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까지 전시중이었던 근대서화전과 함께 오백나한전을 보러 중앙박물관에 가면 좋겠다고 5월 내내 별렀으나 결국 근대서화전은 놓쳤고, ㅠ.ㅠ 13일 끝으로 알고 있던 오백나한전이라도 꼭 봐야겠다 싶어 지난 월요일에 뛰쳐나갔다. 흐렸던 하늘이 점점 개면서 더욱 선명하고 초록초록하게 보이는 나무 색깔부터 감동.

매번 이촌 지하철역에서 나와 진입하거나 주차장에서 들어가 늘 건물을 보던 시선도 고정되어 있었는데 우연히 전시장에서 만난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가는 바람에 지상 정문쪽에서 걸어들어가며 바라보이는 중앙박물관의 모습에 또 한번 반했다. 트인 공간으로 보이는 남산.. 좋다. ​

​배낭은 앞으로 매야하고, 먹물 조심해달라는 구구절절 주의사항을 듣고 전시장에 들어간 순간 흡! 전시 기획을 누가했는지 모르지만 박수쳐주고 싶더라. 대부분 유리상자 안에 가둬놓지 않아서 더욱 기뻤고.

​브로셔에 든 스타 나한상부터 하나하나 정성껏 카메라에 담으며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 같았다. 어휴... 어떻게 이렇게 하나하나 느낌이 다 다를까.

아래는 김승영 작가의 설치미술 주변 유리 안에 들어 있던 나한상들이다. 표정의 느낌 별로 모아놓은 듯.

전시 보러 가서 늘 하던 놀이대로 나한상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뭘 가질까 여러번 둘러보며 고민했는데 도무지 하나만으론 딱히 마음을 정할 수 없었던 반면, 지그시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흘릴 뻔한 나한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얼굴이었다.

절에서 여자 신도들에게 형식적으로 부르는 '보살님'이란 호칭에 정말로 어울리게 평생 사찰과 밀접하게 살아온 외할머니가 떠오르면서 쟁쟁한 할머니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덩달아 자비심 보살님인 울 엄마 영자씨도 생각나고. ㅠ.ㅠ

엄마는 젊었을 때 외할머니랑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었는데 늙어가면서 점점 할머니랑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모나 외삼촌들이나 이웃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나도 엄마랑 나가면 하도 안 닮아서 며느리신가보다고 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나이 더 들면 닮은꼴이 될까? 째뜬 우스운 건 외할머니 키가 170, 울 엄만 160... 그리고 난.. ㅠ.ㅠ

딸이 자기 엄마보다 키 작기가 드물다는데 울 엄마도 나도 자기 엄마보다 키 작은 딸이란 거 하나는 확실한 공통점이다.



전시장을 두바퀴쯤 돌고 나서 구석 의자에 한참 앉아 있다가 다시 인상적인 몇몇 나한상을 다시 눈과 마음에 새기고 돌아나서려니 이번엔 얼굴이 다 닳아 거의 없어진 나한상이 눈에 콕 들어왔다. 

파피가 먼저 전시보러 갔을 때 사진 작품의 질이 ㅎㄷㄷ하다며 엄청 탐났으나 품절이라 못구했다는 대도록은 아예 구경도 할 수가 없었고, 아쉬우나마 저렴한 엽서 크기의 소도록을 집어들고 돌아왔다. 


이번주 일요일 16일까지 연장전시한다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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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cholatree.tistory.com BlogIcon 아왜나무 2019.06.28 1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백나한 얼굴이 생생해서 좋습니다. 저도 몇 년전에 천불전 조성한다고 기부를 했는데 불상을 가져온 사진 비슷하게 목조각해서 놓아둔다고 하더라고요. 좋은 생각이다 했지만 사진을 가져다 주지 않고 그냥 보통 부처님 얼굴로 해주세요. 다 다른 것이 더 좋은데... 할걸 그랬습니다.

한국가구박물관

놀잇감 2019.06.09 16:48

그렇게 좋더란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 벼르고 별렀으나 이제야 드디어 가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 4월초쯤에 예매 사이트엘 들어갔는데도 5월 말밖에 자리가 없었다.

개인박물관치고 가장 입장료가 비싸다는 해설사의 말마따나 무려 1人 2만원. 근데 둘러보고 나오며 아깝단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개인이 이 정도 한옥집과 고가구를 모으고 유지하기가 쉽진 않겠지. 오히려 꽤 규모가 크고 직원도 많던데 관람료와 대관료로 계속 박물관 유지가 가능할까 셈에 느린 나로선 감이 잡히질 않았다. 예전엔 뜨르르하는 부자였을지 몰라도, 혹은 후대에 들어 재산관리를 잘못했는지 어쩐지 가구박물관과 부지가 경매에 나왔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으나 아직 완전 부도나서 넘어가진 않은 모양이다. 이러다 나 구경가기 전에 경매로 넘어가는 거 아닌가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는데, 관람객은 계속 꽤 많은 듯.  

비내린 뒤 개인 하늘이 정말 푸르렀던 날이었다. 대문이 열리고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감탄하며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는데 10초쯤 뒤 건물 외부 포함 모든 사진촬영은 지정된 곳 이외엔 절대 금지라고 하더군. 으으 뻘쭘하여라. 그래도 눈치 못했는지 사진 당장 지우란 말은 하지 않았다. ㅠ.ㅠ 이렇게 공개된 곳에 올렸으니 삭제하라고 연락오면 그때 삭제해야지. 

​박물관 관장이 거의 고등학생 때부터 고가구 보는 눈이 있어 버려진 고가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해설사가 하던데, 그런 안목을 갖춘 건 역시 집안에서 익히 골동품을 보고 자란 경험이 쌓여서 작용했을까? 우리 친가, 외가에도 옛날에 쓰고 있던 호족반, 개족반, 서안, 엄마가 시집올 때 해왔던 자개장... 이런 것들도 죄다 내버리지 않고 그냥 두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기야 쓰기 멀쩡한 상태였는데 불편해서 버렸을 리는 없고 깨지고 망가지고 그랬으니 버렸을 거다. 엄마의 혼수품이었던 자개장은 나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엄청 무거워서 셋방살이 잦은 이사에 옮기기도 힘 들었지만 균형이 틀어져 이불장쪽 미닫이문이 잘 안닫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전시품 자개장처럼 엄청나게 화려하게 전면에 꼼꼼히 자개를 입힌 골동품도 아니었고 듬성듬성 도안을 넣은 자개가 군데군데 떨어져나갔던 것 같다. ^^; 

전통 고가구야 다 아름답지만 누가 하나쯤 가지라고 한다면 앉은뱅이 책상인 서안을 가장 탐내는 편인데, 평평한 건 사대부들이 쓰던 거고, 끝이 위로 말려 올라간 건 사찰에서 쓰던 '경상'이란다. 두루마리 경전이 되말리지 않도록 펼처놓기 좋게 만든 거라고. 오호 그런 거였군. 우리 할아버지가 옛날에 쓰시던 저렴이 서안도 위로 말려 올라간 형태였던 것 같다. 나중엔 사대부들도 아름답고 좋아보여 널리 썼다니 한국전쟁 이후에 유통되던 가구들도 비슷하게 만들어진듯. 

암튼 근데 전시품 중 요번에 가장 탐났던 건 뭐니뭐니해도 책함! 사진찍고 싶은데 못찍어오니 인터넷 이미지를 뒤졌다. 역시... 중앙지 기자에겐 사진을 찍게 해주는군. 

책의 권수에 맞게 맞춤형으로 만들어 함째로 들고 이동해 읽었단다. 아.. 갖고 싶어라.. 사진 출처는 ㅈㅅ일보 +_+

1시간동안 다섯채 정도 되는 한옥과 그 안에 전시된 고가구를 둘러보고 나와서 드디어 사진 촬영이 가능한... 순정효왕후가 살았다는 한옥집 앞마당에 이르렀다. 사람들 없이 찍는데 성공. 

민망하지만 누마루쪽도 담긴 온전한 사진은 이것뿐이라 얼굴을 가렸다. ㅎㅎ 나중에 한옥을 짓고 살게 되면 나도 저렇게 창호지 분합문과 여닫이 유리문으로 이중문을 해달아야지 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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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앵두 2019.06.13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몇 년 전에 갔었는데 지금은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네요. 저도 (어느정도 익숙한 한국 고가구에 비해) 아주 색달랐던 책함에 반했어요. 딱 쓰임 그대로 하나의 간결함과 여럿이서 구성미까지 갖춘 완벽한 책장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Favicon of https://ynot.tistory.com BlogIcon 입때 2019.06.13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고가구 종류며 소반이며 거의 다 본 적 있고 익숙했던 것들인 반면 책함은 처음보는 거였고 엄청 탐나더라고요. 이리저리 다르게 쌓아놓는 묘미도 있을듯. 책에 먼지도 안쌓이고 얼마나 좋을까요. ㅎ

  2. 2019.06.13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ynot.tistory.com BlogIcon 입때 2019.06.13 14: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요즘 과학책 번역하면서 수많은 주석과 용어 고민 때문에 엄청 고전중이라 자존감이 또 바닥을 치고 있던 차에 ㅜ.ㅜ 불끈 힘이 나는 말씀! 작업용 책을 편애하면 안되는데... 확실히 개인적으로 재미를 더 느끼거나 애정을 갖고 번역한 책은 문장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ㅎㅎ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