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콘서트

놀잇감 2011. 12. 17. 02:27

그제 오후에 사촌동생이 난데없이 전화해서 물었다. 누나, 이따 저녁때 시간 되면 공연보러 갈래요? 제 아내와 가려고 몇달 전에 예매해 놓은 공연인데, 홀로 천방지축 아들 보기에 지쳐 친정에 내려간 터라 같이 갈 수 없게 됐단다. 이게 웬떡이냐 얼른 쫓아간 게 이문세 콘서트였다. 이문세 콘서트는 6-7년 전엔가 친구가 가자고 해서 한 번 봤을 때 꽤나 즐거웠지만, 열혈 팬은 아닌지라 이후에도 꼭 가고싶어 일부러 챙기는 공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내눈엔 너무 '오버'하는 듯한 춤사위 같은 것이 좀 오글거렸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입담이야 워낙 검증된 사람이니 말 많이 하는 콘서트를 내가 싫어하는 편이어도, 노래로 얻은 점수 괜한 말로 깎아먹는 사태 같은 건 그때도 없었다. 아무튼 연말에 예고없이 이문세 콘서트라니, 선물처럼 여겨져 올림픽공원까지 달려가며 슬며시 설렜다. 

올림픽홀 공연을 보는 건 처음인데 음향완전꽝인데다 관객을 만오천명씩 수용하는 체조 경기장보다는 규모도 훨씬 작고 (3천 몇석이라는 것 같다) 새로 배치한 듯한 좌석이며 구조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대형스크린이 아주 애매한 위치라 플로어와 별 차이없는 왼쪽편 B1 구역에선 그저 무대만 쳐다보는 게 가장 편했으나, 기타 반주 하나로 첫곡인

파란 조명과 트리, 아이들이 예뻐서 찍어왔다

<옛사랑>을 부를 때부터 목소리도 반주도 서로 묻히거나 심히 울리지 않고 들려 안심이 됐다. 이문세/이영훈표 발라드가 가요계를 풍미할 때 다들 어디서 뭘 했느냐고 묻는데, 내 나이가 실감됐다. 대학시절, 명반이라며 그때 그 앨범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참 많이도 들었다. 같이 간 사촌동생은 겨우 열살 때라는데...

나흘간의 공연일정 가운데 첫날이라 혹시 뭔가 실수 같은 것이 있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올해 계속 <붉은노을>을 주제로 공연을 해온 덕분인지 진행의 노련함 같은 게 느껴졌고, 이문세의 목소리도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이 좋았다. 역시... 가수는 악기인 자기 몸을 저렇게 잘 간수하고 가꿔야 하는 거다 싶었다(스팅 공연 볼 때 자기관리에 존경스러웠던 것처럼, 이문세 역시 예순살 넘어서까지 낭랑하고 힘찬 음색을 계속 유지하지 않을까나). 중간중간의 CG며 마술기법을 동원한 공연 구성이며, 관객과의 일체감까지, <나는 가수다> 열풍에 급조한 티가 역력했던, 여름에 본 임재범 콘서트와는 얼마나 비교가 되던지! 이문세가 중간에 2층 관객석에서 등장해 노래하며 한바퀴 돌다 무대로 내려오는데 정말 깜짝 놀랐고, 이런저런 관객 골라서 선물 안겨주더니 막판엔 전원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주어 더욱 감탄했다. 매년 이문세 콘서트를 다니는 사촌동생 말로는 작년 크리스마스 공연때도 선물 같은 건 없었대고, 나 역시 관객 전원에게 선물 나눠주는 공연은 난생 처음 본 것 같다. 티켓 추첨으로 행운상을 받은 관객 한 사람은 갤럭시탭에다 꼬꼬면 한 박스(꼬꼬면은 같은 줄 관객이 다 받았다)까지 받았을 뿐만 아니라, 들고 가기 힘들 테니 집에 갈 때 하얀 밴으로 모셔가는 서비스까지! 나중에 공연장에서 나와보니 밖에 밴 앞에 레드카펫까지 깔려 그 행운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 

센스있는 선물자루 안엔 잡곡(일명 '문세쌀')이 들었다

공연 외적인 마음씀씀이에 감동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공연 자체도 흡족했다. 계속 낄낄대며 노래에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건 예전과 똑같았는데, 확실히 내가 늙은(?) 건지 과거 공연 볼 때 '오버'라고 느꼈던 부분들도 이젠 그저 유쾌한 에너지 발산이라는 생각이 들고 귀엽기까지했다. 중간중간의 입담도 딱 적당한 수준으로 느껴졌고, 지금도 명곡인 그의 노래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게스트는 아예 한명도 없는 건가, 포기할 무렵 마술처럼 몸을 바꿔 나타난 윤도현의 짦고 강렬한 출연도 좋았다. 2시간 예정이지만 공연시간은 관객 하기 나름이라더니 8시5분에 시작해 11시가 다 돼 끝날 때까지, 나 역시 지치도록 행복하게 즐기고 놀았던 것 같다. 올해의 베스트 공연 3 선정할 때 마땅히 꼽을 게 없어서 어쩌나 고민했더니만 티켓오픈일에 광클의 노력도 없이 뜻밖에 횡재한 느낌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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