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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8 진짜 별 10
  2. 2010.01.15 어처구니 없는 요구 18
  3. 2010.01.15 변화 8
  4. 2010.01.08 얼마나 갈까 4
  5. 2009.12.26 친구 전화 8
  6. 2009.12.22 동짓날 19
  7. 2009.12.19 투덜투덜 12
  8. 2009.12.17 연말유예 7
  9. 2009.12.15 자동차 10년 13
  10. 2009.12.14 순무 13

진짜 별

투덜일기 2010. 1. 28. 17:04

사람마다 이상형의 조건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 남들이 좀 특이하다고 보는 부분은 <존경스러운 점>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첫눈에 뿅가는 불타는 사랑 따위 해본 적도 없고 믿지도 않지만, 그나마 어설프게라도 상대에게 사랑을 느끼려면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먼저 생겨야 한다. 스스로 부족한 게 워낙 많아서 내가 존경할 만한 부분도 조목조목 워낙 많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운동을 잘해도, 아이들이랑 잘 놀아줘도, 노인들에게 잘해도, 박식해도, 악기를 잘 다뤄도, 목소리가 낮고 좋아도,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써도, 말솜씨(달변과는 좀 다르다)가 좋아도, 인간관계를 잘해도, 동정심이 많아도... 손꼽자면 끝도 없다. 다만 저런 사실을 드러내놓고 우쭐대며 잘난척만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나의 존경심이 샘솟는 건 순식간이다.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자질도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존경스러운 부분이 그 단점을 뒤덮을 정도라면 아마 사랑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다. 물론 과거 연애사를 돌아볼 때 변변찮은 빈도수를 보면 퍽 까다로운 기준임은 확실하다.

고백하기 좀 민망하지만 나에겐 가상연애나 기약없는 짝사랑의 일종이라고 생각되는 <스타>에 대한 애정 역시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물론 처음엔 외모나 목소리, 노래에 혹해서, 또는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에 혹해서 잠시 열광하는 배우나 가수가 있지만, 오래도록 지켜보며 존경스러운 점을 찾지 못하면 나의 애정은 한순간에 식고 만다. 싫고 짜증나는 단점을 발견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특별히 열렬히 팬 활동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의 미니홈피를 드나들며 멋진 사진을 퍼나르기도 하고, 컴퓨터 하드에 따로 사진 폴더도 꾸미고 그에 관한 기사는 죄다 찾아 읽으며 홀로 흐뭇해하다가 어느 순간 스러져간 나만의 스타들을 꼽아보자면 원빈, 조승우, 현빈, 김범, 장국영, 여명, 다케노우치 유타카, 오다기리 조, 콜린 퍼스, 주드 로, 조니 뎁 등이 있다. 조승우는 한 때 단체로 열광하다가 순식간에 다들 싫어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보니, <지킬 앤 하이드> 보고 와서 열병 앓듯 계속 ost 듣던 때가 의아할 정도다. 그 외엔 싫어하게 된 사람은 없는데 그냥 시큰둥한 정도랄까.

헌데 세월이 흘러 애정 지수가 좀 떨어지긴 했으되 내가 옛정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확실히 존경스러운 부분이 많은 이들이다. 바람둥이니, 노래를 못하니, 하는 단점은 별로 상관없을 정도로. 그런 사람들을 표현할 때 <아직 촉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열심히 정보를 찾지는 않지만 우연히 들려오는 소식은 빠짐없이 읽고 흐뭇해하며 잊고 있던 존경심을 다시 끄집어낸다.

첫번째 인물은 조지 클루니. 13, 4년 전쯤 메디컬드라마 <ER> 보며 그에게 열광했던 건 순전히 섹시한 외모와 껄렁한 캐릭터 때문이었지만 정치성향도 훌륭하고(내 취향이란 얘기다) 최근 감독이나 프로듀서로 제작하는 영화들도 그렇고 하나같이 존경스럽다. 특히 이번 아이티 지진 난민 돕기 프로그램은 순전히 조지 클루니의 기획이라는데, 할리우드 최고 명사 측근들을 죄다 불러모은 그의 마당발과 기획력은 놀라울 정도다. 듣자하니 미국 전역에서 모인 아이티 기부금보다, 그날 딱 3시간 동안 모은 기부금이 더 많단다. 그냥 100만불 턱 기부하는 것도 모자라서, 기부 프로그램 기획하고 사회보고, 돈 많고 유명한 친구들 동원하고... 멋지다는 말 밖엔 안나온다. 물론 어리디 어린 모델이나 여배우들과 만날 사귀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진짜 양다리를 걸치거나 추문을 낸 적은 거의 없다. 내가 알기론 조지 클루니가 결혼까지 생각했던 진정한 사랑이 존 트라볼타의 아내가 되는 바람에(존 트라볼타 커플은 또 굉장한 잉꼬부부다) 신나게 얕은 연애만 하고 살겠다고 결심한 거란다. 첫사랑 못잊어 평생 징징대는 남자는 진상이라 싫은데, 조지 클루니의 바람기는 완전 이해된다. 아, 사실 바람기는 자꾸 딴눈을 팔아야 바람기지, 여자를 바꾸어가며 사귀는 건 그냥 취향 아닌가! 그렇게 멋진 남자를 젊든 늙든 예쁘고 멋진 여자들이 가만 놔둘리도 만무하고.. (애정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거 인정 ^^) 암튼 희끗희끗 은발이 멋진 미중년이 된 클루니는 숀 코너리처럼 미노년으로 늙기까지 줄곧 나의 촉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두번째 인물은 브래드 피트. <가을의 전설> 보고 홀딱 반해서는 <프렌즈>에서 부인을 위해 카메오로 나와 제니퍼 애니스톤을 혐오하는 예전 비만남으로 나올 때까지 무작정 꺅꺅~ 거리며 좋아했다. 남들이 원시인 같다고 손가락질 해도 내눈엔 그게 안보였고, 조강지처 버리고 안젤리나 졸리랑 합쳤을 때도 제니퍼보다 안젤리나가 훨씬 매력있다고 인정해줬다. 게다가 이 남자 조지 클루니랑 아주 친하다. ㅋㅋ 조지 클루니가 문득 결혼이 하고 싶어지면 브란젤리나 커플과 아이들을 몽땅 집에 초대해 저녁을 먹이는 걸로 결혼욕구를 잠재우는 충격요법을 실시한다는데, 어쨌거나 아무리 안젤리나의 행보에 편승한 거라고 해도 둘이었나 셋에서 시작해 이제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을 공동 양육하고 있는 이 남자, 존경스럽지 않나? 조지 클루니의 영향인지 정치 성향도 멋지고 특히 안젤리나랑 같이 턱턱 여기저기 거액 기부하는 건 정말 기특하다. 다 졸리 때문이라고? 요즘 불화설이니 이혼설이 파다해서 가슴이 아픈데, 결과가 어떻든 그건 사생활이고 그 외에 해오던 기특한 사회활동은 계속될 거라 믿는다.

세번째 인물은 이현우. 원래부터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가수는 아니었고, 요샌 처자식 부양하느라 노래보다 사업에 더 힘쓰고 있어 소식 듣기 어렵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가끔씩 그의 6집과 드라마 <아일랜드> ost의 곡들을 들으며 좋아라 한다. 각종 사회단체에서 연예인을 얼굴마담으로 세우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이현우는 워낙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작년엔 북한산에 올라가 에스컬레이터 설치 반대하는 1인 시위도 했고, 간간이 환경 관련 모금 집회 같은데서 노래를 부른다. 사업으로 돈 많이 벌면, 지구온난화 때문에 80년 뒤엔 한반도에서 사라져버린다는 소나무를 살리는 운동에 턱턱 기부금을 내놓을 사람이라고 생각중이다. ^^

요번 아이티 지진 때문에 생겨난 난민을 돕겠다고 존 트라볼타는 자기 전세기에 구호품을 6톤이나 싣고 직접 비행기를 조종해 남미로 날아갔다고 한다. 의료진도 태워갔다지 아마. 우리나라에서 연예인들 모아놓고 모금 캠페인 같은 거 하면 스타들은 노래 한곡 부르고 가버리거나 몇 마디 하는 게 다 일뿐 기부금 전화 받는 이들은 죄다 알바생이던데, 조지 클루니가 기획한 아이티 기금마련 프로그램에선 줄리아 로버츠,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사람들이 주르륵 스튜디오에 앉아 일일이 전화를 받더라. 전세기를 몰고 간 존 트라볼타도 그렇고, 다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스타들이니 쇼맨십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우리나라 연예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할리우드에 아무리 돈이 흔하다고 해도 그야말로 그들은 진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우리나라엔 왜 얼굴도 잘생기고 섹시한 데다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라 내가 십몇년씩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타들이 왜 없을까... (아 물론 권해효 씨 존경하긴 하지만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애정하기엔 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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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까지는 싸이질에 대단히 심취했지만 사람들이 죄다 그곳을 떠나고 블로그질을 더 많이 하면서 나 역시 싸이월드를 거의 떠나 살았다. 2002년부터니까 꽤 오랜 세월 거기 담겨 있는 삶의 흔적들이 아깝기도 하고 몇몇 친구와 가족은 아직 그곳에서 소통하고 있으니 누구처럼 확 폐쇄하거나 닫아둘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 그냥 막연한 방치상태랄까.
그러다 조카들 사진을 구경하러 간만에 로그인을 해보니 쪽지가 도착했다는 표시가 보였다. 그간 싸이 쪽지는 기분 나쁜 홍보글 아니면, 전화번호가 바뀌었다거나 결혼소식을 알리는 지인의 단체 쪽지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이번엔 또 뭘까 지레 이맛살을 찡그리며 쪽지를 열어보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 내가 번역한 문제의 시리즈물 소설을 <꼭> 읽고 싶은데 곧 유학을 가게 되었다면서 시리즈별로 다 책이 너무 두꺼워 가져갈 수가 없으니 나더러 번역원고를 보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pmp에 다운받아서라도 읽고 싶다나. 기가 막혀서... 책이 저가형 보급판으로는 출간되지 않아 사 보기 부담스럽다면서 간곡히 부탁을 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요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유학을 안 가봐서 모르지만 짐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겨우 책 몇권 넣을 공간이 없다는 것인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유학을 간다는 것부터가 핑계 같다. 책 사기는 아까운데 그렇게 읽고 싶으면 서점에 가서 서서라도 읽든지! 아무래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책 읽어보겠다는 꼼수일 것 같다. 순진하게 원고를 보내줬다간 온라인 공간에 원고 파일이 영원히 떠돌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오도독 소름이 끼쳤다. 내 이름이야 워낙 드물어서 동명이인을 찾기 힘들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일이지만, 사적인 사진들은 모두 일촌공개로 돌려놓은지 오래라고 해도 미디어 서평이나 책 사진 같은 건 그냥 공개해놓은 터라 그런 인간들의 검색에 속수무책으로 걸려들고 말았겠구나 싶었던 거다. 이런 공간에 조금씩 노출된 사생활만으로도 얼마든지 개인정보를 뽑아낼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섬뜩했었는데, 실명까지 드러나는 싸이월드 같은 데선 더더욱 발가벗겨진 채로 내던져지는 꼴이란 걸 생각하지 못했으니 내 불찰이다. 얼른 모든 메뉴를 일촌공개로 바꾸어 놓고도 영 기분이 찜찜하다.

물론 어처구니 없는 요구는 단칼에 거절했다. 버럭 화가 치밀어서 답장 쪽지를 보내긴 했는데, 그냥 무시할 걸 그랬나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번역 원고의 저작권은 이미 출판사에서 갖고 있으니 원고 파일을 유출하는 건 내가 민형사상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를 엄청난 일이란 걸 그 멍청한 인간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불법 다운로드가 판을 치는 나라와 국민이다 보니 별 일을 참 다 겪는다. 몇달동안 낑낑대며 골빠지게 작업한 번역원고를 거저 달라는 인간이 다 있다니 참 두고두고 기가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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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투덜일기 2010. 1. 15. 00:23
건강과 관련해서 특별히 신경쓰는 것도 없고 운동과는 담 쌓은 인간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랑으로 삼았던 것 하나는 고3 이후 체중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명절 연휴에 옴팡지게 많이 먹어 2킬로그램쯤 늘어났다가도 좀 지나면 원래 체중으로 되돌아왔고, 여름보다는 아무래도 겨울에 좀 더 토실토실 살집이 붙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봤자 그러려니 할 정도였다. 마찬가지로 살이 좀 내리는 일이 있어도 당연히 조금 지나면 어려움 없이 복구되었다. 10년, 15년이나 지나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옷을 아직도 안 버리고 갖고 있다가(헤져야 버리지!) 가끔 입을 수 있는 이유도 크게 몸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라 내심 뿌듯해 했었는데, 올 겨울은 좀 다르다.

딱 요가를 하면서부터 체중이 늘어나는 걸 느꼈는데, 그땐 당연히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 몸이 체지방을 축적중이겠거니 했었고 20년 넘게 초과해본 적 없는 몸무게의 마지노선을 넘어서 계속 숫자가 올라가는 걸 보고서도 요가 때문에 근육량이 늘어나나 보다 여겼다. 특별히 먹는 양이 늘어나거나 위가 늘어나도록 과식을 거듭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나도 안하고 만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그나마 일주일에 세번은 꼬박 외출도 하고 운동도 하니 살이 빠져야 하겠지만 오히려 계속 체중이 느는 건, 요가가 워낙 에너지 소모량이 적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만날 왕비마마 체중만 확인했지 정작 본인 체중은 한 열흘 무심히 살았는데, 오늘 마침 사우나에 간 김에 확인해 보니 불과 두어달 전보다 무려 4.5kg이 많아졌다. +_+ 20대 후반 직딩 시절,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사다리를 타서 간식을 사다 먹고, 그것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하고 회식하고 3차까지 술과 안주에 쩔어 살 때의 사진을 보면 정말 턱이 두개이고 뺨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 때 최고치를 기록했던 몸무게도 평균치에서 기껏해야 2.5kg정도 초과한 정도였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기야 지난 연말모임에서 본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외치긴 했다. "언니! 왜 이렇게 똥그래져서 나타났어?!" 나는 그게 내 머리모양과 얼굴살을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라고 내 맘대로 해석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평소에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하는 이들이야 4, 5kg쯤 에게게... 코웃음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성년 이후 20년 넘게 큰 변화가 없던 몸무게가 서서히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 이유가 뭘까 겁이 다 더럭 날 정도다.

이런 것도 유전인가? +_+ 울 왕비마마는 처녀시절 워낙 깡 말라서 별명이 <와리바시>였고 아이 셋을 다 낳고 난 뒤에도 원래 몸무게인 45kg으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그러다가 직장생활을 관두고 전업주부가 되자 조금씩 체중이 늘었고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팍팍 몸이 불어 금세 60kg을 넘어섰다. 내가 중학생 때였나, 동네 양장점에서 맞춘 실크원피스를 입어보며 몸이 불어 안 예쁘다고 속상해 하던 엄마의 몸무게가 57kg였던 걸 기억한다. 동네 목욕탕 저울에 올라간 엄마 몸무게가 어느새 나랑 무려 20kg이나 차이 난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57kg도 버거워했던 왕비마마는 노년에 접어들어 70kg도 우스운 정도다. 65kg까지만 빼면 당뇨약은 안 먹어도 될 거라며 아무리 쥐어짜도 살이 빠지기는커녕, 왕비마마는 내가 조금만 감시(?)를 게을리 하면 일주일 만에도 2, 3kg이 확 늘어난다. 그건 순전히 고열량 간식 때문이니 이유가 확실한데, 간식도 즐기지 않는 나는 대체 왜???

자꾸만 모든 화살은 중년이라는 나의 나이로 귀결되는 듯해 서글프다. 왕비마마는 그나마 옛날 분치고 키나 크시지, 난쟁이 똥자루만한 키로 마냥 옆으로 늘어나 데굴데굴 굴러다닐 듯한 노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숨이 탁 막힌다! 절대 그렇게 되진 않겠어, 라고 전의를 불태우며 왕비마마 전용으로 사다놓은 실내용 자전거에 올라 씨근덕거리고 있으려니 어찌나 한심스러운지 화가 치밀었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몸은 왜 변하고 지랄! 차라리 어디까지 가나 두고보자며 확 밤참을 두 배로 먹어버릴까 별별생각이 다 들더라. 가능하다면 최대한 건강하게 몸에도 큰 변화 없이, 지금 마음에 꼭 드는 옷 몇벌은 50대 60대가 되어서도 한번씩 입어주며 나는 몸도 마음도 젊게 사노라고 큰소리치는 것이 꿈이건만 내 머리와 몸은 아직 중년에도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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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갈까

투덜일기 2010. 1. 8. 01:31
연말연시에 노느라 바쁘거나 날짜가 공교롭거나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계속 수업을 빼먹다 2주만에 요가학원엘 갔다가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_+ 내가 등록한 건 5시반 수업이지만 조카와 상의해 3시 수업을 들으러 갔었는데, 기막히게도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평소엔 최대인원의 절반도 안되는 열다섯 명 정도밖엔 수강생이 없는 시간이라는데.

날쌘 조카는 어느 틈에 요가 매트 하나를 차지했지만, 동작 굼뜬 고모는 어둑한 실내에서 어리바리 빈자리를 살피다 더 늦게 온 사람에게 마지막 남은 자리를 빼앗기고는 망연자실 밖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른 강사가 여분 매트를 들고 가까스로 없던 자리를 하나 만들어주어 뻘쭘하게 더욱 뻣뻣해진 몸으로 대충 수업을 따라하긴 했지만, 색깔마저 다른 요가매트 때문에 더욱 수업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어제 그런 민망함을 겪었기에 금요일 수업대신 오늘 가기로 한 수업은 부러 5시반에 맞춰 갔는데도 역시나 빈자리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수강생들의 면면을 보니 처음 온 사람들이 많았다. 뒤이은 수업에는 더더욱 바글바글 자리다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제야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새해로구나. 신년맞이 결심으로 요가학원을 찾은 사람들에겐 요번주가 첫주로구나. 

매 수강시간에 정해진 인원을 초과하는 사람을 등록시키진 않았을 테고, 폭설과 강추위에 며칠 빠진 수업까지 악착같이 보강하겠다는 새해결심성 열성요인이 작용한 게 분명했다. 지난달까지는 하나같이 날씬하고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몸매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최강뻣뻣 사십대인 나로선 민망하기 그지없었는데, 어제 오늘 이틀 수업을 받으며 살피니 나보다 더 비틀거리는 사람들도 눈에 띄고 확실히 다이어트 목적으로 요가원을 찾았음직 해 보이는 푸근한 몸매의 여인들도 드디어 나타났다. ㅎㅎ

너무 사람이 많아져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기도 힘겨워진 요가원을 나서며 문득 궁금해졌다. 새해결심으로 요가수련을 찾은 사람들의 열의는 과연 얼마나 갈까. 정말로 작심삼일로 끝이 날까, 아니면 최소한 한 달은 이어질까. 다음주에도 혹한이라는데 매서운 추위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면욕망을 일으켜 무기력감을 선사할 것인지 못내 궁금해서라도 난 한동안 꽤 열심히 요가원엘 다닐 것 같다. 물론 가장 큰 나의 동력은 고모 못가는 날엔 혼자서라도 버스 타고 신촌까지 납시어 요가수련에 힘쓰고 있는 공주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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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전화

투덜일기 2009. 12. 26. 15:38

어제 크리스마스라고 LA근처 사는 오랜 친구가 전화를 했다.
"크리스마스인데 너 왜 집에 있니?"
"요란한 날 나가 노는 거 사람 많아 복잡하고 싫다. 조용히 집에 있는 게 상책이지."
"드디어 OOO도 늙었구나. 예전엔 크리스마스 파티 다 따라다니고 종각 종치는 거도 보러 다니더니만."
"그러게, 그땐 미쳤었나봐."
일년에 몇번은 우체국 가야 하는 편지를 주고받던 이 친구와도 요샌 거의 몇달에 한번 전화통화 뿐이다. 그나마도 시간대를 잘 못맞춰서 생각만 하다 세월 다 보내고.

돌아보니 확실히 나이들어가며 매사에 시큰둥하고 게을러진다. 다른 데는 몰라도 멀리 있는 친구들에겐 카드든 선물이든 챙겨보내던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없다. 친구 선물 뿐만 아니라 그 언니들, 아들들, 남편 선물에다 그들이 사족을 못쓰고 좋아하는 오징어며 쥐포까지 바리바리 선물상자를 포장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언정 꼬박꼬박 기념일을 챙겼던 정성과 에너지는 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미즈키님이 일본서 받은 선물 상자들 사진을 보면서도 아주 살짝 뜨끔했다. 10년전의 나였다면 아마도 오지랖 넓게 당장 강냉이 챙겨보냈을 텐데, 당연히 무심하고 딱딱해진 심장은 요동도 하지 않더라.
올해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딱 한장 쓰고 받았다. 문자는 꽤 여럿 받았는데 그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좀 뜸들이다 몇시간 지난뒤에 하는 수 없이 답장 보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선배들한테는 내가 먼저 새해인사 문자 날렸던 것 같은데, 이젠 받는 것도 짜증스럽다니! 그때 내 문자 받았던 지금 내 나이 정도의 선배들도 아마 짜증났을 것 같다. 다 귀찮아! 그러면서 ㅋㅋㅋ
 
1, 2년에 한번은 내가 가든 친구가 오든 했던 먼거리 왕래도 벌써 3년이 넘어간다. 미서부로 이민간지 내년이면 25년인데 아직도 뉴욕엘 가보지 않은 친구는 해마다 휴가 때면 뉴욕에서 나와 만나 캐나다까지 다녀오자는 계획을 세워보지만, 친구에게든 나에게든 매번 크고 작은 일이 생겨 그 계획은 여전히 계획 단계다. 작년부턴 이왕 가는 휴가 까짓것 이탈리아에서 만나자는 원대한 꿈을 5개년 계획쯤으로 잡아보자 했는데, 그 친구도 나도 딸린 식구가 있으니 사실 쉽지 않은 꿈임을 잘 안다. 게다가 이놈의 불경기는 왜 이렇게 오래가는지 원! 

이러다 내년, 내년 미루기만 하는 거 아니냐고 풀죽어 하는 나에게 친구는 "설마 10년 안엔 보겠지!"라며 큰 인심쓰듯 말했고, 그 뒤에서 친구 언니는 "고수한테 안부전해줘!"라고 외쳐 함께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통화할 땐 무슨 드라마가 재미있는지 의견교환을 빼먹었다. 지난번엔 일본 드라마를 잔뜩 추천 받았었는데. 다음 통화할 땐 내가 먼저 <미남이시네요>랑 <지붕뚫고 하이킥>을 꼭 보라고 권해줘야겠다. 벌써 봤는지도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근무시간 끝까지 일하고 퇴근한 친구와 크리스마스날 오후까지 자다말고 전화를 받은 나의 통화는 특별한 일 없이 재미없게 사는 게 어쩌면 <잘> 사는 걸지 모른다며 그렇게 또 잘 지내라는 말로 끝이 났다.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이불속에 누워 한참 멍하니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어쨌거나 요란한 날 빨간날은 무사히 지나갔고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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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투덜일기 2009. 12. 22. 15:03

대부분 음력인 전통 절기 가운데 이상하게도 입춘과 동지는 유독 양력이다. 이유를 찾아볼 생각은 않고 그저 의아하게 여기고만 있던 그 동짓날이 바로 오늘. 나에게 동지는 일년중 밤이 가장 긴날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그저 <팥죽 먹는 날>일 뿐이다. 친할머니댁에서 살 땐 할머니가 전날부터 팥을 삶아 놓고 찹쌀 새알심을 만들어 다음날 아침 일찍 큰 솥으로 하나 가득 팥죽을 끓여주셨다. 끼니로 먹고 간식으로 또 먹고 마지막엔 솥 아래 눌어붙은 팥죽 누룽지까지 알뜰하게 긁어먹으며 종일 몹시 흐뭇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분가한 뒤로는 엄마가 가끔 동지 팥죽을 쑤어 마당 여기저기 뿌리고는 시루떡과 함께 고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주로 외할머니댁에서 팥죽을 얻어다먹었다. 원래 동지 팥죽에 든 새알심은 자기 나이수대로 먹는 거라는데, 나는 새알심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세 개만 달라고 하곤 그걸 내 나이수대로 잘게 잘라 팥죽에 섞어 먹곤 했다. 물론 언제부턴가는 새알심 세 개를 내 나이수 만큼 자르는 것이 불가능해졌지만...

동지 팥죽을 좋아하지만 들척지근한 단팥죽은 싫고, 팥시루떡은 좋아해도 단팥빵과 팥빙수는 싫어하는 나의 이상한 취향은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담백한 동지팥죽에 입맛을 들인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 붕어빵은 예외라고 쳐도 많이는 못먹는 걸 보면 모름지기 팥은 단 것보다 담백하게 조리할 때 더 맛있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게다가 친할머니도 그렇고 외할머니도 그렇고 울 왕비마마까지 손맛은 또 얼마나 좋으신가 말이다. 제 아무리 유명하다는 집에 가서 팥죽을 먹어봐도, 수십년간 내가 즐겨왔던 소금간과 절제된 단맛이 조화로운 담백한 팥죽은 만날 수가 없었다.

3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외할머니댁 동지 팥죽을 매년 빠짐없이 날라다 먹었고, 왕비마마는 이미 10년째 살림살이에서 손을 뗀 터라 이젠 동지에 맛있는 팥죽 얻어먹을 일은 없겠구나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작년부터 다시 동지팥죽이 생겼다. 엄마가 다니시는 절에서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넉넉하게 쑤어 신도들을 먹이고 난 뒤에도 집에 있는 가족들한테 맛보이라고 싸주었기 때문이다. 작년 오늘, 나는 난데없이 생긴 팥죽에 기뻐 얼른 한 입 퍼먹고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탄맛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팥죽 구경도 못하는 동짓날보다야 낫지 싶어 흐뭇했다. 

오늘도 엄마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서라도 굳이 절엘 가야한다고 우기더니, 조금 전 도저히 혼자선 집앞 언덕을 못오르겠다며 데리러 내려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딸 주려고 얻어온 팥죽 통 무게를 못이긴 탓이다. 통이 그리 그지도 않은데 꽤 묵직한 엄마 가방을 대신 메고 비틀거리는 엄마를 부축해 집으로 올라오며 마음이 참담했다. 절에 갈지말지 망설이던 엄마가 힘겨운 외출을 시도한 건 팥죽 얻어오라는 딸의 은근한 압력 때문이었을까. 그깟 팥죽이 뭐라고! 올해는 팥죽이 맛있게 쑤어졌더라며 어서 먹어보라고 엄마는 자꾸 권했지만, 나는 속이 상해서 배부르다고 거절했다. 아마 올해 동지 팥죽은 평생 최악의 맛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년부턴 동지 팥죽 따위 안먹고 말테다. 반평생 동짓날=팥죽으로 알고 살았으니 이제부터 팥죽은 잊고 남은 반평생은 동지를 밤이 제일 길었다가 드디어 점점 짧아지기 시작하는 날로 세뇌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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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투덜

투덜일기 2009. 12. 19. 18:15

옛날에 고모들이 할머니한테 옷을 선물하면 늘 마음에 안들어하셨다. 색깔이 어떻고 소매 길이가 어떻고 <갑삭해야>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틀렸다는 둥, 요란해서 이런 걸 어떻게 입냐는 둥... 교환이 가능한 경우면 몇번이나 바꿔오기 일쑤였고, 그게 아니면 할머니가 손수 리폼을 하시거나 그냥 옷장에 처박히기 십상이었다. 고모들은 할머니가 너무 까다롭게 군다면서 웬만해선 옷 선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울 엄마가 사드리는 옷은 할머니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해 골랐으므로 고모들의 안목보다는 성공률이 높았지만, 할머니가 나한테만은 못마땅한 부분을 털어놓을 때가 더러 있었다. "니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라"면서...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남자 한복을 맞춰입고 사셨던 외할머니의 외투 선택은 더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엄마나 이모가 심혈을 기울여 코트를 사거나 심지어 제일 좋은 양모 털실을 수십만원어치 사다가 뜨개질로 떠드려도 결국 그옷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친할머니, 외할머니 공히 최고의 선물은 <현금>으로 굳어지고 말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십수년간 두분 할머니께 선물할 스카프나 목도리, 장갑 따위의 선물을 애써 고르기도 했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하셔서 애용했던 선물은 손에 꼽힐 정도다. 무난하게 가자고 산 내복마저도 색이나 레이스가 요란하다 (내 눈엔 정말 수수한 건데도!)는 이유로 슬쩍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었음을 안 뒤론, 나 역시 철저하게 <현금> 선물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들의 까다로움을 겪어보았으면서 난 또 새삼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나는 작년부터 왕비마마에게 <털신>을 사드리려고 계속 살피는 중이었다. 왕비마마가 최근 1년 넘게 애용하는 신발은 딱 하나. 바닥이 푹신해 다리 당김이 덜 느껴지는 마사이슈즈다. 그것 말고 다른 신발을 신고 외출했다간 금세 발바닥과 다리가 아파져 고생을 하는 걸 알고 있으므로, 최대한 발이 편하면서 가볍고 신기벗기도 편리한 (끈을 조여야 하는 마사이슈즈는 신고 벗기가 불편한 게 탈이다)  따뜻한 신발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온라인에서 발견한 복슬복슬 부츠형 털신 하나는 방수가 안된다는 이유로 겨울 내내, 그리고 올해 다시 왕비마마의 실내화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ABC마트 같은 데 가서도 이런저런 신발을 만져보고 신어보다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있던 차에, ㅌㄹ마을에 새로운 유행 신발이라는 <사눅> 사진을 보고 옳다구나 싶었다. 나 또한 매장에서 유념해 보았던 그 신발이 아니던가! 주
민들이 신어보고 그렇게도 편하다니, 왕비마마의 겨울용 <털신>으로 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게다가 엠티에서 실물을 두 켤레나 보고나선 마음을 굳혔다. 그 정도면 바닥도 푹신하고 털 때문에 포근해 올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데 적합해 보여 이왕이면 왕비마마도 한 켤레 사드리고 나도 사 신자고.
해서 얼른 40%나 세일을 하고 있는 마을 추천 사이트에 두 켤레를 주문하고 흐뭇하게 사눅 신발을 기다렸다.
헌데 드디어 오늘 신발이 도착해 엄마에게 보여주니 표정이 좋지 않다. 방수도 안되는 신발을 겨울에 어떻게 신고 다니느냐.. 쭈글쭈글해서 신고벗기 불편하다.. 왼쪽은 크고 오른쪽은 꽉 낀다(좌우 발 크기는 누구나 다르지 않나??)... -_-;;
결국 나는 신기 싫으면 관두시라고, 왕비마마 껀 반품시키면 된다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어휴... 나는 맨발로 신어도 감촉이 좋아서 마음에 들던데 웬 타박이신지 원...
그제서야 옛날 우리 할머니들의 까탈스러움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되면 원래 저렇게 까다로워지는 것인지... 나가서 같이 고르자고 하면 또 싫다고 할 거면서! 죽을 날 머지 않았으니 새옷 새신발 사들이는 거 관두겠다고 하는 것까지 그 옛날 할머니들의 레퍼토리랑 아주 똑같다. 으휴... 
그나저나 비회원으로 구입한 신발인데 한켤레만 반품이 되나 어쩌나 그것도 모르겠고 골치아파 죽겠다. 젠장.. 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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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유예

투덜일기 2009. 12. 17. 03:15

대개 책 한권에 두달 정도로(물론 최소 넉달 이상 잡아야 하는 책도 있긴 하다) 번역기간을 정해놓으면 첫 한달은 작업량이 형편없다. 그야말로 워밍업 기간.
그놈의 워밍업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어느 첫달엔 심지어 첫장만 계속 펼쳐놓고 있던 적도 있으니 말해 무엇하리. 그래도 둘째달이 시작되면 남은 날수에 맞춰 일일 작업분량을 정해놓는다. 이번 책은 비소설이고 챕터가 달랑 열개. 하루에 한 챕터씩 하면 열흘이면 초벌 끝내겠네, 싶어 쓸데없이 가소로운 미소를 지으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크게 방심해선 곤란했다. 연말이랍시고 엠티부터 시작해서 몇몇 모임과 행사까지 있는데, 원고마감 핑계대고 놀 일에 빠질 위인이 아니므로 최소한 일주일은 없는 셈 쳐야 했으니까.
새벽까지 앉아 있어도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았던 월초를 보내며, 엠티 다녀오면 작업에 박차를 가해 가속도를 높이리라 마음 먹었는데 그놈의 끔찍한 숙취는 후유증을 이틀이나 안겨주었고, 정신 차려보니 허거덕 남은 날은 한달의 반토막이었다.
진도는 아직도 지지부진한 주제에 초인적인 가속도가 붙었을 경우에나 가능한 <하루 한 챕터 번역>의 야망을 버리지 못한 채, <잘하면> 계약 마감일에서 늦어도 일주일 내로 원고를 털어낼 수 있을 거라 상상하던 차였다. 마침 출판사에서 내년 출간 계획을 잡아야 한다며 원고 진행상황을 묻는 메일이 날아왔다. 앗 뜨거라 싶어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나의 상상 마감일을 적어보냈더니만, 흐흐흐 원고마감 때문에 연말 연휴에도 일에 매진하는 게 아니나며 한껏 위로하는 글과 함께 원고는 1월 중순까지만 보내면 된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아싸~
마침 그 메일을 열어보는 중에 뒤에 서 있던 조카가 한 마디 했다.
"우리 고모는 놀 때 안 놀고 일만 하는 사람 아닌데. 놀 거 다 놀고 또 밤새서 일하는 사람인데..."
너무도 정곡을 찌른 그 말이 칭찬인지 꾸지람인지 언뜻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흐흐 웃고 말았다.

헌데 문제는 어제까지도 그럭저럭 조여졌던 긴장의 끈이 연말유예 메일과 함께 풀어져버렸다는 사실이다. 열흘 쯤 더 여유로워졌다고 당장 이밤에 또 일이 하기 싫어졌으니 원! 다시 조이는 데 한달 반이나 걸린 이 긴장의 끈을 다잡으려면 일단 이렇게 널리 자아비판을 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여 또 부끄러운 쉰소리 끼적이고 앉았다. 당장 낼모레로 다가온 할아버지 제사부터 간간이 잡힌 <놀 일>을 감안해서 제발 밤을 샐 때는 진지하게 진짜 일을 해보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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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10년

투덜일기 2009. 12. 15. 21:38

중고차 두 대를 거처 지금 타고 다니는 차를 <새것>으로 갖게 된 해는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처음 새차를 인도 받았을 때 공식 차주이자 물주였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한 5년 타다가 다음 차는 니 돈으로 더 좋은 거 사라." "5년은 무슨! 10년 넘게 탈 거야!"라고 장담하던 나의 말은 어느샌가 "폐차할 때까지 탈 거야!"로 바뀌었고, 연식이 오래 되어 중고값이 팍팍 떨어지고는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차는 아직도 내게 새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간 <미니쿠퍼>에 눈이 멀어 인세로 대박나면 무슨 색으로 살까 실없는 로망을 품기도 했지만, 막상 미니쿠퍼를 살 돈이 생겼더라도 타던 차를 처분하는 게 아까워서 선뜻 저지르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도 잘 안다.
9년간 꼬박 나홀로 운전해 완전히 나에게 길들여져 있고,  범퍼나 펜더가 살짝 까져서 도색을 다시한 것 말고는 큰 사고도 없었으며 사자마자 공부한답시고 처음 3년 가까이 거의 세워두다시피하는 바람에 9년 넘게 탔건만 마일리지도 놀랍도록 적다. 사실 차는 적당히 몰아줘야지 만날 세워두면 더 쉽게 <썩어> 버린다는 것이 정설인데, 차에 대해서 완전 무지한 덕분에 오히려 수시로 동네 입구에 있는 카센터 아저씨한테 조언을 구했으므로 상태가 별로 나빠지진 않았다고 믿는다.
작년 말 미션오일과 부동액과 뒤쪽 머플러를 갈면서 동네 카센터 아저씨는 이제 슬슬 이것저것 손 볼 데가 많이 생겨날 나이라고 말했다. 연식만 오래 됐지 마일리지가 젊은 덕분이었다. 헌데도 올해 녀석은 멀쩡히 돌아다녔고, 1년 넘게 수리해야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허구한날 오며가며 카센터 아저씨한테 눈인사만 받는 게 민망할 정도로.

헌데 드디어 엔진오일을 갈아야 할 때가 되었으므로 1년만에 나는 다시 자동차 점검을 부탁했다. 과거 중고차 몰던 시절엔 아는 사람한테 넘겨받은 차들이라 그리 오래된 게 아닌 데도 강남대로 한 복판이나 한강대교 위에서 차가 퍼져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 10년 사이엔 그런 경험이 없다. 처음부터 내가 길들였기 때문일까? 어쩐지 망가지기 전에 미리 바꾸는 게 아까운 것 같아도, 나 같은 자동차 문외한은 그저 미리미리 전문가에게 점검해서 손봐달라고 하는 게 최고다. 카센터만 정직한 곳으로 만난다면. ^^;
사실 동네 이웃이기도 했던 기존의 카센터 사장님이 노안을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전격적으로 카센터를 넘겼을 때 나는 허거걱 난감했다. 다이어리도 안 쓰는 게으른 내가 차계부 따위를 쓸 리는 없고, 그 아저씨가 내 대신 컴퓨터에 모든 기록을 저장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내 차를 보며 바퀴에 바람 좀 빠진 것 같으면 불러 세워 넣어주고 엔진 오일 갈 때 됐다고 알려주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새로운 카센터 아저씨도 그렇게 나와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물론 예전 사장님이 아직도 동네에 살고 계셔 수시로 드나드는 걸 보면, 모든 고객 기록까지 다 넘겨받은 듯했지만, 웬만해선 그냥 더 타라고 권하던 그 아저씨와 달리 이번 주인은 공격적으로 장사를 하려 들면 어쩌나 염려스러웠던 것.

아니나 다를까 확실히 이번 카센터 아저씨는 이전 분과 스타일이 달랐다. 잔금이 가기 시작한 타이어 두개도 가는 게 좋겠고, 3년 지난 배터리도 가는 게 좋겠고, 쇼바 상태가 어쩌고, 고무로 된 엔진 어쩌고 링크도 금이 갔다며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하고 견적서를 내고.... +_+
물론 당장 바꿀지 좀 더 타다가 바꿀지는 어디까지나 내 결정이었고,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한꺼번에 거금을 들여 10년 다된 차를 손보려니 왜 이리 아까운 기분이 드는지 원. 차를 사자마자 지금껏 아직도 바꿀까 말까 고민 중인 카오디오는 매번 <그냥 말자> 쪽으로 결론이 나는데, 확실히 운전과 직접 관련된 부품의 노후에 대해서는 약간의 고민 끝에 늘 손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된다. 처음엔 퍼뜩 '이 아저씨 카센터 인수하고 나서 봉 잡았다 생각하고 확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앞에서 부품가게와 통화를 하며 몇십원짜리 단위까지 부품가격과 자기 공임을 하나하나 다 공개하는데야 (물론 이미 중간에 <야로>가 개입됐을 수도 있겠지만!) 더 의심을 키워봤자 뭐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맘만 먹으면 나도 부품이랑 공임 가격 쯤이야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도 금세 알 수 있을 텐데...

어쨌거나 이번에 거금을 들여 일곱군데도 넘게 손을 보았으니 10주년인 내년에도 별탈없이 일년동안 잘 굴러갈 것이라 여기며 그리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자동차는 오래 타면 탈수록 팔 때 손해라는 말도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중고차값 따져가며 자꾸 팔아 새차를 사서 몰 게 아니라면, 남들이 뭐라든 10년, 20년 계속 타는 게 뭐 어떤가. 아주 오래된 차는 사고 나면 수리비 대신 폐차비만 준다고 억울해하는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이 추세라면 난 정말로 이 차를 폐차할 때까지 앞으로도 최소한 10년은 더 탈 수 있을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자동차 10년 타기 아주 쉽구만 다들 왜 그리도 새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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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

투덜일기 2009. 12. 14. 15:17
강화도에 간다고 하니 왕비마마는 올 때 "순무나 사와라, 심심할 때 깎아먹게."라고 말했다.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만, 왕비마마는 <언제나> 심심하다. 온종일 TV를 동무삼으면서도 심심하다고 간간이 일하는 딸을 귀찮게 굴어 타박을 받을 정도니 나도 할 말이 없다.
심심하다는 핑계로 괜히 찾아다니는 간식만 안먹어도 체중 줄이기에 성공할 수 있을 텐데, 식탐도 강하고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분이라, 그나마 열량이 적은 순무나 무, 콜라비 따위를 군입거리로 삼겠다 할 땐 반가워해야 한다.

오래 전 가족끼리 강화도에 놀러갔을 때도 순무를 사왔는데 만원에 한 보따리였던 것 같다. 이번에도 가격을 물으니 알이 작은 건 6개 5천원, 큰 건 5개 5천원이라고 했다. 동생네가 와 있단 얘기를 안들었으면 5천원어치만 샀겠지만, 공주네 식구도 다이어트 때문인지 날로 깎아먹는 무를 좋아하는 편이라 큰놈으로 만원어치를 달라고 했는데, 알이 굵어선지 꽤 무거웠다. 며칠이든 당일치기든 어딜 다녀오면 그 지방의 특산물을 뇌물로 바치지 않으면 삐치는 집구석은 우리밖에 없나보다. ㅋㅋ 
어쨌거나 아줌마는 분명 순무 잎을 잘라 비닐에 담으며 "하나 더 주겠다"고 한 것 같은데 집에 와보니 달랑 열개 뿐이다. 내가 전날의 과음으로 여전히 숙취에 시달리고 있기는 했지만 잘못 들었을 리는 없는데...
나는 치밀하질 못해서 물건을 살 때 장사치의 셈에 그냥 맡기는 편이다. 과일을 살 때도 굳이 같이 세지 않는다. 내가 특히 셈에 약하기도 하고, 알아서 담겠지 싶어서... 그래서 실수인지 속임수인지 모르지만 가끔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확인 안한 내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과일의 갯수가 모자란다든지 슬그머니 못생기고 상처 난 과일을 집어넣은 걸 발견해 장사치의 얕은 속임수임을 실감할 땐 잠깐이지만 인간이 싫어진다. 

순무의 경우는 어차피 10개가 만원어치이므로 내가 손해본 건 없다. 내가 덤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한 개 더 주겠다고 해놓고 10개만 넣은 건 아무래도 실수인 것 같지만 그래도 뜨내기 장사라고 나를 허투루 대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어제 내가 오자마자 왕비마마는 큼지막한 순무를 한 덩어리 잡아 조카와 함께 뚝딱 해치우셨다. 그래도 여전히 열개나 있으니 동생네와 반반씩 나눠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순무가 9개 뿐이라는 사실에서 그만 나는 잠깐 와락 짜증이 났다. "그 아줌마 뭐냐!" 나의 분노를 식탐과 순무 욕심으로 받아들였는지, 동생네는 달랑 순무를 2개만 얻어갔다. ㅋㅋ

오늘도 심심해진 왕비마마가 깎아준 순무의 맛은 그저 그렇다. 날 무보다 좀 단단하고 부위에 따라 단맛이 좀 더 많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무의 매운 맛과 비슷하게 알싸한 맛으로 씹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내겐 지금 순무의 맛이 중요하지 않다. 순무 장수 아줌마가 10개를 11개로 잘못 센 것인지, 덤을 하나 주겠다고 한 말을 그새 까먹은 것인지, 덤을 주는 척 괜히 생색만 내는 게 그곳 마케팅의 수법인지, 아니면 내가 헛것을 들은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남은 순무가 다 없어질 때까지 나의 의문은 반복될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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