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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9.04 적반하장도 유분수 18
  3. 2009.08.13 화르륵~ 13
  4. 2009.08.12 스팸단어 8
  5. 2009.08.03 고질병 10
  6. 2009.07.31 짜증나 11
  7. 2009.07.30 점입가경 6
  8. 2009.07.23 세상과 나 6
  9. 2009.07.17 그냥 두기 12
  10. 2009.06.23 가방싸기 14

늙음에 대하여

삶꾸러미 2009. 9. 15. 18:27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주말에 놀러가 함께 저녁을 먹다 보면 늘 되풀이되는 광경이 하나 있었다. 밥상 아래로 자꾸만 밥풀이나 반찬을 흘리는 할아버지를 타박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
양반은 모름지기 매끄러운 놋쇠 젓가락으로 청포묵 하나를 집어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입까지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젓가락질에 능해야한다며 코흘리개 시절부터 우리 손주들에게 엄하게 젓가락질을 가르치셨던 바로 그 할아버지가 진지를 잡수시면서 뭔가를 흘린다는 건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물론 할머니도 가끔 입가에 밥풀 같은 게 묻었는데 느끼지 못하실 때도 있지만, 그런 사실을 잘 아는 할머니는 수시로 입가를 닦거나 스스로 밥상 아래를 살피셨기 때문에 마지막에 밥상을 치우고 나서도 매번 지저분한 할아버지 자리와 달리 할머니 자리는 늘 깨끗했다.
게다가 골초였던 할아버지한테선 늘 심한 담배냄새와 함께 할아버지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할머니는 그게 늙은이 냄새라면서 질색을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은 늙은이 냄새 나면 애들이 싫어한다며 언제나 바지런하게 씻고 로션(할머니 용어로는 여전히 '구루무')을 바르셨는데, 정말로 우리 할머니한테선 노인 특유의 냄새를 느낄 수 없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6개월쯤 다시 할머니와 한집에서 동침하며 살던 시절, 내가 새벽녘에 컴퓨터를 끄고 옆방으로 들어가 부시시 할머니 옆자리로 파고들면 할머니는 나를 꼭 안아주셨는데 팔순이 넘어서도 아기피부처럼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할머니의 팔다리를 어루만지면 금세 잠이 들었다. 마지막까지도 우리 할머니한테선 흔한 노인냄새 대신 우리 할머니만의 달콤한 체취가 났던 것 같다. 역시나 팔순 넘어서까지 전국 방방곡곡 사찰로 성지순례를 다니실 만큼 정정했던 우리 외할머니한테서도 노인 냄새를 맡은 기억이 없다. 친할머니처럼 잘 때 껴안고 자는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주 뵙고 팔다리 주물러드리고 했으므로 충분히 체취를 맡을 기회는 있었을 텐데.

내가 늙음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된 건 엄마 때문이다. 올해 나이 예순 아홉. 아직도 나에겐 아줌마 영자씨가 익숙하지만,  어느 누가 봐도 할머니라고 인정할 나이다. 요즘엔 특히 젊게 사는 노인들이 많아 칠순 넘어서도 펄펄 날아다니며 건강을 자랑하는 분들도 많지만, 지병도 많고 마음도 약하고 의존적이기까지 한 울 엄마는 그들과는 확실히 다른 그냥 할머니로 늙어가고 계신다. 그간의 여러 병력을 따져본다면 이 정도 회복도 고마워 해야 하는 수준이고, 노인으로선 그게 당연한 건데도 내 마음 속 어린아이는 젊은 엄마를 포기할 수가 없는 모양인지 자연스레 노인의 특징을 보이는 엄마가 매번 놀랍고 속상하고 서글프다가 버럭 짜증이 치민다. 
노인들이 밥풀이나 반찬 양념이 입가에 묻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입주변의 근육과 신경이 노화해 정말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입술과 혀의 놀림도 자연히 전보다 날렵하지 못해 음식을 입에 넣거나 씹을 때도 흘릴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울 엄마는 당뇨 합병증으로 말초신경이 상해 손가락 소근육의 움직임이 원할하지 못해 젓가락을 떨어뜨리기 일쑤이니 오죽하랴. 엄마 티셔츠를 보면 하나같이 앞섶에 보일락말락한 얼룩이 묻어 있다. 음식물을 흘린 자국이다. 미리 알아차렸을 때는 얼른 애벌빨레를 하거나 문질러 지우기나 하지, 몰랐다가 그냥 세탁기에 돌리고 나면 나중엔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식탁 밑 엄마 자리도 흘린 음식물로 매 끼니마다 어지럽다. 어린 조카 밥먹고 난 자리랑 똑같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치우자면 버럭 화가 난다.
진짜 화가 나는 대상은 인간의 노화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편협함인데, 짜증과 분노는 늘 엄마에게 날아가고 만다. 숟가락질에 서툰 아이가 밥을 흘리는 게 당연한데도, 그걸 치우는 게 짜증나서 애한테 화풀이는 하는 몹쓸 엄마처럼.
며칠 전엔 심지어 울 엄마한테서도 드디어 노인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사로잡혔다. 노인 특유의 냄새는 피부 노화로 떨어진 죽은 세포와 각질 때문이라 완전히 피할 순 없으니 잘 씻고 향수를 사용하는 수밖엔 없다고 들은 듯하다. 빨간 립스틱 하나 바르는 게 화장의 전부인 울 엄마가 향수를 쓸 리는 없고, 벌써부터 춥다고 매일 샤워는 안할 태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새삼 느껴진 모양이다. 쓸데없이 민감한 나만 가끔 감지할 정도이긴 하지만, 끈적거린다고 바디로션 바르는 것도 싫어하는 왕비마마의 노인 냄새를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청력도 나빠져 TV도 거실을 왕왕 울릴만큼 틀어놓아야 하고, 돋보기가 없으면 작은 글씨는 전혀 볼 수가 없으며 기억력도 현저히 나빠져 했던 얘기를 자꾸 되풀이해 당부하는 엄마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저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데도 딸로서 선뜻 수긍하게 되질 않는다. 그건 본인도 마찬가지라 나보다 더 속상할 텐데 화를 내는 건 언제나 못된 딸이다.
조금 전에도 늙은 딸 먹으라고 복숭아를 주고 가면서 끈적끈적한 과일물을 사방에 뚝뚝 흘리며 먹고 다니는 엄마에게 와락 신경질을 부렸다. 식탐에도 여러종류가 있지만 울 엄마의 식탐 특징은 입 한가득 넣고 씹는 쾌감을 유독 즐기신다는 점이다. 예쁘고 정갈하게 자른 과일을 포크로 얌전하게 찍어먹는 건 절대 울 엄마 스타일이 아니다. 무조건 통째로 들고 우적우적 크게 베어먹어야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드나보다. 아오리나 홍옥사과는 나도 당연히 그렇게 먹어야 제맛이라고 인정하지만, 단물 뚝뚝 흐르는 복숭아 같은 건 좀!!!
당연히 눈도 어두워졌으니 늙은 엄마가 닦는다고 해봤자 끈적임을 말끔히 닦아낼 리 만무해 두어군데는 빼먹기 일쑤인데 걸레질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목. 결국엔 내몸 편하자고 내는 화풀이였던 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계셨던 것도 아니고 팔순 넘어 시들어가시는 그분들을 익히 지켜봤으면서도 늙어가는 엄마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잘 안되는 걸 보면 나란 인간은 늙음에 대한 지극한 공포를 품고 있나 보다. 늙기 싫어서 발악하는 사람들의 흉한 모습을 손가락질하면서 말로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게 멋진 거라고 주장하지만, 나 또한 다른 방향으로 흉하게 발악하며 억지 용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확실히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는 지나버렸으니 아쉽고 중년도 노년의 미래도 선뜻 받아들이는 건 싫으니 천상 이게 철 안든 사십대의 청승이 아니고 무언가. 스무살 무렵의 유치한 나는 예순살까지만 열심히 살다가 죽으면 좋겠다고 공언하고 다닌 적이 있다. 아마 그때도 죽음보다 늙음이 더 무서웠던 건 아닐까. 자연스러운 변화이자 이치라고 고개 끄덕이기엔 늙음이 가져오는 심신의 흐트러짐이 너무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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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첫 회사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과 홍콩, 중국 등지에서 만든 여성의류를 대량으로 수입해다 월마트, JC페니, 시어스 같은 대중적인 백화점에 파는 회사의 서울 사무소였다. 미국 회사랍시고 퇴직금이 없는 대신 다른 국내 회사에 비해 월급이 좀 많았고 매월 달러로 책정된 금액이 한달에 한번 송금되어 오면 환율에 따라 조금씩 액수가 달라져 환율 몇십원에 일희일비했으며, 선적이든 제품 하자든 뭔가 커다란 문제가 생기면 책임자가 미국에서 날아온 팩스 한 줄로 즉각 해고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아직 80년대 말, 90년대 초였음을 감안해야 할듯;;), 인종차별은 있을망정 남녀차별이 없고 자기 일 끝나면 상사 눈치 볼 필요 없이 (지점장 빼놓고는 각자 자기 할 일을 할 뿐 상사 개념이 아예 없기도 했다) 칼퇴근을 해도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라 큰 불만 없이 꼬박 3년을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경력직원으로 물갈아타기를 할 때 필요한 세월이 3년이란 말에 버티던 마지막 무렵엔 당연히 차츰 불만이 쌓여갔다. 퇴직금이 없기 때문에 수시로 아무때나 부담없이 수틀리는 직원을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는 <미국식> 인사구조가 우선적으로 마음에 안들었고, 아무리 본사 직원과 서울 사무소 직원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양키들은 서울 출장 나오면 특급 호텔에 그것도 '한강 보이는 방'으로 예약해 상전취급하면서 주말까지 희생해 놀아주고 관광시켜주고 선물 사주고 그래야 하는데, 우리는 본사에 출장 보내주는 것자체를 혜택처럼 여기는 게 당연한 듯했고 뉴욕에 가서도 호텔은커녕 한국인 파트너 집에서 하녀/하인처럼 출장기간 내내 업무와 가사일(엄연한 출장임에도 재워주는 밥값은 하라는 건지 뭔지!)을 도와야 해야 했다.

오죽하면 내가 첫 뉴욕 출장 3주동안 브로드웨이에 있던 본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 단 하루도 개인시간을 즐기지 못해 관광은커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먼 발치에서 한번 본 게 다였을까. 평생 코피라곤 흘려본 적 없는 내가 출장 일주일 만에 코피가 터진 누런 얼굴을 욕실 거울로 볼땐 정말 참담했었다. 기사 딸린 리무진을 타고 매일 뉴저지에서 맨해튼으로 출퇴근을 하면 뭐하나. 만날 다이어리 무릎에 펼쳐들고 아침 댓바람부터 씨부려대는 한국인 동업사장의 업무지시를 적어야 하는 판국에.

3년만에 회사에서 꽤나 열심히 일하는 주요 직원으로 주목받기에 이른 나는 슬슬 못마땅한 점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워낙에도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대신 부당한 일은 겁없이 싸우던 나였다. 지금과 달리 고용불안 따위는 큰 걱정이 아닌 시절이라, 까짓것 최악의 경우 해고 당하면 다른 회사 다니면 되지 싶었다. 게다가 별것 아닌 본사 직원의 실수 때문에 억울하게 해고당한 예전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알아보니, 미국회사라도 한국에선 한국 노동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5인 이상의 사업장은  퇴직금을 반드시 주어야한다고 했다. 해고당한 직원은 그날로 짐을 싸 집에 보내고 월급도 딱 출근한 날수 대로만 계산해서 송금해주는 그 회사의 방식 역시 불법이라고했다. 아 글쎄, 열흘만 다니면 무조건 한달치 월급을 주어야 한다는 게 아닌가!

지점장과 한국인 사장의 비자금 관리(?)까지 하고 있던 나는 잘려도 아쉬울 게 없던 터라 마구 큰소리를 쳤다. 법대로 퇴직금 안주면 이 회사 오래 다닐 의미가 없으니 나가겠노라고. 그들은 여러가지 당근을 내밀며(퇴직금 대신 비자금에서 너만 특별히 매달 얼마씩 돈을 주마, 하기 싫다는 비자금이랑 통장 관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해주마... 따위)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나는 사표를 썼다. 아니 해고 당했다. ^^ 그들의 자존심상 내가 먼저 관두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지 저들은 내가 사표를 던진 게 아니라 골치아픈 직원으로 분류되어 단칼에 해고되는 것처럼 교묘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정식 송별회 같은 것도 허락지 않았다.

만 3년하고도 한달만에 회사를 관둔 나는 직장을 옮긴 예전 동료들 둘과 뜻을 모아 노동위원회에 퇴직금청구를 위한 정식 제소를 했고, 당연히 노동위원회에서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행법상 퇴직금은 반드시 지급해야하므로 우리 세 사람에게 각각 얼마씩 퇴직금을 주라는 정식 통지서가 그 회사와 우리에게 각각 날아왔고 우리는 환호했다. 그 회사에 남아있던 동료들이 계속해서 내부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우린 정말로 퇴직금 을 받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놈들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부의 조정 의견을 깡그리 무시했고 배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두번인가, 세번인가 계속해서 노동부의 조정의견이 나와도 사업주가 무시하는 경우는 기막히게도 민사소송 소액재판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저들은 사업장을 폐쇄해버렸다. 물론 명목상 그랬다는 것뿐이고 다른 이름으로 서울사무소를 다시 열고는 같잖은 니들이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나왔다. 

결국 민사소송은 하지 않았다. 그 또한 알아보니 재판 한번에만 몇년씩 걸린다는데 놈들 하는 꼬라지를 봐서는 거기서 승소해도 또 배째라고 나오기 십상이라나. 우리가 받을 돈이 몇천만원, 몇억도 아니고 겨우 몇백만원인데 소송비용은 또 어쩌라고...  세 사람은 씁쓸하게 퇴직금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의 <투쟁>으로 놀랐는지 은근히 사업장을 폐쇄했다 다시 연 그 회사도 본사와 별도로 서울 사무소 직원들의 경우는 퇴직금 제도를 신설했다는 후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배은망덕하게 회사를 노동부에 제소한 우리들이 의류 업계엔 발을 못들이게 하겠다며 이를 갈았다나. 그때 알고 지냈던 전현직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한동안 우리는 그 사건을 안주삼았다. 정말로 있는 놈들이 더하는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법적으로 줄 돈이라는데 어떻게 안줄 수가 있냐. 뼈빠지게 일해준 건 우린데 왜 지들이 배은망덕을 운운하냐... 그러면서.

황산테러를 당한 박정아씨의 사건을 <PD수첩>으로 자세히 접하고서 20년 가까이 된 그 일이 새삼 떠올랐다. 당연히 줘야할 돈을 주라는데 되레 부하직원을 시켜 살인을 교사한 이 모 사장이나 그 옛날 파르르 주먹을 떨며 우리의 업계 취직 방해를 지시했다는 마이클 뭐시기 사장이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건 똑같은 놈들이지 싶다. 한쪽은 악독함이 극에 달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았고, 한쪽은 미약하게 시도하려 했을 뿐.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황산테러를 지시할 수가 있는지. 인간이  다른 인간의 목숨을 앗는 결정은 또 다른 형태의 살인이므로 사형제도는 없어져야한다지만, 저런 짓을 저지른 놈들은 감형으로도 절대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250년쯤 선고하고 정신적 신체적 손해배상을 몇십억원 물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높은 변호비용으로 이 모사장은 몇년 살다 풀려나기 십상일 텐데, 난데없이 테러를 당한 박정아씨의 삶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다. 그분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쉽사리 떨치긴 어렵겠지만 부디 이 사회에 아직 정의가 남아있다고 믿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빌뿐이다. 더불어 <PD수첩>도 mbc도 힘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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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투덜일기 2009. 8. 13. 17:06

말복이라고 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장을 보러 갔었다. 재래시장 분위기의 과일도매상 옆에 있는 늘 가던 마트로. 기껏 장을 다 보고 나오는데 과일가게에 놓인 수박자두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도 말한 적 있지만, 그 마트는 주변 과일도매상 때문에 과일을 못판다. 원래 복날은 삼계탕도 먹고 맛난 여름과일도 먹는 거라는 생각에 값을 물어보니 놀랍게도 저렴. 한개 단돈 오백원이란다. 지난번 장보러 갔을 땐 무려 만원에 8개밖에 안주는 자두를 사먹었기 때문에 나는 반색하며 얼른 열개를 샀다.
속으론 <싼게 비지떡인데...>라면서 좀 찜찜했지만 아줌마가 하도 잘난척을 하며 맛있다고 추켜세우길래 아무런 의심도 안했던 것 같다. 그 옆엔 물론 그 두배인 만원에 열개짜리 수박자두도 있었지만 크기도 별 차이 안났고, 아줌마는 자랑스레 말했다. "집에 가서 북북 씻어 먹어봐요. 얼마나 맛있나..."

그런데!!
나만큼이나 과일애호가인 엄마가 현관부터 봉다리를 받아들고 얼른 씻어먹으려고 부엌으로 가더니 뭐 이런 걸 사왔냐고 하셨다. 하나같이 시들시들 과일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나는 대형마트에서 과일을 살 땐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 고르지만 과일가게 좌판에서 과일을 살 땐 주인한테 미안해서 그냥 맡기는 편이다. 같은 집은 아니었지만 지난번 그 언저리 과일가게에서 산  천도복숭아와 자두는 너무 비싸서 그렇지(한개에 1250원이라니!) 행복해질만큼 맛있었기 때문에 더욱 무방비였나보다.
꼬라지가 엉망이라도 맛이나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먼저 씻어 맛을 본 엄마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셨다. 단맛은 하나도 없고 신맛 뿐이란다. ㅠ.ㅠ 신 과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그 철면피 아줌마한테 너무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화르륵 분노가 치솟아 그 자두를 먹어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선 다시 과일을 싸들고 가서 그 아줌마네 좌판에 확 던져버리고 돌아오거나, 환불해오고 싶은데 엄마가 기름값 아깝다고 말린다.
그냥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교훈만 가슴에 새기란다. 과일은 비싸도 맛있는 걸 사야하는 거라면서. ㅠ.ㅠ
그나마 만원어치 사온 게 아니라 오천원만 버렸으니 다행이라나.
그래도 좀체 화가 가라앉질 않는다. 모름지기 장사와 거래는 신용이고 믿음인데, 어떻게 저런 사기를 치나 모르겠다. 뜨내기 장사꾼도 아니고 수십년째 거기서 과일 도매상을 하는 사람이!
생각해보니 그 수박자두가 눈에 들어온 건 다른 집엔 하나도 없는데 유독 그 집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물이거나 맛있는 놈들이 대거 출하되지 않았단 의미인데 난 그걸 왜 지금에야 깨닫고 있을까. 그냥 지천으로 깔려 있던 복숭아나 사올것을... 결국 이 가라앉지 않는 분노는 바보처럼 부주의하고 생각없이 당한 나에 대한 것이다. 더 속상한 건 얼굴치인 내가 그 아줌마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 집은 당연히 불매운동을 해야하는데 어쩐담. 그나마 끝에서 대여섯번째 집이었던 것 같으니(그도 자신은 없다만) 그 주변에선 두번다시 과일을 사지 않으리!
맛없는 저 자두를 어째야하나 그것도 심란하다. 확 버리기도 그렇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값은!) 확 다 갈아서 주스로 한번에 마셔버리자니 일일이 씨빼기가 귀찮고, 당장 되돌아가 그 아줌마 얼굴에 확 뿌려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만 같은데 삼복더위에 내가 그런 에너지를 쏟는 것조차 아깝긴 하다. 해서 괜히 부아만 더욱 치밀고 있음.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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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단어

삶꾸러미 2009. 8. 12. 18:09
내 휴대폰에 등록된 스팸 단어들은 무려 스무개.
최대한 꽉 채워서 등록해놨다는 뜻이다.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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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속옷
사진
바다이야기
여자
여성
거부
찍은
잘터져
신용
연결할까요
데이트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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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신한은행 - 거래은행 중에 제일 문자와 전화를 자주해서 아예 전화번호까지 스팸 등록해놨다.
삼성생명 - 걸핏하면 이모티콘 문자나 안부문자 날리는데 나는 정말 짜증난다. 거기 연락해서 수신거부 처리해달라고 하면 된다는 데  전화하는 건 또 귀찮고.

스팸문자함을 자주 들여다보는 편이 아님에도 그간 특별히 놓친 문자는 없었는데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서 크게 웃었다. 지난주엔 친구 하나가 납량특집이라며 <무서운> 셀카 사진을 두개나 보내주었는데, 내 사진도 보내라고 요구하는 문자가 스팸함에 들어 있는 걸 어제 발견한 것. '사진'이라는 말이 스팸 단어라고 알려주며 한참 웃었는데, 바보같이 오늘 또 같은 일을 겪고도 먼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지다님의 구글신 포스팅에서 삭제한 사진의 주인공을 문자로 알려주신 건데, 두번 다 스팸함으로 들어간 걸 나는 멍청하게도 지다님이 확인해보라고 한 뒤에야 깨달았다. 못살아...

그간 요상한 사진 보라고 꼬드기는 여인네들의 문자가 자주 오길래 저런 문자들을 죄다 등록해놓은 거였는데, 나의 형편없는 기억력을 감안할 때 이제 그만 <사진>은 해방시켜야하는 것일까.. 흠... 며칠 두고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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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

투덜일기 2009. 8. 3. 16:21

고질병이 한두가지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래도 가장 큰 고질병은 게으름과 우우부단함, 미루기, 바쁠때 딴짓하기가 아닌가 싶다. 코앞 마감일을 앞두고 <7월까지만 놀자>고 했던 다짐도 당연히 물거품. 8월이 열린지 사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심신은 심각한 초절정 모드로 진입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마감전에 딱 한번의 예외를 두자며 정한 내일의 약속을 앞두고 고민하느라 또 다시 일손이 안잡히는 상황.
어차피 약속은 정한 것이니 나가면 될 터이나, 나의 고민은 딴 데 있다.
바로 보테로 전시회를 오전에 보러 갈 것이나 말 것이냐 하는 것.
친구 일행은 그 전시를 본 뒤 나와 만나기로 정했는데, 나도 부지런을 떨어 전시회를 같이 보고 나서 점심을 먹고 놀 것인가, 아니면 마감모드에 충실(?)하여 그냥 점심약속에만 나갈 것인가, 그것이 고민의 요지다. ㅠ.ㅠ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9월 17일까지 전시예정인 페르나도 보테로의 전시는 6월말 개관 이후 줄곧 별러오던 건데, 이번에 기회 될 때 그냥 확 같이 보는 것이 나을까 아닐까. 우유부단함 또한 극심한 나로선 결정을 못 내리겠다. 방학이니 당연히 아이들이 많을 것 같아 개학 이후로 관람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어영부영 게으름 부리다 아예 전시회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든다.
어차피 약속을 잡았으니 반나절쯤 더 노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이들도 있겠지만, 초절정마감모드의 작업능률을 지키기 위해선 생활리듬이 깨지면 안되는 법이다. 왕비마마의 심신회복률이 거의 95%에 도달해 드디어 아침 노동(식전약+아침밥+식후약 챙기기)에서 벗어나 심야작업과 오전취침 리듬을 회복한지 얼마 안되는데, 내일 오전에 무리해서 전시회를 보러 나가면 게으른 몸을 재정비하는데 며칠 걸리까봐 염려가 된다는 얘기다. ㅠ.ㅠ 그럼 이번엔 그냥 포기하고 다음에 보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려니 지난번 라틴아메리카 전시회 때 맛만 본 보테로의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려 호기심이 불끈 동한다.

이리보면 우유부단함의 요체는 쓸데없이 미리 생각을 너무 많이하고 고민한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숨에 결정을 내리면 될 일을 나는 매번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만일의 여러가지 경우를 떠올리고 가능성을 점친다. 확실히 고질적인 지병이 아닐 수 없다. <우유부단>병에다 <미루기>병, <바쁠때 딴짓하기>병까지 고질병이 삼중으로 겹친 이 상황은 더더욱 고민스럽다. 아 어떡하지. +_+ 전시 포스터를 오려붙이고 나니 그림이 더 보고 싶다. 젠장. 참 싫은 나의 고질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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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투덜일기 2009. 7. 31. 18:01

월급쟁이의 가장 큰 장점은 독촉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날짜가 되면 월급이 입금된다는 점일 것이다. 동료나 상사가 마음에 안들거나 일이 따분해서 사표를 쓸까말까 매번 고민하다가도 월급날이 되면 또 한달 버텨낼 힘이 불끈 생겨났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프리랜서의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불규칙한 수입.
프리랜서라도 착실한 사람이라면 꾸준히 저축을 해서 언제나 여유돈을 마련해두고 살아야 정상이며, 불규칙한 자금의 흐름 속에서도 어느정도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작업량과 원고료 수입을 배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월급쟁이도 가끔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 월급날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프리랜서는 오죽할까. 아무리 장기적으로 수입을 감안해 작업량을 계획하고 여유롭게 수입과 지출을 예상해도, 의외의 변수는 꼭 있다. 경제불황과 열악한 출판시장을 이유로 결제를 미루는 것이 가장 크고 고질적인 난관.
여러번 원고료 체불로 마음고생을 한 뒤로는 지명도가 있건 없건, 회사 재정상태도 알 수 없고 각별히 나를 챙겨줄 직원도 있을 리 없는 출판사와 처음 연을 트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안면 없는 출판사와도 몇번 통화를 하고 정말로 작업 스케줄 때문에 의뢰를 거절하다가도 책이 괜찮다거나 공교롭게 작업스케줄이 비었을 때 딱 걸리면 대면하지도 않고 이미 안면을 튼 사이 같아져서, 결국엔 슬그머니 일을 맡게 된다. 물론 그렇게 시작해서 수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출판사들도 많으니, 나의 우유부단함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다행히도 요새 꾸준히 작업중인 출판사들은 내가 죽도록 하기 싫어하는 결제 독촉전화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느라 원고를 늦게 넘겨서 그렇지, 제때 원고를 넘기고 나면 알아서 송금을 해주니까.

헌데 겪어보니 출판사의 규모나 지명도와 결제 습관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소규모라도 착실하고 정직하게 원고료와 인세를 제때 보내주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수없이 일간지 광고와 라디오 광고에 나와 막대한 자금을 들인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규모 있는 출판사이건만 얼마 안되는 원고료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곳도 있다.
내가 2년째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출판사도 그런 축에 속하는 곳. 2년이나 지연되고 있는 건이고 내가 <죽도록> 하기 싫은 독촉전화를 반복한지도 9개월째이건만 아직도 해결이 안됐다!
올들어서는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채근을 하고 있는데도 매번 다음달에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매번 어기는 일이 반복된다. 어우 짜증나! 오늘은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도 팍 오른 김에 전화를 했더니 <정말로> 다음주엔 결제를 해주겠단다. 과연?? 그 출판사 요즘 라디오에서 신간 광고도 하던데, 그럴 돈은 있으면서 왜 밀린 번역료는 해결해주지 않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번역료를 결제 우선순위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돌리는 악덕 출판사라고밖엔 여겨지지 않는다. 

그곳 말고도 이번주에 계약금 송금을 약속한 출판사가 있었는데 통장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안들어왔다. 예전에 출간된 책의 저작권이 만료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저렴한> 번역료로 내 원고를 넘겨받아 출간하기로 한 건이라 나로서는 어찌보면 거의 불노소득에 가까워 처음 거래하는 출판사측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계약을 하고도 순진하게 기뻐했는데 문득 너무 계약을 서둘렀나 후회스럽다. 출간 급하다고 해서 원고부터 후딱 보내주었는데 혹시 약속 잘 안 지키는 출판사라 계속 속깨나 썪으면 어쩌지.. ㅠ.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거늘...
출판계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원고 재출간임을 감안할 때  퍽 양심 있는 계약조건이라고 해서 덜컥 수락을 했지만, 매절 계약서에 도장 쾅 찍어 보내고 난 다음날부터 인세계약으로 할 걸 잘못했나 쓸데없이 가슴을 치기도 했던 터라 더 짜증이 난다. 이미 팔릴 만큼 팔린 책이긴 해도, 작년에 나온 문제의 <그> 베스트셀러처럼 영화 개봉으로 새삼 대중의 주목을 받아 엄청 팔리게되면 배 아파서 어쩐담. ;-p
하기야 계약금 약속도 잘 안지키는 출판사라면 인세 지불도 속썪이지 말란 보장도 없으렸다. 결국 번역가는 도를 닦듯 돈으로부터 초연해져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상대적 약자한테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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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투덜일기 2009. 7. 30. 23:37

왕비마마의 저녁운동을 채근하다 지쳐서 홀로 느루를 끌고 홍제천변엘 나갔다가 이를 갈았다. 하필 홍제천변 산책로에서 행사가 벌어지고 있어 문제의 분수와 폭포 앞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는 지나갈 수가 없었고 설상가상 대형 광고판으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하는 어느 주민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며칠 전 동네 버스정류장 유리에 붙어있던 홍보물을 본것도 같았다. 시낭송의 밤이라나 뭐라나 하는... 게스트 목록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유현상>이기에 속으로 큭큭 웃으며 과연 누가 가려나 싶었는데, 그건 내 생각이었나보다. 무대 위쪽으론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아래쪽 산책로에 돗자리를 깔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걸로 봐서 의외로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시낭송의 밤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올까봐, 주민 노래자랑으로 프로그램이라도 바꾼 모양이었다.
일요일 낮마다 울 엄마도 송해 할아버지가 사회보는 <전국노래자랑>을 반드시 시청하는 분이긴 하지만, 나는 거기 나오는 사람들도 그 프로그램이 수십년째 장수하는 이유도 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TV에 얼굴 내보이는 게 신나고 좋을까. 내눈엔 망신살로밖에 안보이는 출연자들의 온갖 <쇼>와 <땡 소리>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 나로선 정말이지 모르겠다. 한민족이 원래 가무를 즐기기는 했다지만 혼자 끼리끼리 즐기는 거랑, 전국적으로 보여주며 즐기는 거랑은 다르지 않을까. 오늘도 나에겐 괴로운 소음이어서 더운 여름밤에 불쾌지수와 짜증을 배가하는 장면에 불과했던 주민 노래자랑을 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걸 보면, 내 정서가 확실히 소수에 속하긴 하는 모양이다.
가끔 눈쌀 찌푸리면서도 일요일 낮엔 절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지 않는 왕비마마에게, 그게 왜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달리 볼 게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도 한민족이 예로부터 가무를 즐겨왔다고 세뇌된 학습효과이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못된 쾌감 또는 음치, 박치로서의 동병상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 노래자랑 프로그램 싫어하는 나는 뭐지? 노래 잘하는 사람의 노래는 얼마든지 감사히 들어줄 수 있지만, 들어줄 가치도 없는 음치 아마추어들의 노래를 귀따갑게 참아야할 이유를 나는 도저히 꼽아낼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나도 분명히 가무를 즐기긴 하는데... 참..

어쨌거나 오늘 내가 점입가경이라고 느낀 건, 동산에 억지로 파이프를 끌어올려 만들어놓은 폭포에다 이젠 알록달록 조명시설까지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자라는 나무와 풀에게도, 오래도록 그 동산을 지키고 있던 바위에게도 나는 막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은 일단 훼손했다가 복원하고 인공적으로 마구 꾸며야 아름답다고 여기는 웃기는 취향의 행정가들과 주민들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 하고. 그나마도 밤엔 폭포 물줄기가 안보여 꺼져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젠 밤에도 그 동산에 자라는 식물들은 쉴 수가 없어졌다. 게다가 지난 폭우때 떠내려가 박살났다는 황포돛배도 어느틈엔가 새로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세워놓았더라. 박살 난 걸 교훈삼아 다시는 안 가져다 놓기를 바랐던 내가 순진했다. 이상하게 변해가는 홍제천의 모습이 꼴사나워 구시렁거리는 나 같은 사람들이야 뒷전에서만 혀를 찰 뿐, 앞에 나서서 큰소리를 내는 이들은 대부분 분수에 폭포에 황포돛배에 볼거리 많아졌다고 좋아라하며 박수치는 사람들일 테니 아마도 얼마 지나면 또 이상한 인공 건조물이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을 불태울 순 없는 법이라 했으니, 꼴보기 싫으면 내가 이사를 가야겠지. 그래도 자전거 도로로 한강까지 갈 수 있는 점 하나는 좋은 동네인데... ㅠ.ㅠ
할 수 없다. 그전까지는 볼썽사나운 것들 앞에서 시선을 돌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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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나

하나마나 푸념 2009. 7. 23. 22:00

석탄공사 사장님이 제발이지 광부들의 애환이 서린 <막장>이라는 말을 함부로 비하의 뜻을 담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말이 화제가 됐음을 잘 알고 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정말 <막장이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 나온다. 아니, 막장이라는 말도 아까워서 더 심하게 부패하고 냄새나고 끝간데 없이 타락한 곳을 지칭하는 말을 떠올리고 싶은데 어휘력이 모자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어쩜 이 나라 정치하는 놈들의 수준은 점점 그 모양일까. 최소한 4년간은 희망을 꿈꾸지 말아야함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열불이 나는 속을 어찌 달래야할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구렁텅이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방법은 귀막고 눈 가린 채 세상을 외면하는 것뿐인가.

<반지의 제왕>은 책도 영화도 빠져들게 좋았지만 이상스레 <해리포터> 시리즈는 정이 가질 않았다. 출판사의 돈 벌 욕심 때문이겠지만 너무 잘게 쪼개 나온 번역본도 싫었고 그렇다고 언제 끝날 지 모를 시리즈 원서를 읽을만한 열의도 생기지 않았다. 전 지구적인 해리포터 열기가 나로선 뜨악하고 의아할 뿐이었달까. 당연히 영화도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 해리포터를 만나게 되면 호기심에 지켜보아도 역시나 채 5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뜬금없이 몇번째 시리즈인지도 모를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를 영화관에서 보고 돌아왔다.
판타지 소설을 리뷰하거나 번역하는데 참고하려고 약간 책을 들춰보았을 뿐이라 바로 전 시리즈에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모르는 와중에 영화를 봐야한다니 황당하기까지 했는데, 사전지식이 없어도 생각보다는 영화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한지는 척 봐도 알 수 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 꼬라지가 하도 가관이다 보니, 영화 속의 런던 상황이 지금 이 세상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둠의 마왕이 세상을 휘저어 악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어, 여기도 해리포터 같은 <선택받은> 마법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내용 전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골목마다 폐허처럼 문을 닫은 상점들과 암울한 거리가 딱 죽어가는 이 나라의 소상인들과 서민들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소설 시리즈는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영화의 다음 내용이 궁금하면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선이 악을 이겨 해피엔딩일 게 뻔한 데(혹시 아닌가?)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의 세계로 위안을 받겠다는 순진한 희망을 품기엔 나 같은 삐딱이에게  너무 무리다. 

세상이 엉망으로 돌아가든 말든 나몰라라 맛난 거 먹고 재미나게 수다떨고 영화보고 시시덕거리고 나니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린 기분이다. 효력은 얼마 안 가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잠깐씩 세상을 잊으며 살다보면 악몽같은 세월이 흐르긴 하겠지. 가끔 황당하게 정의로운 마법사의 출현을 꿈꾸기도 하면 더욱 힘이 나려나. 문득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그토록 전폭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가 혹시 전지구적으로 팍팍하고 암담한 현실 때문이었나, 의문이 들었다. 마법이 아니고선 도저히 현실을 희망으로 되돌릴 방법이 안보이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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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기

하나마나 푸념 2009. 7. 17. 01:38

일하기가 싫어서 조금 전까지 4대강 살리기 사업 논란을 다룬 100분토론을 보다 짜증이 밀려와 TV를 껐다. 어쩌면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전문가라는 양반들의 의견은 노상 상반되는지 원!
어쨌거나 나는 대운하 사업과 더불어 죽어가지도 않는 4대강을 굳이 살리겠다는 쓸데없는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특히 2, 3년 안에 그 엄청난 규모의 토목사업을 한꺼번에 벌여 끝내겠다는 얄팍한 발상이 너무도 무섭다.

청계고가를 없애고 청계천을 복원한다고 할 때 나는 크게 기뻐하며 결과물을 기다렸던 사람이다. 한 여름 도심의 온도를 몇도나 낯출 수 있고 주변 부동산 값도 올라가며 시민들에겐 도심속 쉼터를 제공할 것이라는 아름다운 청사진을 처음엔 곧이 곧대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사가 끝났을 때 보니, 말이 <복원>이지 청계천은 그냥 이름뿐 옛모습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멘트로 물길을 싸바르고 한강물을 억지로 끌어다 놓은 뒤 그럴듯하게 물풀을 좀 심어놓고는 화려하게 조명시설만 갖춰놓은 <죽은> 공간이었다.
대통령 될 욕심에 당시 서울 시장 명바기가 임기내에 공사를 서둘러부친 결과 시멘트로 마구 싸바른 물길 곳곳은 이내 시퍼런 이끼로 뒤덮였고 역한 물비린내가 나서 나는 두번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시위 때문에 청계광장에 가는 거라면 또 모를까. 하긴 청계광장도 내가 싫어하는 장소다. 순전히 그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돈만 처들여서 세워놓은 (어느 대기업에서 자금을 기부해 외국 조각가에게 사온 거라더라) 플라스틱 소라탑이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놀이공원 한 구석이라면 모를까 어쩌면 시내 한복판에 그렇게 안 어울리는 조형물을 선택해서 세워놓았는지, 관련자들의 저질스러운 안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처음 청계천이 생겼을 때야 사람들이 죄다 구경 삼아 몰려들었고 물 좋아하는 아이들이 섣불리 뛰어들어 놀기도 하더라마는, 장담컨대 그렇게 조악하게 급조해 놓은 청계천은 앞으로 끊임없는 청소비용과 복구비를 잡아먹는 예산 물귀신이 될 테고, 사람들한테도 점점 외면당할 게 뻔하다. 정말로 북한산 어느 물줄기부터 착실히 살려내려와 올챙이며 가재가 되돌아오도록 수십년에 걸쳐 복원하지 않는한 말이다.

청계천의 전례를 익히 보았던 터라 우리 동네 개천을 자연하천으로 복원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나는 약간의 설렘보다는 더럭 불길한 예감이 크게 들었다. 청계천처럼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대강 시멘트로 처발라놓고 예산만 낭비 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더욱이 몇번이나 연임하고 있는 구청장은 한나라당 패거리가 아니던가.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나날이 달라지는 홍제천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하수관을 따로 묻어도 이미 북한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연결되기엔 유량이 턱없이 적어진 홍제천에 가압장을 설치해 한강물을 끌어오는 것까지야 그러려니 했지만, 이미 자연미와 풍광이 아름답던 안산 주변엔 느닷없이 조악해 빠진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촌스러운 형광조명의 음악분수를 만들더니 급기야 그 예쁜 동산 꼭대기까지 파이프를 끌어올려 폭포를 설치한 것이다. 얼마 전엔 도저히 봐주기에 민망한 황포 돛배까지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띄워 놓았던데, 내눈엔 혐오스럽기만 한 그 시설들이 <무한도전>에까지 소개됐다는 걸 보면 참 사람들 취향은 다양하다고 해야하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자전거 산업 육성책에 발맞추어 홍제천의 자연하천 복원사업은 자전거도로 확충 사업과 연계된 듯했고, 역시나 <자연>하천 <복원>은 순전히 말 뿐 서대문구청에선 하는족족 인공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행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화학성분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샛노란 포장재가 깔린 개천 옆 자전거 도로 옆엔 대체 어디에서 파왔을지 궁금한 큼지막한 바위들이 차곡차곡 벽처럼 쌓여갔고, 하천 양 옆으론 인도네시아에서 수입됐다는 이상한 자재를 쌓고 군데군데 시멘트를 발라 수생식물을 심었으며, 야심차게 조명과 무대처럼 화려한 진입로를 만들어놓은 안산 폭포와 분수 바로 옆엔 큼지막한 디지털 광고판까지 설치되었다. 연일 구내 소식과 정부시책을 광고하는 화면이 나오는.

물론 새로이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분수와 폭포 앞에서 많은 이들은 기뻐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음악분수가 가동되는 시간엔 자전거를 타고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구경나온 사람들이 많으니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같은 패거리인 구청장 일당은 <참 잘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러나 내가 홍제천변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송하며 사진까지 올렸던 바로 그 안산 계곡을 지날 때마다 유달리 서늘하게 여름밤의 더위를 식혀주었던 냉기와 바람은 요상한 복원사업 이후 더는 느낄 수가 없다. 그대로 두어도 철철이 바꿔 피는 꽃과 나무들이 바위와 어우러졌던 동산을 흉측한 파이프가 휘감고 있는 생각을 하면 정말 부아가 치민다. 그 앞 음악분수는 또 어떻고! 나 역시 그 유명한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앞의 분수쇼를 좋아하며, 하다못해 예술의 전당 앞 음악분수만 봐도 좋아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음악분수라도 있어야할 곳이 따로 있지 않은가! 번쩍이는 광고판 같은 대형 디지털 화면을 배경으로 한물 간 가요에 맞춰 개천 한가운데서 물을 뿜는 음악분수는 홍제천에서 황포돛배 다음 가는 흉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이 계속해서 변해가는 홍제천에 산책을 나가 보면 터무니없이 바뀐 모습과 공원화 사업 때문에 집값 오르겠다며, 또는 그저 애들 데리고 놀러 나올 곳이 생겨서 희희낙락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쓸데없이 어마어마한 예산을(사업비가 무려 200억이란다!) 처들여 <자연하천 복원>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게 과도하게 겉치장에만 힘쓰는 꼬락서니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한여름 장마때면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몇년 전엔 사람도 떠내려갔던 판국에 하천 양옆에 왜 굳이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꽃은 심어놓았는지, 군데군데 왜 쓸데없이 나무나 벽돌로 바닥에 멋을 부려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이다.
지각있는 사람들의 염려는 언제나 들어맞는 법. 요번 집중호우때 홍제천 산책로는 그간 엄청나게 쏟아부은 예산이 무색할 정도로 엉망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하천 주변을 정리한답시고 심어놓은 식물들은 대거 뽑혀나가, 개천 중간 음악분수 시설에 죄다 걸려 있었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분수 주변엔 엄청난 토사가 밀려내려와 높은 언덕을 이루어놓았으며, 서대문의 새로운 명물이라던 황토돛배는 떠내려가다가 하천 기둥에 부딛혀 산산조각이 났단다. 한 마디로 쓸데없이 <돈지랄>을 해놓은 새로운 바닥들도 패이고 주저앉고 엉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새로 놓은 다리 난간마저 중간이 뚝 잘려 나갔을 정도니 오죽하랴.
비가 많이 오면 한강 둔치도 물에 잠겨 한참을 청소하고 복구해야하는 형편이니 집중호우때나 장마때 홍제천 산책로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정도를 설마 전문 사업자들이 예상 못했을 리는 없지 않나? +_+ 나처럼 비전문가도 빤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데 설마!
어쨌거나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홍제천 산책로엔 오늘도 운동 나온 사람들이 북적였고, 난간이 떨어져 나간 다리 아래에선 동네 주민들이 노심초사 안부를 빌었던 오리 가족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내가 바랐던 자연 하천 복원은 오래 전 내가 국민학교때 소풍을 가서 가재를 잡고 놀았던 부암동 백사실처럼 작고 자연스럽고 고요한 하천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청와대 주변이어서 오래도록 통행을 금지했던 터라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심 속 계곡의 모습, 내가 기억하고 있던 바로 그 <백사실> 계곡이 화면에 비추던데, 한 십년쯤 걸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정말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망치지 않으면서 깨끗한 하천을 복원하면 왜 안되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손길이 과도하게 닿으면 자연은 분명 망가질 수밖에 없음을 그렇게 겪고도 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할까.
설령 정말로 온 나라의 강에 문제가 있어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해도, 한번에 한군데씩 여러모로 살피고 조사하고 재보면서 혹시라도 망쳐버렸을 때의 엄청난 결과를 최소로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지 않고, 왜 한꺼번에 백여군데의 강줄기에 수십조나 되는 <빌린> 예산을 투자해 실제로 치수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를 걱정스러운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인지 아무리 양보해서 이해해보려고 해도 납득이 안된다.

청계천 정도의 무모한 삽질이라면 수십년 후에 누군가 환경지향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행정가가 나타나 되돌릴 수나 있겠지만, 금수강산 곳곳을 파헤쳐놓고 물길을 망가뜨리면 백년이 지나도 제대로 <복원>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지금 이 나라 자연에 필요한 건 억지로 갖다 붙인 <살리기>가 아니라 분명 <그냥 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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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싸기

투덜일기 2009. 6. 23. 11:47
그릇이나 문구용품 따위에 붙어 있는 스티커는 그냥 두고보질 못해 처음부터 떼어내고 써야 직성이 풀린다. 반면에 비행기를 탈 때 항공사 직원이 여행가방 손잡이와 몸통에 덕지덕지 붙여준 스티커는 왠지 그냥 내버려두었다가 다음번에 가방을 써야할 일이 있을 때나 떼내는 버릇이 있다. 마지막 여행이 언제였든 그 흔적의 끄트머리라도 오래오래 부여잡고 싶은 욕망 때문이겠지. 
일년 가까이 여행가방 손잡이에 붙어 있느라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한 제주발 한성항공 짐표와 스티커를 어젯밤 다 떼내고 다시 짐을 꾸렸다. 세면도구와 양말, 수건, 편한 옷과 다량의 왕비마마 속옷, 휴대폰 충전기, 커피믹스, 종이컵, 책 두 권...을 넣을 때까지는 짐짓 유쾌한 여행을 준비하는 체할 수 있었지만, 곧이어 담요, 작은 쟁반, 과도, 티스푼, 곽티슈, 그리고 약 한 보따리를 챙겨 넣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모녀의 동반가출을 준비하듯 메모지에 적어놓은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손길이 너무도 익숙해 오히려 서글펐나 보다.
아침 일찌감치 화분에 빠짐없이 물을 주고, 될 수 있는대로 냉장고를 비우고... 떠날 준비는 모두 끝냈는데, 허무하게도 기다림은 다시 오후까지 이어져야 한단다. 여행 가방을 싸는 일은 늘 설렘을 동반했건만, 이젠 그 비율이 절반으로 떨어져버렸다. 옛날부터 따지면 8할대라 우길 수 있겠지만(처음엔 8할대라고 썼다가 고쳤다), 2, 3년전부터 따진다면 가방 싸기 두번에 한번은 여행 목적이 아니었다. 장농 옆에 세워두었던 여행가방을 꺼내 짐을 싸는 이유가 어느덧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할 때가 많아졌단 뜻이다. 다음 여행을 꿈꾸며 가방에 매달 예쁜 이름표를 사들여 이미 이름까지 적어둔지 어언 2년이건만, 이번에도 그 이름표는 매달 수가 없다. 집 떠나는 건 똑같아도 팔다리와 마음이 무겁기 짝이 없는 이런 가방싸기, 다시는 없으면 참 좋겠다. 부디 다음번 이 가방을 꺼낼 땐 정말로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을 위한 것이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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