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또 낙서질을 했다. 당연히 낙서질 하면서는 기분이 좋았고 행복해져 자랑용 사진까지 찍었는데 지금은 벌써 그 효과가 확 떨어져 입이 댓발이나 나왔다. 종일 왕비마마와 냉전중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화가 나면 나는 아예 말을 하기가 싫고 누구와도 상종하기 싫어 혼자 있어야 침묵 속에 서서히 화가 풀린다. 화 났을 때 말을 하면 어떤 폭언을 하게 될지 나 자신도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자꾸만 말을 시키면 더욱 화가 치민다는 사실을 왕비마마는 도대체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집안에 겨우 둘 뿐인데 말 안하는 게 제일 싫으시다나. 그러면 나는 갑자기 좀머씨가 된 것 같다. "그냥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두란 말이야!!"
암튼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을 어떻게든 되살려볼 요량으로, 시방 낙서질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도 별로 기분이 나아진 것 같진 않다. 마지막 방편은 이렇게 속좁음을 여기에라도 고백하고 민망한 자랑질을 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작년에 한꺼번에 여러 장의 민무늬 티셔츠를 사놓는 바람에 아직 낙서질할 재료들이 많아, 처음엔 무슨 색 티셔츠에 그림을 그릴까 고민했다. 초록빛 녹음을 좋아하긴 하지만, 옷색깔로서의 초록색은 싫어하는 모양인지 지금껏 이렇게 초록색이 현란한 티셔츠는 입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샀느냐고? 내가 원했던 갈색과 검정색 회색 티셔츠 외에 지난번에 네임펜으로 자전거를 그린 충격적인 꽃분홍색 티셔츠와 샛노란 색(정민이가 낙서질해서 제 엄마한테 선물하는 바람에 해치웠다^^v) 등 좀체로 입기 어려운 색깔까지 강제로 포함되어 있었지만(총 6장이었을 걸 아마;;) 그냥 싼맛에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집에서 입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혹시 망칠 것을 대비하여 걸어다니는 시금치 같아보일 것 같은 난감한 초록색 티셔츠를 집어들었다. 초록색 옷을 좋아하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내 눈엔 딱 관광버스 대절해 단체로 봄꽃 구경 가는 아줌마들이나 사입을 것 같은 초록색의 느낌을 최대한 죽이기 위해선 전체적으로 자잘한 프린트 느낌을 살리는 낙서질을 하기로 결심하고는 제일 쉬운 꽃과 스마일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어서 손이 많이 가는 그림들은 시도할 엄두가 나질 않아 나중엔 구름, 하트, 스마일리를 더 많이 그려넣으며 킥킥거렸다. 원래는 등판까지 완벽하게 프린트 느낌을 살리려고 했는데 소매까지 그리고 나니 멀미가 나서 뒷면은 그냥 내버려 두려다가 간신히 한 줄만 그려넣은 거다.
하필 자잘한 그림을 그린 바람에 낙서질 멀미가 나서 앞으로 또 몇달은 이런 짓 할 생각 안들 것 같다. ㅋ
전체적으론 이런 모습
클로즈업
뒷모습과 소매
심이 두꺼운 쪽과 얇은 쪽 두가지 달려 있어서 굵은 선은 두꺼운 쪽으로, 얇은 선은 가는 쪽으로 그리면 되더군요. 이번에 그린 자잘한 것들은 다 아래쪽의 가는 펜으로 그렸지요.
문방구 사이트에서 fabric marker set라고 검색해보시면 나올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