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뒷설거지 하느라 연말연시는 늘 쫓기듯 바쁘지만 그래도 노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한해 정리 포스팅을 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는데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우유부단한 속성 탓에 좀체 항목별로 셋을 뽑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_-; 마음에 꼭 드는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도, 베스트 사유를 쓰는 것도 은근히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이라 스스로 찔리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런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또 이렇게 얼렁뚱땅 하고만다. 2011 베스트 포스팅. ㅋㅋ
1. 2011 베스트 책
책 목록에서 인상 깊었던 걸로만 색을 달리해두고도 꽤나 뽑기 어려웠다. 결국 독서노트를 뒤져 가장 인용문을 많이 적어둔 책을 보니 얼추 세권의 윤곽이 드러났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의외로 남들이 다 읽은 책을 하도 안 읽은 게 많아, 이 책 또한 안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주인공 모모가 낯익은 건 순전히 <모모>와 동명이인이기 때문일 거라고. 그런데 중간쯤 하밀 할아버지와 로자 아줌마가 결국 어떻게 어떻게 될 것인지, 모모의 반전 비밀이 뭔지 다 기억이 났다. 아마도 대학 다닐 때 쯤 읽었던가. 그런데도 폭풍 감동에 눈물을 훔치며 읽었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수많은 구절을 적어놓아 대체 뭘 인용할까 또 고민스럽다. 그래도 대강 골라 적자면...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 p95
"그녀는 정해진 법 때문에 자기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p113-114
" <식스펜스 하우스>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
킥킥대고 책을 읽고 나서 감동후기를 올릴까 하다가, 블루고비가 옮긴 책이라 또 다시 팔이 안으로 굽는 주례사후기(?)로 오인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뒀었다. 특유의 유머와 집요함, 박식함이 넘치지 않게 어우러진 폴 콜린스의 글쓰기 묘미에 나도 빠져든 것 같은 데다, '책들의 종착지'라는 헌책 마을 웨일스 헤이온와이에 무작정 살려고 갔던 지은이의 좌충우돌 체험기라 소재부터 흥미진진했다. 헤이온와이를 책마을로 만든 장본인인 리처드 부스 할아버지가 작년 무슨 도서전에 한국에도 왔던데 구경갈까 하다 관뒀을 정도. 책의 가치에 대해서, 어쩌면 운명이 비슷한 인생에 대해서 소소한 생각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읽히기도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 - p168.
"원래 작가라는 일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 p254
<연민>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이온화 옮김/지식의숲
다른 주민들의 책 베스트에도 많이 보이는 책을 나도 꼽았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이라는 부제에 모든 단서가 담겨있다. 나 역시 <광기와 우연의 역사> 밖엔 읽은 적이 없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이 이토록 맛깔스러울 줄 짐작도 못했다. ^^; 다른 책도 찾아 올해 '몰아읽기' 할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그저 어린아이가 우표를 수집하듯 열심히 친구를 모으고, 모은 표본(친구)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말하자면 태생적으로 거리낌이라곤 없는 사람에 속했다." - p9
"반만 행한 일과 반만 내뱉은 암시는 언제나 악의 원인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어중간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 p123
"사람은 아무리 나쁜 규율일지라도 그것이 옆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면 곧바로 가볍게 느끼기 때문이다. 정의는 신비롭게도 폭력에도 적용된다." -p404
흐이구... 책 읽자마자 리뷰를 올렸으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을 것을... 아주 베스트 뽑으며 리뷰 올릴 기세다. +_+
적어둔 인용문이 거의 길어서 짧은 것 중에 골라 옮겨 적으려니 안타깝다.
2. 2011 베스트 영화 비기너스
천국의 속삭임
주노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역시나 애들이 주인공인 영화 좋다! 게다가 음향감독의 실화라니 더욱 감동;;)은 연초에 봤는데도 기억에 오래 남아 단연 베스트 후보였고 연말에 본 <비기너스>(시작하는 연인들, 유안 맥그리거와 멜라니 로랑의 만남도 좋았지만, 일흔다섯 병든 아버지의 설레는 사랑 또한 눈물겹게 흐뭇했다. 소소한 소품과 배경도 딱 내 취향)또한 보자마자 베스트 후보임을 실감했다. 나머지 하나를 뽑는데 살짝 고민을 하긴 했으나, 역시 뒷북으로 본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주노>(개성 넘치는 주인공 주노의 선택과 식상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주노 새엄마는 <웨스트 윙>의 CJ였어! ㅎ 좋아하는 캐릭터였는데;; <If you're in, I'm still in>이라고 주노가 광고지에 적어준 쪽지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는 마지막 장면까지 흡족~) 가운데 유쾌한 영화를 골랐다. <파니 핑크>를 만들기도 한 도리스 되리 감독을 좋아하지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슬퍼서 또 보려면 가슴 아플 듯.
3. 2011 베스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최고의 사랑
공주의 남자
압도적인 1위이자 군말없는 올 최고의 드라마였던 <뿌리깊은 나무>를 억지로 꼽은 나머지 둘과 같이 올릴 수야 없지. ㅋ
3회였나, 4회부터 보다가 완전 빠져들어 앞부분 재방송 찾아본 뒤엔 거의 본방사수 하려고 노력했다.
별로 닮지 않았음에도 송중기에서 한석규로 이어지는 이도 세종역할의 전환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니! 송중기도 다시 봤고 한석규한테는 정말 감탄했다. 극의 짜임새며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파는 대본이며, 주조연의 연기(진정 충신 무휼과 조말생 대감까지!)며... 피칠갑을 했던 마지막회가 좀 보기 힘들었던 것만 빼면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가놈의 마지막 반전까지 숨겨놓은 작가들 정말 존경스럽다. +_+
"임금의 마음이 지옥이지 않은 태평성대가 어디 있더냐"고 했던가, 가슴을 쿡쿡 후비는 감탄스러운 대사가 매회 툭툭 쏟아졌는데 그때그때 적어놓지 않아 다 까먹었다. 밀본 정기준과의 마지막 대면에서 세종이 "백성은 속아도 되고 지더라도 괜찮다. 또 싸우면 된다"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사극 보면서 어쩜 그리도 요즘 정치 세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사가 많던지. 드라마 보다 말고, 그래, 속아서 대통령 뽑은 사람들도 대선 총선에서 또 싸워주면 된다고 중얼거리고 앉았었다. 참 놀라운 드라마 아닌가!?
두번째는 <최고의 사랑>인데 가나다순으로 사진이 밀렸;;다. ㅋ 후반부로 가면서 재미와 관심도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구애정과 독고진, 띵똥 보는 재미에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봤던 드라마다. 공효진을 원래 좋아했지만 연기에도 묻어나는 듯한 매력이 궁금해서 책(공효진의 <공책>)까지 사봤으니 뭐 말 다했지. 책 편집과 만듦새는 참 엉망이라는 걸 알고 봤음에도 공효진이 전하려는 환경 메시지와 생각은 마음에 들었다. 공효진의 다음 작품 기대중.
<공주의 남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한정적인 얼개 탓인지 중반 이후에는 거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은 상황의 반복이라 차츰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특별히 베스트에 넣어주었다. 세령 역의 문채원의 연기력이 좋아지는 과정을 응원하며 보던 생각도 나고(한복이 참 잘 어울렸던 <바람의 화원> 때부터 팬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마음에 안드는 한복이 너무 많았음! 특히 그네탈 때 입었던 것.. 으으), 김종서와 수양대군을 연기한 중장년배우(이순재/김영철)도 좋았다. 울먹이며 "우리 삼촌이 맞습니까?" 묻던 아강이 역할의 김유빈은 최고였고! <뿌리깊은 나무> 마지막회에서 한가놈의 정체가 드러난 뒤 성삼문, 박팽년과 스쳐지나는 장면을 보며, 먼저 방영한 이 드라마에서 본 사육신 참살 과정이 떠올랐던 것도 베스트 선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
그러고 보니 사극 잘 안보는데 베스트에 둘이나 뽑혔고, 외국 드라마는 아예 없다. BBC <셜록>을 기대했는데 아예 제작이 무산되어 안타까웠다. 올해는 설마 제작되겠지.
전시도 둘만 선정했다. 둘 다 후기 올렸으니 링크 참조.
훈데르트 바서 전시회를 갔더라면 셋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만 잔뜩.
올해는 가고픈 전시를 안 빼먹고 다 갈 수 있으려나.
6. 2011 베스트 발견
엄마의 건강
정유정
Snoopy's Street Fair
게임중독자의 자질
내가 번역한 책 한권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년 한해 엄마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체중은 7kg정도 줄었고 10분도 채 못걷던 분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만큼 걸음도 경쾌해졌으며, 심리적으로도 대단히 안정적이다. 우울증 약도 꽤 줄였는데 정신적인 안정상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모습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도 잘 본 적이 없었다. 일년에 열달은 울증, 한달은 조증, 나머지 한달만 말짱하다고 내가 농담삼아 툴툴거렸던 게 거짓말 같다. 이젠 나더러 운동 안한다고 잔소리를 하실 정도고, 최근엔 심지어 잠든 나를 그냥 내버려두고 혼자 버스타고 대학병원엘 다녀오셨다. 동네 의원은 몰라도, 복잡하고 진료과도 많은 대학병원은 아버지 계실 적에도 반드시 내가 운전해 모시고 다녔었는데... 아마도 엄마가 혼자 대학병원엘 가서 진료받고 약 타온 건 근 10년만에 처음이 아닐지. 암튼 과거의 엄마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살았다는데, 요즘 엄마는 '열심히 살려고' 사신단다. 합창단 연습도 여전히 열심히 참여중. 매우 고무적이고 감동이다.
정유정은 <7년의 밤> 읽고 반해 국내작가 중 유일하게 전작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읽고 나니 군더더기랄까 좀 과하다 싶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던 <7년의 밤>보다 <내 심장을 쏴라>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마지막에 읽은 청소년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가 제일 좋아 두세번은 본 것 같다. 책표지가 기묘하게도 지우 그림과 많이 비슷해서였을까(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전무함에도!), 이상스레 정이 가는 작품. 어쨌거나 주류 문학계에선 정유정을 완전 무시하고 있대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 지켜볼 작정이다. 흥!
[#M_비슷하다고 우기기;; |접기|
아직도 안드로이드 마켓엔 없고 아이튠즈에만 있다는 스누피 마을 게임. 정말 지난 연말부터 삶의 낙이다. ㅠ.ㅠ
눈내린 겨울배경 업그레이드 버전도 좋지만 어서 봄이 와 초록 잔디 깔린 마을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벌써 22단계. 마지막 26단계가 머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를 이루고도 그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리세트 하고 처음부터 다시 마을을 가꿀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쪽이 나을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무료 앱이라 깔아놓고, 결국엔 10불짜리 기프트 카드까지 사서 캐릭터를 사모았다. +_+ 처음엔 하루에도 몇시간씩 끊임없이 붙들고 있었는데 그래도 요샌 틈틈이 실행해서 동전만 벌어들이는 쪽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ㅋㅋ 어제였나 연속 27일째라며, 자주 이용하는 사람에게 주는 동전 10만개를 또 받았다. 이러니 매일 접속을 안할 수가 없다니깐! ㅠ.ㅠ
산타 스누피 기념 캡쳐
200점 증거 사진 -_-;
네번째는 베스트가 아니라 워스트 발견이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우겨서 이 항목에 넣으련다. 스스로 중독자 기질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서... 작년에 이웃에 불었던 타일깨기 게임 열풍 때도 혼자 뒷북으로 열올라선, 다들 시들해 관뒀다는데도 홀로 악착같이(?) 중독자 답게 매달리더니(하도 시간낭비가 심해 즐겨찾기에서 지웠는데도 매번 구글 검색으로 찾아내 하고 있는 나를 발견;;;) 끝내 <200점>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그제야 관심에서 멀어져 더는 타일을 깨지 않고 있다. 대신 아이폰으로 스누피 게임에 매달리는 중. ㅠ.ㅠ 그러나 중독자임을 자각하여 자제하려고 노력한다는 데 의의를 두련다. ㅋ
7. 2011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멍하니 살았다.
적고 보니 두 마디로군.
아무리 돌이켜봐도 베스트나 워스트로 뽑을 만한 기억도 없고, 뭘 딱히 지른 것도 없는 것 같고(기껏해야 연말에 산 거위털 이불 정도?), 인상 깊은 사건도 없이 그저 소소한 아쉬움 뿐이다.
그래서 베스트 항목을 더 뽑으려야 뽑을 수도 없었다. 참 재미없게도 살았구나 싶은 느낌. 그래서 2011년을 보내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가버려서 속 시원.
8. 2011년 번역작업 달랑 3권이 출간됐다. 그중 하나는 두권짜리라며 위안을 해보지만, 8월 이후 하반기 출간된 책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마도 출판 불황과 나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합작품일 듯.
작업한 책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벌려놓은 수만 잔뜩이다. 스스로 채찍질이 필요. 그래서 일부러 적어놓았다. 정신 차리라고 쫌!
9. 2012년의 계획이라면 1. 일과 관련해서 좀 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될 것
2. 조금 긴 여행 (홀로 두고갈 엄마 걱정도 덜었겠다, 여행비 모을 욕심에 더욱 열심히 일하던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3. 기타든 그림이든 뭘 좀 배우러 다니고 싶단 소망을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을 발휘할 것
4. 큰 마음 먹고 이사 (과연;; ㅎㄷㄷ)
작년에 너무 책읽기를 멀리하여 찔렸던 터라 올해는 재작년과 동일하게 30권을 목표로 삼았다.
결과는?
41권으로 초과달성. ^^;
늘 있는 일이지만 순간 순간 죽도록 일하기 싫을 때 의식적으로 책을 읽으려 노력했노라고 말하긴 뭣한 양임을 안다.
그래도 올해는 스스로 칭찬해줄 게 하도 없어 이거라도 칭찬해주련다. 그래, 장하다. 옛다, 칭찬.
2011 Best를 뽑아서 연말을 깔끔하게(?) 마무리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건만 마음도 괜히 바쁘고 좀체 정리가 안되는 것 같은 데다, 책 내용도 몇줄 적어둔 것 빼고는 깡그리 까먹은 느낌이라 일단 달력 뒤져 목록부터 뽑아보았다. 정리하다보면 올 최고의 책 세권을 추릴 수 있으려나 원. 드물게 후기를 올린 책들도 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곧 베스트 후보작은 아닌 것도 같다. 아 어려워라... (하지만 꼭 바쁠 때 이런 포스팅 하고 싶은 심보는 또 뭐람;;)
올해의 독서 경향을 나름 분석(?)하자면 다시 읽기와 몰아읽기 정도?
한국 근대문학 단편들을 좀 다시 읽었고, 꽤 오래 홀대했던 박완서 소설을 다시 보았으며, 작년에 읽다말고 던져뒀던 책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끝낸 게 몇 권 된다. 나쓰메 소세키, 폴 콜린스, 정유정의 책을 세 권씩 읽었으면 내겐 꽤나 '몰아읽기'였다고 자평. 두권 읽은 작가도 있고 다른 해에 비해 단편집도 많다. 그간 이상하게 호흡 짧은 단편에 좀 약한 편이었는데. 애서가 이웃주민들은 척 보면 아시겠지만 여전히 책 선택엔 그분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내년엔 줄리언 반스를 드디어 좀 읽어볼 생각. ㅋ
해마다 소설(특히 장편과 번역문학) 쪽 편향이 심했던 데 비해 올해는 비소설과 그럭저럭 균형을 이룬듯 보이나, 역시 과학과 역사 분야로는 생각만큼(무지를 깨쳐야해!) 손이 가질 않았다. ㅎㅎ
<소설 >
1.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윤상민 옮김/민음사 세계문학/2003-2009
2. 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김성기 옮김/이레/2008-2009
3. 한눈팔기 나쓰메 소세키 지음/조영석 옮김/문학동네 세계문학/2011
4. 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김남주 옮김/열린책들/1999-2009
5.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현대문학/2004-2011
6.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문학과지성사/2007-2008
7. 한국단편문학선1 김동인 현진건 외 지음/민음사 세계문학전집/1998-2010
8. 7년의 밤 정유정 지음/은행나무/2011
9.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지음/은행나무/2009-2011
10.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정유정 지음/비룡소 블루픽션시리즈/2007-2011
11. 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이주희 옮김/문학동네/2010
12.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용경식 옮김/문학동네/2003-2011
13. 데이지 밀러 헨리 제임스 지음/최인자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2009-1010
14.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 지음/오종우 옮김/열린책들 세계문학/2004-2009
15. 헨쇼 선생님께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선우미정 옮김/보림/2005-2010
16. 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김남주 옮김/민음사 모던클래식/2010
17. 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송은경 옮김/민음사 모던클래식/2009
18. 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 지음/고정아 옮김/열린책들 세계문학/2005-2009
19. 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박상미 옮김/마음산책/2010
20. 이태준 박태원 이태준 박태원 지음/창비 20세기한국소설/2005-2010
21. 연민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이온화 옮김/지식의숲/2007
22. 별에서 온 아이 오스카 와일드 지음/김전유경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2008-2010
23. 차가운 벽 트루먼 카포티 지음/박현주 옮김/시공사/2008
<비소설>
1. 나의 그림 읽기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강미경 옮김/세종서적/2004
2.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2011
3. 식스펜스 하우스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2011
4. 네모난 못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올김/양철북/2006
5. 번역에 살고 죽고 권남희 지음/마음산책/2011
6. 보통의 경험 한국성폭력상담소 지음/이매진/2011
7. 소설 파는 남자 이구용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11
8.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김희정 안세민 옮김/부키/2010
9. 뇌과학 여행자 김종성 지음/사이언스북스/2011
10.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임희근 옮김/돌베개/2011
11.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민병일 지음/아우라/2011
12. 공책 공효진 지음/북하우스/2010-2011
13.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허균 지음/이갑철 사진/다른세상/2002-2010
14. 빈방의 빛 마크 스트랜드 지음/박상미 옮김/한길아트/2007-2009
15. 아흔개의 봄 김기협 지음/서해문집/2011
16.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이장희 그리고 지음/지식노마드/2011
17.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 유홍준 지음/창비/2011
18. 내 아이의 사춘기 스가하라 우코 지음/이서연 옮김/한문화/2010
독서노트 뒤져서 몇줄씩이라도 책에 대한 느낌을 추가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다. 책 제목조차 낯선 것도 있으니 원. 기억을 환기하려면 한참 낑낑대야할 듯. ㅜ.ㅜ 나중에 한가할 때 끼워넣어보련다.
(혹시 궁금해할 분 있을까 싶어서, 맨 마지막 연도가 둘씩 있는 건 초판 1쇄와 내가 산 책의 발행연도다. 나와 상관없는 책이라도 여러 쇄째 발행했다면 왜 흐뭇한지 모르겠다. ㅋ 이것이 바로 총체적인 밥그릇 염려하는 출판인의 자세? ;-p)
일단은 무엇보다도 '읽는 재미'가 커서 후딱 읽고도 다시 뒤적여본 덕분에 아직도 내용이 기억에 많이 남은 책에 색을 달리 표시해보았다. 저 중에서 세권 뽑는 건 과연 쉬울까.
우리나라 소설에는 작가에 따라서 얼마든지 비속어를 사용하는데 왜 번역서엔 그게 허락되지 않을까? 영어로 <son of bitch>는 거의 누구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흔히 쓰는 일상적인 욕이다. 그렇더라도 상황에 따라선 분명 <개새끼>가 정확한 옮김인데 번역서에선 종종 <개자식>으로 순화된다. 그뿐인가. goddamn, damn, fucking, mother fucker, shit... 제 아무리 머리 굴려 나름 기발하게 달리 옮겨봐도 편집 과정에서 그저 <빌어먹을> 아니면 <젠장>, <제기랄> 정도로 순화'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원서로 읽으면 방황하는 십대의 날선 언어와 감정, 욕설이 난무하지만(한 페이지에 욕이 막 두세개씩 나온다), 번역서로 읽어보면 어찌나 공손하고 고상하신지. 일부 오역도 오역이지만 이 책의 경우, 비속어의 일체 순화 및 생략은 확실히 읽는 재미를 반감시켰다고 생각한다. 김려령의 <완득이>를 킥킥대고 읽으며 <호밀밭의 파수꾼>의 번역도 가끔씩 그렇게 경쾌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문득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물론 두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퍽 다름을 잘 안다. 둘 다 남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보니 단순히 예를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라를 막논하고 약간 삐딱한 청소년이라면 원래 욕이 일상 아닌가?
암튼 언젠가 범죄소설을 번역하면서 수시로 등장하는 fucking의 뉘앙스를 살려보겠다고 내딴엔 비속어인 '씹할'을 주장했다가 결국 졌다. 단순히 한국 출판계에서 번역어의 공손함과 교양을 추구하기 때문은 아니다. 비속어가 남발된 책은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딴죽을 걸 수도 있고, 그러다 혹 재수없게 19금 판정이라도 받게 되면 비닐로 포장 판매를 해야한단다. 그랬다간 가뜩이나 열악한 시장에서 독자층은 좁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어쩔 수 없이 지레 위축된 편집자와 번역자는 오랜 세월 원서의 비속어를 자체 검열하는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설을 읽어보면 길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비속어와 욕을 작품에 구사해도 아무 문제 없더구만? (가령,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으며 '씨발'을 비롯한 비속어의 사용이 매우 자연스러워 놀랐었다) 그런데 왜 번역서는 구태의연하게 계속 공손해야 하는지?
그나마도 요즘엔 번역서에서도 <나쁜년> 정도는 허용되는 추세다(과거엔 <못된 계집>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아직도 <새끼>는 <자식>, <놈>으로 순화하고 있자니 문득 부아가 난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가끔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외칠 때 느끼는 희열을 번역서에서도 느끼면 안되는 걸까? 일부러 격 떨어지고 천박한 언어로 번역할 이유는 없지만, 걸핏하면 '원서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독자들의 비수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번역인들에게도 이제는 좀 제대로 비속어를 우리말로 옮길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 이미 그렇게들 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보수적인 출판사들과만 일을 했던가? -_-;;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 작업하는 책에선 나름 원색적인(?) 비속어를 또 한번 디밀어볼 생각이다. 통과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우울증이 심해지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엄마의 자학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는 쓸모없는 자신을 어디에든 '갖다 버리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매달 후원금을 보내시던 불교 간행물 <연꽃마을>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설을 콕 찝어서 그리로 보내고 너는 자유롭게 편히 살라는 말을 하신 적도 있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얼마전 엄마는 얼마 되지도 않는 월 후원금 자동이체를 끊어버렸다. ㅋㅋ) 그 말은 곧 엄마가 가장 피하고픈 상황이 어딘가에 버려지는 것이며, 낯선 곳에 버려지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깃든 투정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년이 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칠순을 넘기면서 엄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치매다. 얼마 전엔 나 몰래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노인건강관리 프로그램에서 치매검사도 하고 왔단다. 한달에 한번 꼬박꼬박 정신과의와 상담을 하고 우울증 약을 먹는데도 안심이 되질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건 다 잘했는데 단어 세 가지 기억했다 나중에 말하기 문제를 하나도 못 맞혔다면서 아쉬워하긴 했지만, 검사 결과 '양호' 판정을 받아온 엄마는 자기 치매 아니라면서 몹시 기뻐했다.
가끔씩 내가 엄마에게 구구단을 외게 시키고, 불쑥 덧셈 뺄셈 문제를 내는 이유도 자꾸만 깜빡깜빡 잊는 건망증이 치매 초기증상일까봐 벌벌 떠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함이다. 헌데 멀쩡한 젊은 사람들도 잠 잘 못자고 컨디션 안좋으면 말도 헛나오고, 구구단은커녕 단순한 셈도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일조량 떨어지면서 해마다 몹시 불안불안 조마조마하게 넘기는 가을에 접어들며 심신의 컨디션이 약간 떨어진 엄마가 불면과 건망증을 잠시 겪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심지어 나는 잠 잘 자고 컨디션 좋을 때도 암산이나 돈계산 같은 숫자와 관련된 사고는 단순한 것조차 잘 하지 못하며, 가끔씩 손에 멀쩡히 들고 있는 차키나 휴대폰을 찾아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인간이다. 치매초기를 의심하려면 차라리 나를 의심해야지, 수십년 전 사건부터 쓰레기 배출요일까지 나보다 더 잘 꿰고 있는 엄마는 염려할 게재가 아니다.
다른 노인들은 청년처럼 펄펄 뛰어다니실 나이인 71세에 울 엄마가 너무 엄살(?)을 떠는 것 같아 못마땅해 툴툴거리지만 내심 나도 겁이 나긴 한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아버지 세분은 앓지도 않으시다가 졸지에 쓰러져 운명하셨고, 꽤 오래 병을 앓으신 외할머니도 끝까지 정신은 거의 말짱하셨기 때문에, 우리 엄마도 자잘한 지병은 있으시되 정신은 끝내 혼미해지지 않기를 바라고는 있으나 건강에 관한 한 누구도 자신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게다가 노인성 우울증이 치매로 이어지는 확률이 꽤나 높음(치매 초기가 노인성 우울증으로 시작된다던가?)을 알기에 마음을 놓을 순 없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은 울 엄마의 우울증이 45년 역사를 넘긴 지병이라 노인성 우울증과는 양상이 다르고 (사실 엄밀히 말해 울 엄마는 조울증이시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오고 있으며, 평생 비빌 언덕이셨던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오히려 더 잘 견뎌내고 계셔 4년째 심하게 앓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못된 딸년인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우환에 대비하여 이미 방향도 세워놓았다. 요즘은 치매노인 부양을 돕는 데이케어 센터가 동네마다 생겨나기도 했으므로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는 버텨보도록 노력하되, 힘에 부친다고 생각되면 당연히 요양병원에 모실 거라고.
하지만 요양병원에 방치하고 더는 돌보지 않는 수많은 노인 환자 문제를 언론에서 접하거나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일부 요양병원의 운영실태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되면 이미 일어나지도 않은 일,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이는 마치 결국엔 우리 엄마도 치매에 걸릴것임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아닌가 말이다. 80세 이상 노인의 30-40%가 치매를 앓는다는 통계를 온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어떤 상황이든 미리 온갖 가능성을 상상하고 미리 걱정하는 나의 태도는 자꾸만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해두어야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짓는다. 이런 생각을 엄마에게 내비친 적 없는데도, 엄마가 가끔씩 우울증이 도졌을 때 들먹이는 '내다 버려라' 레퍼토리를 보면 엄마는 당신 딸년이 능히 그럴 수 있는 '냉정한' 인물임을 미리 알고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병증이 좀 나아지고 나면 다시 "엄마는 너 없이는 못산다"는 절박한 레퍼토리로 방침을 바꾸시는 것을 봐도 그런 쪽으로 심증이 굳어진다.
요양병원에 병든 부모 수발을 내맡기는 것을 '현대판 고려장'에 비유하는 세태에 우리 엄마도 나도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몇년전 중풍에 걸려 요양병원 신세를 꽤 오래 지고 있는 친구분을 더러 면회하러 다녀본 엄마도, 거동 못하시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더니 물리치료와 집단생활 덕에 오히려 건강을 상당부분 되찾으셨다는 친구의 고무적인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 나도, 요양병원에 대한 거부감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자식이 직접 살뜰히 모시는 것만 하겠나, 하는 인습적인 사고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지인 한분은 10년째 거동 못하시는 어머니를 간병인과 함께 집에서 모시고 있다. 자기 어머니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워낙 언사가 요란하시어 단체생활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이유인데, 내가 보기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간병인이 돌아가는 주말에 꼬박 하루 혼자서 간병을 하고 나면 심신이 완전히 지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서 왜 그 힘든 끈을 놓지 않으려는지. 하기야 그분은 나 역시 자기 같은 상황이 되어도 절대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나는 그 반대를 결심하고 장담하고 있음에도.
어쨌든 이러한 잠재적인 불효의 가능성에 괜스레 양심이 찔려하고 있는 가운데 책 한권을 읽게 됐다. 처음엔 제목을 저
리 쓰고 독후감을 간단히 쓰려던 것이었는데 글이 영 딴판으로 흘러, 무슨 미리쓰는 자기변명처럼 되고 말았다. 거동도 어렵고 경증 치매에 걸리신 아흔살 노모를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모셔다 놓고 처음엔 매일, 나중엔 한달에 두어번씩 들여다보며 살뜰히 적은 시병일기를 모은 책이다. 해외에 있는 형과 주변 사람들에게 메일로 어머니의 회복기를 알리다 잡지에 글도 싣게 되었고, 간병기 블로그 연재가 반년 이상 이어지자 책으로 묶어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원래 나는 블로그나 포털사이트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 낸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문학 작품의 경우, 일주일에 한번씩 억지로 쥐어짜듯 글을 올린 때문인지 짜임새가 형편없고 앞뒤 맥락도 맞지 않는 경우를 꽤 보았다. 비문학의 경우도 글이나 주제의 균일함이랄까, 깊이랄까 들쭉날쭉 제멋대로이거나 동어반복적인 내용이 눈에 거슬리거나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책도 많을 테지만, 나는 이미 이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에 온라인 공간에서 먼저 선보인 글을 묶어낸 책이라고 하면 별로 사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처음 얼핏 책 소개를 봤을 때, 읽지도 않은 <엄마를 부탁해>와 일맥상통하는 신파조의 고백록이면 어쩌나 염려스러워 외면했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예외로 골라든 건 첫째가 표지 사진(나의 두 할머니를 합해놓은 듯한 인상이시다) 때문이요, 둘째는 책의 서문에서 지은이가 생모임에도 호적상 평생 계모로 살았던 어머니에 대한 친자확인 소송을 뒤늦게 진행중이라고 적은 때문이었다. 내 머리에 퍼뜩 불이 하나 들어왔다.
첫 남편을 일제징용으로 잃은 나의 외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살림을 해주러 이웃 식모살이 들어간 집에서 대를 이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식 셋을 낳았지만 결국 그집 호적엔 오르지 못한, 말하자면 '첩실'이었다. 처음이자 유일한 법적 혼인관계로 낳은 두 자식, 우리 엄마와 큰외삼촌을 바로 아랫집에 거느리고 살며 계속 보살폈음에도 두 남매는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을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옆집에 살며 아버지 다른 아이들을 낳은 것도 '버림'이라면 버림이다)는 트라우마도 우리 엄마의 정신을 병들게 한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의 막연한 짐작이다. 어쨌거나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무학의 우리 외할머니와 달리 저 표지 사진속의 할머니는 남편의 중혼이 정리되자마자 호적에 올랐으며 본인 스스로 유명한 국어학자(이남덕 여사)였다. 나로선 당연히 호기심이 동했다.
시병일기라고 해서 처음엔 간병을 딸도 며느리도 아닌 예순살 아들이 했다는 건가 놀라웠는데, 그건 아니고 간병인이 딸린 병원에 누워계신 노모를 매일매일 들여다보고(나도 해봐서 아는데 간병인을 따로 두고도 매일 가족이 면회를 다니는 건 병원에서 상당히 드문 일이다.) 놀아드리면서 지은이가 느낀 단상을 적어나가는 식이었다. 간병기는 한 가족의 역사를 기술한 비망록이 되기도 하고, 자타칭 불량아들이었다는 지은이의 자기성찰이자, 어머니와의 긴 불화를 접고 화해로 나아간 변화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 속에 드러나는 아흔살 노모의 모습은 또 어찌나 활기차고 위풍당당하신지. 자식들 장성한 뒤 이젠 편히 본성대로 살겠다 선언하신 바 있다는 이남덕 여사는 치매 발병 이후 더욱 위선과 절제를 내려놓은 모습을 보여주시고, 막말과 쌍욕에서 특히 그런 부분이 드러나는데, 그런 대목에서 또 나는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외할머니가 암병동에 입퇴원을 거듭하던 시절, 간병을 번갈아 맡은 이모와 막내외숙모는 평소의 할머니와 다른 거친 언사와 욕설에 많이 당황스럽다고 했다. 드라마 속 악녀를 보거나 뉴스에 등장하는 패륜 범인에게 원색적인 쌍욕을 하시는 건 봤어도("저런 육시랄 놈!" "저런 똥물에 튀겨죽일 년!" 따위;;) 측근에게 욕을 하시는 분이 아니었는데(예를 들어 엄마와 나는 외할머니에게 '년'자 들어가는 욕을 평생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고통이 심하셨기 때문인지 이모와 외숙모에게는 물론이고 간호사에게도 가끔 막말과 욕설을 해 민망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와 엄마가 면회를 갔을 때마다 할머니는 다시 점잖고 조용한 모습만 보여주셨을 뿐이었다. 고통이 만들어낸 찰나의 순간에 억제된 본능이나 울분 같은 것이 터져나오는 것이 아닐까 짐작만 했었는데, 쌍욕을 하고도 병원에서 인기가 좋으신 책속의 노모 이야기를 읽으며 속으로 맞아맞아 했다. 암병동에 있는 수많은 민머리 환자들을 보며 우리 외할머니가 하셨다는, "여긴 왜 이렇게 스님들이 많이 계시냐?"는 질문부터, 당신은 아무것도 못 드시면서 사흘걸러 한번씩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떡을 돌리셨다는 우리 외할머니도 가끔 욕설은 퍼붓되 꽤 인기 있는 환자였다. 막판에 고통 심하실 때는 빼고.
병석의 외할머니 모습뿐만 아니라,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두달간 엄마의 입원기간 간병인 노릇을 했던 나의 경험도 떠올라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책이었지만, 글의 서두가 길어진 데서 알 수 있듯 이 책에서 내가 얻은 최대의 성과는 요양병원에 대한 거부감과 죄책감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비용이 문제겠지만 잘만 찾으면 노인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보살펴 오히려 새로운 노인 공동체 안에서 편하고 유쾌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요양병원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비단 이것은 점점 연로해가는 우리 엄마뿐만 아니라 나 역시 언젠가는 병들어 어느 시설에든 위탁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노인이 될 운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밀한 가족사(가끔 들여다보기만 할 뿐 병든 노모 봉양에 대한 책임을 거의 나몰라라 하는 두 형에 대한 섭섭함과 비난도 거침없이 들어 있다)를 이렇게 시시콜콜 드러내도 되는 건가 싶은 장면도 있었지만, 서슬 퍼런 역사학자보다는 그저 어머니에 대한 태도를 바꿔나가는 아들로서의 입장이 솔직하게 전해져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치매를 앓으면서도 호탕한 기질과 유머를 잃지 않으시는 주인공 할머니! 아는 이를 못 알아보기는 해도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아직도 잊지 않고 암송하신다는 할머니가 내겐 엄청 친숙하게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모든 말씀을 타령조로, "맛은 무우슨~ 맛이 있겠어요~ 맛이 없어도~ 잘 먹어야죠~"라는 식으로 하셨다는데, 우리 친할머니도 나랑 살 때 가끔 유머 삼아 그런 타령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외할머니는 평생 절과 부처님을 모시고 산 분이기도 하고.
혹시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으로 책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하며 읽었는데, 책이 마무리되고도 시병일기는 지은이의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이미 이남덕 할머니의 팬이 된 느낌인데다 마침 티스토리라 얼른 가보고는, 지은이가 친자확인소송을 결국 취하했다는 후일담에 조금 낙담했다. 살아생전 외할머니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으며 그저 사후에 재산다툼만 벌인 외삼촌들에 대해서 분노하는 마음을 갖고 있던 터라, 지은이의 친자소송이나마 제대로 결실을 맺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허나 법적인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서류 하나 떼는데도 병든 노모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에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말았다는 결론이다. 법적으로 아예 세 자식과는 남남으로 산 것이나 다름없는 우리 외할머니가 호적을 바꾸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신데는 다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건가.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덜 받았고 불화의 골이 가장 깊었다는 아들이 병든 노모 앞에서 새삼 효자가 되어가는 모습, 헤어질 때마다 뽀뽀로 살갑게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무뚝뚝한 나무토막 소리를 듣는 나도 엄마가 더 늙으시면 곰살맞게 변할 수도 있는 건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람은 죽기전까지 절대 안 변한다는데, 이 책속의 모자는 확실히 변했다. 변화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아무튼 참 노환과 가족에 대해서, 이 나라의 알량한 노인복지와 시설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과 반성을 이끄는 책이다. 더불어 병마에 쓰러진 아흔 노모를 보살피며 비로소 오랜 갈등을 풀어내는 예순살 아들의 모습에서, 외할머니를 평생 냉랭하게 대했으면서도 여전히 속상하면 "엄마~"를 불러대는 우리 엄마의 회한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으며, 나 또한 이런 공적인 공간에 노상 엄마 흉을 보는 데 대한 면죄부 같은 걸 얻은 느낌이다.
처음 두해 정도만 열심히 구경다녔지 몇년째 방구석에서 벼르기만 하다가 놓쳤으나, 이번엔 28일부터 거리 도서전을 하는 걸로 착각하고서 비오는 날씨를 미리 걱정하는 심리적 부지런을 좀 떨었더니 (원래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둘쨋날에 성공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거리도서전 책구경도 구경이지만 제니스 브레드 샌드위치와 초콜릿 스콘이 근래 부쩍 간절히 땡겼기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
어쨌든 일요일 늦은 점심을 아주 뿌듯하게 먹어치우고 나서 거리 도서전을 하는 주차장길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조짐이 예사롭질 않았다. 죠스 떡볶이랑 무슨 핫도그집, 그 옆 분식집들 앞에 각기 줄이 10미터도 넘게 서 있고 그 인파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동반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더니 드디어 전시부스의 하얀 뾰족천막이 눈에 들어왔는데... 헐... 양쪽 골목이 모두 빽빽한 인간의 물결이었다. 문학동네가 맨 처음 부스였던 것 같은데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여 책 진열대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 +_+ 된장, 된장... 첫날인 토요일에 올 걸 그랬다고 속으로 자책했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특히 원고에 매진하지 않고 놀러나왔다고 타박할 수 있는 '갑' 입장의 거래처 담당자들 -_-;) 처음엔 슬쩍슬쩍 피해다녔는데 좀 지나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그 많은 인파 중에서 과연 누가 날 알아보겠어! 게다가 아동서를 함께 내는 대다수 출판부스엔 아예 진입이 불가능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책 좀 찾아보고 싶었는데 두어번 배회하고도 끝내 인파를 못 뚫고 들어간 부스가 몇개나 됐다. 현암사, 문학동네, 시공사... 또 어디더라.
원래 따끈따끈한 신간을 30% 할인받아야 뿌듯한 건데 하도 도떼기 시장이라 신구간을 따져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으면 훑어보는 거고 아님 그냥 기웃거리다 마는 거고... 따끈한 신간 코너엔 특히 사람이 많아! 루나파크의 런던 에세이도 책 있으면 일단 구경이나 해보려 했는데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쳇
게다가 일요일이라 가족단위의 내방객이 많을 것을 예상했는지 부스마다 유독 아동서가 많아보였다. 어우... 정신없어. 아무리 일년에 한번이라지만 휴일에 불려나와 엄청난 인파에 시달리면서도 친절히 인사를 건네고 있는 출판사 직원들도 측은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나와 얼른 책을 고르라고 강요 당하고 있는 몇몇 아이들도 안쓰럽고, 꽤 오래도록 부스 안에 진입 못해서 빙글빙글 주변만 맴도는 나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ㅋㅋ
그렇다고 포기하고 돌아갈 순 없는 일! 그나마 사람들이 덜한 끄트머리 팝업북 코너에서 이책저책 열어보다가 (수입책이라 그런지 내가 온라인서점에서 사는 값이랑 할인가가 별 차이 없어 굳이 살 이유가 없었다) 점찍어둔 몇몇 출판사 부스에 재진입을 시도했다. 두세번 가보고도 인간의 벽을 뚫지 못한 데도 있으나, 결국엔 마음산책, 문학과지성사 구간 부스에서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오래된 문지 시선은 단돈 2천원에, 소설은 3천원에 살 수 있는데 황순원의 저 <별>은 무려 '천원'이라고 했다. 집에 황순원 소설선이 있는 걸 알기에 같은 책 아닌가 하면서도 3천원인데 뭘, 이러면서 골랐더니만 '천원'이래고 집에 있는 책은 <카인의 후예>더라. 그야말로 오늘의 득템!
아쉬운 건 30% 할인중이던 기형도 전집도 살 생각이었는데 2천원짜리 구간시집 남은 게 얼마 없어서 고르다보니 그새 까먹는 바람에 빠뜨렸다는 것. ㅠ.ㅠ.
표정훈과 페터 회는 오래 전부터 읽을까말까 하는 책이었기에, 그리고 문지 부스에서 이리저리 밀리며 시집을 고르느라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원래 목표인 5권을 채워야한다는 일념으로 대충 고흐 책까지 집어 계산해달라고 했다. 다섯권 목표였는데 일곱권을 샀으니 대단히 훌륭하게 지름신을 막았다고 할 수 있다.
마침 막내동생네가 놀러온다는 바람에 애들 책을 사느라 체력과 쇼핑욕이 급격히 떨어진 덕분이기도 하다. 어딘지 출판사 이름도 까먹었고 책도 벌써 조카들이 가져가버려서 여기 자랑할 수도 없는데, 애들 책 사니깐 예쁜 연필세트도 선물로 주더라! 다만... 자녀가 몇분이냐고 물어서 잠시 머쓱. 넷이라고 하려다가, 민망하여 둘이라고 대답했는데 연필 선물로 주려고 그러는 줄 알았으면 그냥 넷이라고 할 걸 그랬다. ㅋㅋ 조카들 책까지 치면 목표량의 두배인 셈이지만 할인받은 가격을 생각하면 입이 저절로 귀에...
똑같은 지름신을 영접하더라도 책을 사는 건 소비욕에 대한 자책감이 훨씬 덜하므로, 아마 동생네가 저녁먹으러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일단 커피숍으로 후퇴해서 카페인으로 심신을 가다듬은 다음 한번 더 공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한편 아쉽다. 그러나 올해는 일단 방구들을 박차고 나갔다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최승자 시집 말고는 그냥 순전히 제목으로 고른 시집이긴 해도, 가을에 시집을 사본지가 과연 얼마만인가 싶은 것이 아주 감개무량하다.
어제 만난 친구에게 이사를 가긴 가야겠는데 집을 팔고 사는 문제도 두렵지만 일단은 30년 가까이 된 두집 살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또 다시 푸념을 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몰래몰래 버리란다. 노친네들이야 워낙 오래된 물건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못버리게 하는 게 당연하므로 엄마 안 계실 적에 스리살짝. 그래야 하는 것이었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자신은 없다. 오래된 물건 못버리는 '지병'은 (이웃 주민 '쌘'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좀 심각한 걸 알기 때문이다.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산 책 <나의 고릿젓 몽블랑 만년필>은 막상 읽어보니 내가 워낙 클래식 음악에 무지한 탓에 3분의 1 이상은 뭔소린지도 몰라 뒷머리를 긁적여야 했고,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젠체하는 느낌이 드는 시인의 글이라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럼에도 지은이가 찍은 오래된 독일물건들 사진을 보는 건 참 좋았다. 런던에서 수학선생님을 하고 계시는 런던아줌마님은 물건 함부로 안 버리고 죄다 껴안고 사는 습관을 '영국병'이라고 칭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래된 물건 절대 안버리고 소중히 간직하는 태도는 유럽인들의 공통적인 특색인 듯하다. 그러니까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치르고도 변함없이 간직된 수많은 골동품들이 유통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심지어 몇백년 전의 식료품 거래 영수증이나, 사적인 편지까지도. 유럽치고 벼룩시장 유명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나 말이다. 하다못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야드 세일'이나 '거라지 세일'을 하는 판국에...
오래된 물건을 못/안버리는 습관은 어쩌면 근대의 정서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새로운 것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 확확 세상이 바뀌던 때라 과거에 대한 향수가 특히나 진했던 게 아닐까. 신문지도 함부로 안버리시던 우리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확실히 맞는 것 같은데, 세대를 거쳐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나까지 그런 성향이 이어진 이유는 역시 알쏭달쏭하다. 내 경우는 단지 좀 우유부단하고 청승맞아서 과거에 얽매이는 듯도 하고.
하여튼 독일 벼룩시장에서 지은이가 득템한 골동품들 사진을 보며 희희낙락하다가 제일 정겨웠던 건 몽당 연필과 색연필이 든 파버카스텔 필
통이었다. 같은 브랜드는 아니지만 나도 최소 30년 된 스테들러 색연필 갖고 있다규!
전에도 어딘가 쓴 것 같은데 중학교 때 고모부가 사다주신 '독일제' 색연필을 나는 아끼느라 1, 2년간은 계속 구경만 했었고 드디어 사용한 계기는 손수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기 위함이었던 듯하다.
고등학교 올라가선 친구들과 워낙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으므로 색연필로 편지지를 꾸미기도 했고, 예쁜 편지지에 좋은 글귀 적어서 코팅해 선물하는 유행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 색을 달리해 시를 베껴적는 정성을 들인 기억도 있다. 그렇게 드문드문 십수년간 사용했어도 좀체 닳을 일이 없었던 색연필을 본격적으로 소비하게 된 건 역시나 조카의 탄생 이후의 일이었다. 벽지 낙서를 거쳐 드디어 스케치북과 이면지에 작품을 그려주기 시작한 정민공주의 그림활동에 흐뭇해, 색연필이 막 부러져 하루에도 몇번번씩 깎는 일이 생겨나도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그렇게 조카들 넷을 겪고도 아직 꽤 건재(라기엔 좀 민망하지만;;)한 스테들러 색연필의 현재 몰골은 이렇다. ㅋㅋㅋ
녹이 슨 철제 케이스 위엔 정민이가 서너살 때 붙인 방귀대장 뿡뿡이 스티커가 어지럽기 이를데 없고(잘 떼지지 않아 뗄 수도 없다;;), 내용물은 중간에 없어지고 사라져버린 색깔이 많아 다른 색연필로 대체하는 바람에 마구 뒤섞였지만 아직도 그림놀이 할 때는 없어선 안될 소품이다. 문방구 가면 파버카스텔이든 스테들러든 48색, 64색 색연필이 번드르르 종류별로 진열되어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알면서도 30년 넘은 이 색연필을 못 버리고 갖고 있는 내가 확실히 청승은 청승이라고 인정할밖에. (그나마 핑계는 요즘 같은 브랜드라도 나뭇결이 거칠고 칼을 대면 뚝뚝 쪼개지는 색연필과 달리 연필 나무가 정말 연하고 부드럽다는 것. 똑같이 집어던져도 대체된 잡종 색연필보다 잘 부러지지도 않는다. ㅠ.ㅠ) 애지중지 써온 30년 역사와 색연필 하나하나에 깃든 추억을 생각하면 어떻게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얼마전엔 엄마가 난데없이 장농 서랍 정리를 하며, 시집올 때 함에 들었던 혼서지와 사주단자를 버리겠다고 내놓으셨다. 아예 쓰레기통에 넣어둔 걸 나는 다시 꺼내며 왜 이런 걸 함부로 버리느냐고 막 화를 냈다. 엄마는 우리 할아버지가 손수 쓰신 글씨체도 아니고 당시 혼서지랑 사주단자 써주는 대서소에 가서 써온 거라 별로 보관할 가치가 없는 거라 항변했지만, 왠지 나는 그냥 버릴 수 없는 물건이라고 느꼈다. -_-;
40여년이 지났어도 비단 색실이 하나도 안 바랬다. 벌써 버렸으면 모르겠으나 엄마는 입때 갖고 있다가 왜 이제와서 새삼 버리시겠다고 하는지 원...
물론 나도 좀 지나면 아무 미련없이 버리자는데 동의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 마음으론 한참 더 갖고 있어야할 것만 같다. 엄마방 장농 서랍 안쪽에 든 우리 부모님의 연애편지 묶음도 마찬가지고... -_-;
옛날에 대학생 때였나, 할아버지가 다락방 한 가득 갖고 계시던 오래된 물건들을 비웃으며 대체 왜 그렇게 끼고 도시느냐고 투덜거렸는데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으니 어쩌면 좋으냐. 오래된 물건 못 버려 전전긍긍하는 모습 때문에 머지않아 다 큰 조카들에게 고리타분한 노친네 취급받는 모습이 막 눈에 선하다. ㅎㅎㅎ
'팝업북'이라고 제목을 써놓고 '입체책'으로 바꿀까 꽤 고민하다 그냥둔다. 우짜냐. 입체책이라고 하면 책장을 열자마자 팍~하고 불쑥 튀어나오는 그림들의 느낌이 안 살아나는 기분인 걸. ㅜ.ㅜ 이러면서 남들의 외래어 남용 탓하고 앉았으니 쯧쯧쯧.
암튼 순전히 일하기 싫어서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놀랍게도 일찍 눈이 떠지는 바람에(아무래도 너무 더워서인듯;;) 일어나 아침밥도 챙겨먹고 컴퓨터 앞에 앉긴 했으나 역시나 일하기 싫어서 헤헤실실 요번에 산 팝업북을 들춰보다 아예 자랑까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팝업북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서점에 갔다가 보고 반한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북 시리즈는 볼 때마다 침을 흘리며 감탄을 했다. 하나같이 어쩜 그렇게 정교하고 아이디어가 뛰어난지! 갖고싶다는 욕망이 불끈 치솟았지만 '어른'이 되가지고 아이들 그림책을 좋아하다 못해 이젠 소장까지 한다는 건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처음 내 판단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조카들에게 선물을 했다. 심지어는 에라 모르겠다 친구 생일선물로도 안겨주었다. 튀어나오는 그림이 가장 현란해서 아름다운 <오즈의 마법사>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둘이 제일 먼저 물망에 올랐고 한참 공룡에 심취해 있던 지우한테는 마침 번역서로 나온 <공룡>사전을 골랐다.
어린이날인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조카들에게 팝업북을 안기며 내가 더 흥분해서 좋아라했던 것 같은데 정작 녀석들은 시큰둥해 했다. 일단 '영어'라는데서 오는 거부감이었던 듯.. (하지만 당시엔 아직 번역본이 나오질 않았다규~) 대리만족으로 조카들에게 선물해서 시리즈를 죄다 구경 및 소장하고팠던 나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피터팬>이랑 <정글북>까지는 꼭 쓰다듬어 보고 싶었는데...
조카네 집에 갈 때마다 은근슬쩍 꺼내 한번씩 열어보며 좋아라만 하기엔 어쩐지 성이 안찼다. 그렇다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선물을 계속 억지로 조카들에게 안기긴 싫고. 그러던 차에 문득 요즘엔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에 좀 인색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이 들며 다른 책과 함께 나도 모르게 <피터팬> 팝업북을 주문하고 있었다. ^^;
결론은 그렇게 해서 요번에 장만한 피터팬 팝업북의 위용을 자랑하겠다는 것. ㅎㅎㅎ
그림체가 아기자기 귀여운 것도 아니건만 기분 처질 때마다 열어보면 효과 즉방이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설계하고 만드는지 원!
이 장면은 웬디 삼남매가 피터를 따라 네버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만난 숲이다.
아래쪽에 접혀있는 텍스트 책장을 열면 페이지마다 작게 또 다시 팝업되는 거 정말 좋다. *_*
나무뿌리 아래 있는 아이들의 동굴 보금자리. 빨랫줄에 넣어놓은 양말이랑 웬디가 들고 있는 빨래가 제일 귀여운데 안타깝게도 사진에서 잘 안보인다. 웅...
<피터팬>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라하는 팝업인데 돛을 펼친 배의 위용이 잘 안보여 속상.
요즘 유난히 유치해지고 싶은 것 같아서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최근 픽사가 제공한 알로하 토이스토리를 깔아두었더니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아주 딱이다. 룰루룰루~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로버트 사부다 팝업북의 최고봉을 꼽으라면 난 역시나 오즈와 앨리스를 고르겠다. 둘 다 이제 번역본도 나온 걸 보면 우리나라 책 제조술도 만만칠 않다는 뜻인가보다. 만들기 엄청 까다로울 텐데... 수입책과 얼마나 접고 펴는 느낌이 다른지(또는 똑같은지) 궁금하긴 하나, 앞으로 또 사게 되더라도 수입 원서를 사고 싶은 건 일종의 사대주의일까 아닐까. -_-; 혹시... 동화책이지만 영어로 갖고 있으면 뭔가 자료스럽게 보일 거라는 착각? ㅋㅋ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둘 다 퍼온 사진인데 아쉽게도 앨리스는 딱 이 장면밖엘 없네. 쳇... 그래도 이 페이지가 나도 제일 신기하고 예쁘다.
<전세계를 감전시킨 93세 레지스탕스 노투사의 외침> 때문이라기보다는(띠지에 적힌 글귀다) 애당초 이 책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표지 포함 34쪽에 불과한 얄팍한 이 원서 한권에 국내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선인세가 만오천 유로까지 올라갔다는 소문을 들었던 게 주효했다(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이 정도 분량의 원서라면 우리나라 출판시장을 감안할 때 선인세는 5천 유로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과연 그런 책이 팔리나? 출판사들 미친 거 아냐? 하기야 선인세 몇억도 막 베팅하다가 퍽퍽 부도나 넘어가는 출판사가 어디 한둘인가. 한심하다...
스테판 에셀 지음/임희근 옮김/돌베개/2011
그 상황 그대로였다면 나는 괜스레 심술이 나서 아마도 이 책을 사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원래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어본 적 없지만[!] 선인세 10억을 주고 사왔다는 말만 듣고도 <1Q84>는 처음부터 독서제외 대상이었다. 참 별스러운 나의 독서취향^^;). 헌데 반전이라면 반전인 소식이 들려왔다. 저자를 설득한 끝에 돌베개 출판사(서경식 선생의 책을 비롯해 나도 돌베개가 내는 책들이 좋고 심지어 어쩜 그런 책들만 내는지 존경스럽다. 물론 출판사와 개인적 친분은 전혀 없고 그저 독자로서;;)가 최고액 선인세를 제시한 경쟁사를 물리치고 만 유로로 판권을 따냈다는 것. 만 유로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어쨌든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여전히 활발하게 저항과 행동을 부르짖는 노투사다운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꺼이 책을 사들여 후딱 읽었다. (원서엔 없는 저자 인터뷰, 추천사, 역자후기를 붙여 프랑스 원서보다 두배 이상 분량을 늘였어도 불과 87쪽이다.ㅎㅎ)
스테판 에셀은 1917년생이다. 우리나라 나이셈법으로 따지면 무려 아흔다섯.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운동 분야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단다.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에 합류,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극적으로 탈출. 전쟁 이후엔 외교관으로 활약, 퇴직 이후에도 인권 및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가로 활동 중이라는 것이 그의 약력이다. 예술애호가인 어머니 엘렌이 트뤼포 감독의 <쥘과 짐>의 실제 모델이라니, 결혼제도를 비웃는 그런 관계를 지켜보며 살았을 가정환경도 참 자유로운 분위기였을 것 같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대학생, 현직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가 일었을 때 사람들이 외친 구호가 상당수 이 책에서 인용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부당함과 차별에 분노하고 비폭력으로, 평화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어찌보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원칙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새삼 노투사의 당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건 그 이야기가 탁상공론이 아닌 평생 현역에서 활동해온 운동가의 부르짖음이자,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이기 때문이다. 부당함과 차별의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공통의 문제이기도 하고.
노상 정치쇼를 일삼는 딴나라당의 일꾼답게 사퇴 카드와 함께 눈물로 읍소까지 했던 서울시장의 주민투표가 무산된 어제, 사퇴 이야기는 쏙 빼고 딴소리를 하는 인간들의 면면이 하도 환멸스러워, 읽은지 한두달 지난 책을 새삼 꺼내들어 다시 읽었다. 이른바 한나라당 표밭이라는 강남 3구의 투표율과 대단한 차이를 보이는 가난한 자치구의 투표율을 보며, 타워팰리스 내부에 설치된 투표소의 경우엔 투표율이 60%라는 언론 발표를 보며 정말이지 깊은 한숨이 나왔다. 대체 이 사회엔 희망이 있을까? 왜 우리나라엔 이렇게 존경할만한 어르신을 찾아보기 힘든걸까.
화는 본디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내는'(出) 것이라 했다. 다른 나라 어르신이긴 해도 분노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고 격려해주시니 계속 버럭버럭 분노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여기며 다시 책을 덮었다. 사라코지 덕분에 프랑스도 우리나라와 많이 비슷해졌다는 걸 위안으로 삼는 건 너무 서글픈 일이지만, 참 구구절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가 자랑스러운 사회일 수 있도록 그 원칙과 가치들을 다같이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른바 '불법 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 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 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결코 이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10쪽)
진정한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독립된 언론이다...(중략).... 그런데 오늘날 바로 이 '언론의 독립'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12쪽)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이토록 부추긴 적도 일찍이 드물었다. (15쪽)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22쪽)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폭력보다는 희망을,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 (34쪽)
.....위협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언론 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38-39쪽)
우리나라에서 싯누렇거나 거무스름한 싸구려 재생지로 만든 보급판 책이 널리 사랑받지 못하는 건 워낙 책을 숭상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페이퍼백이 지천인 외국과 달리 제 아무리 시답잖은 내용이라도 책은 마트 선반에서 대충 골라 한번 읽고 내다버리는 용도가 아니라고들 믿는다는 얘기다. 그렇게 책을 신성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독서인구가 적다는 아이러니도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책은 독서 여부와 상관 없이 사서 책꽂이에 '진열'하는 용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내가 책을 살때 장정과 표지, 제목을 꽤 중시하고, 독서하는 동안과 이후에 띠지를 고스란히 간직했다가 다시 새책처럼 둘러 책장에 꽂아두는 버릇도 아마 그러한 전시행정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책을 훼손하는 짓 역시 당연히 금물이라 여겨 옛날부터 책장을 함부로 접거나 줄을 긋지 않았다. 가끔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책장에 한방울 흘리기라도 하면 엄청난 죄책감에 사로잡혀 호들갑을 떨었다. 얼른 닦아내어 흔적을 없애보겠다고 말이다. 예외가 있다면 교과서, 교재, 참고서적 정도. 하기야 그런 책은 독서를 하는 게 아니라 책장과 씨름을 하는 거니까 형광펜과 색깔 볼펜으로 죽죽 줄을 긋고 메모를 해두어도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뿌듯했던 것 같다. 나중에 학자가 되고 나면 그런 책들이 부끄러워 새로 다 책을 장만해 꽂아둔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나는 학자가 될 생각이 없으니 상관없다. 내가 보기엔 옛날 교재를 다시 들춰볼 일도 거의 없을 것 같고.
암튼 그런데 최근 책 훼손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려고 노력중이다. 일부러 막 더럽게 읽거나 줄을 마구 긋는 건 아니지만 인상깊은 구절을 발견하면 일단 책장을 접어둔다.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하면서는 책을 읽으며 옆에 공책을 끼고 있다가 인상적인 구절이 나타나면 틈틈이 적어두곤 했는데 그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독서의 흐름도 확 끊기고! 뿐만 아니라 읽을 땐 괜찮은 것 같아 적어뒀는데 나중에 보면 대체 왜 적었나 싶은 문장들도 꽤 많다. 언제나 감상의 과잉에 허덕인다는 증거다. -_-; 그렇다고 또 내가 막 모든 책을 두번씩 탐독하며 내용을 정리하는 위인도 아닌지라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실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꼼짝도 하기 귀찮은 마음이 더 컸다;)하다 그냥 책장을 확 접어 표시해두기로 한 거다.
포스트잇을 붙여두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게 포스트잇은 통째로 수집 및 관상용 아니면 '일'과 직결된 거라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해서 처음엔 빳빳한 아트지 책장을 접는 손끝이 바르르 떨릴(과장 포함;;) 정도로 좀 찔렸으나, 그 또한 거듭되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어차피 누굴 빌려줄 책도 아니고 나 혼자만 볼 건데 뭐! 원래도 읽던 부분 표시는 온갖 종류의 책갈피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헷갈릴 필요는 없고, 책모서리가 많이 접힌 책일수록 인상깊은 구절이 많은 책임이 한눈에 척 들어오니 다 읽고 나선 꽤 뿌듯하기도 하다. 물론 접어놓은 부분은 며칠 내로 독서노트에 옮겨놓고 다시 잘 펴놓는다. 그 과정에서 역시나 왜 접어놨나, 다시 읽으니 별로다 싶은 부분도 있고, 새삼 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일석이조다. 한번 접힌 자국은 영영 지워지지 않겠지만, 의미없는 훼손은 아니며 새로운 책버릇일 뿐이라고 세뇌 중이다. 다 읽고나서도 새것처럼 깨끗한 책이 좋기는 하지만, 안 읽어서 새것인 책(아직도 너무 많다;;)은 자랑이 아니라고. -_-;
출판계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떨다가 들은 얘기.
출판계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은 의외로 책을 많이 읽는 독자가 아니다.
책을 읽든 안읽든 자꾸 많이 사서 잘 꽂아두는 사람이 최고로 좋은 사람.
자기가 책을 안사더라도 동네 도서관에 자꾸 책 신청하는 사람, 좋은 사람.
욕을 먹거나 말거나 요즘도 꿋꿋하게 책 선물 하는 사람도 좋은 사람.
욕이든 칭찬이든 책 읽고 블로그나 트위터에 리뷰 올리는 사람, 퍽 좋은 사람.
물론 최고로 나쁜 사람은 일년 내내 책 한권 안 사는 사람.
(책을 사기는 하되 전혀 안읽어도 괜찮음. 책보다 흥미로운 것들이 세상에 좀 많은가.)
그러나 열심히 책을 사서 읽고난뒤 출판사에 전화 걸어 따지는 사람도 나쁜 사람이란다. ㅋㅋㅋ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맞춤법에 따라 책에 오탈자가 몇개라고 항의하는 독자들도 나쁜 사람.
오늘의 결론. 나 꽤 좋은 사람이었어!
밀린 책 좀 읽었다고 냉큼 사들인 책이 또 쌓여 뒹굴고 있다. 그래도 출판 유통에 일익을 담당했으니 완전 한심한 건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