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이후 이십년 넘게 미용실을 들락거리며 주워들은 미용사들의 조언에 따라 파마 머리에 대하여 갖게된 나의 상식은 <기본적으로> 두세 달에 한 번은 새로 파마를 해줘야 스타일이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파마의 종류가 스트레이트든, 롤스트레이트든, 디지털파마든, 세팅파마든...
물론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그렇게 자주 파마를 해댈 리는 없다. 짧았던 머리를 좀 길러야겠다 싶으면 앞머리를 집에서 가위로 대충 잘라대며 반년 넘게 버틴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미용실엘 가면 끄트머리에만 남은 파마기와 그간 방치했던 머리칼 상태 때문에 공연히 미용사들한테 주눅이 들었다. 두피가 약하네, 머리칼이 많이 상했네 하면서 값비싼 두피케어나 헤어제품을 강권당하기도 일쑤였고.
그런데 정석대로 석달만에 찾아간 미용실에서 오늘 그 허망한 상식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같은 반곱슬머리는 굳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할 이유가 없단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굽은 머리칼을 이상하게 뻗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낼 뿐이라 파마 후엔 드라이 하는데 시간과 공만 더 들 뿐이라나. +_+
꿈의 미용실로 등극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동네 미용실에 갔더니만 지난번 내 머리를 만져준 점장님은 없고 아저씨 원장이 대신 머리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석달이 다 돼 지저분하기도 하고 사방으로 머리가 뻗치고 있어 다시 롤스트레이트를 하려 한다는 내 말을 듣더니, 그는 왜 하필 롤스트레이트를 선택했느냐고 되물었다. 곱슬거리는 파마는 베이비펌이니 뭐니 해도 결국 아줌마 파마가 되버린 전적이 있어서 그냥 풍성해보이는 커트머리를 추구하기 위함이라는 내 대답에, 그는 묵묵히 무슨 예술품이라도 빚듯이 오랜 시간 정성들여 머리칼을 자르고 또 자르고 다듬더니만 손질을 다 끝내고 나서 (속으로 나는 파마 하고 나서 다시 잘라야 할 텐데 뭘 이리도 공을 들이나 의아해 하고 있었다) 내게 말했다.
"손님처럼 반곱슬머리인 경우에는 숏커트에 롤스트레이트를 하는 의미가 없어요. 볼륨감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롤스트레이트를 하고 나면 컬이 과해져서 드라이나 손질을 더 정성들여 해야 머리모양이 잡힐 걸요. 지금 머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뒤에서 바람만 쏘인 거잖아요. 제가 보기엔 이 상태가 더 좋아요. 손님이 보시고 굳이 파마를 할지 결정하세요."
헐... 파마하러 왔다는데 롤스트레이트를 하려면 파마하지 말고 그냥 때 되면 커트만 해주라고 조언하는 미용사가 다 있다니! 아마도 지난 20년을 파마 유형으로 나눠본다면 절반은 뽀글이 파마, 나머지 절반은 생머리에 가까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해왔는데 그렇다면 10년간은 쓸데없이 돈과 시간만 낭비했다는 뜻이 아닌가! 학자들마다 이론이 다르듯이 미용사들도 직업적인 철학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지금껏 나 같은 반곱슬 짧은 머리는 굳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이론을 갖고 있는 미용사가 이 세상에 단 한명일 리는 없다. 다만 다른 미용사들은 손님이 원하고 또 자기네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부러 권하기도 하고 해달라는 대로 해줬겠지.
암튼 나는 어벙벙한 상태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40여분만에 머리 손질을 마치고 미용실을 나섰다. 파마값이 드는 대신 가뿐하게 커트 비용만 들었음은 물론이다. 내가 요구했던 머리 모양은 봄이니까 경쾌하고 가벼워보이면서 머리숱이 좀 많아보이는 커트였는데, 딱히 어떤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만하면 결과도 흡족하다.
꿈의 미용실에 대한 조건은
1)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모양으로 커트를 잘 할 것
2) 가격이 적당할것
3)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
4) 과도하게 친절하지 않을 것
5) 시시콜콜 말을 많이 걸지 않을 것
이었는데, 심지어 여기는 원장이 양심적이기까지 하다!
이제 겨우 두번째 방문이므로 정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모양을 잘 연출해내는지는 한번 더 실험해봐야하겠지만, 젠체하지 않고 조근조근 파마 안하고 자르기만 해도 된다는 설명을 해준 원장의 태도로 봐선 이미 점수를 많이 땄다. 하기야 홍대앞 모 미용실도 꿈의 미용실에 가깝다 여기며 몇년간 충성을 바치다 변심한 전적이 있으므로 여기도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저 두고볼밖에. 어쨌거나 나란 인간이 어찌나 단순하고 간사한지, 파마를 했더라도 어차피 내 주머니에서 나갈 돈인데 파마값이 굳은 게 왜 이렇게 공돈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돈도 돈이지만 드물게 사람에게 기분이 좋아진 때문이라고 여길란다.
물론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그렇게 자주 파마를 해댈 리는 없다. 짧았던 머리를 좀 길러야겠다 싶으면 앞머리를 집에서 가위로 대충 잘라대며 반년 넘게 버틴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미용실엘 가면 끄트머리에만 남은 파마기와 그간 방치했던 머리칼 상태 때문에 공연히 미용사들한테 주눅이 들었다. 두피가 약하네, 머리칼이 많이 상했네 하면서 값비싼 두피케어나 헤어제품을 강권당하기도 일쑤였고.
그런데 정석대로 석달만에 찾아간 미용실에서 오늘 그 허망한 상식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같은 반곱슬머리는 굳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할 이유가 없단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굽은 머리칼을 이상하게 뻗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낼 뿐이라 파마 후엔 드라이 하는데 시간과 공만 더 들 뿐이라나. +_+
꿈의 미용실로 등극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동네 미용실에 갔더니만 지난번 내 머리를 만져준 점장님은 없고 아저씨 원장이 대신 머리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석달이 다 돼 지저분하기도 하고 사방으로 머리가 뻗치고 있어 다시 롤스트레이트를 하려 한다는 내 말을 듣더니, 그는 왜 하필 롤스트레이트를 선택했느냐고 되물었다. 곱슬거리는 파마는 베이비펌이니 뭐니 해도 결국 아줌마 파마가 되버린 전적이 있어서 그냥 풍성해보이는 커트머리를 추구하기 위함이라는 내 대답에, 그는 묵묵히 무슨 예술품이라도 빚듯이 오랜 시간 정성들여 머리칼을 자르고 또 자르고 다듬더니만 손질을 다 끝내고 나서 (속으로 나는 파마 하고 나서 다시 잘라야 할 텐데 뭘 이리도 공을 들이나 의아해 하고 있었다) 내게 말했다.
"손님처럼 반곱슬머리인 경우에는 숏커트에 롤스트레이트를 하는 의미가 없어요. 볼륨감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롤스트레이트를 하고 나면 컬이 과해져서 드라이나 손질을 더 정성들여 해야 머리모양이 잡힐 걸요. 지금 머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뒤에서 바람만 쏘인 거잖아요. 제가 보기엔 이 상태가 더 좋아요. 손님이 보시고 굳이 파마를 할지 결정하세요."
헐... 파마하러 왔다는데 롤스트레이트를 하려면 파마하지 말고 그냥 때 되면 커트만 해주라고 조언하는 미용사가 다 있다니! 아마도 지난 20년을 파마 유형으로 나눠본다면 절반은 뽀글이 파마, 나머지 절반은 생머리에 가까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해왔는데 그렇다면 10년간은 쓸데없이 돈과 시간만 낭비했다는 뜻이 아닌가! 학자들마다 이론이 다르듯이 미용사들도 직업적인 철학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지금껏 나 같은 반곱슬 짧은 머리는 굳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이론을 갖고 있는 미용사가 이 세상에 단 한명일 리는 없다. 다만 다른 미용사들은 손님이 원하고 또 자기네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부러 권하기도 하고 해달라는 대로 해줬겠지.
암튼 나는 어벙벙한 상태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40여분만에 머리 손질을 마치고 미용실을 나섰다. 파마값이 드는 대신 가뿐하게 커트 비용만 들었음은 물론이다. 내가 요구했던 머리 모양은 봄이니까 경쾌하고 가벼워보이면서 머리숱이 좀 많아보이는 커트였는데, 딱히 어떤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만하면 결과도 흡족하다.
꿈의 미용실에 대한 조건은
1)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모양으로 커트를 잘 할 것
2) 가격이 적당할것
3)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
4) 과도하게 친절하지 않을 것
5) 시시콜콜 말을 많이 걸지 않을 것
이었는데, 심지어 여기는 원장이 양심적이기까지 하다!
이제 겨우 두번째 방문이므로 정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모양을 잘 연출해내는지는 한번 더 실험해봐야하겠지만, 젠체하지 않고 조근조근 파마 안하고 자르기만 해도 된다는 설명을 해준 원장의 태도로 봐선 이미 점수를 많이 땄다. 하기야 홍대앞 모 미용실도 꿈의 미용실에 가깝다 여기며 몇년간 충성을 바치다 변심한 전적이 있으므로 여기도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저 두고볼밖에. 어쨌거나 나란 인간이 어찌나 단순하고 간사한지, 파마를 했더라도 어차피 내 주머니에서 나갈 돈인데 파마값이 굳은 게 왜 이렇게 공돈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돈도 돈이지만 드물게 사람에게 기분이 좋아진 때문이라고 여길란다.