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07.07.07 天崩 4
  2. 2007.06.18 살얼음 8
  3. 2007.06.12 일주일째 11

天崩

투덜일기 2007. 7. 7. 13:18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줄곧 깨닫는 나날이었다.
중3때까지 아버지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멋진 남자였고
그 이후에도 정신연령이 심히 낮은 딸에겐 계속 자상하고 멋진 '아빠'였는데
그런 아버지가 이젠 곁에 안계신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질 않는다.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 계시는 동안에도, 멍한 슬픔 속에 꽤 복잡한 절차의 장례를 치르는 사이에도 모든 것이 그저 나쁜 꿈이길 바랐는데, 악몽은 결국 잔혹한 현실이었다.

아직도 엄마랑 둘이 방에 누워 게으름을 부리고 있으면
일찌감치 등산 가셨다가 일부러 무거운 등산화 발자국 소리를 쿵쿵 내며
금방이라도 아버지가 계단을 올라오실 것만 같다.

아버지의 흔적으로 가득 찬 집으로 돌아와서 과연 두 모녀가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다들 몹시 걱정했었는데
시선을 어디로 돌려도 느껴지는 아버지의 흔적이 오히려 반갑고 고맙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슬픔은
그저 그리움과 눈물로 풀어나갈 밖에 없지 않을까.

그간 마음써주고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워하며
씩씩하게 잘 견디려고 노력해볼 생각이다.

Posted by 입때
,

살얼음

투덜일기 2007. 6. 18. 22:01
날씨는 폭염이지만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금방 안심하고 돌아서면 5분도 채 못돼서 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졌으니
중환자실 밖에서 대기하란 연락이 온다.

매일 아침 나는
햇살이 너무도 찬란하니까,
하늘에 구름 한 점도 없으니까,
까치가 유독 반가운 목소리로 창밖에서 울어대니까,
아버지가 키우시던 화분에 새로이 꽃이 돋아나고 있으니까,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신호등을 한번도 안 걸리고 통과했으니까...
별의별 이유를 들어 희망을 품으며
오늘은 꼭 아버지가 의식을 되찾고 눈을 뜨셨을 거란 기대로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친지들의 간절한 바람은 계속 찬서리를 맞고
복잡한 기계와 호스에 둘러싸여 누워 있는 아버지는 아직도 좀체 깨어날 기미를 안보이신다.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버리려고 애는 써보지만
두려운 마음엔 덜컥덜컥 성급함이 밀려든다.

오래도록 병상의 아버지를 지키려면
이제 조금은 일상으로 돌아가 일도 해야 한다고 스스로도 되뇌기는 하는데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다.
놀란 엄마를 혼자 두는 게 안쓰러워 컴퓨터 앞에 앉는 것도 죄스러운 지경이라
대부분 두 모녀가 나란히 손을 잡고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다.

편히 잠드는 것도 꾸역꾸역 밥을 먹는 것도 구차하고 허망한데
보호자인 우리가 튼튼해야 아버지를 잘 지킬 수 있다는 원칙에 매달려 그래도 잘 버티고는
있는 것 같다.

오늘도 폭염속에 살얼음을 한 뼘 또 건넜나 보다.
누구보다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계실 아버지가 잘 견뎌주시길 빌뿐이다.
올해는 우리 가족 모두 가장 덥고도 추운 여름을 보내게 되는 듯...
Posted by 입때
,

일주일째

투덜일기 2007. 6. 12. 14:11

지난주 화요일부터 일주일째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위해
모두의 기도를 바라는 글을 잠시 올렸다가 내린 이유는
혹시라도 내 이기심 때문에 누군가 괘씸죄를 적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병원에서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을 모든 환자들과 가족, 그 주변 사람들 모두
나와 같은 기도를 올리고 있을 테니까.

분명, 주변 사람들의 기도가 부족해서 누군가의 운명이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전히 나는...
착하고 고운 심성으로 하늘과 절대자의 마음을 울릴 누군가의 기도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짧은 면회시간에 잠시 뵙고 나온 아빠는
금방이라도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실 것만 같은데
의사들은 단호한 어조로 무서운 확률과 절망적인 가능성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처구니없이 꼬리를 내리려는 의학의 힘보다 우리는 늘 건강하셨던 아버지의 의지력과 하나로 모인 모든 이들의 염원을 믿고 기다릴 테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