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으로 밥벌이를 하며 생겨난 나의 꿈이자 로망은 번역인세로 계약한 책들이 여러 권 쌓이고 또 그게 모두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라 꾸준히 분기별로 쏠쏠한 인세수입을 안겨주는 바람에 몇년에 한번씩은 스스로 안식년을 정해 일년 내내 팽팽 놀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상황이다. 로또 당첨 같은 수십 만부짜리 베스트셀러를 꿈꾸는 것도 자유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평생 로또 한번 사본 적 없는 나의 성향과 별로 맞지 않는 일인 것 같다.
하기야 순전히 번역료 수입만으로 너무도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안식년까지 향유하는 삶을 자랑하는 번역가 또한 내 주변에선 본적 없으니, 엄밀히 말하면 나의 <로망>도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헛된 꿈일지 모르겠다. 이 땅에서 번역이란 직업은 대개 일개미나 일벌처럼 노동집약적이고 소모적인 일을 꾸준히 쉬지 않고 해서 추운 겨울을 그저 안온한 정도로만 소박하게 지낼 수 있는 여유만을 허락한다. 유명 번역가치고 저술가든, 작가든, 교수든, 강사든 다른 직업을 겸하지 않고 오로지 번역에만 힘쓰는 이를 보기 힘든 이유도 아마 그런 열악한 조건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십수년째 해마다 최악이라고 일컬으니 도대체 얼마나 더 바닥을 쳐야 부상할지 알 수 없는 출판불황의 상황임에야 오죽하랴. 얼마 전 후배가 진지하게 번역가로서의 내 수입이 홀로 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만큼은 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홀벌이 가장으로서 생활비며 아이들 학비며, 사교육비에 노년을 위한 저축까지 책임지는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영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지금 내가 무엇보다 이 직업의 장점이라 여기는 시간과 정신의 자유는 잊고 살아야 할 것은 뻔하다. 불규칙한 수입을 감안하여 엄청난 강도로 쉼없이 거의 <떡 찍어내듯> 번역작업에 매달려야 할 테고, 지금보다 더 빈번하게 하기 싫은 장르의 책들까지 절대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받았겠지.
더욱이 딸린 식구들 때문에 일터에서 고까운 일도 묵묵히 참아내며 열심히 일하는 가장들처럼 나도 최소한 이렇게 일년째 게으름을 부리며 슬럼프를 운운하지도 못했을 테지.
안식년 타령을 할 만큼 아직 쌓아둔 인세번역도 많지 않은 주제에 일년쯤 일 안하고 놀 궁리만 파고드느라 어느새 또 코앞으로 다가온 마감일 앞에서 일일 의무작업량을 다시 분배하고 있으려니 참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왜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고서는 열심히 일을 하지 않게 되었을까. 할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이 원래 게으른 인간의 본성이라고는 해도 매번 이건 참 심하다. 약속 안지키는 인간 싫어하면서 마감일 약속은 밥먹듯이 어기고 앉았는 인간이 되다니. 이번에도 지킬 생각보다 어길 작정을 먼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 하고 있는 책도 그다지 잘 팔릴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나에게 수년간 쏠쏠한 인세수입을 안겨줄 효녀노릇을 할 거라 기대하며 제발 일이나 하자, 일!
'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겨우 열흘인데, 그 사이 큰 변화를 느낀다.
갈 땐 6월이었는데, 와보니 어느새 7월이고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났고
집앞 무궁화나무는 어느새 꽃을 잔뜩 피워놓았고
과일가게엔 새콤달콤 빠알간 자두가 나타났고
에어컨 빵빵한 병실에 길들여진 탓인지 날씨가 확 달라진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제 선풍기 없인 못살겠고
자정을 넘기고 나면 1, 2시를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잠이 쏟아지고
무엇보다 머리가 멍해 말과 글을 길게 잇지 못하겠다.
좀 더 쉬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핑계를 대기에도 민망한 끝없는 무기력증.
뭔가 뾰족한 수가 필요하다.
열흘만인 어제 집으로 돌아왔다.
왕비마마 간병 역사상 최단기간에 귀가할 수 있었음을 기쁘게 여기고는 있지만, 수술 이후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에 올라 앉은 듯 조마조마했던 터라 아직은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래도...
집에 와서 자는 잠과 집밥은 달디달다.
환자 본인도 나도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 여겼지만, 역시나 모든 수술은 똑같이 버겁고 겁나더라.
병원행 가방싸기는 요번이 마지막이기를 성심껏 빌었더니, 바람이 엉뚱하게 작용했는지 트렁크가 망가져버렸다. 혹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징조?
텅 비었던 냉장고를 다시 온갖 식재료로 가득 채워놓고 사골부터 푹푹 고는 냄새가 온통 진동하는 집안에서 이제는 느슨해졌던 번역 노동의 나사도 슬슬 조여봐야 하는데, 여전히 심신이 노곤하고 멍하다. 혈압기로 혈압 재고 혈당계로 혈당수치 재고 왕비마마한테 보조기 채웠다 풀고 수술부위 소독하는 병원놀이가 아직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두들기는 것보다 익숙한 느낌인 걸 보면, 바짝 긴장한 간병모드가 쉽사리 해제되지 않는 모양이다.
얼마 안되는 이 글줄도 몇번이나 지웠다 썼다 망설이며 끝을 맺질 못하겠다.
어쨌거나 집에 와서 좋다는 얘기다. ^^
왕비마마 간병 역사상 최단기간에 귀가할 수 있었음을 기쁘게 여기고는 있지만, 수술 이후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에 올라 앉은 듯 조마조마했던 터라 아직은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래도...
집에 와서 자는 잠과 집밥은 달디달다.
환자 본인도 나도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 여겼지만, 역시나 모든 수술은 똑같이 버겁고 겁나더라.
병원행 가방싸기는 요번이 마지막이기를 성심껏 빌었더니, 바람이 엉뚱하게 작용했는지 트렁크가 망가져버렸다. 혹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징조?
텅 비었던 냉장고를 다시 온갖 식재료로 가득 채워놓고 사골부터 푹푹 고는 냄새가 온통 진동하는 집안에서 이제는 느슨해졌던 번역 노동의 나사도 슬슬 조여봐야 하는데, 여전히 심신이 노곤하고 멍하다. 혈압기로 혈압 재고 혈당계로 혈당수치 재고 왕비마마한테 보조기 채웠다 풀고 수술부위 소독하는 병원놀이가 아직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두들기는 것보다 익숙한 느낌인 걸 보면, 바짝 긴장한 간병모드가 쉽사리 해제되지 않는 모양이다.
얼마 안되는 이 글줄도 몇번이나 지웠다 썼다 망설이며 끝을 맺질 못하겠다.
어쨌거나 집에 와서 좋다는 얘기다. ^^
그릇이나 문구용품 따위에 붙어 있는 스티커는 그냥 두고보질 못해 처음부터 떼어내고 써야 직성이 풀린다. 반면에 비행기를 탈 때 항공사 직원이 여행가방 손잡이와 몸통에 덕지덕지 붙여준 스티커는 왠지 그냥 내버려두었다가 다음번에 가방을 써야할 일이 있을 때나 떼내는 버릇이 있다. 마지막 여행이 언제였든 그 흔적의 끄트머리라도 오래오래 부여잡고 싶은 욕망 때문이겠지.
일년 가까이 여행가방 손잡이에 붙어 있느라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한 제주발 한성항공 짐표와 스티커를 어젯밤 다 떼내고 다시 짐을 꾸렸다. 세면도구와 양말, 수건, 편한 옷과 다량의 왕비마마 속옷, 휴대폰 충전기, 커피믹스, 종이컵, 책 두 권...을 넣을 때까지는 짐짓 유쾌한 여행을 준비하는 체할 수 있었지만, 곧이어 담요, 작은 쟁반, 과도, 티스푼, 곽티슈, 그리고 약 한 보따리를 챙겨 넣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모녀의 동반가출을 준비하듯 메모지에 적어놓은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손길이 너무도 익숙해 오히려 서글펐나 보다.
아침 일찌감치 화분에 빠짐없이 물을 주고, 될 수 있는대로 냉장고를 비우고... 떠날 준비는 모두 끝냈는데, 허무하게도 기다림은 다시 오후까지 이어져야 한단다. 여행 가방을 싸는 일은 늘 설렘을 동반했건만, 이젠 그 비율이 절반으로 떨어져버렸다. 옛날부터 따지면 8할대라 우길 수 있겠지만(처음엔 8할대라고 썼다가 고쳤다), 2, 3년전부터 따진다면 가방 싸기 두번에 한번은 여행 목적이 아니었다. 장농 옆에 세워두었던 여행가방을 꺼내 짐을 싸는 이유가 어느덧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할 때가 많아졌단 뜻이다. 다음 여행을 꿈꾸며 가방에 매달 예쁜 이름표를 사들여 이미 이름까지 적어둔지 어언 2년이건만, 이번에도 그 이름표는 매달 수가 없다. 집 떠나는 건 똑같아도 팔다리와 마음이 무겁기 짝이 없는 이런 가방싸기, 다시는 없으면 참 좋겠다. 부디 다음번 이 가방을 꺼낼 땐 정말로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을 위한 것이기를.
일년 가까이 여행가방 손잡이에 붙어 있느라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한 제주발 한성항공 짐표와 스티커를 어젯밤 다 떼내고 다시 짐을 꾸렸다. 세면도구와 양말, 수건, 편한 옷과 다량의 왕비마마 속옷, 휴대폰 충전기, 커피믹스, 종이컵, 책 두 권...을 넣을 때까지는 짐짓 유쾌한 여행을 준비하는 체할 수 있었지만, 곧이어 담요, 작은 쟁반, 과도, 티스푼, 곽티슈, 그리고 약 한 보따리를 챙겨 넣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모녀의 동반가출을 준비하듯 메모지에 적어놓은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손길이 너무도 익숙해 오히려 서글펐나 보다.
아침 일찌감치 화분에 빠짐없이 물을 주고, 될 수 있는대로 냉장고를 비우고... 떠날 준비는 모두 끝냈는데, 허무하게도 기다림은 다시 오후까지 이어져야 한단다. 여행 가방을 싸는 일은 늘 설렘을 동반했건만, 이젠 그 비율이 절반으로 떨어져버렸다. 옛날부터 따지면 8할대라 우길 수 있겠지만(처음엔 8할대라고 썼다가 고쳤다), 2, 3년전부터 따진다면 가방 싸기 두번에 한번은 여행 목적이 아니었다. 장농 옆에 세워두었던 여행가방을 꺼내 짐을 싸는 이유가 어느덧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할 때가 많아졌단 뜻이다. 다음 여행을 꿈꾸며 가방에 매달 예쁜 이름표를 사들여 이미 이름까지 적어둔지 어언 2년이건만, 이번에도 그 이름표는 매달 수가 없다. 집 떠나는 건 똑같아도 팔다리와 마음이 무겁기 짝이 없는 이런 가방싸기, 다시는 없으면 참 좋겠다. 부디 다음번 이 가방을 꺼낼 땐 정말로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을 위한 것이기를.
어제 아산에 사는 지인을 만나러 갈 일이 있어서 생전 두번째로 ktx를 탔다.
몇년 전 부산에 갈 때 처음 타본 ktx가 어찌나 실망스러웠던지 올라올 때는 일행 모두의 동의 하에 새마을호를 선택할 정도였다. 아무리 시간다툼을 위해 설계된 기차라지만 어떻게 제일 운임이 비싼 ktx가 새마을호 기차보다 자리가 좁은지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고, 겨우 1시간 차이라면 (지금은 완공구간이 늘어서 더 빨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땐 부산까지 2시간 50분 걸린대놓고 3시간 걸렸었다) 만원이나 싸고 잠자기에 좌석도 더 편한 새마을호가 더 낫다 여겼고, 이제껏 누가 ktx를 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시간 넉넉하면 차라리 새마을호를 타라고 한 마디 거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찾아간 그 지인은 얼마전까지 천안에 살고 있어서, 용산 천안간 급행 전철을 타고 놀러간 적도 있었기에 이번에도 전철을 타고 가면 되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걸린 시간은 전철구간만 꼬박 1시간 40분이었는데, 나로선 천안까지 전철로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개무량했던 것 같다. 중간에 전철 노선만 두어번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은 일단 제쳐두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지인이 ktx를 타고 오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이사간 곳도 천안 시내인 줄 알았더니 아산시라나. 미리 예매를 하며 서울역에서 겨우 36분밖에 안걸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ktx를 타고 가보니 정말 눈깜짝할 사이였다. 36분이면 우리 집에서 서울역 가려고 집에서 나서고 버스 기다리고 또 버스에서 내려 역까지 걸어가고 하는 시간보다 훨씬 짧다. 천안아산까지 ktx 운임은 12600원. 전철비용은 2500원쯤 됐던 것 같다. 부산까지 가는 ktx/새마을호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선 이번에도 역시나 돈은 만원 차이. 시간도 1시간 쯤 차이가 났다.
천안 전철역보다 천안아산 ktx역이 지인의 집과 가까운 이점도 있었지만, 함께 간 동행은 돌아올 때는 전철을 타자고 했다가 ktx를 난생처음 타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돌아올 때도 ktx를 타고 싶다고 간절한 눈빛으로 ^^ 말했다. 내가 빠르기만 할 뿐 좌석 좁고 불편하다고 ktx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낮춰놓았기 때문인지, 동행은 ktx 객차에 앉아 몹시 감동하는 눈치였다. 나 역시 처음 ktx를 탔을 때보다는 실망감이 덜했고, 아마 동행이 극구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전철을 타고 돌아가자고 우겼으면 속으로 짜증났을 것 같다. 용산 천안간 전철을 타고서도 주변에 펼쳐진 논과 밭, 산을 구경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차와 전철은 엄연히 다른 법! 게다가 서울에서 아산까지 36분이라니... 시속 300km가 넘는다는 속도를 거의 느낄 수 없는 게 신기한데 정말 빠르긴 했다.
처음 ktx타고 부산에 갈 땐 저녁이라 속도감을 더 못느껴 지루했던 걸까. 어쨌든 그때도 금요일 저녁 퇴근한 지인들과 떠나 부산 해운대에서 싱싱한 회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빨라진 기차시간에 약간 고마워하긴 했지만, 뒤로 젖힐 수도 없는 좁은 좌석을 엄청 성토했었다. 나처럼 다리 짧은 인간도 답답하니 다리 길고 덩치 큰 사람들은 오죽 하겠냐고 투덜거리면서. 그런데 그새 내 다리가 더욱 짧아진 건지, ktx 좌석이 넓어진 건지(그랬을 리는 없을 텐데!) 어제 타본 부산행 ktx는 상당히 쾌적한 느낌이었다. 자리 잡고 앉았다가 고속철 본연의 모습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마자 금세 내려야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겨우 몇년 만에, 그리고 두번 만에 ktx에 대한 반감과 차비에 대한 아까움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고민해도 통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왕복 두시간을 아까워할 만큼 촌각을 다투어 바삐 사는 인간은 절대로 아니거늘. 그저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아무래도 또 한번 부산까지 ktx를 타고 다녀와봐야 확실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부산이 그리운 건 지도 몰라.
몇년 전 부산에 갈 때 처음 타본 ktx가 어찌나 실망스러웠던지 올라올 때는 일행 모두의 동의 하에 새마을호를 선택할 정도였다. 아무리 시간다툼을 위해 설계된 기차라지만 어떻게 제일 운임이 비싼 ktx가 새마을호 기차보다 자리가 좁은지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고, 겨우 1시간 차이라면 (지금은 완공구간이 늘어서 더 빨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땐 부산까지 2시간 50분 걸린대놓고 3시간 걸렸었다) 만원이나 싸고 잠자기에 좌석도 더 편한 새마을호가 더 낫다 여겼고, 이제껏 누가 ktx를 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시간 넉넉하면 차라리 새마을호를 타라고 한 마디 거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찾아간 그 지인은 얼마전까지 천안에 살고 있어서, 용산 천안간 급행 전철을 타고 놀러간 적도 있었기에 이번에도 전철을 타고 가면 되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걸린 시간은 전철구간만 꼬박 1시간 40분이었는데, 나로선 천안까지 전철로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개무량했던 것 같다. 중간에 전철 노선만 두어번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은 일단 제쳐두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지인이 ktx를 타고 오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이사간 곳도 천안 시내인 줄 알았더니 아산시라나. 미리 예매를 하며 서울역에서 겨우 36분밖에 안걸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ktx를 타고 가보니 정말 눈깜짝할 사이였다. 36분이면 우리 집에서 서울역 가려고 집에서 나서고 버스 기다리고 또 버스에서 내려 역까지 걸어가고 하는 시간보다 훨씬 짧다. 천안아산까지 ktx 운임은 12600원. 전철비용은 2500원쯤 됐던 것 같다. 부산까지 가는 ktx/새마을호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선 이번에도 역시나 돈은 만원 차이. 시간도 1시간 쯤 차이가 났다.
천안 전철역보다 천안아산 ktx역이 지인의 집과 가까운 이점도 있었지만, 함께 간 동행은 돌아올 때는 전철을 타자고 했다가 ktx를 난생처음 타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돌아올 때도 ktx를 타고 싶다고 간절한 눈빛으로 ^^ 말했다. 내가 빠르기만 할 뿐 좌석 좁고 불편하다고 ktx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낮춰놓았기 때문인지, 동행은 ktx 객차에 앉아 몹시 감동하는 눈치였다. 나 역시 처음 ktx를 탔을 때보다는 실망감이 덜했고, 아마 동행이 극구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전철을 타고 돌아가자고 우겼으면 속으로 짜증났을 것 같다. 용산 천안간 전철을 타고서도 주변에 펼쳐진 논과 밭, 산을 구경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차와 전철은 엄연히 다른 법! 게다가 서울에서 아산까지 36분이라니... 시속 300km가 넘는다는 속도를 거의 느낄 수 없는 게 신기한데 정말 빠르긴 했다.
처음 ktx타고 부산에 갈 땐 저녁이라 속도감을 더 못느껴 지루했던 걸까. 어쨌든 그때도 금요일 저녁 퇴근한 지인들과 떠나 부산 해운대에서 싱싱한 회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빨라진 기차시간에 약간 고마워하긴 했지만, 뒤로 젖힐 수도 없는 좁은 좌석을 엄청 성토했었다. 나처럼 다리 짧은 인간도 답답하니 다리 길고 덩치 큰 사람들은 오죽 하겠냐고 투덜거리면서. 그런데 그새 내 다리가 더욱 짧아진 건지, ktx 좌석이 넓어진 건지(그랬을 리는 없을 텐데!) 어제 타본 부산행 ktx는 상당히 쾌적한 느낌이었다. 자리 잡고 앉았다가 고속철 본연의 모습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마자 금세 내려야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겨우 몇년 만에, 그리고 두번 만에 ktx에 대한 반감과 차비에 대한 아까움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고민해도 통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왕복 두시간을 아까워할 만큼 촌각을 다투어 바삐 사는 인간은 절대로 아니거늘. 그저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아무래도 또 한번 부산까지 ktx를 타고 다녀와봐야 확실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부산이 그리운 건 지도 몰라.
십수년만에 처음 평상시에 신을 목적으로 굽이 전혀 없는 낮은 운동화를 장만하고 자랑까지 했으니 내가 매일매일 낮은 신발들만 신고 다녔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매일 외출하는 건 아니지만, 매일 외출을 하는 사람에 비유한다면 일주일에 엿새는 여전히 높은 신발을 신고, 하루만 바닥 신발을 신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만큼 나 자신조차 집밖에선 높은 굽으로 연장되지 않은 <단신의 삶>이 익숙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긴바지를 입을 땐 더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어제 저녁에도 아주 잠깐 자주색 운동화를 신고 나갈까 생각하다 결국엔 굽 높은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지난번에 사진으로도 공개한 하늘색 말고, 산지 5, 6년도 넘었지만 여전히 여름마다 내가 가장 아끼고 애용하는 푹신하고 예쁜 밤색 슬리퍼였다. 발가락을 끼우는 디자인이긴 해도 발등을 가로지르는 끈이 넓은 천이라 아무리 오래 신어도 발이 전혀 아프지 않고 게다가 높은 굽임에도 가볍기까지 해서 여름엔 멀리 여행을 갈 때 비행기를 타더라도 그만한 신발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제 그만 홍대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 찰나, 왼쪽 슬리퍼의 발가락 지탱 부분이 뚝 하고 끊어져 버렸다. 얼마 전 그 부분의 천이 약간 해진 것을 발견하긴 했지만, 겉에 둘러싸인 플라스틱이 튼튼해보여 올 여름까진 너끈히 신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침 횡단보도 앞 좌판에선 만원짜리 발가락슬리퍼를 팔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굽이 낮았다. 1cm도 안될 정도로... 조금 더 가면 다른 신발가게도 있는 건 알았지만, 굽 높은 발가락 슬리퍼가 망가지니 멀지 않은 거리도 신을 질질 끌고 걷는 건 불가능했다. 마침 거기서 파는 <쪼리>도 밤색이라는데 안도하며 하나 사신고 친구를 만났는데, 10년을 만나왔어도 늘 7, 8cm 굽으로 키를 높인 나만 보았던 친구는 몹시 낯설어 하며 깔깔댔다. 나란히 걸으면 눈높이와 어깨가 한참 아래로 뚝 떨어져 있는 내 단신의 실체를 새삼 느낀 게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집 밖에서 땅바닥에 붙어버린 개미 느낌으로 사방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내게도 낯선 경험이지만, 민망한 가운데서도 나 역시 상황이 웃겨 계속 킬킬대고 있었다.
드라마 같은 걸 보면 길을 걷다가 여주인공의 구두 굽이 똑하고 부러지는 바람에 곁에 있던 남자 주인공에게 업힌다든지, 웬 남자가 뜬금없이 망가진 굽을 고쳐준다든지 해서 사이가 각별해지거나 극적인 전개를 맞게 되는데, 현실은 역시나 전혀 다르다. 홀로 길을 건너려다 돌연 슬리퍼가 끊어져버린 나는 마침 1m 전방에 있던 슬리퍼 좌판에서 만원짜리 슬리퍼를 사 신었고 아끼던 신발과 작별한 것을 속으로 몹시 애석해 하며 가던 길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도 아끼던 굽높은 슬리퍼가 망가져 전혀 살 생각도 없었던 바닥 슬리퍼를 사 신게 된 것은 어쩌면 생긴대로 살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리면서. 지난 포스팅과 결부시켜 보자면 나는 결국 별것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럴듯하게 정당화하려는 편의주의 사고에 젖어 사는 사람인 듯하다. 그러므로 갑자기 종류가 늘어난 바닥신발들 때문에라도 앞으로는 낮은 신발을 신는 날이 일주일에 이틀 비율로 늘어날 확률이 높다.
생긴대로 살라는 뜻이 아니라면 뜬금없이 왜 길바닥에서 슬리퍼가 망가졌겠으며, 하필 또 코앞에서 비슷한 색깔의 바닥 슬리퍼를 팔았겠느냐고 끼워맞추면서 말이다. ^^
어제 저녁에도 아주 잠깐 자주색 운동화를 신고 나갈까 생각하다 결국엔 굽 높은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지난번에 사진으로도 공개한 하늘색 말고, 산지 5, 6년도 넘었지만 여전히 여름마다 내가 가장 아끼고 애용하는 푹신하고 예쁜 밤색 슬리퍼였다. 발가락을 끼우는 디자인이긴 해도 발등을 가로지르는 끈이 넓은 천이라 아무리 오래 신어도 발이 전혀 아프지 않고 게다가 높은 굽임에도 가볍기까지 해서 여름엔 멀리 여행을 갈 때 비행기를 타더라도 그만한 신발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제 그만 홍대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 찰나, 왼쪽 슬리퍼의 발가락 지탱 부분이 뚝 하고 끊어져 버렸다. 얼마 전 그 부분의 천이 약간 해진 것을 발견하긴 했지만, 겉에 둘러싸인 플라스틱이 튼튼해보여 올 여름까진 너끈히 신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침 횡단보도 앞 좌판에선 만원짜리 발가락슬리퍼를 팔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굽이 낮았다. 1cm도 안될 정도로... 조금 더 가면 다른 신발가게도 있는 건 알았지만, 굽 높은 발가락 슬리퍼가 망가지니 멀지 않은 거리도 신을 질질 끌고 걷는 건 불가능했다. 마침 거기서 파는 <쪼리>도 밤색이라는데 안도하며 하나 사신고 친구를 만났는데, 10년을 만나왔어도 늘 7, 8cm 굽으로 키를 높인 나만 보았던 친구는 몹시 낯설어 하며 깔깔댔다. 나란히 걸으면 눈높이와 어깨가 한참 아래로 뚝 떨어져 있는 내 단신의 실체를 새삼 느낀 게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집 밖에서 땅바닥에 붙어버린 개미 느낌으로 사방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내게도 낯선 경험이지만, 민망한 가운데서도 나 역시 상황이 웃겨 계속 킬킬대고 있었다.
드라마 같은 걸 보면 길을 걷다가 여주인공의 구두 굽이 똑하고 부러지는 바람에 곁에 있던 남자 주인공에게 업힌다든지, 웬 남자가 뜬금없이 망가진 굽을 고쳐준다든지 해서 사이가 각별해지거나 극적인 전개를 맞게 되는데, 현실은 역시나 전혀 다르다. 홀로 길을 건너려다 돌연 슬리퍼가 끊어져버린 나는 마침 1m 전방에 있던 슬리퍼 좌판에서 만원짜리 슬리퍼를 사 신었고 아끼던 신발과 작별한 것을 속으로 몹시 애석해 하며 가던 길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도 아끼던 굽높은 슬리퍼가 망가져 전혀 살 생각도 없었던 바닥 슬리퍼를 사 신게 된 것은 어쩌면 생긴대로 살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리면서. 지난 포스팅과 결부시켜 보자면 나는 결국 별것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럴듯하게 정당화하려는 편의주의 사고에 젖어 사는 사람인 듯하다. 그러므로 갑자기 종류가 늘어난 바닥신발들 때문에라도 앞으로는 낮은 신발을 신는 날이 일주일에 이틀 비율로 늘어날 확률이 높다.
생긴대로 살라는 뜻이 아니라면 뜬금없이 왜 길바닥에서 슬리퍼가 망가졌겠으며, 하필 또 코앞에서 비슷한 색깔의 바닥 슬리퍼를 팔았겠느냐고 끼워맞추면서 말이다. ^^
몇년째 벼르고 벼르면서 몸을 좀 건강하게 <만들어서> 응하리라 마음먹은 건강검진 날짜를 드디어 덜컥 잡아놓고 걱정이 앞선다. 소심한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일 텐데 그래도 이왕이면 자전거도 좀 더 많이 타둘걸,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체지방을 운동으로 좀 더 태웠더라면 좋았을 걸, 뭐 이런 비참한 후회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검진일 사흘 전부터는 음주와 육류를 삼가고 과식도 하지 말라고 써있던데, 아무 생각 없이 잡아놓은 날이다 보니 그런 권고사항도 지킬 수가 없다. 오늘은 뜻밖의 모임에서 돼지갈비에 맥주로 배 터지게 과식을 하고 돌아와 알딸딸한 취기 속에 마구 동하는 한밤중 식탐까지 참지 못했으며, 내일은 또 할머니 제사다. 제삿날이야 미리 알고 있었으니, 그 다음다음날로 검진일을 잡은 건 순전히 내 잘못이다.
날짜를 잡을 때만 해도 제삿날 나물 반찬에 부침개만 조금 먹으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제사 음식 좋아하는 내가 늦은 밤 과식을 피할 수 있을지 지금 생각하니 영 자신이 없다. 하루 이틀 기름지게 먹어댔다고 콜레스테롤 수치 같은 게 왕창 높아지는지 어쩐지 잘은 모르지만, 별 영향이 없다면 굳이 왜 사흘 전부터 가볍게 먹으라고 권하겠나 말이다. 젠장.
게다가 검진센터에서 충격적이게도 <채변>을 해오란다! 어떻게 하라고~~~~!!!
그건 안해가면 안돼나? -_-;;
까마득한 학창시절에도 꼭 안해오는 애들 있기 마련이었는데, 나도 그냥 귀찮은 그 과정은 제낄까 어쩔가 그것도 걱정이다. 검진비용이 하도 비싸서 하나라도 검사를 빼먹으면 아까울 것 같긴 한데... 남의 대변 일일이 검사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도 있을 텐데... 어차피 내 입으로 들어간 거 다른 구멍으로 나오는 분비물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더러울 것도 없는데... 그래도 <채변>이라는 말은 너무도 부담스럽다. ㅠ.ㅠ
그나마 좀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선 사흘 전부터 취침시간도 좀 당겨볼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아무때나 잠이 올리도 없고 참...
역시나 결론은 <생긴대로 살자>는 것밖에 없으나, 다시 도진 건강 염려증에 심히 불안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는 건 쉽지 않다. 애당초 건강검진을 할 마음을 먹은 것부터 마음이 약해졌다는 증거니까! 흑흑. 무서워라.
검진일 사흘 전부터는 음주와 육류를 삼가고 과식도 하지 말라고 써있던데, 아무 생각 없이 잡아놓은 날이다 보니 그런 권고사항도 지킬 수가 없다. 오늘은 뜻밖의 모임에서 돼지갈비에 맥주로 배 터지게 과식을 하고 돌아와 알딸딸한 취기 속에 마구 동하는 한밤중 식탐까지 참지 못했으며, 내일은 또 할머니 제사다. 제삿날이야 미리 알고 있었으니, 그 다음다음날로 검진일을 잡은 건 순전히 내 잘못이다.
날짜를 잡을 때만 해도 제삿날 나물 반찬에 부침개만 조금 먹으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제사 음식 좋아하는 내가 늦은 밤 과식을 피할 수 있을지 지금 생각하니 영 자신이 없다. 하루 이틀 기름지게 먹어댔다고 콜레스테롤 수치 같은 게 왕창 높아지는지 어쩐지 잘은 모르지만, 별 영향이 없다면 굳이 왜 사흘 전부터 가볍게 먹으라고 권하겠나 말이다. 젠장.
게다가 검진센터에서 충격적이게도 <채변>을 해오란다! 어떻게 하라고~~~~!!!
그건 안해가면 안돼나? -_-;;
까마득한 학창시절에도 꼭 안해오는 애들 있기 마련이었는데, 나도 그냥 귀찮은 그 과정은 제낄까 어쩔가 그것도 걱정이다. 검진비용이 하도 비싸서 하나라도 검사를 빼먹으면 아까울 것 같긴 한데... 남의 대변 일일이 검사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도 있을 텐데... 어차피 내 입으로 들어간 거 다른 구멍으로 나오는 분비물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더러울 것도 없는데... 그래도 <채변>이라는 말은 너무도 부담스럽다. ㅠ.ㅠ
그나마 좀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선 사흘 전부터 취침시간도 좀 당겨볼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아무때나 잠이 올리도 없고 참...
역시나 결론은 <생긴대로 살자>는 것밖에 없으나, 다시 도진 건강 염려증에 심히 불안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는 건 쉽지 않다. 애당초 건강검진을 할 마음을 먹은 것부터 마음이 약해졌다는 증거니까! 흑흑. 무서워라.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보다 키작은 사람들은 허리 굽은 할머니들 밖에 찾아보기 힘든 요즘, 반평생 비애를 느껴온 단신의 나로서는 꽤 어려운 결심을 했다. 20년 가까이 낮은 신발을 극구 외면하던 내가 그냥 생긴대로 살자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한 것이다.
일괄적으로 높은 굽에 맞도록 길이를 자른 바지들을 위한다는 구실로 편하게 신자는 발가락 고무 슬리퍼조차 높은 것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바로 나다.
일괄적으로 높은 굽에 맞도록 길이를 자른 바지들을 위한다는 구실로 편하게 신자는 발가락 고무 슬리퍼조차 높은 것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바로 나다.
운동화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키작은 십대들이 신는, 앞뒤로 굽이 8cm쯤 되는 운동화를 몇년 전 집 근처 백화점에서 발견하고 어찌나 기쁘던지 지인들의 옆구리를 찔러 생일선물로 받아내선 거의 5년 가까이 애용했다. 그 운동화가 뒤축이 터지고 안감이 해지는 바람에 다른 굽 높은 운동화를 찾아나섰지만, 죄다 뒷굽만 안쪽으로 교묘하게 높여놓은 키높이 운동화가 대세일 뿐 그때 그 운동화처럼 튼튼하고 편한 높은 운동화는 만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도 키높이 운동화를 사서 신어보았지만 오래 걷기엔 별로 편하지도 않았던 데다 얼마전부터는 겉만 멀쩡해보였지 비만 오면 신발이 새기 시작했다. 그래서 또 다시 새로이 굽높은 운동화를 찾아다닌지 어언 넉달. 멍청하게 생긴 속임수 키높이 운동화가 아니고선 예쁘고 편하고 튼튼하고 솔직하게 안팎으로 굽이 높은 운동화는 국내에서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미국에선 3-40불이면 사는 운동화를 구매대행 해서 15만원에 사 신을 순 없는 일!
어영부영 미적거리다 늦봄이 가고 이제는 초여름이구나 생각되는 나날이 다가오자 문득 신발장 안에 상징적으로 남아 있는 신발 하나에 생각이 미쳤다. 근거없이 자신만만하던 사회생활 초기, 첫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는 하이힐 못지 않게 굽이 1cm에 불과한 바닥신발도 자주 신고 다녔다. 신발을 여러개 놓고 번갈아 신는 편이라 어느 것도 잘 닳지 않기는 하지만, 당시에 무척 애용하여 뒷굽 고무는 꽤 여러번 갈아신었음에도 신발장에 20년 가까이 모셔져 있는 그 신발이 여기저기 좀 닳긴 했어도 아직 멀쩡해 보이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더욱이 재질도 가죽이 아니라 나일론 비슷한 천인데... 얼마 전 클림트 전시회를 보러 가는 날, 비 새는 운동화는 괜히 신기 싫고 오래 서 있으려면 편한 신발을 신기는 해야겠고 해서 신발장에 모셔만 두었던 그 바닥 신발을 실로 오랜만에 신고 나섰다. 기분이 아주 묘했다. 땅바닥에 붙어 다니는 개미처럼 움츠러드는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그동안 교묘히 높은 굽으로 사람들을 속여 오다가 새삼스레 다시한번 나 자신을 세상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속 시원해 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내게 신경쓰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도 워낙 큰 키에 하이힐도 모자라 요샌 이름도 무서운 십몇센티미터짜리 <킬힐>을 신고 다니는 꺽다리 여자들 사이에서 초등학생처럼 느껴지는 단신으로 걸어다니는 게 마냥 뿌듯할 수만은 없다. 겉으로는 외모 지상주의를 욕하면서 남몰래 남자들도 구두 안에 키높이 굽을 숨겨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할 뿐이다.
하이힐을 신으면 키도 커보이지만 굵은 종아리도 어쩐지 좀 가늘어 <보이는> 것 같고, 짧은 다리도 길어진 듯한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굽으로 높여봤자 여전히 발육 좋은 요즘 젊은 애들과는 길이를 비교할 수 없는 형편이고, 작은 키 못지 않게 작은 발로는 십센티미터가 넘는 킬힐을 소화해낼 수도 없음을 알고 나니 철이 좀 들은걸까. 굳이 발꿈치 아래로 늘어지는 긴 바지를 입을 일이 없는 요즘 날씨 덕분에 간만에 세상을 본 옛날 바닥 신발을 신고 다녀보니 까짓것 더 이상 굽높은 운동화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겠다 싶었다. 그동안 예쁘긴 한데 굽이 낮아서 외면했던 신발들도 이젠 얼마든지 신어주마 하는 배포(?) 또는 억압되었던 욕망이 샘솟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며칠 전엔 충동적으로 납작한 운동화도 사들였다. 남들이 신은 걸 보며 군침만 흘렸던 끈 묶는 캔버스화는 오히려 눈에 안들어오는 반면, 고무신 같은 재미난 신발이 더 눈길을 끌더라. 운동화 하나 사놓고 또 어울리는 옷과 바지 걱정에 꽤나 낑낑대긴 하겠지만, 그래도 꽤나 뿌듯하다. 생긴대로 산다는 게 이렇게 편하고 좋은 거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고나 할까. 굽이 없으면 오히려 오래 걷기에 나쁘니 어쩌니 말도 많지만, 7, 8센티미터 굽의 하이힐에 비할까. 조만간 또 나는 땅바닥에서 탈출하려는 단신의 욕망에 꿈틀댈 것이 틀림없지만, 그래도 당분간 원래 그대로의 낮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며 솔직하게 살아볼란다.
어영부영 미적거리다 늦봄이 가고 이제는 초여름이구나 생각되는 나날이 다가오자 문득 신발장 안에 상징적으로 남아 있는 신발 하나에 생각이 미쳤다. 근거없이 자신만만하던 사회생활 초기, 첫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는 하이힐 못지 않게 굽이 1cm에 불과한 바닥신발도 자주 신고 다녔다. 신발을 여러개 놓고 번갈아 신는 편이라 어느 것도 잘 닳지 않기는 하지만, 당시에 무척 애용하여 뒷굽 고무는 꽤 여러번 갈아신었음에도 신발장에 20년 가까이 모셔져 있는 그 신발이 여기저기 좀 닳긴 했어도 아직 멀쩡해 보이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더욱이 재질도 가죽이 아니라 나일론 비슷한 천인데... 얼마 전 클림트 전시회를 보러 가는 날, 비 새는 운동화는 괜히 신기 싫고 오래 서 있으려면 편한 신발을 신기는 해야겠고 해서 신발장에 모셔만 두었던 그 바닥 신발을 실로 오랜만에 신고 나섰다. 기분이 아주 묘했다. 땅바닥에 붙어 다니는 개미처럼 움츠러드는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그동안 교묘히 높은 굽으로 사람들을 속여 오다가 새삼스레 다시한번 나 자신을 세상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속 시원해 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내게 신경쓰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도 워낙 큰 키에 하이힐도 모자라 요샌 이름도 무서운 십몇센티미터짜리 <킬힐>을 신고 다니는 꺽다리 여자들 사이에서 초등학생처럼 느껴지는 단신으로 걸어다니는 게 마냥 뿌듯할 수만은 없다. 겉으로는 외모 지상주의를 욕하면서 남몰래 남자들도 구두 안에 키높이 굽을 숨겨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할 뿐이다.
하이힐을 신으면 키도 커보이지만 굵은 종아리도 어쩐지 좀 가늘어 <보이는> 것 같고, 짧은 다리도 길어진 듯한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굽으로 높여봤자 여전히 발육 좋은 요즘 젊은 애들과는 길이를 비교할 수 없는 형편이고, 작은 키 못지 않게 작은 발로는 십센티미터가 넘는 킬힐을 소화해낼 수도 없음을 알고 나니 철이 좀 들은걸까. 굳이 발꿈치 아래로 늘어지는 긴 바지를 입을 일이 없는 요즘 날씨 덕분에 간만에 세상을 본 옛날 바닥 신발을 신고 다녀보니 까짓것 더 이상 굽높은 운동화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겠다 싶었다. 그동안 예쁘긴 한데 굽이 낮아서 외면했던 신발들도 이젠 얼마든지 신어주마 하는 배포(?) 또는 억압되었던 욕망이 샘솟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며칠 전엔 충동적으로 납작한 운동화도 사들였다. 남들이 신은 걸 보며 군침만 흘렸던 끈 묶는 캔버스화는 오히려 눈에 안들어오는 반면, 고무신 같은 재미난 신발이 더 눈길을 끌더라. 운동화 하나 사놓고 또 어울리는 옷과 바지 걱정에 꽤나 낑낑대긴 하겠지만, 그래도 꽤나 뿌듯하다. 생긴대로 산다는 게 이렇게 편하고 좋은 거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고나 할까. 굽이 없으면 오히려 오래 걷기에 나쁘니 어쩌니 말도 많지만, 7, 8센티미터 굽의 하이힐에 비할까. 조만간 또 나는 땅바닥에서 탈출하려는 단신의 욕망에 꿈틀댈 것이 틀림없지만, 그래도 당분간 원래 그대로의 낮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며 솔직하게 살아볼란다.
얼마전 토룡마을 주민들과 자전거를 타러 갔던 날, 홀로 집을 지키던 엄마가 전화로 말했었다.
"월드컵 공원 좋아? 엄마도 가보고 싶다."
서울서 태어나고 자라서 오히려 서울 곳곳을 <관광>하러 다니는 게 어색한 우리 엄마는 특히 최근들어 생겨난 크고 작은 공원 같은 곳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는 듯해, 몇년 전부터 가끔씩 모시고 다니리라 다짐은 했지만 실천에 옮기는 건 늘 게으름에 밀리기 일쑤다. 하늘공원은 작년엔가 막내네가 모시고 다녀왔지만, 바로 아래쪽 평화공원엔 왕비마마가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더불어 서울숲과 올림픽공원, 한강 둔치, 유람선도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그래서 더 더워지기 전에 월드컵 공원 소풍을 계획하고 나선 것이 어제. 엄마는 걷는 운동을 하고 나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가 타기로 마음 먹었더니, 소풍 계획을 알게된 정민공주네도 합류하고 싶어 했다. 온집안에 몰아친 자전거 열풍에 휩쓸려 자기도 어린이용 자전거 말고 <기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공주가 드디어 소원을 이루어 <우베공>을 장만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와 똑같은 하얀색. 당연히 작은 사이즈로 샀을 줄 알았더니, 자존심 상하게도 M사이즈였다. ㅠ.ㅠ 좀 더 있으면 당연히 공주가 나보다 키가 커지겠지만, 제 아빠도 같이 타려면 큰 걸 사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모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뭐든 고모 자전거랑 똑같아야 한다며 욕심을 부리던 공주는 제 자전거가 더 크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모양이더니, 벨로 언니도 M사이즈라니깐 그제야 생글생글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M사이즈 살 걸! 안장 제일 낮추면 지금 내 안장 높이랑 똑같던데 ㅠ.ㅠ;;
원래 계획은 왕비마마를 모시고 월드컵 공원을 한바퀴 돌아 <빡시게> 운동을 시키는 것이었지만, 초장부터 다리 아프다며 드러누워 좀체 운동을 하려하지 않는 왕비마마를 독려하는 건 불가능했다. 속으로는 정말로 눌린 척추신경을 복원하는 수술을 해야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인지 겁부터 나는데, 겉으로는 엄살부린다며 엄마한테 자꾸 짜증을 내고 있었다. 왕비마마는 자꾸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주고 가는 중국집, 치킨집 먹거리에 끌리는 모양이었고 공주네 식구도 잔디밭에 앉아 짜장면과 짬뽕을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단호히 그들을 말렸다. 말이 소풍이지 본래 목적은 가열찬 운동이건만, 나와서 잔뜩 먹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람!
왕비마마의 운동량은 오히려 평소 홍제천 산책 때보다 적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훌륭한 편이었다. 월드컵 공원에 간 게 수차례이면서도 구석구석 다 돌아본 적 없던 나는 거의 공주에게 끌려다니다시피 공원을 여러바퀴 돌아야 했고, 심지어 공원이 너무 좁아서 자전거 타는 맛이 안난다는 공주를 데리고 한강으로 나가 성산대교, 양화대교를 지나 당산 철교까지, 그리고 다시 돌아 가양대교 방면으로 자전거길 조성공사를 새로이 하느라 길을 막아놓은 곳까지 다녀왔으며, 귀가길에도 차는 동생에게 맡긴 채 홍제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_+
자전거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올케 역시 핸들이 좀 흔들리긴 해도 꽤나 진척이 있어 사람들이 많지 않은 길에선 퍽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 되었으며, 잠시 한강변 답사를 다녀온 큰동생도 우리집에서 반포대교까지는 무리없이 출퇴근할 수 있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원래 언덕 위 우리집에서 월드컵공원까지 자전거로 걸리는 시간은 25분에서 30분. 차로 가면 주차시간까지 합해도 15분이 안 걸린다. 시간상으로는 당연히 자동차가 빠를 수밖에 없지만, 돌아오는 길에 과연 누가 빨리 도착할 것인지 궁금했는데, 예상외로 자전거를 타고 온 우리가 훨씬 빨랐다. 자전거길 조성공사로 군데군데 공사중이던 홍제천변 산책로 포장이 거의 끝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공원 주차장에서 차 두대가 빠져나오는데만도 엄청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팍팍한 다리로 자전거를 끌고 마지막 언덕길을 오르며 나는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여전히 팔팔하게 기운이 넘치는 공주는 공원에서 고모네 집까지 생각보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실망이라고 했다.
어느새 너무 익어 마당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앵두를 올해 처음 따면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정말 감개무량했다. 느루를 장만하고 1년 넘게 내가 자전거를 탄 시간은 하루에 길어야 1시간 남짓. 다리가 묵직해지기 시작하면 이내 쉬면서도 홀로 흡족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젠 중간에 쉬엄쉬엄 타기는 했어도 꼬박 3시간은 자전거를 탔을 거다. 막판엔 엉덩이가 찢어질 듯 아프고 다리도 묵직하다 못해 거의 뻣뻣해졌으니까. 밤 10시도 되기 전에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일어난 오늘도 여전히 삭신이 쑤시는데, 예상보다는 거뜬하다. 지난주에 미리 좀 걷고 자전거를 타둔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 왕비마마도 자전거를 타실 수 있다면 다리가 좀 아파도 운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프렌즈>에서 피비가 타던 어른용 네발 자전거 생각이 난다. 우리나라엔 어른용 네발 자전거 없나? +_+ 알아봐야겠다.
"월드컵 공원 좋아? 엄마도 가보고 싶다."
서울서 태어나고 자라서 오히려 서울 곳곳을 <관광>하러 다니는 게 어색한 우리 엄마는 특히 최근들어 생겨난 크고 작은 공원 같은 곳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는 듯해, 몇년 전부터 가끔씩 모시고 다니리라 다짐은 했지만 실천에 옮기는 건 늘 게으름에 밀리기 일쑤다. 하늘공원은 작년엔가 막내네가 모시고 다녀왔지만, 바로 아래쪽 평화공원엔 왕비마마가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더불어 서울숲과 올림픽공원, 한강 둔치, 유람선도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그래서 더 더워지기 전에 월드컵 공원 소풍을 계획하고 나선 것이 어제. 엄마는 걷는 운동을 하고 나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가 타기로 마음 먹었더니, 소풍 계획을 알게된 정민공주네도 합류하고 싶어 했다. 온집안에 몰아친 자전거 열풍에 휩쓸려 자기도 어린이용 자전거 말고 <기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공주가 드디어 소원을 이루어 <우베공>을 장만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와 똑같은 하얀색. 당연히 작은 사이즈로 샀을 줄 알았더니, 자존심 상하게도 M사이즈였다. ㅠ.ㅠ 좀 더 있으면 당연히 공주가 나보다 키가 커지겠지만, 제 아빠도 같이 타려면 큰 걸 사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모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뭐든 고모 자전거랑 똑같아야 한다며 욕심을 부리던 공주는 제 자전거가 더 크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모양이더니, 벨로 언니도 M사이즈라니깐 그제야 생글생글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M사이즈 살 걸! 안장 제일 낮추면 지금 내 안장 높이랑 똑같던데 ㅠ.ㅠ;;
원래 계획은 왕비마마를 모시고 월드컵 공원을 한바퀴 돌아 <빡시게> 운동을 시키는 것이었지만, 초장부터 다리 아프다며 드러누워 좀체 운동을 하려하지 않는 왕비마마를 독려하는 건 불가능했다. 속으로는 정말로 눌린 척추신경을 복원하는 수술을 해야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인지 겁부터 나는데, 겉으로는 엄살부린다며 엄마한테 자꾸 짜증을 내고 있었다. 왕비마마는 자꾸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주고 가는 중국집, 치킨집 먹거리에 끌리는 모양이었고 공주네 식구도 잔디밭에 앉아 짜장면과 짬뽕을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단호히 그들을 말렸다. 말이 소풍이지 본래 목적은 가열찬 운동이건만, 나와서 잔뜩 먹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람!
왕비마마의 운동량은 오히려 평소 홍제천 산책 때보다 적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훌륭한 편이었다. 월드컵 공원에 간 게 수차례이면서도 구석구석 다 돌아본 적 없던 나는 거의 공주에게 끌려다니다시피 공원을 여러바퀴 돌아야 했고, 심지어 공원이 너무 좁아서 자전거 타는 맛이 안난다는 공주를 데리고 한강으로 나가 성산대교, 양화대교를 지나 당산 철교까지, 그리고 다시 돌아 가양대교 방면으로 자전거길 조성공사를 새로이 하느라 길을 막아놓은 곳까지 다녀왔으며, 귀가길에도 차는 동생에게 맡긴 채 홍제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_+
자전거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올케 역시 핸들이 좀 흔들리긴 해도 꽤나 진척이 있어 사람들이 많지 않은 길에선 퍽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 되었으며, 잠시 한강변 답사를 다녀온 큰동생도 우리집에서 반포대교까지는 무리없이 출퇴근할 수 있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원래 언덕 위 우리집에서 월드컵공원까지 자전거로 걸리는 시간은 25분에서 30분. 차로 가면 주차시간까지 합해도 15분이 안 걸린다. 시간상으로는 당연히 자동차가 빠를 수밖에 없지만, 돌아오는 길에 과연 누가 빨리 도착할 것인지 궁금했는데, 예상외로 자전거를 타고 온 우리가 훨씬 빨랐다. 자전거길 조성공사로 군데군데 공사중이던 홍제천변 산책로 포장이 거의 끝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공원 주차장에서 차 두대가 빠져나오는데만도 엄청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팍팍한 다리로 자전거를 끌고 마지막 언덕길을 오르며 나는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여전히 팔팔하게 기운이 넘치는 공주는 공원에서 고모네 집까지 생각보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실망이라고 했다.
어느새 너무 익어 마당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앵두를 올해 처음 따면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정말 감개무량했다. 느루를 장만하고 1년 넘게 내가 자전거를 탄 시간은 하루에 길어야 1시간 남짓. 다리가 묵직해지기 시작하면 이내 쉬면서도 홀로 흡족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젠 중간에 쉬엄쉬엄 타기는 했어도 꼬박 3시간은 자전거를 탔을 거다. 막판엔 엉덩이가 찢어질 듯 아프고 다리도 묵직하다 못해 거의 뻣뻣해졌으니까. 밤 10시도 되기 전에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일어난 오늘도 여전히 삭신이 쑤시는데, 예상보다는 거뜬하다. 지난주에 미리 좀 걷고 자전거를 타둔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 왕비마마도 자전거를 타실 수 있다면 다리가 좀 아파도 운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프렌즈>에서 피비가 타던 어른용 네발 자전거 생각이 난다. 우리나라엔 어른용 네발 자전거 없나? +_+ 알아봐야겠다.
슬럼프라고 하기엔 너무 오랜 기간 일이 하기 싫어짐을 느끼면서 요새 턱도 없는 소망을 품는다. 작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인세계약 번역서들이 스테디셀러가 되어(베스트셀러는 바라지도 않기로 했다) 10년 뒤까지 다들 끊임없이 팔려나간다면, 분기별로나 상하반기로 나뉘어 송금받는 번역인세가 점점 쌓여 중간에 한해 쯤은 스스로 안식년으로 정하고 팽팽 놀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는 족족 써버리는 나의 소비행태와 현재의 수입과 지출 규모를 감안할 때 통장 잔고가 착실히 늘어나거나 적금통장 따위가 새로이 생겨날 가능성은 전혀 없으므로, 저런 소망은 막연한 상상에 가깝다. 그래도 어쨌거나 꿈꾸는 데는 돈 안드니깐 뭐.
문제는 십수년째 해마다 <최악의 불황>이라고 하소연하는 출판시장과 전 지구적인 경기침체뿐만이 아니다. 내가 번역한 책들이 특별히 널리 권할 만큼 좋은 책도 아닌 데다 블로그 이웃들을 제외하면 내 주변인들 가운데서는 책을 열심히 읽는 이들도 없기 때문에 나로선 인세 수입을 늘이는 데 기여할 만한 방법이 통 없다. 내 번역서만 특별히 마케팅에 신경 써달라고 출판사에 강짜를 부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초판 1쇄 다 팔리고 2쇄 인쇄 들어갈 수 있게 책 좀 사보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강권하면, 그들은 씩 웃으며 "책 한권에 만원이라고 치고 옜다, 넉넉하게 10% 챙겨주마"라면서 천원짜리를 내밀곤 했다. -_-;;
그러다 요번에 <도서관에 책 신청해서 깨끗한 책 처음으로 빌려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문득 궁금해져 내가 번역한 책들을 검색해보았다. 아, 그랬더니 매절 계약이라 많이 팔려도 상관없는 책들은 거의 다 동네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는 반면, 인세 계약한 책들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젠장. 혹시나 해서 최근에 책을 내신 이웃분들의 책도 검색해봤더니 그 책들 역시 도서관엔 없었다. 확실히 이 동네 시립 도서관의 장서량이 열악하다는 증거였다.
당장 책을 신청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보니 또 문득 민망해졌다. 자기가 번역한 책 자기가 신청한다고 도서관에서 안 사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한두 권 더 소비하도록 손쓴다고 해서 당장 2쇄, 3쇄를 찍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이왕 생각한 거 실천해보자 싶어서 우선은 읽고 싶은 책과 이웃분들의 책을 먼저 신청하고 내 책은 시험삼아 한권만 비치요청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모양이다. ㅠ.ㅠ 이웃분들의 책은 도서관에 입고되었으니 빌려가라고 문자메시지가 다 왔길래 이미 읽은 책이지만 얼른 가서 받아다 놓았다가 2주 후에 반납했는데, 내 책은 연락이 없다. 그나마 제일 <양서>로 골라 신청했는데!
번역서는 책 정보 입력란에 지은이 이름만 넣게 되어 있던데, 담당자가 공교롭게 나의 음모를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그냥 착오로 빠뜨린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 신청한 책들은 다음 달로 넘어간 것일까? 아무려나 소심쟁이의 인세 늘이기 로망은 괜한 뻘짓으로 마무리 되고 있는 것 같아 상심했다. 내 책 들어왔다고 문자 메시지 오면,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빌리러 가야하나 그냥 책꽂이에 비치되도록 모른 체 할까, 우유부단하게 그거 고민하고 있었더니만 이게 뭐람. 이번 책 성공하면 나머지 인세 책도 다 신청할 작정이었는데, 다 부질없다. 쓸데없는 요행 바라며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이나 착실히 하라는 건가. 쳇.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는 족족 써버리는 나의 소비행태와 현재의 수입과 지출 규모를 감안할 때 통장 잔고가 착실히 늘어나거나 적금통장 따위가 새로이 생겨날 가능성은 전혀 없으므로, 저런 소망은 막연한 상상에 가깝다. 그래도 어쨌거나 꿈꾸는 데는 돈 안드니깐 뭐.
문제는 십수년째 해마다 <최악의 불황>이라고 하소연하는 출판시장과 전 지구적인 경기침체뿐만이 아니다. 내가 번역한 책들이 특별히 널리 권할 만큼 좋은 책도 아닌 데다 블로그 이웃들을 제외하면 내 주변인들 가운데서는 책을 열심히 읽는 이들도 없기 때문에 나로선 인세 수입을 늘이는 데 기여할 만한 방법이 통 없다. 내 번역서만 특별히 마케팅에 신경 써달라고 출판사에 강짜를 부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초판 1쇄 다 팔리고 2쇄 인쇄 들어갈 수 있게 책 좀 사보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강권하면, 그들은 씩 웃으며 "책 한권에 만원이라고 치고 옜다, 넉넉하게 10% 챙겨주마"라면서 천원짜리를 내밀곤 했다. -_-;;
그러다 요번에 <도서관에 책 신청해서 깨끗한 책 처음으로 빌려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문득 궁금해져 내가 번역한 책들을 검색해보았다. 아, 그랬더니 매절 계약이라 많이 팔려도 상관없는 책들은 거의 다 동네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는 반면, 인세 계약한 책들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젠장. 혹시나 해서 최근에 책을 내신 이웃분들의 책도 검색해봤더니 그 책들 역시 도서관엔 없었다. 확실히 이 동네 시립 도서관의 장서량이 열악하다는 증거였다.
당장 책을 신청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보니 또 문득 민망해졌다. 자기가 번역한 책 자기가 신청한다고 도서관에서 안 사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한두 권 더 소비하도록 손쓴다고 해서 당장 2쇄, 3쇄를 찍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이왕 생각한 거 실천해보자 싶어서 우선은 읽고 싶은 책과 이웃분들의 책을 먼저 신청하고 내 책은 시험삼아 한권만 비치요청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모양이다. ㅠ.ㅠ 이웃분들의 책은 도서관에 입고되었으니 빌려가라고 문자메시지가 다 왔길래 이미 읽은 책이지만 얼른 가서 받아다 놓았다가 2주 후에 반납했는데, 내 책은 연락이 없다. 그나마 제일 <양서>로 골라 신청했는데!
번역서는 책 정보 입력란에 지은이 이름만 넣게 되어 있던데, 담당자가 공교롭게 나의 음모를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그냥 착오로 빠뜨린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 신청한 책들은 다음 달로 넘어간 것일까? 아무려나 소심쟁이의 인세 늘이기 로망은 괜한 뻘짓으로 마무리 되고 있는 것 같아 상심했다. 내 책 들어왔다고 문자 메시지 오면,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빌리러 가야하나 그냥 책꽂이에 비치되도록 모른 체 할까, 우유부단하게 그거 고민하고 있었더니만 이게 뭐람. 이번 책 성공하면 나머지 인세 책도 다 신청할 작정이었는데, 다 부질없다. 쓸데없는 요행 바라며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이나 착실히 하라는 건가.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