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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1 꿈의 미용실 13
  2. 2010.03.09 머피의 법칙 3
  3. 2010.03.07 노년의 생일 19
  4. 2010.02.26 무지한 눈으로도 6
  5. 2010.02.26 관계. 실망. 단계별 증상
  6. 2010.02.24 병이라면 병 16
  7. 2010.02.18 동화의 배신 22
  8. 2010.02.11 거인의 정원 20
  9. 2010.02.10 기억 7
  10. 2010.02.02 무서운 사람 13

꿈의 미용실

투덜일기 2010. 3. 11. 21:39
스무살 이후 이십년 넘게 미용실을 들락거리며 주워들은 미용사들의 조언에 따라 파마 머리에 대하여 갖게된 나의 상식은 <기본적으로> 두세 달에 한 번은 새로 파마를 해줘야 스타일이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파마의 종류가 스트레이트든, 롤스트레이트든, 디지털파마든, 세팅파마든...
물론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그렇게 자주 파마를 해댈 리는 없다. 짧았던 머리를 좀 길러야겠다 싶으면 앞머리를 집에서 가위로 대충 잘라대며 반년 넘게 버틴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미용실엘 가면 끄트머리에만 남은 파마기와 그간 방치했던 머리칼 상태 때문에 공연히 미용사들한테 주눅이 들었다. 두피가 약하네, 머리칼이 많이 상했네 하면서 값비싼 두피케어나 헤어제품을 강권당하기도 일쑤였고. 

그런데 정석대로 석달만에 찾아간 미용실에서 오늘 그 허망한 상식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같은 반곱슬머리는 굳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할 이유가 없단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굽은 머리칼을 이상하게 뻗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낼 뿐이라 파마 후엔 드라이 하는데 시간과 공만 더 들 뿐이라나. +_+

꿈의 미용실로 등극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동네 미용실에 갔더니만 지난번 내 머리를 만져준 점장님은 없고 아저씨 원장이 대신 머리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석달이 다 돼 지저분하기도 하고 사방으로 머리가 뻗치고 있어 다시 롤스트레이트를 하려 한다는 내 말을 듣더니, 그는 왜 하필 롤스트레이트를 선택했느냐고 되물었다. 곱슬거리는 파마는 베이비펌이니 뭐니 해도 결국 아줌마 파마가 되버린 전적이 있어서 그냥 풍성해보이는 커트머리를 추구하기 위함이라는 내 대답에, 그는 묵묵히 무슨 예술품이라도 빚듯이 오랜 시간 정성들여 머리칼을 자르고 또 자르고 다듬더니만 손질을 다 끝내고 나서 (속으로 나는 파마 하고 나서 다시 잘라야 할 텐데 뭘 이리도 공을 들이나 의아해 하고 있었다) 내게 말했다.
"손님처럼 반곱슬머리인 경우에는 숏커트에 롤스트레이트를 하는 의미가 없어요. 볼륨감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롤스트레이트를 하고 나면 컬이 과해져서 드라이나 손질을 더 정성들여 해야 머리모양이 잡힐 걸요. 지금 머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뒤에서 바람만 쏘인 거잖아요. 제가 보기엔 이 상태가 더 좋아요. 손님이 보시고 굳이 파마를 할지 결정하세요."

헐... 파마하러 왔다는데 롤스트레이트를 하려면 파마하지 말고 그냥 때 되면 커트만 해주라고 조언하는 미용사가 다 있다니! 아마도 지난 20년을 파마 유형으로 나눠본다면 절반은 뽀글이 파마, 나머지 절반은 생머리에 가까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해왔는데 그렇다면 10년간은 쓸데없이 돈과 시간만 낭비했다는 뜻이 아닌가! 학자들마다 이론이 다르듯이 미용사들도 직업적인 철학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지금껏 나 같은 반곱슬 짧은 머리는 굳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이론을 갖고 있는 미용사가 이 세상에 단 한명일 리는 없다. 다만 다른 미용사들은 손님이 원하고 또 자기네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부러 권하기도 하고 해달라는 대로 해줬겠지.

암튼 나는 어벙벙한 상태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40여분만에 머리 손질을 마치고 미용실을 나섰다. 파마값이 드는 대신 가뿐하게 커트 비용만 들었음은 물론이다. 내가 요구했던 머리 모양은 봄이니까 경쾌하고 가벼워보이면서 머리숱이 좀 많아보이는 커트였는데, 딱히 어떤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만하면 결과도 흡족하다.

꿈의 미용실에 대한 조건은
1)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모양으로 커트를 잘 할 것
2) 가격이 적당할것
3)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
4) 과도하게 친절하지 않을 것
5) 시시콜콜 말을 많이 걸지 않을 것
이었는데, 심지어 여기는 원장이 양심적이기까지 하다!

이제 겨우 두번째 방문이므로 정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모양을 잘 연출해내는지는 한번 더 실험해봐야하겠지만, 젠체하지 않고 조근조근 파마 안하고 자르기만 해도 된다는 설명을 해준 원장의 태도로 봐선 이미 점수를 많이 땄다. 하기야 홍대앞 모 미용실도 꿈의 미용실에 가깝다 여기며 몇년간 충성을 바치다 변심한 전적이 있으므로 여기도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저 두고볼밖에. 어쨌거나 나란 인간이 어찌나 단순하고 간사한지, 파마를 했더라도 어차피 내 주머니에서 나갈 돈인데 파마값이 굳은 게 왜 이렇게 공돈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돈도 돈이지만 드물게 사람에게 기분이 좋아진 때문이라고 여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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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투덜일기 2010. 3. 9. 20:38
머피의 법칙은 순전히 심리적인 인상이라던데, 나에겐 아닌 것 같다. 몇달 별러 미루다 세차하면 꼭 다음날 비가 오는 건 날씨를 미리 살피지 않은 본인의 게으름 탓이거나 기상청의 오보라고 쳐도 내가 유례없이 뭘 미리 준비하면 곧이어 비웃을 일이 생긴다.

게으름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라 늘 계절이 한참 지난 뒤에야 옷가지를 정리하는 편이고 심지어 겨울코트를 5월이 돼서야 세탁소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번엔 웬일인지 부지런을 떨어 겨울옷과 부츠를 죄다 치웠더니 날씨 좀 봐라. 몇년 전 3월 1일에도 눈이 온 적 있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첫주가 무사히 지나는 걸 보고 정리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아니었던 거다.

그나마 겨우내 염화칼슘에 쩔은 차는 빨리 세차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계속 세차할만 생각만 들면 날씨가 나빠지길래 아직까지 알거지 몰골로 다니고 있긴 하다. 세차에 관해서는 머피의 법칙 피하려다 다 녹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려나 코트는 하나쯤 다시 꺼내 후둘러 입다가 세탁해도 되겠지만 일일이 종이 구겨넣어 상자에 담아둔 부츠는 다시 꺼내 신을까말까 고민된다. 나흘째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강원도 주민에 비하면야 요 정도는 고민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신기한 머피의 법칙. 난 올해 왜 유난스레 빨리 겨울옷을 치워버렸을까나. 어쩌면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도.

아까 낮에 반짝 해가 났을 때는 옆집 담장 너머로 늘어진 벚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눈이 새하얗게 벌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서 곧 흐드러지게 봄꽃 피겠구나 싶어 마음이 다 푸근했었는데, 매서운 꽃샘추위를 준비하고 있던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코웃음을 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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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생일

투덜일기 2010. 3. 7. 18:13
떠들썩한 환갑잔치를 내가 처음 목격한 것은 스무살 무렵이었다. 당시 수원에 살던 같은 과 친구 하나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더니 난데없이 주말에 시간 되면 밥을 먹으러 오라며 수원의 어느 갈비집을 알려주었다. 터울이 많은 손위 형제들을 둔 막내였던 친구는 부모님이 옛날 분들이라 환갑엔 꼭 동네잔치를 한다고 했다. 내 조부모님의 경우 환갑은 물론이고 칠순도 조촐하게 집에서 가족모임으로 치렀던 터라, 환갑잔치의 실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흔쾌히 그러마고 약속했는데, 그날 목도한 사건이 워낙 인상 깊었던 모양으로 같이 간 친구와 내가 축의금 봉투를 가져갔는지 그냥 입만 가져갔던 건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무슨무슨 가든이었던 수원의 갈비집엔 큼직한 방마다 온통 잔치음식들이 차려져 있고 한 가운데 불판에선 갈비가 익어갔으며 마당으로 연결된 스피커에선 계속 흥겨운 풍악이 흘러나왔다. 결혼한 큰오빠와 큰언니가 낳은 자식들이 친구와 또래일 정도였으므로 잔치상 앞에 앉으신 부모님께 술잔을 올리며 차례로 절을 하던 자손들의 수가 꽤나 많았던 기억이 나고, 식사 후 여흥이 시작되자 춤과 노래가 쉴새없이 이어졌다. 잔치 주인공의 자손들 뿐만 아니라 자손의 친구들도 다들 앞에 나가 술잔을 올리고 축하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인 모양이었지만, 숫기 없는 우리의 난감함을 알아차린 친구는 싫으면 굳이 안해도 된다고 말해주어 어찌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친구 부모님의 환갑이나 칠순에 초대받았던 경험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말로만 듣던 동네 잔치를 처음 경험한 때문인지 나는 그날 온종일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고 순간순간 불편하면서 재미있기도 하고 막판엔 지겹고 곤혹스러웠다.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사회자가 지목하면 무조건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목청껏 고함을 질러야하는 상황도 그렇고 떼로 몰려나와 춤을 추는 모양새도 처음엔 흥겹더니 술판이 무르익으면서는 취객들 때문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었다. 수시로 잔치판에 불려다니느라 우릴 챙겨줄 시간이 별로 없었던 친구는 그제야 지루해하는 우리 태도를 눈치 챘는지, 먼저 가도 된다며 우릴 배웅했다.

잔치집을 나오며 나는 당시에 아직 멀게 느껴지는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염려했던 것 같다. 혹시라도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떠들썩하고 요란한 잔치를 원하면 어쩌나 싶었다. 무엇보다도 구경꾼처럼 모여든 하객들 앞에서 한복을 떨쳐입은 채 무대처럼 마련된 잔칫상 앞에 나아가 술잔과 절을 올린 뒤 나중엔 큰딸이랍시고 노래까지 한자락 불러야 하는 상황을 내 숫기로는 못견딜 듯했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고민해야하는 시기가 닥쳤다.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은 요란한 걸 싫어하시는 분들이었고, 환갑은 청춘이라며 다들 잔치대신 여행을 떠나는 세태도 나를 도왔다. 하지만 30년 넘게 다닌 직장의 정년퇴직과 맞물린 아버지의 환갑을 그냥 멀뚱히 넘길 순 없었다. 평소 생신에도 몇몇 친지들이 모여 <밥>은 먹어왔으니, 날 잡아서 조촐하게 <밥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의견이었다. 외할머니는 우리 아버지가 아무리 마다해도 환갑 기념이라며 맏사위를 위해 고운 한복까지 맞춰 보내셨다.  

환갑 안한다는데 왜 귀찮게 구느냐며 화를 내다시피 했던 아버지는 결국 친가, 처가 가족들이 모여 <간단히 밥을 먹는> 그 자리에 장모님 소원대로 엄마와 나란히 한복을 입고 참석하셨다. 음식점에 미리 부탁해서, 그간 은밀하게 아버지의 옛날 앨범을 뒤져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 사진을 모아 삼남매와 올케들의 영상편지까지 담은 영상물을 틀었던 그날 우리 삼남매와 다른 친척들은 다들 뿌듯해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아버지는 몹시 민망해하셨던 것 같다. 바로 다음해였던 엄마의 환갑은 연달아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엄마의 완고한 고집으로 부부동반 여행으로 대체되었고, 또 10년은 안심해도 좋을 듯했다. 

그런데 오래 걸릴 것만 같던 10년이 어느새 흘러 엄마의 칠순생신을 고민해야 하는 때가 도래했다. 친척분들 모두 환갑은 건너뛰는 분위기여도 칠순에는 다들 모여 맛있는 밥을 먹어왔고, 가뜩이나 홀로 남은 엄마의 칠순 생신은 그냥 넘겨선 안된다는 것이 역시나 집안 어르신들의 의견이었다. "늬 아버지를 봐라. 그렇게 빨리 갈 줄 아무도 몰랐지만 그때 억지로라도 늬 아버지 환갑 안 챙겼으면 어쩔 뻔했니? 니들이 두고두고 마음에 한이 됐을 거다."

아버지 환갑 때도 음식점을 알아보고 친척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초청하는 과정을 내가 주동한 전적이 있었으며, 그땐 부모님 몰래 큰동생이 영상물 만드느라고 사진 고르고 녹화하고 제법 법석을 떨었는데도 즐겁기만 하더니 이번엔 왜 모든 과정이 온전히 스트레스로만 여겨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번에도 주인공이신 왕비마마가 민망하다며 모임 같은 거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버티고 계시긴 하다. 하지만 "남편 앞서 보낸 여자가 무슨 염치로 생일잔치를 하느냐"는 엄마의 자학성 핑계는 용납되기 어려운 발언이다. 친척 어르신들은 엄마가 혼자 남았기 때문에 더더욱 칠순을 그냥 넘기면 안된다는데!

잔치가 아니라 그냥 밥 한끼 먹는 것 뿐이라며 엄마를 계속 달래는 한 편, 두 동생 부부와 의논하여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고 음식을 정하고 참석인원을 확인해 연락을 취하며,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소망이 다시 떠올랐다. 어쭙잖게 니체를 읽고 전혜린을 읽던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왠지 모르게 친구들에게 "딱 예순살까지만 살고 죽겠다"고 장담하고 다녔었다. 생존해 계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과는 상관없이, 단지 나의 노년이 너무도 끔찍하게만 생각됐던 것 같다.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은 최대한 오래 사시는 게 좋겠지만, 나는 홀로 씩씩하게 딱 예순살 까지만 살다가 깨끗하게 죽겠노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그래 어디 두고보자"며 나를 흘겨볼 뿐이었다. 그런데 요번에 엄마 칠순을 준비하며 문득 세월이 흘러 나중에 누가 내 칠순 때문에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도 싫고 칠순이라며 주인공으로 떠밀리는 게 싫어서라도 차라리 <일흔살 되기 전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저도모르게 하고 앉았더라는 뜻이다.

예순살까지 살겠다던 어린 시절의 나는 분명 환갑 잔치 따위는 염두에 둔 적이 없었고 다만 그 이후 노년의 삶이 막연히 구질구질할 것이라 상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칠순 생일의 부담으로 또 다시 내 수명을 재단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되살아나다니. 나란 인간은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엄마의 칠순을 <가족모임> 행사로 치르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 밥먹기 행사 대신 칠순에도 가족여행을 떠나는 집이 있다지만, 울 엄마의 건강으로 보나 시기적으로 보나 그건 실행되기 어려운 대안이다. 어차피 매년 우리끼리 생신밥은 먹어왔으니 그걸 좀 확대시킨 것뿐이라고 여기면 될 일이다. 문제는 부모님 형제가 많아놔서 그 자손들까지 모이면 4, 50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삼남매가 나누어 분담한다고는 해도, 규모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분위기며 음식 맛, 입을 옷까지 시시콜콜 미리 걱정하는 나 같은 소심증 환자에게는 더더욱!

사실 욕을 좀 먹을 각오만 한다면, 친척 어르신들이 아무리 들쑤셔도 엄마 본인의 뜻대로 칠순같은 거 안 챙긴다고 통보한 뒤 시치미 뚝 떼고 그냥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 건강이 좋지 않아 그렇게 되었다는 쓸만한 핑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남들(친척도 남이라고 치면) 눈 의식해서 자식으로서 속물스럽게 생색을 내려는 태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옛날부터 환갑이나 칠순 때 잔치를 여는 목적은 장수를 축하하기 위함도 있지만 자손들이 그 정도 거나하게 잔치를 해줄 수 있을 만큼 번창했음을 자랑하려는 노인들의 허세에서 비롯된 게 아니던가. 해서 일부 노인들은 자식들의 능력이 되든 말든, 잔치 때문에 빚을 지든 말든 남부끄럽지 않게 소리꾼들까지 불러다가 왁자지껄 노는 잔치를 강요한다던데, 울 엄마가 그런 부류의 노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깊이 감사할 일이지만 그냥 조용히 밥 한끼 먹는 것뿐이라고 여기래도 난감해하며 지레 생병을 앓아 속을 썩이는 상황도 녹록치가 않다.

과연 울 엄마의 진짜 속마음은 무얼까. 말로는 모임 안 했으면 좋겠다지만 내심 뿌듯해하며 잔칫날을 기다리고 계시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의지에 반하는 칠순잔치의 억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일흔살 되기 전에 죽어버리겠노라는 생각이 들만큼 회의를 느낀 내 마음처럼 엄마도 정말로 싫은 걸까. 그렇게 싫다는데 연회 예약을 취소하는 대신 엄마에게 그냥 못 이기는 척 따라오라고 말하는 나의 태도는 과연 옳은 것일까. 홧김에 다 확 취소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번씩 드는데, 정말로 그러면 울 엄만 잘했다고 칭찬을 해줄까.

어쨌거나 이젠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한달 넘게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극도로 높인 왕비마마의 칠순 모임이 겨우 엿새 뒤로 다가왔다. 토요일이 후딱 지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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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는 아름답고 눈부시더라. 다들 김연아 칭찬에 입이 마른 터에 나까지 거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고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기분 좋아지는 포스팅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제만해도 <1등만 기억하고 주목하는 더러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최소한 곽민정 경기부터는 관람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알람을 맞춰 놓고도 그냥 누르고 잤다. 민정양, 미안. -_-;

이름 까먹은 그루지야 선수가 넘어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잠을 떨쳐낸 나는 미국의 레이첼 플랫 선수부터 정신을 차리고 경기를 관람했는데 이제 겨우 17살이라 토실토실 젖살이 남아 있는 귀여운 얼굴로 정말 신나게 즐기면서 경기하는 모습이라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안도 미키는 등장과 함께 속이 상했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클레오파트라라지만, 그래도 지난번 시퍼러둥둥한 의상보다는 좀 차분해졌지만, 내가 초록색 옷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지닌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듯 촌스럽게 느껴지는 초록색 의상은 이번에도 안습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사다 마오보다 안도 미키가 더 뛰어난 재능과 노련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좀 넓은 듯한 얼굴과 이목구비도 시원시원 매력이 있고. 헌데 안도 미키는 매번 의상이 꽝이다. 뭘 그리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지 원! 게다가 클레오파트라 때문인지 난데없는 단발머리도 어색하고, 피겨 스케이팅에 완전 무지한 울 엄니가 보시면서 "쟤는 왜 스케이트를 타다 말다 한다니."라고 하실 정도로 연기가 뚝뚝 끊겼다. 보라색 옷 입고 했던 세계 선수권 대회였나 그땐 그나마 좋았었는데!

안도 미키의 안쓰러운 연기 뒤에 본 연아의 모습이야 뭐 다들 아는 바대로 완벽했고 무지한 눈으로 봐도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왕비마마도 "김연아는 진짜 잘하네. 딴애들이랑 확실히 다르다."고 촌평할 정도였다. 연기를 끝내고 눈물을 터뜨린 연아를 보며 나도 질질 울어대자 왕비마마는 상당히 의아해하셨지만, 자기도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는 연아의 말처럼 나도 왜 울었는지는 딱히 잘 모르겠다.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눈물이 난다는데 그런 것이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넘기 어려운 연아의 세계신기록 이후 연기를 펼친 아사다 마오도 그만하면 대단했다. 혹시라도 너무 큰 부담감에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몇번의 실수는 있었어도 훌륭하게 연기를 끝낸 걸 보면 연아도 그렇고 마오도 그렇고 스무살짜리들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림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나쁜 방법이 <예쁘다/안 예쁘다> <멋지다/별로다><마음에 든다/안 든다>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라는데, 무식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매번 예술품 앞에서 순간적으로 마음을 양분하며 감상을 이어간다. 마음에 안 들었던 작품이 나중에 다시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김연아에 대해서도 나는 언제부턴가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처럼 경외감을 품게 된 것 같다. 예쁘고 멋져서 마음에 꼭 드는 예술품인데, 심지어 거기다 인간적이고 마음 씀씀이도 넓은 대인배이며 스무살에 걸맞은 천진난만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어쩌란 말이냐. 저절로 애정이 샘솟는 걸. ^^ 

다들 일상의 구차스러움을 잊을 만큼 기쁨과 감동을 안겨준 김연아에게 고마워하는 분위기던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울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듯했으나, 오늘은 무한반복 재방송되는 연아 얼굴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만병통치 효과가 있는 김연아 백신이라도 맞은 기분이다. 고마워요, 연아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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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실망하거나 실패를 느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제각각일 것이다. 주변에서 맺고 끊기를 잘 못해서 쓸데없이 방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당연하겠지만 여전히 가끔씩 인간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 전전긍긍하는 일이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에 어떤 이유로든 금이 가는 상황은 그리 쉽게 넘길 수가 없다. 서로 안보면 그만인 관계에서도 그간의 역사와 추억이 남긴 흔적 때문에 괜한 배신감에 허덕이게 되니, 아예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관계에서라면 그 뒷감당이 더욱 어려워진다.

살아보니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그 최선이 모든 이들에게 다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어떤 이들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며 상처나 오해를 낳기도 한다는 건 깨달은지 오래다. 그런데 그걸 잘 알면서도 막상 나의 의도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뜻밖의 상대로부터 맞닥뜨렸을 때, 나는 바보처럼 충격에 사로잡힌다. 세상 누구에게나 착하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 따위는 없는 까칠한 인간임에도 그렇다.

서로 꽤 오래 공을 들인 관계에서 오는 실망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대개 자기비하와 자책이다. 다 내 탓이다. 내가 잘못한 거지. 결국엔 내가 죽일년이지. 동기가 선했다고 모든 결과가 용서되는 건 아니잖아. 내가 변해야 해. 선선히 잘못을 인정하고 바꿔나가야 해... 이러면서 제 발등을 찍고 또 찍으며 반성한다. 며칠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고민하느라 불면에 시달리는 건 예사다. 그러면서 온갖 과거의 사건들을 재현하고 되짚어보고 기억을 환기한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두번째 반응기가 시작된다. 버럭 화가 나는 거다. 내가 뭘 또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 측근이라면서 잘해보자고 한 행동을 그렇게도 몰라주나? 소통부족으로 인한 오해는 어차피 쌍방과실 아닌가? 이렇게 상대에게 분노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간 우정이나 애정의 이름으로 최대한 눈감아주었거나 덮어두었던 상대의 단점과 그간 마음에 안들었던 부분들이 열 배쯤 과장되어 떠오른다. 심지어 장점으로 여겼던 부분까지 눈에 거슬리는 지경에 이른다. 자신을 비하하며 자책하던 부분들은 서서히 흐려져 생각도 나질 않는다. 이성 따위는 원래 없었던 양, 감정의 과잉 속에서 허덕댄다.

세번째 반응은 미움이다. 모든 게 상대방 잘못 같고, 혹시나 운 없이 이 시기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렇게 꼴보기 싫을 수가 없다. 관계의 환멸을 느껴 두번다시 안봐도 되는 인물이라면 이 단계에서 깨끗이 정리돼 나의 인간관계망에서 삭제되므로 더 문제될 게 없다. 돌아보면 왜 그런 소모적인 관계를 이어왔나 한심할 정도라서, 금세 잊는 것도 가능하다. 쓸데없는 인간관계가 하나 더 정리 됐으므로 심지어 기뻐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계속해서 마주쳐야 하는 운명의 인물이거나, 내 생각에 여전히 회복할 가치가 있는 관계로 여겨지는 경우다. 볼 때마다 미움에 휩싸이면서 앞으로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생각하기란 거의 고문이다. 나처럼 성격 더러우면서 마음을 정할 땐 우유부단하고 인간관계에 휘둘리는 사람에겐 더더욱.

마지막 단계는 이성이 슬글슬금 제자리를 잡으며 두 방향으로 나뉘는 것 같다. 회복할 가치가 없는 관계임에도 계속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면 마음의 문을 닫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 호의의 가면을 쓰되 최대한 무관심하게 (실제로는 계속 미워하고 경멸하면서) 살아가기로 결정을 하거나, 어찌되었든 다시 이어가야할 관계라면 또 다시 마음 다칠 가능성을 예비하고라도 대화를 시도하여 더 나은 관계를 추구하는 방법. 물론 후자의 시도가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는 것도 아니라, 단단한 돌벽 같은 이를 만나 나만 더 만신창이가 되는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2단계로 돌아가 벌컥벌컥 화를 내며 증오심에 휩싸이다 나홀로 정리 단계로 맺음하는 수밖에.

맺고 끊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다치면서 왜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지 의문을 품겠지만, 나에겐 어쩌다보니 그런 관계가 더러 있다. 내쪽에선 말끔히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놀라운 이유로 내 관계망에 들어와 박힌 사람들. 따지고 보면 많은 이들에게 가족은 그런 애증의 관계가 아닌가? 어느 한 쪽이 죽거나 매몰차게 의절을 해야만 끝이 나는 관계. 하기야 다른 관계도 아닌 가족 안에서 인간적인 실망감과 환멸을 느낀다면 후유증은 가장 클것이다. 어쨌거나 내쪽에서 전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없는 관계의 불안한 지속은 참 어렵다.

최근들어 극저조한 기분의 원인을 이렇게라도 배설하면 좀 시원해질까 싶었는데, 아직은 3단계에 머물러 있는 터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 수 있을까나. 이놈의 펄럭거리는 감정 좀 쉽게 다잡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흔들리니 않는 나이가 불혹이라는 건 다 개뿔, 거짓말이다. 불행히도 난 아마 평생 이렇게 파르르 화르륵 펄럭펄럭 씨근대며 살아갈 것만 같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초연함인데, 지금 내게 있는 건 조바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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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라면 병

투덜일기 2010. 2. 24. 23:56

거의 매일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인간이지만 아주 가끔 컴퓨터를 켜지도 못하는 날이 있어 블로그 접근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나름 급한 일이라 자중한다고 블로그를 자진차단하는 날도 있다. 그렇게 만 이틀만에 블로그 세상에 들어오면 여기저기 새로운 글도 많고 요즘은 댓글이 수십개씩 달리는 게 유행이라 따라잡기가 만만찮음을 느낀다. 마치 모두들 다 아는 사이인 자리에 홀로 초면으로 끼는 듯한 어색한 기분에 비할까? 특히 이미 댓글이 열몇 개를 넘어가는 글엔 나도 모르게 손이 오그라들면서 머리가 잠시 멍해진다. 그러고는 곧 이어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꼭 댓글을 남겨 글을 읽었다는 표시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오가는 댓글 속에 싹트는 인정(?)이라지만 이른바 눈팅이라는 것만 하면서도 블로그질은 즐거울 수 있는데... 게다가 똑같은 견해를 뒷북치듯 댓글로 남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다.

그간엔 최대한 나를 채찍질해서 뒷북 댓글이라도 성실히 달려고 노력해왔는데, 점점 그러기가 싫다. 요즘 이웃들의 포스팅 가운데서는 댓글이 50개를 넘어가는 글들도 있는데 하나하나 너무 재미있어 또 어떤 댓글이 달렸을까 자꾸만 가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어떤 글에 내가 읽기도 전에 38개쯤의 댓글이 달려 있으면 돌연한 댓글 부담 때문에(확실히 병이다!) 본문도 잘 안읽힌다. ㅋ

그렇다고 또 글에 아무도 댓글을 안 달아놓은 청결한 상태에서 다는 첫 댓글을 즐기는가 하면 절대 아니다. 누구 글이든 나는 첫 댓글을 다는 게 꺼려지고 두렵다. <아싸~ 1등!> 이렇게 달아놓고 즐거워할 수도 있는 첫 댓글을 나는 왜 무서워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설마 댓글에도 <글막힘 혹은 writer's block>이란 게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병적인 소심함 때문? 

처음 블로그질을 시작하며 나는 내심 원칙을 하나 정했다. 블로그질이 과도한 스트레스가 되는 날, 과감히 관두겠다고. 그런데 알게 모르게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블로그 세상의 <예의>라는 게 슬슬 나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블로그 세상에서 처음 스트레스를 느낀 건 꼴같잖은 모 건축가가 엉뚱하게 명예훼손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바람에 티스토리측에게 잠시 글을 삭제당했던 사건 때문이었고, 소송을 불사할까보다며 전의를 불태웠던 나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글이 회복되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된 적이 있다. 그런데 댓글 스트레스는 그렇게 파르르 단기적인 분노와는 좀 다르다. 내가 극복하지 않으면 점점 더 큰 압박감으로 나를 삼킬 수도 있는 끝도 없는 모래수렁이랄까.

하기야 악플 달릴 것을 두려워하여 요번에 나온 소녀시대의 신곡이 너무 싫다는 내용의 포스팅은 아예 하지도 않을 정도로 이미 자기검열은 심해졌다. 재미없는 신세한탄만 계속 쓰는 것도 좀 민망하고, 스스로 재미 없는 포스팅이라고 여겨지는 글은 한참이나 비공개로 두었다가 간신히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쓰다 말았거나 비공개로 내버려둔 글이 꽤 된다. -_-;;) 그나마 다행인 건 일주일씩 포스팅을 건너뛰어도 거뜬해졌다는 사실이다. ㅋㅋ 구구절절 적고 보니 나는 아직도 초보 블로거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뭘 이런 걸 다 갖고 병이네 뭐네 고민을 하고 앉았는지 원.

어쨌거나 다 적었으니 이참에 선언을 해야겠다. 이웃이신 당고님의 어느 글에 예순, 일흔, 팔순에도 블로그 이웃하면서 글로 소통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달린 댓글에서 나도 안경다리에 줄 달린 돋보기를 쓰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열심히 블로그질을 하고 있는 노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슬몃 웃었기 때문에 내리는 선언이다. 수십년 이 짓을 계속하려면 더 편해져야 할 게 아닌가!

해서, 앞으로 나는 댓글을 소홀히 할 것이다. (내 글에 달린 이웃의 댓글에 일일이 답다는 것도 사실 귀찮았다)
아니 댓글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댓글로 이웃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을 테다!
나도 모르게 자판이 두들겨지는 댓글만 달겠노라!

설마 이 선언 때문에 다른 스트레스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나의 선언이 어떻게 지켜질지 나도 궁금하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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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배신

투덜일기 2010. 2. 18. 02:01

어설픈 나의 기억력 탓도 있긴 하겠지만 어려서 읽었던 동화의 줄거리가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더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괜한 배신감에 젖는다. 최근의 창작동화는 정확하게 어린이 독자를 겨냥해 쓰인 문학이지만, 옛날이야기로 내려오는 전통설화나 구전문학은 딱히 아동용이 아니었으므로 아이들에게 들려줄 땐 일부 내용이 각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50권짜리 어린이 명작동화 전집 따위에 들어 있었으니 당연히 동화라고 내가 믿었던 작품들이 실제로는 상당히 진지한 문학작품이었음을 알게 되더라도 배신감은 여전하다.

하기야 내가 어렸을 때 출간된 번역문학은 죄다 일본 출판사들이 각색해서 낸 책의 중역본이었으므로 일차로 일본 아동 출판사에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각색 및 편집하고 또 이차로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다듬으며 내용이 원전과 꽤 많이 멀어진 게 당연할 것이다. 어쨌거나 신랄한 풍자문학이었던 <걸리버 여행기> 같은 작품을 어린시절 그냥 환상적이고 신나는 모험 동화로 읽었던 나는 나중에 한참 유행하던 완역판으로 다시 보며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종일관 인간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존재로 그려지고 있던지. 

소설이야 그렇다 쳐도, 안데르센 동화집, 그림 동화집에 들어있던 동화마저도 내가 읽은 내용이 원전과는 조금씩 달랐단 걸 비교적 최근에 알았을 땐 불쑥 이게 뭐야, 하는 억울함마저 들 정도였다. 가령, 인어공주의 결말은 사랑을 잃은 슬픔에 물거품으로 변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번역을 의뢰받고 새삼 작업을 하다가 인어공주의 끄트머리에서 낯선 결말을 만났을 때 나는 하도 의아해서 비교적 어린 친구들에게 설문을 해볼 정도였다. 나랑 띠동갑 이상 되는 사람들은 혹시 물거품 이후의 결말을 알고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헌데 너무 어린 친구들은 이미 명작동화 세대가 아니라 창작동화 세대였던지, 물거품 결말도 아니고 왕자의 무지를 일깨우고 악한 마녀를 무찔러 사랑을 이루는 디즈니 만화의 해피엔딩만 알고 있었으며, 그 외엔 하나같이 물거품이 되는 것으로 기억했다.

동화치고 슬픈 결말이라 어린시절 내 눈물을 쏙 뺐던 인어공주 이야기는 솔직히 물거품으로 스러지는 결말이 가장 극적이라고 느껴지기에, 과거 동화책을 만든 사람들이 거기까지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원래 그렇게 끝내질 않았다는데 어쩌겠나 말이다. 원래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된 뒤에 다시 공기의 정령이 되어 삼백 년이나 인간 세상을 떠돌 운명이다. 원래 불멸의 영혼이 없는 인어는 인간의 사랑을 얻어야 불멸의 영혼을 지닐 수가 있는데, 일단 사랑에 실패를 했으니 다른 방법으로 삼백년간 인간 세상을 떠돌면서 착한 일을 해야 천국에 갈 수가 있다나. -_-;


어려서 나는 안데르센 동화 가운데 <인어공주>를 제일 좋아했고, <빨간 구두>를 제일 싫어했는데 알고보니 결론은 다 똑같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너무도 당연했던 그 시대에 뭘 더 바라겠냐만 그래도 제 분수를 모르고 허황된 꿈을 꿨던 소녀들은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른 뒤 깊이 회개하고 나서야 천국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판국이니 우리 세대가 필독도서로 읽던 <고전 명작 동화>가 인종주의, 남성우월주의 같은 편견을 주입시킨다는 이유로 점점 퇴출되는 반면 요즘 아이들에겐 창작동화가 훨씬 더 많이 읽히는 게 당연하다. 부모가 자식을 갖다 버려 간접 살해를 시도하질 않나, 식인마녀가 등장하질 않나 결국엔 아이들이 마녀를 끓는 물에 빠뜨려 죽이는<헨젤과 그레텔>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잔혹한 이야기인가 말이다. 그림형제의 동화는 특히 민담을 수집해 엮은 게 많아서 은근히 잔혹동화가 많단다. 

내가 어린시절 동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어떤 역경에도 결국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결말 때문이었고, 그런 기대를 저버리는 <성냥팔이 소녀>나 <인어공주> <거인의 정원> 같은 비극은 어린 마음에도 배신감과 낯설음에 막막했지만 나름의 감동으로 소녀의 감수성을 키웠던 듯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결말도 아니더라는 상황은 더 큰 배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더는 몰랑몰랑해질 수 없는 메마른 어른의 심장에 그나마 간직된 아련한 추억을 새삼 빼앗기는 기분이랄까.

같은 작품도 나이에 따라 느낌과 감동이 달라지므로 중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들, 특히 고전작품은 다시 읽어보고 싶은 게 꽤 많지만 앞으로도 명작동화는 웬만하면 거들떠보지 않을 작정이다. 동화는 그 옛날 내 마음대로 재구성을 했든 말든 그냥 그 감동 그대로만 기억에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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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정원

투덜일기 2010. 2. 11. 23:30

제일 처음 거인의 정원 이야기를 읽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요즘 특히 신빙성에 도전을 받고 있는 나의 부실한 기억으론 <분명>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였던 것 같은데 자신은 없으니 (근데 왜 <분명>이라고 쓰고 싶은지) 찾아볼 마음도 들지 않는다. 어쨌거나 내 마음대로 구성해 놓은 내 기억속의 <거인의 정원>은 국어책에 들어 있었고, 학기초에 새책을 받아오면 달력 뒷장으로 책표지를 싸면서 먼저 교과서 들춰보는 걸 좋아했던 어린 나는 거인의 정원 이야기를 읽고 너무 슬퍼서 눈물을 조금 흘렸거나 울뻔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내쫓는 바람에 봄이 찾아오지 않아 춥고 모진 겨울만 존재하는 거인의 정원과 나중에 욕심을 버렸는데도 결국 그 정원에서 쓸쓸히 맞이하는 거인의 죽음이 어찌나 슬프던지.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야 그게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란 걸 알고 나서 반갑게 다시 읽어보니, 어린 시절에 읽은 내용은 꽤나 각색된 것이었고 원작은 기독교적인 결론이라 솔직히 크게 실망스러웠다. 어린 마음에 충격으로 다가왔던 비극적인 결말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주변과 달리 드물게 눈이 쌓여 이상스레 녹지 않는 공간을 볼 때면 지금도 습관적으로 <거인의 정원>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거인의 정원을 뜻밖에도 우리집 마당에서 발견했다. 오늘 오전에 집을 나설 때쯤엔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며 쌓였던 눈이 푹한 날씨에 순식간에 녹아 오후에 귀가할 땐 눈이 언제 왔던가 싶게 말갛게 씻긴 모습이라 내심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 여겼는데 집앞 계단을 올라와보니 손바닥만한 마당엔 하얗게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더란 얘기다. 오후엔 분명 진눈깨비가 내리다 기온이 영상이라 비로 바뀌었던데 잔디밭도 아니고 콘크리트 시멘트로 뒤덮인 그 공간에 쌓인 눈은 왜 온전한 것인지. 갑자기 높은 담벼락을 둘러싸놓고 홀로 사는 욕심쟁이 거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괜스레 등허리로 찬바람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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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투덜일기 2010. 2. 10. 15:46
서른을 넘기고부터인가 기억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고 신빙성 떨어지는 두뇌작용인지 점점 더 뼈저리게 깨닫고는 있지만, 그래도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르게 인식된 기억의 파편을 딴 사람과 맞추다 보면 힘이 쭉 빠질 때가 있다.

맞아, 기억이란 원래 자기검열을 거쳐 제 입맞에 맞게 저장되는 거야, 라고 위로해 보아도 주인공이 내가 아닌지라 나름으론 최대한 객관적으로 저장해두었다고 생각한 기억을 꺼내놓았는데 완강한 부정의 반응이 나오면 마치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한 것마냥 억울함이 느껴져 쓸모없는 짓인 줄을 알면서도 상대에게 내 기억을 강요하고 싶어진다.

심지어 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아련한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하기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걸 알고 났을 땐 가슴이 아프다. 어느쪽이 왜곡되었든 기억을 다른 방향으로 교정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방금 전에 놓아두었는데 까먹은 열쇠의 위치도 기억이고 십수년 전 인식된 충격도 기억이기에, 말랑하든 딱딱하든 내 두뇌에 새겨진 흔적이란 별로 미덥지 않은 약속 같은 거라고 자꾸 최면을 걸면서도 제딴엔 소중히 넣어두었던 기억인지라 누가 아니라고 하면 자꾸 마음을 다친다. 

머리가 나빠서 기억보다 망각의 양이 워낙 엄청나 얼마 안 남은 기억에 이리도 미련을 갖는 것인가. 원래 인간은 기억보다 망각의 동물이라던데. 그리고 이왕 남은 기억은 될수 있는 대로 곱게 포장이 된다던데, 늘 그렇듯 예외는 있나보다.

서로 머리속을 뒤집어 보여줄 수도 없으니 제3자, 제4자까지 끌어들여 합동대면을 하지 않고서야 어느 게 맞는지 확인하기 힘겨운 기억의 왜곡. 그냥 각자의 기억대로 덮어두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여기면서도 저 너머에 있을 진실을 캐고 싶은 욕망에 자꾸 머리털을 쥐어 뜯는다. 이렇게 내가 집착하는 인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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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사람

투덜일기 2010. 2. 2. 22:02

아버지가 생전에 늘 그러셨다. "나는 제일 무서운 사람이 쟤(나를 가리키며)"라고. 엄마도 그 말뜻을 이제야 알겠다며, 내가 제일 무섭고 눈치 보인단다. 대외적으로는 소심하지만 가족에게는 해야할 말이나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내 성격 때문일 것도 같고, 또 연로하신 부모님과 동거하는 비혼 자식의 흔한 상관관계 때문일 듯도 하다. 하기야 가끔은 고모님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듣고 살았다. "나는 라니가 제일 무서워!" 병약하고 연로한 울 왕비마마 대신 집안 대소사에 얽힌 의견조율과 결정을 내가 도맡으면서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기도 한데, 한 몇년 쯤 어디론가 멀리 사라졌다 오면 모를까 어느덧 <집안의 최고어른>이 되어버린 왕비마마를 모시고 사는 한은 권한대행 격으로 휘두르는 칼자루를 놓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작은아버지들도 장손인 동생놈과 의논하는 것보다 아직은 형수님 계신 우리집과 먼저 상의하는 게 옳다고 느끼시는 모양이라, 톡 잘라서 손떼겠다는 말이 안나온다. 어쩌면 내심 무서운 사람으로서의 권력을 즐기는 건 아닌지.

암튼 친지들은 내가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는데, 나는 조카들이 제일 무섭다. 특히 섣불리 한 약속을 절대 안 까먹고 들이대는 조카들의 새카만 눈망울을 보면 오금이 저린다. 얼마 전엔 공주한테 이런 말도 들었다. "약속 안지키는 어른들 정말 짜증나! 고모도 똑같아!" 주로 놀러 가겠다거나, 장난감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해놓고서 기한을 못지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방학엔 은근히 공허한 약속을 남발했다가 덜컥 개학을 맞고 말았다. 게으름 탓에 언제나 마감에 쫓기는 마감인생 고모가 특히 월말월초에 바쁘다는 걸 조카들에게 핑계대기엔 스스로도 민망하지만, 결국 이번 방학 약속은 봄방학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부디 봄방학 동안에는 고모의 신용을 좀 회복할 수 있으려나. 조카들이 조금 더 크고 나면 "고모 놀자!" 소리도 하지 않게 될 거라고, 그 때가 올까봐 벌써부터 속상한 마음은 분명 있는데, 동시에 "고모 놀자!"는 말이 무섭기도 하다. 체력 딸리고 아이디어 딸려서 예전처럼 뛰노는 놀이는 쉬 지치는 데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안기기라도 하면 허리가 휘청~ 자빠질까 겁난다. 마음 한 켠으론 내게 무서운 사람으로서의 짜릿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는 녀석들이 그만 자랐으면 좋겠다가도, 팔팔하던 예전보다 고모 노릇을 제대로 못할까봐 겁이 나는 모양이다. 에구구. 그나저나 봄방학도 열흘밖에 안남았다. 원고 독촉보다 더 무서운 조카들과의 약속을 위해서라도 더욱 매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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