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08.12.22 망각 11
  2. 2008.12.18 엉망 17
  3. 2008.12.05 왕비와 공주 30
  4. 2008.11.27 남자의 수다 15
  5. 2008.11.22 추운 건 싫다 20
  6. 2008.11.12 토룡마을 꿈 19
  7. 2008.11.05 사소한 실망 14
  8. 2008.11.01 파마가 뭔지 30
  9. 2008.10.22 두달... 6
  10. 2008.10.10 가을이 오면 11

망각

투덜일기 2008. 12. 22. 17:30


이메일과 메신저가 사용되면서 손으로 써보내는 카드니 연하장이 대거 사라져버렸고
더욱이 지인들 사이에선 문자메시지 한통으로 새해인사를 하거나 그것도 생략하는 것이 대세지만
그래도 나는 거의 해마다 일찌감치 크리스마스와 연하장을 장만해둔다.
아마도 문방구 쇼핑중독과도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은데, 매년 사들인 카드보다 보내는 카드의 수가 적어져
책상서랍엔 점점 많은 카드들이 쌓이고 있음에도 올해 역시 11월초부터 카드를 주문했다.
최근 애용하는 카드는 꿩먹고 알먹는 기분으로 사는 유니세프 카드.
올해엔 디자인이 더욱 다양하고 예쁘게 나와서 배달온 카드들을 보며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그러고는 12월초가 되면 우선 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카드를 보내고 나머지는 중순쯤 써서 날려야지 마음먹었다. 
그런 다음엔?
당연히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ㅠ.ㅠ 
장단기 기억력상실증환자인 내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만 주말에 정민공주의 생일파티에서 조카들에게
크리스마스를 받고나서야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어야 하는 시기가 이미 지나버렸음을 깨달은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경우엔 굳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필요도 없고 연초까지 연하장을 받아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연하장은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연말까지 받아야 가장 의미가 깊지 않은가!

국내에 있는 지인들에겐 오늘쯤 우체국에 가서 빠른우편으로 보내면 크리스마스 전에 도착시킬 수 있었겠지만 애당초 카드보낼 생각을 했던 멀리 있는 지인들에겐 완전히 기회를 잃고 말았다는 낭패감에다
손글씨로 뭔가를 단체로 끄적여 써보기엔 준비된 게 없어서 그냥 망연히 또 하루를 보냈다.

24장이나 산 데다 예년에 쓰고 남은 카드 십여장까지 합해서... 고스란히 해를 묵힐 확률이 크다.
그러고는 또 내년에 까맣게 잊고 또 새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문하겠지.
나이 든다는 건 점점 망각의 늪으로 빠져든다는 뜻일까.
아니면 유독 나만의 병이 깊은 것인가.
왜 이러고 사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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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

투덜일기 2008. 12. 18. 19:39

요즘들어 삶이 완전 엉망이다.
준백수스러운 직업인으로서 약속이 없는 날은 아예 며칠씩 두문불출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점점 망가짐을 느낀다. 작업실을 멀리하면서 작업량과 질을 고민하는 나에게 어느 지인은 이렇게 조언했다.
자는 방에서 컴퓨터방으로 옮겨갈 때 출근한다 생각하고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 분위기를 바꿔보라고.
그러면 마냥 늘어져 좀비스러운 삶에 빠져들진 않을 거라나.
허나 게으름 면에서 그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내가 행여나 그럴 리가.
원래 외출을 하지 않으면 세수도 잘 안하는 인간이다보니, 세수도 이틀에 한번꼴로 하는둥마는둥
심지어 머리는 월요일에 감고 목요일인 오늘까지 버티고 있다. 아 드러워.
인간의 적응력은 또 실로 대단해서, 매일 외출할 땐 매일 머리를 감아야 살면서 집구석에서 뒹굴거릴 땐 사흘씩 머리를 안감아도 앞머리만 실핀으로 척 꽂아 넘겨주면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찐덕찐덕 끼는 머릿기름도 주인 눈치를 봐가며 두피에서 분비가 되는 모양.

꼬락서니만 엉망이면 또 별 문제가 아니다.
새벽에 잠들어 오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올빼미의 삶을 나름 규칙적으로 이어나갔을 때는
남들 점심이 내겐 아침, 남들 먹는 저녁이 나에겐 점심, 그리고 자정께의 밤참이 나에겐 저녁식사인 셈이었기에 꼬박 세 끼니를 균형있게 챙겨먹고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운동 부족인지 일조량 부족인지 총체적인 체력부실인지
밥만 먹으면 졸려서 암때나 픽 쓰러져 두어 시간씩 잠을 자곤 한다.
낮잠을 잤으니 당연히 밤잠(내게는 아침잠?)이 잘 올 리가 없다.
원래 자야할 시간인 새벽이 밝아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낑낑대다가 멍한 머리로 좀비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다가는 어느 순간 고꾸라져 하루종일 이불속을 탈피하지 못할 때도 있다.
게다가 나는 원래부터 잠을 잘 땐 절대 배고픔을 모르는 동면형 인간이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자느라 굶다가 마뜩찮게 일어나 저녁 한끼를 먹고는 또 그 식곤증을 못이겨 픽 쓰러져 잔다. -_-;

겨울만 되면 동면들어간 곰탱이처럼 빌빌댄다는 핀잔을 익히 듣긴 했으나
요즘의 작태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끼니를 해결할 땐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음식물을 들여보내줘야 몸이 불안해하질 않는다. 불규칙하게 밥을 먹으면 살찌는 이유가, 굶주렸던 몸이 놀라 언제 또 음식물이 들어올지 모르니 무조건 저장을 해두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요즘 같아선 아무때나 제대로 챙겨먹는 끼니 한번에 두서없는 밤참 한두번이 나의 섭생이라, 이미 겨울 들어 두루뭉술 불어나던 살집은 나날이 사상 최고 몸무게를 경신하고 있다. 큭.
만날 고무줄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으로 늘어져 있으니 살집이 늘어나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도 안쓰고 살지만, 벌써 일주일째 머리 자르러 미용실 가야지 맘먹은 걸 실천 못하고 있는 걸 보면 거의 폐인모드에 접어든 것이라 짐작된다. 원래 머리가 길게 느껴지면 못 견디고 그날로 자르러 가던 격한 성질머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엉망으로 무너지고 있는 일상을 되돌리지 않으면 도저히 봐줄 수 없을 만큼 늘어지고 방만하게 진행되는 작업 스케줄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부디 내일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미용실 외출에 성공하길 염원하노라.
어제로 한톨도 없이 똑 떨어진 커피원두도 사야한단 말이지! ㅠ.ㅠ
(냉동실에 늘 서너봉지씩 들어있던 원두커피가 완벽하게 떨어진 것은 그 무엇보다 내 삶이 엉망임을 가리키는 지표 같다 흑...)
간만에 먹는 맥심 커피믹스는 참 맛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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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와 공주

투덜일기 2008. 12. 5. 16:28

왕비와 무수리가 사는 누추한 집엔 일주일에 한번씩 공주가 왕림한다.
각별한 보필과 우러름을 받는 것이 본능인 왕비와 공주.
그러나 서대문궁(?)엔 두분을 보필할 무수리가 하나 뿐이니, 다른 공간에서와 달리 그곳에선 각별한 관심과 보살핌을 선점하려는 할마마마와 공주마마의 세력다툼이 매번 불꽃을 튀긴다.
왕비와 무수리의 촌수는 1촌. 왕비와 공주 사이는 2촌, 공주와 고모 무수리의 촌수는 무려 3촌이다.
왕비는 그 점을 극구 강조하며 (가령, "할머니한테는 너보다 딸인 고모가 더 중요해! 그러니까 고모 고생시키지 마라!"라고 공격하심) 매번 공주 보필에 온몸을 다 바치는 고모 무수리의 행태를 못마땅해 하신다.
할마마마의 판에 박힌 잔소리를 들으면 어린 공주 또한 큰 눈을 더욱 크게 부라리며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참견하지 마!"라고 반박한다.
무수리는 즉각 버릇없는 공주의 태도를 나무라며, 누가 뭐래도 할머니는 '우리 엄마'이니 까불지 말라고 쏘아주지만 어려서부터 할마마마와 라이벌 관계였던 공주는 무수리의 핀잔 쯤은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다.

왕비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사실 고모무수리에게 공주는 11년째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기에 주변에서 아무리 손가락질을 해도 넘치는 애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자기 자식보다 첫 조카가 더 예쁘다는 속설이 있겠나.
아무튼 공주가 왕림하는 날이면 무수리는 일찌감치 장을 봐다가 공주가 원하는 반찬을 정성스레 만들곤 하는데 공주는 생긴 것과 달리 입맛은 소박하여 요구하는 반찬이라는 것이 빨간고기(깻잎을 넣은 제육볶음을 의미), 명란젓, 날치알 넣은 달걀말이 정도다. '안심 스테이크'라든지 '생 바질을 넣은 토마토 모짜렐라 치즈 샐러드' 같은 건 정릉궁에 상주하는 왕실 요리사에게나 청해야함을 익히 알기 때문일 것이다. ^^

우스운 건 왕비에게 늘 특별히 드시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면 그런 거 없다고 대답하시면서 공주가 왕림하는 날 부산을 떨며 뭔가 특별요리를 만들면, 콩알 만한 조카딸 하나 먹이려고 뭘 그리 애쓰냐고 타박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딸 무수리의 고생이 안타까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 만날 밥순이 노릇 하느라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걸 뻔히 알면서 왜 하필 공주 오는 날만 신경을 쓰시는지!
어젠 빨간고기 이외에도 공주가 좋아하는 고사리 나물을 볶으려고 왕비마마에게 손질을 부탁하였더니, 제사 때 나물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사리는 뭣하러 사왔느냐고 구시렁거리셨다. 나물 중에서도 공주는 고사리나물을 제일 좋아하는데!
혹시라도 공주 위주의 상차림에 왕비마마가 삐치실까봐 일부러 생태찌개도 끓여바쳤건만
어제 밥상에서도 왕비와 공주는 배추쌈을 놓고 또 한판 힘겨루기를 했다.
"할머니는 애기 배추 먹지마! 작은 건 다 내 거야!"
"다 같이 먹는 거지,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어!"
"아니야, 애기 배추는 원래 나만 먹는 거야! 할머니는 큰 배추만 먹어!"
"너도 반씩 잘라 먹으면 되잖아!"

어차피 손바닥만한 크기의 쌈배추라 크고 작은 걸 다툴 일도 없었는데... 나 원 참. -_-;;
공주 안 보는 사이 얼른 앙증맞은 노란 배추를 집어드는 왕비의 손길을 보며 무수리는 속으로 킥킥킥 홀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뭐래도 무수리에겐 첫번째 관심의 대상이어야 직성이 풀리는 왕비와 공주의 사소한 알력다툼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왕비마마는 자꾸만 아이처럼 어려지지만, 공주는 나날이 생각이 깊어지고 어른스러워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공주도 무수리와 함께 할마마마를 깍듯이 보필할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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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수다

투덜일기 2008. 11. 27. 17:35

내가 보기에 수다스러움은 성별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개인차일 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냥 수다스러운 이가 있고 말이 없는 이가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심하게 수다스러운 남자의 경우 그 정도와 혐오감은 그야말로 으뜸이다.
지난번 유럽영화제를 보러 코엑스에 갔을 때 지하철을 길게 타면서 꽤 심하게 지하철 멀미를 했기에 이번엔 비가 와서 길이 막히든 말든 버스를 타고 강남엘 갔었다.
확실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흔들리는 버스에 앉아 빗방울이 맺힌 차창을 내다보며 세상을 구경하는 재미는 마른 날과는 또 달랐다. 
문제는 소음.
갈 때는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방송의 수다스러운 남자 디제이 때문에 괴로웠다. 이래서 젊은 사람들은 다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구나 싶었다. 다음엔 나도 휴대폰 이어폰을 챙겨갖고 다니다가 몇곡 안되긴 하지만 저장된 음악을 들으리라 마음 먹었다. 그래도 라디오 소음은 익숙해지고 나니 배경음처럼 뇌리에서 지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돌아올 때 옆에 앉았던 남자의 수다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목소리와 발음은 목청 높여 설교하시는 목사님(죄송하지만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목사님들의 낭낭한 설교톤은 정말이지 싫다!)의 번드르르한 어투를 따라한 듯하여, 혹시 전도사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차림새나 들고 있는 가방도, 무슨 무슨 집사님이 찾아와 무슨무슨 일을 상의했으며, 성도회 6지구에서 하는 일이 잘 안되서 온종일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괴로웠다는 내용도 나의 짐작을 뒷받침해주었다.
처음엔 도대체 그렇게 길고 긴 하루 일과를 시시콜콜 들려주는 휴대폰 통화의 대상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10분쯤 지나자 상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지나고 있는 정류장과 동네 이름을 추임새로 넣어가며 남자가 20분 넘게 통화를 하는 상대는 아내였다. 4시도 안 된 시간에 퇴근을 하는 남자의 진짜 직업이 무엇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남자는 온종일 있었던 일과보고를 충실하게 마치더니 아이들은 지금 무얼 하는지 묻고는 조금 있다가 학원엘 가는 듯한 아이에게 간식으로 고구마를 주면 되겠다고, 아이가 잘 먹도록 삶은 고구마를 작게 잘라 포크로 찍어먹게 하라고, 그게 싫다고 하면 사과랑 귤을 반개씩 먹이고 우유를 마시게 하면 될 거라고 친절히 설명했다. 과자부스러기는 금방 배가 꺼질 거라나. 그러고는 4시반쯤 도착할 텐데 아내의 간식으로 먹을 떡볶이를 사갈까, 빵을 사갈까, 던킨에서 도너츠를 사갈까, 연신내에서 갈아탈까, 그냥 끝까지 가서 좀 걸을까, 오늘 저녁엔 무얼 먹게 해줄 건지 끊임없이 묻고 아내의 대답을 들었다.

강남역에서 내가 버스를 탔을 때부터 이미 연결되어 있던 남자의 통화가 그 낭낭하고 또렷한 발음으로 30분 가까이 이어지자 나는 머릿속으로 하필 그 남자 옆에 앉은 나의 선택을 저주하며, 남자의 휴대폰을 확 낚아채 비오는 창밖으로 내던지는 상상을 했다. "닥쳐! 시끄럽단 말이야!"라고 외치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힐끔거리는 승객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결국 남자는 30분을 넘겨 버스가 종로에 접어든 후에야 전화를 끊었고, 거의 멀미에 가까운 소음공해를 피해 대각선 앞자리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부들부들 남자에 대한 혐오감에 떨던 나도 다시 마음을 안정시키고 창밖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남자는 아내에게 둘도없이 자상하고 사려깊고 애정 넘치는 남편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 남자는 그저 버스안에서 예의없게 목청 높여 휴대폰 통화를 하는 무뢰한일 뿐이며
사소한 일도 홀로 결정하지 못하는 쪼잔하고 소심한 의지박약의 혐오남이었다.
그렇게 사사건건 간섭하고 지시하고 의논하고 질문하는 남자라면 난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오래 홀로 지내면서도 외로움이란 걸 모르는 것이겠거니 하면서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나는 말로든 글로든 이렇게 수다스러울지언정 주책없이 뻔뻔하고 수다스러운 남자는 정말 질색이라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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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건 싫다

투덜일기 2008. 11. 22. 11:15

갑작스레 영하로 뚝 떨어져버린 며칠 동안 차렵이불을 두 개 덮고 잤다.
원래 한겨울 용 이불은 퍽이나 두텁고 폭신한 무명 솜이불인데 12월도 되기 전에 그 이불을 꺼낸다는 건 죽도록 싫은 겨울이 벌써 완연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일부러 참았다.
원래 바닥생활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추위에 워낙 민감하고 싫어해서 도저히 침대생활은 자신이 없다.
옥매트나 전기담요를 깐다는 둥, 거금을 들여 돌침대를 샀다는 둥 침대 애호가 지인들의 겨울나기 방법을 들어보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따땃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안락함을 포기할 수가 없고
굳이 겨울이 아니더라도 침대에 누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느낌으론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내가 아파트를 싫어하는 이유엔 따뜻하지 않은 방바닥도 포함된다. 분명 실내 공기는 따뜻한데 바닥엔 별 온기가 없는 아파트의 방들... 참말로 정이 안간다. 
지은지 30년 가까이 됐어도 연탄 보일러, 기름 보일러를 거쳐 가스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낡은 우리집은 방바닥이 얼마나 따끈따끈한지 모른다. 물론 아파트보다야 외풍이 있어서 화장실과 마루는 춥지만, 조카들이 겨울이면 수시로 찜질방 놀이를 생각해낼 만큼 따끈따끈한 방바닥에 엎드려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거나 TV를 보며 등을 지지는 재미를 선사하는 방구둘의 온기는 그나마 견디기 힘든 계절의 버팀목이다. 

하기야 방바닥이 아무리 따뜻해도 추운 걸 못참는 내가 또 다시 낡은 이 집에서 올 겨울을 나려면 두꺼운 이불은 필수이니 다음번에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면 군말없이 한겨울용 솜이불을 꺼내 덮을 작정이지만
당분간은 차렵이불을 겹쳐덮는 걸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추위만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내가 이불 두장을 겹쳐덮고 잔다고 하면 지인들은 퍽 의아해한다. 자다가 보면 이불이 서로 따로 놀기 마련일 거라나. 하지만 잠버릇이 얌전한 편인 나는 자고 일어나서도 이불이 늘 그대로다. 어쩔 땐 잠자는 공주 자세로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잠들었다 그대로 깨어날 때도 있다. -_-; 자면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도 그리 건강한 수면법은 아니라지만 어쨌거나 나는 자면서 크게 뒤척이거나 돌아다니지 않는다.

얼마전 잠버릇 험한 조카들이 하도 이불을 차버려서 감기에 걸렸다는 올케의 얘기를 듣고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어렸을 때도 이불을 차버리지 않았는지.
엄마의 얘기를 들으니 나도 어려선 이불을 차버리고 잤단다. 그래서 엄마가 중간에 늘 다시 덮어줘야 했다고. 그 말을 들으니 이불을 차버리고 추워서 바들바들 떨다 이불을 덮어주시는 부모님의 손길에 잠결에도 행복해 했던 느낌이 아련히 떠오르는 듯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어린 시절 다섯식구가 한방에서 나란히 잠을 잤기 때문이다.
가끔 정민공주가 와서 자고 갈 때면 나는 거의 잠을 설친다. 험악하게 돌아다니며 자는 녀석을 다시 제대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는 무수리의 밤을 보내야하기 때문인데, 어려서부터 대부분 따로 재우는 요즘 아이들은 자다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질 무렵 엄마가 다시 이불을 꼭꼭 여며주는 손길의 기쁨을 모르고 살겠구나 싶은 것이 좀 안타깝다. 물론 침대에서 이불을 차버려 차가워진 몸으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면서도 깨어나지 않는다는 잠꾸러기 공주는 나랑 잘 때도 고모가 이불을 다시 덮어주건 말건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매일 자다말고 새벽에 아이들 방에 건너가 이불을 덮어주려고 일부러 깨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불 차버리고 자도 될 만큼 난방온도를 심하게 올리는 것 역시 안될 일이니, 잠버릇 심한 조카들의 겨울나기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풍요로워져서 좋은 것도 참 많지만, 온 식구들이 한방에서 겹쳐자던 불편한 어린시절이 요즘 조카들의 편한 삶보다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오로지 따뜻한 이불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추운 걸 싫어하는 마음은 똑같지만 그때의 추위가 지금보다 훨씬 혹독했던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과거와 추억만 바라보며 사는 건 늙어감의 징후라고 했거늘, 요즘 왜 이리 옛날 생각만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추운 건 싫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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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룡마을 꿈

투덜일기 2008. 11. 12. 17:01

정확히 어딘지는 몰라도 토룡마을은 외국이었다.
벨로와 나는 커다란 마트에서 초콜릿을 마구 골라 카트에 담고 있었다. (아마도 빼빼로데이 전날 정민공주와 마트에서 초콜릿 과자를 골랐던 장면의 흔적인듯 하다)
산타의 자루만큼 커다란 하얀 비닐 주머니의 바닥에 깔릴 정도로만 담긴 초콜릿을 들고 희희낙락 마트를 나서자 밖엔 키드님이 길쭉한 하늘색 올드모빌(몹시 낡았지만 지붕 없는 차였다!) 앞에서 인상을 잔뜩 쓴 채 기다리고 있었다. 쓸데없이 초콜릿을 많이 샀다는 타박을 들으며 우리는 얌전히 자동차 뒷좌석에 벌서는 이들처럼 앉아 어디론가 향했다. (현실과 달리 벨로와 나는 운전을 못하는 모양이고, 자동차 주인도 키드님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키드님의 집.
대저택이나 왕궁은 아니고, 그냥 널찍한 아파트 같은 곳이었는데 군데군데 놓인 여러개의 소파에 앉아 있던 토룡마을 주민들(열명도 넘었는데 다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은 모두 키드님 편을 들며, 벨로와 나의 초콜릿 쇼핑을 비난했다.
더욱이 우리가 쓸데없이 돈이나 쓰러 다니는 동안 그들은 각자 책을 한권씩 들고 앉아 읽고 있었는데
지다님은 표지가 새까만, 제목 글자도 안보이는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우리에게 혼 좀 더 나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벨로와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다른 때는 이거보다 초콜릿을 훨씬 더 많이 사도 아무 일 없었다고 구시렁거렸고 여긴 재미 없으니 또 밖에 나가자고 모의했다.
그러나 밖에 나가려면 키드님의 자동차와 운전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키드님은 우리가 또 외출을 하겠다고 하자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또 밖에 가면 아예 내쫓을 거라고 말했다. ^^

그런데 결국 나는 탈출을 감행한 모양으로 다음 순간 홀로 중고 자동차 매장에서 자동차를 고르고 있었다.
나는 옛날 미니쿠퍼를 사고 싶다는데, 거기 있는 자동차들은 죄다 5, 60년대 미국에서 생산된 낡은 픽업트럭이나 뚜껑없는 기다란 차 뿐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동물 털이 열쇠고리에 달린 차키를 받아든 나는 시운전을 해보라는 세일즈맨의 말에 마구 당황했다.
대리운전기사를 불러달라는 내 말에 세일즈맨은 멍한 얼굴을 지었고, 나는 우리나라엔 전화만 하면 대리운전기사가 득달같이 달려온다고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자꾸 말이 꼬여서 (영어였던 것도 같다) 진땀이 났다.

어쨌든 나는 빨리 차를 구해 달아나야 했다. 아니 뭔가 중요한 걸 사러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했는데... 그곳이 어딘지 기억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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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커피를 너무 늦게 마셨던 모양인지 오늘 아침엔 동이 트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집 전화벨 소리에 깨어나기 직전에 꾼 꿈이다. 잠결에도 너무 재미가 있어서 잊어먹지 말고 기억했다가 블로그에 써야지 마음먹고는 방금 꾸었던 꿈을 한번 죽 돌이켜 본 다음 이어 꿈을 꾸게 되길 바라며 다시 잠을 청했다.
또 한번 전화벨 소리에 선잠을 깨기는 했지만 토룡마을 꿈은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어디론가 홀로 여행을 떠난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구 헤매고 있었다.


해몽을 해보자면...
토룡마을 회동에 대한 기대심리, 해리님과 이요님이 함께 떠났던 뉴욕 여행에 대한 동경,
다른 주민들에 비해 떨어지는 독서량에 대한 자격지심, 토룡왕국 통치자 키드님에 대한 두려움(?), 초콜릿과 미니쿠퍼에 대한 열망 따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것이 아닐까.
꿈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기다란 하늘색 올드모빌 앞에서 못마땅한 얼굴로 기다리던 키드님의 표정은 분명 얼굴에 흉터 난 베어브릭과 똑 같았다. ㅎ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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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실망

투덜일기 2008. 11. 5. 16:25
좋게 말하면 세심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한 성격 때문에 나는 상대의 아주 사소한 것 하나로 신뢰와 정이 뚝 떨어짐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상대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령 어떤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을 받았는데 도저히 틀릴 수 없는 기초적인 맞춤법을 연이어 틀린다든지("축하들입니다"는 실수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도 이어 "축하들여요"라고 쓰더라)
욕설을 평소 지인들에 대한 애칭으로 사용하는 사람(지인들 사이에서도 가끔 장난삼아 한마디쯤 욕을 할 순 있겠고, 운전할 때와 화날 때는 나도 엄청난 욕쟁이지만서도;;; 친구한테 수시로 이새끼저새끼, 이년저년 하거나 대화중에 'C팔'을 추임새로 쓰는 따위는 못견디겠다.),
내 기준에서 틀리면 안될 것 같은 말을 실수하는 사람('버락 오바마를 '오바마 버락'이라고 했다. 그냥 오바마라고 했으면 될텐데;;).

책도 그렇다. 나로선 관심목록에 넣어두었다가 몇번의 망설임 끝에 사들였는데 책에 오탈자 투성이라면 당연히 오만정이 떨어진다. 하기야 책의 오탈자는 내가 보기에 <절대로> 사소하지 않다. 편집자와 출판사의 무성의와 급조의 혐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 3쇄를 찍은 책인데도 오탈자가 거슬린다면 출판사에 대한 신뢰마저 크게 무너진다. 그것은 물론 저자의 잘못이라곤 할 수 없다. 맞춤법을 확인하고 문장을 다듬는 교정교열은 어디까지나 편집자의 몫이니까.
하지만 저자의 선택임이 분명한 낱말 사용의 거슬림 또한 나에겐 정떨어짐의 원인이 되고, 저자에 대한 신뢰도 슬쩍 무너지는데 책이 마음에 드는 경우엔 안타까움이 더해져 괜히 나혼자 생병을 앓는다.
예를 들어, 요 며칠 불어터진 입술 핑계로 쉬면서 읽은 책들 중에 <소박한 정원>이 참 좋았는데,
방송작가 출신으로 정원 디자인 공부를 하는 저자가 참 맛깔스럽게도 글을 쓰더니만 찰스 <황태자>, 다아애나 <황태자비>라고 적어놓은 걸 본 순간, 마당과 정원에 대한 나의 열망을 담아 120%로 치달았던 책과 저자에 대한 애정이 별안간 7, 80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황태자, 황태자비라니.
설마 저자가 대영제국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제국주의자일 리도 없는데 왜 왕세자, 왕세자비로 바꿔쓴지 오래 된 그 말을 그렇게 썼을까, 괜히 혼자 추측과 억측을 거듭하며 별일 아닌 걸로 괴로워하던 나는 급기야 지은이가 영국까지 정원공부를 하러 간 사실까지도 부유함의 상징이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스스로 참 못났다 여기며 얼른 책을 덮었다.

그러고 보면 요샌 뭘 하든 뭘 보든 좋은 면보다 실망스러운 면을 더 열심히 찾고 있는 나를 느낀다.
번역서을 읽으면 유려한 문장보다 어색한 문장과 비문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고
영화를 봐도 꼬투리 잡을 부분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기며
사람이든 사물이든 예전엔 쉽게 보아 넘길 수 있었던 작은 실수가 큰 실망으로 자리잡는다.
남들이 보기에 나 또한 그렇게 실수 많고 허점 많은 인간일 텐데 왜 이렇게 자꾸 비호감형으로 변해가는지 원.
사소한 실망을 점점 심대한 실망감으로 마음에 새기는 요즘 나의 꼬락서니가 아무래도 마음에 안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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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가 뭔지

투덜일기 2008. 11. 1. 16:19

얼마 전 머리를 볶았다.
꽤 오래 생머리 형태를 유지했던 듯, "웨이브는 얼마만에 하시는 거예요"라고 묻는 미용사 말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눈을 찌르다 못해 커튼처럼 드리워진 앞머리 때문에, 그리고 산뜻한 기분전환을 위해 선택한
미용실행은 확실히 판에 박힌 지루한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주긴 했다.
가느다란 머리칼을 탓하며 몇번이나 시간을 연장한 <디지털 파마>의 실체는 꽤나 꼬불거려 탱탱한 라면발을 연상시키지만 짤똥한 앞머리와 함께 경쾌해진 분위기에 그날만은 흡족했었다. 문제는 미용실에서 갓 손댄 머리라는 것이 전문가의 손을 탔을 땐 퍽 멋져도 나몰라라 방치하거나 손질을 제대로 못했을 땐 영 아니올시다라는 점이다. 더욱이 요즘은 일주일씩 집에 틀어박혀 지내며 세수도 게을리하는 판국이라 가끔 외출을 할 때도 머리손질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여(그저 후르륵 말리고 왁스만 발라주라 했음에도!) 집밖을 나설 땐 나도 모르게 자라목이 되는 것 같다. 
미적 감각과 눈썰미가 뛰어난 정민공주가 베개에 비벼댄 티가 나는 내 머리를 보고 "고모 머리 쫌 웃기다!"라고 말한 것도 영 찔렸다. 길지 않아 단발에 가까운 길이의 머리를 달달 볶고 앞머리를 가지런히 내려 눈썹 위에서 잘라놓은 내 머리모양을 보며 미용사는 "너무 귀엽지 않아요??"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요즘 머리를 감고 나서 거울을 보면 흡사 한 마리 양을 보는 것 같다. -_-;;

바뀐 머리모양에 대한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패션을 좀 아는 지인들(이라고 믿고 싶다)은 대개 칭찬을 해준다. 나와 미용사가 의도했던 대로 "더 어려보인다"는 말도 서슴없이 할 정도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미용사는 자기 작품에 심취되었으니 당연히 마음에 들어 할 터이고, 칭찬을 해준 지인들은 아마 내가 도저히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왕촌스러운 머리를 하고 나타나더라도 나름의 장점을 찾아내 예쁘다고 해주었으리라는 것을. 그들에겐 이미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10년, 20년된 지기나 선후배들이 가끔 만나서 "하나도 안변했다"고 거짓말 하는 것도 같은 원리일 것이다.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은 나이들어가는 내 모습에서도 굳이 옛모습을 찾아내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분위기를 기뻐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의 안목은 또 다르다. ^^;
그분들 눈엔 그간 파마기도 없이 숱없는 머리를 짤막하게 자르고 다닌 모습이 영 마음에 안들었던지 보글보글 볶아놓은 머리가 꽤 마음에 드는 눈치다. 지난주말에 만난 친척 할머니는 나에게 "얼굴이 좋아졌다. 예뻐졌다. 머리가 달라져서 그런가보다"고 활짝 웃으며 말씀하셨다. +_+
크...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은 이제 이 사회에서 더는 칭찬이 아니지만, 나는 그 의미를 잘 안다. 허구한날 밤샘 뒤끝이라 시커멓게 죽은 얼굴에 볼품없는 머리(적어도 어르신들 눈에는;;)를 하고로 나타나던 내가 보글보글 양머리를 하고 나타났으니 기특했을 게다.
그런데 또 울 엄만 마음에 안드는 눈치다. 첫날에 마지못해 예쁘다고 해주긴 했지만, 짤똥한 앞머리를 보며 "웬 정민이 같이 머리를 자르고 왔냐?"고 물었다. 마치 나에겐 안어울린다는 듯이 ㅠ.ㅠ

하지만 도대체 왜 아줌마(!) 나이가 되면 죄다 보글보글 짧게 말아붙인 파마머리를 해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장 편리한 머리라는 건 나도 잘 안다. 베개에 잔뜩 비벼 새집을 지었더라도 분무기로 물 몇번 뿌리고 쓱쓱 빗으면 용수철처럼 되살아나는 것이 바로 아줌마들의 짧은 파마머리라는 것을.
전적으로 개인취향이긴 하지만 50대 아줌마가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건 또 영 어색하다. 머리칼의 색깔 탓일까? 외국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니 심지어 백발이 됐더라도 길게 어깨 너머로 머리를 기른 모습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데 왜 우리나라 아줌마와 할머니들의  풀어헤친 긴 생머리는 어색하다못해 주책맞게 느껴지는지.
나보다 연배가 있는 친구들의 항변은 그렇다. 나이가 들면 머리칼에 탄력이 떨어져 생머리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단다. 푸슬푸슬 바스라질 것 같고 숱도 없는 생머리보다는 그래도 달달 볶아 놓으면 풍성해보이기라도 한다나.

어쨌거나 억울한 건 이번 나의 <웨이브 파마> 선택이 순전히 가을맞이 기분전환용이었을 뿐이며
절대로 내 나이에 걸맞은 머리모양을 선택한 게 아님에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어젠 마트에 장보러 갔더니만 내 뒤통수에 대고 "어머니! 오늘 대하가 좋습니다"라고 비닐 앞치마를 두른 청년이 외쳤다. 차라리 아줌마가 낫지, 마트 고객을 대놓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서비스 정말 싫다!
요새 비혼인구가 얼마나 많은데...
파마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생머리로 다닐 땐 그 마트에서 <어머니>라고 불린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마음 상했다.
나이를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생각은 하지만 연령주의에 사로잡힌 이 사회에서 나 또한 동안을 추구하고
노숙해보인다는 말보다는 어려보인다는 말이 좋다.
20대 직장인시절 사진을 보면 옷차림만으론 거의 40대로 보일 정도로 각 잡힌 정장을 입고 다녔는데
요샌 오히려 만날 티쪼가리에 청바지, 편한 재킷이면 만족이다.
그나마도 출판사에 갈 땐 꽤나 단정히 차려입으려 노력했던 것도 귀찮아서 관뒀다. 출판사는 그나마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대부분이지만 숨막히는 사무실 공기가 싫어서 담당자를 밖으로 불러내 만나는 것이 더 좋아졌고, 출판계 지인들도 그 편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비즈니스를 하려면 첫만남에서 성실한 인상을 주어야한다는 강박관념도 사라졌다. 예전과 비교하면 마감일 어기기 대장이 되었다고 반성하고 있지만, 나 정도면 사실 양반이란다. 한두달 늦게 원고 넘기는 건 애교스러울 정도라나. (그러나 1년 넘게 질질 끄는 원고도 있다는 걸 그 사람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ㅋㅋ) 

오늘도 앞머리를 실핀으로 질끈 올려붙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방을 들락거릴 때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면 피식 웃음이 난다. 2주가 다 돼가는 이놈의 양머리에 아직도 적응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겨서라도 미소를 주는 이 머리를 재빨리 펴거나 잘라버릴 생각은 없다.
이건 절대로 아줌마 파마가 아니란 말이지!
어디까지나 양머리 파마다, 양머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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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투덜일기 2008. 10. 22. 14:35
벽에 붙여둔 스케줄표를 확인하다 2008년이 두달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별안간 손이 벌벌 떨렸다.
두달.
달력은 그저 시간의 연속성 위에 그어놓은 눈금에 불과하며, 우주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면 수십억년 되는 지구의 세월도 찰나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을 환기시키려 해도 현실의 촘촘한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인 나는 매번 허둥대며 해를 넘긴다.
이런 나에게 가을이 특별히 허허로운 건 가혹하게 해를 넘겨버리는 겨울이 혹독한 추위와 함께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저 스케줄 표에 몇개 더 원고를 표시하면 올해도 끝이라는 생각을 하니 어깻죽지에서 힘이 더 빠져나간다.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을 핑계로 2007년 스케줄 표를 떼어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붙여둔 행위가 상징하듯 나는 다분히 과거지향적이며 시간의 흐름에 척척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지의 사건들보다는 꽤 아팠더라도 다 지나버린 과거의 흔적과 추억들이 더 소중하니 큰일.

내년엔 무슨 색깔로 스케줄 표를 만들어야 쳐다볼 때마다 기운이 쑥쑥 날지 원.
커피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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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투덜일기 2008. 10. 10. 20:45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해가는 기후에 적응하려는 신체와 정신의 노력 때문인지 펄럭펄럭 감상의 과잉이랄지 이유없는 변덕과 이런저런 탐욕에 휩싸이는데 나의 경우 그 정도가 가장 심한 계절은 역시 가을이다.
봄엔 대책없이 희망과 낙천주의에 휩싸여 싱숭생숭한 마음의 방향도 아스라한 행복으로 치닫는 데 반해, 가을엔 줄어드는 일조량 탓에 우울 인자가 늘어난다는 학자들의 분석결과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툭하면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져 기어다니거나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사실 늘 비어있는 곳임에도;;) 찬바람이 숭숭 몰려드는 까닭모를 처연함에 휩싸이게 된다.

가을만 되면 스카프 열망이 타오르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열어보며 입을 옷이 없다고 뻔한 투정을 되풀이하며 소비욕에 불을 댕기는 것과는 약간 다른, 스산함에 허덕이는 가을 영혼을 어떻게든 보듬어 위로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계절의 옷타령은 그저 새로이 '입을 옷' 장만에 대한 욕구에 지나지 않으므로 해마다 소비의 대상이 다양하고 특별히 어떤 재질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티셔츠나 청바지, 반바지, 원피스, 가볍고 따뜻한 외투 정도의 단품들이 떠오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을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나는 왜 이리도 가죽에 탐닉하게 되는지.

새로 산 운동화 냄새라든지, 휘발유 냄새라든지, 사람마다 독특하게 좋아하는 냄새가 있기마련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질 좋은 가죽 냄새(코를 찌르는 노린내 가죽 냄새를 말하는 게 아니다!)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동물보호 차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진짜 동물털과 가죽으로 만든 옷과 가방 따위를 거부하고 인조모피와 인조가죽을 애용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주장도 확실히 맞는 말이고, 나 역시 아무리 나이가 들어 뼈에 찬바람이 스미는 노인이 된다해도 작은 동물 수백마리를 조각조각 난도질해 이어붙인 모피코트(옷깃과 소매 정도에 두어마리 동물털을 장식으로 붙인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이미 갖고 있기도  하고;;)를 입고 다닐 생각은 없다.
그런데 양가죽이나 소가죽의 경우는 좀 다르다. 어차피 같은 가죽이고 가엾은 짐승을 도축해 얻은 재료라고 비난하면 어쩔 수 없지만 짐승들이 가여워서라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난 아직 고기를 꼭 먹어야 힘이 나고 살 것만 같은 야만스러운 인종이라 그 가죽에 대해서도 양심이 좀 덜 찔린다(고 우길란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대두되면서 그간 인간의 탐욕 때문에 여러 동물들이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학대받고 있는지, 일부 인구의 육식 편향 입맛 때문에 또 세계 기아인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많은 양의 옥수수와 곡식이 가축의 사료로 쓰이는지 다각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지만, 민망하게도 나는 아직 육식을 포기하지 못했고 이왕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짐승들이 제 몸가죽까지 속속들이 인간에게 바친다는 사실에 그저 고마워하기로 했다. ㅠ.ㅠ

자꾸 자기변명이 길어지려 하는데, 어쨌든 비난을 받거나 말거나 가을이 오면 내가 특히 가죽옷에 심취한다는 얘기다. 스카프처럼 부담없이 마구 사들일 수 있는 물건은 아니므로 많이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열망이 커지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색깔이며 디자인이 어떻게든 색다르면서도 10년이상 전혀 유행과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멋진> 가죽재킷을 장만하고 싶다는 욕망은 희한하게도 가을마다 빠짐없이 불타오른다. 긴것, 짧은 것, 검정색, 빨간색, 갈색으로 이미 기본적인 디자인의 가죽옷은 갖고 있건만, 자신없다는 생각에 선뜻 장만하지 못한, 폭주족을 연상시킬 정도의 과감한 디자인도 늘 선망의 대상이고 이런저런 깃의 모양에 따라 색색깔(짙은 파랑색, 초콜릿색, 따뜻한 베이지색, 검정색 짧은 것...)로 질 좋은 가죽옷을 옷장에 주르륵 걸어놓고 있으면 마구 기운이 솟아 스산하고 처연한 이 가을을 힘내서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ㅋㅋ

가죽 가방 또한 마찬가지다.
몇년동안 꿈의 가방이랄 수 있는, 큼지막하면서 장식이 요란하지 않고 가죽의 질과 냄새마저 좋은 짙은 색깔의 가죽가방을 찾고 있었는데 동물보호의 목소리를 높이는 누군가의 열변에 귀가 얇아져 제풀에 포기하고는 차선책으로 검정색 인조가죽 가방 하나를 사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이 블로그에 써놓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가방은 1년반쯤 꽤나 사랑을 받다가, 마음에 꼭 드는 것이 아닌 한 이내 싫증 잘 내는 주인의 눈밖에 나 차츰 방 한 구석에 걸려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결국엔 요란한 장식 한 군데가 늘어졌다는 것을 핑계로 단박에 퇴출되고 말았다. 그나마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신세가 된 것은 아니고, 골목어귀에 서 있는 구세군 기부함으로 들어갔으니 원주인이 아니고선 잘 알아볼 수 없는 장식의 <흡집>을 감춘채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위로하고 있다.
그러고는 내가 또 다시 꿈의 가방을 찾아헤맸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될 터이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결국 내가 그리던 꿈의 가방 자질에 최대한 가까운, 당연히 질 좋은 가죽이기도 한 녀석을 장만하고야 말았다. ^^
작업실 포기 기념이라며 말도 안되는 구실을 붙여 나에게 주는 선물로 명명한 그 녀석을 한달 가까이 손꼽아 기다리다, 드디어 태평양을 건너온 녀석과 상봉하던 날 비닐을 벗기고 나서 풍겨오는 은은한 가죽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쓸어 그 부드러운 감촉을 만끽하며 내가 얼마나 흐뭇했었는지 헤벌쭉 흐르는 미소 속에서 돌연, 혹시 이거 가죽 페티시가 아닌가 염려되기도 했다. 

한동안 옷장 손잡이에 가방을 걸어놓고 감상하다 가끔 쓰다듬으며 올 가을의 가죽 열망은 좀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그럴 리는 없다. 오늘 오후 물도 안 든 주제에 벌써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큼지막한 플라타너스 잎들을 밟으며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나는 불쑥 초콜릿색 가죽재킷을 사러가고 싶어졌다.
그나마 마트 앞에 <홍옥이 나왔어요!>라고 적힌 팻말과 함께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빨간 홍옥사과의 자태를 발견하는 바람에 올 가을 처음 새콤달콤한 홍옥 맛을 볼 생각에 정신이 팔려 얼른 지갑을 열었기에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백화점 세일기간이라는데 구경이라도 한 번 가볼까... 하는 소비욕망을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야흐로 가을은 가을이다.
홍옥이 나왔고, 높은 하늘은 푸르고, 괜히 쓸쓸하고, 가죽생각은 절로 나고...
유치하고 부끄러운 나의 가을 타령은 시작됐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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