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 그후

투덜일기 2011. 12. 14. 23:54

엄마의 합창발표회가 무사히 끝났다. 연분홍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로 단복까지 맞춰입은 실버합창단 공연을 보는데, 첫 노래를 들으며 사진을 막 찍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열혈 선생님이 손수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구워준 CD를 들으며 집에서 개별연습까지 열심히 했던 엄마는(역시나 <그대 있는 곳까지>가 너무 어려워 제일 끝까지 속을 썩였다;;) 공연 내내 표정도 좋고 방긋방긋 입도 크게 벌리시고, 나중에 <닐리리 맘보>를 부를 땐 살짝 보일듯 말듯 리듬도 타며 훌륭히 맡은 바 역할을 해내신 듯 했다. 청일점 할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가운데선 울엄마가 유일한 은발이고 은발 두분만 70대라고 들었다. 청일점 할아버지 노래 잘하고 목소리 좋으시다고 엄마가 칭찬하는 말 여러번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눈> 부를 때 솔로도 하시고 나중에 노래자랑 땐 가곡을 불러 상도 타셨다. 두시간 전부터 가서 최종 리허설하랴, 공연하랴, 노래자랑 구경하랴, 몹시 고단한 하루를 보낸 엄마는 간신히 미니시리즈를 마저 보고서 조금 전 얼른 자겠다며 방으로 퇴청하셨다. 



조카들 재롱잔치 때마다 꽃다발이든 캔디다발이든 들고 가서 축하해주었는데 이젠 할머니 되신 울 엄마 발표회를 다 구경하는구나 싶은 것이 마음이 좀 복잡했다. 하필 공연이 평일 오후라,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좋은 구경(?)을 할 이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었는데, 큰올케가 시간을 내 꽃다발 사들고 와주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창피하니깐 절대로 꽃다발은 사오지 말라고 내게도 신신당부를 했지만 우리 말고도 꽃다발을 사온 가족들이 더러 있었다. 물론 울 엄마가 받으신 꽃다발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찬조출연을 해 <닐리리 맘보>를 같이 부른 유치원 어린이들이 나중에 포토타임 때 무슨 영문인지 엄마를 둘러싸고 모여 조잘조잘 말을 걸었다. 나중에 들으니 장미꽃이 진짜냐고 물으며 꽃을 만져보고 향기를 맡아보고 가시도 있느냐고 물었단다. 가끔 느끼지만 아이들과 노인들은 좀 더 잘 통하는 구석이 있다.
 
어르신께 드릴 꽃이니 화사한 걸로 만들어달랬다는 꽃다발을 안겨드리며, 엄마가 제일 예쁘고 제일 잘하더라고 칭찬해드렸다. 빈말이 아니고 정말 그렇게 느꼈다. 영자씨 최고! d^^b 

맨 앞자리는 귀빈석이라 다들 엉거주춤 뒷줄에서 찍고 있으려니, 발표회 전에도 온 좌석을 돌며 인사를 청했던 구청장이 선뜻 우리를 앞으로 내몰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걱정말고 다들 앞에 나와 마음놓고 찍으라며 자기는 일어나 뒤로 갔다. 선거 직전 후보 때도 엄마랑 구청에 갔다가 맞닥뜨리는 바람에 얼결 악수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역사상 얼굴 알고 찍은 유일한 구청장이 아닐는지. ㅋ 암튼 덕분에 간만에 배터리 충전한 디카로 사진은 실컷 찍어왔다. 이번엔 밍기적거리지 말고 1년전 사진까지 죄다 인화해 앨범에 꽂아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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