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ng, Sorry & Thanks

놀잇감 2011. 1. 13. 06:49

2011년 1월 11일. 공교롭게도 1이 다섯개나 겹친 기념비적인 날이 스팅공연이었다. 열두시 반이나 돼서야 집에 돌아와 뜨끈한 감동이 식기 전에 적어두려고 공연 후기 끼적이다 양심상 찔려서 마무리를 못하고 이제야 끝낸다. 스팅공연을 예매한 순간은 작년이라 줄곧 5년만의 상봉이라 생각했었는데 6년만이란다. 맞다. 그때도 겨울이었고 몹시 추운 1월이었다. 그때 느꼈던 울컥한 감동을 그새 잊어버린 게 잘못이었다. 앨범투어에서 한국에도 빠지지 않고 들러준 고마움은 지난번과 똑같았으나, 요번 공연 때는 스팅에게 미안한 게  많았다.

5년전 스팅 내한공연 소식을 들었을 땐 티켓 오픈일을 달력에 크게 표시해놓고 그날 예매가능 시간이 되기 10분전부터 경건하게 컴퓨터앞을 지켰었다. 물론 꼬진 컴퓨터로 많은 이들과 경쟁하느라 결제단계에서 세 차례나 튕겨나가는 삽질을 해야했지만 결국 15분만에 중앙에서 왼쪽으로 좀 쏠리긴 했어도 앞에서 셋째줄 좌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을 거둔 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서 공연날 맨눈으로도 스팅과 도미닉 밀러의 표정과 몸짓을 눈여겨보며 황홀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적어둔 티켓 오픈일마저 까먹고 며칠 지나 허겁지겁 예매를 했다. 당연히 VIP석은 다 나가고, 플로어 R석도 맨 뒤나 가장자리만 남은 상태였다. ㅠ.ㅠ 하기야 플로어에 'R'석이 남아 있다는 게 그나마도 감지덕지였지만. 

결국엔 스팅 공연을 보러갈 것임을 알면서도 좀 뜨악한 태도를 보였던 건, 이번 Symphonicities 앨범에 크게 열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보기도 전에 신곡은 없고 전부 예전 곡들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편곡했다는 정보만으로도 좀 걱정스러웠다. 난 뭐든 '퓨전'은 싫던데, 라면서. 그런 편견에 힘입어 막상 들어보니, Roxanne을 비롯해 두어곡 빼놓고는 다들 옛날 편곡이 아무래도 더 좋은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실한 노트북으로 추출해 질 떨어지는 음원으로 주로 들어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스팅인데, 공연을 안 갈 순 없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누구랑 가느냐의 문제가 골치아파졌다. 어디까지 연락해서 의향을 물어야 하나, 아우... 그렇게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에 발목이 잡혀 다 귀찮아, 라고 잠깐 딴청을 부린 사이 티켓 오픈일이 지나버린 거다. 허걱. 게다가 현대캐피탈에서 공연을 주최하며 현대카드 20% 할인을 빌미로 티켓값을 왕창 올린 것도 못마땅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6년간 이 나라의 치명적인 물가 상승률도 감안해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

어쨌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나름 예습을 거쳐 드디어 공연날, 넉넉하게 잡는다고 공연 3시간 전인 5시부터 일행을 만나 이른 저녁을 먹을 때만해도 설마 코앞에서 길이 그렇게 막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무리 눈이 펑펑 내린다지만 올림픽 공원앞 네거리에서 주차장까지 1km도 안되는 거리를 통과하는데 1시간도 넘게 걸릴줄이야. ㅠ.ㅠ 그나마도 공연을 놓칠까봐 유턴차선과 중앙분리선을 마구 넘어가 횡단보도에서 공원 입구로 끼어드는 만행을 저지른 끝에 가능했던 시간이었다. 주최사에 전화를 걸어 주차관리를 이따위로 하면 어떡하냐고 항의도 하고 공연이 지연될 거라는 귀띔을 받아 좀 안심을 했지만, 결국... 우린 공연이 시작된 후에야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ㅠ.ㅠ 8시 30분쯤 공연을 시작한 모양이던데, 우리가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체조경기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7분, 눈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공연장을 향하는 수많은 무리 속에서 우리만 늦은 건 아니라는 위안도 잠시, 그나마도 늦은 사람들을 모두 문밖에서 한참 대기시키다 짬을 봐서 들여보냈으므로 무려 앞의 네 곡이나 놓친 거다. 흑흑흑. Englishman in New York의 쿵짝쿵짝 하는 리듬이 새어나오는 소리를 문밖에서 들으며 우린 아쉬움의 한숨을 쉬어대야 했다. (아예 못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야 낫지! 라고 금세 마음을 고쳐 먹긴 했다. 무려 9시 넘어서도 계속 지각 관객들이 스물스물 들어왔으므로,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고 위로도 하고;;) 암튼 내가 요번 공연에서 제일 고대했던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이랑 Roxanne도 세트 리스트에서 두번째, 세번째라 다 놓쳤다. 어흑. 스팅 공연에 내가 늦다니! 스팅이 노래와 연주를 하는데 짜증스럽게 중간에 슬금슬금 좌석으로 기어들어가다니! 아무리 눈이 펑펑 내리고 거리가 멀어도, 지하철 공사로 주변 교통사정이 쥐약이었대도 팬이라면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짓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스팅. 우리 같은 지각생들 때문에 감상을 방해받았을 다른 관객들에게도 미안하고...

정신없이 좌석에 앉아 감상을 시작하고 나서도, 오케스트라를 몽땅 외국에서 데려오는 줄 알았다가 대형화면에 비친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와 협연이라는 걸 안 순간에도 미리 실망을 했었다. 스팅 일행이 공연 전날 한국에 도착했으니 리허설을 해봤자 얼마나 했겠어, 싶었던 거다. 근데 또 미안하게도 그건 순전히 내 편견이었다. 별도의 무용에 가까운 역동적인 지휘자의 역량 덕분인지, 서울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엄청난 사전 연습 덕분인지 협연은 훌륭했다. 물론 체조경기장의 그 알량한 구조로는 섬세한 클래식 악기 소리를 일일이 전달하기 역부족이었다. 막귀로 듣기에도 일부 악기 소리는 완전히 묻히고 클라리넷 독주 소리는 막 찢어지고. +_+ 하기야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려면 예술의 전당 같은 델 가야지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뭘 더 바란단 말이냐. 하지만 스팅이 앙증맞은 클래식 기타를 들고 간간이 직접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가운데 장엄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공연장을 채우니, CD로 들을 때와는 확실히 깊이와 느낌이 달랐다. 팝과 클래식의 '퓨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마뜩찮게 여겼던 나를 비웃듯 라이브로 들으니 한곡 한곡 새로우면서도 정겨운 편곡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CD엔 없었던 Russians 같은 곡은 얼마나 웅장하고 감동적이던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툴툴거렸던 거 미안해요, 스팅.

사진출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더 멋진 사진을 못찾겠다 +_+

게다가 역시 스팅은 스팅이었다. 52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예순인 아저씨가 어쩜 그리도 관리를 잘했는지 주름살은 확실히 많이 늘었어도 딱 좋을 만큼만 비음이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는 여전했고, 온화한 표정이며 간혹 드러나는 귀여운 섹시함도 그대로였다. '거장'이란 이정도는 돼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랄까. 무슨 곡이었더라, 그의 하모니카 연주가 처음 흘러나오는데 울컥 눈물이 날뻔했다. 재작년에 나온 겨울 앨범 사진이랑 동영상에서 꽤 많이 불어난 몸집과 시커멓게 산적처럼 염색한 머리와 수염 때문에 좀 실망했었는데, 그새 다시 몸매도 날렵해져 빨간색 실크블라우스가 여전히 어울렸고 머리칼도 희끗한 연갈색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오히려 더 젊은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가 6년새 확 늙어버린 듯해 안타까웠다. 기타 연주 솜씨와 어벙한 표정은 그도 여전했지만서도. 주름살과 힘줄이 빽빽하게 드러난 손으로 섬세하게 기타줄을 튕기는 스팅과 도미닉 밀러의 연주 장면이 대형 화면으로 클로즈업 될 때마다 나도 기타를 치고 싶다는 열망에 떨었다. 죽기 전에 Shape of My Heart 도입부의 그 감미로운 기타연주를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_+

지난번 공연때는 중간에 휴식시간 없이 두시간 쯤 그냥 내달리는 바람에 앵콜곡을 듣고도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엔 중간에 15분 휴식시간을 두었다가 1, 2부로 진행해 공연이 더 풍성하고 긴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점잖기만 했던 스팅이 중간중간 살랑살랑 팔과 몸을 흔들어 춤을 선보이는 여유까지 부리질 않나, Moon Over Burbon Street을 부를 때는 한국에도 뱀파이어가 있느냐며 소매 안감이 빨갛게 드러나는 드라큘라 코트 같은 긴 재킷을 갈아입는 정성을 보여주질 않나, 예전 공연보다 조금이라도 더 보여줄 거리를 고민한 듯한 흔적이 엿보였다. 세트 리스트를 보면 다 계획된 거라 할 수 있겠지만 암튼 인사하고 들어갔다가 계속 다시 나오며 앵콜곡을 무려 '네 곡'이나 불러준 것도 황홀했다. 이미 2부 끝날 때부터 모두들 기립한 상태에서 다 같이 춤을 추며 감상했던 Desert Rose에 이어 세곡째인 Fragile이 흘러나올 때도 탄식하듯 기뻐했지만, 악착같이 계속 박수를 치며 기다린 끝에 정말 가려고 했었던 듯 중세 수도사의 망토 같은 기다란 진회색 외투를 걸치고 나온 스팅이 무반주로 마지막 곡(뭔지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I Was Brought to My Senses였단다)을 불러줄 땐 정말 깊은 고마움과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앞으로 또 스팅을 보려면 또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더 컸던 것 같다. 1998년, 2005년, 2011년, 그나마 1년씩 줄어들고 있는 내한공연 주기를 감안한 예상 기다림이 5년이다. 그럼 그때 스팅은 몇살이고 또 우리는 몇살이냐며, 한껏 들뜬 기분으로 눈밭을 걸어 나오던 평균나이 47세인 우리 일행은 마냥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스팅은 100살까지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결론이었지만.

미안함과 고마움에 부르르 떨었던 감동의 세시간이 지나고 눈덮인 올림픽 공원을 빠져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만큼이나 어려워 지하 주차장에 또 삼십분이나 갇혀있었어도, 스팅을 만나러 가느라 할애한 총 7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 다음 공연 때는 기필코 망설임 없이 제일 좋은 좌석을 확보하고 대낮부터 올림픽공원에서 놀다가 절대로 지각하지 않을 테다!  

놓친 게 못내 아쉬워서... 유튜브를 뒤졌다. 음향 좋은 동영상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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