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10년

투덜일기 2009. 12. 15. 21:38

중고차 두 대를 거처 지금 타고 다니는 차를 <새것>으로 갖게 된 해는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처음 새차를 인도 받았을 때 공식 차주이자 물주였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한 5년 타다가 다음 차는 니 돈으로 더 좋은 거 사라." "5년은 무슨! 10년 넘게 탈 거야!"라고 장담하던 나의 말은 어느샌가 "폐차할 때까지 탈 거야!"로 바뀌었고, 연식이 오래 되어 중고값이 팍팍 떨어지고는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차는 아직도 내게 새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간 <미니쿠퍼>에 눈이 멀어 인세로 대박나면 무슨 색으로 살까 실없는 로망을 품기도 했지만, 막상 미니쿠퍼를 살 돈이 생겼더라도 타던 차를 처분하는 게 아까워서 선뜻 저지르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도 잘 안다.
9년간 꼬박 나홀로 운전해 완전히 나에게 길들여져 있고,  범퍼나 펜더가 살짝 까져서 도색을 다시한 것 말고는 큰 사고도 없었으며 사자마자 공부한답시고 처음 3년 가까이 거의 세워두다시피하는 바람에 9년 넘게 탔건만 마일리지도 놀랍도록 적다. 사실 차는 적당히 몰아줘야지 만날 세워두면 더 쉽게 <썩어> 버린다는 것이 정설인데, 차에 대해서 완전 무지한 덕분에 오히려 수시로 동네 입구에 있는 카센터 아저씨한테 조언을 구했으므로 상태가 별로 나빠지진 않았다고 믿는다.
작년 말 미션오일과 부동액과 뒤쪽 머플러를 갈면서 동네 카센터 아저씨는 이제 슬슬 이것저것 손 볼 데가 많이 생겨날 나이라고 말했다. 연식만 오래 됐지 마일리지가 젊은 덕분이었다. 헌데도 올해 녀석은 멀쩡히 돌아다녔고, 1년 넘게 수리해야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허구한날 오며가며 카센터 아저씨한테 눈인사만 받는 게 민망할 정도로.

헌데 드디어 엔진오일을 갈아야 할 때가 되었으므로 1년만에 나는 다시 자동차 점검을 부탁했다. 과거 중고차 몰던 시절엔 아는 사람한테 넘겨받은 차들이라 그리 오래된 게 아닌 데도 강남대로 한 복판이나 한강대교 위에서 차가 퍼져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 10년 사이엔 그런 경험이 없다. 처음부터 내가 길들였기 때문일까? 어쩐지 망가지기 전에 미리 바꾸는 게 아까운 것 같아도, 나 같은 자동차 문외한은 그저 미리미리 전문가에게 점검해서 손봐달라고 하는 게 최고다. 카센터만 정직한 곳으로 만난다면. ^^;
사실 동네 이웃이기도 했던 기존의 카센터 사장님이 노안을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전격적으로 카센터를 넘겼을 때 나는 허거걱 난감했다. 다이어리도 안 쓰는 게으른 내가 차계부 따위를 쓸 리는 없고, 그 아저씨가 내 대신 컴퓨터에 모든 기록을 저장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내 차를 보며 바퀴에 바람 좀 빠진 것 같으면 불러 세워 넣어주고 엔진 오일 갈 때 됐다고 알려주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새로운 카센터 아저씨도 그렇게 나와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물론 예전 사장님이 아직도 동네에 살고 계셔 수시로 드나드는 걸 보면, 모든 고객 기록까지 다 넘겨받은 듯했지만, 웬만해선 그냥 더 타라고 권하던 그 아저씨와 달리 이번 주인은 공격적으로 장사를 하려 들면 어쩌나 염려스러웠던 것.

아니나 다를까 확실히 이번 카센터 아저씨는 이전 분과 스타일이 달랐다. 잔금이 가기 시작한 타이어 두개도 가는 게 좋겠고, 3년 지난 배터리도 가는 게 좋겠고, 쇼바 상태가 어쩌고, 고무로 된 엔진 어쩌고 링크도 금이 갔다며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하고 견적서를 내고.... +_+
물론 당장 바꿀지 좀 더 타다가 바꿀지는 어디까지나 내 결정이었고,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한꺼번에 거금을 들여 10년 다된 차를 손보려니 왜 이리 아까운 기분이 드는지 원. 차를 사자마자 지금껏 아직도 바꿀까 말까 고민 중인 카오디오는 매번 <그냥 말자> 쪽으로 결론이 나는데, 확실히 운전과 직접 관련된 부품의 노후에 대해서는 약간의 고민 끝에 늘 손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된다. 처음엔 퍼뜩 '이 아저씨 카센터 인수하고 나서 봉 잡았다 생각하고 확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앞에서 부품가게와 통화를 하며 몇십원짜리 단위까지 부품가격과 자기 공임을 하나하나 다 공개하는데야 (물론 이미 중간에 <야로>가 개입됐을 수도 있겠지만!) 더 의심을 키워봤자 뭐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맘만 먹으면 나도 부품이랑 공임 가격 쯤이야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도 금세 알 수 있을 텐데...

어쨌거나 이번에 거금을 들여 일곱군데도 넘게 손을 보았으니 10주년인 내년에도 별탈없이 일년동안 잘 굴러갈 것이라 여기며 그리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자동차는 오래 타면 탈수록 팔 때 손해라는 말도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중고차값 따져가며 자꾸 팔아 새차를 사서 몰 게 아니라면, 남들이 뭐라든 10년, 20년 계속 타는 게 뭐 어떤가. 아주 오래된 차는 사고 나면 수리비 대신 폐차비만 준다고 억울해하는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이 추세라면 난 정말로 이 차를 폐차할 때까지 앞으로도 최소한 10년은 더 탈 수 있을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자동차 10년 타기 아주 쉽구만 다들 왜 그리도 새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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