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건 싫다

투덜일기 2008. 11. 22. 11:15

갑작스레 영하로 뚝 떨어져버린 며칠 동안 차렵이불을 두 개 덮고 잤다.
원래 한겨울 용 이불은 퍽이나 두텁고 폭신한 무명 솜이불인데 12월도 되기 전에 그 이불을 꺼낸다는 건 죽도록 싫은 겨울이 벌써 완연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일부러 참았다.
원래 바닥생활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추위에 워낙 민감하고 싫어해서 도저히 침대생활은 자신이 없다.
옥매트나 전기담요를 깐다는 둥, 거금을 들여 돌침대를 샀다는 둥 침대 애호가 지인들의 겨울나기 방법을 들어보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따땃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안락함을 포기할 수가 없고
굳이 겨울이 아니더라도 침대에 누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느낌으론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내가 아파트를 싫어하는 이유엔 따뜻하지 않은 방바닥도 포함된다. 분명 실내 공기는 따뜻한데 바닥엔 별 온기가 없는 아파트의 방들... 참말로 정이 안간다. 
지은지 30년 가까이 됐어도 연탄 보일러, 기름 보일러를 거쳐 가스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낡은 우리집은 방바닥이 얼마나 따끈따끈한지 모른다. 물론 아파트보다야 외풍이 있어서 화장실과 마루는 춥지만, 조카들이 겨울이면 수시로 찜질방 놀이를 생각해낼 만큼 따끈따끈한 방바닥에 엎드려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거나 TV를 보며 등을 지지는 재미를 선사하는 방구둘의 온기는 그나마 견디기 힘든 계절의 버팀목이다. 

하기야 방바닥이 아무리 따뜻해도 추운 걸 못참는 내가 또 다시 낡은 이 집에서 올 겨울을 나려면 두꺼운 이불은 필수이니 다음번에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면 군말없이 한겨울용 솜이불을 꺼내 덮을 작정이지만
당분간은 차렵이불을 겹쳐덮는 걸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추위만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내가 이불 두장을 겹쳐덮고 잔다고 하면 지인들은 퍽 의아해한다. 자다가 보면 이불이 서로 따로 놀기 마련일 거라나. 하지만 잠버릇이 얌전한 편인 나는 자고 일어나서도 이불이 늘 그대로다. 어쩔 땐 잠자는 공주 자세로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잠들었다 그대로 깨어날 때도 있다. -_-; 자면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도 그리 건강한 수면법은 아니라지만 어쨌거나 나는 자면서 크게 뒤척이거나 돌아다니지 않는다.

얼마전 잠버릇 험한 조카들이 하도 이불을 차버려서 감기에 걸렸다는 올케의 얘기를 듣고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어렸을 때도 이불을 차버리지 않았는지.
엄마의 얘기를 들으니 나도 어려선 이불을 차버리고 잤단다. 그래서 엄마가 중간에 늘 다시 덮어줘야 했다고. 그 말을 들으니 이불을 차버리고 추워서 바들바들 떨다 이불을 덮어주시는 부모님의 손길에 잠결에도 행복해 했던 느낌이 아련히 떠오르는 듯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어린 시절 다섯식구가 한방에서 나란히 잠을 잤기 때문이다.
가끔 정민공주가 와서 자고 갈 때면 나는 거의 잠을 설친다. 험악하게 돌아다니며 자는 녀석을 다시 제대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는 무수리의 밤을 보내야하기 때문인데, 어려서부터 대부분 따로 재우는 요즘 아이들은 자다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질 무렵 엄마가 다시 이불을 꼭꼭 여며주는 손길의 기쁨을 모르고 살겠구나 싶은 것이 좀 안타깝다. 물론 침대에서 이불을 차버려 차가워진 몸으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면서도 깨어나지 않는다는 잠꾸러기 공주는 나랑 잘 때도 고모가 이불을 다시 덮어주건 말건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매일 자다말고 새벽에 아이들 방에 건너가 이불을 덮어주려고 일부러 깨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불 차버리고 자도 될 만큼 난방온도를 심하게 올리는 것 역시 안될 일이니, 잠버릇 심한 조카들의 겨울나기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풍요로워져서 좋은 것도 참 많지만, 온 식구들이 한방에서 겹쳐자던 불편한 어린시절이 요즘 조카들의 편한 삶보다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오로지 따뜻한 이불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추운 걸 싫어하는 마음은 똑같지만 그때의 추위가 지금보다 훨씬 혹독했던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과거와 추억만 바라보며 사는 건 늙어감의 징후라고 했거늘, 요즘 왜 이리 옛날 생각만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추운 건 싫다는 얘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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