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투덜일기 2010. 6. 19. 18:11

편견인지 취향인지 나는 목소리 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남들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목청으로 핏대 올리며 이야기하는 사람은 혐오대상이다. 목소리 좋은 사람 싫어할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목소리의 미추 여부를 떠나 그냥 조용조용 나직나직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좋다. 그렇다고 너무 저음이라 웅얼웅얼 못알아 들어먹게 생긴 목소리는 또 별로.

그런 잣대로 보자면 나는 내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도 가끔 전화 받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텔레마케터가 "어머니 안 계세요?"라고 물을 때가 있을 정도로 목소리가 유치하게 가늘고 높은 톤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고상함과 우아 떠는 연습을 좀 많이 한 덕분인지 그나마 예전보다는 톤이 좀 낮아진 것도 같지만,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무심결에 녹음된 진짜 목소리를 들으면 퍼뜩 놀랍고 민망하다.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앵앵거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유난스레 많이 떠들어대고 들어온 날 특히 공허하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건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싫어하는 내 목소리를 계속 견뎌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목소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품게 되지 않을까.

목소리도 타고난 신체의 일부인데 싫으니 좋으니 따지는 건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예쁘니 미우니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손가락질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임을 알고는 있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은 건 싫은 거니 어쩌랴. 남들에게 티는 안내면서 속으로만 삭이고 살며 쓸데없이 욕먹기만 피하는 수밖에.

헌데 귀가 잘 안들리는 왕비마마와 살려니 자꾸만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데 가뜩이나 본인 목소리 싫어하는 나로선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고, 나도 모르게 쉽사리 짜증이 묻어나와 남들이 들으면 만날 모녀가 싸우고 앉았다고 여길 것만 같다. 원래부터 나긋나긋 상냥하고 낮은 목소리를 지녔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좀 더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으려나. 근본적인 이유는 까칠한 성격 탓인데도 오늘은 애먼 목소리만 탓하고 앉았다. 묵언수행이라도 해야할 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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