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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30 5분 스케치 - Basic 6
  2. 2016.12.19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5
  3. 2016.06.13 신기하게도... 5
  4. 2016.03.07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2
  5. 2016.02.15 옛그림을 보는 법 1
  6. 2015.12.31 2015년에 읽은 책 8
  7. 2015.09.09 케이트 10
  8. 2014.06.03 중고책 13
  9. 2014.01.06 2013년에 읽은 책 6
  10. 2013.11.25 그럼 그렇지... 8

5분 스케치 - Basic

책보따리 2016. 12. 30. 01:05

독서라고 하기 뭣하지만 그래도 책의 형태이니 꼭 연말집계에 넣고 말테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알라딘에서 셜록 책베개였나 책쿠션이었나 사은품에 눈이 어두워 이 책 저 책 주워담다 눈에 띄어 충동구매한 책이다. 베이직과 카페 스케치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암튼 10월 초부터 시작해 이 한권을 끝냈다. ㅎㅎㅎㅎ

언제고 시간이 되면 취미 삼아 그림을 배우러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년 반복하면서도 ㅠ.ㅠ 입때(!) 실천을 못하고 있던 차, 일종의 독학용 그림 연습서를 발견한 것. 0.7mm 파버카스텔 펜도 하나 들어 있어서 줄곧 그걸로만  스케치에 힘썼다. 얇은 펜도 하나 사야 한다고 여기저기 찾아보며 생각만 하다가 결국 못샀네그려. 펜이 굵다보니 촘촘하게 선을 긋거나 색칠을 해야할 때면 꼭 덜 마른 데를 손바닥으로 짚어서 짜증나게 이리저리 번지게 한 뒤 으악 비명을 질렀다. 

처음부터 이만하면 정말 잘 따라그린 게 아닌가 자아도취에 빠져 한동안 흐뭇해했으나, 새삼 해시태그 5분스케치로 찾아본 결과 이 책을 사 연습할 정도면 그림 실력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 ㅠ.ㅠ 내가 찍은 사진인 줄 착각할 만큼 똑같은 그림 너무 많더라. 

원본과 달라지더라도 틀린 게 아니라 개성으로 받아들이라고, 연필 밑그림 그리지 말고 직접 펜으로 확~ 5분 정도 시간을 정해두고 그리라는 건 마음에 든다.  

"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간절함'과 '용기'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똑같이 그리면 카피가 되고 다르게 그리면 작품이 됩니다."

"얼굴 스케치는 눈의 위치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얼굴의 중간에 위치하지만 고개를 숙이거나 머리의 윗부분을 부풀렸을 경우에는 중간보다 낮아집니다. 얼굴의 윤곽선을 그릴 때 항상 눈의 위치를 고려하여 스트로크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혼자 노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좀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스케치가 좋아보여 시작했다면 진짜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좋아지기 시작했다면 지금부터 집중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을 싹 걷어내고 오직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만 집중하다 보면 내 손은 마치 프린터처럼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런 것이 바로 창작의 희열임을 느끼게 됩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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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나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요즘 이 나라를 들끓게 했던 괴물들의 행동도 그러했고 바다 건너 들려오는 테러나 총격 사건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닭그네 순siri 사건을 보며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했지만, 대체 그들의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궁금함도 분노 못지 않았을 것 같다. 당연히 심리학자나 정신분석가들에게 그들의 정신 상태를 분석 진단하는 의뢰도 많았던 모양인데, sns에 올라온 어느 전문가의 글귀가 기억난다. 일단 그들의 정신과적인 문제를 알아보려는 게 불필요한 호기심이라고 말이다. 법률을 위반했으니 법대로 심판하여 탄핵하고 끌어내리면 된다는 논지였던 것 같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훗날 누구든 연구자나 언론인이 꼭 나타나서--책 팔아먹을 욕심에 헛소리 지껄이는 이들 말고--그들을 제대로 연구해주거나, 최측근의 양심선언이라도 제대로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인간이 되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파헤쳐, 다시는 그런 괴물이 나타나지 않도록. 그들을 '미친'X이라고 욕하는 건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조울증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으로서 그렇게 느끼니깐 정말이지 동급으로 취급 안하면 좋겠다. 모든 병증엔 급이 있겠으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우울증 환자와 동등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으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수 클리볼드 지음/홍한별 옮김/반비(2016)

아이고 책 후기 하나 쓰려고 시작했는데 웬 잡설이 이리도 긴가.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사건 직후 아마도 '괴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표지의 사진 속 아이의 맑은 눈망울에서 느껴지듯 아이는 괴물이 아니었다. 곁에서 아이를 평생 지켜본 부모로서도 이젠 도저히 알수 없는 부분이 영영 묻혀버리고 말았지만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아픈 아이였던 거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다. 그 학교 학생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 두 아이가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학교에 들어가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자살했다.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바로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다. 

저자는 독자들이 아들인 딜런을 용서하길 바란다거나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당부하려고 책을 쓴 게 아니다. 사고 이후 16년 세월 도저히 대답할 길 없는 의문과 고통, 눈물 속에 살았을 이 어머니는 자신도 죽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하지만 결국 주변인들의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그리고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죄의식과 빚을 갚아보겠다고 결심한다. 사고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자살예방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아들 딜런이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끊임없이 꿈꾸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이지만 결국 콜럼바인 사고는 지은이에게 아들이 가장 불행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자살 기도였던 거다.

사건 직후 사람들은 당연히 딜런의 부모를 온갖 방법으로 비난했다. 어떻게 부모가 자식의 일을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가 총기를 구입했고 집안에 폭탄을 숨겼었고, 지하실에서 무서운 폭력성을 드러낸 동영상까지 찍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냐고! 길고 긴 재판으로도 판명났지만 부모들은 정말로 '몰랐다'. 문제아의 부모 뒤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것은 흔한 사회적 통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애가 괜히 비뚤어질 리가 있겠냐고. 뉴스에 간혹 나오듯 자식을 학대하거나 심신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문제 부모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란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p8-9)

위에 인용한 문장은 책 맨앞에 실린 심리학자 앤드루 솔로몬의 해설 부분이다. 대다수의 짐작과 달리 딜런의 부모는 자식들을 사랑으로 기른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딜런은 십대치고(17살이었다) 부모와 대화도 많은 편이었고, 형과도 사이가 좋았다. 나중에 발견된 딜런의 일기장에서도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믿음, 미안함이 증언된다. 그러니까 부모가 아무리 주의 깊게 지켜보며 사랑을 쏟았어도 딜런에겐 '충분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고로 억울하게 다 큰 자식들을 잃어버린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가해자의 엄마가 책을 쓴다고 하면 대체 뭘 잘했다고 책을 쓰냐고 비난부터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짐작했기 때문인지 지은이의 태도는 시종일관 대단히 조심스럽다. 자식을 가능한 한 옹호하려는 태도보다는 부모로서 자기가 뭘 놓쳤는지, 사건의 전후 사정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된 아들의 행동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자기 이야기를 최대한 충분히 들려주어서, 다른 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물론 사건 기록의 재구성과 딜런이 남겨둔 흔적들 말고는 가해자 아이들이 '정말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절렀는지 말이다. 그래서 부모로서 더욱 고통스러울 테고. 어쨌든 지은이는 자기 아들이 '자살'했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 흔히들 자살이 가장 비겁한 선택이라는 말도 하지만, 의사 결정 능력이 비정상일 때 내린 선택을 본인의 굳은 의지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심리학자와 지은이의 의견에 나도 공감한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차라리 그 용기로 살아보라고? 자살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용기 여부와는 상관 없지 않을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의 엄마인 저자의 고통이 느껴져서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지만, 알량한 후기를 쓰는 것도 몇날 며칠 적었다 말았다 한 단락씩 참 쓰기가 어려웠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무서운 진실 앞에, 꼭 읽어보아야할 책이라는 추천사도 들어있지만... 나로선 엄청 아픈 손가락인 큰조카 J의 생각도 많이 나면서 위안도 받고 또 새로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과정이었다. 제도권 교육의 테두리를 힘들어하고 못 견뎌하며 자꾸 엇나가는 아이를 보며 '대체 왜?' 커다란 의문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부모탓을 한 적도 있고, 종종 어려서부터 너무 오냐오냐하며 애 버릇을 망친 할아버지와 고모 탓이라는 비난도 많이 들었다. 원칙이 무너져 훈육에 실패한 케이스라나. (심지어 이 말은 위탁학교 관계자에게 직접 내가 들은 말이다.)

이기적인 위안은 아이의 문제가 죄다 문제 부모 탓은 아니라는 전문가의 견해다. 어쩌면 내가 J를 망쳐놓았다는 비난과 자책에서 살짝 놓여날 수 있는 빌미가 생긴 거다. 봐라, 딜런처럼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정환경에서도 타고난 기질 탓에 우울증과 폭력 성향에 기울어질 수도 있다. 딜런에 비하면 J가 저지른 갖가지 일탈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도 충분히 사랑으로 키우지 않았나.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은 또 다시 엄청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를 면밀히 지켜보아도 놓치는 것이 있고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니, 맙소사. 아이가 숨기려고만 들면 아무리 대화 많은 부모라도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아이인 경우엔 오죽할까. 

마침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1월에 한겨레신문에 이 책에 대한 정희진씨의 칼럼이 실렸다. ^^; 옴메 기죽어 그러면서 움츠러들어 더 마무리가 괴로웠던 것 같다. 감히 쨉도 안되는 주제에 무슨.. ㅋㅋ 

"이 책은 해설(앤드루 솔로몬!), 추천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명문이다."라는 단락이 칼럼 마지막 문단의 첫 문장이다. 당연히 글을 링크해야겠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9947.html#csidx455111f6840324297cd3be3adda51b6 


최소한 모든 교육자들과 부모들이 다 읽고 생각해보아야할 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공동체 육아론과도 일맥상통하고, 제 아이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태도에도 일침을 가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추천사(조한혜정)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더욱 강력한 이유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p8-9)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병의 증상이고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징후다. 대부분의 자살은 한순간에 충동적인 결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자살은 대부분 고장난 사고와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싸워오다가 마침내 그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일어난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기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죽고 싶지는 않더라도,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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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책보따리 2016. 6. 13. 21:42

KBS 주말연속극의 충성스러운 시청자이신 왕비마마가 요즘 열심히 보는 드라마가 있다. <아이가 다섯>이라고... 근데 이상하게도 5월부터 주말마다 집안에 이런저런 행사며 일이 생겨서 본방을 계속 놓쳐 노친네의 아쉬움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또 못봤네.... 그러시면서.

해서 얼마전 재방송 스케줄을 찾아 못본 회차들을 몰아보기 해드리다가 재미난(?) 상황을 맞닥뜨렸다. ㅋㅋ 별건 아니고... 등장인물들의 서점 데이트 장면에서 내가 번역한 책이 화면에 비춘 것!

놀랍게도 나는 한눈에 책을 알아보았다. 어라... 출판사에서 PPL을 시도했나? 그러기엔 너무 휙~ 성의없이 스쳐지나가던데... 

암튼 시작하는 연인들인 신혜선과 성훈의 알콩달콩한 서점 장면에서, 책 표지 예쁘다는 대사까지 등장!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엄마! 저거 내가 번역한 책이야! ㅋㅋㅋ

나중에 방송 끝나고 후르륵 올라가는 크레딧에서는 통 제휴사나 협찬사 이름을 찾아보는 게 불가능했고, 내가 장면 캡처에 능한 사람도 아니라 그냥 그러려니 했었는데... ㅎㅎ 누군가 드라마 후기 올리며 곁들인 사진에 마침 그 장면이 있어서 살짝 퍼왔다. 

백수 되고 나니깐 익명 블로그에만은 늘 비밀에 부쳤던 책자랑도 막 하고 싶은 심리가 드는 건가? ;-p 캡처화면을 보니 확실히 PPL은 아니고 우연히 현장에서 표지 색감 때문에 골라든 책인듯, 일부러 책 제목을 CG로 지운 것 같다. 제목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래서 여기다 올려둘 용기도 생겼지만... 

하여간에 신기하다. 마침 그 드라마를 늦게라도 챙겨본 것도, 3월에 출간된 그 책이 새삼 드라마에 소품으로 사용된 것도, 내가 한눈에 그 책을 알아본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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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겨우) 올 2번째 완독 책이다. -_-;;

스콧 스토셀/홍한별 옮김/반비/2015


​<애틀랜틱>지의 에디터이자 여러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작가 스콧 스토셀이 30년에 걸친 자신의 불안증 병력을 눈물겹도록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철저한 자료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불안'을 속속들이 해부한 책이다. 작가 본인은 '불안에 대한 문화와 지식의 역사'를 집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던데 그 말이 딱 맞다. 

인류가 탄생한 후부터 불안이라는 감정이 없었을 때는 없었을 테고, 그렇다면 인간의 여러 감정 중에 불안이 언제부터 주목을 받고 병적인 기질로 받아들였는지,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기원전 사상가들의 저서, 성경을 거쳐 최근 심리학자, 정신과의사들의 이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었는지 총망라 되어 있다.

그러니... 내가 이 책 한권을 끝내는 데 엄청 오래 걸린 것도 다 그럴 만하다. ㅋㅋ 저자 본인의 에피소드와 가족력 부분은 아무래도 재미나게 읽히다가 온갖 이론과 약물과 학계 이야기가 나오면 마구 머리가 복잡해져서리...

그래도 대체로 재미나고 유익한 독서였다. 아마도 50년 넘게 우울증을 친구처럼 달고 계신 환자를 보필하고 있는 관계로, 왕비마마가 과거에 드셨던 약과 현재 드시고 있는 온갖 약이름이 다 언급되고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뭐 물론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유전적으로 내가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높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서도) 계단 공포증이라든지 설치류 공포증, 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 이런 것들이 다 불안증 환자의 자질이라는 사실도 깊이 실감했다. ㅎㅎㅎ 내가 어딜 가든 길을 잃을 것에 대비해 운전하면서도 미리 표지판을 살펴두고, 산에 갈 때 꼭 나침반 챙겨가고 ^^; 매사에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경우의 수를 미리 꼽아보는 등등... 아이고 참... 그러면서도 이 정도 살면 이 책의 지은이에 비하면 훌륭한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ㅋ


지은이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턴가 구토공포증 때문에 학교 가기가 무서웠고, 비행기도 무서워하고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도 무섭고... 중요한 순간이 닥칠 때마다 그 스트레스로 무너져내렸단다. 결혼식 때도 당연히. 암튼 그래서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5, 6세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온갖 약물과 술과 상담으로 불안에 맞서 버텨나가는 중이다. ㅠ.ㅠ 안타깝게도 불안증은 지은이의 어머니와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저자의 어린 딸에게도 이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연구한 결과 어릴 때 아주 잠깐 스트레스에 노출되어도 뇌에서 세로토닌과 도파민 시스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병적인 불안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영장류 동물을 지켜보니 그 영향이 손자녀대에까지 미친단다. 으악, 그럼 나의 조카들도 혹시?? ㅠ.ㅠ

아주 오래전 첫조카 ㅈㅁ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가족을 그리고 그 밑에 특징을 써내는 수업을 했는지 나중에 공책을 가져왔는데 딴 사람은 다 까먹었어도 울 엄니 아부지에 대한 묘사는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 돈을 잘 준다 
할머니: 걱정이 많다
ㅠㅠ

인간의 22번 염색체에 있는 COMT 유전자에 데이비드 골드먼이라는 사람이 "걱정꾼-싸움꾼 유전자"라는 이름을 붙였다는데, 그러니깐 지구상 인구 가운데 25퍼센트(울 엄마랑 나 포함!)가 걱정꾼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지은이가 불안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혹시 그 놀라운 방법이라도 읽게 되기를 몹시 바라며 책장을 넘겼지만, 당연히 그런 건 없다. 이 책을 쓰느라고 또 여러 종류의 불안에 휩싸여 전전긍긍했던 이야기가 더 나올 뿐... 책 제목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서 이미 해답은 없다는 걸 직감했어야 했나? ㅎㅎ 원제는 My Age of Anxiety. 

낙담하는 독자(와 지은이 스스로)를 위한 마지막 위로는 많은 경우 "불안이 예술적, 창의적 재능과 같이 나타난다"(414쪽)는 주장이다. 찰스 다윈, 프로이트, 에밀리 디킨슨, 헨리 제임스, T.S. 엘리엇, 카프카, 프루스트... 우디 앨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휴 그랜트...  병적으로 불안에 시달렸지만 재능 있는 예술가들의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타인들의 감정과 사회적인 분위기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살피기 때문에 직업적인 성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고... 

어쩌면  "불안은 타인지향적 인간의 숙명이자 천형이다."라고 적은 옮긴이의 말 한 줄에 모든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
옮긴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어휴... 교재나 학술서 말고, 인문교양서 치고 주석이 이토록 빽빽하고 양 많은 책은 보다보다 처음이어서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번역하느라 얼마나 빡세게 고생을 했을지 웃음이 나다가 안쓰럽다가 괜히 화도 막 나고 그랬다. (어떻게 이런 책을 인세로!!!!) 




암튼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나의 별점은...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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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와우북 페스티벌이나 여러 도서전엘 가도 직거래로 책값을 할인받아 살 수 없다는 건 괜한 '장서욕' 충만한 나 같은 사람들에겐 좀 억울한 일이다. 도서정가제를 실시해야 거대공룡 같은 온오프라인 서점의 횡포에서 벗어나 출판계도 살아나고 작은 출판사들도 기를 펼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지... 듣기로는 책이 죄다 안 팔려서 아주 더 죽을 맛이라는 듯. 


하여간에 도서전 할인찬스를 쓸 수 없게 된 마당에 난망해하다가 건너건너 알게 된 '지인 할인 찬스'로 작년에 돌베개 출판사의 책들을 대거 장만했었다. <한국의 초상화>, <책의 탄생> 같은 비싼 책도 큰맘먹고 질렀고, 늘 탐내기만 하던 <열하일기> 시리즈도 입수했다. 그러고는 또 차일피일 쌓아두다가 이것저것 돌아가며 건드리기만... ㅋㅋ 그 가운데서 그래도 제일 만만하게 완독해 끝낸 첫 책이 <옛그림을 보는 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우리 옛그림 구경은 특히나 뭘 좀 알아야 왜 저렇게 그렸을까 이해가 가능한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풍월이 아무리 많아도 한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나가는 듯, 반복학습을 해도해도 별 소용이 없다.


이 책도 열심히 읽고 베껴적어두긴 했으나 과연... 그림을 척 보자마자 내 나름으로 잘 해석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통 모르겠다. 무슨놈의 상징과 의미가 그리도 많은지!! ㅋㅋ


산수화 속 나무 하나 풀포기 하나에도 화가의 주관적인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고, 화면에 보이는 것 이상의 깊은 고사를 바탕으로 한다니... 1:1 상징 대입법도 간신히 알아먹은 나로선 앞으로도 도무지 옛그림 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박식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


재미있었던 건 옛날 그림들은 주로 족자 형태인데, 멋진 그림을 보란듯이 노상 걸어두고 자랑하는 건 군자의 미덕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엔 둘둘 말아두었다가 보고 싶을 때만 펴서 감상하고 간혹 그럴 때 벗들을 청해서 감상회 겸 시를 짓고 술자리를 즐겼단다. 일종의 집단 풍류. 


그림 선물을 할 때도 받는 사람의 상황에 맞게 그림의 주제를 정하고 행운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단다. 닭 그림은 벼슬 때문에 출세를 상징한다지만, 잉어, 쏘가리, 메기, 게, 원숭이, 백로... 다 입신출세의 의미가 있더라. ^^


악귀를 쫓는 벽사의 의미가 담긴 상징과 그림들도 엄청 많은데, 우리집 쌀뒤주에도 매달려 있는 물고기 모양 자물쇠(책표지 왼쪽 맨 아래 그림)는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도둑을 막아 재물을 지켜주는 능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실용적인 면에서는 주제별로 찾아보고 참고하기 좋은 책이긴 한데, 읽기에 즐거웠느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어서 (어쩐지 언젠가 있을 시험 앞두고 참고서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ㅎㅎ) 막상 별점주기에선 평가가 박했더라.


iReadItNow 앱에 표시된 별점은 ★★◐☆☆ (두개 반 ㅋㅋ 반개짜리 별을 못찻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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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읽은 책

책보따리 2015. 12. 31. 21:18

이제와서 새삼 고백하자면 2014년엔 일년내내 읽은 책이 달랑 7권이었다. ㅠ.ㅠ 

그에 비하면 올해는 일취월장한 거라고 자화자찬하기로 했다. 역시나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의 비율은 절반 정도 되는 듯. 읽다 말고 내던져둔(과감히 포기한 책 말고...) 여러권의 책들도 좀 2016년엔 마무리하고 싶다는 걸 새해 결심으로 정해도 될까? +_+


올해는 이상하게 소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은 독서기록용 앱에 따르면 장장 9개월간 읽다 말다 다시 읽다 그러기를 반복했다. 소설의 호흡을 내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싶어서 슬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겨울 접어들면서 줄리언 반스 덕분에 소설 읽는 재미를 회복했다. ^^


궁궐 안내 초심자 답게 아직도 공부할 게 많아서 궁궐관련 책이 여전히 꽤 많다. 공부를 해도해도 끝이 없는 개미지옥! 그래서 좀 지겹고 회의도 든다. 사람들에 대한 회의, 조직에 대한 회의, 그리고 아무리 집어넣어도 어느새 새나가버리는 내 머리 용량에 대한 회의... ㅎㅎ 옛날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데도 처음 보는 듯 완전 새로웠다.  


벌써 내용이 가물가물하는 책들이 많지만 iReaItNow 앱의 도움으로 별3개 이상(5개가 만점)인 책은 색을 달리했다. 역시나 Best 3권은 뭘 뽑나 고민... 지금 보니 독서당시의 기분에 따라서 별이 좀 후하기도 하고 박하기도 하고 변덕이 심했던 듯. 일관성이 없다. -_-; 



비소설(15)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오주석 지음/솔출판사/2009  

단원의 그림책/최석조 지음/아트북스/2008

인왕산의 어제와 오늘/정광순 지음/종로문화원/2013

괴산으로 귀농했습니다/이후 이은정 공저/위즈덤하우스/2014

런던 아줌마의 잉글리쉬 생활/김은영 지음/브레인스토어/2010

왕의 밥상/함규진 지음/21세기북스/2010

조선 궁중의 잔치, 연향/김종수 외 7인 지음/국립고궁박물관 발행/글항아리 출판/2013 

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한국학중앙연구원 심재우 외/돌베개/2012

조선시대 궁궐 연구/장영기 지음/도서출판 역사문화/2014

놀이로 본 조선/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역음/박현순 책임기획/글항아리/2015

근대 조선과 일본/조경달 지음/최덕수 옮김/열린책들/2015

한양의 탄생/서울학연구소 엮음/글항아리/2015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이현진 지음/글항아리/2015

금요일엔 돌아오렴/415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창비/2015

폭삭 속았수다:성우제의 제우올레 완주기/성우제 지음/강/2014



소설(5)

순수박물관 1, 2/오르한 파묵 지음/이난아 옮김/민음사/2010

이 책은 작년 터키 여행을 위해 미리 읽고 가거나 싸가지고 가서 읽으려던 책이었는데... 결국 돌아와서도 한참 지나 여름 끄트머리에 읽기 시작했었다. <내이름은 빨강>을 꽤 재미나게 읽었던 터라 오르한 파묵과 터키에 대한 기대가 컸는지 막상 생각보다 실망스러워서!! 1권은 막 별이 한개 반.. ㅋㅋ  

가벼운 나날/제임스 설터 지음/박상미 옮김/마음산책/2013

예사롭지 않은 문장과 묘사 때문인지 정말로 진도가 잘 안나갔던 책. 9개월만이라도 다 읽은 게 장하다. ㅎㅎ 어쩌면 새책 <올댓이즈>를 사들이면서 조바심 밀어내기로 완독했을지도 모르겠다.

용감한 친구들 1, 2/줄리언 반스 지음/한유주 옮김/다산책방/2015

셜록은 언제나 옳지만... ^^; 아서 코난 도일이라는 실존 인물과 실화로 이런 소설을 써내다니 으아...  정말 잠을 미뤄가며 읽었다. ㅎㅎ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 지음/최세희 옮김/다산책방/2014

작년에 이 책을 best로 꼽은 이웃들이 꽤 됐던 것 같은데 으음 마지막 반전까지(사실 나는 거의 짐작했음... 누군가의 리뷰에서 내용을 읽어버렸을지도...) 정말 흡입력 있게 읽었지만 원서의 문장들이 때때로 몹시 궁금해졌다. 작가가 일부러 고풍스러운 문장과 단어를 썼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다산책방에서 또 번역자를 바꾼 이유를 알 것도 같고.. 쌓아두고만 있는 신재실 선생 번역 줄리언 반스 소설들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가와무라 겐키 지음/이영미 옮김/오퍼스프레스/2014

죽음과 악마를 소재로 어쩜 이렇게도 가볍고 심드렁한 소설이 다 있는지! ㅋㅋ 이상했던 건 '비를 긋다, 이레, 마하, 리마스터링' 같은 평범한 낱말에도 굳이 역주를 달아놓은 것! 아 거슬리게스리... 째뜬 내가 고양이 집사였더라면 더 예사롭지 않게 읽혔을 것 같다. 인간이 고양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인간 곁에 있어줄 뿐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으로 요약되는 책이다. 



번역작업도 소설을 더 좋아하면서 소설 독서를 멀리했던 게 괜히 찔려서 소설 5권에만 짧게 코멘트를 달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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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책보따리 2015. 9. 9. 22:41

지은이 이름이 케이트인 책의 작업을 마치고, 곧이어 케이트가 등장하는 소설을 번역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장편소설엔 원래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영미권에서 케이트는 흔하디 흔한 이름이니 요즘 애들 이름으로 치자면 작명 순위 1위라는 '서연' 쯤 되려나? 아니지, 작가 이름으로도 익숙해야하니깐 뭐가 좋을까.. '희경'? (언뜻 은희경, 노희경 정도가 생각난다)


독자로 치면 은희경의 수필집을 읽고 나서, 다음 책을 집어들었는데 마침 그 거기 '희경'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할 확률은 과연...? 하기야 폴 콜린스의 책을 읽었는데,우연히 곧이어 읽은 다음 책에 폴이란 주인공이 등장하는 사태는 단편집의 경우 별로 어렵지 않을 것도 같다. 다만 내가 요새 하도 책을 드물게 읽으니 직접 경험을 못해서 그렇지. 


이번에 책을 번역하면서 알게 된 건데, 가계에 쌍둥이 유전자가 전혀 없는 집안에도 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놀랍게도 80명 당 1명꼴이란다. 그 정도면 엄청난 확률 아닌가!? 길 가다가 날아가는 새의 똥에 맞을 확률도 저거보다는 낮을 것 같은데, 난 그런 적 있을 뿐이고! ㅠ.ㅠ 갈매기 드글거리는 바닷가도 아니고 종로 한복판에서... 암튼 우연의 일치는 생각보다 일상에서 꽤 큰 확률로 다가오는 게 맞다고 봐야 합리적일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런가. 선택적인 기억력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또는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짜깁기해서 뭔가 맥락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고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행운과불운을 점치고... 


째뜬 이번 케이트 아무개가 쓴 책과 케이트 아무개가 등장하는 소설을 연이어 번역하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돌파리 점쟁이의 점괘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겠거니 싶으면서도 종종 일과 관련해선 뭔가 보이지 않는 끈이랄지 운명의 힘 같은 게 정말 있나, 의아할 때가 있다. 아 그냥 교묘한 우연의 일치라니깐! 하고 넘기면서도 혹시 몰라... 그런 기분? ^^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미술관 전시실 벽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근대 유럽 미술사조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 이런 표정으로 뭥미; 싶어서 한참을 읽어도 결국 모르겠다 중얼거리며 걸어나왔는데, 한달도 못 돼서 바로 다음 계약 책에 그 미술 사조가 떡하니 등장해 역주를 다느라 좀 더 알아봐야 한다든지... (워낙 무식해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걸지도)


작년엔 실존 인물이었던 은행강도 선댄스 키드 이야기가 등장한 책 때문에, 역주 한줄 멋지게 달겠다는 욕심으로 당시 상황과 <내일을 향해 쏴라>로 영화화 된 과정을 위키피디아와 구글로 한참 검색했는데, 동생놈이 무슨 다큐 작품으로 받게 된 부상이 하필 <선댄스 영화제> 초청이라는 소식이 곧 날아들질 않나, 심지어 몇달이 지나 동생이 선댄스 영화제 보러 비행기타고 떠난 날, 굳이 그 책의 증정본이 택배로 도착할 건 또 뭐람. 소름끼치게스리...


하기야 이번에 끝낸 책은 시리즈라서 전권부터 따지면 케이트가 나오는 소설을 번역했는데 다음에 계약한 책은 하필 케이트가 저자였고, 그 다음 책에 또 다시 케이트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셈이다. ㅋㅋ 나만 재미있나? 


어랏 신기하네, 결국 이게 천직인가 싶었던 경험은 그밖에도 더러 있었는데 기록을 해두지 않았더니 거의 다 까먹었다. 어쩌면 자꾸만 자존감도 떨어지고 연봉도 부가가치도 형편없이 낮은 이 일에 자꾸 회의가 드는데 딱히 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달리 방법도 없으니, 무언가 비논리적인 의미부여라도 하려는 심리 탓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괜히 유별나게 기억해 연결 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맥빠지고 (과연 출판업과 번역가로서의 전망은 계속 어케되는 거냐규~??) 지칠 때, 다시 슬슬 곁눈질을 하고 싶어질 때 일종의 채찍질로 괜한 운명론을 들먹이는 것이든, 정말로 교묘한 인연의 실마리가 내 삶을 관통하는 것이든... 사실 상관은 없는 것 같다. 태어나서 글을 깨친 이후로, 독서가 지루한 적 없는 사람으로서 책에 기대어 밥벌이를 한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번역하기에 아무리 한심하고 하품나는 책이라도, 직장에서 발전소 연소기기 매뉴얼이나 계약서 번역하느라 끙끙대는 것보다야 훨씬 재미난 법! ㅋ 언젠가 출판과 종이책이 완전 사양길로 접어든다고 하더라도 내 생전에는 아직 그런 날이 없을 거라 믿고 또 달려보는 수밖에.(한 십년 더? ㅋㅋ)   


제목을 케이트로 정했더니 문득 내가 번역한 책들 중에서 케이트(캐서린 포함!)란 이름은 저자로, 등장인물로 얼마나 자주 나왔는지 통계 내보고싶어졌다. 아 정말 별게 다 궁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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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

책보따리 2014. 6. 3. 15:27

책보따리 폴더에 독서후기는 하나도 안 올리고 뜬금없이 중고로 책팔기 꿍꿍이 이야기다. 


괜히 읽지도 않을 책 사들이기를 완전히 끊지는 못해 그간 한번에 두어권씩 사들인 책을 두서없이 쌓아놓았더니만 어젯밤, 정확히는 오늘 새벽 책장 앞 방바닥에 두 줄로 대충 세워놓았던 책이 와르르 무너졌다. ㅠ.ㅠ 아, 책정리를 너무 소홀히 했구나.


읽은 책 안읽은 책, 내 취향과 상관없이 선물받은 책들이 마구 뒤섞인 책더미에서 갖고 있어도 절대 다시 안읽을 책과 읽어야지 생각은 했으되 안 읽을 게 뻔한 책들을 솎아냈다. 너무 많아 구석에서 먼지만 쓰고 있는 증정본도 좀 챙겼더니 무려 50여권. 처음엔 동네 전철역 나눔문고인가 하는 곳에 전부 기증을 할 생각이었다. 아 근데 전철역까지 가져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박스포장을 해서 택배로 부쳐야하나? 우체국 가는 거나 전철역 가는 거나... 하기야 전철역엔 주차를 할 수가 없다. 운동 삼아 캐리어 가방에 넣어가지고 질질 끌고 가볼까? 별별 고민을 다 하다가 문득 하이고 책값으로 치면 저게 다 얼마치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가 직접 산 책이 적어도 3분의 2는 될텐데, 한권에 만원씩만 쳐도 대충 30만원! (이런 생각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책이든 뭐든 물건을 처분하지 못한다 ㅠ.ㅠ) 


갑자기 돈 아까운 생각이 들면서 전부 다 기증하겠다는 호기로운 마음이 찌그러들었다. 팔 수 있는 책은 좀 팔아볼까...

얼른 상태가 좋은 아이들만 20권쯤 골라 목록을 만들어 알OO  중고서점에 들어가 매입가를 알아보았다. 흠... 신나게 책 제목들을 입력하다보니 또 다시 느껴지는 부끄러움. 기증한다더니... 알짜배기는 다 팔아먹을 셈이냐! -_=;; 매입가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신간이라도 다 비싼 건 아닌 듯. 나름 효용의 원칙을 세워 2천원 넘는 책만 중고서점에 팔고 그 이하는 원래 생각대로 전철역 문고든, 녹색가게든 기증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중고책팔이용으로 분류된 책이 14권. 책의 상태에 따라 매입가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니 과연 얼마나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얼추 잡아도 3만원은 될 듯. 게으름을 떨치고 무거운 저 책을 낑낑 챙겨들고서 중고책방으로 나가야한다는 난항을 언제 어떻게 해결할지 그건 모르겠으나 (머잖아 아버지 제사가 있으니 그 전엔 치우겠지;;) 벌써부터 반나절 알바라도 한 느낌이다. ㅋㅋ 전철역에 전화해서 책 기증절차가 어떻게 되나 그것도 물어봐야 하지만, 오늘은 일단 마루에 처분할 책을 용도별로 쌓아놓는 걸로 임무 끝. 


근데 50여권이나 솎아냈는데도 왜 책장 앞은 아직도 쌓여있는 책으로 어지러울까. 으휴. 책장을 더 들여야하는데 그건 이사가서 할라고 벌써 몇년째 벼르기만... 그나저나 아 이 놈의 집은 언제 팔리냐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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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도서관에서 한꺼번에 빌려준대도 그렇지, 두달만에 30권 읽겠다는 망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는 1년간 읽은 책의 권수를 보니 더욱 명확해진다. 돈벌이와 상관없이 읽은 책은 재독 포함 겨우 25권이었다. 1년에 30권도 못 읽는 주제에 나 원 참... (아쉬운 김에 돈벌이로 읽은 책을 올해부터 끼워넣으려다가 영업비밀상 안될 것 같아서 말았다 ㅋ)

예전에도 읽다가 말고 미뤄두는 책들이 있었지만, 읽기 괴로워도 꼭 끝내야할 것만 같아서 어쩐지 빚쟁이가 된 심정으로 그런 책들을 흘끔거렸다면 이젠 과감히 포기할 책은 포기하는 대담함(?)을 갖추게 되었다는 걸로 나름의 핑계를 삼기로 했다. 나랑 안맞는 책도 있는 거지 뭘, 굳이 억지로 읽을 것까지야 ^^;  

 

하여간 2013년 독서 경향을 보면 궁궐에 대한 책이거나 관련서적이 압도적이다. ㅋㅋ 알량한 안내 매뉴얼 만드느라고 어쩔 수가 없었다. ㅠ.ㅠ 건축 관련 책도 많이 읽은 줄 알았더니 빌려 읽다말고 돌려준 책이 대부분인지 끝낸 건 몇 권 안되네 쩝. 이런 독서경향은 아마 2014년에도 이어지지 않을까나. 뭘 좀 떠들어대려면 아직도 알아야할 게 너무 많다.  흑...

 

2013년부터는 독서노트를 쓸 때 몇줄이라도 감상을 적어놓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다 실천하진 못했다. 그래도 휴대폰에 iReaditNow라는 앱을 깔아놓았더니 나름 자극도 되고 독서 직후 별점 표시도 할 수 있어서 집계에 도움이 되었다. ^^; 그 별점을 토대로 베스트 책 3권을 뽑아야하는데 그건 여전히 좀 어렵군. ㅋ (째뜬 별 3개 이상은 파란색으로 표기해두었음)

 

 

<비소설>

1.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삼인, 2006.

안방에서 부엌으로 나가는 문 옆에 또 작게 음식전용 출입구로 쓰이던 쪽문 이야기며, 다락방의 추억 등등, 옛날 내 어린시절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많아 정겨웠다.

2. 우리궁궐이야기, 홍순민 지음, 청년사, 1999.

궁궐공부의 원조 교과서 격이라 또 한번 완전 정독했다. 10년도 더 세월이 흘러, 지은이가 초판에 개탄했던 문제점들이 여러부분 개선되었으니 개정판이 나와줄만도 한데, 왜 절판도 안시키고 계속 옛날 책을 파는지 난 그게 못내 궁금하다. -_-;

3.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 최순우 지음, 학고재, 2002.

역시나 필요해서 재독한 책. 종이가 벌써 누렇게 변해가는 오래된 책을 보며 한국 정원의 미학이니, 차경이니 하는 이야기를 새삼 곱씹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무량수전엘 못가봤을 뿐이고! ㅠ.ㅠ

4. 궁궐, 조선을 말하다, 조재모 지음, 아트북스, 2012.

궁궐 교육 받을 때 이 책의 지은이가 강사진 중 한명이었는데, 강사들 대부분 자기 책 홍보를 했지만 이 책 딱 한권 샀다. 전각에 신을 신고 들어가느냐, 벗고 들어가느냐가 공간 활용에 엄청난 차이를 준다는 이야기에 혹했던 것. 궁궐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아니라 의례의 공간으로 풀어나간 건축학자의 책이라 열심히 읽었음. 

5. 타블로이드 전쟁,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양철북, 2013.

옐로저널리즘의 시작과 그 '끝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책. 근거 없는 증권가 찌라시와 개인의 sns 문구들이 언론에서 자랑스레 재생산되는 이 시대와 다를 게 뭔가싶다. 따로 포스팅도 했으니 중략.

6.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영욱 글`그림`사진, 페이퍼스토리, 2012.

길쭉하기만 해서 나로선 도무지 정말 아름답고 빼어난 건축물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 종묘 정전이 표지에 들었고, 지은이는 종묘 정전이 길어서 좋단다. ㅋ. 전작들처럼 지은이의 그림체가 예뻐서 좋았고, 복닥복닥 정신사나운 서울에 대한 내 마음과도 비슷해서 '소장'에 더 의미를 뒀던 책이다. 가끔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감탄하기로. 

7. 감응의 건축,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도 나오는 무주프로젝트 10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건축가들이 다 그림도 잘 그리는 것도 사실이고 정기용 선생은 특히나 미술학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아니 뭐 이리 글도 잘 쓰나그래. 건축에 대한 선망도 있겠다 폭풍감동하며 읽었고 많이도 베겨적어놓았으되 벌써 오래전 일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굳이 인용문을 찾아보자면...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으로 중첩된 지역은 조물주가 이미 절반 이상을 건축해 놓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 점에서 이런 땅위에 건축을 한다는 것은 잠시 존재할 수 있는 건축물을 땅 위에 올려놓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즉 땅을 기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축과 땅이 결합하면서 자연을 더 자연답게 하고 건축을 더 건축답게 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정할 때 좋은 건축이 가능하다.  - p302

8. 경복궁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것, 양택규 지음, 책과 함께, 2007.

9. 조선의 정궁, 경복궁, 신영훈 지음, 김대벽 사진, 조선일보사, 2003.

10. <반차도>로 따라가는 정조의 화성행차, 한영우 지음, 효형출판, 2007.

11.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조선의 정체성, 박석희, 최석원, 황금희 지음, 미다스 북스, 2013.

12. 신궁궐기행, 이덕수 지음, 대원사, 2004

모두 참고용으로 읽은 책인데 요긴히 도움을 받은 책은 <경복궁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 것>과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조선의 정체성>. 전자는 몇년 시간이 지나며 복원 사업 탓인지 수정해야할 부분이 더러 있었지만 전각별로 속속들이 짚어주어 좋았고, 후자는 경복궁 관련 가장 따끈한 책이라 의미 있었던 듯. 궁궐관련 책들은 서로서로 참고해서 쓰다보니 비슷한 면이(틀린 부분까지도!) 많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

13. 조선의 못난 개항, 문소영 지음, 역사의 아침, 2013.

근대역사에 급관심이 생겨서 찾아본 책.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는 부제에 딱 맞게 실패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해준다. 역사에는 if가 아무런 소용없는 짓이라지만, 우리로선 노상 '그랬었더라면...'이라고 상상하게 되는 걸 어쩌겠나. 드물게 포스팅도 했으니 길게 설명 안하겠음.

14. 남아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유진숙 지음, 파라북스, 2010.

이태준, 김동인, 한용운, 백석. 이상.... 서울 곳곳에 남은 문인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문학산책이다. 잊고 있던 싯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건 좋았으나 이미 흔한 기획이고 뻔한 글처럼 느껴졌음. ^^;

15. 1901년 서울을 걷다, 버튼 홉스 지음, 이진석 옮김, 푸른길, 2012.

역시나 근대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빌려읽은 책. 종종 부정확하지만 퍽 객관적인 외국인의 흥미로운 시각으로 본 조선의 근대라는 점에 의미가 있을 듯.

16. 조선 궁궐의 그림, 한국학중앙연구원(박정혜, 황정연, 강민기, 윤진명) 지음, 돌베개, 2012.

그림도 내용도 실해서 소장욕을 엄청 불러일으키는 책! 33000원이라는 고가만 아니었다면 벌써 사들였을 텐데.. ㅠ.ㅠ 

아쉬움이 있다면 지은이 여러 명이 나눠 집필하다보니 챕터별로 설명이 중복되어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들고 전체적인 짜임새 면에서 헐거워졌음. 그래서 물론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17. 즉위식, 국왕의 탄생, 김지영, 김문식, 박례경, 송지원, 심승구, 이은주 지음, 돌베개, 2013.

역시나 갖고 싶은 책! 앞책과 비교할 때 서론, 본론, 결론(물론 이렇게 나눠놓은 건 아니고!)의 구성이 짜임새 있었고 깊이와 재미와 볼거리를 모두 충족시켰음.

18.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 이상현 지음, 효형출판, 2013.

건축엔 당연히 그 시대와 사회의 이념과 사상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지만, 건축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인간을 길들이기까지 한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다. 제목에 혹해서 빌렸다가 두번이나 연장까지 해가며 다 읽은 2013년 마지막 독서. 꽤 재미있었음.

양반집에서는 사랑채와 행랑채, 안채를 구분함으로써, 향교나 서원에서는 계단을 통해서, 궁궐에서는 왕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에서 길들이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도시는 공간구조를 계급구조와 일치시킴으로써, 수도를 정하는 일에서는 수도에 물적, 인적, 시스템적 조건을 몰아줌으로써 길들이기를 수행한다. 이들 모두 건축활동의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p123. 

 

 

<소설>

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예담, 2010.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엄청 길지도 않은데 읽기 시작했다가는 몇번이나 중간을 못넘기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완독의 동기는 <500일의 썸머> ㅋㅋ 사랑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에 시큰둥하던 썸머가 카페에서 이 책을 읽다가 누군가를 만났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ㅎㅎㅎ 나도 뭐 그런 기대를 품고서 카페에서 펼쳐 읽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취침전 독서로 한 사흘 만에 끝내느라고 잠을 잘 못잤다. ;-p 째뜬 뒤표지에 스포일러를 담는 건 좀 안했으면!

2. 그레이스 1,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민음사, 2012.

실화를 소재로 어찌도 이리 손에 잡힐 듯한 현실을 상상하고 묘사했는지 감탄. 노련한 추리기법으로 끝까지 궁금증을 놓지 않게 하는데다, 진실은 끝내 알 수도 없다. 두 권을 단숨에 내처읽은 듯.

3. 고양이 눈 1,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민음사, 2007.

원제인 cat's eye는 보석 이름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어린시절 갖고 놀던 구슬에 들어있는 고양이 눈 모양 무늬를 말하는 거였다.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잔인하고 은밀한 괴롭힘, 상처로 남은 유년의 기억들, 다름을 받아들이고 대하는 아이들 방식의 섬뜩함이 요즘 아이들의 왕따문화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4. 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밝은 세상, 2011.

'이미 읽기 시작했다면 내려놓기 힘든 책'이라는 <더 타임스> 인용문이 뒷표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처음 몇장 읽다가 내려놓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ㅋㅋㅋ <빅 픽처>를 처음으로 읽었어야 할 걸 그랬나 싶었음. 어쨌거나 내 심리와 운대가 맞았는지 어느 날인가 드디어 내처읽을 수 있었고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었다. 요동치는 여성심리를 '남성작가 치고는' 꽤나 공감가게 묘사한 것 같다. 특히 '불충분한 느낌'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포스팅도 했을 정도 ^^;

우리의 대화에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이 오래 지속되어온 불충분한 느낌이었다. 대학시절 내가 내내 그랬지만 성적이 B학점을 넘지 못하면 늘 하던 걱정.... 내가 모든 면에서 '괜찮은 편이지만' 그리 뛰어나지는 못한 사람 같다는 기분.... 내가 꽤 저명한 신문사에서 오래도록 일했거나 특파원이었다거나 직업 일선에서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늘 의심을 품었고, 언제 내 능력이 들통날지 염려스러웠다. - p267

5. 아름다운 나날,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민음사

모던클래식 12권. 키드님한테 양도받은 책이라 약간의 부채감이 없을 수 없었다. ㅎㅎ 성장기 소녀의 감수성을 담아낸 자전소설이랄 수 있는데, 성장기 소녀의 아픔은 마거릿 애트우드 책으로 이미 한 번 느껴본 터라 딱히 좋은 느낌이 없었다.

6. 향수,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민음사, 2000.

쿤데라의 소설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가끔 인상적인 문장에서 한번씩 휴 한숨을 내쉬며 읽게 되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대거 빌렸다가 다 그냥 반납한 책들은 관두고 집에 있는 쿤데라 책부터 올핸 다시 좀 재독하며 그의 문장에 더 취해봐야지 결심중.

7.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3.

정말 수시로 깔깔거리며 읽었다. 어떻게 그 다양한 세계사를 한 개인의 역사로 다 엮을 수가 있는지 재주가 놀랍다고 생각. 너무 어처구니없는 우연의 연속이더라도 암튼 그 모든 사건을 하나로 관통시킨 역량과 유머는 높이 사줄만 하다. ㅋㅋ 게다가 트렌디한 번역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발랄경쾌한 번역체도 인상적이었다. <와 시발, 진짜 대박 성경책이다!> 같은 문장을 수시로 번역서에서 만날 수 있다니!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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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책보따리 2013. 11. 25. 22:28

동네 도서관의 2달 휴관을 맞아 대출도서를 30권으로 늘려주겠다는 달콤한(대체 왜 달콤하다고 느꼈는지??) 제안에 덜컥 한꺼번에 빌려왔던 책 27권. 그간 두어권을 빼놓곤 계속 처음 가져왔던 그대로 차곡차곡 쌓인 채 먼지만 뒤덮고 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12월초라던 예정개관일을 두 주일이나 앞당겼다는 도서관의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다행히 반납일이 덩달아 당겨진 건 아니고...

 

휴관중에도 다 읽은 책은 미리미리 반납해 한꺼번에 정리 업무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해달라는 엄살어린 직원들의 당부도 들었거늘... 아무래도 반납일 통보 문자 날아오고서야 한꺼번에 또 이고지고들고 낑낑대며 책 가져가 반납하게 생겼다. 어차피 대출 연기는 대여섯 권밖에 안될 테고... 대출 연기한다고 또 다 읽는다는 보장도 없고...   대체 난 무슨 심보로 그런 턱도 없는 욕심을 부렸던 걸까??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때는 왜 더 책이 읽고 싶은지... 정말이지 한글로 된 책을 부담없이 좀 읽고 싶음 마음이 굴뚝. 이번 일이 끝나면 기필코 다시 심신을 살찌우는 독서에 힘써보리라(라고 결심하지만 밀린 다음 작업 스케줄은 어쩔거냐;;) ㅠ.ㅠ 무한한 아쉬움에 대출목록 긁어왔다. 흑... 2013년 마무리는 밀란 쿤데라로 하고 싶었는데... 과연 이 중에 한권이라도 읽을 수 있을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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