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0.04.15 벚꽃 5
  2. 2010.04.10 짐을 싼다 9
  3. 2010.04.06 두 학교 5
  4. 2010.03.31 비오는 수요일 14
  5. 2010.03.28 8
  6. 2010.03.25 변화 19
  7. 2010.03.25 짜증 7
  8. 2010.03.22 생각대로 되지 않아 12
  9. 2010.03.16 소인배의 승리 20
  10. 2010.03.14 끝났다 20

벚꽃

투덜일기 2010. 4. 15. 16:12
내가 날을 잘못잡은 탓이 가장 크고, 일본엔 어딜 가나 벚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을 줄 알았던 내 착각도 일조를 했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 사쿠라 구경은 무위로 돌아갔다. 일본 벚꽃명소 100선에 든다는 성에도 가봤지만 벚나무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비에 절반은 꽃이 떨어져 있었으니 내심 얼마나 낙담이 되던지.

그에 반해 일본으로 떠나던 날, 막 따뜻해지기 시작했던 날씨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던 집앞 벚나무(엄밀히 우리 마당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옆집 벚나무)는 돌아와 보니 완전 만개해 있었다. 열심히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 헤매 다니다가 돌아오니 파랑새가 집에 있었음을 깨달은 치르치르와 미치르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벚꽃놀이는 집에서 하는 게 최고라는 얘긴가? ㅎㅎ 꽃샘추위라고는 해도 창밖을 내다보니 벌들이 열심히 꽃가지를 흔들며 바삐 날아다니고 있다. 봄날씨는 원래 변덕스러운 거라지만 4월 중순에 이렇게 반칙 쓰듯 겨울놀이하지 말고, 제대로 봄이 오면 참 좋겠다.

집앞 벚꽃 - 나가기 귀찮아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을 줌으로 당겼더니 이렇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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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싼다

투덜일기 2010. 4. 10. 02:03

사흘간의 탈출. 최초의 모녀 여행. 최초의 일본 여행. 온천료칸 체험. 짐을 싼다.
왕비마마 칠순기념으로 흐드러진 벚꽃구경을 목표로 했으되 마감 눈치보느라 어물쩡거리며 자꾸 예약날짜 바꾸는 사이 좋은 날짜 다 놓치고, 3박4일 로망대신 2박3일로 줄어든 일정으로, 과연 벚꽃이 남아있을지 어쩔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계절에 암튼 간다.

전통료칸에서 무조건 편하게 쉬면서 맛난 거 먹고, 쏘다니는 관광은 최소한인 조용한 상품을 찾다보니 이름하여 <명탕순례 미각기행> ㅋㅋ. 지리에 워낙 약해 도쿄 오사카 큐슈 홋카이도 정도만 알고 있는 나에겐 난생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 돗토리현 요나고. 일왕도 묵어갔다는 료칸이라는데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며 덜컥 정해놓고는, 필요이상으로 들떠 흥분한 왕비마마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며 드디어 짐을 싸고 있다. 나 같은 역마살 인생한테야 여행이란 늘 감당할 만큼의 흥분과 설렘을 주는 놀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특히 노인들에겐 말 설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렘보다 스트레스가 더 큰 모험이란다. 여행 뒤끝엔 늘 마음병이 도져 돌아온 울 엄마가 바로 그 케이스. 당신이 가고싶다던 일본 온천 여행이니 과연 이번엔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인가.

돌아보니 여행 직전까지 밀린 일에 휘둘리는 건 늘 반복되는 습관이다. 제주도 갔을 때는 아예 일감을 싸가지고 갔었고,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도 캘리포니아로 날아가는 동안 병든 닭처럼 계속 꾸벅꾸벅 졸며 모자란 잠을 보충했었지 아마. 이번에도 가서 쉬면 된다면서, 공항가기 몇시간 전 새벽까지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왜 이렇게 살게 됐는지 원. 

아무튼 이번엔 일감은커녕 책 한권도 안 가져갈 거고 순전히 늘어져서 먹고 쉬다 올 테다. 헌데 현지 날씨를 확인해보니 계속 비가 온다네 젠장. 바람에 휘날리며 지는 벚꽃비를 기대했더니, 참 운도 좋다. 나 혼자라면야 비오는 일본 시골 도시도 고즈넉한게 좋기만 하겠지만, 부디 꽃구경 좋아하는 우리 왕비마마를 위해서 단 하루라도 축축한 비대신 꽃비가 내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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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학교

투덜일기 2010. 4. 6. 22:18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꽤 유명한 예고가 하나 있었다. 당시 일본식 교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촌스러운 검정색 교복을 입었던 우리와 달리 예고 학생들의 교복은 상당히 예쁜 편이라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고 다니면 몹시 비교된다는 자격지심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게다가 강북 부잣집 동네로 아직도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평창동>이라는 위치와 <예술고등학교>라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데다, 무용 전공을 하는 아이들이 어깨 너머로 길게 풀어 헤치거나 하나로 동그랗게 틀어올린 머리모양까지도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두발 및 교복 자율화가 된 후에도 커트머리 아니면 기껏해야 뒷덜미에서 하나로 질끈 묶어야 했으니까.

아직도 거기 예고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 잊고 지냈는데 요즘 요가를 다니느라 그쪽에서 오는 버스를 탈 일이 잦다 보니 새삼 눈에 띄는 스타일리시한 교복을 입은 예고 학생들을 더러 보게 되었고, 차이는 여전하구나 싶은 생각에 입맛이 썼다. 온 나라 여성들 사이에서 부는 명품백 열풍이야 나도 잘 알고 있기에 신촌 근방에서 맞닥뜨리는 여대생들의 가방에 명품 브랜드가 찍힌 건(진품이든 가품이든 내 알 바 아니고;;)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래도 고등학생들이 학교 다닐 땐 배낭형 책가방을 들고다니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미국 드라마 <가십걸>이나 <O.C.> 같은데 나오는 고딩들이야 교복도 디자이너샵에서 맞춰입는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고 나와도 어디까지나 <미드>일 뿐이라고 여겼고, 강남 중고딩들 사이에선 몇명이서 용돈으로 곗돈을 모아 백만원짜리 명품 지갑을 돌아가며 장만하는 게 유행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실제로 책가방으로 발리, 페라가모, 디오르 따위의 금장식이 번쩍이는 명품을 어깨에 매고 학생구두나 운동화 대신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정색 플랫슈즈를 신은 예고생들을 보노라니 한숨이 푹 나왔다. 그 옛날 하교길 즈음에 예고 앞에 줄지어 서 있던 검은 승용차의 물결이 요즘이라고 없어졌을 것 같지는 않으니, 그나마도 버스 타고 어디론가 움직이는 그 아이들은 비교적 덜 부유한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을 비약시키자니 헛웃음까지 나왔다.

말간 피부에 예쁘장한 예고생들의 차림새를 넋놓고 구경하다 보니, 버스는 연희동에 이르러 또 와글와글 요란하게 남녀 학생들을 태웠다. 화교학교 학생들이었다. 10년전까지만 해도, 그 버스정류장에서 올라탄 화교 아이들은 죄다 중국말로 떠들어대 더욱 정신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언제인지 모르게 그 아이들의 입에서 중국말이 나오는 걸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애들은 그냥 한국말이 더 편하고 즐거운 한국 아이들로 보였다. 옛날 화교들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중국어를 더 소중히 여겼고, 이 나라가 재한 외국인에 대해서는 세금은 물론이고 온갖 법규와 제도에서 엄청난 차별을 적용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한국에서 살기는 하지만 결국 대만이나 중국으로 돌아가는 화교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요즘 화교 아이들은 어쩌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재외교포 2세, 3세들이 한국과의 끈과 모국어를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새로운 화교 세대들은 여전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삶을 편히 받아들이고 산다는 증거가 아닐까. 미국으로 이민간지 20년 넘은 친구도 유아기때는 아이들한테 꼬박꼬박 한국말을 가르치더니 금세 포기했다. 집에서 한국말을 쓰도록 강요하면 아이의 언어 발달만 늦어져서 오히려 학습에 방해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나. 사춘기 두 아들에게 화가 나서 혼을 낼 땐 알아듣건 말건 한국말로 쏟아부어야 속이 시원하다는 친구는 여전히 한국과 한국말이 그리워 서울로 전화를 하고 손편지를 쓰지만, 친구의 아들들은 스스로 당연히 미국인이라고 여긴다. 내 생각에도 그게 그들의 인생을 위해 나을 것 같다.

명품 책가방을 든 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아함을 표출하듯 고등학생 답지 않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조곤조곤 속삭이는 예고 여학생들보다는 어쩐지 막대사탕을 하나씩 입에 물고 우르르 버스에 올라 왁자지껄 떠들어대다가 누구 하나 자리에 앉으면 너도나도 배낭을 던져 맡기는 화교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심정적으로 나에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의 부자 알레르기 및 자격지심 때문이었을 거다. 식충이 포스팅을 내려보내려고 쓰기 시작하긴 했는데, 대체 내가 뭔 얘기를 하려고 한 건지 쓰다보니 까먹어버렸다. 큭.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암튼 뭐 두 학교 학생들 때문에 뭔가 끼적이고 싶었다는 게 결론이라고 우겨야겠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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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수요일

투덜일기 2010. 3. 31. 13:10

요즘 거의 라디오를 안 들어서 알 수 없지만, 아직도 비오는 수요일엔 다섯손가락이 부르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란 노래가 자주 나오는지 궁금하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이미 해체된 그룹이니 내 또래가 아니고선 <다섯손가락>이란 이름조차 낯설듯한데, 동방신기가 부른 <풍선>인가 하는 노래도 원래는 다섯손가락이 부른 노래였다. 유난히 수요일에만 비가 자주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었던 그 노래 덕분에 비오는 수요일엔 종종 빨간 장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도 했다. 그 세뇌작용이 얼마나 강렬한지 오늘처럼 비오는 수요일엔 아직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 노래가 생각나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빨간 장미 한송이를 사볼까 하는 생각이 뒤따른다. 천편일률적으로 한송이씩 셀로판지에 둘둘 말아 리본 묶어 놓은 거 말고, 이왕이면 튼튼한 대를 길게 잘라 아무 포장 없이 그냥 들고 올 수 있게 하는 꽃집에서.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내일이면 4월이다. 예전엔 4월이 열리면 이런 저런 만우절 에피소드와 함께 어김없이 April come she will~로 시작되는 사이먼&가펑클의 <4월> 노래를 이방송 저방송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혹시 요즘도 그럴까? 혹시나 틀어줄지 내일은 온종일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보고픈 마음도 든다. 음악이 듣고 싶으면 찾아서 들으면 될 것을 라디오를 먼저 떠올리는 것도 내가 구식이고 옛날 사람이라는 증거겠지.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 이유는 단단한 죽은 땅을 뚫고 솟아나는 봄의 생명력 때문이라는데도, 다른 이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4월은 봄꽃의 달이라 꽃의 향연 속에서 팍팍한 일상에 찌들어야 하는 상황을 잔인하다고 여겨 툴툴댔던 것 같고, 올해도 역시나 나의 4월은 잔인한 스케줄을 품고 있다. 학교에 다닐 땐 하필 제일 날씨 좋고 봄꽃 아름다울 때 중간고사 기간이라 잔인하다기보다는 억울한 4월이라고 생각했다고 쳐도, 다들 굳이 다른 달보다 4월을 더 힘겨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게 느끼는 걸 보면 분명 주입식 교육의 잔재다. T. S. 엘리엇. 황무지.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무운시. 그러니까 4월은 무조건 잔인한 달. -_-;

어쨌거나 촉촉한 비가 내리는 수요일이라 몰랑몰랑해진 감성은 음악을 멀리하고 살아도 아무렇지 않은 인간에게까지 감상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비와 함께 연상되는 음악, 커피, 추억 같은 것들도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세대만 품고 있는 주입식 기억의 흔적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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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0. 3. 28. 16:13

우리집 마루 한쪽 벽엔 조카들의 키를 재기 위한 눈금이 그려진 기다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정작 제 부모들은 제 자식들 키 크는 추세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볼때마다 쑥쑥 자라는 녀석들의 키를 거의 다달이 표시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괜스레 뿌듯해하는 걸 보면 난 확실히 '단신'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한 인간이다. 남자들도 180cm가 안 되면 <루저>라는 발언이 방송에도 나올 만큼 키 작은 걸 심각한 장애취급하는 사회이다보니 어쩌겠나. 부디 조카들은 훤칠하고 우월한 키로 세상을 굽어보며 살면 좋겠는걸.

키가 큰 사람들은 대부분 성장기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키가 확 자라는 시기를 경험하므로, 큰동생은 중3땐가 1년만에 14센티미터가 자랐다고 하고, 친구 하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 너무 갑자기 키가 커서 밤마다 다리가 아파 엉엉 울어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경험들이 죄다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국민학교 입학했을 때 전교에서 제일 작았다는 전설속의 아이는 중학교 때 잠시 중간키 부류에 속하는 기쁨을 누렸을 뿐,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느 집단에서든 제일 작은 축에 속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다. 친구들 중에 나보다 작은 사람은 중학교 때 친구 1명과 고등학교 때 친구 1명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나보다 작았던 아이들을 확률적으로만 따져도 좀 더 많은 단신들을 사회에서 맞닥뜨려야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심지어 나는 스무살까지 느릿느릿 조금씩 키가 자라서 이만큼 된 것인데도!

사실 살아가는 데는 키의 크고 작음이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키가 작아서 좋은 점을 굳이 찾자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랑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 정도이고(아이들은 자기들보다 몸집이 지나치게 큰 어른들에겐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낀다나 뭐라나;;) 그 외엔 그저 단신이라는 게 단지 외형적인 불만으로 남는 것 같다. 바지는 살 때마다 길이를 줄여 고쳐 입어야 하고, 굽 높은 신발에 길이를 맞춰 자른 바지는 단화를 신을 때 질질 끌려 못 입는다는 점(예외는 스키니진인데 워낙 유행이긴 하지만 다리가 더욱 짧아보이는 것 같아서 별로 마음에 들진 않는다), 무늬가 큼직큼직한 옷을 입으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점, 무슨 옷을 입든 조금이라도 키가 커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다는 점... ㅠ.ㅠ

정말이지 요즘 아이들의 발육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아져, 우리집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중학교 아이들만 봐도 하나같이 늘씬늘씬 키가 크다. 하기야 그 옛날 20여년 전에 내가 교생실습 나갔을 때도 내가 맡은 여학생반에서 나보다 작은 애들은 1번과 2번 딱 둘 뿐인 듯했다. 자존심 상해서 앞번호 아이들과 정확하게 키를 재보지는 않았지만 눈높이로 대강 어림짐작했을 때 그랬다는 얘기다. 그러니깐 이제 6학년이 된 정민이가 내 키를 따라잡을 시기가 되었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수년째 다달이 키를 표시해두면서 그 날이 언제일지 두려워 하고 있었을 뿐.

사실 동생들이 다 키가 큰 편이고 막내올케 역시나 몹시 큰 편, 큰올케도 심히 작은 편은 아니라 조카들 역시 또래들보다는 그간 대체로 키가 컸다. 유독 정민이만 저학년때 작은 편에 속한다고 하더니 작년부터 부쩍부쩍 자라 1년에 거의 10센티미터를 컸고 6학년에 올라가서는 여학생들 중에서 세번째로 크다고 자랑을 했다. 애 키우는 엄마들 못지않게 육아상식이 많은 내가 알기로는 ^^;; 아이들 키가 1년에 평균 6cm 정도 자라는 게 정상 속도란다. 두달에 1cm씩 큰다는 얘긴데, 놀랍게도 최근 우리 조카들은 만날 때마다 평균 이상으로 키가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이는 듯하고 그 결과가 실제로 우리집 벽에 고스란히 눈금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이미 3학년으로 보일 만큼 늘씬한 키를 자랑하던 준우도 반에서 제일 크다나 두번째로 크대고, 요번에 초등학교 입학한 지환이도 또래보다 큰 편이고, 심지어 이제 겨우 다섯살이 된 지우도 발육이 월등하다. 우리집에 올 때마다 조카들을 눈금 벽에 세워놓고 키를 표시하면, 녀석들은 꼭 나와 다시 제 키를 비교한다. "전에는 고모 어깨에 닿았는데 이제는 턱까지 올라갔다!" 이러면서 기뻐하고...  그러면 나는 과연 다시 온 집안에서 제일 키 작은 사람으로 전락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머릿속으로 셈하며 비감에 젖는 한편 늘씬한 조카들이 마냥 자랑스럽다.

집안 서열에서는 왕비마마 다음으로 내가 2위지만, 지난 왕비마마 생신날 이후로 나의 키 서열은 정민이와 동률 6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정민이가 연초에 150cm를 넘어서면서 내 키를 따라잡을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석달도 가기 전에 나와 똑같아질 줄은 예상밖이었던지 그날 나는 약간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정민이는 신났다고 눈금 표시 옆 벽에 날짜와 함께 <고모와 정민 키가 같아짐>이라고 적고는 구름표시를 해두기까지. 그러더니 얼마전까지도 고모를 올려다봤는데 이젠 굽이 꽤 있는 운동화를 신으면 고모가 내려다보인다면서 자기도 잘 적응이 안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으휴. 

그나마 정민이는 6학년때 나와 키가 같아졌지만, 조카들 가운데 발육이 가장 훌륭한 준우는 이 추세라면 5학년도 돼지 않아 나를 따라잡을 확률이 높다. ㅠ.ㅠ 어린 녀석들이 발은 또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6학년짜리 발이 나보다 커진건 벌써 옛날이고 이젠 2학년짜리 신발도 내가 물려신게 생겼다. 자전거 열풍 이후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둘째조카한테 넘기긴 했지만 지금도 딱 맞으니 아마 올해 안에 작아졌다고 다시 반납할 게 확실하다. 조카들한테 운동화 물려받아 신는다는 이모나 고모의 이야기를 더러 듣기는 했지만 내가 막상 그런 입장이 되고보니 왜 이리 민망한지, 조카들의 우월한 성장이 뿌듯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160cm에 가까운 키라 옛날 사람치고 큰 편이었다는 왕비마마는 척추골절과 척추협착증 수술을 연이어 겪으며 자세도 굽었고 실제로 키도 많이 작아져 지난번 정기검진때는 허리를 잘 펴지 못해 무려 154cm로 기록되기도 했다. 요번에 여권을 다시 만들며 왕비마마는 그래도 꿋꿋하게 159cm라고 박박 우기셨지만 요즘 나란히 다녀보면 확실히 엄마 눈높이가 나와 비슷하다. 과거엔 드물게 엄마보다 키가 작은 딸로 살며 자존심이 좀 상했었는데, 노년의 엄마 키가 쪼그라든 걸 보니 마음이 더욱 좋지 않다. 젊어서도 작은 나는 나중에 늙으면 얼마나 더 작아질까 생각하면 더 서글퍼지기도 하고. 평균 이상인 사람들은 평생 대수롭지 않게 살아갈 키에 평생 연연해하는 나의 컴플렉스, 이제 좀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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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투덜일기 2010. 3. 25. 18:07

큰조카네 집에 강아지가 생기고 나서 제일 질색팔색 두려워한 사람은 둘이었다. 나와 막내동생네 둘째아들 지우. 특히 다섯살난 지우는 강아지 때문에 현관에서 아예 신발도 못벗고 벌벌 떨다가 방에 들어와선 계속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어야 할 정도였고, 아이들끼리 노는 방에 파랑이가 나타나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 하거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면서 놀랍게도 나도 그렇고 지우도 그렇고 파랑이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줄었다. 물론 파랑이가 워낙 애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의 강아지라 누구든 지네 집에 나타나면 아는 척 하고 안아줄 때까지 마구 짖어대며 꼬리를 흔들거나 심지어 두 앞발을 척 들어 다리에 매달리는 놈이라 나는 그럴 때마다 어쩔줄을 모르며 당황하긴 한다. 특히 제일 못참겠는 건 막 핥아대려고 하는 것!

암튼 내가 싫어하든 말든 큰조카네는 웬만한 외출에는 파랑이를 대동하고 다니기 때문에 우리집에도, 막내동생네 집에도 벌써 여러번 강아지가 다녀갔고 애완견 혐오파 가족(울 엄마와 막내동생네)들도 이젠 그러려니 하고 있으며, 나도 지우도 누군가 파랑이를 잡고 있거나 녀석이 좀 얌전하게 굴 때는 쓰다듬어줄 수도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요번에 막내동생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보니 지우의 변화는 기대 이상이다! 슬며시 지우한테 배신감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긴 하지만 ^^; 두 녀석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어린이계의 얼짱 지우와 말티즈계의 얼짱 파랑이 인정> 어쩌고 하는 댓글을 단 걸 보면 나 역시 파랑이와 많이 친해졌구나 싶다. 애완견 생기면 집에도 안가겠다고 협박하던 내가 이젠 파랑이랑 나란히 차에 타고 갈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개 공포증 완화가 아직은 다른 개들한테까지 고루 미치진 못했다.



설상가상 아래층에서 하얀색 잡종견 강아지를 한마리 데려다가 겨우내 집안에서 키우더니 얼마 전부터 마당에 개집을 놓고 묶어 놓았다. 아직 강아지 꼬락서니를 한 이놈이 또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내가 현관을 드나들 때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넣을 때마다 우렁차게 짖어대서 괴로워죽겠고, 그럴 때마다 나는 시끄럽다고 녀석한테 야단을 친다. 어제 만난 아래층 아저씨는 녀석을 훈련시켜야 하니까 낯선 사람 아니고 계속 우리한테 짖을 땐 좀 혼내주라고 조언하던데, 그게 어디 쉬운가? 처음 파랑이도 그랬듯 이놈의 강아지도 나를 우습게 아는지 그간 계속 짖어대며 나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던데!!

헌데 모든 강아지를 비롯해 성견까지도 좋아하는 공주는 어제 하루만에 벌써 아래층 강아지와 친해져 간식을 나누어주더니 귀엽다고 난리다. 곰돌이라는 이름도 알아냈고 아직 애기라 이빨도 몇개 없다는 것까지 시시콜콜 내게 보고를 했다. 고모도 맛있는 거 주면서 좀 친해지라나. -_-;;

어젯밤 공주를 배웅하러 갔다가 들어올 때도 분명 녀석은 우렁차게 짖어댔는데, 드디어 오늘 내가 두번이나 드나드는데도 개집 안에서 빤히 쳐다보기만 할뿐 짖지를 않았다. 하루만에 내가 이 집에 사는 사람이란 걸 파악한 건가?? 하기야 뭣도 모르는 놈이라 오히려 택배 아저씨들이 와도 짖기는커녕 집안으로 숨어드는 눈치라 내일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문득 나는 짖지 않는 녀석에게 감동하여, 순간적으로 집에 뭔가 녀석에게 줄 건강한 먹거리가 없는지 생각하고 있질 않은가. ㅋㅋ 스스로 이건 내가 아니다 싶어 얼른 그 생각을 물리쳤지만, 이런 놀라운 변화는 분명 파랑이 때문에 시작된 게 틀림없다. 그렇긴 해도 녀석이 부디 핥으려고 달려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변함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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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투덜일기 2010. 3. 25. 10:32

가뜩이나 심신이 지쳐서 병나기 직전의 불안함까지 느껴지는 요즘 가장 짜증스러운 것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여론조사 전화다. XXX 구청 후보에 대한 설문조사, XXX 시의원에 대한 여론조사, XXX 구의원 후보에 대한 설문조사라며 하루에 평균 두세 통은 전화가 걸려오는 것 같다. 그것도 내가 숙면을 취해야 하는 아침나절에!!

원래 집전화로는 나를 찾는 이가 없기 때문에 왕비마마 담당인데, 귀가 어두워진 탓도 있고 TV를 하도 크게 틀어놓은 탓에 전화벨 소리를 제깍제깍 듣지 못하고 대여섯번 이상 벨이 울릴 때까지 내버려두면 그야말로 미칠노릇이라 자다말고라도 내가 벌떡 일어나 받을 수밖에 없다. 아주 피곤할 땐 내방에 연결된 선을 아예 빼놓고 자지만, 평소엔 오전 중에 잠을 자는 나의 사정을 감안한 친지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를 거는 일이 드물어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아직도 인터넷 전용선과 전화를 바꾸라고 홍보하는 텔레마케터들과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여론조사 전화들!!

엄마도 나도 컴퓨터 녹음으로 이어지는 여론조사 전화는 가차없이 확 끊어버리고 마는데, 대체 왜 자꾸 그런 전화가 오는 것인지? 여론조사 해서 니들이 뭘 어쩔건데??? 그나마도 작업실 유선전화는 전화번호부 등재를 거부한 덕분인지 여론조사 전화가 오지 않고 있지만, 엄마네 집전화는 어제도 오늘도 빠짐없이 짜증나는 여론조사 전화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걸려오고 있다. 으으으~~~~!!!! 어디에 신고해서라도 그런 전화를 막을 순 없는 건가? 지방선거니 서울시장부터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뽑아야하는 직책도 많고 후보자들도 까마득하게 많을텐데 놈들이 죄다 여론조사 하겠다며 앞으로 두달 넘게 전화질을 해댈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멀미가 날 것 같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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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두룩한 나의 단점 가운데서 혹자는 나더러 생각이 너무 많다고 지적 한다. 나도 잘 알고 싫어하는 단점이다. 소심함, 우유부단함과 함께 세트 메뉴로 몰려다니며 종종 내 어깨와 머리를 짓누르니까. 심지어는 앞으로 해야할 일, 일어나지 않을 일도 여러 경우의 수대로 홀로 상상해보고 추측하고 짐작하면서 미리 염려하는 경우도 있다. 어쩔 땐 내가 이러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저러저러한 말로 대꾸할 테고 또 내가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면 저러이러한 반응이 나올 것을 예상하다가 버럭, 있지도 않은 사건에 꽁해져 마음에 응어리를 맺거나 홀로 이유없이 화를 내고 앉았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밀린 일이 생각대로 진척되지 않는 건 너무도 뻔한 게으름 때문이라고 쳐도, 하루 일정 계획해 놓은 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지는 일은 다반사이며, 한 이틀 푹 자고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입천장도 아직 너덜거리고, 요가 넉달만에 열세살 조카는 키가 5센티미터나 크고 체중도 줄어 허리선이 생겨났는데 중년의 고모는 체중감량은커녕 늘어난 유연성 따위도 전혀 모르겠고, 일주일만에 아기발처럼 변한다고 선전하며 각질이 허물 벗는 뱀 껍질처럼 벗겨지는 모습을 보여주던 마법의 묘약 같은 각질제거제는 나한테만 효과가 나타나질 않으며, 4월이 코앞인데 아직 날씨는 겨울이고, 진심은 언제고 반드시 통할 거라 믿었던 오랜 관계에 금이 가거나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물론 생각대로 되지 않아 제일 못마땅하고 속상한 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일년에 한번씩은 제법 긴 여행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여유와 여건이 허락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중년의 삶이다. 

소소한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는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게 인생인 것도 같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만날 생각만 길게 앞세우지도 말 것이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맘 상해 괴로움에 연연하는 대신 생각대로 된 것에 대한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인간의 욕심으론 그게 잘 안된다. 성인이나 고승의 반열에 오를 만큼 대범하게 연연해 하지 않고 매사에 기꺼이 욕심을 놓아가며 사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크게 성공하겠다거나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탐욕 따위를 품지도 않았으니 생각을 조금만 덜하고 탐심도 조금 버리면 되련만...

3월도 끝자락을 향해가는 22일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씨처럼, 앞으론 내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 황당하고 기막힐 정도로 뒤통수를 치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멍청한 나는 또 그런 예상마저 미리 생각해두겠노라며 미련을 떨 것이 뻔하지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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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배의 승리

2010. 3. 16.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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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투덜일기 2010. 3. 14. 16:35

왕비마마의 칠순모임은 잘 끝났다. 일주일 전까지도 "니들끼리 가라, 난 창피해서 안 갈란다"고 버티던 왕비마마는 D-데이를 나흘 앞둔 날 자진해서 새로 파마를 하고 오셨고 어떤 옷을 입고 갈지 골라두며 호의적인 태도로 돌아서 마음을 놓게 했고, 어젠 최상의 컨디션과 환한 얼굴로 주인공 노릇을 훌륭히 해내셨다.

연회실 규모가 정해져 있는 바람에 혹시 예약인원과 참석인원이 크게 달라 자리가 모자랄까봐 염려했던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데, 못온댔다가 뜻밖에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다고 했다가 못오신 분들도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마지막으로 조정한 예약인원과 딱 떨어진 셈이었다. 전화 거는 거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초대전화부터 참석확인 전화까지 돌려대느라 참 애썼다. 스스로 장하다. -_-;

오래전 외할머니의 산수연에서 예상밖으로 손님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뷔페 음식이 모자랐던 망신살을 모두 기억하고 있던 터라, 모임을 예약하면서 우리가 가장 강조하고 확인한 게 음식이 계속 리필되느냐는 점이었다. 나의 식탐도 식탐이지만, 좋은 날 손님들이 밥 먹다가 음식 모자라는 것만큼 민망한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어제 호텔에 미리 도착해서도 그 점을 재차 부탁해두었는데 ㅋㅋ 차린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아 안타까울 정도였다. (외할머니 산수연을 한 호텔이 더 유명한 데였는데 거긴 왜 음식이 모자랐을까 이상하다. 인원차가 너무 컸던 것일까?)
 
어르신들은 오락가락 돌아 다녀야하는 뷔페를 싫어하시는데도 굳이 뷔페식으로 정한 건 모이는 시간 때문이었다. 한정식이나 중식은 다 모여야 시작할 수 있는데 한국사람들이 어디 그런가. 양식은 우리집 어른들이 더욱 싫어하시고... 거기다 우리집 바로 옆이라는 이점 때문에 최종 선택된 장소는 뷔페식당 맛이 별로 없는 것으로 유명(?)해 내심 꺼림칙했었다. 메뉴를 선택할 때도 잠시 머리털 쥐어짜며 고민했지만, 뷔페 음식이 맛있어 봤자고 또 맛없어 봤댔자 한끼 정도는 눈감아 주리라 믿으며 마음을 접었다. 그나마 뷔페 주방과 연회 주방은 다른 곳이라고 해서 혹시 기대를 했는데, 기대치가 낮았던 때문인지 음식 맛도 대체로 괜찮았다. 친척분들이야 인사치레로 맛있었다고 하실 수 있겠지만, 입맛 까다로운 조카들이 인정해주었으니 안심.

약간의 혼선이 있었던 부분은 사회자를 비롯해 마이크까지 일절 필요없다고 얘기해 놓았는데, 뜻밖에도 조카 두 녀석이 축하노래 공연을 하겠다고 나섰던 점이었다. 무반주에 마이크도 없이 용감한 형제가 <죽어도 못보내>(클라이막스 부분)와 <사랑비>(전곡^^;)를 부르는 바람에 분위기가 한층 더 즐거워졌으니 나중에 마이크 가져다준다고 어수선해졌던 것까지도 유쾌한 해프닝이었다. 또 어린이들만 죄다 앞으로 불러내 케이크 앞에서 왕비마마 할머니를 위한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촛불 켜주는 직원이 음을 너무 높게 잡아주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노래가 엉망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하마터면 좋은 날 나 혼자 울컥 해서 질질 울뻔 했던 위기를 웃으며 넘겼으니 결과적으로 다 좋았다.

간만에 높은 구두를 신어서 그러나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무사히 행사를 마친 다음날의 피로감은 꽤나 묵직하다. 어쨌든 다 끝났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또 10년 맘 놓고 살 수 있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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