 요즘도 제가 한권 뽑아들고 읽는 책입니다. 고2때였나... 처음 혼불 1권을 읽으며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충동을 처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한글 어휘들의 아름다움이라니...
11.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당연히 책이죠. 요즘 수많은 책들이 (심지어 교과서까지도) 만화의 형태로 탄생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심오하고 섬세하고 주옥같은 만화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다만.. 저는 연재중엔 감질나서 완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다가 ㅋㅋ 결국 읽기 자체를 까먹고 맙니다. 만화에 관한한 거의 문외한...
12.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문학쪽에 비중을 두려고 하는데, 사들이는 책을 보면 사실 반반입니다. ^^
13.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ㅋㅋ 단순한 인간이라 그런 장르 분류 잘 모릅니다. 판타지와 무협지만 "소비문학"이라는 말에도 어폐가 있군요. 키드님 말씀처럼 모든 문화와 문학 역시 대중이 소비하지 않으면 무의미하잖아요. 한번 읽고 나선 두번 다시 읽지 않는 소모적인 책읽기를 의미하는 것인가.. 생각해봤지만 제 아무리 포장이 그럴듯 해도 한번 읽고 나서 두번 다시 안 들춰보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 경운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 책은 간간이 묶어 신문지와 함께 내다버리죠 ^^)
암튼 저는 책에도 '장르'를 나누고 엄격하게 분류하고 책꽂이를 다르게 꽂는 행위.. 별로 안좋아합니다. <반지의 제왕>을 단순히 판타지로만 여길 수 있을까요? 그 놀라운 상상력과 심오한 철학을 감히 '판타지'라는 영역으로만 밀어넣기엔 안타깝거든요. 반면에 <해리포터> 시리즈는 읽지도 않았고 읽고싶지도 않습니다. 역시 전 장르완 상관없이 작가와 문체와 이야기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듯... ^^;;
14.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책의 "지은이"가 되어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앗.. 혹시 논문도 책에 포함된다면 하나 있을 수도 ㅋㅋㅋ)
하지만 옮긴이도 번역'작가'라고 격상시켜주는 경우엔 3월 현재 41권의 책이 세상에 선을 보였습니다. ^^*
15.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95년 12월에 처음으로 내 이름이 표지에 인쇄된 책을 받아들었을 때.... 현실감이 안나더군요.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 뒤로 대여섯 권째까지는 꼭 대형서점에 가서 한 권씩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공짜로 받는 증정본과 달리, 어쩐지 내 돈주고 한 권 사는 게 본인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져서... 그런데 그 뒤론 돈이 아깝더이다. 껄껄
그리고 요즘엔 뭐 그냥 책 나왔구나.. 정도로 큰 감흥은 없습니다.
16.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은희경, 홍세화, 강준만, 제인 오스틴, 마가렛 애트우드
17.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게으름 덜 부리고 앞으로도 많이 읽도록 노력할 터이니 예리하고 섬세한 필치로 계속 나를 일깨워주시기를...
18.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악... 이것도 정말 늘 어려워요. 블로그 이웃들이 거의 다 벨로와 키드님 통해 아는 분들이라... ㅠ.ㅠ 지난번 연애문답을 나에게 넘긴 보복으로 일단 미아^^에게... 쌘과 파피, 벨로에게도 종용하고 싶지만 ㅋㅋ 만날 화살을 그쪽으로 날리자니 미안하고 걍 저처럼 알아서들 해주시죠 -_-;;
"늘 진행중인 기획과 실천은 항상 미완의 과거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우린 기억하여야 한다."
S선생님, H와 함께 옮겼던 논문집 옮긴이의 말에 S선생님이 쓰신 이야기다. 국문학을 하는 친구의 아내가 대학원 수업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삼 민망하여 책을 뽑아들었다가는 옮긴이의 말만 다시 읽어봤는데 저 글이 왜 그리도 나에게 위안이 되던지.
시기적으로 몹시 늦은 감이 있던 그 책의 출간에 대하여, 거기 수록된 글의 한계나 현재 진행중인 페미니즘 논쟁의 치열함 때문에 낙담할 이유가 없다는 근거로 하신 얘긴데, 어쩐지 늘 조바심내며 흘려보낸 현재들이 모여 쌓인 나의 과거가 항상 미완이라는 자괴감에도 해당되는 말이라 여겨져 공연히(공연히가 아니라 근거가 있는 건가?) 기운이 났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삶 또한 늘 기획과 실천을 진행중이므로 항상 미완의 과거를 가지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내 마음대로 해석할란다.
미완의 현재와 더불어 과거도 완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겁쟁이 투덜이에겐 어쩜 이리도 큰 용기를 주는지. 역시 S선생님은 멋진 분이다! ^^
일단 딴소리 먼저... (난 왜 이렇게 쓸데 없는 서론이 늘 긴지 몰라 -_-;;) 몇달 전 블로그를 시작하며, 여기엔 싸이와 달리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와 신변잡기적인 자랑은 '지양'하며서 책과 번역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하고, 생각을 좀 더 다듬은 이야기들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문득 '식탐'이라는 태그가 제일 크게 주황색으로 떠 있는 걸 보니 새삼 내가 그간 줄곧 대단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신변잡기적인 자랑을 삼가는 대신 오히려 '지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허거걱. 물론 삶은 늘 계획대로 생각대로 풀려 나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걸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반성은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가끔 가서 훔쳐보는 루인님의 글이었던가, 하루하루의 끄적임이 배설 같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는데, 별 부담 없이 낙서 하듯 적어내려가는 이 블로그의 글들이 내게도 크고 작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배설임엔 틀림없지만, 잠시 정신 차리고 되짚어 보니 배설이란 본인에게나 시원할 뿐이지 남들이 지켜보기엔 냄새 고약하고 추잡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에게 한정된 비유일 뿐, 루인님 같은 분의 손가락으로 배설된 글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유머와 재기가 번뜩이거나 사색과 성찰의 향기가 풍기는 이웃 불로거들의 글과 사진들은 그야말로 '주옥' 같다.)
이런 자성 끝에도 아마바처럼 다 잊고 금세 난 또 희희낙락 화장실 낙서 같은 이야기들로 이 공간을 채워가리라는 것 또한 잘 안다. 품위 있고 진지한 생각이 담긴 글쓰기만 하라면 난 아마 미쳐버리거나 원고 10매짜리 알량한 옮긴이의 말을 쓸 때처럼 끙끙거리며 괴로워만 할 뿐 텅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기 십상이니까. ^^;;
암튼 좀 민망하긴 하지만 혼자 옆구리 찔러 절하고 절받는 심정으로 이제부터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 이야기를 살짝 할 생각이다.
원고가 밀리는 바람에 작업 순서가 엉망이 되기는 했지만 하여간 지금은 천문학을 중심으로 과학을 다룬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 나로선 처음 옮기는 과학책이라 의미가 깊기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특별히 옮긴이로서의 최면을 걸지 않아도 은근히 재미가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과학분야의 책을 옮긴 전적도 전무할 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의 책읽기에도 몹시 소홀하여,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과거에 읽은 과학 관련 책이 무엇이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간은 정말로 말랑말랑한 책을 주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독서 측면에서도 말랑말랑 흐물흐물한 책 아니면 지적 허영심을 어떻게든 채워보려는 심보로 인문학 관련 책만 들춰본 듯하다. <TV, 책을 말하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끔 과학 책을 선보이면 우와 재미 있겠다, 읽어봐야지.. 중얼거리다가 결국엔 흐지부지 잊고 만 게 대부분이었다. 흥미로운 소설이나 역사서 같은 건 구매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던 걸 보면 내가 어지간히 과학을 멀리하긴 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수학을 무서워하는 근본적인 사고가 지금까지 작용해 과학마저 덤터기로 거부하는 본능을 보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 생활 속에 아주 밀접하게 침투한 과학(어쩌면 보편적인 상식인데 나 혼자 과학이라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ㅋㅋ)이 실제로는 꽤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터법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세계표준으로 삼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추진되었으며 과거에 쓰이던 야드와 인치, 마일 따위가 자의적이고 나름 독선적인 규정이었던 데 반해, 1미터는 지구 원주의 4분의 1 (그러니까 북극이나 남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을 천만으로 나눈 길이여서, 어느 나라에서도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었다는 것. @.@
문과 출신이라 과학이라곤 생물과 화학만 살짝 거치고 지나갔지만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면 이과반 친구들이 신물나게 괴로워했던 물리나 지학도 꽤 흥미로운 시각에서 공부할 수도 있겠다는 뜬금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물론 원서 뒤쪽에 꽤 골치 아프게 생긴 그래프와 수식들이 보여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있긴 하다 ㅎㅎㅎ)
원래는 본격적인 번역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원서를 일단 끝까지 읽어본 뒤 소설의 경우 필수적인 인물관계나 상황을 설정해두고 비소설의 경우에는 문체와 분위기를 미리 파악해 번역의 방향을 정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첫 과학책 작업이라 처음 번역을 결심할 때도 앞뒤 부분만 조금씩 훑어보고는 분야의 범위를 넓히는 의미에서 무조건 해보리라 작심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고, 혹시나 수학과 과학을 한꺼번에 싸잡아 두려워하는 마음이 책에 대한 멀미로 이어질까봐 염려스러워 본격적인 정독 작업을 건너뛰고 무작정 씨름을 하고 있었기에 나로선 이 책이 재미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___^
올해 안엔 주로 역사서와 소설만 주르륵 계약되어 있으니 다시 과학책을 번역하는 재미를 느끼는 건 한참 뒤로 미뤄야겠지만, 원고를 넘기고 나선 삶 속의 과학을 돌아보는 독서를 이제라도 간간히 해볼 작정을 품었다.
이 고무적인 생각을 연장하여... 이제 생새벽 딴짓은 중단하고 어서 작업에 몰두하자! ㅎㅎ
번역을 생업으로 삼은지 12년째. 남의 글을 옮기지만 말고 이젠 직접 한 번 써보지 그러냐는 말을 가끔 듣기도 하는데 그럴때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뛴다. 유명 번역가들 중엔 등단을 한 문인들도 꽤 되지만, 내 경우 번역은 스스로 글을 창작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의 글을 매만지는 것으로 글쓰기에 대한 만족을 누리는 수단인 것 같다.
원서에 기대어 말을 뽑아내는 것은 그럭저럭 해보겠는데(물론 이 과정에서 아마도 원저자의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는 왜곡을 수없이 저지르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다만 그 왜곡이 최소의 수준이기를 바랄 뿐이다), 텍스트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활자로 인쇄될 글을 만들어 쓰라고 하면 참으로 난감하다. 번역원고를 출판사에 넘긴뒤 얼마간 잊고 지내다가, 출간을 앞두고 역자후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게되면 문득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다. writer's block. 우리말로 옮기기에도 까다로운, 글쓰기의 막막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이라고 해봤자, 특별히 작품해설을 좀 더 심오하게 써달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책을 옮기며 느낀 점을 후기 식으로 짤막하게 쓰면 되는 것인데... 난 왜 그리도 옮긴이의 말을 쓰는 것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쩔 땐 일주일 내내 원고지 10매도 안되는 후기 원고 때문에 끙끙거릴 때도 있는데, 또 우스운 것이 출판사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옮긴이의 말을 쓰지 말라고 하면 몹시 섭섭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개인적으로 역자후기가 없는 번역서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책 판매를 부추기기 위한 단순한 책자랑이든 아니든(대부분은 내용의 재미 여부나 책의 유용성과 상권없이, 옮긴이는 무조건 자기가 옮긴 책이 훌륭하고 재미있고 유익했다고 자기최면을 걸어 후기에 반영해야 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책에 대한 애정이나 정성이 느껴지면 좋은 번역이란 선입견이 들곤 한다. 그런데 역자후기가 아예 없으면, 혹시 유령 번역가를 앞세우거나 이름만 빌린 엉터리 번역서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는 얘기다. 그렇다보니, 옮긴이의 말을 아주 잘 써야만 할 것 같고, 그래서 더욱 괴로움에 휩싸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몇년 전 기획출판을 잘 하기로 유명한 출판사에서 동화를 각색한 책을 의뢰받은 적이 있었는데, 원고를 넘기고 출간일이 다가와도 역자후기 쓰라는 말이 없어 의아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이미 서점에 깔린 책을 들춰보니, 옮긴이의 말 대신 내가 싫어하는 어느 여자 방송인의 추천의 글이 들어 있었다. 묘하게 기분나쁘고 아주 허탈했다. 물론 출판사에서 옮긴이에게 옮긴이의 말을 생략하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내 쪽에서 미리 확인하고 역자후기를 꼭 쓰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는 것이므로 잘잘못을 따질 순 없다. 어쨌든 그 책은 예쁜 포장과 감각적인 그림을 곁들인 기획에 힘입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 때문에 나에 대한 인지도도 제법 높아졌으니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 같이 한 작업이 그런 미진함을 남겼던 까닭인지, 그 뒤로 그 출판사와 일한 책은 기획이 통째로 엎어지거나 출간이 보류되거나 해서 이제 더는 거래를 하지 않게 됐다. 아.. 미수금이 약간 남아있긴 하구나. ㅡ.ㅡ;;
최근에 나온 책에도 옮긴이의 말이 빠진 채 출간 된 게 2권 있는데, 한 권은 출판사 재량으로 아예 나에게 후기 의뢰도 하지 않고 제작을 진행해서 또 한 번 섭섭함을 느끼게 했고, 나머지 한 권은 작년 12월 한참 놀기 바쁠 때에 후기를 의뢰받은 터에 겨우 이틀만엔가 써달라고 해서, 내쪽에서 포기를 한 경우였다. 거의 무슨 만화책 같은 느낌으로 나온 표지를 보며, 옮긴이의 말을 안쓰길 잘했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옮긴이로서의 책임감을 회피한 것 같아 못내 마음이 무거워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반성을 했었다.
그리고 2007년을 맞아 첫 책이 나올 판국인데 단 하루만에 옮긴이의 말을 써야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 아...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투털투덜 주절주절 씨부리는 건 얼마든지 하겠는데, 그 수준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나의 잡문이 활자로 인쇄되어 책 뒤에 실린다고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휴우~
그래도 작년엔 옮긴이의 말을 읽고 감동을 받아 출판사에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는 어느 여사님의 전화를 난생처음 받기도 했더랬다. (재수없게 다시 잘난척 모드?) 하지만 그 전화를 받고 나서 더욱 옮긴이의 말을 쓰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독자들 절반 이상은 아마 옮긴이의 말 따위 안 읽을 지도 몰라!'라고 자위하며 얼렁뚱땅 설익은 후기를 후다닥 출판사에 보내는 일이 더는 불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쓰라면 괴롭고, 쓰지 말라면 섭섭한 옮긴이의 말.. 역자후기쯤은 언제나 거뜬하게 쓸 수 있는 내공을 과연 나는 언제쯤 쌓게 될 것인가. 그런 날은 과연 올까?
키드님을 선두로 이웃 블로거들의 재미난 베스트 문답을 보며 참 흥미롭긴 했으되, 나는 기억력도 나쁘고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는 인간 유형에서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다 보니(다이어리 쓰기를 작파한지 최소 5년은 넘은 것 같다. 이젠 아예 장만하지도 않는다) 난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파피와 쌘이 한 번 더 옆구리를 쿡쿡 찔러주니 또... 정리 못하는 인간이라 더욱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참.. 그냥 수월하게 살면 될 것을 나란 인간은 뭐든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다 판난다.
게다가 또 이렇게 만날 서론이 길다. ㅋㅋ 사진 편집해 올릴 능력도 없으니 단조롭고 별 재미도 없을 것이라고 미리 경고 ^^;;
2006 최고의 책 3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청미래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지음/조석현 옮김/이마고 - 젠틀 매드니스/N.A. 바스베인스 지음/표정훈,김연수,박중서 공역/뜨인돌
민망하게도 꼽아보니 1년동안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이 50퍼센트도 되지 못했다. 조지 마이클이 토크쇼에 나와 '책은 훌륭한 가구'라고 한 말에 힘입어, 사람들이 흐뭇하게 장서용 책을 사들인다는 말에 나도 킥킥 웃으며 뿌듯해 했지만... 일 때문에 하는 번역과 검토 이외의 책을 좀 더 많이 읽지 못하는 내 게으름이 참 민망한 수준이다. 겨우 열권 남짓 읽은 책 가운데 어렵사리 골라봤다. ㅡ.ㅡ;;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좋아서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을 또 사보았으나 실망스럽긴 했지만, 이 책은 사랑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터무니 없는 착각이자 자기 최면인가를 냉소적이면서도 유쾌한 사유로 엮은 책이어서 단숨에 읽었더랬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다양한 신경증 환자들의 놀라운 임상기록을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우울증 환자이신 엄마 때문에 신경/정신 장애를 다룬 책들에 아무래도 호기심이 많이 가는데, 황당하고 놀라운 여러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질 수 있었던 듯. <젠틀 매드니스>는 가장 우아하고도 품격 있는 광기라고 애서가들이 이름 붙인 '애서광' 증상을 지닌 여러 서양인들의 특이한 삶과 책에 대한 애착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희귀본을 소장하기 위해 책을 훔치기까지 하며 개인 문고를 가꿔나가는 저들의 문화는 사실 우리에게 많이 낯설다. 1000페이지가 넘는 사전 두께라 사실 다 읽진 못했지만, 내용보다는 순전히 장서용으로 장만해놓고 쓰다듬으며 뿌듯해하는 책이다. ^^;; 게다가 이런 두께의 비대중적인 책을 옮기고 출간하기로 결정한 관계자들에 경의를 표하고 싶기도 하고, 읽지도 않으면서 사들여놓고 그저 좋아라 하는 책 허영심의 발로에서 목록에 넣었다고 할 수 있다. ㅋㅋ
2006 최고의 영화 3 - 수면의 과학 - Good Night, and Good Luck - 왕의 남자
올해도 영화를 그리 많이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본 영화 가운데 고를 수밖에 없었다. <수면의 과학>은 당당히 제일 먼저 손꼽을 수 있었는데, 나머지는 생각 좀 해야 했다. <Good Night, and Good Luck>은 마녀사냥 같은 매카시의 공산주의 색출 열풍이 몰아치던 1950년대 미국의 정직한 언론인을 다룬 영화였는데, 내가 한 때 몹시 좋아했던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각본을 맡아 훌륭하게 연출을 해내기도 했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도 볼 수 있어 좋았을 뿐더러, 거지발싸개에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 언론의 행태와 비교되는 영화속 실존 인물의 모습이 대단히 멋졌다. 당시 TV 방송에선 저널리스트가 담배를 피우며 진행을 하던데, 그 모습이 어찌나 멋진지 *.* 영화관을 나오며 흡연의 욕구가 마구 용솟음치기도 했던 영화다. ㅋㅋ <왕의 남자>는 동성애 코드와 연산의 인간적인 고뇌, 광대패거리의 슬픔, 한복의 아름다움 따위가 잘 어우러져, 푸짐하게 잘 차린 잔칫상 같은 느낌의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6 최고의 공연 3 - 벽을 뚫는 남자 - 미스터 마우스 - 형제자매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본 뮤지컬 <벽뚫남>은 2층 S석이라 시야 확보는 좋았으되, 좌석이 좁아 무릎이 앞 벽에 닿아 불편했던 것을 빼면, 엄기준과 해이의 적당한 호연과 조연들의 열정적인 연기가 어우러져 프랑스 코미디의 특유의 익실과 재치의 묘미를 짜임새 있게 보여준 공연이었다. <미스터 마우스>는 소극장에서 처음 본 뮤지컬이었는데,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이나 흡입력 같은 건 없어도 서범석의 담백하고 진솔한 연기와 가슴 아픈 스토리 때문에 심장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공연 후반 내내 엉엉 울었더랬다. 가격 대비 몹시 만족했던 뮤지컬 ^^;; <형제자매들>은 친구따라 무작정 강남가는 격으로 내용도 전혀 모르면서 자그마치 7시간 반이나 하는 러시아 원어 연극이라는 얘기만 듣고 가서 봤는데 오후 2시부터 시작해, 가부키(물론 본 적 없다)처럼 중간에 저녁 먹는 시간도 있고 밤 10시 넘어 끝나는 놀라운 마라톤 공연이었다. 가끔 지루하다 느낀 적도 있었지만, 스탈린 시대 농민들의 애환을 다룬 내용은 다른 언어와 자막의 벽을 넘어 찌릿하게 마음을 울렸고, 막이 내린 후엔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기립박수를 오래오래 보냈다. 뮤지컬은 가끔 봤어도, 진지한 연극을 본 것이 워낙 오랜만이라 각별히 인상적이었던 데다, 20년째 같은 배우들이 같은 연극을 계속 무대에 올리고 있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드라마 극장(? 정확하지 않음^^)의 열정적인 팀웍 또한 감동이었다.
2006 최고의 문화생활 3 - 장 뒤뷔페: 우를루프 정원 展 - 이면展
전시회를 그닥 많이 다니지 못한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둘 밖에 못 고르겠다. 클레전과 인상파 거장전은 전시장을 나와서 전시의 성의없음에 마구 화가 날 정도였고, 롭스&뭉크 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나쁨과 미진함 때문에 덕수궁을 나오자마자 마구 단 것과 카페인이 땡겼더랬다. ^^;;
12월의 완전 끝자락에 르네 마그리트 展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나는 초현실주의 그림이 별로인데다, 키드 님과 달리 르네 마그리트 그림은 내 취향과 좀 거리감이 있다 ㅎㅎ), 내가 극구 우겨 보러갔던 장 뒤뷔페 전시회는 별 기대 없이 갔다가 대박을 건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프랑스에선 국민화가로 이름이 높다는 장 뒤뷔페의 작품이 대거 전시된 알찬 기획인 것도 훌륭했고, 작품을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의 맛깔스러운 소개도 재미 있었을 뿐더러, 가장 중요하게는 한 사람의 작품 세계라 보기엔 몹시 놀라울 정도로 폭이 넓고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마구 행복해졌다.
그래서 부러 시키지도 않은 전시 품평서를 써주기도 할 정도였는데 ^^;; 평일 목/금엔 밤 8시반까지 전시를 연장할 뿐만 아니라, sk멤버십 카드가 있으면 평소에도 2천원 할인, 오후 6시 이후엔 50%나 할인해준다. 그래서 일행들 모두 단돈 5천원 내고 들어가 보면서 만오천원짜리 전시로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했음 ㅋㅋ 전시 감상은 정민공주 데리고 한 번 더 보러 갔다 온 다음에 올릴 계획인데 과연.. 1월 28일까지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한다.
이면전.. 은 내가 아는 분이 소속된 그룹 전시회였는데, 순전히 팔이 안으로 굽는 논리로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음 ㅋㅋ... 내가 최초로 전시작품을 돈 주고 산 역사적인 기록도 있고 해서.
2006 최고의 지름 3 - 필리핀 보라카이 여행 - 변수옥 화가의 판화 작품 2점 (사진 가운데 맨 오른쪽 ^^;;) - 롤러 스탬프 세트
ㅋㅋㅋ 마지막 세번째 것 때문에 고민 좀 오래 했는데, 정가 4만8천원이나 하는 책 <젠틀 매드니스>를 넣을까 하다가 가격대비 만족도로 봐선 아무래도 롤러 스탬프를 넣어야할 것 같아 그렇게 했다. 롤러 스탬프란... 말 그대로 예쁜 무늬가 둥근 롤러에 새겨져 있어서 손잡이를 잡고 죽 돌리면 띄 모양의 스탬프가 찍히는 건데, 완전히 재미 붙여서 선물 할 일 있을 때마다 포장지 대신 두툼한 색지나 갱지 사다가 찍어서 포장해 주며 혼자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어제도 조카들이 놀러와서 공연히 이면지에 수십장 찍고 놀다가 갔는데... 스탬프 잉크가 좀 아깝긴 해도 그 마음을 내 익히 이해하기 때문에 그냥 냅뒀다. ^^;;
2006 최고의 드라마 3 - 굿바이 솔로 - 연애시대 - Grey's Anatomy
이건 이웃들과 너무 비슷해서 설명이 필요없을 듯;;; 요새 케이블에서 <꽃보다 아름다워>를 재방해주고 있는데, 또 넋놓고 보면서 노희경의 대사에 감탄하고 있다. *.* 세 드라마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가슴을 저미듯 대단히 공감 가는 현실적인 대사와 주옥 같은 표현으로 이어지는 잔잔한 내레이션, 분위기에 딱 맞는 배경음악인 듯 싶다.
2006 최고의 삽질 3 - 재작년에 거금 8백만원이나 번역료를 '완전히' 떼먹은 출판사 직원이(원래 좀 아는 사이였고 소개할 당시엔 그 출판사를 퇴사한 상태) '미안해서' 소개한 신생 출판사 일 때문에 다른 일 제쳐두고 연달아 2권이나 번역했는데, 10달 넘도록 번역료도 못받고 공연히 다른 일만 마구 밀렸던 일. 더욱이 돈 받을 욕심에, 얼굴 팔리는 거 몹시 싫은데도 책 소개 나오게 된 DMB 방송에 인터뷰도 해줬는데! 아.. 신경질나. - 웰빙 좀 추구해보겠다고 거금 5만원씩이나 주고 사들인 마리안느와 아마존 화분 죽이기(아직 안죽었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ㅜ.ㅡ;;;) - 그밖에 자잘한 삽질들은 많았는데... 딱히 뭘 꼽을지 모르겠다. ^^;; 나중에 생각나면 삽입하든지 하겠음
2006 최고의 음반과 싸가지, 안습 지름엔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다. 음반은 워낙 잘 사지도 않고, 또 잘 듣지도 않는 듯... 몇개 산 게 있긴 한데 까칠해져선 열심히 일할 땐 음악도 귀에 거슬리다보니 잘 찾아듣지도 않고, 찾아 들을 때도 익숙하고 편한 것만 고르게 된다. 사놓고 후회하는 물건도 좀 있지만(가령 백화점 세일에서 산 만원짜리 낙타색 미니스커트라든지, 몇달째 포장조차 풀지 않은 요가매트라든지 ㅋㅋ), 워낙 지르기까지 심사숙고 하는 인간이라 크게 지르고 후회하는 물건은 없어 다행이다.
대리번역과 관련하여 지적 사기에 대한 글을 쓴 게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출판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사기극이 연이어 불거져 나오는 걸 보니 씁쓸하기 그지 없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출판계는 물론이고 문화계며 방송계에서 스타로 군림하며 뒤어어 책을 여러 권이나 출간한 한젬마는 순전히 얼굴마담이었고 정작 발로 뛰어 취재를 하고 글을 쓴 사람은 매번 따로 있었다는데(여기까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니 전혀 놀랍지도 않다), 괘씸한 건 이 여자와 일부 출판사가 대필 작가는 없다고 박박 우기며 되레 손해배상 소송을 운운한다는 점이다. 참 얼굴도 두껍다.
늘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던 마광수 교수는 제자의 시 한편을 너무도 당연히 자기 시집에 넣어 출간하고는 시치미를 떼다가 제자가 이의를 제기하자 출간된 시집을 전량 회수 폐기하기로 했단다. 교수와 제자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시집 폐기를 결정했다는 것만 보아도 표절이 분명하다는 얘긴데... 제자와 얘기를 나눈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고 믿었다면서, 출간된 시집엔 일언반구 표시도 하지 않았다는 마광수 교수의 생각 자체가 웃긴다.
엄청난 물량의 광고와 번역가의 위상에 힘입어 작년 내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던 <인생수업>은 표지와 속지 그림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출판사 사장이 불구속 기소됐단다. (내가 이래서 베스트셀러를 잘 안 읽는다니까!) 유명한 캐나다 사진작가의 사진들을 쓰고 싶어했으나, 사진작가 본인이 책에 자기 작품이 쓰이는 걸 거절하자 다른 사람에게 아주 똑같이 베껴 그리게 해놓고는 '영감을 받아서 그렸다'는 알량한 문구를 책에 넣었다가, 문제가 되어 가처분신청을 받자 '장사는 계속하면서' 표지를 또 은근슬쩍 다르게 바꿨다는데... 내가 보기에도 여전히 표절이더라! 참.. 양심도 없다.
맨왼쪽은 원작, 가운데는 초판, 오른쪽은 변경한 책이란다
출판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제 아무리 '문화사업'이라며 자부심을 갖고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정작 처절한 생존을 위해서는 '문화' 보다 '사업'에 더 힘을 쏟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출판계에서도 '관행'이라는 뻔뻔한 명목으로 크고작은 사기극을 미화하거나 부도덕한 대필이나 표절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반복되어 너도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습관처럼 박혀 있던 잘못들이 이제라도 하나둘 발각되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져 단죄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차라리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들은 스타 작가와 번역가를 전면에 내세우며 실질적인 대필작가나 구성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는 걸 '독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외국엔 '공저' 체제가 자리잡혀 있는 반면, 우리나라엔 '공저'라고 하면 이름을 앞세운 유명인사도, 실질적인 작가도 둘 다 불신하고 외면하면서, 이번 사건처럼 대필이나 대리 번역 의혹이 불거지면 완전히 매도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독자들의 성격이라는 얘기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출간한 회사의 사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얘긴데, 기사를 보며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독자들 수준을 너무 평가절하하는 건 아닌가 발끈해서, 일단 정직하게 책을 내보는 시도부터 해보지 않는 출판인들을 비난하는 마음이 앞서긴 했다. 하지만 정지영 아나운서를 앞세운 대리번역 사건에서 일부 독자들과 변호사가 집단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인 걸 보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지난번 대리번역 사건에서 제일 나쁜 건 물론 출판사지만, 정지영 아나운서를 믿고 그 책을 사본 독자들이라면 그 여자의 팬이라는 얘기니 그 여자를 감싸줄 만도 한데 오히려 배신감 운운하며 심리적인 손해를 배상하라고 나서는 걸 볼 때, 역시 스타 작가나 번역가를 앞세워야 장사가 잘 된다는 출판사들의 논리를 입증하는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래서 출판계엔 내부인들만 아는 거대 권력이 존재한다. 책만 내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이른바 '스타 작가' 또는 '스타 기획자'들은 막대한 계약금을 받고 이 출판사, 저 출판사를 오가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물론 부정직한 출판사들이 인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사이가 나빠져 작가가 출판사를 옮기는 경우도 많지만, 일부 악덕 문인들(아.. 이들에겐 '문인'이라는 말도 아깝다! 상업적인 글쟁이 정도가 딱이라고나 할까... )은 상도덕이나 인간에 대한 도리 따위는 나몰라라 한 채 사리사욕만 채우기에 급급하다. 출판 기획도 하고 번역도 하는 저 유명한 시인 X모씨는 출판사를 오갈 때 마다 아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별도의 출판사처럼 운영하며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이는 것으로도 악명 높다. 예전엔 나도 그의 글과 번역을 좋아한 적도 있지만, 이젠 분명 확신한다. 출판계에서 독불장군처럼 전대미문의 권력을 휘두르는 X모씨가 결코 번역 따위에 힘쓸 시간은 없을 터이므로, 그의 이름으로 나오는 번역서도 분명 힘없는 새끼번역가의 노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이렇게 거품을 물고 불만을 품어도, 그가 번역을 하든 엮어내든 출간하는 책이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걸 볼 때, 그에 대한 출판계와 독자들의 수요는 한동안 끊이지 않을 것이고 돈 많은 출판사들은 계속해서 호시탐탐 그를 스카웃하려고 애를 쓸 게 틀림없다. ^^;; 나는 그저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과연 X모씨가 다음번엔 어느 출판사로 옮겨가 또 어떤 새 이름으로 책을 낼 것인지 지켜볼 뿐이다. (그나마 예전에 틀어졌다 다시 돌아간 이번 출판사와는 공생관계를 1년도 넘길 모양이어서 신기하다)
아무튼 자금력 딸리고 '사업적인' 두뇌와 인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출판사는 나날이 도태되고, 이름도 알쏭달쏭한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린 거대 출판사들만 출판시장을 독식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과정이라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는 출판업자들의 몸부림이 범죄수준으로 치닫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한데, 이렇게라도 가끔씩 고름이 터지듯 문제가 불거지다 보면 나름대로의 자정작용이 생기고 도의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현재로선 독자들의 역량이 못미친다 하더라도 차츰 힘 있는 출판사들부터 구성작가나 대필작가의 이름을 떳떳하게 공저자의 이름으로 책표지에 실어 대우하고, 모든 유명인사들이 전부 뛰어난 글쓰기 실력을 갖출 순 없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도록 만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정직한 출판문화가 자리잡는 터전이 되지 않겠나 싶다. 또한 전략적인 광고에 힘입은 대형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 시장마저 완전히 독식하는 기형적인 시장에서 꿋꿋하고 의연하게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작은 출판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독서인구의 다양화도 실현되면 좋겠다.
그래야.. 개인적으로 번역료를 떼이거나 받기 어려울 확률이 높은 작은 출판사와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서글픈 다짐을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니까 ㅜ.ㅡ... (작년에 이 다짐을 어기고 계약 출간한 책 몇 권은 역시나 번역료를 "아직도" 못 받았다. 어흑...)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하여 "아직도"는 추후 삽입했음^^))
아무튼 이번 사기극의 결과를 나는 계속 주시할 것이다. 출판이라는 문화 사업이 '사업' 보다는 '문화' 쪽에 마음 놓고 힘을 실을 수 있는 시대가 언젠가는 와줄 것이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