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08.01.15 무수리의 삶 6
  2. 2008.01.03 새로운 작심삼일 16
  3. 2007.12.31 새해라니 6
  4. 2007.12.14 팔 힘 14
  5. 2007.12.13 9
  6. 2007.12.03 조카랑 하는 놀이 12
  7. 2007.10.20 춥다 7
  8. 2007.10.16 감기 12
  9. 2007.10.08 울음의 정당성 10
  10. 2007.09.28 돌아온 소포 4

무수리의 삶

투덜일기 2008. 1. 15. 23:20
겨울방학을 맞아 본격 무수리의 삶을 살고 있는지 사흘째다.
왕비마마 홀로 보필하는 것도 힘들거늘 공주님까지 납시셨으니...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조차 없이 몸바쳐 모시고 있다.
당연히 블로그질은 뒷전일 수밖에. ㅠ.ㅠ
그나마 내일은 공주님의 귀가일이니 내일 밤부터는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듯.
심지어 오늘은 영화예매 늦게 해서 인터넷으론 표를 구할 수 없어 마구 두들겨 맞기까지 했는데
다행히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어서 목숨은 건졌다. -_-;;
동생네 부부는 공주가 고모 무수리를 괴롭히면 즉각 데리러 오겠노라고 했는데
그 협박도 이번엔 별로 통하질 않았다.
3박4일이 참으로 길다. 흑...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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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도 이제는 새해결심 같은 것 세우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그래봤자 지키지도 않을 걸 뭐.
게을러터진 나는 새해 됐다고 거창하든 소박하든 뭔가 계획을 세우면 겨우 사흘도 못가는 형편이라
작심삼일이란 말한테도 미안할 정도다.
아메바스러운 내가 감히 어떻게 1년이란 세월을 내다보겠는가.
단기적으로 일주일, 한달 정도로 짧게 끊어서 사는 것도 감지덕지.
그런데 2008년 들어서는 아예 작심삼일의 의미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_*
원래 작심삼일이란 결심한 일을 사흘만에 작파한다는 것이지만
내 경우 작심삼일이란 결심한 일을 실천에 옮기는 데 사흘이"나" 걸린다는 것임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ㅠ.ㅠ

12월에 있던 마감일을 친절하게도 1월로 자진해서 연기해주었던 출판사 덕분에
꽤나 한가롭게 흥청망청 연말을 보내며 나는 1월부터는 새로운 마음으로 "빡시게" 작업에 돌입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새해 기분도 전혀 안나는 것도 문제려니와 그래도 새 달력 걸은지 사흘이 지나고 있건만
컴퓨터 앞에 앉은 것은 사흘 통틀어 1시간도 안된다.
추운 날씨를 핑계로 주로 따땃한 방구들을 지고 누워있거나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거나
TV 리모컨 놀이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면 아직도 작년 12월을 살고 있는 한심이로 느껴진다. ㅠ.ㅠ

급한 일 있고 바쁠 때 블로그질도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는 다른 이웃들처럼
나 역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할때 그나마 블로그질도 열심히 하는 편이니
새해들어 여지껏 한자도 새 글을 안 올린 것은 그만큼 주야장천 놀기만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서...
사흘째인 오늘까지만 놀고^^ 내일부터는 진짜로 열심히 번역에 돌입하여
1월말 마감을 차질없이 마무리해보려는 목표를 만방에 밝혀 이웃분들의 채찍질을 받기로 했다.
더불어 부디 오늘은 과음하지 말기를.  -_-;;
이 결심도 3초만에 잊으먹으면 어쩌지...
내일은 <새로운 작심삼초>라는 제목의 글을 포스팅하게 되는 거나 아닌가 모르겠다. 끙.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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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니

투덜일기 2007. 12. 31. 16:13
겨우 하루 차이로 헌해와 새해를 나누는 건 아무래도 억울하지만
아무리 앙탈을 부려도 2008년은 몇 시간 있으면 시작될 것이다.
어차피 우주의 세월에 비하면 인간들의 1년 그까짓것 찰나에 불과하다고 위로는 해보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난 1년은 정말로 찰나처럼 느껴져 허허로운 마음이 드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벌써부터 사두었던 새 달력을 며칠 전부터 걸어놓은 걸 보면
마음의 준비는 해놓은 것 같기도 한데
연말모임에서 덕담과 함께  지인들이 일깨워준  나의 나이는  꽤나 어마어마하여 더럭 겁이 난다.
남들의 잣대로 나를 재단하지 말자고 다짐해도 시기적으로 한해를 정리해야하는 순간이 오면
은근히 주눅이 드는 걸 어쩌랴.

게다가 외형상으로 나의 2007년은 참 보잘것없었다.
표지갈이를 하거나 보급형으로 다시 나온 책을 빼고 순수한 신간 번역서는 겨우 두 권.
번역작업을 마친 건 5권.
핑계를 댈 수 있는 큰일을 치렀으니 나름 수긍은 가지만
'직업인'으로서 그다지 열심히 살지는 않았음은 확실하다.

그래도 '딸'로서 '고모'로서 '누나'로서 '친구'로서
그리고 '블로거'로서는 꽤나 아등바등 노력했다고 생각하며 자책만 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이만하면 잘 산 거지 뭐!

새해에도 돈벌이나 재테크 따위로 성공과 행복을 가늠하는 남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말고
'나'답게 소박하고 씩씩하게 자알 살아갈 수 있기를 빌면서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아 끝으로...(원래는 이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쓰려던 것이 변질되고 말았다)
이 공간에서 새로이 관계를 맺게 되어
알게 모르게 나에게 기쁨과 힘을 전해주신 여러 블로그 이웃분들께 깊이 감사한다.
인간관계란 참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잘 도모한 관계는 늘 내게 큰 재산이고 행복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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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힘

투덜일기 2007. 12. 14. 12:21
이틀 전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집안에 힘쓸 일이 좀 있었다.
좁아터진 집에 최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하여 명절과 제사 때면 늘 하는 일인데,
TV 앞에 놓인 소파를 베란다쪽으로 옮겨 붙여놓고
베란다 앞쪽에 놓아둔 화분들을 대거 작은 방에 옮겨두어야 하며
안방에 늘 깔아두고 사는 엄마의 초대형 옥매트도 옷방으로 옮기는 것이다.
(지난 번 추석땐 이 과업 때문에 큰동생네가 아예 전날부터 와서 잤지만 이번 제사는 평일이라
어쩔 수 없이 두 모녀가 힘을 써야 했다.)

예전엔 내가 잠자는 사이에 이미 해결되어 있던 일까지 이젠 손수 도맡아서 해야하니
막강한 책임감 때문인지 전날부터 잠도 잘 오지 않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일찍부터 깨어나 서성이며 큰걱정을 해댔다.
"저 무거운 화분을 니가 어떻게 다 옮기니..."라면서.
왕비마마는 몇년 전 당뇨병 후유증으로 급성신부전증까지 왔었기 때문에 말초신경이 일부 변형되어
소근육을 움직이는 섬세한 행동이나 힘을 쓰는 일은 못하신다.

하지만 또 내가 누군가.
깡다구와 악바리 정신 빼면 시체인 인간..(아.. 나도 예전엔 꽤 연약했더랬는데 ㅠ.ㅠ)
꽤 무겁긴 했어도 소파(사실 소파는 슬쩍 들어 밀면 되니까 그리 무겁지 않다)와 탁자와 화분들(제일 큰 화분은 그래도 엄마랑 둘이 들었음을 고백^^)들을 순식간에 척척 옮겨놓고는 청소에 돌입했었다.

제사가 끝나고 친척분들 먼저 다들 귀가하시고 나면
온종일 콩닥콩닥 뛰어다니며 제수준비하고 25명 식사 뒤치다꺼리에 힘쓰느라 뒷다리와 허리가 땡겨
쓰러지기 직전인 나와 올케들 대신 동생놈들이 방 정리와 힘쓰는 일을 도맡는다.
그런데 나보다 30킬로그램 가까이 더 나가는 막내가 화분들을 옮기며
이 무거운 것들을 어떻게 옮겼냐고 혀를 끌끌 차더니만 이내 중얼거렸다.
"하긴... 40대 아줌마들의 근력이 제일 세다더라." -_-;;

나도 그 뉴스를 보긴 했다.
여성은 힘쓸 일이 많은 40대 아줌마들의 팔 근력이 가장 세고
남성은 20대 청년들의 근력이 가장 세다고.
그러니까 30대에 접어든 동생놈들은 근력이 나날이 쇠약해지고 있는 반면에
40대에 접어든 나는 가사노동으로 단련되어 팔 힘이 점점 더 세진다는 얘기. ㅠ.ㅠ
사실, 정신없이 제사나 명절준비를 하다 바쁘면
순간적으로 괴력이 발휘되는 걸 느끼기는 한다.
묵직한 압력솥 같은 걸 간당간당하긴 해도 한 손으로 들어 번쩍 옮기며 다른 손으로는 다른 물건을
집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원고 작업에 초인적인 가속도가 붙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발생하는 힘이라고
애써 위로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튼튼해진 내가 너무도 아줌마스러워서 가끔 서글프다.

과거의 나는 팔 힘이 없기로 유명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체력장을 할 때마다 매달리기 종목에선 늘 0초여서
제일 뒷번호의 거구였던 친구와 나란히 체육선생들한테 잔소리 깨나 듣곤 했었다.
"너는 몸도 가벼운 애가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고 힘을 못 쓰냐!"는 꾸지람을 많이 들었는데
나는 정말로 철봉에 매달려 최대한 기를 써도, 발 아래서 의자가 사라지면 순식간에 "뚝"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팔씨름을 해도 이기는 법이 없었고, 중고등학교 때 초등학생인 사촌동생들과 팔씨름을
해도 질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제 매달리기를 하면 기록이 0초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물론 얼굴색 하나 안 변하면서 1분씩 거뜬히 매달리던 친구들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최소한 5초 쯤은 매달릴 수 있지 않을까? ㅎㅎㅎ

가늘가늘한 여린 팔뚝보다는
마돈나처럼 근육질의 팔뚝이 더 멋져보이는 것이 나의 취향이긴 하지만
아직도 내 팔뚝에 크게 근육이 발달된 것 같지는 않다.
아줌마들이 그저 토실토실할 뿐 별다른 근육이 없는 팔뚝으로도 불끈불끈 힘을 잘 쓰는 건
순전히 필요에 의한 요령 습득 때문일 것이다.
왜소한 몸집으로도 피아노나 냉장고를 혼자서 거뜬히 짊어지고 옮기는 이삿짐 센터 전문요원들처럼;;

째뜬,
빼도박도 못하는 아줌마임을 여실히 실감하는 나날이다. 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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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07. 12. 13. 17:42
드라마를 보면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골머리를 앓고 누워있다거나
아프다고 시위를 할 때 반드시 머리에 흰 끈을 매고 나온다.
대체 그게 두통에 무슨 소용이랴 싶은 생각보다도 우선은 그런 모습을 설정한 드라마 작가들의
상투적인 태도에 화가 치민다.
꽤 오래(내가 초등학생 때까지)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고수했던 우리 친할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한복을 생활복으로 고수하셨던(물론 여성용이 아니라 남성용 한복이긴 했지만) 외할머니도
편찮으실 때 머리에 흰 띠를 매는 습관은 절대로 없으셨으며
두루두루 집안 어른들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우기자면, 지끈지끈 두통이 느껴질 때 머리를 꽉 조여매면
관자놀이 마사지를 하듯 혈행에 도움이 되어 증상이 완화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머리에 매는 띠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 노동자들이나 노점상, 과거 활동가 학생들이
머리에 질끈 동여매는 시위용 뻘건 띠와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똑같이 '시위용'이라지만 드라마 속 아줌마들의 흰 띠는 그래서 더욱 유치하고 진부하다.
앞으로는 제발이지 드라마에서 그런 소품 좀 안 썼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혹 드라마작가 주변의 노친네들은 다들 그런 흰 띠를 생활화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_-;;)

감기몸살이나 신체적인 통증 따위를 드라마에서 표현할 때 또 한 가지 빠지지 않는 상투적인 표현은
바로 "끙... 끙.." 앓는 소리를 내는 것.
엄밀히 말하면 "끙"이 아니라 "으..."나 "어.." 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새어나오는 것인데
그 모습은 제 아무리 상투적이라 해도 크게 바뀔 순 없을 것 같다.
실제로도 근육통과 고열을 수반하는 몸살감기에 걸렸다거나
수술 따위로 생살을 째는 아픔을 겪은 뒤 진통제가 떨어지는 순간이 돌아오면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_-''

누워서 낑낑대다 저도모르게 그런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면 진짜로 웃기긴 한다.
끙...끙.. 거리다 그 소리가 다시 우스워서 킥킥거리다 어느새 다시 으...으... 앓는 모습이란
완전 코미디가 따로없다.

그젯밤, 어젯밤, 이틀 내리 그런 홀로  코미디를 찍었다.
아 물론 생살을 쨌다는 건 아니고 그저 감기 ^^;;
그나마 두통약에 기대어 어렵사리 잡들고 나면 낮동안엔 좀 살만한데
어둠이 내리면 희안하게도 콧물과 기침, 근육통이 딱 낮의 두배로 늘어난다.

아마도 저녁먹고 나면 또 이부자리에 드러누워 코미디를 찍게 될 것 같다.
끙... 끙...
아직은 그래도 킥킥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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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 소녀부터 18개월된 아기까지 어느덧 조카가 넷이다.
사랑스러운 나의 조카들이 과연 언제까지 나를 따를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인기관리 차원에서 늘 온몸을 다 바쳐 놀아주는 못말리는 고모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의 조카들은 어딜 가든 이동할 때 서로 고모 차를 타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가끔 조카 셋을 앞뒤로 다 태우고 어디론가 운전해 가다보면 사고 안내는 게 나도 신기하다 ㅠ.ㅠ)
밥먹을 땐 서로 고모 옆에 앉겠다고 싸우다 울거나
왜 만날 정민이 누나만 고모 옆에 앉으냐고 항의하며 질투를 하기도 하며
우리 집에 오면 현관문을 들어선 순간 할머니한테 인사고 뭐고 없이 "고모, 놀자~~~~!"라고 외친다. -_-;;

암튼 조카들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고 받기를 원하는 이 땅의 수많은 고모와 이모들을 위하여
내가 조카들과 하는 놀이들 가운데 최근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들만 추려 전격 공개하는 바이니
널리 애용하시기를 권한다. ^^
(허나 다른 집 조카들에게도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ㅋㅋ)




 





가장 훌륭하게 완성된 윗단 맨 왼쪽의 케이크는 5살 난 지환이가 그린 그림에 내가 색만 덧칠한 것이고
나머지는 정민공주의 주문에 따라 내가 그린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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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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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투덜일기 2007. 10. 20. 19:03

이건 반칙이다.
가을이 온 것도 겨우 인정하려는 판국에 날씨가 이게 뭐냐.
오늘은 집에 있는데도 발목이 시려워서(양말도 신었다) 드디어 칠부바지도 포기하고 아예 긴바지 '츄리닝'으로 홈패션을 바꿔야 하나보다고 고민했다.
웃도리는 물론 반팔 티셔츠에 긴팔 덧옷을 껴입었다.

며칠 전 설악산에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에 더럭 겁을 집어먹었더랬는데
이번엔 아예 첫 얼음이 얼었단다.
일기예보를 백퍼센트 믿을 건 아니지만 중부권도 체감온도가 영하로 내려간다는 말에
위축되어 오늘은 집밖으로 한발짝도 안 나갔다.
작년이었나.
공식적인 겨울을 인정하던 날을 애도하느라 온종일 이불속에서 동면모드로 지냈다는 푸념을
어디엔가 적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으스스 추워지면 늘 나의 시선은 남반구로 향한다.
이 나라가 얼어붙는 겨울 석달동안 따뜻한(?) 여름 나라에서 지내다 오는 것은 언제나 나의 아련한 소망이다.
석달 동안 동면하고픈 충동을 억지로 삼켜야하는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10월부터 이리 추우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솜을 넣고 누빈 늦가을용 솜저고리(그래도 파카는 아니다)를 옷장에서 꺼내 이것 저것 입어보며
오후 내내 우울했다.
콜록콜록 밭은 기침은 아직도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는데 이런 날씨엔 겨울까지 줄곧 나랑 친구하겠다고
아예 눌러앉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겨울 아침, 뒤뚱뒤뚱 온몸이 둔할 정도로 옷을 입고 모자와 장갑 목도리까지 두르고도
드러난 얼굴이 추워서 학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 책가방을 맨 채로 회초리를 맞았던 9살짜리 아이는
교복 아래 늘 체육복 바지를 껴입고도 무릎에 친구 체육복 웃도리를 하나 더 덮고 지냈던 여고생으로
자랐다가, 어느새 10월에도 춥다고 징징대는 중늙은이로 변해 있다.
겉모습은 변했어도 철없는 알맹이는 그대로란 얘기렸다.

아무튼 벌써 추워지니 월동대책 전혀 못 세운 서민 답게 마냥 암울하다.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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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투덜일기 2007. 10. 16. 12:56
감기에 관한 한은 좀 미련을 떠는 편이다.
인류의 과학이 제 아무리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다 해도
아직 감기약 하나 못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약과 병원을 마뜩찮게 생각하는 이유다. -_-;;
'감기약'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증상완화제일 뿐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제는 되지 못하니
그저 감기는 쉬면 낫는다..고 믿는다.

게다가 감기 바이러스란 놈도 아주 야비하고 교활한 녀석이어서
언제 숨어들었는지 모르게 잠복해 있다가 몸이 좀 부실하다 싶으면 옳다구나 본색을 드러내 기승을 부린다.
아... 진짜로 싫은 놈이다!

가을이 왔나보다고 계절을 실감할 무렵부터
감기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긴 했다.
자고 일어나면 목이 약간 아프고 밤마다 밭은 기침이 나오기 시작하기에
나름 열심히 사과와 비타민을 먹어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먹는 걸 잘 챙긴다 해도 잠이 부족하면 효과가 없기 마련.
마감이랍시고 오래 버티기에 들어가느라 며칠 잠을 푹 못잤더니 덜컥 탈이 나고 말았다.

콜록콜록 깽깽거리다 어젠 결국 삭신마저 쑤셔 온종일 누워 빌빌대야 했는데
낮에도 자고 설마 밤에 또 잠이 오랴 싶었는데 또 스르르 잠이 오더니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머리가 좀 맑아지는 듯하다.

진작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 먹었으면 좋을 것을 미련을 떤다고
엄마한테 잔뜩 잔소리를 듣고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기침감기약과 한약냄새 나는 물약을
먹은 뒤에 그나마 좀 나아진 것이니 면목이 없긴 하다.
약도 약이겠지만 감기란 놈이 풀이 꺾인 건 분명 푹 잠을 잔 탓이렸다.

사실 아직도 잠의 유혹이 몹시 강렬하다.
따뜻한 이부자리에 누워 또 한잠 자고나면 감기란 놈한테 내가 아예 이길 것도 같은데
아직도 꽤 많이 남은 일감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칠 못하다.
이래저래 다 자기관리 제대로 못하는 탓이니 자괴감도 만만치 않다.
왜 이렇게 늘 쫓기듯 사는가 말이다.
에효.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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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의 정당성

투덜일기 2007. 10. 8. 17:02
그러니까 배우란 직업을 아무나 택하는 게 아니긴 하겠지만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은 우는 모습도 예쁘고 아름답고 우아하다.
커다란 눈망울에 이슬처럼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다간 수정구슬처럼 또르륵 뺨위로 굴러내리기도 하고
간혹 코가 빨개지도록, 또는 콧물까지 뒤범벅이 되어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배우들이 우는 얼굴은 그다지 일그러지지도 않고 빨갛게 변하지도 않는다.
참 신기하다.

배우가 아닌 이상 폄범한 이들 가운데 울면서 굳이 거울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어린아이들 가운데는 울면서 자기 모습을 거울로 쳐다보며 더 서럽게 우는 경우도 꽤 보기는 했다)
내 경우 울음 뒤끝에 몰골을 추스르느라 거울을 보면 매우 가관이다.
잘 우는 편이라 굳이 온 얼굴에서 눈물을 짜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코끝과 눈가는 물론이고 흰자위까지 새빨갛게 충혈돼 온 얼굴이 완전히 시뻘겋고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으며
콧물 동반은 필수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눈두덩을 자꾸 닦아내면 순식간에 퉁퉁 붓는다.
몇달 간 울 일이 많았던 탓에 새삼 깨달은 바로는 그나마 눈물을 자꾸 닦지 않고 그냥 흘리다 말리면 차라리 덜 붓는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한참 울고 나서 보면 안경에 미세한 눈물방울이 튕겨 있다는 점이다.
눈물샘에서 눈물이 스프레이처럼 샘솟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눈썹을 깜박거릴 때 소량의 눈물이 안경 유리에 튀기는 모양인데 확인할 길은 없다.

울면서 남들에게 우는 모습이 추할지, 아름다울지 따질만큼 남의 눈을 신경쓰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른이 된 뒤에 우는 건 역시 깜깜한 영화관이나 혼자 있을 때 비로소 편해진다.
옆 아기가 울면 덩달아 따라 우는 아기들처럼 언제부턴가 누군가 울면 금세 전염이 되어 따라울게 되는데
친구 하나는 그게 주책맞은 아줌마가 되어간다는 징조라고 했다.
자기도 요샌 결혼식에 가서 지켜보다 돌연 눈물이 난다나.
서양 영화를 보면 결혼식장에서 흔히 아줌마나 할머니 하객들이 저마다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는데 젊어서는 그걸 보며 비웃었더니 이젠 자기도 그러고 있단다.
그게 정말일까?
암튼 언제부턴가는 나도 신랑신부가 부모님께 절하는 대목에서 늘 울컥 눈물이 나곤 했다.

어쨌든
양파썰기를 할 때 매워서 흘리는 눈물과 슬퍼서 우는 눈물은 성분이 다르단다.
슬프거나 감동적이어서 감정의 변화와 함께 흘러 나오는 눈물에는 교감신경이 자극되어 생성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성분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놓아 울면서 흘린 눈물에는 몸에 돌아다니던 스트레스 호르몬이 잔뜩 담겨 나오기 때문에 한참 울고 나서 속이 후련한 이유도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얘기다.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한 감정 때문에 지쳐있을 때 슬픈 영화를 보면서라도 통곡을 하고 싶어지는 것도
눈물과 스트레스 호르몬의 상관관계를 시사하는 현상인가 보다. 건강한 정신생활을 위해서도 꽤 자주 울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꽤나 자주 울 일이 많았던 지난 몇달간은 그럼 내 정신건강을 위해 퍽이나 이로운 시기였던가?
실컷 울고 나서 후련해지는 것은 그렇다 치고, 내 경우 극심한 두통이 뒤따르는 건 또 왜일까?
흠...

또 종일 운다고 잔뜩 핀잔을 듣고서 또 억지로 웃다가 울음의 정당성을 따져보려니 쉰소리가 길어졌다.
그냥 뭐든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여기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련다.
머리가 지끈거리든 말든 자꾸 흘러나오는 눈물을 무슨 수로 막으랴.
덩달아 스트레스 호르몬도 빠져나온다는데 온몸에 쌓인 '카테콜라민'도 배출하고 좀 좋은가 말이다.
그냥 오늘은 또 실컷 울어야겠다.

날을 따져 우는 것도 좀 우습지만
어쨌든 오늘은 아버지 가신지 100일째다.
납골당에 가며 오며 계속 울었는데도 울음끝이 꽤나 질기다.
그리운 만큼 울어야겠다고 쉰소리까지 끄적일 배설의 공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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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소포

투덜일기 2007. 9. 28. 18:17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직업상(?) 우체국 서비스를 애용하는 편이다.
바쁠 땐 퀵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원서를 출판사에 보내야 하거나
교정본 원고를 보낼 때 대부분 우체국엘 가서 주로 빠른등기로 해달라고 부탁한다.
주변에선 편의점 택배가 더 편하고 빠르다고 충고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들이 모르는 말쌈이다. ^^
우체국에 가서 11시 이전에 당일특급으로 서류를 부치면 정말로 그날 오후에 배달되는 서비스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은 서울시내로 한정되는 것 같은데, 나야 뭐 주로 서울 안에 있는 회사들과 거래를 하므로 그 이외 지역에 대해선 잘 모른다.

암튼...
등기로 서류나 물건을 부치면, 인터넷에 접속해 등기번호로 배달 상황을 추적할 수도 있으니
거의 분실될 염려도 없고,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이름까지 확인가능한 우체국 등기를 꽤나 신뢰하는 편이다.

다행히 우체국 출장소가 집근처에 있어서 꽤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가는 김에 지방에 있는 지인에게 불쑥 충동적으로 짧은 메모와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나만큼이나 문방구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줄 스티커북을 사둔지 몇달도 지난 게 생각나 주섬주섬 카드와 쪽지를 적고 포장해 소포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낼 책과 함께 우체국을 찾았다.
하필이면 그날 비가 오고 있었기에, 에쁘게 꾸민답시고 라벨지를 붙이고
연두색 수성펜으로 적은 주소가 좀 찜찜했지만 설마 별 일이야 있으랴 생각하며
등기로 소포를 붙였다.

그런데 어쩐지 불길한 예감은 참 잘도 들어맞는다.
예기치 않게 소포를 받으면 당연히 연락을 해오던 지인이 잠잠한 걸로 보아
불안함 마음에 며칠 뒤 등기번호를 추적해보니,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중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ㅜ.ㅜ

설마 우리집까지 반송이 되랴, 오피스텔 앞에 가끔 붙어 있듯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우체국에 와서 등기 소포 찾아가라는 쪽지를 붙여놓았겠지 싶어 그 뒤로는 깜박 잊고 있
었는데 아뿔싸...

오늘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초록색 걸레덩어리처럼 찌그러져 여기저기 스카치 테이프가 붙고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소포를 들고 우리집에 찾아와선
혹시 여기서 부친 우편물이냐고 물어봤다. ㅠ.ㅠ
내가 수성펜으로 써놓은 주소는 빗물에 다 지워서 그냥 연두색 얼룩으로만 남아있고
등기 쪽지에 적힌 간략한 주소와 우편번호 내 이름만 어지럽게 볼펜으로 적혀 있었는데
그 정보만으로도 소포가 무사히 내게 돌아온 것이다!
물론 반송료 1500원을 내야하긴 했지만 어찌나 기쁘고 감사한지... (내용물 값은 그 10배도 넘는다!)
아저씨한테 몇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아버지 장례 인사장도 수취인 불명이나 주소 불명인 건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집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왔었다.

요샌 추석대목이라 가뜩이나 온갖 택배 배달에 정신없었을 텐데;;
너무도 당연한 서비스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엔 꽤 훌륭한 시스템이다.
으흐흐흐
앞으로도 많이 애용해줘야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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