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오른 낙서질

놀잇감 2008. 7. 13. 14:54
얼마전 습관처럼 구경다니던 문방구 사이트에서 자전거가 그려져 있는 예쁜 티셔츠를 발견했었다.
냉큼 사고 싶었지만, 요새 인터넷에서 파는 옷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옷 치수가 너무 작았다.
요즘 몸짱을 추구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몸에 딱 붙는 옷을 입는 걸 즐긴다지만, 어떻게 여름 티셔츠를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나 편하게 입을 만한 치수로 내놓고 <프리사이즈>라고 할 수 있는지 참 알 수가 없다.
더욱이 나는 자전거 티셔츠를 입고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인데, 헬멧 쓰고 쫄윗도리 쫄바지 차림에 자전거를 타는 이들과 달리 그저 편하고 넉넉한 티셔츠와 반바지가 더 좋은 걸 어쩌랴.

일단 자전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 치밀자 온갖 쇼핑몰을 다 뒤지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자전거 티셔츠를 찾기에 이르렀지만, 그리 쉽진 않았다. 자전거가 그려진 티셔츠가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면 티셔츠 모양이 너무 드레시하거나 엄청 파여 내가 바라는 기본 티셔츠가 아니었고, 어렵사리 하나 찾아서 기뻐하며 주문을 하려면 품절이었다. +_+

결국 나의 결론은?
반쯤 미친짓이라 여기면서 갖고 있는 티셔츠에 자전거를 그리기로 했다!
처음 반했던 자전거 티셔츠가 밤색이었기 때문에 일단 갖고 있는 밤색 티셔츠에 무작정 유성 네임펜과 매직으로 자전거를 그리기 시작했다. 모델은 물론 거실에 서 있던 나의 느루. ^^*
내 솜씨론 당연히 느루의 앙증맞은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힘들었고, 처음이라 그림을 앉힌 위치도 어설퍼서 좀 웃기기는 했지만, 일단 <자전거 티셔츠>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은 나머지 어설픔과 민망함을 한방에 날려주었다.
과연 네임펜이 세탁을 견딜 것인가 일단 입어보기도 전에 세탁기에 돌려 확인을 해보았더니 하하하...
얇게 그린 나무와 길바닥은 절반쯤 지워졌지만, 자전거 그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첫 자전거 티셔츠를 만든 것이 한 일주일 쯤 전.
원고 마무리 하느라고 눈이 빨개졌던 주제에 잠시 잠 쫓으려는 욕심으로 그렸던 자전거 티셔츠를 입어보니 더 욕심이 생겼다. 그러고 나서 어젯밤. 갖고 있는 네임펜 색깔도 그리 다양하지 않은데 다른 색 티셔츠에도 낙서질이 하고 싶어졌고, 이번엔 자전거 그림을 제대로 옷 중앙에 잘 앉혀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로 그린 자전거는 확실히 처음 그린 자전거보다 수평도 맞는 듯하여 뿌듯함이 밀려들었고
이왕 시작한 거 티셔츠 한 장 더 망치는 셈 치고 다른 그림도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싯적에 친구들한테 쪽지나 편지 보내면서 많이 그렸던 동그란 얼굴 그림이 떠올랐던 것.
그러나 자전거보다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얼굴 그림은 그려놓고 보니 더 어설프고 별로 안 예뻤고, 손모양도 엉뚱한 곳에 그리는 바람에 기형이 되고 말았지만 집에서 입으며 즐거워하기엔 손색이 없다고 믿기로 했다. ^^; 누가 뭐래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티셔츠의 주인이 되는 기분은 참 그럴듯하다.

어젯밤 이후 옷에 하는 낙서질에 한참 맛을 들인 터라 또 어떤 티셔츠를 망쳐볼까 자꾸 충동이 일고는 있지만,
이젠 그만해야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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