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0.06.08 월드컵 안 볼 권리 17
  2. 2010.06.04 왜 키울까 18
  3. 2010.05.28 세금 6
  4. 2010.05.19 이것저것 19
  5. 2010.05.18 투덜이 시궁창에 빠진 날 7
  6. 2010.05.16 세탁소 쌈닭 13
  7. 2010.05.13 다시 미워하기 13
  8. 2010.05.07 집에 왔다 8
  9. 2010.04.27 또 새삼 4
  10. 2010.04.18 소원을 말해봐 5

4년에 한번씩 이맘때가 오기를 기다린 사람들이 많다지만, 나는 4년에 한번씩 이맘때가 지겹다. '누구나' 월드컵에 '당연히' 열광하고 즐겨야 한다는 논리의 근거는 대체 무엇인지? 축구를 좋아하고 특히 국가 대항전은 더욱 좋아하고, 한국선수들 이외에도 현란한 발기술과 전술을 선보이는 전 세계 축구선수들의 기량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두근 설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열정이 '보편적'이므로 모두들 그 열정의 물결에 휩쓸려야만 '정상'인 듯 몰고가는 상황들이 나는 짜증스럽다.

이미 광고는 죄다 붉은 물결로 도배가 되었고, 웬만한 오락프로그램도 월드컵 특집을 선보일 기세다. SBS가 독점중계권을 따내는 바람에 국민의 시청권이 침해되었다고 난리인데, 막대한 돈을 들여 다시 큰 돈 벌어보려는 꼼수를 쓰는 SBS는 내가 봐도 얄밉긴 하지만 월드컵 시즌마다 나 같은 월드컵냉소분자의 시청권은 늘 침해되고 무시되지 않았나 말이다. 타 방송국에서 소송까지 제기하며 중계권 다툼을 벌이는 모양인데, 솔직히 나는 월드컵 기간에 똑같은 경기를 앵커와 해설자만 바꾸어 틀어주는 걸 참아내느니 독점권 때문에 다른 방송에선 정규 프로그램을 틀어줄 수밖에 없을 요번 상황이 오히려 반갑다. 이런 나한테 대다수의 월드컵 팬들이 욕을 해대든 말든, 소수자인 내 의견은 그렇다는 뜻이다.

어제는 외출에서 돌아오다 차에 기름을 넣었는데, 주유를 끝낸 주유원이 대뜸 나에게 외쳤다. "화이팅입니다!"
난 당연히 그 말을 못알아듣고, 뭔가 더 볼 일이 남았나 싶어 되물었다. "네?" 
알고보니 대한민국 화이팅이라는 말이란다. -_-;; 잠시 그도 나도 뻘쭘해졌음은 물론이다. 얼른 창문을 올리고 주유소를 빠져나오며 문득 궁금했다. 월드컵을 오매불망 기다려온 붉은악마라면 주유원과 함께 '대~한민국!" 구호와 함께 그 유명한  박수도 치지 않았을까 하고.

생기는 것도 없이 그저 열정만으로 월드컵 응원을 위해 며칠 밤을 새고 봉사하고 즐기는 축구팬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뻘건 티셔츠 맞춰입고 길바닥에서 길길이 뛰며 환호하는 길거리 응원 따위에 휩쓸리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오죽하면 2002년에도 연구실에서 공부하다 학교 노천극장에서 들려오는 왁왁대는 함성이 시끄러워 짜증내며 집에 돌아왔을까. 이탈리아 전을 하고 있었던가, 길거리까지 한산하고 오래 기다려 도착한 버스엔 손님이 단 한명도 없어 학교에서 우리집까지 거의 논스톱으로 오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의 그런 집단적인 행동과 반응이 섬뜩하니 무서웠다.

8년 전엔 월드컵에 관심 없고, 5시간씩 화장실 참아가며 길바닥에서 탈진할 때까지 거리응원을 하는 아이들을 미쳤다고 여기는 나의 태도가 거의 돌맞을 수준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요샌 드물게나마 나와 같은 의견을 공공연히 토로하는 이들도 있고, 또 월드컵 안본다고 해도 정신나간 사람 취급하는 건 아닌 인식이 조금씩이나마 자리를 잡는 듯하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주제든 자기와 의견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 다른 의견이 극소수라는 이유로 '이상하다, 유별나다, 비정상이다'라고 손가락질하는 대신에 흔쾌히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선선한 태도와 아량이 아직은 까마득히 먼 집단주의 사회이긴 해도, 티나게 욕하지는 않는 예의를 갖춰가고 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이왕이면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 많은 이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앞으로 몇주간 (월드컵이 언제 끝나더라?) 개인적으로는 월드컵을 안 볼 수 있는 소중한 나의 권리가 얼마나 지켜질지 그걸 더 열심히 관찰할 작정이다. 온 나라가 시끄러울 터이니 집안에서 조용히. -_-;
Posted by 입때
,

왜 키울까

투덜일기 2010. 6. 4. 14:54

제가 이웃들간 불화의 주인공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멍청한 놈이 모르고 있다는 데 7만원도 걸 수 있다!) 아래층 똥개(잡종견이라고 썼다가 어쩐지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은 어감이 들어 배알이 틀리는 바람에 바꿨다. 역시 한글이 좋은것이로다)의 목청은 요즘도 나날이 커져 밤중에 마음의 준비 없이 개짖는 소리와 맞닥뜨렸다가는 기절초풍할 수준에 도달했다.

<개가 짖으라고 있는 것이지 안 짖으면 그게 개냐>는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의 궤변은 그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들을 수가 있었기에 (물론 나한테 직접 한 얘기는 아니다.) 이웃간의 긴장감이 완전 살얼음판이라, 개주인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는 아예 개를 집안에 들여놓기도 한다. 어제도 종일 개짖는 소리가 없길래 집안에 들여놓는 날인 줄 알고 외출에서 돌아오다 커렁커렁 짖어대는 소리에 발목를 삐끗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와락 화가 치밀어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동시에 아래층 오른쪽 집과 옆집 2층에서 동시에 내가 하려던 개에 관한 욕설이 터져나왔고 나는 혹시나 쌈박질에 휘말릴까 두려워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라왔다. 다행히 내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몇 초 안에 개짖는 소리가 잦아들었으므로 또 한번의 동네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짖는 소리도 스트레스지만 이제는 그 소리로 인한 이웃간의 불화 또한 나에겐 스트레스다. 처음엔 내 대신 이웃에서 불만을 토로하면 금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를 집안에서 키우든지, 목청수술을 시키든지, 다른데서 키우라고 주어버리든지, 이 세 가지가 내가 생각한 가능성의 경우 수였고 이왕이면 맨 마지막 옵션이 선택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멍청한 똥개마저도 어여쁘다 여기고 있는 정민공주의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아래층 개주인들은 다른 방법을 대안으로 선택할 것이란다(아래층 아저씨는 자주 우리집에 들락거리는 공주가 여기 상주하는 줄 아는지, 심부름 가는 아이를 붙들고 사연을 전했단다). 이름하여 전기충격 목줄? 개가 짖으면 진동으로 목줄이 조여져 짖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라던데 정말로 그런 게 있나? +_+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또 한번 기가 막혔다. 그런 목줄의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층 개주인은 정말로 그 똥개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키우는 걸까? 물론 개의 성대를 잘라내 짖는 소리를 줄이는 것도 비인간(비동물?)적인 방법이겠지만, 짖을 때마다 전기고문을 받듯이 충격을 받아야 하는 개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주인이라면 개를 키울 자격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는 뜻이다. 그런 목줄이 상품으로 나와 있다는 건 그만큼 수요도 있다는 뜻이니, 개가 받는 충격의 정도가 겪을만한 수준이라 여길 순 있겠지만 애완동물을 싫어하는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정말로 크게 키워 잡아먹을 심산이 아니라면야, 아무리 훈련목적이라도 예뻐서 데리고 사는 개에게 어떻게 전기충격기를 목에 매달 생각을 하는지! 그렇게 해서라도 꼭 개를 키워야 하는 것인지!

내 주변의 개들이 죄다 수난기인지, 조카네서 키우는 파랑이도 퇴출위기에 놓여 있다. 그 녀석은 정말로 식구들의 애정을 꽤나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배변 교육이 제대로 안된 탓에 식구들 침대마다 죄다 돌아가며 한두번 이상 똥오줌을 싸놓았단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걔가 스트레스를 받나보다, 애정 결핍인가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법 똑똑해보이는 녀석의 교육을 제대로 시켜볼 것을 당부했었지만 조카네도 거의 포기단계다. 정말로 온종일 홀로 애정을 쏟으며 다시 배변훈련을 시켜줄 주인에게나 가면 모를까, 장난꾸러니 사내아이까지 있고 다들 바빠 집을 많이 비워야 하는 조카네선 역부족이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하기야 아무리 개가 예뻐도 며칠만에 한번씩 돌아가며 온 식구들의 침대 시트를 빨아대야 한다면 곤란하겠지.

사실 온전히 파랑이를 예뻐하는 사람은 올케와 정민이뿐이고(정민이도 최근엔 무관심하다고;;), 두 남자는 애완견을 장난감이나 스트레스 해소대상으로 여기는 징후가 포착돼 내가 잔소리를 한 적도 있다. 나야 애완동물을 영원히 키울 생각도 없고 죽을 때까지 동물 혐오증이 사라질 기미도 없지만, 최소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정성을 다해' 키워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생이나 지환이가 파랑이를 예뻐하는 방식은 파랑이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귀찮고 괴롭고 성가신 행동들로 보였고, 그런 부분들이 파랑이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해 배변문제를 일으켰을지 모른다는 게 나의 짐작이다. 애정결핍이나 귀찮음에 대한 일종의 복수로. ^^ (근데 그건 내 생각이고, 원래 주인한테서 떨려난 이유도 배변습관이 잘못됐기 때문일 거라고 동생네는 주장하고 있다. 처음 와서부터 사방에 실수를 해댔다니까 뭐;;;)

동생네의 경우 어린 지환이는 애완견을 장난감 수준으로 생각했던 약간의 오류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처음부터 네 식구가 온 마음으로 개를 키우고 싶어했고 그 열망을 현실로 이룬 집이었다. 정민이는 특히나 아기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했고, 미혼때 애완견을 키운 적이 있는 올케도 반려동물을 두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와 집안 분위기에 좋을 것이라고 못마땅해 하는 나를 설득하려 했으며, 내가 반대를 하든 말든 개를 들이는 일을 저질렀었다. 그런데도 일년도 안 돼 애완견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파랑이가 좀 더 똘똘해 배변에 아무 문제가 없는 개였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아이 둘 키우기도 벅찬 주부가 애완견까지 도맡아 키우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을 테고 결론적으로는 섣불리 애완견을 들인 동생네가 경솔했다는 의미다. 경솔한 인간의 결정으로 제일 불쌍해진 건 물론 또 새주인을 만나 다시 적응과정을 거쳐야하는 파랑이고!

사람 마음도 모르는데 내가 개의 마음까지 간파할 리는 없으니 억측은 이쯤에서 관두더라도, 암튼 내 주변의 개 두 마리는 현재의 주인을 떠나야 행복할 것 같다. 걸핏하면 짖어대는 아래층 똥개가 전기충격 목줄로 얼마나 효과를 볼지 그 결과와 상관없이, 공동주택에서 그것도 마당에 개를 키운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겐 짖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잘못도 다 인간에게 있는데 (똥개 머리가 너무 나쁜 이유도 있겠지만;;) 개를 괴롭히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선택된다는 건 잔혹해 보인다. 또한 파랑이도 좁은 베란다에 갇혀살지 않으려면 더 좋은 주인을 만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앞날이 편할 것이다. 말썽쟁이 개도 주인을 잘 만나면 개과천선한다니 파랑이도 미모를 무기로 어서 좋은 주인이 나타나기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손해보는 건 늘 죄없는 짐승들인 것 같아 괜히 내가 다 화난다. 이럴 걸 도대체 왜들 키우느냐고!
Posted by 입때
,

세금

투덜일기 2010. 5. 28. 16:27

어느덧 1년이 또 지나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라는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작년 신고할 땐 2007년에 비해 2008년 수입액이 절반 밖에 안되는데도 단순경비율이 확 줄어들어 돌려받는 세금이 얼마 안 돼 화가 나더니, 올해 신고서에 적힌 2009년 수입액은 눈물날 만큼 적어 적용되는 단순경비율이 거의 배로 늘어난 덕분에 원전징수세로 뗀 세금 전액을 돌려받게 됐다. 그마저도 얼마 안되긴 하지만 역시나 인간지사새옹지마다. 세금 환급되면 그 돈으로 확~ 나를 위한 선물을 질러야지. ㅠㅠ 골빠지게 일해서 내가 번돈 다시 돌려받는 것 뿐인데도 세금환급금이 선물처럼 여겨지는 건 늘 뜯기고만 산 노동자의 습관 탓인가.
Posted by 입때
,

이것저것

투덜일기 2010. 5. 19. 21:21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아카시아꽃이 다 피었더라. 실로 간만에 엄마 모시고 밤산책 나갔다가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꽃보다 향기를 먼저 느끼고 깜짝 놀랐다. 낮에 외출할 때도 그 아래를 지나쳤는데 왜 몰랐을까. 어쨌든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라도 올해의 아카시아는 예년보다 늦게 피었을 거라고 짐작 중. 작년엔 5월 9일에 피었다고 적어놨던데, 확실히 많이 늦긴 했나 보다.

요즘 어딜 가봐도 길을 파헤쳐놓아 짜증이 복받치던데, 지난번 자전거 타러 나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홍제천변 일부가 폭탄 맞은 꼴로 뒤집혀 있었다. 지방선거용 생색인지, 인계 전에 예산 써버리기 작전인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언제나 공사중이고 누덕누덕 기워대는 서울 꼬락서니는 좀 그만 보고 싶다. 해외도주하다 붙잡힌 군수만큼은 아니지만 이 동네 구청장도 엄청난 뇌물수수로 구속된지 오래라 부구청장 체제로 운영중이란다. 다음 구청장은 부디 쓸데 없는 삽질에 힘쓰지 않는 사람이 뽑히길...

아래층 똥개의 짖기 횡포는 이제 아주 극에 달했고 나의 분노와 앙심도 최대치에 도달하는 중이다. 다른 이웃의 불만도 당연히 고조된 듯 초저녁엔 우리 마당에 면해 있는 바로 옆집 아저씨와 아래층 개주인 사이에 언성이 조금 높아지기까지 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는 내가 섣불리 설득할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개 문제를 지적하는 옆집 아저씨에게 변명이랍시고 한다는 소리가 글쎄, 개가 짖으라고 있는 거지 그럼 안짖는 개를 뭐하러 키우냐고 항변하더라. -_-;; 조금 전 산책 마치고 돌아온 모녀에게 미친듯이 짖어대는 놈을 노려보다, 문득 나는 살의를 느끼고 실질적인 방법까지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상한 음식을 먹여서 병나게 만들까, 아니면 어디서든 독약을 구해 몰래 밥에 타먹일까, 아니면 줄을 끊어 멀리 쫓아보낼까... 나란 인간이 이렇게 악독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하지만 나쁜 건 분명 아래층 똥개가 아니라 이런 공간에서 시끄러운 똥개를 키우는 아래층 개주인들이다.

이래저래 이십여년 간 살아온 이 동네에 정이 떨어져서 어디든 살기 좋은 새 동네로 이사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이왕이면 제주도 같은 데로. ㅠ.ㅠ 친구 동생은 제주도가 좋아서 대학원을 제주대학에서 다니고 있다는데, 바보같이 난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집 가까운 학교 생각만 했지, 제주도로 공부하러 갈 생각은 꿈조차 꾼 적 없는 내가 한탄스러웠다. 여러가지 이유로 서울을 떠나선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참 오래 했는데, 이젠 여기를 뜰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더 많은 부추김과 용기가 필요한 때!
Posted by 입때
,
문자 그대로 시궁창에 빠진 건 아니지만 빠진 거나 다름 없다.
조금 전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조카 배웅하러 버스정류장에 나가 버스를 기다리며 둘이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미친듯이 달려오던 작은 트럭 하나가 도로에 고여 있던 구정물을 나에게 끼얹고는 그대로 달아났다. ㅠ.ㅠ
비오는 날 인도로 물 튀기는 자동차야 가끔 있는 법이라 대강은 예상하고 우산으로 가로막은 적 있지만
우산을 내려 가릴 사이도 없이 빠른 속도로 달려와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궁창물을 끼얹고 가는 차는 살다살다 처음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온몸으로 구정물을 막는 바람에 정민공주는 무사했다는 것 하나.

너무 놀라고 기막혀서 꺅 비명만 내질렀을 뿐, 빌어먹을 트럭의 번호판을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놈이 속도를 늦췄더라도 안경까지 구정물로 뿌얘졌으니 제대로 분간이나 할 수 있었을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비오는 날 행인에게 물 튀기는 건 엄연히 범법행위인데 현행범으로 잡지 못한 게 죽도록 안타깝다! 바로 횡단보도 앞이라 운이 좋았더라면 신호등에 걸린 놈의 앞길을 막아서서 사과와 함께 세탁비를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실제로 십수년 전 장마철에 회사 동료들과 점심먹으러 가다 지나가는 차가 튀긴 흙탕물 뒤집어 쓰고 세탁비 받은 적 있다)

머리칼에서 구정물이 뚝뚝 떨어지고, 웃도리 아랫도리 할 것 없이 흠씬 젖어 신발 속에도 물이 찔꺽거리는데,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고 기가 막혀서 길바닥에 선 것도 잊은 채 막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래도 의연한 척 조카를 버스에 태워 보낸 다음 징징거리며 집에 올라오자마자 빡빡 씻었는데도 어쩐지 온 세상의 더러움과 먼지와 병균이 고여있었을 것 같은 도로의 시궁창물 때문에 조만간 피부라도 부풀어오를 것 같은 불쾌감이 사라지질 않는다.

시궁창에 빠졌다가 기어나온 것 같은 행색의 옷은 세탁기에 돌리는 중이고, 운동화도 빨아 엎어놓았는데 생각은 자꾸만 그 소형트럭으로 향한다. 알고 튀겼든 모르고 튀겼든, 비오는 날 버스정류장 앞을 전속력으로 지나가는 만행을 저지른 그 놈에게 저주 있으라! 앞으로 오만년간 하는 일마다 재수 없을지어다! 다음번 장대비 오는 날 똑같이 시궁창물에 빠질 지어다! ㅠ.ㅠ 그래도 마음이 안풀린다.....
Posted by 입때
,

세탁소 쌈닭

투덜일기 2010. 5. 16. 14:55

이 동네로 이사온 뒤 20년 넘게 단골로 다니던 세탁소를 등지게 된 건 작년이었다. 원래 세탁소 주인 아저씨가 말이 워낙 많고 수다스러워서 나로선 상대하기 좀 짜증났지만 세탁이나 수선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끔 좁아터진 옷장 대신 철지난 옷을 대신 맡아주는 장기 보관소 역할도 오래 해왔고(봄에 겨울 옷 맡겨놓고 잊고 있다가 날씨 추워지면 찾아오는 식) 세탁물 다 되면 알아서 배달도 해주었으므로 작년의 사건만 아니었다면 단골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사건은 왕비마마의 바지 허리를 줄이는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재작년에 심하게 몸이 불어 바지를 새로 사야했던 왕비마마는 1년뒤 허리가 원래 사이즈로 되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바지를 줄여 입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나는 우선 왕비마마 바지 한벌을 세탁소에 맡기고는 허리를 1인치만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돈을 주고 찾아온 바지를 입어본 엄마는 바지를 덜 줄였나 아직도 허리가 크다고 불평을 했다. 잘 맞는 바지 허리폭과 맞춰보고 1인치 줄이기를 결정한 터라 그 바지에 대보니 정말로 그대로였다. 그럼 대체 어디를 줄이고 수선비를 받은 건가 살펴본 나는 기막히게도 바지 단을 1인치 잘라놓은 걸 발견했다.

나는 즉각 세탁소로 가서 바지 허리를 줄여달랬더니 왜 단을 잘랐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가뜩이나 말 많은 세탁소 아저씨는 펄쩍 뛰며 속사포처럼 내가 바지단 줄여달랬지 언제 허리 줄여달라고 했느냐며 나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웠다. 기.가.막.혀.서.원. 애당초 내가 엄마 바지를 내밀며 허리를 줄여달라고 했을 때, 그 수다쟁이 아저씨가 묵묵히 그러마고 일감을 받았을 리 만무했다. "바지 허리를 1인치나 줄이는 걸 보니 어머니가 살이 빠지셨나 보네. 운동이라도 하셨나 왜 살이 빠지셨을까, 하기야 저 아래 개천에 산책로 참 잘 만들어 놨죠? 나도 시간 나는대로 개천가서 운동하는데 왜 살이 안빠지나 몰라... 아가씨도 거기 가서 운동 좀 해요? 운동기구 잘 많들어 놨던데.....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서 계속 말을 시키는 바람에 난 한참이나 귀를 닫고 있다가 마지막에 얼마인지 수선비만 묻고 돌아왔던 터였다.
그래놓고 내가 바지단을 줄여달라고 했다니! 내가 저런 이야기까지 하지 않았으냐며 정황을 설명해도 세탁소 아저씨는 막무가내로 내 잘못임을 주장했다.

다음날 득달같이 다시 수선한 엄마 바지를 배달온 아저씨는 자기는 절대로 잘못 듣지 않았으며 분명히 따님이 바지단을 줄여달라고 잘못 말을 했기 때문에 두번이나 수선을 했지만, 단골이고 하니까 수선비는 한번만 받겠다고 잔뜩 생색을 내며 거의 20분이나 떠들다가 돌아갔다고 했다. 마침 외출을 해 집에 없었던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따발총처럼 쏟아대는 아저씨의 수다와 주장에 엄마마저도 "혹시 니가 잘못 말했을 수도 있잖아..."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아무리 내 정신머리가 없을망정 허리 줄이러 가서 단을 줄여달라고 한단 말인가! 그럼 엄마 살빠졌나 보다는 얘기는 뭐고, 개천변에서 운동하는 얘기는 왜 나왔느냐고!

세탁물 맡기러 갈 때마다, 그리고 세탁물을 배달 올 때마다 뭐든 순순히 넘어가는 일 없이 시시콜콜 오만가지 이야기를 죄다 끌어붙여 수다를 떨어대며 내 시간을 축내온 S세탁소 아저씨에 대한 인내심은 그날로 끝장이었다. 자기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으니 어쨌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비쳤다면 나도 그냥 넘어갔겠지만, 그 아저씨는 자기 세탁인생 30년을 운운하며 그간 그런 터무니 없는 실수는 절대 한 적 없다고, 전적으로 내가 단을 줄여달라고 잘못 말했기 때문에 단을 줄인 것 뿐이라고 우기며, 나를 정신나간년으로 만드는데야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마침 작년에 원래 있던 S세탁소 건너편에 새로이 세탁소가 생겼던 터라 나로선 아쉬울 것도 전혀 없었다. 20년 단골 하나 잃어서 아쉬운 건 세탁소 아저씨 쪽일 거라 여기며(하기야 그쪽도 별로 아쉬울 게 없을 지도...) 보란 듯이 새 세탁소를 이용하고 있었다. 헌데 동네 세탁소는 세탁이 전문이고 원래 수선 쪽은 약하기 마련임을 감안하더라도 새로운 ㅎ세탁소는 수선솜씨가 너무 형편 없는 것이 문제였다. 단신의 비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바지를 살 때마다 수선해서 입어야 하는 것인데, 백화점 같은 데서야 옷을 산 데서 바로 수선을 해주니 문제 없지만 충동구매로 사들인 바지 같은 경우 이 세탁소에 맡기면 내 성에 안차게 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재봉선이 비뚤어진 것도 불만이지만 가장 큰 불만은 실 색깔! 수선도 하는 세탁소라면 최대한 다양한 재봉실을 갖춰놓아야 정석일 텐데 면바지든 청바지든 어쩜 그렇게 엉뚱한 색깔로 박아놓는지.. ㅠ.ㅠ

해서 요번에 산 청바지는 기필코 밑단의 예쁜 물빠짐 모양과 실색깔을 살려두겠다 다짐하며, 백화점 수선집에서 해주는 대로 밑단을 잘라 그대로 올려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해달라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며, 가능한지부터 물었다. 별 말이 없는 과묵한 스타일이라 그나마 시끄럽지 않아 좋았던 세탁소 아저씨는 "밑단을 살려달라는 거 아닙니까?"라고 되물으며 흔쾌히 대답하여, 나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런데 어제 청바지를 찾으러 가보니, 세상에나! 차라리 밑단을 그냥 잘라 접어 박은 거면 실 색깔이 달라도 투박하지나 않을 텐데, 이 아저씨는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건지 청바지 단에 억지로 바이어스를 두르듯 싸박아 놓은 게 아닌가. ㅠ.ㅠ 할 줄 모르면 모른다고나 하지!!!!

바지 완전히 버려놨다고 울상을 하며 경악하던 나는 집에 올라와서도 도저히 울화를 그냥 참을 수가 없어서 (아까운 내 청바지! 그게 얼마짜린데!) 다시 세탁소로 내려가 다른 수선집에 맡겨 살려보게 잘라버린 밑단이라도 내놓으라며, 화를 냈다. 청바지 잘라 밑단 올려붙이는 거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안다고 그랬느냐고. 그랬더니 이 아저씨 완전 적반하장, 자긴 아무 잘못이 없단다. 밑단 살려달래서 살려놨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게다가 잘라낸 청바지 밑단도 버리고 없단다. 어제는 토요일. 우리 동네 쓰레기 배출일은 화/목/일. 내가 그걸 놓칠 리 없으니 버렸을 리 없다고 따지자, 밑단 박음을 풀러서 그걸 잘라다가 씌워 박은 거라고 실토했다. 악! ㅠ.ㅠ

애당초 샘플 청바지를 가지고 내려가서 실제로 보여주며 설명을 했어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선하는 세탁소에서 어떻게 청바지 밑단 줄이는 방법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예전 세탁소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이 아저씨 역시 미안하단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전적으로 내 잘못(그렇게 잘났으면 옷 산데 가서 수선받지 왜 세탁소에 맡기느냐! 청바지 자르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다르다고 따지냐! 등등)이라며 계속 자기 잘못 없음을 주장하더니 막판엔 억울하면 손해배상청구라도 하란다. +_+ 기.가.막.혀.서.원.

결국 동네 세탁소 두 군데서 정신나간 쌈닭으로 활약하고 열만 받았다는 얘기다. 아주 못입게 된 건 아니지만 심혈을 기울여 오래 고른 청바지를 (포인트랑 쿠폰 쓰느라고 백화점에 가서 입어보고 스타일번호 적어다가 온라인으로 샀단 말이닷! ㅠㅠ) 망쳤다는 상심에 어젠 너무 열이 받아 아무 생각도 안들었는데, 오늘 생각해보니 궁금한 게 생겼다. 우리 동네 세탁소 아저씨들만 우연의 일치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세탁업 특성상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 배상액이 커질 수 있어 전체적으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업계의 관행일까? 흠... 아마도 내가 이래서 자꾸 수선집에 보낼 일을 손수 바느질하고 앉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번 일을 계기로 옷 수선은 내가 할 수 없는 건 반드시 전문 수선집에 맡길 작정이고, 세탁물은 길 건너편 옆동네 세탁소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이 동네 (거의) 토박이로서 동네 세탁소 두 아저씨들 실력없고 이상하다고 소문내고 다녀서 복수할 거닷!


Posted by 입때
,

다시 미워하기

투덜일기 2010. 5. 13. 20:42

아래층 잡종견 곰돌이 이야기다. 나를 보고도 안짖은 건 지난번 포스팅한 날 딱 한번뿐이었고, 지금껏 몇달간 놈은 지네 식구들 이외의 사람들에겐 어김없이 목청껏 짖어대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상대에게 달려들며 짖는 게 아니라 개집 안으로 숨어들면서 짖는 걸 보면 저도 무서워서 그런다는 뜻인데 똥개답게 하루하루 몸집이 커지면서 덩달아 목청도 커지고 있어 소음 스트레스가 내 인내심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게다가 또 날이 더워지면서 고약한 개냄새도 사방에 풍기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짖어대는 개에 대한 공포증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놈과 친해져보겠다고 그간 '두번'이나 놈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했었다. 훈제오리 껍데기를 일부러 오려내서 정민이와 함께 내려가 살살 달래며 앞으로 친해지자고 화해까지 청했는데, 멍청한 잡종견 자식은 먹을 것만 낼름낼름 먹고 나더니 똑같이 짖어댔다. 개 주인 가족들은 놈이 한 건물에 사는 위아래층 사람들에게도 미친듯이 짖어대는 걸 볼 때마다 짖지 말라고 혼을 내며 교육을 시키는 듯하지만, 멍청한 놈은 몇달째 통 교육의 효과가 없다.

갑자기 날이 더워진 며칠 전 심지어 개주인이 개줄을 풀어놓는 바람에 녀석이 온 마당에 똥을 싸놓고는 내가 오도가도 못하게 문앞에서 짖어댄 사건을 겪자 드디어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쳤고, 아무래도 동사무소나 경찰서에 개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신고라도 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돌아섰다. 다가구 주택에서 이웃의 동의도 없이 마당에 개를 내놓고 기르는 건 안될 노릇 아닌가 말이다! 물론 앞뒤 안 가리고 당장 신고부터 하지 못한 이유는 첫째가 나의 우유부단함이고, 둘째는 세입자를 괄세하는 못된 이웃이라고 손가락질 받을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지난 주말에 두 동생네가 대거 다녀갔으니 거의 종일 그 똥개가 미친듯이 짖어댔을 건 뻔한 일. 틈틈이 개주인이 나와서 곰돌이를 만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급기야 나는 "저놈의 똥개 새끼, 또 한번만 심하게 짖으면 정말 확 경찰서에 신고해 버릴거야!"라는 말을 조카들 앞에서 내뱉고야 말았다. 저녁 식사 후 다시 조카들과 우르르 집으로 들어오며 어쩔 수 없이 짖어대는 잡종견과 마주한 순간, 조카가 개주인에게 외쳤다. "또 한번만 짖으면 우리 고모가... (신고해버린대요)!" 올케가 얼른 지환이의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신고해버린대요' 부분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기는 했지만 나는 민망해서 얼른 뛰쳐들어오고 말았다. -_-;;

그날밤 아래층 잡종견은 집안으로 쫓겨들어가 하루를 지내는 듯했고, 나는 더럭 미안한 마음에 속을 끓였다. 신고할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아래층 식구들에게 먼저 개 문제로 당부를 한 다음에 당분간 말미를 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째. 개 냄새가 안나게 좀 더 깨끗이 관리해줄 것.
둘째. 성대수술을 시켜 개소음을 줄여주든지 좀 더 확실한 교육으로 최소한 같은 집 사람들에겐 안 짖게 해줄 것.
이 두 가지가 안지켜진다면 앞으로 늘 창문을 열고 살아야하는 여름에 도저히 견딜 수 없으므로, 공용 마당에 개를 키우는  건 용납 불가능하다고 직접 얘기할 자신은 없고, 글로 적어 아래층 현관문에 붙여놓을 생각이었다. ^^

내가 이런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아래층 곰돌이는 나를 볼 때마다 (두번이나 외출을 했으므로 총 네번이닷!) 무섭게 짖어댔고, 그때마다 내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멍청한 자식. 정말 꼴보기싫어 죽겠다! 계속 이런식이라면 아래층 개주인에게 사전 당부고 자시고 없이 당장 이웃들한테 연판장 돌려서 동사무소에 신고부터 할지 모른다. 아윽~~~!!! 개 싫어!
Posted by 입때
,

집에 왔다

투덜일기 2010. 5. 7. 20:33

거의 1년만인 지난 일요일에 또 병원 들어갔다가 오늘 나왔다. 나 말고 왕비마마 때문에. ^^;
이번 입원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수술공포에 사로잡힌 왕비마마의 변덕에다 병원과 의사의 삽질까지 더해져 수술일정이 연기되질 않나, 입원예정일엔 아예 수술을 취소했다가 또 다시 날짜가 당겨 잡히질 않나... 지난 일요일에 병원들어가기 직전까지도 통 앞일을 알 수가 없더니만, 바로 다음날 수술, 그리고 5일만에 전격 퇴원, 역사상 최단기간에 간병무수리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기간이 짧으니 그간 쌓인 피로도 덜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간밤에 특히 잠을 설치는 바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충 짐정리 해놓고는 단잠에 빠졌다. 원래도 잠자기를 즐기지만 내방에 편히 누워 따뜻하게 자는 잠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깨어나고 싶지가 않을 정도였다. 집 나가면 고생이고 역시나 집이 최고다 싶긴 해도, 집에 돌아온다고 무수리가 해야할 일이야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묵지근한 몸을 일으켜 왕비마마의 저녁 진지를 챙기며 맥이 또 빠졌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질을 시작하니 비로소 정말 집에 왔다는 푸근한 느낌이 든다. 꼼꼼히는 못읽었지만 대강 이웃 블로그도 한바퀴 돌아보니 나머지공부라도 해서 따라잡아야 할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나의 부재가 짧았다는 의미다. 

암튼 무사히 집에 왔다. 기쁘다.
Posted by 입때
,

또 새삼

투덜일기 2010. 4. 27. 15:27
또 새삼 깨달은 거 두 가지.

식물의 이파리는 생각보다 강하다.
너무도 무성해져서 이젠 껴안아 들고 옮기기에도 힘에 부친 화분들의 위치를 다시 옮겼다.
왕비마마 운동하시라고 사들인 실내 싸이클을 TV 정면에 두느라(TV를 볼 땐 반드시 자전거에 앉아 운동 하시라고) 소파를 베란다 창쪽으로 밀었으나, 내가 바랐던 TV보며 운동하기의 효과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비딱하게 옆으로 기대는, 왕비 허리에 안좋은 몹쓸자세만 강화될 뿐이라 소파 및 화분의 위치를 원래대로 돌리고, 싸이클을 베란다쪽으로 놓기로 한 거다.
특히 내가 싫어하는 일(청소, 집안정리, 서랍정리 따위)를 할 땐 누가 말 거는 것도 짜증스러워 엄마를 안방에 가두고는 혼자 낑낑대며 후다닥 청소기를 돌리고 소파, 싸이클, 화분을 배치하고 걸레질까지 쓱싹쓱싹 마쳤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방청소를 하려고 보니 손목이 마구 쓰라리다. 젠장. 양쪽 손목을 얄팍하게 또 베었다. 지난번에 화분 옮길 때도 그랬었는데, 고새 까먹은 탓이다. 초록 이파리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나 싶지만, 선인장도 아닌 것들이 꽤나 날카롭다. 심증이 가는 건 금전수 이파리인데, 만져보면 여리여리한 동전 같은 이파리가 어느 구석으로 내 살을 에는지 참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나는 식물 이파리에 팔목을 벤 여자다. 큭.

뭐든 과하면 안된다.
오늘은 어쩐지 커피를 아주 진하게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원두를 좀 많이 갈아서 꾸역꾸역 비알레띠 브리카에 쑤셔넣고는 힘주어 주전자를 잠갔(다고 생각했)다. 헌데 아무리 기다려도 압력추 올라가며 에스프레소 추출되는 소리가 안들리는 거다. 주전자를 좀 덜 잠갔을 때처럼 옆으로 새어나오는 커피물도 없을 정도...
결국 두배쯤 갈아 넣었던 원두를 쏟아버리고 죄다 닦아낸 뒤에 다시 적정량을 갈아 다시 추출해야 했다. 혼자만의 생각과 논리로는 분명 될 것 같은데, 현실에선 안통하는 것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욕심을 부리고 꼭 실패 후에야 새삼 깨닫는 척을 한다.

어쨌든 오늘은 따끔거리는 손목으로 다른 때와 비슷한 농도의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깨달음이 채 하루도 가기 전에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적어둔다.
Posted by 입때
,

소원을 말해봐

투덜일기 2010. 4. 18. 02:53

주말에 떼로 다니러온 조카네 식구들과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음식점엘 갔는데 막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 찰나, 뒷차로 온 조카들이 뛰어와서 내게 말했다.
"고모, 소원을 말해봐. 우리가 들어줄게."
"진짜? 아무 소원이나 말해도 돼?"
"응. 아무거나 얼른 소원을 말해봐. 우리가 다 들어줄게."
순간적으로 나의 뇌리엔 여러가지 소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일본 절에서도 빌었던 부실한 왕비마마의 건강을 기원할까, 부질없는 인세 대박을 빌어볼까, 여전히 가시지 않은 꿈의 차 미니쿠퍼를 빌어볼까, 한옥집서 사는 로망을 빌어볼까...
"고모, 빨리!"
"알았어. 요번에 나오는 책 대박 나서 미니 쿠퍼 사는 게 고모 소원이야."
그러자 두 녀석은 동시에 내쪽으로 귀를 내밀며 말했다.
"우리가 들어준다고 했지? 잘 들었어. 고모 소원. 킥킥킥."
그러고 나서 녀석들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후렴구를 흥얼거리며 소녀들의 손짓 안무를 흉내냈다.

대체 나는 녀석들에게 뭘 더 바랐던 것일까. 소원을 들어준다는 게 말 그대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에 바보처럼 마음에 구멍이 뻥 뚤리는 것 같은 실망이 스쳤다. 고얀 녀석들. 그래도 고모 놀려먹는 걸 신나하면서 즐거이 내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줄 조카들이 있다는 건 축복이겠지.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