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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4 목욕탕 주인 12
  2. 2008.09.22 이어지는 버리기 8
  3. 2008.09.19 버리기 12
  4. 2008.09.08 결심 13
  5. 2008.08.30 사랑니 10
  6. 2008.08.27 잡다 12
  7. 2008.08.22 춥다 14
  8. 2008.08.12 더위는 이제 그만 4
  9. 2008.08.08 덥다덥다덥다 6
  10. 2008.08.02 뒤끝 6

목욕탕 주인

투덜일기 2008. 9. 24. 00:51

신경숙의 작품이었는지, 강석경의 작품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아주 오래 전 읽은 소설에서 <목욕탕 주인> 같은 존재라는 표현이 퍽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얼마 안되는 돈에 열쇠를 내주고는 사람들이 입던 남루하고 허름한 옷을 보관해주는 동네 목욕탕 주인 같은 존재로 주인공이 자신을 묘사했던 것 같은데, 요즘이야 목욕탕도 찜질방을 끼고 거대한 기업처럼 운영하는 추세이니 그때의 그 느낌을 지금 독자들은 아마 과거의 나처럼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려나 나는 요즘도 가끔 그 구절을 떠올리며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편하다못해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목욕탕 주인> 같은 존재가 아닌가 슬며시 화가 치밀 때가 있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은 나의 신변, 그러니까 아직도 속박에서 자유로운(?) 상태라는 점과 밤에도 늘 깨어있기 십상인 직업 특성이 더해져 나는 지인들이 한밤중 찾아온 난데없는 불면을 가눌 길 없어 괴로워한다거나 취중 귀가길에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술주정이 발현했을 때 종종 통화상대로 낙점되고 만다.

따지고 보면 다 내탓이다.
옛날부터 나는 쓸데없이 친구들의 고민들어주기 및 상담에 뛰어난 척 행동했고, 연애도 잘 못하는 주제에 지인들의 연애사엔 언제나 처음부터 억지 조언자가 되어야 했다.
사실 모든 문제는 본인이 풀어나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귀담아 들어주다 간간이 맞장구를 쳐 용기를 북돋아주면 내 역할은 끝이 나는 셈이다. 물론 과거에는 강력하게 나의 주장과 충고를 해결책이랍시고 들이민 적도 있었지만, 파란 많은 연애로 고민하는 지인에게 <그딴 놈/년이랑 당장 헤어져!>라고 조언했는데 며칠 뒤에 도저히 못 잊겠다며 재결합하는 커플들을 몇번 겪은 뒤로는 특히 남녀문제의 경우 섣불리 내 의견은 섞지 않게 되었고 몇년 전부터 연애 상담은 골치아파서 아예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와 더불어 나이 지긋해진 주변 지인들이 차라리 결혼의 위기를 겪을망정 연애질을 하는 건 드문 상황이 한편으론 서글프면서도 어쩔 땐 오히려 반갑달까. -_-;;

물론 측근들에게 가장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상대가 된다는 건 친구로서 의미있는 일이고, 나 역시 앞뒤 잴 것 없이 고민거리를 주절거림으로써 그것만으로 속이 후련해지는 지인들이 곁에 있음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친척에도 촌수가 있듯 관계에도 급수가 있으니, 모든 지인들에게 똑같은 관심과 부담의 정도를 할애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취중이든 맨정신이든, 뜬금없이 몇달만에 전화를 걸어선 다짜고짜 자기 삶의 하찮음과 짜증을 나에게 같이 짊어져주기를 바라거나, 무조건 그 때가 좋았지, 옛날이 그리워 따위의 하소연을 늘어놓는 <급수 먼> 지인들의 투정은 이제 정말이지 버겁고 짜증스럽다. 그렇다고 확 관계를 끊어버릴 만큼 하찮은 급수의 사람들은 아니니, 앞으로도  나는 고요한 한밤중에 갑작스레 울려대는 전화벨을 무시하지 못하고 휴대폰이 뜨끈뜨끈해질 때까지 반복되는 푸념을 들어주어야 하는 목욕탕 주인 같은 운명이란 말인가. 젠장.

간만에 면벽하여 도닦듯 분위기 잡고 일 좀 해보려고 앉았다가 완전 기분 잡쳤다.
한밤중에 울려도 반가운 전화도 있으니 아예 전원을 꺼놓을 수도 없고 이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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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대신 살림을 하면서 웬만한 음식들은 별 두려움 없이 척척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설거지는 워낙 요리보다 즐기던 거라 별 어려움이 없는데 역시 난관에 부딪치는 부분은 정리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오징어 볶음을 해먹었다고 치자. 일단 접시에 덜어 한끼니를 먹고 나면 당연히 남는 양이 있기 마련.  남은 음식을 뚜껑있는 보관용기에 넣으려고 할 때 난 왜 그렇게 음식 양에 <딱맞는>통을 짐작하지 못하는지.
무쳐놓은 나물이 통에 비해 엄청 많다고 느껴져 다른 그릇을 찾아들면, 엄마는 살림의 고수답게 넘치지 않게 통에 들어갈 테니 염려 말고 담으라고 하시는데 그 말은 늘 옳다.
그래서 또 많아 보이지만 다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관용기를 고르면 턱도 없이 작을 때가 많다. 한 마디로 눈썰미가 형편없고 크든 작든 공간감각이 부족하다는 얘기.

이번 이사 때도 그랬다.
작업실에 책이 얼마 없다고 생각했지만, 옷장 안에 두겹으로 겹쳐놓은 책들과 종류별 크고 작은 사전까지 챙기니 얼추 네박스나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똑똑한 사람 같으면 책의 권수를 세어, 버린 책의 권수와 따져보고 필요한 책꽂이 공간도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멍청한 나는 책꽂이 선반을 세 개나 비웠으니 대충 책이 다 들어가겠지... 라고만 짐작했다가
이삿짐을 옮겨 박스를 풀고 나서 또 다시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_-;;

그래서 책 둘 장소 때문에 이번에 뒤늦게 또 대거 내다버린 것들은 비디오 테이프.
옛날에 중고 비디오 가게를 기웃거리며 사들인 테이프들은 그나마도 많이 버리지 못했고^^;;
dvd를 사두기 훨씬 전에 열심히 공테이프에 녹화해두었던 ER 시리즈,
케이블 영화채널 주간편성표를 들여다보며 한참 예약녹화에 힘쓰던 시절에 만들어둔 이런저런 영화 복사본들,그리고 EBS 세계의 명화와 명작드라마 자막번역한 영화들은 최대한 추려내고 다 내다버렸다.
3년간 들춰보지 않은 건 앞으로도 들여다볼 확률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몇편은 교육적인 EBS용으로 편집하지 않은 걸로 소장해두고 싶어서... (라지만 몇년 뒤엔 또 미련 없이 다 버리게 될 것 같다 ㅋㅋ)

내내 마르고 건조하던 날씨가 꾸물꾸물 흐려져 난데없이 비를 뿌리던 지난 토요일 오전.
드디어 나의 <자기만의 방> 시대는 막을 내렸고, 온몸을 근육통에 시달리며 또 다시 이틀 꼬박 이리저리 옮기고 내다 버리고 쑤셔넣어 정리를 했건만, 그럭저럭 제 모습을 찾은 건 마루와 자는 방뿐이다.
첫날엔 큰 집기와 책들만 대충 꽂아두고 엄두가 나질 않아 엄마방에서 자야 했을 정도.
작업실에선 그리 커보이지 않던 책상은 원래 컴퓨터 책상이 있던 자리에 놓이지 않을 만큼 길었고, 그래서 애써 자리를 잡아 옮겨 놓았던 책장은 또 다시 맞은 편 벽쪽으로 옮겨놓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또 다른 살림의 이동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크게 힘쓰는 일은 막내동생이 다 해주긴 했지만, 버리기와 정리 과정은 계속해서 고된 노동이었다.
아직도 컴퓨터방은 여전히 폭탄 맞은 상태. 면벽하듯 모니터를 대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여전히 CD박스, 정리하지 못한 가방들, 사진, 문방구가 가득 든 종이백들이 방바닥에 널려 있다.

그래도 오늘은 기필코 정리를 마치리라 마음 먹고 동사무소에 가서 대형폐기물 신고를 했는데, 크헉 소파는 무려 만원이나 한단다. 버리는 게 수월하지 않음을 상기시켜주듯 소파와 책상, 의자를 버리는데 드는 비용이 만육천원. 
알량한 작업실 살림 이사하면서, 삶은 단출하게 꾸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계속 얻고 있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욕심 줄이면서 검소하게 살아야지.

(아 근데, 구매대행사에 주문한 '검정가죽'가방은 왜 안오는 걸까...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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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

투덜일기 2008. 9. 19. 03:04

청소와 정리.
운동과 더불어 내가 제일 못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연휴 이후 매일 청소와 정리에 힘쓰느라 컴퓨터 앞엔 거의 엉덩이를 붙일 새가 없었다.
20일까지 작업실을 비워주기로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살림의 대이동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만의 방>에 대한 미련이 워낙 질기기도 했지만, 30년 가까이 이사라고는 해본 적 없는(작업실 시작할 땐 다 사들여 배달시키면 됐기 때문에 공식적인 '이사'날 나는 커피와 커피메이커와 머그잔 몇 개 든 비닐을 달랑 들고 입주했었다)  내가 트럭을 부르고 이삿짐을 꾸려 살림을 옮기는 어마어마한 일을 실행하는 것이 두려워 그토록 우유부단하고 미련맞게 쌩돈을 허비했구나 싶다. 옮길 짐이라봤자 소파랑 책상, 책 몇 박스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 짐도 그보다 크게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이사' 스트레스 지수가 거의 '배우자의 죽음'에 이를 만큼 높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하는 중이다.
계산 상으로는, 집에서 쓰던 컴퓨터 책상과 오래된 소파를 버리고 작업실에 장만했던 책상과 소파를 들여오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일단 내가 쓰는 마루에 있던 소파는 2인용이고 작업실 소파는 3인용이니 공간이 더 필요하고, 작업실 옷장에 들어 있던 책을 꽂을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마루에 있던 큰 책장과 방에 있던 낮은 책장의 위치를 바꿔 소파 놓을 공간을 일단 확보하긴 했지만, 그런다고 작업실 옷장에 들어있던 책을 꽂을 공간이 새로 마련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래서 이참에 몇년에 한번씩 하는 <책버리기> 행사가 시작되었다.
책은 잘 읽지도 않는 주제에 또 폼 잡는 건 좋아하니, 탐서가랍시고 책 욕심은 좀 많은가.
그나마 요샌 마구 사들이는 책은 좀 줄었지만 출판사에 갈 때마다, 또는 출판계 지인들이 주섬주섬 챙겨주는 책을 얼씨구나 받아와 여기저기 쌓아두곤 언젠간 다 읽어보리라 마음 먹지만 절반 쯤은 먼지만 쓰고 처박혀 있기 일쑤다.
이왕 버릴 책이라면 도서관에 기증하면 좋겠지만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그렇게 기특한 수고를 도맡을 리는 거의 없다. 지난번에도 도서관이든 하다 못해 대여점에라도 갖다주는 게 폐지로 팔려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오래 고민했지만 결국엔 귀찮아서 그냥 끈으로 묶어 집앞에 내놓고 말았었다.
이번에도 책장 한번 들춘 게 전부인 새책들을 대거 묶어 내놓으니, 엄마는 자꾸 잔소리를 하며 잘못 내놓은 게 아닌가 확인을 하셨다. 오래 두어도 절대 읽지 않을 것 같은 얻어온 새책들과 왜 굳이 사서 읽었는지 모를 책들까지 40여권을 추려내 버렸지만 그래도 책꽂이는 마냥 부족한 형편.
결국 엄마네 마루에 있는 책장까지 침범해 오래 된 아버지 책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 무던히도 인내심을 발휘해 도전했다 포기하기를 수차례 거듭하며 읽었던, 책등이 누렇게 변한 세로판형 삼국지 양장본 같은 책들은 버리기가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눈 질끈 감고 내놓았다.
대체 왜 사셨는지 모를 거대한 판형의 10권짜리 총천연색 세계여행안내서도 내다버렸다.
백권도 넘는 책들을 추리고 묶어 내놓는데만 꼬박 반나절이 걸린 것 같은데, 어설픈 체력은 그 노동만으로도 나가 떨어질 지경이었고 추석 연휴 때 섭취한 영양분이 다 빠져버렸다.

꼬박 이틀간의 집정리와 청소를 마치고 작업실에 나가보니, 별것 없다고 생각한 그곳 살림살이도 만만치가 않았다. 집기 손상은 책임 못 지겠지만 힘센 인부들을 동원한 최저가 이사비용을 장담한 막내동생에게 이사를 맡기려니 포장 과정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컵과 잔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부엌 살림만 두 박스를 챙기고 나니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책정리를 앞두고는 달콤한 과자와 커피를 헐레벌떡 먹고 마셔야 했다. 

작업실 살림은 최대한 단출하게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그나마도 버릴 것이 많지는 않지만, 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겨 챙겨둔 책상 서랍속의 카드, 편지, 탁상달력은 버릴까말까 오래 고민하다 일단 그냥 벌려두고 철수했다.
정리는 못하지만, 버려야 할 때 버리는 건 꽤나 과감히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닌 듯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 소규모는 이사랄 것도 없지만, 이사는 곧 <버리기>라는 걸 깊이 실감하고 있다.
이제 이틀만 더 버리기에 힘쓰면 끝.
본격적인 이사는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삭신이 쑤시고 아프다. 어휴.

포장이사를 하면 또 다르긴 하겠지만, 나 같은 인간은 2년마다 한번씩 이사다니며 부동산 늘려 부자될 생각 꿈도 못꿀 것 같다. +_+
(처음 글을 쓸 땐 이런 결론을 내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간만에 글을 쓰니 완전 갈팡질팡이다 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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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투덜일기 2008. 9. 8. 21:00
우유부단한 인간이 또 어렵사리 결단을 내리고 나면 냉혹하기가 이를 데 없다.
가족 이외의 지인들이 대부분 나를 (잘 몰라서;;) 성격 좋다, 착하다, 믿음직스럽다고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 반해, 내 정체를 속속들이 잘 아는 가족들은 나를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매몰차고 냉혹한 내 성질 때문일 것이다. ^^;

아무튼 1년 넘게 질질 끌던 고민을 완벽하게 끝내고 작업실을 청산하기로 결심한 것이 지난주 금요일.
5년째 자동으로 연장된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관리인 아저씨에게 작업실을 내놓아야겠다고 알리니 아무 걸림돌도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날로 바로 오피스텔을 보러 온 사람들도 있더니만 오늘 벌써 계약이 되었단다.

지난주 금요일에 바로 유선전화도 해지했고, 위약금을 내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오늘 인터넷 전용선도 끊었다. 일단 저지르고 보니, 뭘 그렇게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며 생돈을 퍼버렸나 싶을 만큼 모든 것이 간단하다.
대단한 핑계거리로 작용했던 소파와 책상을 집으로 들여오는 문제도 아마 금세 해결될 게 뻔하다.
아깝긴 해도 지금 쓰는 컴퓨터 책상이랑 리폼해서 쓰던 오래된 소파를 버리면 될 일.

일이 너무 빨리 진행돼서 추석 전까지 방을 빼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는데
그나마도 20일까지만 비워주면 된다니 추석 쇠고 나서 여유롭게 처리해도 될 상황이다.

물론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었던 <나만의 방>을 포기한 터라
가슴 한구석에 휘휘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고는 있지만
생각만큼 참담한 기분은 아니다.
아직 실감이 덜 나기 때문일까.

우유부단함은 결국 단호함이 부린 게으름이었던 모양이다.
보증금을 손에 쥐자마자 훌쩍 떠날 수는 없다는 현실이 좀 슬프긴 해도
등신처럼 빌빌대던 심리적인 방황이 어느정도 갈피를 잡았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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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투덜일기 2008. 8. 30. 00:25
가끔 욱신욱신 쑤시고 미열 때문에 후끈후끈 덥고 종일 죽으로 연명한 터라 기운도 없어
누워서 까무룩 잠들었다가 TV 리모컨 갖고 씨름하다가 또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다가 그게 너무 지겨워져
컴퓨터 앞에 앉아도 블로그질은 참겠는데 일은 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핑계쟁이 게으름뱅이에게 어울리지 않게 부지런히 포스팅이나 해야지.

어제 오후 오른쪽 아래의 사랑니를 뽑고 나서 치과에서 들은 주의사항은 이랬다.
거즈를 2시간 반 동안 물고 있을 것, 그동안 말을 하지 말 것. (울 엄만 2시간만 있으면 빼도  된다면서 그 전에도 자꾸 말을 시켰다. ㅠ.ㅠ 그런데 다른 지인은 4시간 동안 거즈 물고 있으랬단다.)
다음날 아침까지 피가 멈추지 않으면 다시 치과로 올 것. (다행히 아침엔 피가 멎었다)
저녁과 다음날 아침은 가볍게 죽으로  떼울 것. 뜨겁지 않게 식혀서. (식은 죽 먹기도 그리 쉽진 않더라)
처방해 준 약 이틀치는 최소한 4봉까진 거르지 말고 먹을 것. (진통제는 역시 꼬박꼬박 잘 챙겨먹게 된다)
힘든 일은 하지 말고 집에가서 쉴 것. (아마도 내일까지는 '힘든' 번역작업에 손도 안 댈 것 같다 ㅋㅋ)
칫솔질 하지 말고 다음날까지는 가글로만 양치할 것. (그런데 오늘 저녁엔 답답해서 왼쪽만 양치질했다)

머리 나쁜 내가 저거 다 외느라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원...
암튼 어젠 마취가 안 풀려서 감각 없는 입술과 혀 때문에 물을 마시려고 컵을 입에 대면 넘어가는 물보다 질질 새는 물이 많아서 낄낄 웃고는 왼쪽 입술 끝에 빨대를 꽂아 물을 마셔야 했으며
어눌한 발음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남의 살 같았던 아랫입술이 내 살처럼 느껴진 건 저녁 9시가 넘어서였다.
 
잠자기 전 새끼손가락 마디보다 큼지막한 알약이 세개나 들어 있는 약 한봉지를 먹고나선 참 수월하게 사랑니를 뽑았구나 생각했었는데 그건 완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밤이 깊은데도 후끈후끈 덥고 잠도 안오고, 뭔가 뇌의 안쪽에서 턱부분을 작은 절구공이로 통통 건드리는 듯한... 아니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내 몰골을 본 엄마는, "아니 무슨 애가 사랑니 하나 빼고 얼굴이 반쪽이 됐느냐?"고 하셨는데
웃기는 건 어제 저녁에 죽을 조금 먹기는 했지만 만 하루만에 놀랍게도 체중이 2kg이나 줄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식탐녀의 왕성한 소화장기는 맹렬하게 배고픔을 호소했지만, 성한 한쪽 이로도 우적우적 뭔가를 씹어먹을 만한 의욕이 일지 않아 맛도 없는 인스턴트 죽(아픈데 내가 사다 끓여먹으니 어찌나 서글픈지!)을 꾸역꾸역 먹었다. 그것도 순전히 약 먹으려고.

아무려나 잔뜩 겁을 먹었던 충치 치료는 그렇게 전격적으로 죄다 바꿀 상황은 아니란다.
그동안 시큰시큰 시린 느낌이 있던 이빨은 내가 칫솔질을 너무 과격하게 해서 마모되어 그런 것이라며
스켈링마저 안해도 될 정도란다! 앞으로 부드러운 칫솔로 좀 조심하며 닦으면 시린 이빨들은 또 때가 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성한 이빨도 죄다 치료시키는 의사들도 많다던데 일단은 바가지 쓸 염려가 없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그래도 서너개는 다시 치료를 해야한다는데 내가 하도 겁을 먹으니깐 그것도 천천히 하라며 썩은 사랑니부터 하나씩 뽑잔다.
그런데 이렇게 후유증이 커서야 어디 무서워서 또 사랑니를 뽑을 엄두를 내겠나.
일단은 후벼 파진 잇몸 갈아앉히고 마의 추석 행사 지내고 찬바람 나면 또 치과엘 가든지 할 생각.

치과는 빨리가면 갈수록 비용이 덜 든다는 잔소리를 누누이 듣는데도 참 실천은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치과는 무섭고 싫은 곳.
마취주사 맞을 때도 뜨끔했지만, 감각은 없는데 턱 자체가 뽑혀나갈 것 같은 막강한 힘이 느껴지는 의사의 손길을 겪고 보니 과연 내가 다시 제발로 치과를 찾을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네안데르탈인 이후 하악이 발달되지 않은 인류에게 사랑니는 필요없는 것이라 점점 퇴화중이기 때문에 아예 안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왜 나는 3개나 나가지고 이 고생이람.
나려면 확확 일찍이나 자라든지 마흔 넘어 아직도 썩어가며 기어나오는 이빨 따위 정말 싫단 말이다!
사랑니든 지혜의 이빨(wisdom tooth)이든 제 아무리 근사한 이름을 붙여 이쁜척 해도 결국엔 퇴출대상이니
사랑니 없는 사람들과 튼튼한 이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흠.. 내일은 식탐녀의 본능을 총동원해서 아무거나 잘 먹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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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투덜일기 2008. 8. 27. 23:41
며칠째 이가 아프다.
절반쯤 모습을 드러낸 채 썩고 있는데도 오래도록 방치한 사랑니가  드디어 세상과 내 입안에 작별을 고하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전엔 하루쯤 욱신거리다 잠잠해지곤 했는데 이번엔 멈출 기세가 아니어서 계획대로라면 드디어 내일 치과에 가서 어마어마한 공사를 시작해볼 작정이다. 웃을 때마다 위아래로 금니를 번쩍거릴 순 없다며 상아재질로 십수 개(!)의 충치를 떼워놓고 방치한지 13년이 된 나로서는 과연  견적이 얼마나  몹시 두렵다.

이가 아프니 먹고 씹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생각하고 대꾸하는 것도 여의치가 않은데 그래도 약속대로 덕수궁엘 나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청앞엔 범불교도 대회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어 버스에서 내려 서대문부터 걸어야 했다.
촛불집회 때 시청부터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가듯 걸어가며, 교통 통제된 버스 안에 갇혀 짜증을 부리며 욕설을 퍼붓던 시민들과 똑같은 심정은 아니었지만(짜증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게 옳다) 어쨌든 불편했고 늦어버린 약속시간 때문에 지인들에게 미안했다.

다행히 집회는 얼추 끝난 뒤였기 때문에, 전시 보는 내내 시끄러운 방송음이 들리면 어쩌나 염려했던 건 기우였고 단체로 장삼에 가사를 걸치고 챙 넓은 밀집모자를 쓴 스님들의 행렬을 정동길에서 마주쳤을 땐 신기해서 사진이라도 찍어두고 싶었지만 당연히 참았다.

그런데 정동길 끝에선 어떤 아줌마와 아저씨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목에 건 이름패로 보아 범불교도 대회에 참여했음이 분명한 젊은 아줌마(어쩌면 내 또래일지도 모르겠다)는
내가 곁을 지나는 순간, 젊은 아저씨에게 "내가 빨갱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웅얼웅얼 뭐라고 대꾸했는데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고, 여자는 다시 "정부가 잘못하는 일을 지적만 해도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사회가 그럼 옳은 거냐?"고 되물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떼거리로 체포된 인사들의 이름이 신문에 나고, 여간첩이 잡혔다는 게 속보로 나오며 걸핏하면 <빨갱이>라는 말로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지금이 정말로 2008년인지 의아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이미 한달치 걷기를 했던 데다 전시장을 뺑뺑 도느라 다리가 아팠던 우리는 덕수궁을 나와서 이어지는 약속장소인 안국동까지 이왕이면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셋이서 기본요금이 나오기 십상인 거리에 택시를 타면 욕을 먹지 않을까 전전긍긍했고, 택시도 눈치보며 타야 하는 상황이 버럭 짜증이 났다.
물론 시청앞에서 택시는 쉬 잡히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배고픔에 괴로워하며 뚜벅뚜벅 안국동까지 걸어갔다.

청계천을 건너며 우리 앞을 거의 막아서다시피 팻말을 몸에 걸고 다가오는 1인시위자가 있었는데 팻말엔
<대운하 건설을 적극 찬성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예정지에 땅이라도 사놓으셨나보군요, 라고 피식 웃으며 그 사람을 지나쳤지만 또 치통이 도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
돌아오고 싶지 않을까봐 염려하며 한달짜리 유럽 여행 일정을 짜는 지인들에게 캐캐묵은 경험담을 조언이랍시고 전하며 고질병처럼 역마살이 춤추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요즘 같아선 어디론가 떠났다가 정말로 안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에 제풀에 주저앉는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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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투덜일기 2008. 8. 22. 14:27
덥다고 헉헉대며 발악하는 포스팅을 한 게 불과 열흘 전일 텐데
아침저녁으로 선들선들 하더니 비가 내리는 오늘은 벌써 춥다.
보일러를 돌려 방바닥과 집안 공기를 데우며 비바람 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나라는 인간의 변덕과 나약함이 혐오스럽고 짜증날 정도.
나는 역시 추위보다 더위가 더 만만하다.
그래서 춥다고 느껴지는 8월의 남은 날짜들을 보며 겁이 났다.
일년에 더운 날은 겨우 두달이고, 변덕스러운 인간이 추위를 느끼는 달은 열달이나 된다는 사실이
새삼 두렵다.
이렇게 미친년 널뛰듯 하는 내 변덕스러움이 정말이지 재수없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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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올 여름 더위는 단연코 내 생애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도 열대야 때문에 잠못드는 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새벽녘엔 서늘해져서 얇은 홑이불이 여름엔 나의 필수품이었다.
올해도 7월까지는 잘 때 반드시 홑이불로 몸을 칭칭 감아야 편히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제주도로 떠나기 전날밤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한낮엔 숨막히게 더워도 밤엔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서 포근함을 느꼈던 한라산 중턱의 여름밤이 너무 달콤했던 탓일까. 8월의 서울 더위는 정말이지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제부터 비가 내려 선선해졌으니 망정이지, 찜통더위가 계속 이어졌다면 난 아마 헐크처럼 누덕누덕 옷을 찢어뜨리며 폭발했을지도 모르겠다. -_-;;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며 냉방병에 쉬 걸리던 과거의 나는 이제 사라진 게 확실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틀어놓은 에어컨을 끄고 돌아다니거나 온도를 올리는 사람이 나였는데
올해는 결국 못 견디고 에어컨 리모컨을 먼저 찾는 사람도, 온도를 자꾸 낮추는 사람도 나다.
자동차에서도 작년까지는 처음 실내온도를 낮춰야할 때를 제외하고 시원해진 다음에 혼자 다니면서는
 26도 아래로, 그리고 2단 이상 에어컨을 틀어본 적이 없었건만 올해는 26도에 맞춰서는 견디질 못하고 자꾸 온도를 낮춘다. 바람세기도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어제 비 내리기 직전 통화한 울산 사는 지인은 8월 초부터 분명 바람이 다르다며 가을이 오고 있다고 극구 주장했지만 나에겐 턱도 없는 소리였다. 울산과 서울의 지역차가 컸겠지.
나보다 훨씬 더위를 많이 타서 한겨울에도 얼음을 으드득 씹어먹기 일쑤인 그 지인은 올 여름이 그렇게 심히 덥지 않았단다. 평년과 다를 게 없었다나.

하지만 내 경우 이렇게 열흘 가까이 더워서 잠을 못자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온종일 괴로워했던 여름은 처음이다. 주변의 의견을 물어보면 절반은 올 여름이 특히 더웠다고 수긍을 해주는 편인데 나머지 절반은 다른 여름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단다.
더위를 느끼는 정도도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고 지역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아무래도 올 여름 더위가 특히 견디기 힘든 이유는 변해가는 나의 체질 탓이라는 심증이 굳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서글프게도) 점점 땀도 많아지고 더위를 많이 타는 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올 여름에 겪은 추이대로라면 내년 여름이 정말이지 두렵다. 원래 입추와 말복이 지나면 추워서 바닷물에도 못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올 여름 같아선 8월 말까지도 거뜬히 해수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겨울을 보면 그렇다고 추위에 강해진 것도 아닌데 무슨 놈의 체질이 이렇게 짜증스럽게 변하는지 원.

연일 더운 날씨와 높은 불쾌지수 탓을 하며 걸핏하면 버럭버럭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고 창피스러운데, 후회는 늘 뒤늦고 잠시 뿐 참을성 눈금은 좀처럼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변해가는(엄밀히 말해선 늙어가는) 몸으로 부족한 성정을 다스리기엔 무리가 있으니 그저 더위가 물러나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내일까지 비가 내린다니 어찌나 반가운지, 요 며칠 기특하게 잘 맞는 날씨예보에 고마워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건 아쉽지만 부디 여름 더위는 빨리 꺾이길 바란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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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덥다덥다

투덜일기 2008. 8. 8. 23:48
입추가 말복 이전이라는 건 아무래도 사기다.
말복더위 하느라고 그러는지 수은주가 최고로 올라갔다지.
아침부터 종일 에어컨을 끼고 살기는 했지만 밤엔 전기세도 무섭고 환경오염 문제도 좀 찔려서 선풍기로만 버티려니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얼음물을 연거퍼 마셔도, 몸을 적시고 나와도 그 순간뿐, 지친 선풍기에선 정말로 뜨거운 바람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 뜨거운 더위에 또 거기다 올림픽이라나.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대규모 스포츠행사는 어쩐지 배알이 틀리고 마뜩찮다.
올림픽의 아마추어리즘은 이미 사라진지도 오래 아닌가.
언젠가 우리나라 선수가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놓치고는 어찌나 화를 내는지 우승을 거둔 상대방과 악수도 나누지 않는 장면을 보고 올림픽의 금메달에 더더욱 환멸을 느낀 적이 있었다.
1등이 아니면 본인도 주변에서도 인정을 못하고 화를 내는 분위기, 정말 싫다.
은메달도, 동메달도 아니 국가대표 선수로 뽑힌 것도 대단한 일 아닌가.
차등이 심한 포상금 문제도 있기는 하겠지만, 이럴 때 너도나도 애국자인 체하고 금금금메달에 미치는 꼬락서니를 나는 좀 멀리하고 싶다.

다만 박태환 선수가 이번에 세계신기록을 세울 것인지,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우승을 할 지, 그 부분엔 나도 관심이 있다. 귀여운 마린보이가 나올 때는 예선전부터 찾아봐줄 생각. ^^

째뜬 이건 너무 덥다.
이런 더위에 철야작업은 말도 안되는 짓거리라고 생각도 하기 전에 이미 뇌가 흐물흐물 상해버린 것 같다.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니, 에너지 절약이니 다 쉰소리라 생각하고 다시 에어컨을 켤까말까 계속 소심하게 리모컨만 쥐었다놨다 하고 있다.
어제 오늘, 올 여름 더위가 정말이지 견디기 어렵다고 느꼈다. +_+
가을 빨리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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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

투덜일기 2008. 8. 2. 23:40
여행 후유증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발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예상은 했지만 반복되는 일상의 복귀는 참으로 구차하고 남루하다.
피곤과 우중충한 날씨를 핑계로 온종일 뒹굴거리며 잠을 잤는데도 여전히 졸린 건 계속해서 일상 복귀를 거부하려는 생체시계의 반항일지도 모르겠다.
그리 강행군을 한 것도 아닌데, 심정적인 친근감은 깊어도 실제로 살을 부대끼며 쌓은 시간이 적은 이웃들과의 여행이 살짝 부담스러웠는지 긴장된 몸은 나흘 내내 취기와 피로에도 예민한 더듬이를 내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시체처럼 꿈쩍않고 한 열시간쯤 계속 자고 싶은데, 여전히 쏟아지는 건 토끼잠뿐이라는 게 억울할 지경.
원래부터 뒤끝 있는 인간이건만 여행 뒤끝은 한번도 예사롭게 넘기는 적이 없다.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듯 제주도를 담아온 사진조차 내려받을 엄두가 안난다.
주말을 핑계로 내일까지 버벅댈 작정.

막연하게 허전하고 서글픈 마음은 캔맥주로나 달래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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