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09.05.21 아카시아가 다 졌다 18
  2. 2009.05.06 압력솥 13
  3. 2009.05.04 도서관 18
  4. 2009.04.23 잠이 보약 15
  5. 2009.04.03 강박증 13
  6. 2009.04.02 4월인데 8
  7. 2009.03.30 기억력 21
  8. 2009.03.19 저녁준비 21
  9. 2009.03.18 뻔한 후회 19
  10. 2009.03.13 그런가? 14

나에겐 마지막 봄꽃이라 여겨지는 아카시아 향기 이야기를 매년 빠뜨리지 않고 블로그에 적어 그 시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확인하겠다는 작심을 작년에 했는데, 올해는 아카시아 향기가 한창일 때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그러다 결국엔 누렇게 말라 떨어진 꽃잎이 골목마다 흩어져 있는 지금에야 적어둘 생각을 했다.
서울지역의 공식적인 아카시아 개화 시기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래도 올해 아카시아 향기를 처음 느낀 날은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다른 해도 아카시아가 막 피기 시작할 땐 대개 모르다가 동네를 지나며 갑자기 확 끼쳐오는 향긋한 꽃냄새에 아, 아카시아가 피었구나 느꼈으니 올해라고 별다를 건 없다. 다만 안타까운 건 아카시아가 피자마자 계속 비가 내리는 바람에 낮이든 밤이든 창문을 활짝 열면 언제나 집안으로 가득 스며들던 달큰한 향기를 올해는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올봄 처음 아카시아가 핀 걸 깨달은 건 5월 9일, 자전거 모임 때문에 월드컵공원과 홍제천을 달리던 날이었는데, 갈 때는 마음이 바빠 향기를 느껴볼 겨를도 없이 열심히 페달을 밟았던 모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아카시아꽃의 존재를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았었다. 해마다 5월 십몇일쯤 피었던 것 같은데 5월 초에 미친듯이 여름 같은 날이 계속되면서 올핸 조금 꽃이 빨리 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날씨가 변덕을 부려 서늘해졌다가 다시 더워졌다가 간간이 비가 오다가 다시 더워져 이제 아카시아 꽃은 누런 종이꽃처럼 매달렸거나 바닥에서 먼지처럼 풀풀 굴러다니고 있다. 시커멓게 썩어가는 시체처럼 떨어지는 목련만큼 흉측하진 않다고, 지면서도 예쁜 꽃이 어디 흔하냐고 괜히 혼자 아카시아꽃을 두둔하다가도 봄이 벌써 다 가버렸다는 생각에 영 개운치가 않다.
내일은 또 비가 내린다니 이번 아카시아꽃은 참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련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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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솥

투덜일기 2009. 5. 6. 16:14

요즘은 간혹 수증기 배출 직전의 압력솥처럼 머리끝까지 뜨거운 것으로 가득차는 느낌이 든다. 그럴땐 자동으로 추가 딸깍거리든지 수동으로라도 밸브를 꺾어 수증기를 뽑아주어야 하는데 이제 나에겐 그런 안전장치가 없다는 생각에 위기감을 느낀다. 그냥 계속 화르륵화르륵 끓다가 고무패킹은 물론이고 솥째로 여기저기 망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전엔 그렇게 머리끝까지 뜨거워지기 전에 시원하게 식혀주고 달래주는 역할을 오롯이 아버지가 맡으셨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옛날보다 더 빨리 뜨거워지는 낡은 솥이 되었다는 얘긴지 잘 모르겠다. 그저 부재의 슬픔을 크게 느낄 뿐이다.

어제 저녁엔 간만에 느루를 끌고 나갔다. 벌써 낮엔 너무 더운 느낌이고 햇볕도 싫어 어둑어둑해진 다음 도둑고양이처럼 언덕을 내려가 개천변 산책로를 달리는데 초저녁에 운동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자연하천을 복원한다고 크게 광고는 했지만 군데군데 큼지막한 바위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개천 양쪽엔 수생식물을 심으면서 그 언저리를 시멘트로 떡칠해댄 꼬락서니를 보면 공무원들 가운데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 과연 없는 것인가 의아하다. 멀쩡하던 동산에 괜히 파이프를 올려 인공폭포랍시고 물을 내려뜨리고 우스꽝스럽게 복원한 물레방아와 조악한 나룻배 옆으로는 유치찬란한 조명과 함께 틀어놓은 음악분수가 용을 쓰는데, 인상 쓰며 얼른 그곳을 지나치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그저 좋아라 분수 앞에 모여 구경을 한다. 처음엔 거의 매일 돗자리까지 싸들고 나와 음악분수를 구경하는 인파가 상당했다. 아직 복원이 끝나지 않아 더러운 물비린내가 풀풀 나는 개천변 산책로라도 없었으면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어디서 무얼 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월드컵공원 인공호수 주변에도 삼삼오오 밤마실 나와 돗자리 깔고 놀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났다. 가보진 않았어도 한경둔치 역시 같은 풍경이었을 거다. 휴일날 사람들로 빽빽하게 뒤덮힌 한강 둔치를 보면, 사람들이 원래 물가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공원 같은 휴식처를 미치도록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인지 어리둥절하다. 드라마만 봐도 주인공들이 걸핏하면 한강 둔치에 서서 고민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무작정 거니는 장면을 빠뜨리는 드라마가 거의 없는 지경이니, 방송 쪽에서도 한강 둔치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싶다. 멋대가리 없이 뚝 자른 듯 시멘트로 싸발라놓았을망정.
이제 또 자연하천으로 복원한다고 한강변도 죄다 파헤쳐놨던데 말만 그렇지 은근슬쩍 또 여기저기 시멘트로 발라놓을 게 뻔하다. 그나마도 좋다고 날마다 산책나가고 자전거타고 돗자리 들고 소풍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누군가는 또 생색내는 놈한테 잘한다고 박수쳐주겠지. 느루와 바람을 쏘이러 나간 마당임에도 심히 뒤틀린 심사로는 곱게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쨌거나 느루를 타고 느낀 밤바람 덕분에 오래 된 압력솥은 어제 또 폭발의 위험을 살짝 넘기고 열이 식었지만 아직도 안전한 배출용 밸브를 마련해볼 방법은 요원하고 그래서 오늘도 쉽사리 푸르르 푸르르 끓는 소리를 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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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투덜일기 2009. 5. 4. 16:52

집주변에 장서량이 훌륭하고 시설도 좋은 도서관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몹시 부럽다.
그나마도 근방에 도서관이 아예 없는 이들도 있겠지만, 원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니까.
원래 빌리고 빌려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이 빌린 책은 괜스레 남는 게 더 없는 느낌이라 읽기 전부터 허기가 든다. 이미 뇌조직이 느슨해진 것인지 뭐든 읽고 나면 책장을 덮는 순간부터 아스라이 잊혀지는 마당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책등에 적힌 제목이라도 가끔 보면 아하 저런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지, 기억을 되살릴 수 있지만 빌려 읽고 난 책은 흔적도 없으니 도무지 내것이라 챙겨 놓을 방도가 없다. 꼼꼼히 다이어리나 독서노트, 독서후기 따위를 쓰는 기록형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직도 예전에 사놓고 안읽은 책들엔 먼지만 쌓이는데 새로운 책을 사고싶은 마음이 들어 또 몇권 사들이고도 얇은 귀를 팔랑이며 누가 인상깊게 읽었다고 하는 책은 또 욕심이 나니 하는 수 없이 이젠 도서관에서 좀 더 많이 책을 빌려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아서 읽고 싶은 책 말고 일 때문에 필요한 자료 책들은 예전부터 빌려보았기 때문에 대출카드도 만들어둔 지 오래다. 그래도 여전히 빌려 읽는 책들은 새책이어야 읽을 마음이 생긴다. 대체 어떤 인간들이 만졌을지 모를 흔적들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게 남아 있는 책에 내 손길을 보태기가 영 꺼려지기 때문이다. 공부 때문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엔 짜증스럽게 줄까지 쳐 있어도 그다지 더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좀 이상한 강박증이다. 그땐 저작권 문제에 아무 거리낌 없이 복사나 제본을 해서 봤기 때문일까? 그냥 읽어보기만 한 책도 더러 있었는데... 아무튼 헌책방에서 구한 오래된 책은 이제 내것이란 소유의 심리 때문인지 누렇게 변했어도 꺼림칙한 생각이 들지 않으면서 도서관 책은 좀체 적응하기가 어렵다. 뭐든 새것만 추구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텐데, 난 아직도 멀었다는 얘기다.
반성은 반성이고 아무래도 찜찜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던 차에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아직 도서관에 들어오지 않은 책을 신청하는 것! 그러면 책이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빌려가라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책에 바코드를 붙이고 도장을 찍은 도서관 직원들 말고는 아직 그 책을 주물럭거린 사람들이 드물다는 얘기니까 거의 새책이다. 문자 메시지가 오면 이틀 안에 찾으러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이기는 것이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겐 꽤나 큰 도전(?)인데 그래도 도서관 책이면서 내가 처음 책장들을 펼친다는 착각에 훨씬 마음이 놓인다. 어쩌면 빌린 책으로도 구멍 뚫린 두뇌에 좀 더 깊은 인상을 새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오늘은 그렇게 빌렸던 책을 반납해야 하는 날이라고 또 문자메시지가 오는 바람에 도서관엘 갔는데 2주 전 비오는 날엔 초록 잎도 제대로 눈에 안들어 왔던 등나무에 연보랏빛 꽃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그 등나무꽃 아래엔 흡연자들을 위한 벤치 한두 개밖에 없었지만, 옛날 학교의 등나무 아래 벤치가 떠오르며 그리움으로 가슴이 잔뜩 부풀었다. 바야흐로 5월, 축제의 계절이겠구나 싶어서.
시설은 노후했고 책도 별로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네 산기슭에 자리잡은 터라 위치는 좋은 편이니 다음엔 아카시아 꽃 향기 그윽할 무렵 또 도서관엘 가봐야겠다. 아직 도서관에 들여놓지 않은 주옥같은 책이 뭐가 있을까 열심히 찾아 신청도 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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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보약

투덜일기 2009. 4. 23. 15:52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불면증 탓에 며칠 또 제대로 잠을 못자고 빌빌댔다. 온갖 병균들은 그런 때를 귀신같이 간파하고 달려들기 때문에 목감기가 시작된 건 그러려니 했는데, 그제어젠 어쩜 야속하게도 단 한순간도 잠들수가 없는지 기가 막힐 정도. 경험상 그럴 땐 몸과 정신이 더 못 버티고 완전히 뻗어버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마침 출판사 갈 일도 있겠다 안 어울리게 어젠 아침부터 나를 못살게 굴었다. 화분에 물주고, 청소기 돌리고, 국도 미리 끓여놓고, 강건너 출판사 가서 점심먹고, 상담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보고, 정민이 자전거 타는 거 졸졸 따라다니고(행여나 느루 망가질까봐ㅠ.ㅠ), 저녁 해먹이고, 영어수업하고, 잠깐이지만 조카들과 몸을 쓰며 놀아주기까지. -_-;
늦은 밤이 되자 정말 드러누우면 최소한 열두시간은 못일어날 것 같은 피로가 몰려왔다. 시체처럼 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중간중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깨긴 했지만, 그래도 며칠 만에 아주 푹 잘 수 있었고 작정한 김에 잠이 깨도 다시 잠을 청해 까무룩 또 잠들 수 있었다. 그토록 달콤하고 행복한 잠이 왜 간간이 나를 버리는지 참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어제 아침엔 온 얼굴의 모공이 분화구처럼 자라고 하얀좁쌀 같은 여드름이 돌연 대여섯개나 돋아 <나 잠 못잤음>이라고 사방에 광고하는 듯한 시커먼 얼굴이라 뭘 찍어발라도 둥둥 뜨더니, 하루 푹 자고 일어난 오늘 얼굴은 세수도 안했는데 다시 뽀얘졌고 뾰루지도 큰것들 빼고는 다 자취를 감췄으며 목도 덜 아프다. 참 놀라운 잠의 효력. 밥심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뭐니뭐니해도 잠이 보약이다.
가끔 잠이 달아나는 건 내가 보약을 불신하기 때문일까? 내가 불신하는 건 원래 뜻대로의 <보약>이 아니라, 발로 밟다가 보낸 중국산일지도 모를 온갖 약재들을 넣고 푹푹 끓여 뜨거울 때 비닐팩에 넣어(분명 환경호르몬 나올거다) 포장해주는 <요즘 보약>일 뿐, 옛날처럼 한약방에서 하얀 종이에 하나씩 담아 접어준 좋은 약재(지리산 같은 데서 딴!)를 들고와 집에 와서 약탕관에 넣고 온종일 부채질해가며 달인 진짜 보약이라면야 나도 벌컥벌컥 마셔줄 수 있단 말이다! 나에게 보약잠은 분명 그런 정성으로 달인 훌륭한 치유제이거늘 왜 자꾸 속을 썩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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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

투덜일기 2009. 4. 3. 17:33

내가 완전히 강박증 환자라는 얘기는 아니고, 사람마다 약간씩 강박증에 가깝게 신경쓰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강박증은 좀 센 말이고 그저 염려증 정도가 적당하려나.
나도 몇가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부분이 있다.

첫번째는 손씻기. 볼일을 보고나서 손을 씻거나 뭔가를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밖에 나가선 손 안씻고 밥도 잘 먹으면서 집에 있으면 커피 한잔을 마시려해도 먼저 손부터 씻고 있다. 문제는 그냥 나만 그러고 살면 되는데, 온종일 엄마한테 손씻으라고 잔소리 하는 것. +_+
울 엄마는 예로부터 전쟁을 거쳐 물 길어 먹던 세대를 오래 살았던 지라, 웬만해선 손을 안씻으신다. ㅋㅋ 씻으라고 잔소리 하면 물 묻히는 시늉만 하시는 정도. 꼭 <비누질> 하시라고 덧붙여도 손씻는데 30초도 안걸리나보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손을 너무 자주 씻는다고 타박이다. 으휴.
그치만 손만 잘 씻어도 감기에 걸릴 확률이 반으로 준다는데!

두번째 염려증은 컴퓨터가 어느 순간 망가져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
거의 컴맹인지라 아주 가끔 <치명적인 오류> 어쩌구 하는 글귀를 볼 때면 겁부터 난다. 최근 10년동안 두번, 컴퓨터가 망가진 적이 있었다. 처음 망가졌을 땐 아무 대책없이 모든 파일을 다 날리고 복구도 하지 못해 새 컴퓨터를 장만하며 정말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컴퓨터 수리를 하러 온 기술자의 실력부족 탓이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이미 엎어진 물. 그래서 옛날 초기에 작업한 책들은 원고가 하나도 없다. 그나마 두번째로 컴퓨터가 이상해졌을 땐, 일부 파일을 복구해주어서 너덜너덜해지긴 했어도 자료를 얼마간 건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컴퓨터에 든 자료를 날릴까봐 염려하면서도 그간 백업을 해놓는다든지 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것. 섹스앤더시티에서 캐리가 노트북이 망가져 원고를 모두 날리고 전전긍긍하는 에피소드를 봤을 때부터, 나도 백업해두는 습관을 들여야한다고 생각은 오래 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나마 노트북이 생긴 뒤로 usb로 간간이 공유해돈 파일이 있긴 해도 체계적인 백업은 실천에 옮기기가 어려웠다. 원고를 날릴까봐 늘 불안에 떨면서도 외장하드를 사야지 사야지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실천에 옮긴 게 불과 지난달이다. 그런데 그렇게 죄다 복사해놓고도 여전히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외장하드도 에러나면 어쩌나, 이러면서. +_+

세번째 염려증은 매사를 의심하고 걱정하는 나의 태도 자체다.
오늘도 교정지를 퀵 아저씨에게 보내며, 마구 불안했다. 이미 내 머리속에선 퀵서비스 아저씨가 요리조리 복잡한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다 사고가 나 심하게 다치고 상자에 든 원고는 어디론가 내팽개쳐지는 장면이 연상되고 있었다. 켁. 물론 퀵서비스며 택배로 출판사와 원고를 주고받은지 몇년동안 그런 사고는 단 한번도 없었는데도!
조금전엔 엄마가 동네 친구의 부추김을 받아 뒷동산 산책을 가셨는데, 엄마가 돌아오기까지 나는 계속 부실한 다리로 언덕을 오르다 나동그라져 구급차를 부르는 상황에 놓인 엄마의 모습이 자꾸 상상돼서 안절부절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모시고 산책나가는 건 또 싫다. -_-;
노파심이란 말이 왜 생겼는지 점점 실감하는 나이가 된 겐가. 젠장.
요 며칠처럼 잠을 부실하게 자면 확실히 쓸데없이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도 같다. 
그저 잠이 보약이려니 생각하고 오늘은 푹 좀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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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인데

투덜일기 2009. 4. 2. 17:42

어제보니 앵두꽃이 활짝 피었더라. 벚꽃보다 앵두꽃이 먼저 피는 거였는지 몰랐다.
그 역시 망할 내 기억력 때문이겠지만.
벚꽃도 며칠 안에 피겠던데...
많이 잘라내 성긴 가지에 핀 앵두꽃을 보며 새삼 멍했다.
봄꽃 피면 왜 꼭 다 팽개치고 꽃놀이 가야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요번엔 책 잘 만들 욕심(잘 팔 욕심?)과 욕 안 먹고 싶은 마음이 옮긴이나 만든이나 똑같아 다행이기도 하고 그래서 피곤하기도 하다. 난생처음 같은 책의 두번째 역자교정을 하며 눈알 빠지게 골치가 아프다. 어제 받은 원고 오늘 퀵으로 보냈어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또 여전히 붙들고 낑낑대는 중이다. 카페인 힘을 빌어 잠을 안잤더니 마음이 바쁜데도 계속 멍하다. 머리가 맑아도 시원찮은 판국에!

만우절이 생일인 그리운 친구도 있고,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장국영 때문에라도 4월의 첫날엔 뭔가 끼적이고 싶었는데 허둥지둥하느라 친구에게 전화 한통 못하고 멍청하게 보냈다. 시차 확인을 해보니 지금 LA는 밤 12시 40분이란다. 너무 늦었다. 서머타임이 시작됐는지 그것도 모르겠고. 이메일조차 없어 편지와 전화 아니면 아예 닿지 않는 아날로그형 옛 친구는 이럴때 야속하다. 다 내 게으름 탓이지만.

어쨌거나 멍하게 무너진 비루한 일상. 그것이 4월의 시작이다.
뭐 그렇다고.
순전히 잠깨기 용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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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투덜일기 2009. 3. 30. 16:59

머리가 좋은 것과 기억력이 비상한 것은 특별히 상관 없단 얘기를 들은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머리가 좋지도 않고 기억력도 좋지 않으니 그런 얘기를 들어도 별 위로는 되지 않는다. 특히 요사이 깜빡깜빡 잊는 것들이 하도 많아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은데, 나이 분포가 위아래로 다양한 편인 주변 지인들도 거의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 걸 보면 건망증은 그냥 스트레스 속에 사는 현대인들의 습관 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근거없는 생각을 잠시 품기도 한다.
어쨌거나 어디 잘 둔다고 둔 물건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것은 다반사이고, 메모를 해두지 않으면 전날 계획했던 일도 까맣게 잊는 게 많다. 하물며 몇년 전 일이야 오죽할까. 이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를 저 친구 이야기로 재구성해서 엉뚱한 기억으로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아예 내가 먼저 뭘 아는 척 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도 있다. 특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까지 귀신같이 잘 기억하고 있는 똘똘한 지인들에게 나의 건망증과 무덤덤함은 때로 배신감을 안기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기야 내쪽에서 더 잘 기억하고 있는 지인들의 에피소드도 더러 있긴 하다. 서로에게 각인되는 사건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나는 사람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데 취약하다. 나와 사적으로 상관없는 유명인의 얼굴과 이름이야 잊어도 해될 것은 없지만, 한두번 대면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이 그저 공백으로 남은 상태에서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뜨끔하다. 심지어 서너번 만나고도 얼굴이 희멀건 윤곽선으로 남은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면치>라고 인정하기로 한 나의 기억력을 통 믿을 수가 없게 된 뒤로, 그래서 나는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인사를 삼가고 있다. 안전하게 무조건 "안녕하세요"다. 상대쪽에서는 반갑게 알아보는데 내쪽에선 '누구더라, 누구더라, 누구더라...' 초조하게 아득한 머릿속을 헤집고 있노라면 진땀이 날 지경이다.
얼굴은 알아보겠는데 이름이 통 기억나질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그쪽에서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서로 민망하게 웃으면 마음이 편한데, 상대편은 나름 특이한 내 이름을 기억하는 반면 나는 그러지 못할 때 참 미안하다. 다시 안볼 사람이면 상관없지만, 일 때문에 만나는 관계망 안에서 나는 얼굴 알아보기에 관한 한 분명 칠칠하지 못한 인간으로 분류되어있을 것이다.  

예전에도 한탄한 바 있는 부실한 기억력 타령을 새삼 또 하고 있는 이유는 키드님의 블로그에서 언급된 <책 읽어주는 남자> 포스팅 때문이다. 케이트 윈슬렛이 <더 리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단 얘기를 듣고는 영화를 한번 봐야겠다 생각을 했었다. 원작도 있으며 부제가 각기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줄곧 과거에 내가 읽은 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책 읽어주는 남자>는 프랑스 책이었고, 당시에 그 책을 읽은 친구들과 우리도 책 읽어주는 귀여운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했던 기억도 남아 있었다. 크게 베스트셀러가 되진 않았지만 알음알음 꽤 읽혀, 어느 출판사에서는 그 제목을 본따 <~ 해주는 남자> 시리즈물을 기획하기도 했었다.  
오늘 문득 똑같은 제목의 책을 프랑스와 독일 작가가 썼단 말인가 싶어, 찾아보니 아니다. +_+
이번에 영화화 된 <책 읽어주는 남자>는 10년 전에 내가 읽은 그 책인 모양이다. 다른 책은 없다. 그런데도 내 기억엔 책을 읽어주는 귀여운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의 이미지만 남아 있을 뿐, 전쟁이니 나치니 하는 주변 상황은 하나도 없고 기막히게도 프랑스어로 책 표지에 적힌 원제를 본 것만 같다. 큭.

하기야, 어떤 책이나 영화는 예전에 본 것인줄도 모르고 끝까지 보다가 기적적으로 기억을 해낸 경우도 있으니 아마 두번째 보면서도 두번째인줄 몰랐던 것들도 더러, 어쩌면 꽤 많이 있을 것 같다. 책이야 두고두고 여러번 보며 감동할 수 있으면 당연히 좋은 것이니 억울할 일은 없는데, 그래도 이렇게 정신머리없고 기억력 나쁜 내가 한심스럽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어차피 인간의 기억이란 게 자기 좋을 대로 재편집되는 모양이지만, 그나마 뇌리에 남아있는 나의 기억들이 내 마음대로 휘저어 믿음직하지 않은 재구성의 산물임을 깨닿게 되는 이런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슬쩍 겁이 난다. 차라리 그냥 까맣게 잊어버리는 쪽이 낫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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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준비

투덜일기 2009. 3. 19. 18:41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식료품 쇼핑을 하는 건 환경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나 좋지 않은 일이니 재래시장에서 그때그때 먹을 것만 구입해야 한다는 원칙은 나도 안다. 하지만, 마트에서도 원산지를 속이는 판국에 원산지 표시가 잘 눈에 띄지도 않는 우리 동네 재래시장은 좀체 잘 안가게 된다. 특히 시장 입구에 좌판을 벌이고 마치 집앞 텃밭에서 뜯어온 것처럼 소규모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들의 채소가 박스째 떼어온 중국산일 수도 있음을 알고 난 뒤로는 말이다. 게다가 나로선 일주일에 한번 장보는 것도 얼마나 별러야하는 일인데!
어쨌거나 장바구니에 생선과 고기 같은 신선식품은 미리 담아오더라도 늘 박스 한두개는 따로 배달을 시켜야 할 정도로 거한 일주일치 장보기를 마치고 난 다음 며칠은 당연히 밥상이 풍성하다.
원래 어젠 공주님 납시는 날이어서 가장 풍성한 밥상이 꾸며졌어야 할 터이나, 저녁에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난데없는 공주의 변덕을 맞닥뜨린 무수리는 우리 동네 마트에선 생 <바질>을 절대로 구할 수 없다는 억지스런 변명으로 간단히 인스턴트 스파게티를 해먹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고 본격 요리는 오늘로 미뤄졌다.
오늘은 오징어를 볶을까 시금치된장국을 끓일까 고민하다 블로그질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르고 어영부영 시간이 많이 지나 제일 간단한 닭죽을 끓이기로 했다. 통마늘과 대파를 넣고 푹푹 닭을 삶다가 불린 찹쌀만 넣어 끓이면 되는 간단한 메뉴. 어려선 닭 백숙과 닭죽이 그리도 느끼하고 싫더니 요샌 별러서 먹는 영양식이다. 물론 엄마가 해주실 때보다 나는 닭껍질을 많이 벗겨버리고 누런 기름도 죄다 건져내니까 당연히 담백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제 저녁에 끓인 굴국도 시원하고 좋았는데 엄마가 점심때 안드시고 남겨두는 바람에 나는 신경질을 펄펄 내며 다 쏟아버린다고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요리한 음식이 내가 예상한 대로 <딱딱> 소비되지 않으면 나는 왜 화가 나는지.
엄마는 순전히 나 먹으라고 아껴둔 것이지만, 저녁엔 또 저녁에 먹을 메뉴를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계획이 틀어지면 버럭 히스테리와 홧병이 도진다.

삼십대 초반이었을 거다. 초보 번역가 시절, 어느 출판사의 부탁으로 외서기획과 저작권 계약 업무를 도우며 비상근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란 저작권 에이전시를 주기적으로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검토를 하고 기획회의를 거쳐 계약을 추진하는 것. 기회가 되면 맘에 드는 책을 번역하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만난 어느 저작권 담당자 때문에 웃을 일이 있었다.
당시에 내가 액세서리, 특히 반지를 좀 과도하게 끼고 다닌 탓도 있기는 했겠지만, 몇달쯤 안면을 익히고 나서 점심도 한번 같이 먹어 일 관련 이야기와 함께 간간이 사담도 끼어들기 시작했을 무렵 나와 동년배였던 그 담당자가 나에게 난데없이 물었다.
"아직 아이는 없으세요?"
허걱.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푸하하하 웃으면서 결혼여부도 아니고 어떻게 대뜸 아이가 없는지 물을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게 유부녀 아줌마스러워 보였느냐고. 
그 담당자는 몹시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지면서, 나이 들어 보인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며  두세개쯤 끼고 다니던 나의 알반지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분위기가 그렇게 느껴졌다고 실토했다. 자기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더욱 잘 아는데, 통상적인 혼기로 여겨지는 나이가 지난 미혼여성들, 특히 자존감이랄까 자기색깔이 뚜렷하기 쉬운 출판계의 <노처녀>들이 풍기는 미묘한 까칠함과 조바심 같은 것이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분의 변명이었다. 심지어 나에게선 기혼자 특유의 여유로움 같은 것까지 풍겼다나. -_-a 자기가 설명을 계속 이어봤자 나에겐 더욱 민망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는 정말로 칭찬의 의미였다고 극구 미안함을 토로했고 나도 순순히 칭찬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남들 다하는 것의 때를 놓친(또는 놓쳤다고 생각하며 낭패감에 젖는) 사람들은 확실히 조바심과 앙탈을 부릴 수밖에 없다. 20대 초반부터 꽤 오래 결혼을 꿈꾸며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마음처럼 삶이 풀려나가지 않았던 내 주변의 몇몇 친구들이 그야말로 <노처녀 히스테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에게선 그런 짜증스러움이 온몸에서 배어나오지 않는다는 평가에 그땐 솔직히 흐뭇했다.
그런데 그때의 그 담당자를 요즘 만난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 틀림없다. 매사에 왜 이리도 짜증이 많아졌는지. 물론 지금도 혼자라는 내 상태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고, 이 정도의 자유로움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만날 무얼 해먹어야 할지, 냉장고에 먹을 거리가 떨어졌는지 살펴야 하는 밥순이로서의 삶은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다. 가사 도우미를 들이고 그 시간에 열심히 일을 더 해보자는 생각도 해보지만, 사실 내가 <실제로> 가사일에 힘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청소도 일주일에 한번 할까말까 하니, 후닥닥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 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과연 그 시간에 일을 얼마나 하겠나. 오히려 시간이 많이 드는 건 왕비마마의 건강과 영양상태를 감안해서 메뉴를 고민하는 일인데, 우유부단함과 본인의 식탐까지 더해져 그 과정은 쓸데없이 참 소모적이다. 그러고는 또 혼자서 생병을 앓으며 짜증을 부려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고 사니, 삶이 반영되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얼굴은 더더욱 못생겨지고 있는 듯하다. ㅜ.ㅜ

예전엔 그래도 아, 또 한끼 해결했으니 기쁘다, 고 여겼는데
이젠 아이고, 한끼는 해결했다만 내일은 또 뭘 해먹냐, 고 미리 걱정부터 하고 앉았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인데 난 왜 이리 자꾸 비비 꼬일까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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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후회

투덜일기 2009. 3. 18. 12:42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임을 뻔히 알면서 저지르고 난 뒤 하는 후회는 특히 스스로에게 민망하다.
가령, 과음을 하면 다음날 숙취 때문에 괴롭다든지
커피를 제 시간에 안 마시면 두통에 시달린다든지
여유로울 땐 일감을 계속 미루다 발등에 떨어진 뒤에 헐떡거린다든지
레드와인을 마시면 머리가 빠개진다든지
라면을 밤참으로 먹고 자면 팅팅 붓는다든지...

어젯밤엔 후회할 게 뻔한 일을 무려 세 가지나 동시에 저질렀나보다.
일은 하기 싫었고 괜히 무료했고 배는 고팠고 그래서 TV를 틀어놓고는 자정 넘어 라면을 먹었는데 하필 와인 마시는 장면이 나올 게 뭐람. 여세를 몰아 라면으로 텁텁해진 입을 와인 한잔으로 헹구며 기분낼 때까지는 좋았는데, 한잔 정도로는 괜찮을 줄 알았더니 웬걸.
머리가 너무 아파 새벽에 누워서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라면국물도 안 마셨는데 잠까지 못잤으니 얼굴은 팅팅 붓고 머리는 빠개져 카페인으로 살살 두통을 달래고는 있으나 아직 진정될 기미는 보이질 않고 있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순간의 기쁨과 이어지는 후회의 관계는
비록 시간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긴 해도
결국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낑낑거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몽매함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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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투덜일기 2009. 3. 13. 00:18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어도 교정지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비교적 딴짓을 할 수가 없어 블로그질도 멀리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건만, 봄비오는 밤 누군가의 춘심에 뒤통수를 맞았다.
넌 왜 만날 그렇게 씩씩하느냐고 걸핏하면 딴죽을 거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나의 변함없는 씩씩함에 트집을 잡다가 뜬금없이 말했다.
외로워서 술 한잔을 하고도 계속 외로워서 자기보다 외로운 사람이 또 누가 있나 생각해봤더니 누군가 떠올랐다나. 그게 누군지 아느냐고 나에게 묻기에, 나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곤 대답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내 대답도 듣기 전에 하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사람은 바로 나란다.
의지력이 강해서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고 씩씩하게 보이지만 속은 안그렇다고. 그래서 내가 안쓰럽다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며 섣불리 나를 재단하고 판단하는 사람의 코멘트 쯤은 시큰둥하게 넘길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고 여기고는 있는데, 세상에 안 외로운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웃어 넘기며 취기어린 목소리를 차단하는데 성공을 거두긴 했는데, 좀체 다시 교정지에 집중이 안된다.

그런가?

흥.
아니다.
외로운 걸 모를 정도로 심장이 무심하게 단련된 것인지 그냥 무신경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절대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말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사람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냥 나니까 안다.
쳇.
그저 비와 술이 웬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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