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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하나마나 푸념 2010. 7. 27. 22:24

넌 꿈이 뭐니?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른들이 습관적으로, 그리고 요즘은 강박적으로 아이들에게 던지는 저 질문은 내가 어린 시절에도 종종 들었던 말이다. 그때마다 나 역시 생각나는 대로, 선생님, 외교관 정도의 '모범적인' 대답을 하긴 했지만 질문을 던지는 어른이나 대답하는 나나 특별히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서 나눈 대화는 아니었다. 처음 만난 어른들이 괜히 할 말 없을 때 날씨 얘기, 시사 얘기 꺼내듯이 허투루  꺼내는 화제와 별 다를 게 없었다는 뜻이다.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직업이 뭔지 찾았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달려오긴 했지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의 꿈은 아마도 내가 남은 평생 선망을 품을 하나의 가능성이 아닌가 싶다.

헌데 가엾게도 요즘 아이들은 상황이 다르다. 자기 꿈이 뭔지, 뭐가 되고 싶은지 빠르게는 초등학생 때, 늦어도 중고등학생 시절엔 이미 목표를 정해 그 준비에 매진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떨려난다고 믿는 어른들 때문이다. 뭐가 되고 싶은지 확고한 주장이 없으면 꿈도 야망도 없는 하찮은 아이로 손가락질 받기 일쑤다. 대학시절을 돌이켜볼 때 나는 지금도 그 때가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여기며 4년 내내 거의 줄창 놀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보낸 추억을 곱씹는 반면, 요즘 대학생들은 신입생 때 이미 취업준비에 매달려 학점따기에 여념이 없다. 조교시절 내가 혹시 출석 확인 잘못하는 바람에 성적에 지장 있을까봐(지정좌석제라 2시간 내내 맨 뒷자리에 앉아 학생들 출결을 확인했었다) 수업 때마다 출석표를 일일이 확인하며 따져대던 학부생들한테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로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요즘 아이들 꿈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훌륭한가 하면 절대 아니다. 초등학생들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우선은 꿈이 죄다 좋은 학교 진학인 모양이다. 국제중학교, 특목고, 명문대 따위로 이어지는 숨막히는 목표의 반복 속에서 부모들은 정말 자식의 꿈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나와 달리 학부모의 고충을 심히 겪고 있는 친구에게 엊그제 들으니 요즘 중산층 부모가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려면 필수조건이 네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동생의 희생.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기가 막혀 코웃음이 나오면서도 씁쓸했다. 그래서, 자식 하나 명문대 보내서 그 다음엔 어쩔건데???

세상이 하도 거지같다보니, 그저 행복하고 씩씩하게만 자라주었으면 싶은 사랑스러운 나의 조카들도 벌써부터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자기가 뭘 잘하는지 장래희망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왜 아니겠나.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코르동 블루' 같은 유명 요리학교에 진학해야 '성공'할 수 있으니까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어른들의 채근이 이어지고,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하찮은 그림 하나 그릴 때마다 창의력을 더 키워야 하네 마네 잔소리를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지금 무슨 꿈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른들의 결론은 하나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어떻게 온 세상의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할 수 있나! 공부 잘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타고난 재능이던데...
 
100점짜리 시험지나 최우수상 상장을 자랑하며 한껏 어깨를 으쓱거리는 조카들을 무한히 칭찬해주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잘난 척 해도 나 역시 성적지상주의에 갈채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초등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2, 3주 전부터 밤늦게까지 시험준비를 해야하는 세상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까. 혹시라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90점, 80점으로 점수가 점점 떨어져 성적표에 '노력요함'이 적힌 과목이 차츰 늘어나면 아이들은 또 어떤 상처를 받게될까.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잇달아 당선되긴 했지만 학력중심의 사회구조와 행복은 반드시 성적순이라 믿는 부모들의 맹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나라 교육에 희망은 없어 보인다. 교육정책을 만들어내는 공무원이나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들도 과거 어린 시절 죄다 우등생이었을 텐데, 공부 하기 싫고 잘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까지 과연 헤아릴 수나 있겠나. 공부를 못하면, 고가의 사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면, 웬만한 꿈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요즘 아이들 절반 이상의 장래 희망이 하나같이 '연예인'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 꿈은 지긋지긋한 학교공부와는 멀어질 수 있으니까.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재롱만 피우던 조카들의 머리가 굵어지는 걸 바라보며 그 녀석들이 장차 과연 어떤 인물로 자라날지 어떤 인생을 선택할지 몹시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녀석들에게 뭐가 되고 싶으냐는 귀찮은 질문을 던져댄다. 부모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고모로선 그저 행복한 사람, 올바른 사람, 된 사람이 되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충분할 텐데 자꾸 속물근성이 튀어나온다. 스스로 올바른 사람,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장래희망을 나 역시 행복한 사람, 올바른 사람, 된 사람으로 바꾸어야 할 모양이다. 이미 너무 늦어버린 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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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림

투덜일기 2010. 7. 16. 00:57

시기적으로 괜스레 까칠하게 굴게 되는 요즘 특히 거슬리는 것 두 가지.

1. 점심 때 "**** 햄버거가 오직 삼천원"이라는 광고 문구.
유일함을 뜻하는 부사인 '오직'을 써서 일부러 강조한 카피라이터의 의도를 모르진 않겠으나, 어쨌든 비문이잖아! 오직 돈 벌 생각에만 혹해 한글 망치는 건 신경 안쓰는 태도냐 뭐냐.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자꾸 귀에 들려 심히 거슬린다. 멍청한 일부 대중은 또 저게 맞는 줄 알고 따라쓰지 않을까. 어휴.

2. 새로이 등장한 서울 택시의 황당한 색깔.
'꽃담황토색'이라는 색깔이름은 예쁘다고 할 수 있겠음. 자동차 도장에 쓰이는 페인트가 특히 색상 구현에 까다로우리란 것도 얼추 짐작할 수 있음(과거 내 눈엔 흉측하게만 보이는 자동차 색깔들이 좀 많았나!). 은색이나 흰색 택시보다 확실히 눈에 확 띄는 색깔임도 인정.
그러나 결정적으로 너무 밉다. ㅠ.ㅠ 주황색도 아니고 황토색도 아닌 것이 몹시 어중간하고 칙칙하여 새차임에도 더러운 느낌이 드는 괴상망측한 색깔의 새 택시가 눈에 띌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쌀이 찌푸려진다.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서 정한 색상이라는데 과연 어떤 시민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것인지... 그저 한숨만. 하기야, 디자인 서울이랍시고 오잔디 일당이 저질러대는 흉물 꼬락서니의 연장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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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투덜일기 2010. 6. 19. 18:11

편견인지 취향인지 나는 목소리 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남들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목청으로 핏대 올리며 이야기하는 사람은 혐오대상이다. 목소리 좋은 사람 싫어할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목소리의 미추 여부를 떠나 그냥 조용조용 나직나직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좋다. 그렇다고 너무 저음이라 웅얼웅얼 못알아 들어먹게 생긴 목소리는 또 별로.

그런 잣대로 보자면 나는 내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도 가끔 전화 받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텔레마케터가 "어머니 안 계세요?"라고 물을 때가 있을 정도로 목소리가 유치하게 가늘고 높은 톤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고상함과 우아 떠는 연습을 좀 많이 한 덕분인지 그나마 예전보다는 톤이 좀 낮아진 것도 같지만,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무심결에 녹음된 진짜 목소리를 들으면 퍼뜩 놀랍고 민망하다.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앵앵거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유난스레 많이 떠들어대고 들어온 날 특히 공허하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건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싫어하는 내 목소리를 계속 견뎌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목소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품게 되지 않을까.

목소리도 타고난 신체의 일부인데 싫으니 좋으니 따지는 건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예쁘니 미우니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손가락질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임을 알고는 있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은 건 싫은 거니 어쩌랴. 남들에게 티는 안내면서 속으로만 삭이고 살며 쓸데없이 욕먹기만 피하는 수밖에.

헌데 귀가 잘 안들리는 왕비마마와 살려니 자꾸만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데 가뜩이나 본인 목소리 싫어하는 나로선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고, 나도 모르게 쉽사리 짜증이 묻어나와 남들이 들으면 만날 모녀가 싸우고 앉았다고 여길 것만 같다. 원래부터 나긋나긋 상냥하고 낮은 목소리를 지녔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좀 더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으려나. 근본적인 이유는 까칠한 성격 탓인데도 오늘은 애먼 목소리만 탓하고 앉았다. 묵언수행이라도 해야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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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한번씩 이맘때가 오기를 기다린 사람들이 많다지만, 나는 4년에 한번씩 이맘때가 지겹다. '누구나' 월드컵에 '당연히' 열광하고 즐겨야 한다는 논리의 근거는 대체 무엇인지? 축구를 좋아하고 특히 국가 대항전은 더욱 좋아하고, 한국선수들 이외에도 현란한 발기술과 전술을 선보이는 전 세계 축구선수들의 기량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두근 설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열정이 '보편적'이므로 모두들 그 열정의 물결에 휩쓸려야만 '정상'인 듯 몰고가는 상황들이 나는 짜증스럽다.

이미 광고는 죄다 붉은 물결로 도배가 되었고, 웬만한 오락프로그램도 월드컵 특집을 선보일 기세다. SBS가 독점중계권을 따내는 바람에 국민의 시청권이 침해되었다고 난리인데, 막대한 돈을 들여 다시 큰 돈 벌어보려는 꼼수를 쓰는 SBS는 내가 봐도 얄밉긴 하지만 월드컵 시즌마다 나 같은 월드컵냉소분자의 시청권은 늘 침해되고 무시되지 않았나 말이다. 타 방송국에서 소송까지 제기하며 중계권 다툼을 벌이는 모양인데, 솔직히 나는 월드컵 기간에 똑같은 경기를 앵커와 해설자만 바꾸어 틀어주는 걸 참아내느니 독점권 때문에 다른 방송에선 정규 프로그램을 틀어줄 수밖에 없을 요번 상황이 오히려 반갑다. 이런 나한테 대다수의 월드컵 팬들이 욕을 해대든 말든, 소수자인 내 의견은 그렇다는 뜻이다.

어제는 외출에서 돌아오다 차에 기름을 넣었는데, 주유를 끝낸 주유원이 대뜸 나에게 외쳤다. "화이팅입니다!"
난 당연히 그 말을 못알아듣고, 뭔가 더 볼 일이 남았나 싶어 되물었다. "네?" 
알고보니 대한민국 화이팅이라는 말이란다. -_-;; 잠시 그도 나도 뻘쭘해졌음은 물론이다. 얼른 창문을 올리고 주유소를 빠져나오며 문득 궁금했다. 월드컵을 오매불망 기다려온 붉은악마라면 주유원과 함께 '대~한민국!" 구호와 함께 그 유명한  박수도 치지 않았을까 하고.

생기는 것도 없이 그저 열정만으로 월드컵 응원을 위해 며칠 밤을 새고 봉사하고 즐기는 축구팬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뻘건 티셔츠 맞춰입고 길바닥에서 길길이 뛰며 환호하는 길거리 응원 따위에 휩쓸리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오죽하면 2002년에도 연구실에서 공부하다 학교 노천극장에서 들려오는 왁왁대는 함성이 시끄러워 짜증내며 집에 돌아왔을까. 이탈리아 전을 하고 있었던가, 길거리까지 한산하고 오래 기다려 도착한 버스엔 손님이 단 한명도 없어 학교에서 우리집까지 거의 논스톱으로 오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의 그런 집단적인 행동과 반응이 섬뜩하니 무서웠다.

8년 전엔 월드컵에 관심 없고, 5시간씩 화장실 참아가며 길바닥에서 탈진할 때까지 거리응원을 하는 아이들을 미쳤다고 여기는 나의 태도가 거의 돌맞을 수준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요샌 드물게나마 나와 같은 의견을 공공연히 토로하는 이들도 있고, 또 월드컵 안본다고 해도 정신나간 사람 취급하는 건 아닌 인식이 조금씩이나마 자리를 잡는 듯하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주제든 자기와 의견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 다른 의견이 극소수라는 이유로 '이상하다, 유별나다, 비정상이다'라고 손가락질하는 대신에 흔쾌히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선선한 태도와 아량이 아직은 까마득히 먼 집단주의 사회이긴 해도, 티나게 욕하지는 않는 예의를 갖춰가고 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이왕이면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 많은 이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앞으로 몇주간 (월드컵이 언제 끝나더라?) 개인적으로는 월드컵을 안 볼 수 있는 소중한 나의 권리가 얼마나 지켜질지 그걸 더 열심히 관찰할 작정이다. 온 나라가 시끄러울 터이니 집안에서 조용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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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키울까

투덜일기 2010. 6. 4. 14:54

제가 이웃들간 불화의 주인공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멍청한 놈이 모르고 있다는 데 7만원도 걸 수 있다!) 아래층 똥개(잡종견이라고 썼다가 어쩐지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은 어감이 들어 배알이 틀리는 바람에 바꿨다. 역시 한글이 좋은것이로다)의 목청은 요즘도 나날이 커져 밤중에 마음의 준비 없이 개짖는 소리와 맞닥뜨렸다가는 기절초풍할 수준에 도달했다.

<개가 짖으라고 있는 것이지 안 짖으면 그게 개냐>는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의 궤변은 그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들을 수가 있었기에 (물론 나한테 직접 한 얘기는 아니다.) 이웃간의 긴장감이 완전 살얼음판이라, 개주인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는 아예 개를 집안에 들여놓기도 한다. 어제도 종일 개짖는 소리가 없길래 집안에 들여놓는 날인 줄 알고 외출에서 돌아오다 커렁커렁 짖어대는 소리에 발목를 삐끗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와락 화가 치밀어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동시에 아래층 오른쪽 집과 옆집 2층에서 동시에 내가 하려던 개에 관한 욕설이 터져나왔고 나는 혹시나 쌈박질에 휘말릴까 두려워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라왔다. 다행히 내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몇 초 안에 개짖는 소리가 잦아들었으므로 또 한번의 동네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짖는 소리도 스트레스지만 이제는 그 소리로 인한 이웃간의 불화 또한 나에겐 스트레스다. 처음엔 내 대신 이웃에서 불만을 토로하면 금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를 집안에서 키우든지, 목청수술을 시키든지, 다른데서 키우라고 주어버리든지, 이 세 가지가 내가 생각한 가능성의 경우 수였고 이왕이면 맨 마지막 옵션이 선택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멍청한 똥개마저도 어여쁘다 여기고 있는 정민공주의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아래층 개주인들은 다른 방법을 대안으로 선택할 것이란다(아래층 아저씨는 자주 우리집에 들락거리는 공주가 여기 상주하는 줄 아는지, 심부름 가는 아이를 붙들고 사연을 전했단다). 이름하여 전기충격 목줄? 개가 짖으면 진동으로 목줄이 조여져 짖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라던데 정말로 그런 게 있나? +_+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또 한번 기가 막혔다. 그런 목줄의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층 개주인은 정말로 그 똥개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키우는 걸까? 물론 개의 성대를 잘라내 짖는 소리를 줄이는 것도 비인간(비동물?)적인 방법이겠지만, 짖을 때마다 전기고문을 받듯이 충격을 받아야 하는 개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주인이라면 개를 키울 자격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는 뜻이다. 그런 목줄이 상품으로 나와 있다는 건 그만큼 수요도 있다는 뜻이니, 개가 받는 충격의 정도가 겪을만한 수준이라 여길 순 있겠지만 애완동물을 싫어하는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정말로 크게 키워 잡아먹을 심산이 아니라면야, 아무리 훈련목적이라도 예뻐서 데리고 사는 개에게 어떻게 전기충격기를 목에 매달 생각을 하는지! 그렇게 해서라도 꼭 개를 키워야 하는 것인지!

내 주변의 개들이 죄다 수난기인지, 조카네서 키우는 파랑이도 퇴출위기에 놓여 있다. 그 녀석은 정말로 식구들의 애정을 꽤나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배변 교육이 제대로 안된 탓에 식구들 침대마다 죄다 돌아가며 한두번 이상 똥오줌을 싸놓았단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걔가 스트레스를 받나보다, 애정 결핍인가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법 똑똑해보이는 녀석의 교육을 제대로 시켜볼 것을 당부했었지만 조카네도 거의 포기단계다. 정말로 온종일 홀로 애정을 쏟으며 다시 배변훈련을 시켜줄 주인에게나 가면 모를까, 장난꾸러니 사내아이까지 있고 다들 바빠 집을 많이 비워야 하는 조카네선 역부족이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하기야 아무리 개가 예뻐도 며칠만에 한번씩 돌아가며 온 식구들의 침대 시트를 빨아대야 한다면 곤란하겠지.

사실 온전히 파랑이를 예뻐하는 사람은 올케와 정민이뿐이고(정민이도 최근엔 무관심하다고;;), 두 남자는 애완견을 장난감이나 스트레스 해소대상으로 여기는 징후가 포착돼 내가 잔소리를 한 적도 있다. 나야 애완동물을 영원히 키울 생각도 없고 죽을 때까지 동물 혐오증이 사라질 기미도 없지만, 최소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정성을 다해' 키워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생이나 지환이가 파랑이를 예뻐하는 방식은 파랑이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귀찮고 괴롭고 성가신 행동들로 보였고, 그런 부분들이 파랑이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해 배변문제를 일으켰을지 모른다는 게 나의 짐작이다. 애정결핍이나 귀찮음에 대한 일종의 복수로. ^^ (근데 그건 내 생각이고, 원래 주인한테서 떨려난 이유도 배변습관이 잘못됐기 때문일 거라고 동생네는 주장하고 있다. 처음 와서부터 사방에 실수를 해댔다니까 뭐;;;)

동생네의 경우 어린 지환이는 애완견을 장난감 수준으로 생각했던 약간의 오류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처음부터 네 식구가 온 마음으로 개를 키우고 싶어했고 그 열망을 현실로 이룬 집이었다. 정민이는 특히나 아기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했고, 미혼때 애완견을 키운 적이 있는 올케도 반려동물을 두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와 집안 분위기에 좋을 것이라고 못마땅해 하는 나를 설득하려 했으며, 내가 반대를 하든 말든 개를 들이는 일을 저질렀었다. 그런데도 일년도 안 돼 애완견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파랑이가 좀 더 똘똘해 배변에 아무 문제가 없는 개였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아이 둘 키우기도 벅찬 주부가 애완견까지 도맡아 키우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을 테고 결론적으로는 섣불리 애완견을 들인 동생네가 경솔했다는 의미다. 경솔한 인간의 결정으로 제일 불쌍해진 건 물론 또 새주인을 만나 다시 적응과정을 거쳐야하는 파랑이고!

사람 마음도 모르는데 내가 개의 마음까지 간파할 리는 없으니 억측은 이쯤에서 관두더라도, 암튼 내 주변의 개 두 마리는 현재의 주인을 떠나야 행복할 것 같다. 걸핏하면 짖어대는 아래층 똥개가 전기충격 목줄로 얼마나 효과를 볼지 그 결과와 상관없이, 공동주택에서 그것도 마당에 개를 키운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겐 짖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잘못도 다 인간에게 있는데 (똥개 머리가 너무 나쁜 이유도 있겠지만;;) 개를 괴롭히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선택된다는 건 잔혹해 보인다. 또한 파랑이도 좁은 베란다에 갇혀살지 않으려면 더 좋은 주인을 만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앞날이 편할 것이다. 말썽쟁이 개도 주인을 잘 만나면 개과천선한다니 파랑이도 미모를 무기로 어서 좋은 주인이 나타나기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손해보는 건 늘 죄없는 짐승들인 것 같아 괜히 내가 다 화난다. 이럴 걸 도대체 왜들 키우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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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많이들 읽으셨겠지만, 그래도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눈먼 자들의 도시>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해 거의 며칠 만에 읽어 재꼈던 반면 <눈뜬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해냄)는 좀처럼 이어 읽지를 못했다. 아마도 읽기 시작한 건 작년이었던 것도 같다. 그만큼 끝마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내 정신사나움 때문이 팔할이요, 나머지 이할은 숨막히도록 절망적인 그 도시 상황이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현실도피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내기라도 시켜야 할 것처럼 한심스러운 소설 속 정부와 이 나라 정부가 겹쳐지면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까지 무겁게 느껴졌다.

어쨌든 띠지를 책갈피 삼아 꽂아두었다가 조금 읽다 말기를 거듭하던 책은 일 핑계로 먼지를 뽀얗게 입었다가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책의 3분의 2선을 넘어섰었다. 허둥지둥 사건에 대처하는 정부의 꼬락서니가 정말로 딱이다 싶었고, 눈뜬 자들의 도시에선 과연 어떤 방향으로 사건이 풀려나갈지 궁금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남들보다 뒤늦게 읽으며 신종플루 때문에 더욱 공포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백지투표 사건을 처리하는 도시 권력자들의 모습이 연일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뉴스에 나와 천안함 사건 진척사항을 보고하는 현실에 투영됐다. 그러다간 또 원고마감과 간병무수리의 삶에 밀려 독서는 다시 뒷전이었다.

여전히 삶은 팍팍하지만 얼마 안 남은 책을 다시 잡게 한 건 <눈뜬 자들의 도시>처럼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이 나라 정부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확실한 '물증'으로 제시한 녹슨 철판에 적힌 '1번'이라는 매직 글씨였다. 세.상.에.나.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하라던 진상조사의 결과 발표에 나는 또 "야로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고 헛웃음까지 킬킬 나왔다. 정부의 진상 발표를 듣고 얻은 결론은, 나도 북한산 매직 한번 써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한국산' 매직과 네임펜으로 낙서질해댄 티셔츠는 세탁 한번으로 다 지워져 '일제' 패브릭 전용 마커까지 사들였지만, 그것으로 그린 그림 역시 나날이 지워져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강철을 녹슬게 만드는 짜디짠 바닷물 속에서도 성분이 유지되는 훌륭한 품질이라면, 티셔츠 낙서질용으로도 딱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도 아직은 북한산 표고버섯, 고사리 따위를 쉽게 살 수 있으며 통일전망대에 가면 (키드님 포스팅 참조) 북한산 맥주도 살 수 있다지만 연일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전쟁 준비설에다 개성공단 폐쇄 운운하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으니 조만간 북한산 매직이 내 손에 들어올 일은 어째 요원할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깝다. 

아무려나 현실이 너무 암담해지자 책 속의 도시는 되레 나에게 위안이었고, 희망의 빛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애당초 선거에서 백지투표를 가능하게 했던 시민들의 존재부터, 얕은 술수와 음모로 정부가 아무리 대중을 현혹시키려 해도 끄덕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데다 정부의 하수인인 경찰이면서도 결국엔 인간적인 양심대로 행동한 경정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부와 각료들은 또 얼마나 경멸과 조롱의 대상인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배운 바로는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말도 안된다고 판단하는 것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고, 외려 그런 말도 안되는 것을 이용해서 양심을 무디게 하고 이성을 파괴하오." (377)

일주일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의 결과가 과연 어떻게 나오려는지 몰라도 확실한 건 실명 바이러스 공포를 겪었던 눈먼 자, 눈뜬 자들의 정부와 정치인들 만큼이나 이 나라 꼬라지도 무능력하고 환멸스럽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그 도시민들만큼 의식이 깨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뉴스에서 연일 전쟁 위기, 간첩 암약, 한반도 긴장 첨예, 대북 심리전, 도발 응징, 주가 폭락 따위의 소식들이 오르내리며 3, 40년전에 써먹던 국민들 겁주기 수법이 똑같이 통용되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 5, 6월이면 나는 늘 악몽을 꾸며 울다 깨어나곤 했는데, 그 악몽의 주제는 모두가 전쟁이었다. 학교에선 반공 포스터와 반공 표어를 만들었고, TV에선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에서 북한 소년병이 다리를 쇠사슬에 묶인 탓에(퇴각하는 북한군이 해놓은 짓이다) 꼼짝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죽는 순간까지 '따발총'을 쏘아대거나 북한군이 '드르르륵'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이 거듭 등장하는 전쟁영화가 흘러나왔다. 저다마 보따리 이고 동생 들처업고서 피난 내려갔던 추억담을 품고 있는 부모님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악몽 속에서 나는 전쟁터에 홀로 버려지거나 북한군이 쏟아붓는 대포 공격을 피해 숨어 있거나 폐허가 된 동네에서 가족을 찾아 헤매곤 했다.

엄마는 키 크려고 꾸는 꿈이라고 나를 달랬지만 어린 나에게 세뇌된 전쟁 공포와 빨갱이 공포는 엄청났다. 정권마다 하도 그 수법을 오래도 써먹는 걸 지켜본 까닭에 이제 난 시큰둥 코웃음치게 되었는데, 큰일 있을 때마다 '북풍'이 여전히 만만찮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걸 보면 다들 내 생각 같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전쟁위험 국가 1위로 손꼽혀서 정말로 얻어지는 게 뭔지 나로선 정말 의문이다. 무모한 애들 힘겨루기도 하니고 원...

의사 부인과 눈물 핥아주는 개를 처리하는 어리석은 정권의 방식은 뒤떨어진 나라들에선 어디나 현재 진행형이고,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불확실한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아야하는 선거로 뭘 바꿀 수 있겠나 한심스럽지만 온 국민의 '한심도'를 또 한번 확인할 계기가 될 이번 선거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별로 기대할 건 없더라도, 선거 결과를 보면 선거 직전에 터뜨린 일련의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또 앞으로 몇십년간 우스꽝스러운 역사가 반복될지 아닐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요즘은 하려던 이야기에 필요한 낱말도 잘 떠오르질 않는 것뿐만 아니라, 글도 처음 생각했던 대로 쓰여지질 않는다. 원래부터 수다를 떨다가도 곁다리로 잘 빠지는 인간인데다, 글이란 게 일단 쓰기 시작하면 저절로 방향을 잡는 성질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거 좀 문제가 아닌가 싶다. 드물게 올리는 책 리뷰로 시작한 포스팅은 그냥 또 푸념일기로 끝나고 말았다. 내 역량이 요만큼인 탓이겠지. 암튼 성균관, 규장각 시리즈 이후 처음 끝낸 책이다. 이러다간 작년 대비 절반도 못 읽을 듯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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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투덜일기 2010. 5. 19. 21:21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아카시아꽃이 다 피었더라. 실로 간만에 엄마 모시고 밤산책 나갔다가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꽃보다 향기를 먼저 느끼고 깜짝 놀랐다. 낮에 외출할 때도 그 아래를 지나쳤는데 왜 몰랐을까. 어쨌든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라도 올해의 아카시아는 예년보다 늦게 피었을 거라고 짐작 중. 작년엔 5월 9일에 피었다고 적어놨던데, 확실히 많이 늦긴 했나 보다.

요즘 어딜 가봐도 길을 파헤쳐놓아 짜증이 복받치던데, 지난번 자전거 타러 나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홍제천변 일부가 폭탄 맞은 꼴로 뒤집혀 있었다. 지방선거용 생색인지, 인계 전에 예산 써버리기 작전인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언제나 공사중이고 누덕누덕 기워대는 서울 꼬락서니는 좀 그만 보고 싶다. 해외도주하다 붙잡힌 군수만큼은 아니지만 이 동네 구청장도 엄청난 뇌물수수로 구속된지 오래라 부구청장 체제로 운영중이란다. 다음 구청장은 부디 쓸데 없는 삽질에 힘쓰지 않는 사람이 뽑히길...

아래층 똥개의 짖기 횡포는 이제 아주 극에 달했고 나의 분노와 앙심도 최대치에 도달하는 중이다. 다른 이웃의 불만도 당연히 고조된 듯 초저녁엔 우리 마당에 면해 있는 바로 옆집 아저씨와 아래층 개주인 사이에 언성이 조금 높아지기까지 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는 내가 섣불리 설득할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개 문제를 지적하는 옆집 아저씨에게 변명이랍시고 한다는 소리가 글쎄, 개가 짖으라고 있는 거지 그럼 안짖는 개를 뭐하러 키우냐고 항변하더라. -_-;; 조금 전 산책 마치고 돌아온 모녀에게 미친듯이 짖어대는 놈을 노려보다, 문득 나는 살의를 느끼고 실질적인 방법까지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상한 음식을 먹여서 병나게 만들까, 아니면 어디서든 독약을 구해 몰래 밥에 타먹일까, 아니면 줄을 끊어 멀리 쫓아보낼까... 나란 인간이 이렇게 악독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하지만 나쁜 건 분명 아래층 똥개가 아니라 이런 공간에서 시끄러운 똥개를 키우는 아래층 개주인들이다.

이래저래 이십여년 간 살아온 이 동네에 정이 떨어져서 어디든 살기 좋은 새 동네로 이사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이왕이면 제주도 같은 데로. ㅠ.ㅠ 친구 동생은 제주도가 좋아서 대학원을 제주대학에서 다니고 있다는데, 바보같이 난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집 가까운 학교 생각만 했지, 제주도로 공부하러 갈 생각은 꿈조차 꾼 적 없는 내가 한탄스러웠다. 여러가지 이유로 서울을 떠나선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참 오래 했는데, 이젠 여기를 뜰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더 많은 부추김과 용기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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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워하기

투덜일기 2010. 5. 13. 20:42

아래층 잡종견 곰돌이 이야기다. 나를 보고도 안짖은 건 지난번 포스팅한 날 딱 한번뿐이었고, 지금껏 몇달간 놈은 지네 식구들 이외의 사람들에겐 어김없이 목청껏 짖어대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상대에게 달려들며 짖는 게 아니라 개집 안으로 숨어들면서 짖는 걸 보면 저도 무서워서 그런다는 뜻인데 똥개답게 하루하루 몸집이 커지면서 덩달아 목청도 커지고 있어 소음 스트레스가 내 인내심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게다가 또 날이 더워지면서 고약한 개냄새도 사방에 풍기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짖어대는 개에 대한 공포증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놈과 친해져보겠다고 그간 '두번'이나 놈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했었다. 훈제오리 껍데기를 일부러 오려내서 정민이와 함께 내려가 살살 달래며 앞으로 친해지자고 화해까지 청했는데, 멍청한 잡종견 자식은 먹을 것만 낼름낼름 먹고 나더니 똑같이 짖어댔다. 개 주인 가족들은 놈이 한 건물에 사는 위아래층 사람들에게도 미친듯이 짖어대는 걸 볼 때마다 짖지 말라고 혼을 내며 교육을 시키는 듯하지만, 멍청한 놈은 몇달째 통 교육의 효과가 없다.

갑자기 날이 더워진 며칠 전 심지어 개주인이 개줄을 풀어놓는 바람에 녀석이 온 마당에 똥을 싸놓고는 내가 오도가도 못하게 문앞에서 짖어댄 사건을 겪자 드디어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쳤고, 아무래도 동사무소나 경찰서에 개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신고라도 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돌아섰다. 다가구 주택에서 이웃의 동의도 없이 마당에 개를 내놓고 기르는 건 안될 노릇 아닌가 말이다! 물론 앞뒤 안 가리고 당장 신고부터 하지 못한 이유는 첫째가 나의 우유부단함이고, 둘째는 세입자를 괄세하는 못된 이웃이라고 손가락질 받을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지난 주말에 두 동생네가 대거 다녀갔으니 거의 종일 그 똥개가 미친듯이 짖어댔을 건 뻔한 일. 틈틈이 개주인이 나와서 곰돌이를 만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급기야 나는 "저놈의 똥개 새끼, 또 한번만 심하게 짖으면 정말 확 경찰서에 신고해 버릴거야!"라는 말을 조카들 앞에서 내뱉고야 말았다. 저녁 식사 후 다시 조카들과 우르르 집으로 들어오며 어쩔 수 없이 짖어대는 잡종견과 마주한 순간, 조카가 개주인에게 외쳤다. "또 한번만 짖으면 우리 고모가... (신고해버린대요)!" 올케가 얼른 지환이의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신고해버린대요' 부분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기는 했지만 나는 민망해서 얼른 뛰쳐들어오고 말았다. -_-;;

그날밤 아래층 잡종견은 집안으로 쫓겨들어가 하루를 지내는 듯했고, 나는 더럭 미안한 마음에 속을 끓였다. 신고할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아래층 식구들에게 먼저 개 문제로 당부를 한 다음에 당분간 말미를 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째. 개 냄새가 안나게 좀 더 깨끗이 관리해줄 것.
둘째. 성대수술을 시켜 개소음을 줄여주든지 좀 더 확실한 교육으로 최소한 같은 집 사람들에겐 안 짖게 해줄 것.
이 두 가지가 안지켜진다면 앞으로 늘 창문을 열고 살아야하는 여름에 도저히 견딜 수 없으므로, 공용 마당에 개를 키우는  건 용납 불가능하다고 직접 얘기할 자신은 없고, 글로 적어 아래층 현관문에 붙여놓을 생각이었다. ^^

내가 이런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아래층 곰돌이는 나를 볼 때마다 (두번이나 외출을 했으므로 총 네번이닷!) 무섭게 짖어댔고, 그때마다 내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멍청한 자식. 정말 꼴보기싫어 죽겠다! 계속 이런식이라면 아래층 개주인에게 사전 당부고 자시고 없이 당장 이웃들한테 연판장 돌려서 동사무소에 신고부터 할지 모른다. 아윽~~~!!! 개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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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얘기긴 하지만 요번에 번역한 책에 이런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미국 의학협회가 2000년에 발표한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고속도로 교통사고, 유방암, 에이즈를 포함한 여러가지 주요 사망원인보다 병원에서 의료 과실로 죽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아, 그 수가 연간 9만 8천명이 이르렀다고. *_* 우리나라랑 미국이랑 인구 비율이 워낙 다르긴 하지만,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닌가!

사실 우리 아버지도 119를 불러 타고 가기는 했지만 두발로 멀쩡히 응급실에 걸어들어가셨는데, 쓸데없이 말라리아니 뭐니 엉뚱한 추측으로 밤새도록 온갖 검사 다 받고도 발열과 오한의 원인을 못찾다가 아침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위중한 순간이 된 다음에야 의사들은 심증이 가는 병명을 <짐작>해냈었다. 물론 그땐 이미 늦은 뒤였다. 의료 과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두뇌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그것은 우리의 심증뿐 의구심을 밝혀낼 도리도 없었고 워낙 황망해 아무런 경황이 없어, 우리로선 그래도 그 못미더운 의사들에게 매달리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천하의 닥터 하우스 팀도 병명을 알아내기까지 며칠씩 걸리기도 하지 않더냐고 속으로 애써 위로를 하면서.

책의 저자는 그런 의료 과실의 가장 큰 원인이 의료진의 무능이 아니라 안일하고 무심한 태도 때문이라며, 흔히 건강에 관한 한 주도권을 의료진에게 모두 맡기는 게 보통이지만 환자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의료진이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게 귀찮을 만큼 묻고 의견을 제시하고 대안을 촉구하라고 권한다.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실수를 범하는 인간인데, 또 바로 그 전문가라는 위치 때문에 실수가 있어도 제도적으로 다들 쉬쉬하며 덮기에 급급해 수많은 과거 실수에서도 통 배우는 게 없단다. 게다가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수의 통계 자료를 지식으로 갖고 있는 의료진이 아니라 바로 본인므로, 최대한 치료 효과를 높이려면 환자 본인이 주도권을 갖는 수밖에 없단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건강을 극단적으로 위협받는 순간엔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겠지만, 그 전엔 최대한 대체의학이나 믿음직한 민간전승요법에 더 기대어 건강을 챙기겠다는 사람이다.

온갖 지병을 다 갖고 계신 왕비마마 덕분에 한달에 평균 두세 번은 종합병원엘 가야하는 형편인데, 이 나라에선 의료 과실을 입증하는 게 미국보다 훨씬 더 어려운 탓에 돈 많은 사람들 아니고선 감히 거대권력인 의료계와 싸워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걸 감안할 때 정말이지 환자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싶은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약 처방의 날짜계산이 잘못되었다거나, 약을 하나 빠뜨렸다거나, 다음 진료예약이 상담시 정한 날짜와 달라진다거나 하는 행정적인 착오는 실수 축에도 들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들도 걸핏하면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에서야 연간 의료 과실로 판명된 사망자 통계가 9만 8천명이라지만, 우리나라는 아마 의료 과실로 환자가 사망했음을 인정한 건수가 역사상 통틀어도 98건도 되지 않을 것 같다. CT 조영제 주사 하나를 맞아도 온갖 부작용으로 인한 결과는 본인 책임이라는 사유서에 서명을 받는 형편이니 뭐. -_-;;

월말에 또 왕비마마의 병원 거사가 잡혀 있어 어제는 그 건과 관련하여 무려 여섯 개 과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협진 상담을 하고 수술동의를 받아야했는데, 마지막 코스였던 심장전문의와 마취전문의는 수십 가지가 넘는 약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조차 난감해 했다. 외부 병원 약도 아니고 다 지네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라 컴퓨터 모니터에 진료과목 별로 종류 별로 다 뜨는 게 내 눈에도 확인되던데도! 미리 수술관련 안내문을 숙지하고 있던 내가, 그리고 작년 수술에서 이미 어떤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익히 겪어본 내가 이런이런 약은 지혈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 미리 끊어야하는 게 아니냐고 넌지시 알려줘야 했다. +_+ 

아침부터 다저녁때까지 온종일 층층마다 병원을 뺑뺑 돌며 여러 과에서 의사들이 현재 상태를 점검하는 이유는 울 엄니가 워낙 고위험군 환자이기 때문일 텐데, 의례적인 절차라고는 해도 어쩜 다들 그렇게 건성건성인지 원 도무지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왕비마마가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는 대여섯개 진료과에서 그나마 정성스럽게 오랜 시간 문진으로 시작해 이런저런 점검을 하고 검사 결과를 알려주고 다정히 환자를 안심시키는 주치의는 딱 두명 뿐이다. 나머지는 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잘 지내셨어요? 별다른 일은 없으셨죠? 그럼 드시던 약 또 처방해드릴게요."라며 1분만에 진료를 끝내는 식이다. 환자인 울 엄마도 보호자인 나도 특별히 물어볼 게 없으면 더 시간을 빼앗는 게 민망할 지경.

간병 무수리 생활을 하도 오래한 전적 덕분에 이젠 병원 돌아가는 판세가 빤히 눈에 보이는 것 같고, 그놈의 행정절차와 의료계의 자존심 때문에 환자 측에서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도 소용없는 일이 무언지 대강은 파악이 된다. 요번에 번역한 책 때문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나는 의료진의 권위를 최대한 인정하고 수긍하는 <착한> 보호자였지만, 허망하게 아버지를 잃고 나선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엄청나게 커져 사사건건 의구심이 생겨 자꾸 꼬치꼬치 묻고 따지게 된다. 그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쓸데없이 키우지 않는 건 물론이다. 게다가 어리바리하게 주치의 지시를 잘못 알아듣는 인턴이나 간호사들의 실수를 미연에 막으려면 정말로 환자와 보호자가 똘똘하고 영악해질 수밖에 없다. (몇년 전엔 퇴원을 위해 항생제를 이틀전부터 끊기로 했는데, 멍청한 초짜 간호사 하나가 항생제를 새로 매다는 바람에 퇴원이 지연될 뻔하기도 했었다. 엉뚱한 약을 잘못 놓지나 않은 걸 고마워야 하는 건지도...)

병명도 다양하게 골고루 끼고 계신 왕비마마를 보필하려면 병원과 의사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지만 매번 다니면서도 참 멀리하고픈 곳이 또 병원이다. 박수근 그림이 걸려있고 한켠에 갤러리와 카페가 생겨난 대학병원 로비는 마치 백화점에 쇼핑 다니듯 병원도 소일거리 삼아 다니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애쓰는 듯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구태의연하게도 의술이 인술이라는 사실이다. 병을 다루는 게 곧 사람을 다루는 일임을 젊고 늙은 의사들이 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면 좋겠건만, 단지 하나의 그럴싸한 직업으로 선택되어 가는 양상이 짙은 의사라는 직업이 점점 안타깝고 염려스럽다. 눈에 불을 켜고 왕비마마를 지켜야하는 병원생활이 또 3주 뒤로 다가왔다. 왕비마마는 수술이 무서워서 심장이 벌렁거릴 뿐, 온통 관심이 집중되는 입원생활 자체는 막상 퍽 즐기는 양상을 보이시는데 간병무수리는 숨막히는 병원공기와 차고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버티는 쪽잠 생활이 싫고 겁나서 역시나 심장이 벌렁거린다.

 

그나저나 참, 저 책은 과연 잘 팔릴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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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0. 3. 28. 16:13

우리집 마루 한쪽 벽엔 조카들의 키를 재기 위한 눈금이 그려진 기다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정작 제 부모들은 제 자식들 키 크는 추세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볼때마다 쑥쑥 자라는 녀석들의 키를 거의 다달이 표시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괜스레 뿌듯해하는 걸 보면 난 확실히 '단신'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한 인간이다. 남자들도 180cm가 안 되면 <루저>라는 발언이 방송에도 나올 만큼 키 작은 걸 심각한 장애취급하는 사회이다보니 어쩌겠나. 부디 조카들은 훤칠하고 우월한 키로 세상을 굽어보며 살면 좋겠는걸.

키가 큰 사람들은 대부분 성장기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키가 확 자라는 시기를 경험하므로, 큰동생은 중3땐가 1년만에 14센티미터가 자랐다고 하고, 친구 하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 너무 갑자기 키가 커서 밤마다 다리가 아파 엉엉 울어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경험들이 죄다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국민학교 입학했을 때 전교에서 제일 작았다는 전설속의 아이는 중학교 때 잠시 중간키 부류에 속하는 기쁨을 누렸을 뿐,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느 집단에서든 제일 작은 축에 속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다. 친구들 중에 나보다 작은 사람은 중학교 때 친구 1명과 고등학교 때 친구 1명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나보다 작았던 아이들을 확률적으로만 따져도 좀 더 많은 단신들을 사회에서 맞닥뜨려야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심지어 나는 스무살까지 느릿느릿 조금씩 키가 자라서 이만큼 된 것인데도!

사실 살아가는 데는 키의 크고 작음이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키가 작아서 좋은 점을 굳이 찾자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랑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 정도이고(아이들은 자기들보다 몸집이 지나치게 큰 어른들에겐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낀다나 뭐라나;;) 그 외엔 그저 단신이라는 게 단지 외형적인 불만으로 남는 것 같다. 바지는 살 때마다 길이를 줄여 고쳐 입어야 하고, 굽 높은 신발에 길이를 맞춰 자른 바지는 단화를 신을 때 질질 끌려 못 입는다는 점(예외는 스키니진인데 워낙 유행이긴 하지만 다리가 더욱 짧아보이는 것 같아서 별로 마음에 들진 않는다), 무늬가 큼직큼직한 옷을 입으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점, 무슨 옷을 입든 조금이라도 키가 커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다는 점... ㅠ.ㅠ

정말이지 요즘 아이들의 발육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아져, 우리집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중학교 아이들만 봐도 하나같이 늘씬늘씬 키가 크다. 하기야 그 옛날 20여년 전에 내가 교생실습 나갔을 때도 내가 맡은 여학생반에서 나보다 작은 애들은 1번과 2번 딱 둘 뿐인 듯했다. 자존심 상해서 앞번호 아이들과 정확하게 키를 재보지는 않았지만 눈높이로 대강 어림짐작했을 때 그랬다는 얘기다. 그러니깐 이제 6학년이 된 정민이가 내 키를 따라잡을 시기가 되었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수년째 다달이 키를 표시해두면서 그 날이 언제일지 두려워 하고 있었을 뿐.

사실 동생들이 다 키가 큰 편이고 막내올케 역시나 몹시 큰 편, 큰올케도 심히 작은 편은 아니라 조카들 역시 또래들보다는 그간 대체로 키가 컸다. 유독 정민이만 저학년때 작은 편에 속한다고 하더니 작년부터 부쩍부쩍 자라 1년에 거의 10센티미터를 컸고 6학년에 올라가서는 여학생들 중에서 세번째로 크다고 자랑을 했다. 애 키우는 엄마들 못지않게 육아상식이 많은 내가 알기로는 ^^;; 아이들 키가 1년에 평균 6cm 정도 자라는 게 정상 속도란다. 두달에 1cm씩 큰다는 얘긴데, 놀랍게도 최근 우리 조카들은 만날 때마다 평균 이상으로 키가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이는 듯하고 그 결과가 실제로 우리집 벽에 고스란히 눈금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이미 3학년으로 보일 만큼 늘씬한 키를 자랑하던 준우도 반에서 제일 크다나 두번째로 크대고, 요번에 초등학교 입학한 지환이도 또래보다 큰 편이고, 심지어 이제 겨우 다섯살이 된 지우도 발육이 월등하다. 우리집에 올 때마다 조카들을 눈금 벽에 세워놓고 키를 표시하면, 녀석들은 꼭 나와 다시 제 키를 비교한다. "전에는 고모 어깨에 닿았는데 이제는 턱까지 올라갔다!" 이러면서 기뻐하고...  그러면 나는 과연 다시 온 집안에서 제일 키 작은 사람으로 전락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머릿속으로 셈하며 비감에 젖는 한편 늘씬한 조카들이 마냥 자랑스럽다.

집안 서열에서는 왕비마마 다음으로 내가 2위지만, 지난 왕비마마 생신날 이후로 나의 키 서열은 정민이와 동률 6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정민이가 연초에 150cm를 넘어서면서 내 키를 따라잡을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석달도 가기 전에 나와 똑같아질 줄은 예상밖이었던지 그날 나는 약간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정민이는 신났다고 눈금 표시 옆 벽에 날짜와 함께 <고모와 정민 키가 같아짐>이라고 적고는 구름표시를 해두기까지. 그러더니 얼마전까지도 고모를 올려다봤는데 이젠 굽이 꽤 있는 운동화를 신으면 고모가 내려다보인다면서 자기도 잘 적응이 안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으휴. 

그나마 정민이는 6학년때 나와 키가 같아졌지만, 조카들 가운데 발육이 가장 훌륭한 준우는 이 추세라면 5학년도 돼지 않아 나를 따라잡을 확률이 높다. ㅠ.ㅠ 어린 녀석들이 발은 또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6학년짜리 발이 나보다 커진건 벌써 옛날이고 이젠 2학년짜리 신발도 내가 물려신게 생겼다. 자전거 열풍 이후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둘째조카한테 넘기긴 했지만 지금도 딱 맞으니 아마 올해 안에 작아졌다고 다시 반납할 게 확실하다. 조카들한테 운동화 물려받아 신는다는 이모나 고모의 이야기를 더러 듣기는 했지만 내가 막상 그런 입장이 되고보니 왜 이리 민망한지, 조카들의 우월한 성장이 뿌듯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160cm에 가까운 키라 옛날 사람치고 큰 편이었다는 왕비마마는 척추골절과 척추협착증 수술을 연이어 겪으며 자세도 굽었고 실제로 키도 많이 작아져 지난번 정기검진때는 허리를 잘 펴지 못해 무려 154cm로 기록되기도 했다. 요번에 여권을 다시 만들며 왕비마마는 그래도 꿋꿋하게 159cm라고 박박 우기셨지만 요즘 나란히 다녀보면 확실히 엄마 눈높이가 나와 비슷하다. 과거엔 드물게 엄마보다 키가 작은 딸로 살며 자존심이 좀 상했었는데, 노년의 엄마 키가 쪼그라든 걸 보니 마음이 더욱 좋지 않다. 젊어서도 작은 나는 나중에 늙으면 얼마나 더 작아질까 생각하면 더 서글퍼지기도 하고. 평균 이상인 사람들은 평생 대수롭지 않게 살아갈 키에 평생 연연해하는 나의 컴플렉스, 이제 좀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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