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

투덜일기 2008. 12. 18. 19:39

요즘들어 삶이 완전 엉망이다.
준백수스러운 직업인으로서 약속이 없는 날은 아예 며칠씩 두문불출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점점 망가짐을 느낀다. 작업실을 멀리하면서 작업량과 질을 고민하는 나에게 어느 지인은 이렇게 조언했다.
자는 방에서 컴퓨터방으로 옮겨갈 때 출근한다 생각하고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 분위기를 바꿔보라고.
그러면 마냥 늘어져 좀비스러운 삶에 빠져들진 않을 거라나.
허나 게으름 면에서 그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내가 행여나 그럴 리가.
원래 외출을 하지 않으면 세수도 잘 안하는 인간이다보니, 세수도 이틀에 한번꼴로 하는둥마는둥
심지어 머리는 월요일에 감고 목요일인 오늘까지 버티고 있다. 아 드러워.
인간의 적응력은 또 실로 대단해서, 매일 외출할 땐 매일 머리를 감아야 살면서 집구석에서 뒹굴거릴 땐 사흘씩 머리를 안감아도 앞머리만 실핀으로 척 꽂아 넘겨주면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찐덕찐덕 끼는 머릿기름도 주인 눈치를 봐가며 두피에서 분비가 되는 모양.

꼬락서니만 엉망이면 또 별 문제가 아니다.
새벽에 잠들어 오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올빼미의 삶을 나름 규칙적으로 이어나갔을 때는
남들 점심이 내겐 아침, 남들 먹는 저녁이 나에겐 점심, 그리고 자정께의 밤참이 나에겐 저녁식사인 셈이었기에 꼬박 세 끼니를 균형있게 챙겨먹고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운동 부족인지 일조량 부족인지 총체적인 체력부실인지
밥만 먹으면 졸려서 암때나 픽 쓰러져 두어 시간씩 잠을 자곤 한다.
낮잠을 잤으니 당연히 밤잠(내게는 아침잠?)이 잘 올 리가 없다.
원래 자야할 시간인 새벽이 밝아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낑낑대다가 멍한 머리로 좀비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다가는 어느 순간 고꾸라져 하루종일 이불속을 탈피하지 못할 때도 있다.
게다가 나는 원래부터 잠을 잘 땐 절대 배고픔을 모르는 동면형 인간이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자느라 굶다가 마뜩찮게 일어나 저녁 한끼를 먹고는 또 그 식곤증을 못이겨 픽 쓰러져 잔다. -_-;

겨울만 되면 동면들어간 곰탱이처럼 빌빌댄다는 핀잔을 익히 듣긴 했으나
요즘의 작태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끼니를 해결할 땐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음식물을 들여보내줘야 몸이 불안해하질 않는다. 불규칙하게 밥을 먹으면 살찌는 이유가, 굶주렸던 몸이 놀라 언제 또 음식물이 들어올지 모르니 무조건 저장을 해두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요즘 같아선 아무때나 제대로 챙겨먹는 끼니 한번에 두서없는 밤참 한두번이 나의 섭생이라, 이미 겨울 들어 두루뭉술 불어나던 살집은 나날이 사상 최고 몸무게를 경신하고 있다. 큭.
만날 고무줄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으로 늘어져 있으니 살집이 늘어나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도 안쓰고 살지만, 벌써 일주일째 머리 자르러 미용실 가야지 맘먹은 걸 실천 못하고 있는 걸 보면 거의 폐인모드에 접어든 것이라 짐작된다. 원래 머리가 길게 느껴지면 못 견디고 그날로 자르러 가던 격한 성질머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엉망으로 무너지고 있는 일상을 되돌리지 않으면 도저히 봐줄 수 없을 만큼 늘어지고 방만하게 진행되는 작업 스케줄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부디 내일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미용실 외출에 성공하길 염원하노라.
어제로 한톨도 없이 똑 떨어진 커피원두도 사야한단 말이지! ㅠ.ㅠ
(냉동실에 늘 서너봉지씩 들어있던 원두커피가 완벽하게 떨어진 것은 그 무엇보다 내 삶이 엉망임을 가리키는 지표 같다 흑...)
간만에 먹는 맥심 커피믹스는 참 맛없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