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에 해당되는 글 103건

  1. 2010.01.13 외래어 발음 24
  2. 2009.12.08 서글픈 고백 21
  3. 2009.11.11 누더기 서울 7
  4. 2009.11.05 지인과 지기 사이 13
  5. 2009.11.05 축의금 12
  6. 2009.10.30 과한 욕심 8
  7. 2009.10.30 요즘 여자 21
  8. 2009.10.28 서열 20
  9. 2009.10.17 가을은 춥구나 8
  10. 2009.10.08 내겐 아니올시다 19

가끔 외래어 발음 때문에 놀림을 받는다. 아니지, 외래어가 아니라 외국어로 붙인 우리나라 브랜드 발음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어로 EVERLAND라고 적어놓고 한글은 <에버랜드>라고 쓴다. 피터팬에 나오는 NEVER LAND의 짝퉁이 분명하다. 나에게 번역을 하라도 해도 피터팬의 NEVER LAND는 <네버 랜드>라고 하겠지 만 EVERLAND를 외래어 표기법대로 쓰면<에벌랜드>가 맞지 않나? <에버랜드>로 읽히고 싶으면 EVER LAND로 쓰든지! 아무튼 나는 무의식중에 <에벌랜드>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주변에서 핀잔을 준다. 에벌레들이 노는 동네냐고.

Tous Les Jours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어에 무지하지만 특히 연음이 중요한 프랑스어 발음이라면 <뚤레주르>로 읽어야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글 브랜드명은 <뚜레쥬르>다. 이곳 역시 나는 내 맘대로 <뚤레주르>라고 읽는 게 보통인데, 그때도 눈총을 받는다. 잘난 척 한다고.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상 특정 외국어(태국어, 베트남어?)를 제외하고는 경음 ㄲ, ㄸ, ㅃ 대신에 ㅋ, ㅌ, ㅍ를 써야한다. 아직은 프랑스어 발음이 아무리 <뚤레주르>에 가깝더라도 <툴레주르>로 표기해야 옳다는 뜻이다. 하지만 광고 카피에서 흔히 맞춤법을 무시하듯, 브랜드명에 있어서 국립국어원이 정한 외래어표기법은 코웃음의 대상인 모양이다. <뚤레주르> 보다는 <뚜레쥬르>가 부드러운 느낌이라 브랜드명으로 당첨되긴 했겠지만, 어땠든 나는 못마땅하다. 어쩐지 발음이 다양하지 않은 일본어식 표기법 때문에 과거 많은 외래어들이 요상한 형태로 자리잡았던 관습의 연장선 같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제일 마음에 안드는 건 너도나도 영어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써대는 언어습관이지만...
얼마전 TV에서 나오는 금연 공익광고를 보고는 기가 막혔다. <SELF 하지 말고 HELP 하세요>라더라. 누군가는 그 표어 지어놓고 무릎을 치며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으니 광고 카피로까지 쓰였겠지만, 내 반응은 "미친 것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용인 자연농원>보다 <에버랜드>가 더 멋지고 세련됐다고 여기는 한, 저런 미친 짓거리들은 더욱 많이 생겨날 거다.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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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고백

투덜일기 2009. 12. 8. 16:19

나이가 늘어날수록 자신감도 늘어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확실히 나이와 함께 자신감이 줄어듬을 느낀다. 어쩔 수가 없다. 각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마흔을 넘기고 난 뒤의 나이듦은 성숙을 지나 노화를 향할 수밖에 없나보다.
지난 몇년 새 내 자신감을 특히 좀먹기 시작한 신체적 노화 증상은 바로 노안, 코골이, 흰머리다.

사람에 따라 30대 중반부터 시작되기도 한다는 노안은 <중년안>으로 이름을 바꾸어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어쨌거나 그게 그거다. 노안 대신 <중년안>이라고 박박 우기는 게 더 서글픈 느낌이다. 몇년 전부터 친구들이 휴대폰을 최신형으로, 최대한 액정 큰 기종으로 바꾸면서, 작은 액정에 뜨는 글씨는 당최 보이질 않는다고 할 때는 나도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문자를 보내면 답 문자 보내는 게 골치아파 대신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들을 늙은이라고 놀리며 그들보다 한두 해 젊은 걸 기뻐했던 것 같다. 그때 친구들이 장담했었다. "너도 금방이다! 두고봐라."
아직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게 어려운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 나도 명함에 박힌 제일 작은 글씨라든가 화장품 상자 구석에 적힌 작은 글씨들을 읽으려면 안경을 벗고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안>이란 안구와 수정체, 각막 따위의 탄력이 떨어져 순식간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운 현상을 말할 거다. 처음엔 안경을 벗거나 눈을 찌푸려 애써 초점을 맞춰야 하고, 좀 더 지나면 돋보기의 힘을 빌어야 하는... 
벌써부터 휴대폰 문자를 보낼 때 휴대폰을 코앞에 두는 게 아니라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느릿느릿 문자판을 찍는 친구들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될 거라 생각하면 그야말로 서글프고 괜히 억울하다. 어려서부터 눈이 나빠 고생했으면 노안이라도 건너뛰어야 공평한 거 아닌가!

노안 만큼이나 보편적인 노화현상인 코골이도 나에겐 제법 충격적이었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누가 옆에 있기만 해도 잠을 못잔다고 타박하던 인간이 코를 골다니. 평소에 코를 골지 않던 사람들도 심히 피곤하면 코를 고는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어려서부터 얌전한 잠버릇으로 유명했다던 내가 자기 코고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놀라움과 슬픔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코골이는 목젖이 늘어지거나 비강이 좁아져 생기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다. 마흔 넘어 뺨이 쳐지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보이지 않는 목구멍 살까지 쳐지고 말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옆에서 확인해줄 사람이 없으니 나의 코골이가 얼마나 심한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 또한 코고는 여자가 되고 만 것이다. (코골이가 얼마나 심한지 궁금해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자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걸 확인하는 마음은 더 무거울 것 같아 관두고 말았다.)
요가 강습은 매번 맨 마지막에 팔다리를 약간씩 벌린 채 힘을 쭉 빼고 가만히 누워있는 자세로 끝이 난다. 어둑한 조명과 따뜻한 열기 속에 낑낑대며 몸을 쓰다 드러누워 있노라면 그 3분에서 5분 사이가 참으로 평화롭게 느껴지긴 한데, 놀랍게도 그 짧은 시간에 잠드는 사람이 (가끔 잠드는 어린 정민공주 말고도!) 있다. 의식적인 호흡에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누군가 까무룩 선잠이라도 들라치면 쌕쌕 숨소리가 달라지고, 간혹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5분 뒤 요가 강사가 손가락발가락을 살살 움직이라고 하면서 휴식에서 일깨워주어도 모른 채 잠들었다가 다들 일어나 앉는 소리에 퍼뜩 깨어나는 이를 보노라면 얼마나 피곤했을까 안쓰럽기 보다는 거기서 코까지 골며 잠들 수 있는 무던함이 부러울 정도다. 그러면서 코골다 깨어난 강습생의 나이를 유심히 가늠하며 나를 위로한다. '그래... 쟤는 20대 후반밖에 안됐는데 벌써 코를 골잖아. 넌 40대에 접어든 중년이야. 코 고는 게 큰 흉은 아닐 나이잖니...' 하지만 아무리 자위해 보아도 슬픔은 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ㅌㄹ 마을 엠티도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조심스러워서 어디 잠이라도 잘 수 있겠나. 생각 같아선 이번 기회에 나의 코골이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확인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오랜만의 떼 취침에 내가 먼저 잠들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엔 흰머리를 한꺼번에 일곱개나 뽑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보다 네 살 어린 막내동생은 20대 중반에 이미 염색이 필요할 만큼 흰머리가 많았고, 큰동생 역시 이젠 머리숱이 적어져 흰머리를 뽑는 게 아까운 지경이 되었으니 같은 유전인자를 타고났을 동생들에 비해선 내 상태가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새치를 한둘씩 보이는 아이들과 달리 얼마 전까지는 새치 하나 없던 사람에게 생겨나는 중년의 흰머리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몇년 전부터 여기저기 가끔씩 보이는 흰머리를 하나 둘 뽑을 때는, 흰머리가 아니라 <새치>라고 극구 우겨보았지만 요번에 양쪽 귀언저리에서 집중적으로 서너개씩 흰머리를 뽑고 나니 귀밑머리부터 센다는 전형적인 노화현상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친구들 가운데는 스스로 스컹크가 되었다며 염색을 하지 않고는 절대 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백발이 성성해졌음을 토로하는 이도 있으며, 흰머리를 뽑기는커녕 한 오라기라도 소중히 보호해야한다면서 두드러진 흰머리를 중후함의 상징이라 자랑하기 시작한 친구도 있다. 하지만 흰머리에 대처하는 방식이 누구나 다르듯, 몇가닥이든 수십가닥이든 수백가닥이든 본인이 느끼는 충격의 정도는 다를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 나이가 어떠하든 누구나 동안을 추구하고 젊고 튼튼한 육체가 아니면 손가락질 받는 연령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 분위기에 편승할 필요는 없다고 나의 이성은 부르짖고 있지만, 두드러지는 노화의 증거 앞에 이토록 맥이 빠지는 걸 보면 속으론 그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의미다.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는 <나이값>이라는 말이 싫어서 나이와는 상관없이 <나답게> 사는 걸 무모한 철없음과 동격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여겼는데, 이런 두려움은 결국 사십대의 나이값인 듯해서 마음이 아프다. 더욱이  내 정신은 아직 중년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내 육신은 이미 앞서 노년을 준비하고 있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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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초였나, 전시회 보려고 인사동에 갔을 때 놀라운 인파도 인파려니와 또 다시 죄다 뜯어내고 <또> 공사중인 인사동길에 식겁해 얼굴을 찌푸려야 했다. 인사동은 몇년째 공사중이 아닌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아스팔트 뜯어내고 하이힐 뒷굽 잡아먹기 딱 좋게 생긴 울퉁불퉁 돌을 깔아놓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한복판을 네모나게 파놓았었다. 이번엔 또 무슨 돈지랄을 하려나 싶어 짜증이 더욱 치밀었는데, 지난주에 나가보니 유럽 구시가의 뒷골목 자갈포장을 흉내낸 짝퉁 같았던 작은 돌포장 대신 널찍한 박석을 네모지게 깔아놓았다. 왜 당국자들은 애당초 처음부터 튼튼하고 전통적인 느낌의 길바닥을 깔 생각을 하지 못할까. 서울시가 하는 짓을 보면 뭐든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이다. 설마 이번 포장도 1년만에 뜯어내고 또 딴 걸로 바꾸는 거 아닌지 염려스럽다. 혹시라도 몇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렀다가 인사동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갈 때마다 공사중인 인사동에 뭐 볼 게 있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의아할 것 같다. 100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10년, 20년쯤 뒤를 내다보는 행정은 이 땅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똑같은 놈들이 권력을 잡고 하는 일이야 늘 뻔하지 싶어 별 기대도 안했지만 일년 넘게 생돈 처들여 만들어 놓은 광화문 꼬라지는 또 어떤가. 시청앞도 그렇지만 사방에서 차들이 빼곡히 돌아다니는 길 한복판에 광장이랍시고 만들어놓은 그곳이 정말로 시민들에게 도심 휴식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지, 거길 만들어놓은 장본인들한테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당신 같으면 그 정신 사납고 조잡한 곳에 들어가 진짜로 쉴 수 있겠느냐고. 많이 양보해서 쉬는 공간이 아니라 구경하는 공간이라고 치자. 이순신 동상이 거기 서 있는지 수십년이 넘었지만 차도 때문에 그거 구경하기 어려워 불만 품은 사람이 있었던가? 세종로라 이름에 걸맞게 원래 자리 꿰차고 앉게 된 세종대왕님도 불쌍하다. 그 혼잡한 매연 속에 얼마나 정신 사나울까 싶어서.

가끔 새로 닦은 광화문을 차로 지나거나 그 앞 버스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어보면, 아스팔트 대신 깔아놓은 조그만 타일 같은 포장재 때문에 소리가 아주 요란하다. 다다다다.... 목욕탕 타일 붙이듯 일일이 그 포장재를 붙였을 건설노동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눈물겨울 지경이지만, 그런쪽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장담할 수 있다. 아스팔트도 눈비맞고 혹독한 여름과 겨울을 지나면 몇년안에 다시 깔아주어야 하는데, 그런 얄팍하고 조잡해 보이는 포장재는 그보다 먼저 떨어져나가 이빠진 것처럼 흉물로 변하고 말 거라고. 아주 가까운 인사동에 그 전례가 있지 않았던가! 설마 남은 예산 모두 써버리느라 연말만 되면 보도블럭을 교체해대는 서울시와 지자체들의 <불가피한> 예산확보의 방편으로 광화문에도 <일부러> 내구력 짧은 포장재를 선정한 것은 아니겠....지?

지자체에서 저마다 생색용 돈지랄에 재미를 붙인 이후 동네마다 이런저런 공원이 많이 생겨났고, 요샌 대학로에도 중학천 복원공사인지 뭔지해서 청계천 짝퉁 같은 실개천을 다시 만든다고 난리라는데, 내가 보기엔 하나같이 한숨만 나온다. 어쩜 그렇게 공원마다 천편일률적으로 생긴 게 똑같은지. 보나마나 중학천도 청계천과 똑같이 시멘트로 온통 싸바른 뒤 물풀 몇개 심어놓고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복원>했다고 자랑할 게 틀림없다. 공원조경 업체에서 서울시나 구청 쪽에 대거 뇌물을 쓰거나 담합 독점이라도 한 것일까?
특히 공원마다 내가 제일 꼴보기 싫어하는 것은 땅바닥에서 솟아나오는 분수. 시청앞에도 있더니 광화문에도 만들어놓았다. 여름이면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땅바닥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며 철딱서니 없이 놀던데, 어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분수의 수질이 얼마나 엉망인지 굳이 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더라도 나 같으면 그런 분수 근처에 절대 발도 들이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도 못들어가게 할 텐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기야 새로 세운 세종대왕상 보겠다고 주말이면 우글우글 몰려드는 사람들이 내 눈엔 이상해만 보이니 내가 비정상인가?
나 역시 분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어린이대공원 정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높은 분수대는 나에게 아련한 꿈과 행복의 상징이었고, 덕수궁 미술관 계단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분수의 모습도 가슴 찡하도록 아름답다. 하지만 온동네 공원마다 죄다 땅에 수도관을 묻고 시멘트나 돌을 덮어 바둑판처럼 똑같이 만들어놓은 바닥 분수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르네상스 서울이니, 디자인 서울이니 해서 특히 요즘 서울은 온통 누더기다. 아니지, 막가파식으로 삽을 떠버린 4대강 죽이기 사업에다 툭하면 토목공사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어리석은 우두머리 때문에 온 나라가 누더기다. 그런 인간들이 또 세종시 건설 원안을 반대하는 걸 보면, 자기네가 확보한 땅값 떨어질 토목공사는 절대로 용납 안한다는 뜻이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오래된 집에 비가 새지 않게 하려면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야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런 공사는 깨진 기와를 바꾸고 금간 벽을 채워넣고 노후한 수도관을 갈거나 구둘장을 다시 까는 것일 뿐, 건넌방 전체를 확 깨부수고 거기만 <르네상스 양식> 따위로 다시 짓는 건 미친 짓이다.

서울서 나고 자랐어도 고향이라는 말을 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이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고 다른 도시나 시골에서 살 자신이 없다. 제주도라면 가서 평생 살 수 있을지 몰라, 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거기 혼자 뚝 떨어져 살라고 하면 1년 내내 행복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곳에도 더러 행복한 추억이 깃들어 있지만 40년 넘게 살아온 서울만큼 개인적인 역사와 추억이 깊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나의> 서울을 나날이 망가뜨리는 저들의 행태가 원망스럽고 숨막힌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모든 이들이 집을 갖고 살려면 위로 높이 올려짓는 아파트 밖엔 방법이 없다지만 이미 양적으로 따지면 이 나라에 필요한 가구수는 넘은지 오래다. 집마저도 수백채씩 많이 가진 놈들이 나눠주면 더 짓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는 일은 죽었다 깨나도 벌어지지 않을 테니 여기저기 죄다 동네 째로 허물고 다시 아파트를 올리는 거다. 그렇게 흉물스러운 아파트를 동네마다 죄다 세워올려도, 부동산으로 돈벌려는 인간들만 좋아라할 뿐 정말로 집이 생기는 서민의 비율은 턱없이 낮다는 걸 놈들은 왜 모르는지...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닥치는대로 누덕누덕 기워놓은 서울이 조각보 이불처럼 예쁘게 마무리될 리는 만무하다. 어쨌거나 내가 덮을 이불인데 싫어서 치를 떨면서도 당분간은 덮고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을 참아내려면 한 가지 희망밖에 없다. 몇년 지나면 다시 뜯어내고 제대로 만들거야. 암.. 그래야지. 그럴 거야... 다음 세대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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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아는 사람
친구: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벗: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
동무: 1.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  2. 어떤 일을 짝이 되어 함께 하는 사람
지기: <지기기우>의 준말. 자기를 잘 알아주는 친구. 자기를 잘 이해해 주는 참다운 친구.

쓸데없이 개인사를 많이 털어놓는 블로그라 부지불식간에 글에 등장하는 <지인>들이 꽤 되었는데, 결국엔 나에게 그만큼 쓸데없이 <지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되는 듯하다. 물론 나의 블로그에 자신이 등장했음을 아는 <지인> 정도라면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이거나 <지기>인 경우가 많아, 뭉뚱그린 <지인>의 호칭에 슬며시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라고 하면 어쩐지 <벗>과 비슷하게 비슷한 또래여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들어 나이가 밑이거나 위인 친구에게는 막연하게 거리를 두는 <지인>이라는 표현을 들먹이고 말았던 것 같다.
이번에 새삼 <지인>부터 친구를 뜻하는 여러 낱말을 찾아보고 나니 반성이 필요하긴 하다. 영화 <아는 여자>에서 <그냥 아는 여자>라는 정재영의 소갯말에 이나영이 얼마나 상심했는지 남녀관계를 떠나서 얼마나 공감했던가. 이쪽에선 뭔가 특별한 관계라고 여겼는데 저쪽에선 <그냥 아는> 사이로만 규정하고 있거나 믿음을 저버리는 해악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위해인물임음을 깨달았을 땐 마음의 상처를 피할 수가 없다. 얼른 관계 재수정에 돌입해 처리하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기대에 대한 배신감이랄까, 인간 자체에 대한 실망까지 겹쳐 그간의 모든 다른 관계까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쪽에선 정말로 <그냥 아는> 사이로 남았을 뿐인 관계인데도 상대쪽에서 뭔가 특별한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는 낌새를 보이면 차마 냉정하게 쳐내지 못하고 뒷구멍에서나 구시렁거리게 된다. 세월이 좀 더 지나면 어떻게든 정리가 되겠지, 그런 한심한 바람이나 품으면서.

작년에 휴대폰을 바꾸면서 전에 있던 휴대폰에 저장됐던 번호를 모조리 옮기긴 했지만 상당수의 번호를 과감히 지우고 정리한 뒤엔 <가족> 외에 딱히 유용하게 정리해두진 못했던 그룹별 번호 정리에 돌입했었다. 휴대폰을 을 잃어버려 나쁜 사람 손에 들어가는 경우를 대비하여 <가족> <친구> 따위의 솔직한 그룹명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그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겠어 싶은 생각에 난 고집스레 가족/친구/동창/후배/선배/er/비즈니스/기타/받지마 9개의 분류를 정했다. 물론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은 첫 그룹인 <미지정>에 남겨둔 채로. (예를 들어 ㅌㄹ 주민들은 아직 미지정 그룹에 속한다 ^^; 블로그이웃이라는 그룹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세월을 견디다 고민 없이 친구 그룹에 넣을 수 있는 사이가 될 날을 꿈꾸는 중이다;;)

처음 그룹을 일일이 나눌 땐 벨소리도 다르게 해서, 전화오는 소리만 듣고도 척, 어떤 부류의 인물인지 알아보겠다는 심사였으나 당연히 뻘짓이었다. 내가 9종류나 되는 벨소리를 기억할 리가 없지 않은가.
우선은 가장 많이 울려대는 <가족>의 전화를 차별화하고, 자다가도 안잔 척 목소리를 맑고 씩씩하게 내야 하는 <비즈니스> 전화의 벨소리만 식별하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친구>와 <동창>을 굳이 나눈 이유야 뻔한 것일 텐데, 내 경우는 <후배>와 <친구>의 분류에서 이리저리 고민을 좀 해야했다. 나이로는 밑이지만 이래저래 연이 닿은 지인들과 차츰 동등한 우정을 쌓아가다 보면 그냥 <후배>라고 칭하기 미안한 느낌이라 <친구>라고 불러야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이로는 선배뻘이지만 당연히 친구 폴더에 정리된 사람들도 물론 존재한다. 하기야 싸이월드 시절 일촌에도 급수를 나눠야한다고 여겼던 것처럼, <친구>도 사람마다 심리적 거리감이 퍽 다르다. 사전상의 뜻처럼 가깝게 오래 사귀었어도 새삼 멀어지는 과정에 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오래 사귀지 않았어도 누구보다 가까움을 느끼는 친구도 있으며, 멀찌감치 오래 사귀어 친구로 여겨지는 이들도 있다. 유독 <지기>라고 마음속에 꼽아두게 되는 이도 있음은 물론이다.

쓸데없이 넓고 얄팍한 인간관계는 과감히 청산하는 것이 나에게 이롭다는 생각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해왔지만 게을러서, 매몰차지 못해서, 맺고 끊음이 불명확해서 질질 이끌려온 관계로 엮인 <지인>들이 아직도 꽤나 많은 것 같다. 가끔 나를 친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확장을 위한 디딤돌이나 그밖의 쓸모로 <이용>하려는 지인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적도 몇번이나 되면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이제부턴 정말로 서로 마음 다치지 않을 사람들로만 벗과 동무를 삼아 <지기>로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일 테다. <그냥 아는> 사람들에게 허투루 쏟아부을 에너지와 감정이 이젠 몹시 아까워졌다. 드디어 내게도 방만한 인간망 정리의 시기가 왔나보다(사실 이 말도 10년전부터 되뇌긴 했다. ㅠ.ㅠ). 늦었더라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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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투덜일기 2009. 11. 5. 14:55

이번주말에 이틀에 걸쳐 축의금을 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토요일은 돌잔치, 일요일은 결혼식.
원래 나는 주변인들의 대소사에 무조건 참석하는 편이었다. 좋은일이든 궂은일이든, 무얼 받을 걸 계산하고 미리 밑밥을 뿌린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도 없다. 인간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생일 같은 날을 챙기는 각별한 사이도 있고 <그냥 아는> 사이로 수년을 이어가다 스르르 잊혀지는 사이도 있기 마련인데, 내가 얼만큼 주었으니 또 얼만큼 받아야겠다는 계산이 깔린 관계만큼 서글픈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냥 문득 생각나고 뜻깊은 날엔 뭘 좀 챙겨주고 싶고 기쁜 일 있다면 달려가 축하해주고 슬픈 일엔 위로해주는 일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관계와 그런 감정적, 경제적 소모행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관계로 칼같이 나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청첩장이나 돌잔치 초대장을 받을 정도로 상대에게 비중있는 존재로 여겨졌다면 무조건 참석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던 과거의 나와 달리 요샌 뜬금없이 날아드는 <축의금 독촉장>이 괘씸해 버럭 화를 내는 일이 더러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번 토요일 대낮에 열리는 돌잔치를 갈까말까 고민하는 이유는, 장소가 워낙 멀고(분당선 종점이다) 혼자 가야한다는 것 때문인데 만약 장소가 강남쯤만 됐더라도 이렇게 고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요번이 셋째인데 내가 학수고대했던 대로 공주님(!)이고, 위로 둔 두 아들 녀석도 나를 <고모>라고 부르며 함께 노는 걸 몹시 좋아하기 때문에 얼마 전엔 용인까지 가서 온 가족과 놀다 올 정도이니, 말로는 고민한다고 해도 갈 확률이 80%는 되는 듯하다. 요번에 돌을 맞은 아기공주가 태어났을 때 또 아들이면 아들 셋을 키워야하는지라 모두들 조마조마했었는데 딸이 태어나 나까지도 얼마나 기쁘던지, 그간 못해본 한풀이를 하듯 예쁜 여자아기옷을 사들여 택배로 보내주기도 했었다. 나의 지인은 엄마 쪽이 아니라 아빠쪽임에도. 이번 토요일에 혹시라도 돌잔치에 못가게 된다면 난 아마 미안함까지 겹쳐 대신 백화점에 쪼르르 달려가 돌잔치 주인공 선물은 물론이고 그 오빠들의 선물까지 사야한다며 객기를 부릴지 모른다. 차라리 멀고 외로워도 돌잔치에 참석하는 것이 빈약한 내 주머니를 위해선 이로울 듯;; -_-

하지만 이번 일요일에 결혼식을 맞는 지인을 생각하면 날이 갈수록 기분이 나빠진다. 결혼식장이 부산이라 당연히 갈 생각은 없었지만, 아마 서울에서 식을 올렸더라도 나는 누구에겐가 마뜩찮은 축의금을 들려보냈을 거라 여길 정도로 앞으로의 관계에 대한 희망은 전무하다. 별로 기대할 것 없는 인물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요번 결혼식을 앞둔 그녀의 행태를 보니 참 이기적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결혼식장이 부산이면 초대하는 쪽에서 교통편을 마련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 부산 결혼식에 두세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매번 나는 새마을호(그땐 KTX가 없었다) 왕복표는 물론이고 두번은 호텔까지 잡아주어 전날 내려가거나 결혼식 당일날 신랑신부와 뒤풀이를 거나하게 한 뒤 아침에 다시 만나 해장국을 먹고 작별해 올라온 적도 있었다. 경상도 어드메쯤에서 있던 결혼식에 갔을 땐 아침 일찍 주최측이 마련한 관광버스를 타고 내려갔는데, 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우리들에게 신랑신부는 관광버스에 올라와 막무가내로 하얀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기도 했다. 너무 멀리 오시게 해 죄송하다면서 올라가다 휴게소에서 군것질이라도 하시라는 의미라고 했다. 감격한 우리는 그 돈을 모아 간직했다가 나중에 집들이 선물 사이에 용돈으로 끼워주었고, 축의금도 주말 하루를 온통 소모한 시간도 아까운 줄을 몰랐었다.

헌데 이번 일요일 결혼식은 정말 축의금이 아깝다. 돌려받을 가능성이야 원래부터 염두에 없었으니 다 괘씸죄 때문이다. 그렇게도 최측근이며 절친임을 자랑하던 친구들에게도 그녀는 교통편을 마련해주지 않았단다. 오히려 친한 사이니까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되지 않느냐는 식인 모양이다. 물론 지기의 경우라면 나 또한 내돈들여서라도 축하해주러 달려갈 용의가 있을 것도 같다. 간 김에 부산구경이나 하자, 그러면서 들뜬 여행계획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초대할 때부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정이 돈독해야 가능한 게 아닌가! 
축의금을 들려 보내려고 내가 아는 그녀의 측근들을 접촉해보니, 그들 역시 마음이 몹시 상해 자기네도 갈지 말지 모르니, 축의금을 보내려거든 본인 계좌로 보내라고 권했다. 최측근에게도 <일단 부산에 내려오면 좀 보태주든지 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니 대체 결혼식을 앞둔 신부로서 진정한 축복을 받고 싶기는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혹시나 정말로 꿩먹고 알먹고, 호텔 밥값은 줄이고 축의금만 낼름 받아 챙기려는 이기심의 발로는 아닌가 하는 쪽으로 심증이 굳어지는 중이다.
어쨌거나 이번 결혼식 이후로 다시는 연락올  가능성이 없음을 간파한 나는  <옛다, 먹고 떨어져라>하는 심정으로 축의금을 보내기 위하여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축의금 전달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 하니 민망하지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그랬더니 이런 답장이 왔다.
<언니.. 민망해하지 마세요! 계좌로 마니들보내셨어요..ㅋ저도첨엔참민망했는데..^^>
다음 메시지엔 당당히 계좌번호가 날아왔다.
생각해보니 축의금을 신랑신부 본인의 계좌로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_+
작년엔가 울산에서 결혼한 후배의 경우엔, 본인이 싫다는 걸 억지로 주소를 물어 우편환을 보내긴 했었다. 직접 가보지 못하는 대신 미안함과 축하의 말을 담은 카드를 써서 우체국에 가 전신환으로 바꾼 종이를 넣고는 등기로 부쳐야 했는데, 그런 잠깐의 수고도 거치지 않은 <인터넷 축의금 송금>이라니 정나미가 뚝뚝 떨어진다. 일생일대의 대사를 앞둔 신부로서 그렇게라도 축의금을 챙기고 싶었을까?

그렇게 찝찝하고 불쾌한 관계라면 축의금도 보내지 말고 무시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이것으로 완전히 청산될 관계라면 내쪽에서 조금도 찜찜하지 않게 개운한 마음으로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전 인터넷 송금하며 괘씸하고 불쾌했던 마음도 진정이 되는 것 같다. OO야, 소원대로 X사 부인 되었으니 잘 먹고 잘 살렴. 앞으로 다시는 우리 서로 연락하지 말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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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한 욕심

투덜일기 2009. 10. 30. 16:25

....은 화를 부른다. 명언이다. ㅠ.ㅠ
그동안 매주 장보러 갈 때마다 만원어치씩 사와 먹은 홍옥 사과가 <너무> 맛이 있었다. 홍옥의 진수를 보여준달까, 적당히 새콤하고 달콤하고 과즙 많고 빠알갛고 크기도 하나씩 깨물어 먹기에 적당했다.
10월이 끝나가며 나는 조바심이 났다. 11월 되면 이제 홍옥은 안나올 텐데!
해서 지난 수요일 나는 큰 마음을 먹고 홍옥을 한 상자나 사들였다. 선물용으로 나오는 복숭아나 포도 상자와 달리 홍옥 상자는 엄청 크고 70개도 넘게 들었더라. 복숭아 사건 이후 새로 뚫은 그 과일가게에서 여름부터 주욱 과일을 사다먹었고, 홍옥도 그간 벌써 3주째 먹어왔던 터라 당연히 믿고 사왔는데;;;
유난히 빨간색이 진한 요번 홍옥은 어째 맛이 좀 달랐다. 단맛은 좋은 편인데 아삭거리는 과육의 질감이 그간 먹어온 홍옥과 전혀 다른 거다. 약간 푸석푸석한 느낌이 들 정도로...
홍옥이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홍옥에는 못미치는 사과의 맛.
만 하루 이상 고민을 하던 나는 (이미 10개 이상 먹어 치우거나 공주네 집에 싸줬다) 도저히 한달 내내 홍옥을 먹으며 찜찜하고 불행해지기가 싫어서 밤새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다잡아 조금 전 사과상자를 다시 채워 차에 싣고 과일가게엘 찾아갔다.
처음부터 대판 싸울 생각은 아니었고, 내가 원하는 홍옥의 맛이 아니니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돈을 더 주고라도 바꿔오려던 것이었는데;; 단박에 거절당했다. ㅠ.ㅠ
이제 더는 홍옥사과가 나오지 않는단다. 정말로 드넓은 도매상 과일 좌판에 남은 홍옥사과는 딱 한상자밖에 없었는데, 내가 사온 것과는 크기가 달랐다. 바꿔줄 홍옥이 없다며 아줌마는 더 이상 나를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다른 손님을 맞았다. 일단 과일가게 앞에 차를 세워놓고 사과상자는 아직 트렁크에서 꺼내지 않은 채 먼저 물어보긴 했지만, 민망하고 좌절스럽고 속상하고 화나고... 
쭈삣쭈삣 돌아서서 그냥 돌아와 다시 무거운 사과상자를 들고 낑낑대며 이층으로 올라왔다. 젠장.
욕심을 부린 탓에 올 가을엔 11월에도 홍옥사과를 음미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아마 한달 내내 계속해서 안타깝고 속상해할 게 틀림없다. 홍옥사과의 진수는 이 맛이 아닌데, 더 아삭거려야 하는데.. 그러면서. ㅠ.ㅠ
역시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 적당히 욕심을 부렸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그 맛있는 홍옥을 한 상자 살 수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던 거 아닌가!? 다 욕심쟁이 과일장수 아줌마 탓이다 뭐!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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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자

투덜일기 2009. 10. 30. 15:08

얼마 전 방송계에 복귀한 개그맨 이성미가 방송에서 얼핏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 바닥에서 자기가 너무 오래 돼 화석 같은 존재가 된 느낌이라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얼핏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차가 꽤 나는 지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울 엄마나 아버지가 그 옛날 피난 갔을 때 경험담을 들으며 보였던 신기하고 뜨악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예를 들면,
"나 어렸을 땐 달걀이 귀하고 비싸서, 외삼촌 따라 달걀 프라이 하나 간식으로 얻어 먹는 게 엄청난 행복이었지..."
"어린이날 되면 학부형들이 학교에 와서 줄줄이사탕, 라면땅  같은 과자를 선물로 나누어 주었는데, 새로운 엄마들이 학교 운동장에 나타날 때마다 다들 목을 쭉 빼고 누구 엄마일까 기대를 했다니까..."
"옛날엔 전화세가 워낙 비싸서 우리집에도 처음 전화가 생긴 게 나 중1 때였나 그랬어.."
같은 이야기들.
우리 조부모님 세대와 부모님 세대만 파란만장한 시대의 변천을 겪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으로 따지면 누구나 파란만장한 시대의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러다보니 어느덧 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순히 공유하기 어려운 추억 때문에라도 점점 나이든 세대로 떠밀려나고 있는 기분이고, 특히 <요즘 여자>의 범주엔 도무지 들어갈 자신이 없다.

가끔 연애 중인 남자 후배들한테 <요즘 여자애들 왜 그래요?>라는 푸념 섞인 질문을 받곤 하는데, <요즘 여자>가 다 그런 거 아니라고 버럭 호통을 쳐주긴 하지만 나 역시 <대다수의> 요즘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개그콘서트에서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의 이름으로 풍자하고 꼬집는 요즘 여자애들의 세태에 나도 웃음지을 수 있는 이유는 역시나 내 눈에도 그들이 못마땅하기 때문일 거다. 어렵사리 연애를 시작한 남자 후배들은 연봉의 고하를 막론하고, 연애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멋있고 맛있는 곳으로 <다 알아서> 데이트 코스를 확보해 놓아야함은 물론이고, 차 없이는 데이트가 불가능하다고 믿는데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당연히> 명품가방이나 구두, 최소한 지갑이나 명품 귀고리라도 해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여자친구의 비위를 맞추려니 경제적인 타격도 엄청나고 가치관마저 뒤흔들릴 지경이라나.
"안 그런 여자애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런 골빈당하곤 당장 헤어져!"라고 해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른 <건전한 사고를 지닌> 여자애들을 소개해줄 것도 아니고 그럴 만큼 그들의 인생에 간섭할 권리도 없으니 같이 한숨을 쉬어주는 것밖엔 별 도리가 없다. 게다가 그런 줄 몰랐는데, 차츰 이른바 <된장녀>의 특징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인들도 꽤 되는 마당이라, 역시 나는 이 사회에서 확실히 소수에 속하는 삐딱이구나 싶은 생각이 더 강해졌다.
얼마 전에 만난 후배와도 10년 가까이 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나와 비슷하게 소박하고 건강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여겼던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예전의 소박함은 단순히 경제적인 여유가 덜 허락되었기 때문이었고, 이젠 어느 정도 수입을 갖추고 나더니 보란듯이 명품족의 반열에 올라섰다. 처음 그녀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로고 선명한 <루이뷔통> 숄더백을 들고 나왔을 때 난 눈쌀을 좀 찌푸렸지만, <튼튼하고 편하고 스타일이 산다>며 자화자찬을 하는 후배에게 <난 명품 좋은 줄을 모르는 촌닭이라서 잘 모르겠다>고만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 다음에 만났을 때도 알록달록 로고가 선명히 찍힌 앙증맞은 명품 핸드백을 들고나오더니, 얼마전엔 또 다시 새로운 명품가방에다 페라가모 구두까지 신고 나와선 명품 예찬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급기야 겨울 부츠를 사고 싶은데 이왕이면 남들과 차별화되게 명품으로 신겠다며, 페라가모, 디올, 프라다, 루이뷔통, 구찌, 버버리까지... 명품관을 죄다 섭렵하며 부츠를 신어보고 아직 시기가 너무 일러 수입도 되지 않은 부츠의 가격을 살폈다. "언니도 페라가모 구두 한번 신어보세요, 진짜 편해요!"라면서...

명품구두를 선호하는 아이들은 당연히 자동차 데이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 구두는 어디나 카펫이 생활화되어 있는 서구식 생활에 맞춰 나온 신발이라 밑바닥이 몹시 얇아 우리나라처럼 맨바닥이 지천인 곳을 마구 걸어다니면 한달도 안 돼 바닥이 닳아버릴 테니까. 그래서 다들 밑바닥을 덧대어 신는다는데, 과연 그런 구두가 편해봤자지 나 같은 청바지 인생에게 운동화보다 편할까?
꼭 갖고 싶은 예쁜 물건이 있는데 그게 마침 명품이라 선택하는 것을 뭐라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 역시 나만의 멋진 가방을 꿈꾸던 시절, 정말로 마음에 꼭 차는 가방이 명품밖에 없다면 거금을 들여서라도 살 수 있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넓혀놓은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명품 가방 몇 개 없으면 체면과 품위가 안선다고 생각하며 카드빚을 갚느라 돌려막기에 허덕이면서도 명품만 찾는 요즘 젊은 여자들의 생각을 나는 정말이지 이해 못하겠다.  
얼마 전 연애 100일을 맞아 커플링을 하게 된 후배는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청했는데, 연애 조언을 하기엔 너무도 늙어버린(!) 나는 괜히 쓸데없는 고민 하지 말고 여자친구랑 의논해서 정하라고  딱 잘라 말했다. 비록 내가 <요즘 여자>의 범주엔 들지 않을망정, 촌스런 남자의 안목으로 고른 이상한 커플링을 끼고 싶어하는 여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쯤은 안다 이거지.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애는 금은방이나 악세서리 체인점의 커플링을 단박에 거절하고, <티파니> 반지를 껴야한다고 했단다. -_-;; 물론 티파니 백금반지를 사줄만한 재력이 안 되는 후배였기에 그 커플은 <티파니 은반지>로 커플링을 장만했고, 그 돈이면 금은방에서 충분히 금반지를 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던 후배는 나에게 또 한 번 <요즘 여자애들 대체 왜 그래요?>라고 물었다.
오드리 햅번의 우아한 자태가 인상적인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 이후, 웬만한 여자들이 품고 있는 티파니 선망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오드리 햅번도 만날 커피들고 빵으로 아침 먹으며 티파니 쇼윈도를 구경만 했단 말이지!!
이왕이면 웨딩드레스는 <베라왕>을 입으면 좋겠다는 말을 슬쩍 흘렸다는 그 여자친구의 얘기를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가 연예인인 줄 아나봐! 니가 내 동생이었으면 그런 정신나간 미친년하고는 당장 헤어지라고 조언하겠다만, 니가 알아서 해라."고.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라 여기저기 청첩장도 날아들고 다행히 소문만 듣고 지나도 되는 결혼식의 소식도 들려오지만 <요즘 여자>들의 결혼풍속도 역시 천편일률적이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면야 당연히 초호화판으로 치를 것이고, 심지어 전세금이 모자라 월세로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한이 있어도, 결혼식장은 반드시 <호텔>이거나 <호텔급>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단다. 그러고는 몇년간 통 연락도 않던 이들에게 축의금 확보를 위한 전화를 해대고, 결혼식 이후엔 당연히 입을 싹 닦듯 다시 연락을 끊는다. 심지어 아주 괘씸했던 어느 인간은 축하객은 안오고 축의금만 보내주는 것이 자기에게도 이득이라고, 7만원에서 10만원을 호가하는 호텔 결혼식 밥값을 생각하면 자잘한 축의금 봉투 들고 어중이떠중이 다 오는 것도 반갑지 않다고 했단다. 결혼식도 장사하듯 계산속을 보이는 인간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요즘 여자애들> 정말 무섭다. 얼마 남지 않은 반갑지 않은 결혼식의 주인공도 분명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방에 연락은 했으되, 멀고 먼 지방 결혼식까지 가야하는 친구들의 편의는 나몰라라 하는 그녀의 과거 행적을 감안해볼 때, <니들이 손수 비싼 차비 들여 올테면 오고 못 그러겠으면 양심상 축의금만 보내라>고. 흥!

더욱 슬픈 건 저런 <요즘 여자>들이 죄다 그럭저럭 <요즘 엄마>가 되어 돈과 경제적 성공밖에 모르는 천박한 사고방식으로 아이들 교육을 시킬 거라는 점이다. 보나마나 뻔한 악순환의 연속. 안 그런 요즘 여자들도 많다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싶지만, 이젠 정말 잘 모르겠다. 난 이제 확실히 옛날 여자란 것만 확실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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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투덜일기 2009. 10. 28. 22:05

인구중 애완동물을 싫어하는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애완동물, 반려동물 키우기가 대유행인 요즘엔 나처럼 애완동물 싫어하는 인간이 정말 드물다. 아주 가끔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애완동물에 대한 반감 및 공포를 갖고 있는 이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데, 안타깝게도 주변인들 가운데 팔구 할은 나의 이런 생각을 못마땅해 한다. "애완동물이 얼마나 귀여운데! 이 매정한 인간아!"라고 하면서...
하지만 나는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모든 동물이 다 무섭고 귀찮고 싫다. -_-;;
어렸을 땐 우리집에도 개를 기른 적이 있었다. 물론 요즘처럼 깨끗하게 목욕시켜 상전 모시듯 하는 애완견 말고 마당에서 풀어놓고 기르며 집을 지키게 하는 그야말로 잡종견, 똥개였는데 생긴 것만 따지면 사실 잡종견이 어릴땐 더 예쁘다고 들은 것 같다. <캡틴>이라고 이름 붙였던 그 개도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는 외모가 봐줄 만 했던 것 같다. 엄청난 먹성으로 순식간에 커버린 뒤 디룩디룩 살이 붙더니 낯선 사람한테는 안짖고 아침마다 빨랑 밥달라고 울 엄마를 깨울 목적으로 짖어대거나,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갑다고 괜히 짖어대는 바람에 결국엔 이웃들의 원성을 사 어디론가 팔려가는 슬픈 운명을 겪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식구들은 대체로 개를 싫어해서 누구 하나 애완견을 기르자고 나서는 이가 없었기에 집안의 평화는 주욱 이어져올 수 있었다. 십수년전 동네 약국 아줌마가 키우던 애완견이 늘 홀로 집을 지키며 외로워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마당 넓은 집에 사시는 우리 외삼촌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하루 이틀 잠시 그 개를 맡아야했던 적은 있었던 듯하다. 괴로운 악몽이어서 얼른 지워버렸는지는 모르겠는데, 낯선 집에서 밤새도록 낑낑대며 울어대는 그 개가 무서워서 나는 방밖에도 못나갔던 것만 기억에 남아있다.
제 아무리 예쁜 애완견도 내 눈엔 무섭고 귀찮고 징그러운 존재로만 비치니 어쩌란 말인가. 혹시라도 애완동물을 기르는 지인의 집에 가게 되면 나는 정말 오금이 저린다. 가끔씩 친해져보겠다고 놈들이 와서 내 발목에 몸을 비벼대기라도 하는 날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나온다. 
고양이는 워낙 도도한 동물이라 낯선 사람이 가면 경계만 할 뿐 엉겨붙지 않아 무서움의 정도는 똑같아도 봉변당할 일은 없는데, 개들은 왜 그렇게 들러붙는 존재인지 처음 보는 나에게도 쓰다듬어 달라고 달려느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는 그런 태도를 나에 대한 공격이자 도전으로 보기 때문에 비명부터 지르게 되고 막 호통을 치거나 (만만하게 생겼으면) 무조건 달아난다. 
헌데 웃기는 건 그놈들도 순식간에 나와의 서열관계를 파악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들을 무서워하는 걸 간파한 개들은 대번에 이를 드러내며 무시무시하게 짖어댄다. +_+ 그럼 나는 더욱 분노와 공포가 솟구치고, 애완동물 혐오증의 정도도 깊어만 갈 뿐이다. 아 왜 인간이 개랑 같은 방에서 지내야하는 건데!!! 나는 애완견이 방안을 뛰어다닐때 들리는 발톱 부딪치는 소리마저 소름끼친다. 뜨뜻한 몸과 털 밑으로 느껴지는 앙상한 뼈의 감촉도 싫고... 어린 아기랑 다를 게 뭐냐고 타박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내게는 엄연히 다르다! 아가들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개털도 안빠지고 나를 위협하지도 않는다고!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지.. (아기 싫어하는 사람에겐 또 이런 나도 똑같이 이상해보이겠지만서도 ㅋㅋ)

암튼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얼마 전 공주네집에 애완견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 시집오기 전 큰올케는 애완견을 키우기도 했었고 워낙 개들을 예뻐하는 데다 조카들도 툭하면 개를 기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는 하고 있었다. 해서 <혹시라도 니들이 개를 기르게 되면 나는 절대로 니네 집에 가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그런 날을 하루라도 지연시키려 했었으나, 약발과 권위가 결국 떨어진 모양이다.
물론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난 이제 니네 집에 안간다> 아니 <못간다>고 선언한 뒤 명절과 제사 때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중이었는데 (애완견이 있는 집에서 심지어 잠까지 자야하다니! 허걱!) 놀랍게도 오늘 공주네 개가 우리집으로 쳐들어왔었다. ㅠ.ㅠ 낮에 먼저 버스 타고 왕림한 공주 남매를 데리러 저녁에 온 올케가 예고도 없이 개를 안고 (강아지님이 하루종일 낮잠을 너무 자서 더는 못자게 하려고 데려왔단다) 등장했던 것! 나와 놀고 있던 조카들은 <파랑아~~~!!>를 외치며 더욱 신이나  희희낙락이었고, 강아지 또한 낯선 공간을 탐험하느라 신이 나서 돌아다녔지만... 내 반응이야 뭐 뻔한 것 아니겠나.
내 옆에 오게 하지 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으나, 심술공주는 개를 안고 자꾸만 나에게 들이대고 (좀 쓰다듬어주란다) 내가 지를 무서워한다는 걸 깨달은 이놈의 강아지는 기막히게도 집주인인 나에게 마구 짖어댔다. 송곳니까지 드러내면서... 올케와 공주는 몹시 재미있어하는 눈치였다. 그놈의 강아지가 여지껏 드러내놓고 무시하는 상대는 막내인 지환이밖에 없었는데, 감히 고모를 무시하려 든다면서.

전에도 겪어본 일이지만 새삼 나는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져, 애완견에 대한 생각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감히 한살짜리 강아지놈이 나를 우습게 보다니! 올케들이나 왕비마마는 가끔 나를 제 친구들 다루듯 막 갖고 노는 조카들을 혼내며  <키는 작아도 우리 집에서 할머니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야. 아빠랑 엄마보다도 누나이고 언니야. 그러니깐 고모한테 함부로 하지마>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아... 공주네 식구들이 부디 그놈의 강아지에게도 저런 교육을 시켜주길 빌뿐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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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춥구나

투덜일기 2009. 10. 17. 17:54

털갈이 모드에 접어든 듯 유달리 빠져대는 머리칼을 보면서 진즉부터 가을이라 생각은 했었고 아침저녁 보일러를 틀고 산지 꽤 됐으면서 정말로 얼마나 날이 서늘해졌는지는 실감하지 못하는 나날이었다. 장보러 잠깐씩 나가거나 왕비마마의 병원 보필 외출은 늘 낮이었기에 티셔츠 한장만 입어도 꽤나 더워 10월도 벌써 중순에 접어들었다는 건 날짜로만 인식했지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최저기온이 얼마나 추운 건지 모르고 살았나 보다.
어제 간만에 밤외출을 하며 티셔츠 위에 나름대로 겉옷을 하나 더 입고 스카프까지 둘렀건만, 난데없는 비까지 쏟아진 날씨는 나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추위>였다. 그렇다고 계속 덜덜 떤 것도 아니었고 간혹 약간씩 한기를 느꼈을 뿐인데, 자고 일어나 보니 목이 부었다.
사실 약간의 콧물을 동반한 감기 기운은 꽤 오래 느끼고 있었는데 목까지 부으니 돌연 서글프다. 이젠 정말 추워지겠구나 싶어서. 생각해보니 가을 초입에 해야하는 옷장 서랍 바꾸기를 아직도 미뤄두고 있었다. 앞으로 입어야 할 계절 옷을 화장대 서랍으로 옮기고 여름옷은 장농 서랍으로 집어넣어야 하는데... 해마다 그 행사를 10월쯤 치른 것 같긴 한데, 올해는 게으름 부리다 특히 늦어진 모양이다.
털이 복슬거리는 두툼한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적잖은 거리에서 홀로 여름 장마 패션 같은 얇은 옷만 입고 돌아다니려니 뒷골이 더욱 서늘해지는 느낌. 마음도 스산한데 옷이라도 뜨뜻하게 입고 다녀야지 마음먹었다. 하지만 환절기엔 정말이지 옷을 어떻게 입어야할지 모르겠다. 변온동물화 되어가는지 조금만 더워도 못견디겠고 조금만 추워도 덜덜 떨리니 원.. 두툼한 스웨터를 껴입은 이들도 적지 않던데 벌써부터 그런 옷을 입고 실내에 들어가면 난 아마 땀을 벌벌 흘릴 거다.
칩거생활을 끝내고 슬슬 활동을 개시하려면 제대로 옷부터 꺼내입어야 하는데, 청소가 귀찮아 아직도 마루에 놓여있는 선풍기를 보자니 내 마음은 아직 여름을 보내기 싫어하는 건가 싶다. 어쨌거나 스산한 오늘은 대낮부터 보일러를 팍팍 돌리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이렇게 쓸쓸한 가을엔 지구와 환경을 염려할 마음의 여유가 안생긴다. 몸이라도 따뜻해 지고 싶단 말이지! 
어쨌거나 새삼 깨달은 결론. 가을은 춥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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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패션은 20년 주기로 돌고돈다는 말이 있고, <복고풍>이란 말이 패션계에선 단 한시즌도 빠지질 않는 걸 보면 아무리 디자이너들이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해봤자 사람들의 생각이란 게 워낙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결국 옛것에 약간의 변형을 가미해 새로운 척 내미는 시도가 되풀이될 수밖엔 없나보다. 옷장엔 한가득 옷이 들어 있어도 계절마다 옷타령을 멈출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백화점이든 거리의 옷가게엘 나가봐도 선뜻 사고픈 옷은 그리 많질 않다. 나로선 신체특성상 소화할 수 없거나 소화할 마음이 없는 옷들을 제외하고 나서 어렵사리 골라보면 결국 이미 갖고 있는 옷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저 본인이나 <새옷>이라는 기분만 낸다뿐이지 남들이 보면 아마도 십수년째 만날 똑같이 우중충한 옷만 입고 다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기야 뭐든 잘 못 버리는 성격인 데다 옷 욕심이 많기 때문인지 20년 묵은 옷가지들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간이니, 십수년째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누가 손가락질해도 전혀 할말은 없다. 오히려 20년 전에 입던 옷이 아직도 더러 몸에 맞는다는 게 자랑스러울 뿐!

20년 전에 유년기나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20년전에 이미 대학생이었던 나는 요즘 최고 유행이라는 패션경향을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 옛날 나도 어쩔 수 없이 입고 다니긴 했지만 이후 촌스럽다고 외면했던 유행이 정말로 다시 되돌아왔구나 싶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샌 유행의 폭이 넓다고나 할까 다양성이 인정되는 분위기라서 아무리 한 가지 스타일이 유행해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 참 다행스럽다. 제 아무리 몇년째 스키니진이 유행이지만, 스키니진이 아닌 바지를 찾아 입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란 뜻이다. 과거엔 정말로 한 가지가 유행이면, 신상품은 죄다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말만 달라졌지, 요즘 유행하는 <스키니진>은 그 옛날 <빽바지>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나도 소싯적에 선택의 여지 없이 사입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 물론 지금처럼 밑위길이가 짧동하진 않아서, 허리까지 올라가는 <배바지>에 가깝긴 했지만, 청바지나 진바지는 물론 교복바지까지 통좁게 줄여입고 다니는 고등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넣고 꿰매입은 듯한(울 엄마의 표현이시다)> 몸에 밀착되는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지천이었다. 그나마 요샌 다른 모양의 바지도 사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워낙에도 너도나도 똑같이 입고 다니는 집단유행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데다, 최신유행 패션을 열렬히 따를 만한  신체조건을 타고나지도 못했기 때문에 당대 유행하는 패션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무슨 옷이든 그저 내눈에 <예뻐> 보이면 그만이란 얘기다. 물론 첫눈에 아무리 <예뻐> 보여도 조만간 거리에 물결처럼 반복되는 패션이라면 일단 마음에서 제외된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면, 나는 두번다시 그 옷을 입고 싶어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인데, 어떤 이는 똑같은 옷을 입었더라도 상대가 멋쟁이라면 스스로 대단히 뿌듯함을 느낀단다. <역시 유행과 패션을 아는 사람끼리는 통한다>고 생각한다나.  -_-; 작년 가을부터 요맘때면 계속 체크무늬 셔츠가 유행이라지만 나는 좀처럼 사 입을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 흔해빠진 체크무늬 말고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하고 예쁜 체크무니 셔츠를 사입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아직 그런 체크무늬는 발견하지 못했다;), 워낙 유행이라 똑같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누군가를 맞닥뜨릴 확률이 높다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요즘 유행이라는 패션 가운데 내가 참아줄 수 있는 건 스키니진과 체크무늬 셔츠 정도인 것 같다. 하나같이 외래어라 더더욱 마음에 안드는 <2009 A/W 핫트렌드 패션>은 내눈엔 정말 아니올시다다! 나 같으면 거저 준다고 해도 안입을 옷들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를 달고 언론의 조명을 받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 가까운 지인이 입고 나타난다면 당장 말리고픈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해도, 나로선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유행패션을 골라봤다. 어디까지나 따분함을 피해보려는 소치이니, 혹시 이미 소장했거나 소장할 마음을 먹은 지인들이 있다면 그러려니 하시길. 부디 나 같은 삐딱 촌닭과 만날 때만 선보이지 않으면 될지어니..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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