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투덜일기 2008. 9. 8. 21:00
우유부단한 인간이 또 어렵사리 결단을 내리고 나면 냉혹하기가 이를 데 없다.
가족 이외의 지인들이 대부분 나를 (잘 몰라서;;) 성격 좋다, 착하다, 믿음직스럽다고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 반해, 내 정체를 속속들이 잘 아는 가족들은 나를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매몰차고 냉혹한 내 성질 때문일 것이다. ^^;

아무튼 1년 넘게 질질 끌던 고민을 완벽하게 끝내고 작업실을 청산하기로 결심한 것이 지난주 금요일.
5년째 자동으로 연장된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관리인 아저씨에게 작업실을 내놓아야겠다고 알리니 아무 걸림돌도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날로 바로 오피스텔을 보러 온 사람들도 있더니만 오늘 벌써 계약이 되었단다.

지난주 금요일에 바로 유선전화도 해지했고, 위약금을 내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오늘 인터넷 전용선도 끊었다. 일단 저지르고 보니, 뭘 그렇게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며 생돈을 퍼버렸나 싶을 만큼 모든 것이 간단하다.
대단한 핑계거리로 작용했던 소파와 책상을 집으로 들여오는 문제도 아마 금세 해결될 게 뻔하다.
아깝긴 해도 지금 쓰는 컴퓨터 책상이랑 리폼해서 쓰던 오래된 소파를 버리면 될 일.

일이 너무 빨리 진행돼서 추석 전까지 방을 빼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는데
그나마도 20일까지만 비워주면 된다니 추석 쇠고 나서 여유롭게 처리해도 될 상황이다.

물론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었던 <나만의 방>을 포기한 터라
가슴 한구석에 휘휘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고는 있지만
생각만큼 참담한 기분은 아니다.
아직 실감이 덜 나기 때문일까.

우유부단함은 결국 단호함이 부린 게으름이었던 모양이다.
보증금을 손에 쥐자마자 훌쩍 떠날 수는 없다는 현실이 좀 슬프긴 해도
등신처럼 빌빌대던 심리적인 방황이 어느정도 갈피를 잡았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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