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키울까

투덜일기 2010. 6. 4. 14:54

제가 이웃들간 불화의 주인공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멍청한 놈이 모르고 있다는 데 7만원도 걸 수 있다!) 아래층 똥개(잡종견이라고 썼다가 어쩐지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은 어감이 들어 배알이 틀리는 바람에 바꿨다. 역시 한글이 좋은것이로다)의 목청은 요즘도 나날이 커져 밤중에 마음의 준비 없이 개짖는 소리와 맞닥뜨렸다가는 기절초풍할 수준에 도달했다.

<개가 짖으라고 있는 것이지 안 짖으면 그게 개냐>는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의 궤변은 그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들을 수가 있었기에 (물론 나한테 직접 한 얘기는 아니다.) 이웃간의 긴장감이 완전 살얼음판이라, 개주인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는 아예 개를 집안에 들여놓기도 한다. 어제도 종일 개짖는 소리가 없길래 집안에 들여놓는 날인 줄 알고 외출에서 돌아오다 커렁커렁 짖어대는 소리에 발목를 삐끗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와락 화가 치밀어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동시에 아래층 오른쪽 집과 옆집 2층에서 동시에 내가 하려던 개에 관한 욕설이 터져나왔고 나는 혹시나 쌈박질에 휘말릴까 두려워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라왔다. 다행히 내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몇 초 안에 개짖는 소리가 잦아들었으므로 또 한번의 동네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짖는 소리도 스트레스지만 이제는 그 소리로 인한 이웃간의 불화 또한 나에겐 스트레스다. 처음엔 내 대신 이웃에서 불만을 토로하면 금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를 집안에서 키우든지, 목청수술을 시키든지, 다른데서 키우라고 주어버리든지, 이 세 가지가 내가 생각한 가능성의 경우 수였고 이왕이면 맨 마지막 옵션이 선택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멍청한 똥개마저도 어여쁘다 여기고 있는 정민공주의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아래층 개주인들은 다른 방법을 대안으로 선택할 것이란다(아래층 아저씨는 자주 우리집에 들락거리는 공주가 여기 상주하는 줄 아는지, 심부름 가는 아이를 붙들고 사연을 전했단다). 이름하여 전기충격 목줄? 개가 짖으면 진동으로 목줄이 조여져 짖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라던데 정말로 그런 게 있나? +_+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또 한번 기가 막혔다. 그런 목줄의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층 개주인은 정말로 그 똥개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키우는 걸까? 물론 개의 성대를 잘라내 짖는 소리를 줄이는 것도 비인간(비동물?)적인 방법이겠지만, 짖을 때마다 전기고문을 받듯이 충격을 받아야 하는 개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주인이라면 개를 키울 자격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는 뜻이다. 그런 목줄이 상품으로 나와 있다는 건 그만큼 수요도 있다는 뜻이니, 개가 받는 충격의 정도가 겪을만한 수준이라 여길 순 있겠지만 애완동물을 싫어하는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정말로 크게 키워 잡아먹을 심산이 아니라면야, 아무리 훈련목적이라도 예뻐서 데리고 사는 개에게 어떻게 전기충격기를 목에 매달 생각을 하는지! 그렇게 해서라도 꼭 개를 키워야 하는 것인지!

내 주변의 개들이 죄다 수난기인지, 조카네서 키우는 파랑이도 퇴출위기에 놓여 있다. 그 녀석은 정말로 식구들의 애정을 꽤나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배변 교육이 제대로 안된 탓에 식구들 침대마다 죄다 돌아가며 한두번 이상 똥오줌을 싸놓았단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걔가 스트레스를 받나보다, 애정 결핍인가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법 똑똑해보이는 녀석의 교육을 제대로 시켜볼 것을 당부했었지만 조카네도 거의 포기단계다. 정말로 온종일 홀로 애정을 쏟으며 다시 배변훈련을 시켜줄 주인에게나 가면 모를까, 장난꾸러니 사내아이까지 있고 다들 바빠 집을 많이 비워야 하는 조카네선 역부족이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하기야 아무리 개가 예뻐도 며칠만에 한번씩 돌아가며 온 식구들의 침대 시트를 빨아대야 한다면 곤란하겠지.

사실 온전히 파랑이를 예뻐하는 사람은 올케와 정민이뿐이고(정민이도 최근엔 무관심하다고;;), 두 남자는 애완견을 장난감이나 스트레스 해소대상으로 여기는 징후가 포착돼 내가 잔소리를 한 적도 있다. 나야 애완동물을 영원히 키울 생각도 없고 죽을 때까지 동물 혐오증이 사라질 기미도 없지만, 최소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정성을 다해' 키워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생이나 지환이가 파랑이를 예뻐하는 방식은 파랑이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귀찮고 괴롭고 성가신 행동들로 보였고, 그런 부분들이 파랑이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해 배변문제를 일으켰을지 모른다는 게 나의 짐작이다. 애정결핍이나 귀찮음에 대한 일종의 복수로. ^^ (근데 그건 내 생각이고, 원래 주인한테서 떨려난 이유도 배변습관이 잘못됐기 때문일 거라고 동생네는 주장하고 있다. 처음 와서부터 사방에 실수를 해댔다니까 뭐;;;)

동생네의 경우 어린 지환이는 애완견을 장난감 수준으로 생각했던 약간의 오류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처음부터 네 식구가 온 마음으로 개를 키우고 싶어했고 그 열망을 현실로 이룬 집이었다. 정민이는 특히나 아기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했고, 미혼때 애완견을 키운 적이 있는 올케도 반려동물을 두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와 집안 분위기에 좋을 것이라고 못마땅해 하는 나를 설득하려 했으며, 내가 반대를 하든 말든 개를 들이는 일을 저질렀었다. 그런데도 일년도 안 돼 애완견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파랑이가 좀 더 똘똘해 배변에 아무 문제가 없는 개였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아이 둘 키우기도 벅찬 주부가 애완견까지 도맡아 키우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을 테고 결론적으로는 섣불리 애완견을 들인 동생네가 경솔했다는 의미다. 경솔한 인간의 결정으로 제일 불쌍해진 건 물론 또 새주인을 만나 다시 적응과정을 거쳐야하는 파랑이고!

사람 마음도 모르는데 내가 개의 마음까지 간파할 리는 없으니 억측은 이쯤에서 관두더라도, 암튼 내 주변의 개 두 마리는 현재의 주인을 떠나야 행복할 것 같다. 걸핏하면 짖어대는 아래층 똥개가 전기충격 목줄로 얼마나 효과를 볼지 그 결과와 상관없이, 공동주택에서 그것도 마당에 개를 키운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겐 짖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잘못도 다 인간에게 있는데 (똥개 머리가 너무 나쁜 이유도 있겠지만;;) 개를 괴롭히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선택된다는 건 잔혹해 보인다. 또한 파랑이도 좁은 베란다에 갇혀살지 않으려면 더 좋은 주인을 만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앞날이 편할 것이다. 말썽쟁이 개도 주인을 잘 만나면 개과천선한다니 파랑이도 미모를 무기로 어서 좋은 주인이 나타나기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손해보는 건 늘 죄없는 짐승들인 것 같아 괜히 내가 다 화난다. 이럴 걸 도대체 왜들 키우느냐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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