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08.07.23 어렵다 19
  2. 2008.06.24 아파트 18
  3. 2008.06.20 더부살이 8
  4. 2008.06.13 긴 하루 14
  5. 2008.05.30 손님 9
  6. 2008.05.23 월말 19
  7. 2008.05.20 고뿔 17
  8. 2008.05.07 5월 6일 14
  9. 2008.04.28 자기만의 방과 역마살 17
  10. 2008.04.24 제주도 14

어렵다

투덜일기 2008. 7. 23. 23:51

또 시작됐다.
나의 옮긴이의 말 울렁증.
일주일 내내 고민해도 가닥이 잡히질 않아 며칠째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옛날에 읽으며 주옥같은 문장에 반해 따로 챙겨두었던 책도 읽고 최근에 사들여 쌓아두고만 있던 책들도 읽으며, 뭔가 그럴듯한 화두가 떠오르길 빈다기보다는 글솜씨 뛰어난 작가들의 <글발>이 어떻게든 전염병처럼 내게 옮겨오길 빌었다.
그런데 별 소용이 없다.
그나마 밤이 내리면 감상의 과잉에 허덕이게 될까 싶어 일부러 연일 진한 커피를 들이키며 밤의 마법을 기대했건만 눈주변만 시커매질 뿐 그마저 효험이 없다.
오늘은 급기야 술의 힘을 빌어볼까 캔 맥주를 땄다.

번역가도 작가랍시고 꼬박꼬박 나를 선생님이라 추어올리는 이들은 내 이런 부끄러운 고통을 알까.
당연하겠지만 우리말로 옮기면서 애정이 많이 생긴 책일수록 역자후기 쓰는 게 어렵다.
번역하며 내가 즐긴 만큼 그 매력과 묘미를 독자들도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몇 문단의 진솔한 글로 전할 재주가 내게는 참 멀기만 하다.

종일 마셔댄 카페인에 맥주의 알코올 기운이 더해져 알딸딸 뇌가 뜨거워지니 기분은 아삼삼 좋기만 한데,
종일 열어둔 한글 문서엔 좀처럼 글자수가 늘어나질 않고
애꿎은 블로그만 들락거리고 있다.

전에도 술기운에 옮긴이의 말을 쓴 적이 있던가 없던가.
오늘은 다행히도 밤의 마법에 촉촉한 비의 효과까지 겹쳐지니 뭔가 결실이 있으려나 어쩌려나.
으휴.
새삼 느끼는 글쓰기의 어려움.
정말이지 난 아직 멀었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 재주에 불타는 질투심을 느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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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투덜일기 2008. 6. 24. 12:29


대체 어쩌다가 아파트가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주거공간이 되어버린 것일까?
거동 불편한 엄마 때문에 동생네 아파트에서 일주일째 얹혀 살면서 앞으론 나도 이런 공간에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새삼 마음을 열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도무지 애정이 생기질 않는다.
집값과는 전혀 상관없다지만 북한산을 끼고 있는 위치 때문에 동생네 아파트는 공기도 청량하고 몇 걸음만 옮기면 경치 좋은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수도 있으며, 조경 잘 된 아파트 단지가 으레 그러하듯 솔직히 우리집보다 주변에 나무도 많다. 그뿐인가, 넓은 주차공간은 명절때마다 친척분들이 골목골목에 차 세우느라 골치거리인 우리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쓰레기 배출 요일과 상관없이 지저분한 쓰레기를 내놓는 얌체들 때문에 골목 어귀가 지저분할 때가 많은 우리 동네와 달리 당연히 주변도 깨끗하다. 14층이나 되는 높은 곳임에도 무시무시한 계단 대신 경쾌한 안내 멘트가 나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면 그만이니 아직까지 걸음 부실한 엄마에게도, 계단 공포증 환자인 나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다. (일단 정전이나 엘리베이터 고장의 경우는 염두에서 제외하자)
그러나 이렇게 아파트의 장점을 모두 주워섬겨보아도 나의 문제는 콘크리트 괴물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듯한 아파트 단지가 나를 옥죄는 것 같다는 폐쇄공포증을 느낌과 동시에 발가벗겨져 거리에 내던져진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눈이 나쁜 편인데도 주방에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려면 건너편 아파트 거실에서 빨래를 너는 아줌마나 장난감 말을 타고 노는 아이가 보인다. 그렇게 얼핏 들여다보이는 건너편 아파트의 살림살이는 놀랍도록 똑같다. 왼쪽 벽엔 소파가 있고, 오른쪽 벽엔 TV가 놓여 있고 그 가운데쯤엔 식탁 한 귀퉁이가 멀찍이 보인다.
수십층 빌딩에서 층층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책상에 앉아 있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회의를 하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가 않다. 절반 이상 유리로 된 건물의 건너편에서 재미있다 여기며 한참을 구경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 편히 쉬는 공간에서도 층층이 내 위와 아래에 사람들을 이고 깔고 지내야한다는 것이 왜 이리 불편할까. 물론 여행지에서 콘도나 호텔에서라면 수십층 겹겹이 쌓인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편안하게 잠들고 깨어날 수 있었다. 왜냐고? 그곳은 <여행지>였으니까. 얼마쯤 지나면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밑자락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간혹 잠자리가 설어 선잠을 자는 며칠이 이어진다 해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동생네서 지내는 기분도 딱 여행온 느낌이다. 병원짐을 담았던 여행용 트렁크가 방 한구석에 놓여 있기 때문만은 절대로 아니다. 처음엔 여기서 지내는 불편함이 낯선 잠자리와 더부살이의 부담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올케가 아무리 잘해주고 편히 대한다 해도, 익숙한 내 물건들이 거의 없는 공간에서 내집처럼 편할 수야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기묘한 불편함은 잠잘 때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고, 조카들이 모두 학교와 유치원에 가고 올케는 볼일을 보러 나가, 낙상 사고가 나기 전의 모녀가 살던 우리 집에서처럼 온종일 쿨쿨 잠만 자는 엄마와 나뿐인 상황에도 막연한 답답함과 불안감은 가시질 않았다. 물론 여행이 아니므로 여행이 주는 즐거운 설렘과 흥분 따위는 전혀 없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을 견디기가 더욱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드디어 이따가 집으로 돌아간다.
계단이 소름끼치더라도 일단은 집에 가면 반갑고 편하고 숨이 잘 쉬어질 것 같다. -_-;;
어쩜 이렇게 촌스러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이지 아파트란 공간은 내 마음에 차질 않는다. 계단 많은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긴 해야할 터인데, 아... 어떡하지.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계단은 무섭고, 아파트는 싫고, 한옥을 장만하기엔 돈이 턱없이 모자랄 테고...
아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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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부살이

투덜일기 2008. 6. 20. 20:16
더부살이 사흘째.
왕비마마의 척추 골시멘트 시술도 성공적으로 끝나고, 발목 깁스도 풀렀지만 아직 계단을 오르기는커녕
홀로 화장실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수요일에 퇴원을 하고도 계단투성이 집으로 가지 못하고 동생네서 며칠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조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고모의 더부살이는 예상했던 대로 고되지만, 그래도 그 고됨은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거나 집과 병원을 오가느라 느꼈던 피로와는 또 다른 행복이 깃들어 있다.
일주일 계획으로 시작한 더부살이가 과연 며칠이나 이어질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엄마가 안정적으로 하루하루 거동이 좋아지고 있으니 다행이고, 생각만큼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할 짬을 내기가 어려워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아직은 길게만 느껴지는 하루가 모여, 일주일 또한 길기만 하다.

그래도 이렇게 지내다보면 곧 또 오후만 있어 짧게 느껴지는 올빼미의 하루를 되찾을 날도 오겠지.
이래저래 마의 6월이 후딱 가버리길 소망하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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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

투덜일기 2008. 6. 13. 11:43
병원과 관계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무료하게 병실을 지켜야 하는 지루함 때문이 아니더라도 하루가 마냥 길어짐을 느낀다.
새벽 5시, 혈압측정과 혈액채취로 어김없이 시작되는 하루는 매시간마다 좀처럼 조용히 지나가는 법이 없다.
물론 왕비마마의 용태가 수시로 변하여 의사와 간호사들을 긴장시켰던 나날도 있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안정이 된 뒤에도 최소한 1시간에 한번은 혈압을 재든, 회진을 돌든, 혈당을 재든, 청소를 하든, 식사를 가져오든, 링거액을 교환하든지 해서 정신을 쏙 뺀다. 그뿐인가. 오후마다 밀려드는 면회객들.. -_-;;

일찍 찾아오는 병원의 밤시간을 감안해도, 요즘같아선 하루하루 36시간씩 살아내고 있는 기분이고 그만큼 피곤하다. 잠깐 입원했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보아도 병원에선 좀처럼 휴식을 취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밤잠을 자는 사이에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간호사들의 야간 방문 때문에 문만 벌컥 열려도 잠이 깨었고, 온갖 병균으로 가득한 탁한 병원 공기 때문인지 감기는 필수였다. 젊은 나도 그러했으니, 왕비마마는 당연히 감기가 심해져 후두염과 기관지염으로 번졌고, 온몸이 종합병원이신 엄마는 이번에도 척추외과, 내과, 정형외과 세 군데의 협진을 받으며 정신을 쏙 빼고 있다.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다가 드디어 어제는 주저앉은 척추에 뼈시멘트를 주입하고 이젠 멀쩡히 앉아 있을 수도 있게 되었으니 퇴원이야기도 슬슬 나오고 있는데, 병원과 의사가 주는 안도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노친네들이 흔히 그러하듯 울 엄마는 일단 병원에 들어가면 나오기를 싫어한다. ^^;

간병인 아줌마를 두고도 처음엔 엄마 적응시키느라, 회진 시간에 맞춰 상담하려고, 또 면회오는 손님들을 맞으러 수시로 병원을 오가다보니, 긴 하루는 여전히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며칠은 집에서 허리 펴고 잘 수 있어서 피로가 좀 풀리긴 했지만, 열흘 넘게 부족했던 잠은 계속해서 빚독촉을 하듯 뒷머리를 잡아당기고 있다. 오늘은 독하게 마음 먹고 저녁 회진 시간까지 일을 하다 갈 작정인데 과연 중간에 불러대는 사람은 없으려나...

정말이지 병원생활은 아무리 자주 해도 적응이 안된다.
몇년씩 병원에서 살다시피해야 하는 환자들과 보호자는 어떻게 견디는지 원.
얼른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와 엄마 걱정도, 원고마감 걱정도 떨쳐버리고 원없이 실컷 잠이나 잘 수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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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투덜일기 2008. 5. 30. 14:38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집에 손님이 오는 게 싫었다. 숫기 없는 아이들은 원래 그렇지 않은가. 낯선 사람 앞에 불려 나가 꾸벅 인사를 하고, 의무적으로 몇 마디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면 무슨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용돈을 손에 쥐기도 했지만, 나는 용돈 따위 필요 없으니 제발이지 집에 손님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심지어 동네 친구들이 많았던 중학생 때를 제외하면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노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지금 사는 이 집에 다녀간 친구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다들 한두번에 그쳤을 뿐 "우리 집으로 놀러와"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웬만해선 내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부모님도 그리 숫기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가난한 살림살이를 드러내는 걸 꺼려하셨던 지라 집에 손님이 자주 들이닥치진 않았다. 친척들이야 워낙 많으니 무슨 날 때마다 오가는 일이 잦았지만, 우리 집에서 친척들은 손님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냥 가족일 뿐.
하지만 아주 가끔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친구들을 몰고 오시거나, 학교에 다니실 때 학생들을 몰고 들이닥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막 화가 났다. 낯선 사람들에게 내 영역을 침범당하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온 식구들이 청소엔 젬병이라 늘 너저분하게 늘어놓고 사는데, 우리끼리야 편하고 좋지만 남들이 보고 게으르다거나 지저분하다고 욕할 게 뻔하니 창피했던 거다.

그나마 손님이 미리 온다는 걸 알면 눈가리고 아웅하듯 보이는 데만 대강 청소라도 해두지만, 그런다해도 낯선 이들과의 어색한 대면이라든지 손님접대 과정은 참 싫고 민망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손님을 싫어하는 마음은 여전한데, 특히 회사를 관두고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중년 및 노년에 접어든 아줌마들의 취미가 몰려다니며 수다떨기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수시로 이집저집 몰려가 끼니를 해먹고 와글와글 수다를 떠는 아줌마들의 취미가 가끔 우리 집에서 발현되는 경우, 내 입장이 몹시 난감해진 것이다. 특히 올빼미 생활에 빠져든 프리랜서 번역가가 집구석에서 낮동안 대체로 어떤 모습일지를 감안할 때, 상황은 더욱 괴로워진다. 쑥대머리 산발을 하고 나가서 엄마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자니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고, 인사를 안하자니 그 집 딸 예의없다는 소리를 들을 테고. -_-;
내가 오밤중에 일하고 대낮까지 잠을 자야하는 오묘한 직업을 가졌음을 나중엔 동네 아줌마들도 이해해 주셨기 때문에, 요즘엔 감지 않은 머리를 질끈 올려 묶고 눈꼽도 떼지 않은 얼굴로도 꾸벅 인사를 하거나 아예 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을 정도로 편해지긴 했지만, 우리 집으로 마실 오시는 엄마의 최측근 동네 친구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집에 누가 오는 게 싫다.

아 그런데, 요샌 신경질나게도 손님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엄마가 깁스를 해 꼼짝 못하게 되었다는 소문을 만방에 자랑하듯 알렸기 때문에 문병객이 늘어난 것이다. ㅠ.ㅠ 물론 다리를 다친 걸 빼면, 엄마는 그 어느때보다도 컨디션이 좋으시다. 뭔가 당신 몸에 더 큰 위기가 닥치면 울 엄마의 우울증은 언제 그랬냐 싶게 꼬리를 내리는 오묘한 성격을 갖고 있는데, 한동안 심해지는 듯하여 나의 제주도 여행까지 무산시켰던 왕비마마의 우울증은 이번에도 발목 뼈에 금이 간 것과 동시에 급호전되었다. ^^ 온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 친척들의 관심이 집중될 뿐만 아니라, 툴툴거리며 성깔 부리던 늙은 딸도 순한 양처럼 왕비마마를 보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무래도 몹시 뿌듯하신 모양이다.

어쨌거나 여전히 올빼미로 살아야 하는 나로선 갑자기 늘어난 손님접대가 짜증스러울 만큼 짐스럽다. 바쁠 땐 집안 청소에 신경쓰기는커녕 사흘씩 머리도 안감고 질끈 묶고 있는 데다가 무릎 나온 추리닝이 기본 옷차림인데 사정 빤히 아는 동네 아줌마들이야 그렇다 치고 낯선 이들에게까지 그런 한심한 모습을 보일 수야 없는 법 아닌가! ㅠ.ㅠ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엄마가 다니시는 절에서 떼지어 문병을 다녀갔다. 원래 어제부터 온다는 소식에 기겁하여 일단 청소는 했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극구 말렸는데 급기야 쳐들어 온 것이다. 그분들이야 아픈 사람을 문병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슨 자랑이라고 사방팔방에 부상 소식을 알려 하루가 멀다하고 손님들을 불러들이는 왕비마마가 신경질나고 꼴보기싫었다. (나 못된 딸 맞다)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 없다지만, 별 것 아니라도 과일 깎아 내고 차 끓여 내는 게 얼마나 귀찮은데!! 젠장. 게다가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 없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구석에 앉아 있는 것도 완전 고역이다. 눈치 봐서 얼른 방으로 도망쳐 나오기는 하지만, 손님 접대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어서 엄마가 깁스를 풀어 병문안 오겠다는 사람들도 없어지길 바랄 뿐인데, 앞으로 남은 3주가 참 길게만 느껴진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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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말

투덜일기 2008. 5. 23. 02:31
주말이니 월말이니 연말이니 하는 건 단순히 인간들이 편리하려고 정해놓은 시간의 구획일 뿐이라고 건방지게 무시해보지만 조직에 매인 것도 아닌 자유업자라면서 나란 인간은 그 시간의 담벼락을 좀체 쉽게 넘을 수가 없다. 일부러 요번에 연장받은 마감일은 월말을 피했건만 게으름 부리다보면 어느새 월말이고, 요일 상관없이 날짜로 턱 못박아 놓은 마감 약속일도 금요일 쯤에 걸리면 그냥 확 보내버리고 주말에 시체놀이 하거나 팽팽 놀면 얼마나 좋으련만 주책맞게 미련을 못 버리고 주말에 좀 더 다듬어보면 원고가 더 훌륭해지지 않을까 욕심을 부리게 되니, 나의 데드라인은 대부분 월요일, 월말 아니면 월초에 몰릴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말로는 초절정마감모드라고 되뇌면서 행동과 정신은 마냥 나사가 풀려 헬렐레하는 데다 늘어진 정신에 발맞추어 몸까지 골골대니, 늘어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원성과 양치기소녀의 거짓말 뿐이다.

게다가 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의 달이렸다. -_-;;
국세청 홈페이지 접속도 어려운 월말 되기 전에 후다닥 작년처럼 해치워야지 작정했었는데, 1차 접속했다가 뭔가 계산이 잘못됐다기에 정신 사나와서 일단 후퇴하고 보니 별것 아닌 세금신고마저 발목을 붙드는 떼쟁이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작년에 나는 하반기 내내 거의 일을 못했기 때문에 벌이도 당연히 시원치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날아온 소득신고서를 보니 금액이 놀랍도록 많다. +_+ 그간 밀렸던 원고료를 작년에 꽤나 많이 받아냈다는 뜻인데 난 왜 줄기차게 계속 가난했던 걸까? 장부나 가계부 따위를 쓸 리도 없고 그저 달력에 원고료 입금된 날짜나 적어놓는 게 전부인데, 작업실 출근을 가뭄에 콩나듯 했던 데다 통장도 없이 인터넷 거래만 하는 계좌로 바꾸고 나선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관리가 형편없다 느끼긴 했지만, 작년엔 원고료 목돈으로 들어왔다고 곗돈 탄 기분으로 턱턱 엄마 용돈 드리고 사방에 밥산다고 껄떡댔던 기억이 거의 없건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ㅜ.ㅜ

다 아메바 뺨치는 기억력 탓일 거라고, 설마 나한테 주지도 않은 돈을 출판사들이 내 앞으로 신고 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세금신고 하기 전에 먼저 작년 계약서들이랑 통장 내역도 좀 뒤져봐야겠다고 작심하니 마음이 더 바쁘다. 으휴. 얼마나 내공을 더 쌓아야 꾸물거리다 막판에 몰아쳐서 일하는 버릇, 시간에 쫓겨서 허둥대는 버릇, 마감일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는 버릇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게으름뱅이의 인생이 참 딱하고 걱정스러운 건 확실하다.

이 야심한 시간에 잠 안자고 있으면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자아비판성 블로그질은 또 뭐란 말인가;;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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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뿔

투덜일기 2008. 5. 20. 16:16
다들 알겠지만 감기의 순우리말은 <고뿔>이다.
코에 불이 난 것처럼 뜨겁고 열이 난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감기에 걸리면 줄줄 흐르는 콧물 단계를 절대로 피해가지 못하는 나에겐 어찌나 정확히 들어맞는 말인지 생각할수록 재미있다.

얼마만에 또 고뿔이 들었는지 잘은 모르겠는데, 주말 동안 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더니 자고 일어나선 침을 삼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목이 아팠다. 목아픔은 반나절만에 삭신이 쑤시고 아픈 몸살기운으로 변했고 얻어맞은 사람처럼 아픈 몸엔 그저 잠이 보약이다 싶어 또 하루 자고 일어났더니 증상은 다시 콧물로 넘어갔다. 휴지통을 가득 채우다 못해 주변 방바닥에까지 그득하게 쌓인 코푼 휴지와 루돌프 사슴코 못지않게 빨갛게 헌 코를 보며 킬킬웃다가 온 집안에 감기 바이러스가 가득 찬 것 같아 창문과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오랜만에 청소를 했다. 감기 몸살로 낑낑대는 주제에 웬 청소냐고 엄마는 잔소리를 해댔지만 얼핏 땀이 배어나올 만큼 헉헉거리며 청소기를 돌리고 오만년 만에 걸레질까지 마쳤더니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졌다.

원래 감기는 약 먹으면 2주, 안 먹으면 보름간다는데^^ 어쩐지 이번 고뿔은 내가 이끄는 대로 얌전히 물러나줄 것만 같다. 한 집에 겨우 두 식구 사는데 둘 다 환자로 누워있는 형국은 제가 봐도 그림이 안나온다는 걸 감기란 놈도 아는 모양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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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투덜일기 2008. 5. 7. 00:27
사흘만에 집밖을 나섰다가, 연휴 마지막에 추워진 날씨 때문에 방심하고 있던 사이 온 동네가 아카시아 꽃향기로 점령당한 걸 뒤늦게 깨달았다. 토요일은 여름 같더니만 다음날부터 내리 추워서 창문도 꼭꼭 걸어닫고 있는 바람에 아카시아 꽃이 피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가 완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카시아 꽃 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향기로운 꽃냄새를 실컷 맡으며 외출하긴 했지만 어쩐지 하루쯤 손해본 것 같아 속상하다.
며칠 지나면 또 말라 떨어진 꽃잎이 바스락거리며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 텐데...

외출 장소는 간만에 홍대앞.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와서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바람에 일부러 골목골목 구경을 다녔다. 운이 좋아 일찍 나온 바나나빵 장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랐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이미 날씨가 더워져서 바나나빵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주차장길엔 노점상이 하나도 없어서 아쉬웠다. 다만 새로이 생겨나고 바뀐 가게들이 어찌나 많은지 관광객처럼 두리번두리번 기웃기웃 실컷 구경하며 실실 웃어댔다.
이젠 너무 방대하고 요란해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홍대앞 골목골목엔 뭔지 모를 묘한 매력이 아직 살아넘친다. 나중에 가보고 싶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마음껏 찜해두었더니 전혀 돈 될 거리가 아닌 짓임에도 통장에 저축해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ㅋㅋ

이요님과 해리님 블로그에서 알게된 리&키키봉에도 가봤다. 너무 잔뜩 기대를 했던 탓인지 막상 들어가선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앉고 싶은 자리를 찾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 ^^;; 내가 선호하는 구석자리는 너무 구석이라 창고 같고, 아늑해 보이는 다락 같은 방석 좌석은 신발벗기 귀찮고...
동행에 따라서 어떤 날은 퍼질러 방바닥에 앉는 자리를 선호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신발 벗는 게 귀찮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신발 벗는 게 번거로운 날이었고, 내가 앉은 쪽에서 빤히 들여다보이는 천장 낮은 방석자리에 앉은 남녀가 계속 별로 아름답지 않은 영화를 찍어대는 바람에 불편하고 민망했다. -_-;;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커피랑 카모마일 차는 맛있었고, 화장실 벽장식 타일이 예뻐서 그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동행과 입을 모았다. 다른 의자도 다 그런지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의자가 푹신하질 않아서 꼬리뼈가 조금 아팠던 것도 마음 쓰였는데, 다음에 또 가게 되면 가지런히 접혀 있던 무지개 담요를 깔고 앉아야지.

외출해서 말을 많이 하고 듣다가 돌아오면 공연히 허허로운 날이 있고 속 시원하고 뿌듯한 날이 있는데 오늘은 후자쪽이다. 침묵이든 대화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만남은 확실히 영혼의 자양분인 듯.
문화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간만에 머릿속이 채워진 것 같아서 이렇게 일기로 남겨두고 싶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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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때려치우고 번역을 해보겠다고 작심했을 때, 막연한 내 바람과 달리 초보자로선 출판계쪽 번역일을 맡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당연히 겁에 질렸고 과연 잘한 짓인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때 마침 친구가 솔깃한 얘기를 했다. 애송이 띠동갑이랑 결혼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오빠 때문에 걱정스러워서 둘의 사주를 보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가겠냐는 것. 신내린 무당이 치는 <점>과 달리 사주는 <나름> 통계와 과학을 근거로 한 것이라며 꼬드기는 친구의 말에 못이기는 척 따라가며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라고 스스로 핑계를 대긴 했지만 난생처음 내 운명을 점치러 가면서 나는 심장이 꽤나 두근거렸다.

그날 킥킥거리며 귀담아 들었던 나의 사주풀이 가운데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은 당연히 그해 독립해서 사업(?)을 시작할 운세라는 것과 글로 먹고 사는 직업이 내 적성에 맞는다는 얘기였다. 어차피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이니 당분간 백수생활을 이어가며 차츰 살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막연한 방향만 잡아놓은 상태에서 누군가 <그게 니 운명이야>라고 힘주어 말해주니, 사주니 점이니 하는 거 다 미신이라고 여기면서도 어찌나 힘이 되던지 한 1년은 자투리 같은 일만 하며 준백수로 살아도 거뜬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사주보는 아저씨에게 또 한 가지 아주 신나는 말을 들었으니, 그것은 나에게 <역마살>이 있다는 얘기였다. 다행스럽게도(?) 내 역마살은 계속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오긴 하는데 조금 지나면 또 엉덩이가 들썩거려 떠나고 싶어지는 쪽이라나.

해마다 어느 시점이 되면 꼭 바다가 보고 싶어 몸살이 나고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안달을 내는 것도 다 내 운명이라는 훌륭한 핑계를 얻게 된 나는 그 때부터 기회만 되면 떠나는 삶을 꿈꾸며 살았던 듯하다. 적금따위는 평생 들어본 적도 없으니 원고료가 들어와 통장에 조금만 돈이 모이면 어딜 갈까 마음이 설렜고, 다양한 여행지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1, 2년에 한번씩은 <재충전용>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아 여행을 선언했다. 멋진 휴가를 꿈꾸며 일년 내내 열심히 번다는 외국인들의 삶이 곧 진리라고 여기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내 인생의 모토로 삼기도 했다. 통장잔고가 바닥나도록 여행에서 돈을 톡톡 털어 다 쓰고 돌아오면 불안감보다는 "또 열심히 벌어서 여행가야지!"라는 동기부여가 더 컸다. 남들에겐 대책없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나에겐 행복하기 그지없었던 그런 삶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3년 전엔가 엄마가 쓰러져서 오래 병원신세를 지고 그 뒤로 좀처럼 반짝 건강을 회복한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작년에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 이제 크든 작든 여행을 떠나려면 어린아이 맡기듯 엄마를 동생들에게 맡기고 가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상황에도 내 역마살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질 않고, 다만 짜증스러운 현실에 몸부림을 칠 뿐이다. -_-;; 계획대로 제주도로 떠난 지인들이 보낸 위로용 바다 사진과 메시지를 받은 순간 충동적으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지금 그 터무니 없는 생각으로 마음이 마구 설렌다. 밀린 원고고 뭐고 다 젖혀두고 작업실을 처분해 그 돈으로 유럽으로 날아가 돈 떨어질 때까지 한 달 쯤 편하게 여행다니다 올까보다 하는 생각이다. ㅋㅋㅋ

오래 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연간 5백 파운드의 고정수입이랑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5백 파운드면 꽤나 큰돈이어서 남편이나 가족에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처음 내가 작업실을 마련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물려받은 재산은 없지만 5백파운드 대신에 나는 <계약금>과 <원고료>를 받을 수 있으니 가족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생기면, 비록 글을 쓸 능력은 안되더라도 더 열심히 훌륭한 번역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벌써 10개월째 거의 비워두고 있는 작업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미적미적 망설이는 이유도 처음 내 능력으로 확보한 <자기만의 방>의 의미가 퍽이나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 자유의 공간을 포기하고 한달만에 보증금을 다 까먹을 생각을 겁없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하하.
그런데 생각할수록 유쾌하다. 작업실 재계약일이 지나서 일년은 또 묶여 있어야 하는지 마는지 현실적인 상황도 알아보기 전에 나는 벌써 파리엘 다시 갈까, 이탈리아와 그리스엘 갈까, 아님 프라하나 스페인엘 갈까 뭐 이런 꿈을 꾸며 벌벌 웃음을 흘린다.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만약 작업실을 포기하게 되면 그 돈을 정기예금에 넣어야 하나 위험하게 펀드를 들어야 하나 아니면 기회 닿는 대로 다시 장만해야 되니까 입출금 통장에 그냥 넣어두어야하나, 뭐 그런 경우의 수만 생각했지 홀라당 까먹고 놀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에, 억눌렸던 역마살의 발현은 지금 내게 거의 발상의 전환 수준으로 뿌듯하다.

그런데 남은 문제는...
역시나 가장 어려운 가족의 굴레다. 새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혼자임을 즐기는 인간인지 깨닫게 된다. 이런 내가 어려서 실수로라도 가족을 꾸렸으면 참 큰일냈겠구나 싶다. 지금 내가 꿈꾸는 건 분명 <가족여행>이 아니라 홀로 떠나거나 친구와 떠나는 여행이다. 자기만의 방과 홀로 떠나는 단기 여행을 바꾸려는 나는 과연 제정신인가. 생각 좀 해봐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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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투덜일기 2008. 4. 24. 17:24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겨우 이틀 반의 자유쯤은 내게 허락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며칠 부쩍 불안해하며 딸이 자길 버리고 도망갈까봐 겁난다며 컴퓨터 방 문도 못닫게 하는 엄마를 동생네 맡기고 떠나겠다는 심보는 원래부터 욕심이었나보다. 묘한 애정의 더듬이 같은 걸 감추고 있는지, 엄마는 내가 매몰차게 홀로서기 준비를 시키면 즉각 낌새를 알아차리고 마구 흔들린다. 지난 달만 해도 며칠 여행 다녀올 테니 동생네 가 계셔도 되겠냐고 하면 얼마든지 혼자 밥 챙겨 먹으며 있을 수 있다고 장담하더니, 요샌 밖에 나갔다가 집앞에 내 차만 없어도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단다. 내가 엄마를 짐스러워한다는 걸 너무 심히 티냈다는 얘기다. 작년까지는 분명 내가 캥거루족이었는데, 이젠 내가 아주 큼지막한 뱃주머니를 매단 엄마 캥거루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엄마 캥거루가 되어야 하는 역전이 싫어서 냉정하게 주기적으로 홀로서는 준비를 시키려는 못된 딸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매일 슬프고 기운 빠지는 이유는 못마땅한 세상 탓도 있지만, 분명 내 삶의 무게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4월에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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