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투덜일기 2008. 10. 10. 20:45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해가는 기후에 적응하려는 신체와 정신의 노력 때문인지 펄럭펄럭 감상의 과잉이랄지 이유없는 변덕과 이런저런 탐욕에 휩싸이는데 나의 경우 그 정도가 가장 심한 계절은 역시 가을이다.
봄엔 대책없이 희망과 낙천주의에 휩싸여 싱숭생숭한 마음의 방향도 아스라한 행복으로 치닫는 데 반해, 가을엔 줄어드는 일조량 탓에 우울 인자가 늘어난다는 학자들의 분석결과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툭하면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져 기어다니거나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사실 늘 비어있는 곳임에도;;) 찬바람이 숭숭 몰려드는 까닭모를 처연함에 휩싸이게 된다.

가을만 되면 스카프 열망이 타오르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열어보며 입을 옷이 없다고 뻔한 투정을 되풀이하며 소비욕에 불을 댕기는 것과는 약간 다른, 스산함에 허덕이는 가을 영혼을 어떻게든 보듬어 위로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계절의 옷타령은 그저 새로이 '입을 옷' 장만에 대한 욕구에 지나지 않으므로 해마다 소비의 대상이 다양하고 특별히 어떤 재질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티셔츠나 청바지, 반바지, 원피스, 가볍고 따뜻한 외투 정도의 단품들이 떠오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을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나는 왜 이리도 가죽에 탐닉하게 되는지.

새로 산 운동화 냄새라든지, 휘발유 냄새라든지, 사람마다 독특하게 좋아하는 냄새가 있기마련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질 좋은 가죽 냄새(코를 찌르는 노린내 가죽 냄새를 말하는 게 아니다!)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동물보호 차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진짜 동물털과 가죽으로 만든 옷과 가방 따위를 거부하고 인조모피와 인조가죽을 애용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주장도 확실히 맞는 말이고, 나 역시 아무리 나이가 들어 뼈에 찬바람이 스미는 노인이 된다해도 작은 동물 수백마리를 조각조각 난도질해 이어붙인 모피코트(옷깃과 소매 정도에 두어마리 동물털을 장식으로 붙인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이미 갖고 있기도  하고;;)를 입고 다닐 생각은 없다.
그런데 양가죽이나 소가죽의 경우는 좀 다르다. 어차피 같은 가죽이고 가엾은 짐승을 도축해 얻은 재료라고 비난하면 어쩔 수 없지만 짐승들이 가여워서라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난 아직 고기를 꼭 먹어야 힘이 나고 살 것만 같은 야만스러운 인종이라 그 가죽에 대해서도 양심이 좀 덜 찔린다(고 우길란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대두되면서 그간 인간의 탐욕 때문에 여러 동물들이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학대받고 있는지, 일부 인구의 육식 편향 입맛 때문에 또 세계 기아인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많은 양의 옥수수와 곡식이 가축의 사료로 쓰이는지 다각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지만, 민망하게도 나는 아직 육식을 포기하지 못했고 이왕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짐승들이 제 몸가죽까지 속속들이 인간에게 바친다는 사실에 그저 고마워하기로 했다. ㅠ.ㅠ

자꾸 자기변명이 길어지려 하는데, 어쨌든 비난을 받거나 말거나 가을이 오면 내가 특히 가죽옷에 심취한다는 얘기다. 스카프처럼 부담없이 마구 사들일 수 있는 물건은 아니므로 많이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열망이 커지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색깔이며 디자인이 어떻게든 색다르면서도 10년이상 전혀 유행과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멋진> 가죽재킷을 장만하고 싶다는 욕망은 희한하게도 가을마다 빠짐없이 불타오른다. 긴것, 짧은 것, 검정색, 빨간색, 갈색으로 이미 기본적인 디자인의 가죽옷은 갖고 있건만, 자신없다는 생각에 선뜻 장만하지 못한, 폭주족을 연상시킬 정도의 과감한 디자인도 늘 선망의 대상이고 이런저런 깃의 모양에 따라 색색깔(짙은 파랑색, 초콜릿색, 따뜻한 베이지색, 검정색 짧은 것...)로 질 좋은 가죽옷을 옷장에 주르륵 걸어놓고 있으면 마구 기운이 솟아 스산하고 처연한 이 가을을 힘내서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ㅋㅋ

가죽 가방 또한 마찬가지다.
몇년동안 꿈의 가방이랄 수 있는, 큼지막하면서 장식이 요란하지 않고 가죽의 질과 냄새마저 좋은 짙은 색깔의 가죽가방을 찾고 있었는데 동물보호의 목소리를 높이는 누군가의 열변에 귀가 얇아져 제풀에 포기하고는 차선책으로 검정색 인조가죽 가방 하나를 사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이 블로그에 써놓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가방은 1년반쯤 꽤나 사랑을 받다가, 마음에 꼭 드는 것이 아닌 한 이내 싫증 잘 내는 주인의 눈밖에 나 차츰 방 한 구석에 걸려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결국엔 요란한 장식 한 군데가 늘어졌다는 것을 핑계로 단박에 퇴출되고 말았다. 그나마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신세가 된 것은 아니고, 골목어귀에 서 있는 구세군 기부함으로 들어갔으니 원주인이 아니고선 잘 알아볼 수 없는 장식의 <흡집>을 감춘채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위로하고 있다.
그러고는 내가 또 다시 꿈의 가방을 찾아헤맸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될 터이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결국 내가 그리던 꿈의 가방 자질에 최대한 가까운, 당연히 질 좋은 가죽이기도 한 녀석을 장만하고야 말았다. ^^
작업실 포기 기념이라며 말도 안되는 구실을 붙여 나에게 주는 선물로 명명한 그 녀석을 한달 가까이 손꼽아 기다리다, 드디어 태평양을 건너온 녀석과 상봉하던 날 비닐을 벗기고 나서 풍겨오는 은은한 가죽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쓸어 그 부드러운 감촉을 만끽하며 내가 얼마나 흐뭇했었는지 헤벌쭉 흐르는 미소 속에서 돌연, 혹시 이거 가죽 페티시가 아닌가 염려되기도 했다. 

한동안 옷장 손잡이에 가방을 걸어놓고 감상하다 가끔 쓰다듬으며 올 가을의 가죽 열망은 좀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그럴 리는 없다. 오늘 오후 물도 안 든 주제에 벌써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큼지막한 플라타너스 잎들을 밟으며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나는 불쑥 초콜릿색 가죽재킷을 사러가고 싶어졌다.
그나마 마트 앞에 <홍옥이 나왔어요!>라고 적힌 팻말과 함께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빨간 홍옥사과의 자태를 발견하는 바람에 올 가을 처음 새콤달콤한 홍옥 맛을 볼 생각에 정신이 팔려 얼른 지갑을 열었기에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백화점 세일기간이라는데 구경이라도 한 번 가볼까... 하는 소비욕망을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야흐로 가을은 가을이다.
홍옥이 나왔고, 높은 하늘은 푸르고, 괜히 쓸쓸하고, 가죽생각은 절로 나고...
유치하고 부끄러운 나의 가을 타령은 시작됐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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