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에 해당되는 글 103건

  1. 2010.03.25 짜증 7
  2. 2010.03.22 생각대로 되지 않아 12
  3. 2010.03.09 머피의 법칙 3
  4. 2010.03.07 노년의 생일 19
  5. 2010.02.26 관계. 실망. 단계별 증상
  6. 2010.02.22 과메기 24
  7. 2010.02.18 동화의 배신 22
  8. 2010.01.26 친절도 좋지만 23
  9. 2010.01.15 어처구니 없는 요구 18
  10. 2010.01.15 변화 8

짜증

투덜일기 2010. 3. 25. 10:32

가뜩이나 심신이 지쳐서 병나기 직전의 불안함까지 느껴지는 요즘 가장 짜증스러운 것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여론조사 전화다. XXX 구청 후보에 대한 설문조사, XXX 시의원에 대한 여론조사, XXX 구의원 후보에 대한 설문조사라며 하루에 평균 두세 통은 전화가 걸려오는 것 같다. 그것도 내가 숙면을 취해야 하는 아침나절에!!

원래 집전화로는 나를 찾는 이가 없기 때문에 왕비마마 담당인데, 귀가 어두워진 탓도 있고 TV를 하도 크게 틀어놓은 탓에 전화벨 소리를 제깍제깍 듣지 못하고 대여섯번 이상 벨이 울릴 때까지 내버려두면 그야말로 미칠노릇이라 자다말고라도 내가 벌떡 일어나 받을 수밖에 없다. 아주 피곤할 땐 내방에 연결된 선을 아예 빼놓고 자지만, 평소엔 오전 중에 잠을 자는 나의 사정을 감안한 친지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를 거는 일이 드물어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아직도 인터넷 전용선과 전화를 바꾸라고 홍보하는 텔레마케터들과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여론조사 전화들!!

엄마도 나도 컴퓨터 녹음으로 이어지는 여론조사 전화는 가차없이 확 끊어버리고 마는데, 대체 왜 자꾸 그런 전화가 오는 것인지? 여론조사 해서 니들이 뭘 어쩔건데??? 그나마도 작업실 유선전화는 전화번호부 등재를 거부한 덕분인지 여론조사 전화가 오지 않고 있지만, 엄마네 집전화는 어제도 오늘도 빠짐없이 짜증나는 여론조사 전화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걸려오고 있다. 으으으~~~~!!!! 어디에 신고해서라도 그런 전화를 막을 순 없는 건가? 지방선거니 서울시장부터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뽑아야하는 직책도 많고 후보자들도 까마득하게 많을텐데 놈들이 죄다 여론조사 하겠다며 앞으로 두달 넘게 전화질을 해댈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멀미가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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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두룩한 나의 단점 가운데서 혹자는 나더러 생각이 너무 많다고 지적 한다. 나도 잘 알고 싫어하는 단점이다. 소심함, 우유부단함과 함께 세트 메뉴로 몰려다니며 종종 내 어깨와 머리를 짓누르니까. 심지어는 앞으로 해야할 일, 일어나지 않을 일도 여러 경우의 수대로 홀로 상상해보고 추측하고 짐작하면서 미리 염려하는 경우도 있다. 어쩔 땐 내가 이러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저러저러한 말로 대꾸할 테고 또 내가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면 저러이러한 반응이 나올 것을 예상하다가 버럭, 있지도 않은 사건에 꽁해져 마음에 응어리를 맺거나 홀로 이유없이 화를 내고 앉았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밀린 일이 생각대로 진척되지 않는 건 너무도 뻔한 게으름 때문이라고 쳐도, 하루 일정 계획해 놓은 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지는 일은 다반사이며, 한 이틀 푹 자고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입천장도 아직 너덜거리고, 요가 넉달만에 열세살 조카는 키가 5센티미터나 크고 체중도 줄어 허리선이 생겨났는데 중년의 고모는 체중감량은커녕 늘어난 유연성 따위도 전혀 모르겠고, 일주일만에 아기발처럼 변한다고 선전하며 각질이 허물 벗는 뱀 껍질처럼 벗겨지는 모습을 보여주던 마법의 묘약 같은 각질제거제는 나한테만 효과가 나타나질 않으며, 4월이 코앞인데 아직 날씨는 겨울이고, 진심은 언제고 반드시 통할 거라 믿었던 오랜 관계에 금이 가거나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물론 생각대로 되지 않아 제일 못마땅하고 속상한 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일년에 한번씩은 제법 긴 여행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여유와 여건이 허락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중년의 삶이다. 

소소한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는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게 인생인 것도 같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만날 생각만 길게 앞세우지도 말 것이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맘 상해 괴로움에 연연하는 대신 생각대로 된 것에 대한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인간의 욕심으론 그게 잘 안된다. 성인이나 고승의 반열에 오를 만큼 대범하게 연연해 하지 않고 매사에 기꺼이 욕심을 놓아가며 사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크게 성공하겠다거나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탐욕 따위를 품지도 않았으니 생각을 조금만 덜하고 탐심도 조금 버리면 되련만...

3월도 끝자락을 향해가는 22일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씨처럼, 앞으론 내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 황당하고 기막힐 정도로 뒤통수를 치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멍청한 나는 또 그런 예상마저 미리 생각해두겠노라며 미련을 떨 것이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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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투덜일기 2010. 3. 9. 20:38
머피의 법칙은 순전히 심리적인 인상이라던데, 나에겐 아닌 것 같다. 몇달 별러 미루다 세차하면 꼭 다음날 비가 오는 건 날씨를 미리 살피지 않은 본인의 게으름 탓이거나 기상청의 오보라고 쳐도 내가 유례없이 뭘 미리 준비하면 곧이어 비웃을 일이 생긴다.

게으름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라 늘 계절이 한참 지난 뒤에야 옷가지를 정리하는 편이고 심지어 겨울코트를 5월이 돼서야 세탁소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번엔 웬일인지 부지런을 떨어 겨울옷과 부츠를 죄다 치웠더니 날씨 좀 봐라. 몇년 전 3월 1일에도 눈이 온 적 있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첫주가 무사히 지나는 걸 보고 정리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아니었던 거다.

그나마 겨우내 염화칼슘에 쩔은 차는 빨리 세차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계속 세차할만 생각만 들면 날씨가 나빠지길래 아직까지 알거지 몰골로 다니고 있긴 하다. 세차에 관해서는 머피의 법칙 피하려다 다 녹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려나 코트는 하나쯤 다시 꺼내 후둘러 입다가 세탁해도 되겠지만 일일이 종이 구겨넣어 상자에 담아둔 부츠는 다시 꺼내 신을까말까 고민된다. 나흘째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강원도 주민에 비하면야 요 정도는 고민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신기한 머피의 법칙. 난 올해 왜 유난스레 빨리 겨울옷을 치워버렸을까나. 어쩌면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도.

아까 낮에 반짝 해가 났을 때는 옆집 담장 너머로 늘어진 벚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눈이 새하얗게 벌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서 곧 흐드러지게 봄꽃 피겠구나 싶어 마음이 다 푸근했었는데, 매서운 꽃샘추위를 준비하고 있던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코웃음을 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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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생일

투덜일기 2010. 3. 7. 18:13
떠들썩한 환갑잔치를 내가 처음 목격한 것은 스무살 무렵이었다. 당시 수원에 살던 같은 과 친구 하나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더니 난데없이 주말에 시간 되면 밥을 먹으러 오라며 수원의 어느 갈비집을 알려주었다. 터울이 많은 손위 형제들을 둔 막내였던 친구는 부모님이 옛날 분들이라 환갑엔 꼭 동네잔치를 한다고 했다. 내 조부모님의 경우 환갑은 물론이고 칠순도 조촐하게 집에서 가족모임으로 치렀던 터라, 환갑잔치의 실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흔쾌히 그러마고 약속했는데, 그날 목도한 사건이 워낙 인상 깊었던 모양으로 같이 간 친구와 내가 축의금 봉투를 가져갔는지 그냥 입만 가져갔던 건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무슨무슨 가든이었던 수원의 갈비집엔 큼직한 방마다 온통 잔치음식들이 차려져 있고 한 가운데 불판에선 갈비가 익어갔으며 마당으로 연결된 스피커에선 계속 흥겨운 풍악이 흘러나왔다. 결혼한 큰오빠와 큰언니가 낳은 자식들이 친구와 또래일 정도였으므로 잔치상 앞에 앉으신 부모님께 술잔을 올리며 차례로 절을 하던 자손들의 수가 꽤나 많았던 기억이 나고, 식사 후 여흥이 시작되자 춤과 노래가 쉴새없이 이어졌다. 잔치 주인공의 자손들 뿐만 아니라 자손의 친구들도 다들 앞에 나가 술잔을 올리고 축하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인 모양이었지만, 숫기 없는 우리의 난감함을 알아차린 친구는 싫으면 굳이 안해도 된다고 말해주어 어찌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친구 부모님의 환갑이나 칠순에 초대받았던 경험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말로만 듣던 동네 잔치를 처음 경험한 때문인지 나는 그날 온종일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고 순간순간 불편하면서 재미있기도 하고 막판엔 지겹고 곤혹스러웠다.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사회자가 지목하면 무조건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목청껏 고함을 질러야하는 상황도 그렇고 떼로 몰려나와 춤을 추는 모양새도 처음엔 흥겹더니 술판이 무르익으면서는 취객들 때문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었다. 수시로 잔치판에 불려다니느라 우릴 챙겨줄 시간이 별로 없었던 친구는 그제야 지루해하는 우리 태도를 눈치 챘는지, 먼저 가도 된다며 우릴 배웅했다.

잔치집을 나오며 나는 당시에 아직 멀게 느껴지는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염려했던 것 같다. 혹시라도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떠들썩하고 요란한 잔치를 원하면 어쩌나 싶었다. 무엇보다도 구경꾼처럼 모여든 하객들 앞에서 한복을 떨쳐입은 채 무대처럼 마련된 잔칫상 앞에 나아가 술잔과 절을 올린 뒤 나중엔 큰딸이랍시고 노래까지 한자락 불러야 하는 상황을 내 숫기로는 못견딜 듯했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고민해야하는 시기가 닥쳤다.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은 요란한 걸 싫어하시는 분들이었고, 환갑은 청춘이라며 다들 잔치대신 여행을 떠나는 세태도 나를 도왔다. 하지만 30년 넘게 다닌 직장의 정년퇴직과 맞물린 아버지의 환갑을 그냥 멀뚱히 넘길 순 없었다. 평소 생신에도 몇몇 친지들이 모여 <밥>은 먹어왔으니, 날 잡아서 조촐하게 <밥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의견이었다. 외할머니는 우리 아버지가 아무리 마다해도 환갑 기념이라며 맏사위를 위해 고운 한복까지 맞춰 보내셨다.  

환갑 안한다는데 왜 귀찮게 구느냐며 화를 내다시피 했던 아버지는 결국 친가, 처가 가족들이 모여 <간단히 밥을 먹는> 그 자리에 장모님 소원대로 엄마와 나란히 한복을 입고 참석하셨다. 음식점에 미리 부탁해서, 그간 은밀하게 아버지의 옛날 앨범을 뒤져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 사진을 모아 삼남매와 올케들의 영상편지까지 담은 영상물을 틀었던 그날 우리 삼남매와 다른 친척들은 다들 뿌듯해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아버지는 몹시 민망해하셨던 것 같다. 바로 다음해였던 엄마의 환갑은 연달아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엄마의 완고한 고집으로 부부동반 여행으로 대체되었고, 또 10년은 안심해도 좋을 듯했다. 

그런데 오래 걸릴 것만 같던 10년이 어느새 흘러 엄마의 칠순생신을 고민해야 하는 때가 도래했다. 친척분들 모두 환갑은 건너뛰는 분위기여도 칠순에는 다들 모여 맛있는 밥을 먹어왔고, 가뜩이나 홀로 남은 엄마의 칠순 생신은 그냥 넘겨선 안된다는 것이 역시나 집안 어르신들의 의견이었다. "늬 아버지를 봐라. 그렇게 빨리 갈 줄 아무도 몰랐지만 그때 억지로라도 늬 아버지 환갑 안 챙겼으면 어쩔 뻔했니? 니들이 두고두고 마음에 한이 됐을 거다."

아버지 환갑 때도 음식점을 알아보고 친척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초청하는 과정을 내가 주동한 전적이 있었으며, 그땐 부모님 몰래 큰동생이 영상물 만드느라고 사진 고르고 녹화하고 제법 법석을 떨었는데도 즐겁기만 하더니 이번엔 왜 모든 과정이 온전히 스트레스로만 여겨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번에도 주인공이신 왕비마마가 민망하다며 모임 같은 거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버티고 계시긴 하다. 하지만 "남편 앞서 보낸 여자가 무슨 염치로 생일잔치를 하느냐"는 엄마의 자학성 핑계는 용납되기 어려운 발언이다. 친척 어르신들은 엄마가 혼자 남았기 때문에 더더욱 칠순을 그냥 넘기면 안된다는데!

잔치가 아니라 그냥 밥 한끼 먹는 것 뿐이라며 엄마를 계속 달래는 한 편, 두 동생 부부와 의논하여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고 음식을 정하고 참석인원을 확인해 연락을 취하며,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소망이 다시 떠올랐다. 어쭙잖게 니체를 읽고 전혜린을 읽던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왠지 모르게 친구들에게 "딱 예순살까지만 살고 죽겠다"고 장담하고 다녔었다. 생존해 계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과는 상관없이, 단지 나의 노년이 너무도 끔찍하게만 생각됐던 것 같다.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은 최대한 오래 사시는 게 좋겠지만, 나는 홀로 씩씩하게 딱 예순살 까지만 살다가 깨끗하게 죽겠노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그래 어디 두고보자"며 나를 흘겨볼 뿐이었다. 그런데 요번에 엄마 칠순을 준비하며 문득 세월이 흘러 나중에 누가 내 칠순 때문에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도 싫고 칠순이라며 주인공으로 떠밀리는 게 싫어서라도 차라리 <일흔살 되기 전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저도모르게 하고 앉았더라는 뜻이다.

예순살까지 살겠다던 어린 시절의 나는 분명 환갑 잔치 따위는 염두에 둔 적이 없었고 다만 그 이후 노년의 삶이 막연히 구질구질할 것이라 상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칠순 생일의 부담으로 또 다시 내 수명을 재단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되살아나다니. 나란 인간은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엄마의 칠순을 <가족모임> 행사로 치르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 밥먹기 행사 대신 칠순에도 가족여행을 떠나는 집이 있다지만, 울 엄마의 건강으로 보나 시기적으로 보나 그건 실행되기 어려운 대안이다. 어차피 매년 우리끼리 생신밥은 먹어왔으니 그걸 좀 확대시킨 것뿐이라고 여기면 될 일이다. 문제는 부모님 형제가 많아놔서 그 자손들까지 모이면 4, 50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삼남매가 나누어 분담한다고는 해도, 규모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분위기며 음식 맛, 입을 옷까지 시시콜콜 미리 걱정하는 나 같은 소심증 환자에게는 더더욱!

사실 욕을 좀 먹을 각오만 한다면, 친척 어르신들이 아무리 들쑤셔도 엄마 본인의 뜻대로 칠순같은 거 안 챙긴다고 통보한 뒤 시치미 뚝 떼고 그냥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 건강이 좋지 않아 그렇게 되었다는 쓸만한 핑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남들(친척도 남이라고 치면) 눈 의식해서 자식으로서 속물스럽게 생색을 내려는 태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옛날부터 환갑이나 칠순 때 잔치를 여는 목적은 장수를 축하하기 위함도 있지만 자손들이 그 정도 거나하게 잔치를 해줄 수 있을 만큼 번창했음을 자랑하려는 노인들의 허세에서 비롯된 게 아니던가. 해서 일부 노인들은 자식들의 능력이 되든 말든, 잔치 때문에 빚을 지든 말든 남부끄럽지 않게 소리꾼들까지 불러다가 왁자지껄 노는 잔치를 강요한다던데, 울 엄마가 그런 부류의 노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깊이 감사할 일이지만 그냥 조용히 밥 한끼 먹는 것뿐이라고 여기래도 난감해하며 지레 생병을 앓아 속을 썩이는 상황도 녹록치가 않다.

과연 울 엄마의 진짜 속마음은 무얼까. 말로는 모임 안 했으면 좋겠다지만 내심 뿌듯해하며 잔칫날을 기다리고 계시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의지에 반하는 칠순잔치의 억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일흔살 되기 전에 죽어버리겠노라는 생각이 들만큼 회의를 느낀 내 마음처럼 엄마도 정말로 싫은 걸까. 그렇게 싫다는데 연회 예약을 취소하는 대신 엄마에게 그냥 못 이기는 척 따라오라고 말하는 나의 태도는 과연 옳은 것일까. 홧김에 다 확 취소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번씩 드는데, 정말로 그러면 울 엄만 잘했다고 칭찬을 해줄까.

어쨌거나 이젠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한달 넘게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극도로 높인 왕비마마의 칠순 모임이 겨우 엿새 뒤로 다가왔다. 토요일이 후딱 지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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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실망하거나 실패를 느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제각각일 것이다. 주변에서 맺고 끊기를 잘 못해서 쓸데없이 방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당연하겠지만 여전히 가끔씩 인간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 전전긍긍하는 일이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에 어떤 이유로든 금이 가는 상황은 그리 쉽게 넘길 수가 없다. 서로 안보면 그만인 관계에서도 그간의 역사와 추억이 남긴 흔적 때문에 괜한 배신감에 허덕이게 되니, 아예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관계에서라면 그 뒷감당이 더욱 어려워진다.

살아보니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그 최선이 모든 이들에게 다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어떤 이들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며 상처나 오해를 낳기도 한다는 건 깨달은지 오래다. 그런데 그걸 잘 알면서도 막상 나의 의도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뜻밖의 상대로부터 맞닥뜨렸을 때, 나는 바보처럼 충격에 사로잡힌다. 세상 누구에게나 착하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 따위는 없는 까칠한 인간임에도 그렇다.

서로 꽤 오래 공을 들인 관계에서 오는 실망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대개 자기비하와 자책이다. 다 내 탓이다. 내가 잘못한 거지. 결국엔 내가 죽일년이지. 동기가 선했다고 모든 결과가 용서되는 건 아니잖아. 내가 변해야 해. 선선히 잘못을 인정하고 바꿔나가야 해... 이러면서 제 발등을 찍고 또 찍으며 반성한다. 며칠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고민하느라 불면에 시달리는 건 예사다. 그러면서 온갖 과거의 사건들을 재현하고 되짚어보고 기억을 환기한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두번째 반응기가 시작된다. 버럭 화가 나는 거다. 내가 뭘 또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 측근이라면서 잘해보자고 한 행동을 그렇게도 몰라주나? 소통부족으로 인한 오해는 어차피 쌍방과실 아닌가? 이렇게 상대에게 분노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간 우정이나 애정의 이름으로 최대한 눈감아주었거나 덮어두었던 상대의 단점과 그간 마음에 안들었던 부분들이 열 배쯤 과장되어 떠오른다. 심지어 장점으로 여겼던 부분까지 눈에 거슬리는 지경에 이른다. 자신을 비하하며 자책하던 부분들은 서서히 흐려져 생각도 나질 않는다. 이성 따위는 원래 없었던 양, 감정의 과잉 속에서 허덕댄다.

세번째 반응은 미움이다. 모든 게 상대방 잘못 같고, 혹시나 운 없이 이 시기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렇게 꼴보기 싫을 수가 없다. 관계의 환멸을 느껴 두번다시 안봐도 되는 인물이라면 이 단계에서 깨끗이 정리돼 나의 인간관계망에서 삭제되므로 더 문제될 게 없다. 돌아보면 왜 그런 소모적인 관계를 이어왔나 한심할 정도라서, 금세 잊는 것도 가능하다. 쓸데없는 인간관계가 하나 더 정리 됐으므로 심지어 기뻐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계속해서 마주쳐야 하는 운명의 인물이거나, 내 생각에 여전히 회복할 가치가 있는 관계로 여겨지는 경우다. 볼 때마다 미움에 휩싸이면서 앞으로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생각하기란 거의 고문이다. 나처럼 성격 더러우면서 마음을 정할 땐 우유부단하고 인간관계에 휘둘리는 사람에겐 더더욱.

마지막 단계는 이성이 슬글슬금 제자리를 잡으며 두 방향으로 나뉘는 것 같다. 회복할 가치가 없는 관계임에도 계속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면 마음의 문을 닫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 호의의 가면을 쓰되 최대한 무관심하게 (실제로는 계속 미워하고 경멸하면서) 살아가기로 결정을 하거나, 어찌되었든 다시 이어가야할 관계라면 또 다시 마음 다칠 가능성을 예비하고라도 대화를 시도하여 더 나은 관계를 추구하는 방법. 물론 후자의 시도가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는 것도 아니라, 단단한 돌벽 같은 이를 만나 나만 더 만신창이가 되는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2단계로 돌아가 벌컥벌컥 화를 내며 증오심에 휩싸이다 나홀로 정리 단계로 맺음하는 수밖에.

맺고 끊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다치면서 왜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지 의문을 품겠지만, 나에겐 어쩌다보니 그런 관계가 더러 있다. 내쪽에선 말끔히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놀라운 이유로 내 관계망에 들어와 박힌 사람들. 따지고 보면 많은 이들에게 가족은 그런 애증의 관계가 아닌가? 어느 한 쪽이 죽거나 매몰차게 의절을 해야만 끝이 나는 관계. 하기야 다른 관계도 아닌 가족 안에서 인간적인 실망감과 환멸을 느낀다면 후유증은 가장 클것이다. 어쨌거나 내쪽에서 전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없는 관계의 불안한 지속은 참 어렵다.

최근들어 극저조한 기분의 원인을 이렇게라도 배설하면 좀 시원해질까 싶었는데, 아직은 3단계에 머물러 있는 터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 수 있을까나. 이놈의 펄럭거리는 감정 좀 쉽게 다잡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흔들리니 않는 나이가 불혹이라는 건 다 개뿔, 거짓말이다. 불행히도 난 아마 평생 이렇게 파르르 화르륵 펄럭펄럭 씨근대며 살아갈 것만 같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초연함인데, 지금 내게 있는 건 조바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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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

삶꾸러미 2010. 2. 22. 06:03

날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 나더러 음식 메뉴를 고르라며 무얼 먹겠느냐고 물으면, 우유부단증이 심한 식탐녀인 나는 즉답을 회피하며 이렇게 말한다.  "보신탕, 추어탕, 곱창 이 세 가지 빼놓고 못 먹는 거 없어요, 다 잘 먹어요. 그러니깐 전 아무거나 좋아요."

헌데 생각해보니 못 먹는 음식에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천하의 식탐녀로서 내가 도저히 못먹겠다고 결론지은 음식은 다름 아닌 과메기다. 청어나 꽁치를 얼려서 반건조시킨 게 과메기인데, 초고추장에 찍어서 마늘편, 풋고추, 쪽파 따위와 함께 물미역이나 김, 묵은 김치에 싸먹는 게 보통인 듯하다. 사실 나는 원래도 심하게 비린 등푸른 생선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삼치와 꽁치 정도는 잘 먹지만 고등어는 아주 싱싱해야만 먹을 수 있다. 그래야 비린내가 덜 나니까.

내가 과메기의 존재를 알고 난생 처음 먹어본 것은 번역일 시작하고 나서 비상근으로 모 출판사 외서기획을 돕던 때였으니 꽤 오래 전이었다. 영업을 맡고 계신 상무님과 이사님이 특히 과메기를 좋아하여, 겨울철에 포항 쪽으로 수금 출장을 가게 되면 반드시 과메기를 잔뜩 사갖고 돌아와선 대낮에도 소주와 함께 과메기 파티를 벌였다. 다들 맛있다고 먹는 터라 나도 눈을 질끈 감고 시도해보았지만, 그 놀라운 비린내와 느끼한 맛에 나는 눈물이 솟을 지경으로 비위가 상해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켜야 했다. 

첫 과메기 시식이 실패로 돌아간 후 식탐녀로서의 자존심이 상했던 나는 몇년 뒤 다시 과메기를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강원도 고향에 일부러 부탁해 올려온 싱싱한 과메기라 하나도 비리지 않다고 호언장담하는 어떤 분의 말을 믿고 다시 시도해본 터였다. 역시나 과메기 때문에 그 자리에 모여든 사람들은 너도나도 냠냠쩝쩝 맛있다고 먹어댔지만 나는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 김에 싼 과메기를 또 한 번 억지로 삼키며 눈물을 참아야 했고 그들의 입에서 풍기는 비린내조차 괴로울 지경이었다. 제 아무리 입맛이 상대적이라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비린 걸 <하나도 안 비리고 고소하다>며 먹어댈 수가 있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지인들 가운데도 과메기를 즐기는 이들이 있어 겨울만 되면 자기들끼리 일부러 과메기 술번개를 치기도 하지만 나는 워낙 그 맛에 데인 터라 같은 자리에 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삭힌 홍어도 먹는 인간이 왜 과메기를 못 먹느냐고 그들은 의아해하지만, 다들 고소하기만 하다는 소곱창, 돼지곱창도 나에겐 특유의 냄새가 나 역하다고 여겨지는 판국이니 나로선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다. 그냥 못먹겠다고 할 밖에. 순대는 다 맛있는데 곱창만은 아무리 손질을 잘한 집이라도 냄새 나는 걸 어쩌라고. 과메기도 내겐 마찬가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과메기라는 말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제 마트 생선 코너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걸 보니 과메기가 이젠 퍽이나 대중적인 먹거리가 된 듯하여 놀라웠다. 제 아무리 오메가3가 많이 들었대도 나로선 도저히 먹기 어려운 과메기, 이웃분들 가운데는 과연 즐기는 분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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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배신

투덜일기 2010. 2. 18. 02:01

어설픈 나의 기억력 탓도 있긴 하겠지만 어려서 읽었던 동화의 줄거리가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더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괜한 배신감에 젖는다. 최근의 창작동화는 정확하게 어린이 독자를 겨냥해 쓰인 문학이지만, 옛날이야기로 내려오는 전통설화나 구전문학은 딱히 아동용이 아니었으므로 아이들에게 들려줄 땐 일부 내용이 각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50권짜리 어린이 명작동화 전집 따위에 들어 있었으니 당연히 동화라고 내가 믿었던 작품들이 실제로는 상당히 진지한 문학작품이었음을 알게 되더라도 배신감은 여전하다.

하기야 내가 어렸을 때 출간된 번역문학은 죄다 일본 출판사들이 각색해서 낸 책의 중역본이었으므로 일차로 일본 아동 출판사에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각색 및 편집하고 또 이차로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다듬으며 내용이 원전과 꽤 많이 멀어진 게 당연할 것이다. 어쨌거나 신랄한 풍자문학이었던 <걸리버 여행기> 같은 작품을 어린시절 그냥 환상적이고 신나는 모험 동화로 읽었던 나는 나중에 한참 유행하던 완역판으로 다시 보며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종일관 인간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존재로 그려지고 있던지. 

소설이야 그렇다 쳐도, 안데르센 동화집, 그림 동화집에 들어있던 동화마저도 내가 읽은 내용이 원전과는 조금씩 달랐단 걸 비교적 최근에 알았을 땐 불쑥 이게 뭐야, 하는 억울함마저 들 정도였다. 가령, 인어공주의 결말은 사랑을 잃은 슬픔에 물거품으로 변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번역을 의뢰받고 새삼 작업을 하다가 인어공주의 끄트머리에서 낯선 결말을 만났을 때 나는 하도 의아해서 비교적 어린 친구들에게 설문을 해볼 정도였다. 나랑 띠동갑 이상 되는 사람들은 혹시 물거품 이후의 결말을 알고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헌데 너무 어린 친구들은 이미 명작동화 세대가 아니라 창작동화 세대였던지, 물거품 결말도 아니고 왕자의 무지를 일깨우고 악한 마녀를 무찔러 사랑을 이루는 디즈니 만화의 해피엔딩만 알고 있었으며, 그 외엔 하나같이 물거품이 되는 것으로 기억했다.

동화치고 슬픈 결말이라 어린시절 내 눈물을 쏙 뺐던 인어공주 이야기는 솔직히 물거품으로 스러지는 결말이 가장 극적이라고 느껴지기에, 과거 동화책을 만든 사람들이 거기까지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원래 그렇게 끝내질 않았다는데 어쩌겠나 말이다. 원래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된 뒤에 다시 공기의 정령이 되어 삼백 년이나 인간 세상을 떠돌 운명이다. 원래 불멸의 영혼이 없는 인어는 인간의 사랑을 얻어야 불멸의 영혼을 지닐 수가 있는데, 일단 사랑에 실패를 했으니 다른 방법으로 삼백년간 인간 세상을 떠돌면서 착한 일을 해야 천국에 갈 수가 있다나. -_-;


어려서 나는 안데르센 동화 가운데 <인어공주>를 제일 좋아했고, <빨간 구두>를 제일 싫어했는데 알고보니 결론은 다 똑같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너무도 당연했던 그 시대에 뭘 더 바라겠냐만 그래도 제 분수를 모르고 허황된 꿈을 꿨던 소녀들은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른 뒤 깊이 회개하고 나서야 천국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판국이니 우리 세대가 필독도서로 읽던 <고전 명작 동화>가 인종주의, 남성우월주의 같은 편견을 주입시킨다는 이유로 점점 퇴출되는 반면 요즘 아이들에겐 창작동화가 훨씬 더 많이 읽히는 게 당연하다. 부모가 자식을 갖다 버려 간접 살해를 시도하질 않나, 식인마녀가 등장하질 않나 결국엔 아이들이 마녀를 끓는 물에 빠뜨려 죽이는<헨젤과 그레텔>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잔혹한 이야기인가 말이다. 그림형제의 동화는 특히 민담을 수집해 엮은 게 많아서 은근히 잔혹동화가 많단다. 

내가 어린시절 동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어떤 역경에도 결국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결말 때문이었고, 그런 기대를 저버리는 <성냥팔이 소녀>나 <인어공주> <거인의 정원> 같은 비극은 어린 마음에도 배신감과 낯설음에 막막했지만 나름의 감동으로 소녀의 감수성을 키웠던 듯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결말도 아니더라는 상황은 더 큰 배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더는 몰랑몰랑해질 수 없는 메마른 어른의 심장에 그나마 간직된 아련한 추억을 새삼 빼앗기는 기분이랄까.

같은 작품도 나이에 따라 느낌과 감동이 달라지므로 중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들, 특히 고전작품은 다시 읽어보고 싶은 게 꽤 많지만 앞으로도 명작동화는 웬만하면 거들떠보지 않을 작정이다. 동화는 그 옛날 내 마음대로 재구성을 했든 말든 그냥 그 감동 그대로만 기억에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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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비스업계 종사자의 우리말 파괴 실력이야 익히 알고는 있어 이젠 그러려니 하지만, 막상 겪으면 매번 어처구니가 없다. 좀 전에 정수기 때문에 AS 기사가 다녀갔는데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실소가 나올 만큼 극강의 높임말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었다. 

"냉수 조절 센서가 고장나 것 같아요."
"이게 바로 센서이데요, 부품이 없으서 오전에 못왔습니다."
"지금은 얼음이 다 녹으네요."
"다 되습니다."
그러더니 다 고치고 나서 집을 나서며 우리 모녀에게 한 마디 했다. "수고 많이 하십시오." -_-;

백화점 점원의 "15만원이십니다",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정도는 한방에 날려버리듯, 정수기 부품과 센서와 얼음까지 한껏 높여주더니만 우리더러 수고를 많이 하라니 뭐냐. 우습게도 AS 평가서를 바로 자기 눈앞에서 작성해달라고 내미는데, 천편일률적인 항목만 체크하도록 주르륵 적혀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따로 쓰는 고객의 의견란이 있었더라면 우리말 존칭 교육부터 다시 시키라고 적고 싶었다. 멀끔히 생긴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아무데나 '시'자를 붙여대는지, 그게 친절이고 고객을 높이는 행동이라고 착각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궁금하고 짜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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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까지는 싸이질에 대단히 심취했지만 사람들이 죄다 그곳을 떠나고 블로그질을 더 많이 하면서 나 역시 싸이월드를 거의 떠나 살았다. 2002년부터니까 꽤 오랜 세월 거기 담겨 있는 삶의 흔적들이 아깝기도 하고 몇몇 친구와 가족은 아직 그곳에서 소통하고 있으니 누구처럼 확 폐쇄하거나 닫아둘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 그냥 막연한 방치상태랄까.
그러다 조카들 사진을 구경하러 간만에 로그인을 해보니 쪽지가 도착했다는 표시가 보였다. 그간 싸이 쪽지는 기분 나쁜 홍보글 아니면, 전화번호가 바뀌었다거나 결혼소식을 알리는 지인의 단체 쪽지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이번엔 또 뭘까 지레 이맛살을 찡그리며 쪽지를 열어보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 내가 번역한 문제의 시리즈물 소설을 <꼭> 읽고 싶은데 곧 유학을 가게 되었다면서 시리즈별로 다 책이 너무 두꺼워 가져갈 수가 없으니 나더러 번역원고를 보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pmp에 다운받아서라도 읽고 싶다나. 기가 막혀서... 책이 저가형 보급판으로는 출간되지 않아 사 보기 부담스럽다면서 간곡히 부탁을 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요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유학을 안 가봐서 모르지만 짐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겨우 책 몇권 넣을 공간이 없다는 것인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유학을 간다는 것부터가 핑계 같다. 책 사기는 아까운데 그렇게 읽고 싶으면 서점에 가서 서서라도 읽든지! 아무래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책 읽어보겠다는 꼼수일 것 같다. 순진하게 원고를 보내줬다간 온라인 공간에 원고 파일이 영원히 떠돌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오도독 소름이 끼쳤다. 내 이름이야 워낙 드물어서 동명이인을 찾기 힘들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일이지만, 사적인 사진들은 모두 일촌공개로 돌려놓은지 오래라고 해도 미디어 서평이나 책 사진 같은 건 그냥 공개해놓은 터라 그런 인간들의 검색에 속수무책으로 걸려들고 말았겠구나 싶었던 거다. 이런 공간에 조금씩 노출된 사생활만으로도 얼마든지 개인정보를 뽑아낼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섬뜩했었는데, 실명까지 드러나는 싸이월드 같은 데선 더더욱 발가벗겨진 채로 내던져지는 꼴이란 걸 생각하지 못했으니 내 불찰이다. 얼른 모든 메뉴를 일촌공개로 바꾸어 놓고도 영 기분이 찜찜하다.

물론 어처구니 없는 요구는 단칼에 거절했다. 버럭 화가 치밀어서 답장 쪽지를 보내긴 했는데, 그냥 무시할 걸 그랬나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번역 원고의 저작권은 이미 출판사에서 갖고 있으니 원고 파일을 유출하는 건 내가 민형사상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를 엄청난 일이란 걸 그 멍청한 인간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불법 다운로드가 판을 치는 나라와 국민이다 보니 별 일을 참 다 겪는다. 몇달동안 낑낑대며 골빠지게 작업한 번역원고를 거저 달라는 인간이 다 있다니 참 두고두고 기가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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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투덜일기 2010. 1. 15. 00:23
건강과 관련해서 특별히 신경쓰는 것도 없고 운동과는 담 쌓은 인간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랑으로 삼았던 것 하나는 고3 이후 체중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명절 연휴에 옴팡지게 많이 먹어 2킬로그램쯤 늘어났다가도 좀 지나면 원래 체중으로 되돌아왔고, 여름보다는 아무래도 겨울에 좀 더 토실토실 살집이 붙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봤자 그러려니 할 정도였다. 마찬가지로 살이 좀 내리는 일이 있어도 당연히 조금 지나면 어려움 없이 복구되었다. 10년, 15년이나 지나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옷을 아직도 안 버리고 갖고 있다가(헤져야 버리지!) 가끔 입을 수 있는 이유도 크게 몸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라 내심 뿌듯해 했었는데, 올 겨울은 좀 다르다.

딱 요가를 하면서부터 체중이 늘어나는 걸 느꼈는데, 그땐 당연히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 몸이 체지방을 축적중이겠거니 했었고 20년 넘게 초과해본 적 없는 몸무게의 마지노선을 넘어서 계속 숫자가 올라가는 걸 보고서도 요가 때문에 근육량이 늘어나나 보다 여겼다. 특별히 먹는 양이 늘어나거나 위가 늘어나도록 과식을 거듭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나도 안하고 만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그나마 일주일에 세번은 꼬박 외출도 하고 운동도 하니 살이 빠져야 하겠지만 오히려 계속 체중이 느는 건, 요가가 워낙 에너지 소모량이 적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만날 왕비마마 체중만 확인했지 정작 본인 체중은 한 열흘 무심히 살았는데, 오늘 마침 사우나에 간 김에 확인해 보니 불과 두어달 전보다 무려 4.5kg이 많아졌다. +_+ 20대 후반 직딩 시절,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사다리를 타서 간식을 사다 먹고, 그것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하고 회식하고 3차까지 술과 안주에 쩔어 살 때의 사진을 보면 정말 턱이 두개이고 뺨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 때 최고치를 기록했던 몸무게도 평균치에서 기껏해야 2.5kg정도 초과한 정도였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기야 지난 연말모임에서 본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외치긴 했다. "언니! 왜 이렇게 똥그래져서 나타났어?!" 나는 그게 내 머리모양과 얼굴살을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라고 내 맘대로 해석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평소에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하는 이들이야 4, 5kg쯤 에게게... 코웃음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성년 이후 20년 넘게 큰 변화가 없던 몸무게가 서서히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 이유가 뭘까 겁이 다 더럭 날 정도다.

이런 것도 유전인가? +_+ 울 왕비마마는 처녀시절 워낙 깡 말라서 별명이 <와리바시>였고 아이 셋을 다 낳고 난 뒤에도 원래 몸무게인 45kg으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그러다가 직장생활을 관두고 전업주부가 되자 조금씩 체중이 늘었고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팍팍 몸이 불어 금세 60kg을 넘어섰다. 내가 중학생 때였나, 동네 양장점에서 맞춘 실크원피스를 입어보며 몸이 불어 안 예쁘다고 속상해 하던 엄마의 몸무게가 57kg였던 걸 기억한다. 동네 목욕탕 저울에 올라간 엄마 몸무게가 어느새 나랑 무려 20kg이나 차이 난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57kg도 버거워했던 왕비마마는 노년에 접어들어 70kg도 우스운 정도다. 65kg까지만 빼면 당뇨약은 안 먹어도 될 거라며 아무리 쥐어짜도 살이 빠지기는커녕, 왕비마마는 내가 조금만 감시(?)를 게을리 하면 일주일 만에도 2, 3kg이 확 늘어난다. 그건 순전히 고열량 간식 때문이니 이유가 확실한데, 간식도 즐기지 않는 나는 대체 왜???

자꾸만 모든 화살은 중년이라는 나의 나이로 귀결되는 듯해 서글프다. 왕비마마는 그나마 옛날 분치고 키나 크시지, 난쟁이 똥자루만한 키로 마냥 옆으로 늘어나 데굴데굴 굴러다닐 듯한 노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숨이 탁 막힌다! 절대 그렇게 되진 않겠어, 라고 전의를 불태우며 왕비마마 전용으로 사다놓은 실내용 자전거에 올라 씨근덕거리고 있으려니 어찌나 한심스러운지 화가 치밀었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몸은 왜 변하고 지랄! 차라리 어디까지 가나 두고보자며 확 밤참을 두 배로 먹어버릴까 별별생각이 다 들더라. 가능하다면 최대한 건강하게 몸에도 큰 변화 없이, 지금 마음에 꼭 드는 옷 몇벌은 50대 60대가 되어서도 한번씩 입어주며 나는 몸도 마음도 젊게 사노라고 큰소리치는 것이 꿈이건만 내 머리와 몸은 아직 중년에도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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