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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1 이상과 현실 18
  2. 2009.09.17 비빔국수 14
  3. 2009.09.09 꿈에 22
  4. 2009.09.01 9월 결심 18
  5. 2009.09.01 도피 16
  6. 2009.08.13 화르륵~ 13
  7. 2009.08.12 여름 긴머리 9
  8. 2009.08.03 고질병 10
  9. 2009.07.31 짜증나 11
  10. 2009.07.30 점입가경 6

이상과 현실

투덜일기 2009. 9. 21. 21:10
드라마 충성도가 높으신 울 엄마가 매일 본방송으로 보고 담날 또 재방송까지 보는 일일연속극이 나는 도통 마음에 들지를 않아서 잠깐 엄마랑 과일 먹을 때나 인내심을 발휘해 같이 보곤 하는데, 얼마 전 거기 나오는 배우의 머리모양이 내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내가 머릿속에 막연히 이상으로 품고 있던, 짧아서 가뿐하면서도 아무 옷에나 어울릴 듯하고 세련된 느낌의 커트머리를 한 배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제발이지 어떻게 좀 머리를 예쁘게 자르라는 엄마의 종용도 있었지만 9월안에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확 자르는 것이 목표였던 나는 다음날 즉각 미용실로 달려갔다.
문제는 내가 설명하는 배우와 머리 모양을 미용사가 제대로 못알아들은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부터 시작되었다. 드라마 제목도 배우 이름도 얼버무려 설명한 내 잘못도 있지만, 그래도 스타일북을 가져와 얼추 비슷한 머리모양을 가리키기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나 싶었지만, 마지막에 안경을 집어쓰고 결과물을 본 나는 못마땅해서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린 머리로 가발 하나는 만들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격하게 많이 자른 머리 때문에 갑자기 너무 짧아보이는 거라고 미용사는 말하며 웨이브가 살짝 풀려 내려오면 원하는 스타일로 손질하고 다닐 수 있을 거라 위로했지만, 아니 왜!!! 바로 첫날부터 원하는 스타일로 만들어주지 못하는 건데??
지난번 파마할 때, 파마한지 2달 된 것처럼 해달라는 나의 요구가 제대로 관철되었기에 이번엔 안심을 하고 뼈다귀 선정(제일 굵은 걸로 하라고 할 걸!)까지는 해주지 않았더니만 웨이브는 너무 곱슬곱슬 도르륵 말려 붙었고 뒷머리는 면도를 할만큼 심히 짧았으며 짧은 앞머리도 최대한 묵직하게 숱을 남겨야하는데 숱치는 가위로 너무 많이 자른다 싶더니 아무리 이마 위로 쓸어내려도 모양이 잡히질 않았다.
예쁜 여배우의 머리를 아무리 똑같이 만들어도 머리색깔과 숱의 양이 다르고 물론 가장 중요한 얼굴이 다르니 느낌이 똑같을 수 없음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지만, 최소한 전체적인 헤어스타일의 느낌은 비슷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흔히 여배우의 길고 굽실굽실한 파마머리 사진을 들고 가면 미용사가 십중팔구 <그건 고데기>라고 말한다지만, 예리한 나의 눈썰미로 보기에 저 머리는 분명 고데기가 아니라 굵은 파마란 말이지! ㅠ.ㅠ

머리모양을 바꾼지 벌써 열흘인데, 그렇게 짧게 자르라고 성화를 하시던 왕비마마는 일주일 가까이 낯선 내 모습에 퍼뜩퍼뜩 놀라며 <딴사람 같아 이상하다>고 하셨고, 머리 변신 일주일만에 외출한 날 만난 지인도 너무 급격하게 머리가 짧아져 통 적응이 안된다며 아쉬워했다. 파마 바로 다음날 만난 조카들의 의견도 <고모가 더 안 예뻐졌다>는 것이 중론이었으니 생돈 들여서 굳이 뻔한 중년 아줌마 파마를 하고 만 내 속이 오죽 쓰렸을까.
영화 <애자>를 보면서도 나는 계속 최강희의 커트머리를 탐내고 있었다. 머릿결도 숱도 색깔도 다르지만 그냥 저렇게 자연스럽게 커트나 할걸... 이라고 후회하면서. 그러고 보니 내가 시도하려했던 커트 파마머리는 얼마 전 최강희가 드라마에서 하고 나온 머리랑도 비슷하다.


파마기 없애려고 다음날 바로 샴푸를 했는데도 이놈의 곱슬곱슬함은 줄어들 생각을 안하고, 매일매일 바짝 당겨 묶고 있던 시절에 비하면 열흘이 지났는데 머리칼도 빨리 안자라는 것 같다. ㅠ.ㅠ

몇년전부터 계속되는 나의 미용실 방황은 이제 좀 끝나주면 좋겠건만,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고 첫날부터 내가 원하는 머리모양을 내주는 꿈의 미용사를 찾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얼마 전 기능올림픽에서 또 우리나라가 세계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것처럼 미용 부문에서도 우리나라 미용사들 솜씨가 세계 최고라던데 대체 왜 난 단번에 마음에 드는 미용사를 찾기가 어려운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쯤에서 그냥 자존심을 접고 몇년 전 꿈의 미용사라고 생각했다가 홀로 마음 상해 결별을 선언한 그곳으로 발길을 돌려볼까도 심히 고민중이다. 여전히 그곳은 그렇게 사람이 붐벼 오래 기다려야하는지... 파마 한번에 4시간씩 견딜 인내심은 아직도 생겨나지 않았는데...

어쨌거나 머리칼 잘라내고 생겨난 장점은 꽤 많다.
방바닥에 뒹구는 구렁이 같은 긴 머리칼은 이제 보지 않아도 된다! 
머리 길 때에 비해 샴푸도 1/3밖에 안드는 것 같다. 당연히 헹구기도 쉽고, 금세 마른다!
일할 때 거추장스러운 머리칼 때문에 몇시간에 한번은 고무줄로 다시 묶었는데 이젠 아예 머리통에 머리칼이 안붙어 있는 서늘한 느낌이다. ^^

그래도... 조금 전 물마시러 갔다가 엄마가 틀어놓은 TV에 나오는 나의 이상형 머리를 한 여배우 때문에 다시 마음이 상했다. 현실의 내 머리는 아마도 한달은 더 기르고 풀려야 얼추 비스끄름하게 손질할 수 있을 듯.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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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국수

투덜일기 2009. 9. 17. 06:13
고추장 선전이야 그렇다 치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들이 화가 나거나 내숭떠느라 배를 곯고 집에 들어와 커다란 양푼에 밥을 잔뜩 넣고 온갖 나물반찬과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빈다음 아귀처럼 입에 떠넣는 장면을 보면 나는 너무도 상투적이고 진부한 느낌에 막 화가 난다. 드라마를 많이 안보는 편이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얼마 전 황정민이랑 김아중 나오는 드라마에서도 양푼비빔밥 장면이 나왔던 걸로 기억나는 걸 보면(아니면 어쩌지...) 시뻘겋게 비빈 양푼비빔밥은 사람들 머릿속에 너무도 뿌리깊이 자리잡은 편견의 전형이 분명하다. 아직도 그런 장면을 포기 못하는 작가들이 게으른 건지, 아니면 그만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흔한 일인지 따져보자고 나선다면 나는 분명 전자에 한표.
양푼에 비비는 건 싫지만 어쨌든 나도 가끔 비빔밥이 먹고 싶어지지만 그렇게 수시로 아무때나 오밤중에라도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환경은 절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비빔밥을 먹으려면 일단 나물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명절이나 차례 때처럼 삼색, 오색 나물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두 종류는 있어야지, 아니 최소한 맛있는 깍두기나 열무김치라도 있어야 밥을 비벼먹지! 암튼 내 경우 비빔밥은 내가 각별히 신경써서 고사리 나물을 볶았거나 가지나물과 호박나물을 동시에 만들고 거기다 고구마순 나물까지 갖추어 놓았다든지 해서 벼르고 해먹는 별식이다. 아무때나 양푼 꺼내들고 화풀이 하듯 숟가락을 휘둘러대는 오밤중의 해프닝 같은 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자꾸 딴소리가 길어지고 있는데 암튼 그런 <어려운> 비빔밥 대신 비빔숙수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김치만 넣고 밥을 비벼먹는 일은 나에게 있을 수 없으되, 소면 삶아서 김치만 송송 잘라 넣고 양념해 먹으면 되는 게 비빔국수니까. 매운 걸 잘 못먹는 편이면서도 가끔씩 매콤한 게 땡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생각나는 건 제일 먼저 떡볶이, 라면, 그리고 비빔국수다. 최근 들어 떡볶이 열망이 가장 크긴 했지만 내 머릿속에 각인된 맛있는 떡볶이에 버금가는 맛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다행히 사다가 먹겠다거나 만들어 먹겠다는 부지런함은 자행되지 않았다. 라면은 또 딱 한 젓가락 먹고 나면 이 맛이 아니야 싶은 후회가 들기 십상이므로, 며칠 전부터 깨나 비빔국수가 먹고 싶었던 모양으로 꿈에서도 비빔국수 만들어 먹는 꿈을 꿀 정도였다. 물론 걸림돌은 언제나 귀차니즘. 막상 시작하면 별것도 아니지만 식탐이 요란하게 동하기 전엔 다 귀찮게만 여겨지는 게 먹자고 요리하는 짓이 아닐까.

그럼에도 오늘은 조금 전 밤참으로 혼자 부시럭부시럭 국수를 한줌 삶고 김치를 넣고(귀찮아서 송송썰기도 양념하기도 건너뛰었다) 대신 샐러드용으로 썰어놓은 오이와 파프리카를 좀 얹은 다음 고추장 양념에 썩썩 비벼 후루룩 쩝쩝 먹어주었다. 요즘들어 사람들이 미친듯이 매운 맛을 찾는 이유가 스트레스 해소 때문이라는데, 가학증 환자처럼 통증에 가까운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나로선 절대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매운 걸 먹고 나서 화끈거리는 입안을 달래는 기분이 미묘하게 좋다는 건 나도 인정해야겠다. 언짢은 일이 있어서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밤새 작업하며 계속 기분이 가라앉았는데 부산 떨며 비빔국수를 먹은 걸 기점으로 슬슬 쪼그라들었던 두뇌가 펴지는 느낌이다. 단순히 뭘 <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빔국수> 때문인지, 아니면 <매운맛> 때문인지 가늠할 순 없어도 슬슬 식곤증까지 선물로 달고온 오늘의 새벽참 메뉴는 퍽 성공적이다. 남들에겐 오밤중 양푼 비빔밥이나 비빔국수나 생뚱맞고 우스운 건 똑같겠지만서도. 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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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투덜일기 2009. 9. 9. 17:43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라는 걸 인식하는 꿈이 있는가 하면, 너무 생생하고 자세하여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며 전전긍긍하는 꿈이 있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인가, 암튼 오늘 일어나기 전에 꾼 꿈은 너무도 생생하고 오래 이어져 정말인 줄 알고 한참 놀랐다.

매일 정오 무렵 동네를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채소 트럭의 방송 때문에 잔뜩 신경질을 부리며 잠에서 깨고 보니 목이 잔뜩 부어 침 삼키기가 어려웠다. SS501의 김현중도 신종플루에 걸렸다는데 혹시나.. 하면서 내 이마를 만져보니 꽤 뜨끈뜨끈했다. 신종플루로 염려하는 체온이 몇도라더라.. 궁금해하면서 얼른 일어나 엄마 몰래 엄마방에 가서 체온계를 가져왔다. 39도에 육박하는 체온을 확인하고 보니 온몸에서 기운이 탁 풀리며 어느 병원엘 가야하는지 걱정부터 앞섰다. 나흘째 외출도 안했는데 어디에서 감염된 거지? 그렇다면 요 며칠 계속 바삐 외출건수를 늘려온 왕비마마한테 옮은 것은 아닌가? 일단 마스크부터 하고 엄마를 찾으니 온가간다 얘기도 없이 엄마는 집에 없고, 나는 얼른 온 집안을 환기시키고 청소를 하고 엄마한테 옮기기 전에 병원엘 가야한다고 집을 나섰다. 일단 집 근처의 내과엘 들어가니 내 마스크를 쓴 꼬락서니를 보자마자 입구부터 내쫓으며, 큰 병원엘 가란다.
신종플루로 입원하게 되면 자동차를 집에 두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택시를 잡는데, 마스크 때문인지 아무리 기다려봐도 빈 택시들은 쏜살같이 달아나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자 거기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버스 운전기사도 엄청난 전염병 환자 대하듯 피하며 버스에 태워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걸어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걸어가는 중인데, 일부러 지름길로 가려고 대학교 후문으로 들어섰더니 가도가도 산속이다. 엄마 모시고 수백번도 더 가던 길을 왜 못찾는 것인지. 열에 들뜨고 마스크 때문에 호흡도 가빠진 나는 그만 길바닥에 주저 앉아 징징 울고만 있는데,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나를 보자 보란듯이 자동차 문을 철커덕 잠그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휴대폰으로 아무리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고, 동생들한테 연락을 하면 혹시 조카들한테 신종플루를 옮길 수 있으니 안된다고 결심한 나는 그냥 혼자 숲속에서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는데,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S병원으로 가는 오솔길이 아니라 내방 이불속이었다. 휴우.. 다 꿈이었구나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는데 역시나 목이 잔뜩 부어 침도 못삼킬 상황이고, 거울을 보니 열에 들뜬 얼굴이 벌그레 했다. 엄마가 얼른 체온계를 가져와 체온을 재보더니 큰일났다며 전전긍긍하셨다. 신종플루인 것 같다고. 그치만 엄마는 멀쩡하시다고... 얼른 나는 엄마를 바깥으로 내쫓고는 신종플루 거점병원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는데, 도통 접속이 되질 않았다. S병원에 가면 되겠지, 생각하며 꿈속에서 대중교통수단을 잡는 데 실패했던 기억을 떠올려 에라 모르겠다 차를 갖고 병원으로 출발을 했으나, 자기도 마스크를 하고 있던 주제에 마스크를 한 내 모습을 본 대학 후문 주차요원이 차단기를 열어주질 않네그려! 차에서 내려 그 여자와 마구 목청 높여 말싸움을 하던 나는 맥이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져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킬킬.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역시나 이불 속. 나는 꿈속에서처럼 얼른 누운 채로 침을 삼켜보았으나 멀쩡했고 이마도 서늘했다. 신종플루 걸려서 한 보름 격리되고 싶다더니만, 내 무의식은 실제로 그럴까봐 덜덜 떨고 있었나보다. 어쨌거나 두 모녀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어 후다닥 6년근 홍삼정을 주문했다. 자발적으로 건강식품 챙겨먹는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니 문득 서글프다. 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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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결심

투덜일기 2009. 9. 1. 21:23

1. 데드라인 지키기 - 무려 세 건이다. 정신 바짝 차릴 것.
2. 자전거 일주일에 3번 이상 타기 -- 그래서 첫날이랍시고 시방 헥헥거리며 월드컵공원까지 가서 한바퀴 돌고 왔다.
3. 요가원 알아보기 - 고모와 조카의 자세교정 프로젝트. 과연...
4. 17일 이전에 보테로 전시회 보러 가기
5. 문제의 미결 출판사에 일주일에 한번씩 독촉전화하기 - 매주화요일로 할까. 오늘 일단 한번 실시.
6. 두달째 읽고 있는 책 두 권 마치기. 
7. 미용실 가기.

모니터에 해야할 일을 포스트잇으로 붙여두곤 했는데, 그간 제대로 지키는 게 거의 없었다. 혼자서는 좀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팔푼이같은 인생을 위한 게으름 방지 처방은 일단 떠벌려서 주변의 압박을 기대해보는 것. 효과가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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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

투덜일기 2009. 9. 1. 18:03

지금도 그다지 철이 든 건 아니지만 암튼 철모르던 시절 삶이 고달퍼지면 막연한 환상을 품듯 은근히 바라던 게 있었다. 아주 가벼운 교통사고 정도로 입원해서 한 보름쯤 푹 쉬면 좋겠다는 바람. 그러면 학교도, 회사도 안 가도 되는 온갖 면책권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 하면서. 물론 진짜 병원의 삶이 얼마나 참담한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몇해 전 응급실을 거쳐 난데없이 긴급 수술을 하고 누워있던 며칠 간의 실제 병원 생활은 아프고 막막하고 괴롭기만 했다. 진통제를 맞아 아픔이 잠시 잊혀지면 병상에 누워서도 개강 전에 넘겨야 할 원고 걱정을 했었다. 생각해보니 몇년 전 그때도 8월이었다.

그 이후로는 철없는 망상을 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긋지긋한 원고를 껴안고 씨름하던 지난 8월 나는 별안간 다 버리고 어디로 도망을 가거나 차라리 신종플루에 걸려서 격리병동에 한 보름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퍼뜩 했다가 얼른 꼬리를 내렸다. 바랄 게 따로 있지... 웬만한 사람들은 일주일이면 다 나아서 퇴원한다고도 하지만, 겨우 보름 도피한다고 그 사이 어깨를 짓누르는 짐들이 사라질 리도 없으니 말이다. 다 자기 관리에 실패한 게으름 때문인데도 스스로 쌓아올린 감당하기 어려운 벽이 나타나면 늘 비겁하게 도피할 궁리부터 하고 앉았다.

어쨌거나 지지부진했던 8월이 가버려서 속이 다 시원하다. 9월엔 좀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다르게 살아야할 의무가 깃발을 펄럭이는 기분이다. 결국 방법은 딱 하나, 정면돌파뿐인데 왜 노상 그걸 잊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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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투덜일기 2009. 8. 13. 17:06

말복이라고 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장을 보러 갔었다. 재래시장 분위기의 과일도매상 옆에 있는 늘 가던 마트로. 기껏 장을 다 보고 나오는데 과일가게에 놓인 수박자두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도 말한 적 있지만, 그 마트는 주변 과일도매상 때문에 과일을 못판다. 원래 복날은 삼계탕도 먹고 맛난 여름과일도 먹는 거라는 생각에 값을 물어보니 놀랍게도 저렴. 한개 단돈 오백원이란다. 지난번 장보러 갔을 땐 무려 만원에 8개밖에 안주는 자두를 사먹었기 때문에 나는 반색하며 얼른 열개를 샀다.
속으론 <싼게 비지떡인데...>라면서 좀 찜찜했지만 아줌마가 하도 잘난척을 하며 맛있다고 추켜세우길래 아무런 의심도 안했던 것 같다. 그 옆엔 물론 그 두배인 만원에 열개짜리 수박자두도 있었지만 크기도 별 차이 안났고, 아줌마는 자랑스레 말했다. "집에 가서 북북 씻어 먹어봐요. 얼마나 맛있나..."

그런데!!
나만큼이나 과일애호가인 엄마가 현관부터 봉다리를 받아들고 얼른 씻어먹으려고 부엌으로 가더니 뭐 이런 걸 사왔냐고 하셨다. 하나같이 시들시들 과일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나는 대형마트에서 과일을 살 땐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 고르지만 과일가게 좌판에서 과일을 살 땐 주인한테 미안해서 그냥 맡기는 편이다. 같은 집은 아니었지만 지난번 그 언저리 과일가게에서 산  천도복숭아와 자두는 너무 비싸서 그렇지(한개에 1250원이라니!) 행복해질만큼 맛있었기 때문에 더욱 무방비였나보다.
꼬라지가 엉망이라도 맛이나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먼저 씻어 맛을 본 엄마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셨다. 단맛은 하나도 없고 신맛 뿐이란다. ㅠ.ㅠ 신 과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그 철면피 아줌마한테 너무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화르륵 분노가 치솟아 그 자두를 먹어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선 다시 과일을 싸들고 가서 그 아줌마네 좌판에 확 던져버리고 돌아오거나, 환불해오고 싶은데 엄마가 기름값 아깝다고 말린다.
그냥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교훈만 가슴에 새기란다. 과일은 비싸도 맛있는 걸 사야하는 거라면서. ㅠ.ㅠ
그나마 만원어치 사온 게 아니라 오천원만 버렸으니 다행이라나.
그래도 좀체 화가 가라앉질 않는다. 모름지기 장사와 거래는 신용이고 믿음인데, 어떻게 저런 사기를 치나 모르겠다. 뜨내기 장사꾼도 아니고 수십년째 거기서 과일 도매상을 하는 사람이!
생각해보니 그 수박자두가 눈에 들어온 건 다른 집엔 하나도 없는데 유독 그 집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물이거나 맛있는 놈들이 대거 출하되지 않았단 의미인데 난 그걸 왜 지금에야 깨닫고 있을까. 그냥 지천으로 깔려 있던 복숭아나 사올것을... 결국 이 가라앉지 않는 분노는 바보처럼 부주의하고 생각없이 당한 나에 대한 것이다. 더 속상한 건 얼굴치인 내가 그 아줌마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 집은 당연히 불매운동을 해야하는데 어쩐담. 그나마 끝에서 대여섯번째 집이었던 것 같으니(그도 자신은 없다만) 그 주변에선 두번다시 과일을 사지 않으리!
맛없는 저 자두를 어째야하나 그것도 심란하다. 확 버리기도 그렇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값은!) 확 다 갈아서 주스로 한번에 마셔버리자니 일일이 씨빼기가 귀찮고, 당장 되돌아가 그 아줌마 얼굴에 확 뿌려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만 같은데 삼복더위에 내가 그런 에너지를 쏟는 것조차 아깝긴 하다. 해서 괜히 부아만 더욱 치밀고 있음.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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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긴머리

투덜일기 2009. 8. 12. 15:47

아주 옛날 여권부터 시작해서 주요 신분증에 들어 있는 내 사진을 보면 다 머리가 짧다. 간간이 의도치 않게 머리칼을 방치해둔 적이 있기는 했지만 30대 이후로는 줄곧 짧은 커트 머리나 기껏해야 단발 정도를 유지했고 그게 나한테 제일 어울린다고 굳게 믿었다. 키 작은 사람에겐 긴 머리가 안 어울린다는 패션상식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나는 긴머리가 싫다. 특히 물귀신을 연상시키는 치렁치렁 곧은 긴 머리는 정말 답답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기다란 머리카락이 내 방에 마구 떨어져 구렁이처럼 엉기는 걸 상상하면 더더욱 소름끼친다. 수년째 전지현이 이어오고 있는 샴푸 광고를 볼 때마다 나는 큼지막한 가위를 들고 탐스러운 그 머리칼을 싹둑 자르는 상상을 하며 속 시원해 할 정도다.

오랜 세월 나를 알고 지내는 이들도 나의 짧은 머리에 익숙하다. 몇달에 한번씩, 아니면 일년에 한두번쯤 만나게 되는 지인들이 목격한 나의 머리모양도 늘 짧았던 듯, 언젠가 꽤 길었던 머리를 경쾌하게 커트하고 만난 자리에서도 상대는 몇년째 어쩜 머리모양도 안바뀌었느냐며 나의 한결같음을 토로했다. 하기야 20대 후반에 접어들면 여자들은 대부분은 머리모양을 자주 바꾸지 않는 것 같다. 가끔 기분전환으로 꼬불거리게 파마를 하는 일이 있기는 해도 길이를 파격적으로 바꾸는 경우는 드문 편일 거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머리칼을 잘랐는데도 주변에선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요상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고.

어쨌거나 십년 이상 내 기억 속에 남은 전형적인 나의 모습은 커트머리였는데, 요즘 계속 머리칼을 기르고 있다. 게으름 부리다가 미용실 갈 시기를 놓쳐 어중간한 길이에 꼴사나워진 머리를 질끈 묶고 이리저리 삐져나온 머리칼들을 애써 실핀으로 고정시키고 집에서 버티던 중, 정민공주가 부탁을 했다. 자기도 중학교 가기 전까지 계속 기를 거니깐 고모도 같이 머리를 기르면 안되겠느냐고. 왜 굳이 고모랑 조카가 머리칼을 같이 길러야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쁜 머리띠랑 고무줄도 사줄 테니 같이 기르자고 꼬드기는 열두살 조카의 말에 나는 큰 앙탈 없이 그러마고 대답했다. 더 늙기 전에 마지막으로 긴 머리 한 번 더 해보지 뭐, 그러면서.

나이에 따라 머리모양마저도 제한을 둔다는 건 말도 안되지만 오랜 세뇌 때문이거나 사회적인 편견에 물든 탓인지 중년 이후에도 치렁치렁 생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니는 여인네들을 나는 아름답다고 여길 수가 없다. 내가 워낙 긴 생머리를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늙은이의 발악 같기도 하고 유치한 치기의 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천편일률적으로 바글바글 아줌마 파마를 하라는 건 아니지만, 긴 생머리는 쫌!

정민공주의 부탁 이후 두어번 미용실에 갔을 때 나는 확 커트머리로 되돌아가고픈 충동을 억누르는 데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이제 어깨 언저리까지 내려온 머리는 실핀의 도움 없이도 가뿐히 하나로 묶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외출을 할 때가 아니고선 늘 이마를 확 까고(!) 하나로 질끈 묶고 있는 나로선 머리가 길어지니 여간 편한게 아니다! 특히 지난주초처럼 푹푹찌는 폭염에는 목덜미에 닿는 머리카락 한올도 짜증스럽기 마련인데 그럴땐 커트머리보다 질끈 묶어 올리는 머리가 정말 더 시원하다. 이젠 옆으로 삐져나온 머리에 실핀을 꽂을 필요도 없고, 답답하게 머리띠까지 하고 있을 필요도 없이 그냥 고무줄 하나면 되니 얼씨구나 좋을시고다.  

더욱이 머리칼을 묶어 자꾸 땡겨주어 그런지 머리 길이도 쑥쑥 자라는 모양으로 이젠 머리 묶는 위치를 거의 정수리까지 올려도 될 정도다. 숱이 워낙 적어도 남들처럼 탐스러운 <똥머리>를 연출하는 건 불가능하고 기껏해야 김초시 상투 정도로 볼품없긴 해도, 이 머리가 보통 편한 게 아니다. 뒤통수에 머리를 묶었을 땐 잘 때 반드시 풀고 자야하지만, 정수리로 치켜 올려 묶으면 잘때도 거치적거리지 않으니 더운 여름밤에도 목덜미를 휘감는 머리칼로부터 해방! 수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치렁치렁 긴머리를 고수하는 이유도 집에 가서 질끈 올려 묶고 지내는 게 커트나 단발보다 백배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새삼 생각중이다. ;-p

물론... 여름 긴머리가 편한 건 집에서 질끈 묶고 있을 때 뿐이고 가끔 외출을 하려면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머리칼이 짜증스럽다. 집밖에서도 과감하게 <똥머리>로 다닐 수 있는 용기와 미모가 부족함이 그저 아쉬울 뿐이니 여름 동안엔 계속 집구석에서 뒹굴거리며 살아야 하려나... 볼품 없는 머리숱에 다 풀린 파마기 탓에 이 상태론 외출 할 때마다 거울 보며 인상을 찌푸리게 돌 게 뻔한데... 벌써부터 왕비마마는 <넌 짧은 머리가 어울려>라면서 머리 좀 잘라야겠다고 성화시고, 몇몇 지인들도 왜 <안어울리게> 머리를 기르냐고 퉁박을 주었다. 하지만 미용사도 여름엔 그저 질끈 묶을 수 있는 긴 머리가 최고라고 동의했단 말이지!
 
아무려나...
머리모양 하나도 조카와 상의해야 하는 못난 고모인 나는 시방도 얼른 똥머리를 하려고 젖은 머리를 애써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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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

투덜일기 2009. 8. 3. 16:21

고질병이 한두가지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래도 가장 큰 고질병은 게으름과 우우부단함, 미루기, 바쁠때 딴짓하기가 아닌가 싶다. 코앞 마감일을 앞두고 <7월까지만 놀자>고 했던 다짐도 당연히 물거품. 8월이 열린지 사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심신은 심각한 초절정 모드로 진입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마감전에 딱 한번의 예외를 두자며 정한 내일의 약속을 앞두고 고민하느라 또 다시 일손이 안잡히는 상황.
어차피 약속은 정한 것이니 나가면 될 터이나, 나의 고민은 딴 데 있다.
바로 보테로 전시회를 오전에 보러 갈 것이나 말 것이냐 하는 것.
친구 일행은 그 전시를 본 뒤 나와 만나기로 정했는데, 나도 부지런을 떨어 전시회를 같이 보고 나서 점심을 먹고 놀 것인가, 아니면 마감모드에 충실(?)하여 그냥 점심약속에만 나갈 것인가, 그것이 고민의 요지다. ㅠ.ㅠ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9월 17일까지 전시예정인 페르나도 보테로의 전시는 6월말 개관 이후 줄곧 별러오던 건데, 이번에 기회 될 때 그냥 확 같이 보는 것이 나을까 아닐까. 우유부단함 또한 극심한 나로선 결정을 못 내리겠다. 방학이니 당연히 아이들이 많을 것 같아 개학 이후로 관람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어영부영 게으름 부리다 아예 전시회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든다.
어차피 약속을 잡았으니 반나절쯤 더 노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이들도 있겠지만, 초절정마감모드의 작업능률을 지키기 위해선 생활리듬이 깨지면 안되는 법이다. 왕비마마의 심신회복률이 거의 95%에 도달해 드디어 아침 노동(식전약+아침밥+식후약 챙기기)에서 벗어나 심야작업과 오전취침 리듬을 회복한지 얼마 안되는데, 내일 오전에 무리해서 전시회를 보러 나가면 게으른 몸을 재정비하는데 며칠 걸리까봐 염려가 된다는 얘기다. ㅠ.ㅠ 그럼 이번엔 그냥 포기하고 다음에 보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려니 지난번 라틴아메리카 전시회 때 맛만 본 보테로의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려 호기심이 불끈 동한다.

이리보면 우유부단함의 요체는 쓸데없이 미리 생각을 너무 많이하고 고민한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숨에 결정을 내리면 될 일을 나는 매번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만일의 여러가지 경우를 떠올리고 가능성을 점친다. 확실히 고질적인 지병이 아닐 수 없다. <우유부단>병에다 <미루기>병, <바쁠때 딴짓하기>병까지 고질병이 삼중으로 겹친 이 상황은 더더욱 고민스럽다. 아 어떡하지. +_+ 전시 포스터를 오려붙이고 나니 그림이 더 보고 싶다. 젠장. 참 싫은 나의 고질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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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투덜일기 2009. 7. 31. 18:01

월급쟁이의 가장 큰 장점은 독촉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날짜가 되면 월급이 입금된다는 점일 것이다. 동료나 상사가 마음에 안들거나 일이 따분해서 사표를 쓸까말까 매번 고민하다가도 월급날이 되면 또 한달 버텨낼 힘이 불끈 생겨났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프리랜서의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불규칙한 수입.
프리랜서라도 착실한 사람이라면 꾸준히 저축을 해서 언제나 여유돈을 마련해두고 살아야 정상이며, 불규칙한 자금의 흐름 속에서도 어느정도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작업량과 원고료 수입을 배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월급쟁이도 가끔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 월급날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프리랜서는 오죽할까. 아무리 장기적으로 수입을 감안해 작업량을 계획하고 여유롭게 수입과 지출을 예상해도, 의외의 변수는 꼭 있다. 경제불황과 열악한 출판시장을 이유로 결제를 미루는 것이 가장 크고 고질적인 난관.
여러번 원고료 체불로 마음고생을 한 뒤로는 지명도가 있건 없건, 회사 재정상태도 알 수 없고 각별히 나를 챙겨줄 직원도 있을 리 없는 출판사와 처음 연을 트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안면 없는 출판사와도 몇번 통화를 하고 정말로 작업 스케줄 때문에 의뢰를 거절하다가도 책이 괜찮다거나 공교롭게 작업스케줄이 비었을 때 딱 걸리면 대면하지도 않고 이미 안면을 튼 사이 같아져서, 결국엔 슬그머니 일을 맡게 된다. 물론 그렇게 시작해서 수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출판사들도 많으니, 나의 우유부단함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다행히도 요새 꾸준히 작업중인 출판사들은 내가 죽도록 하기 싫어하는 결제 독촉전화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느라 원고를 늦게 넘겨서 그렇지, 제때 원고를 넘기고 나면 알아서 송금을 해주니까.

헌데 겪어보니 출판사의 규모나 지명도와 결제 습관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소규모라도 착실하고 정직하게 원고료와 인세를 제때 보내주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수없이 일간지 광고와 라디오 광고에 나와 막대한 자금을 들인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규모 있는 출판사이건만 얼마 안되는 원고료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곳도 있다.
내가 2년째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출판사도 그런 축에 속하는 곳. 2년이나 지연되고 있는 건이고 내가 <죽도록> 하기 싫은 독촉전화를 반복한지도 9개월째이건만 아직도 해결이 안됐다!
올들어서는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채근을 하고 있는데도 매번 다음달에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매번 어기는 일이 반복된다. 어우 짜증나! 오늘은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도 팍 오른 김에 전화를 했더니 <정말로> 다음주엔 결제를 해주겠단다. 과연?? 그 출판사 요즘 라디오에서 신간 광고도 하던데, 그럴 돈은 있으면서 왜 밀린 번역료는 해결해주지 않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번역료를 결제 우선순위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돌리는 악덕 출판사라고밖엔 여겨지지 않는다. 

그곳 말고도 이번주에 계약금 송금을 약속한 출판사가 있었는데 통장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안들어왔다. 예전에 출간된 책의 저작권이 만료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저렴한> 번역료로 내 원고를 넘겨받아 출간하기로 한 건이라 나로서는 어찌보면 거의 불노소득에 가까워 처음 거래하는 출판사측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계약을 하고도 순진하게 기뻐했는데 문득 너무 계약을 서둘렀나 후회스럽다. 출간 급하다고 해서 원고부터 후딱 보내주었는데 혹시 약속 잘 안 지키는 출판사라 계속 속깨나 썪으면 어쩌지.. ㅠ.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거늘...
출판계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원고 재출간임을 감안할 때  퍽 양심 있는 계약조건이라고 해서 덜컥 수락을 했지만, 매절 계약서에 도장 쾅 찍어 보내고 난 다음날부터 인세계약으로 할 걸 잘못했나 쓸데없이 가슴을 치기도 했던 터라 더 짜증이 난다. 이미 팔릴 만큼 팔린 책이긴 해도, 작년에 나온 문제의 <그> 베스트셀러처럼 영화 개봉으로 새삼 대중의 주목을 받아 엄청 팔리게되면 배 아파서 어쩐담. ;-p
하기야 계약금 약속도 잘 안지키는 출판사라면 인세 지불도 속썪이지 말란 보장도 없으렸다. 결국 번역가는 도를 닦듯 돈으로부터 초연해져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상대적 약자한테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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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투덜일기 2009. 7. 30. 23:37

왕비마마의 저녁운동을 채근하다 지쳐서 홀로 느루를 끌고 홍제천변엘 나갔다가 이를 갈았다. 하필 홍제천변 산책로에서 행사가 벌어지고 있어 문제의 분수와 폭포 앞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는 지나갈 수가 없었고 설상가상 대형 광고판으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하는 어느 주민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며칠 전 동네 버스정류장 유리에 붙어있던 홍보물을 본것도 같았다. 시낭송의 밤이라나 뭐라나 하는... 게스트 목록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유현상>이기에 속으로 큭큭 웃으며 과연 누가 가려나 싶었는데, 그건 내 생각이었나보다. 무대 위쪽으론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아래쪽 산책로에 돗자리를 깔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걸로 봐서 의외로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시낭송의 밤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올까봐, 주민 노래자랑으로 프로그램이라도 바꾼 모양이었다.
일요일 낮마다 울 엄마도 송해 할아버지가 사회보는 <전국노래자랑>을 반드시 시청하는 분이긴 하지만, 나는 거기 나오는 사람들도 그 프로그램이 수십년째 장수하는 이유도 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TV에 얼굴 내보이는 게 신나고 좋을까. 내눈엔 망신살로밖에 안보이는 출연자들의 온갖 <쇼>와 <땡 소리>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 나로선 정말이지 모르겠다. 한민족이 원래 가무를 즐기기는 했다지만 혼자 끼리끼리 즐기는 거랑, 전국적으로 보여주며 즐기는 거랑은 다르지 않을까. 오늘도 나에겐 괴로운 소음이어서 더운 여름밤에 불쾌지수와 짜증을 배가하는 장면에 불과했던 주민 노래자랑을 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걸 보면, 내 정서가 확실히 소수에 속하긴 하는 모양이다.
가끔 눈쌀 찌푸리면서도 일요일 낮엔 절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지 않는 왕비마마에게, 그게 왜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달리 볼 게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도 한민족이 예로부터 가무를 즐겨왔다고 세뇌된 학습효과이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못된 쾌감 또는 음치, 박치로서의 동병상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 노래자랑 프로그램 싫어하는 나는 뭐지? 노래 잘하는 사람의 노래는 얼마든지 감사히 들어줄 수 있지만, 들어줄 가치도 없는 음치 아마추어들의 노래를 귀따갑게 참아야할 이유를 나는 도저히 꼽아낼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나도 분명히 가무를 즐기긴 하는데... 참..

어쨌거나 오늘 내가 점입가경이라고 느낀 건, 동산에 억지로 파이프를 끌어올려 만들어놓은 폭포에다 이젠 알록달록 조명시설까지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자라는 나무와 풀에게도, 오래도록 그 동산을 지키고 있던 바위에게도 나는 막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은 일단 훼손했다가 복원하고 인공적으로 마구 꾸며야 아름답다고 여기는 웃기는 취향의 행정가들과 주민들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 하고. 그나마도 밤엔 폭포 물줄기가 안보여 꺼져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젠 밤에도 그 동산에 자라는 식물들은 쉴 수가 없어졌다. 게다가 지난 폭우때 떠내려가 박살났다는 황포돛배도 어느틈엔가 새로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세워놓았더라. 박살 난 걸 교훈삼아 다시는 안 가져다 놓기를 바랐던 내가 순진했다. 이상하게 변해가는 홍제천의 모습이 꼴사나워 구시렁거리는 나 같은 사람들이야 뒷전에서만 혀를 찰 뿐, 앞에 나서서 큰소리를 내는 이들은 대부분 분수에 폭포에 황포돛배에 볼거리 많아졌다고 좋아라하며 박수치는 사람들일 테니 아마도 얼마 지나면 또 이상한 인공 건조물이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을 불태울 순 없는 법이라 했으니, 꼴보기 싫으면 내가 이사를 가야겠지. 그래도 자전거 도로로 한강까지 갈 수 있는 점 하나는 좋은 동네인데... ㅠ.ㅠ
할 수 없다. 그전까지는 볼썽사나운 것들 앞에서 시선을 돌릴 수밖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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