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올 여름 더위는 단연코 내 생애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도 열대야 때문에 잠못드는 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새벽녘엔 서늘해져서 얇은 홑이불이 여름엔 나의 필수품이었다.
올해도 7월까지는 잘 때 반드시 홑이불로 몸을 칭칭 감아야 편히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제주도로 떠나기 전날밤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한낮엔 숨막히게 더워도 밤엔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서 포근함을 느꼈던 한라산 중턱의 여름밤이 너무 달콤했던 탓일까. 8월의 서울 더위는 정말이지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제부터 비가 내려 선선해졌으니 망정이지, 찜통더위가 계속 이어졌다면 난 아마 헐크처럼 누덕누덕 옷을 찢어뜨리며 폭발했을지도 모르겠다. -_-;;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며 냉방병에 쉬 걸리던 과거의 나는 이제 사라진 게 확실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틀어놓은 에어컨을 끄고 돌아다니거나 온도를 올리는 사람이 나였는데
올해는 결국 못 견디고 에어컨 리모컨을 먼저 찾는 사람도, 온도를 자꾸 낮추는 사람도 나다.
자동차에서도 작년까지는 처음 실내온도를 낮춰야할 때를 제외하고 시원해진 다음에 혼자 다니면서는
26도 아래로, 그리고 2단 이상 에어컨을 틀어본 적이 없었건만 올해는 26도에 맞춰서는 견디질 못하고 자꾸 온도를 낮춘다. 바람세기도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어제 비 내리기 직전 통화한 울산 사는 지인은 8월 초부터 분명 바람이 다르다며 가을이 오고 있다고 극구 주장했지만 나에겐 턱도 없는 소리였다. 울산과 서울의 지역차가 컸겠지.
나보다 훨씬 더위를 많이 타서 한겨울에도 얼음을 으드득 씹어먹기 일쑤인 그 지인은 올 여름이 그렇게 심히 덥지 않았단다. 평년과 다를 게 없었다나.
하지만 내 경우 이렇게 열흘 가까이 더워서 잠을 못자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온종일 괴로워했던 여름은 처음이다. 주변의 의견을 물어보면 절반은 올 여름이 특히 더웠다고 수긍을 해주는 편인데 나머지 절반은 다른 여름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단다.
더위를 느끼는 정도도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고 지역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아무래도 올 여름 더위가 특히 견디기 힘든 이유는 변해가는 나의 체질 탓이라는 심증이 굳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서글프게도) 점점 땀도 많아지고 더위를 많이 타는 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올 여름에 겪은 추이대로라면 내년 여름이 정말이지 두렵다. 원래 입추와 말복이 지나면 추워서 바닷물에도 못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올 여름 같아선 8월 말까지도 거뜬히 해수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겨울을 보면 그렇다고 추위에 강해진 것도 아닌데 무슨 놈의 체질이 이렇게 짜증스럽게 변하는지 원.
연일 더운 날씨와 높은 불쾌지수 탓을 하며 걸핏하면 버럭버럭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고 창피스러운데, 후회는 늘 뒤늦고 잠시 뿐 참을성 눈금은 좀처럼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변해가는(엄밀히 말해선 늙어가는) 몸으로 부족한 성정을 다스리기엔 무리가 있으니 그저 더위가 물러나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내일까지 비가 내린다니 어찌나 반가운지, 요 며칠 기특하게 잘 맞는 날씨예보에 고마워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건 아쉽지만 부디 여름 더위는 빨리 꺾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